소설방/유혹

(52)홀리데이 컬렉션-1

오늘의 쉼터 2015. 2. 8. 14:06

(52)홀리데이 컬렉션-1

 

 

 

 

 

 

 

똑똑똑…

 

노크 소리를 잠결에 들었다.

 

꿈인가?

 

눈을 떠 보았다.

 

낯선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

 

집이 아니다.

 

순간, 정신이 멍해진다.

 

술이 덜 깼나 보다.

 


호텔 방의 침대 안이다.

 

유미는 가운을 걸치고 방문 앞으로 갔다.

 

“누구세요?”

 

“예, 아침식사입니다. 어젯밤 룸서비스를 해달라고 전화 주셔서….”

 

그제야 생각이 난다.

 

“고마워요. 방문 앞에 두고 가세요.”

 

입안이 깔깔해서 지금은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

 

다시 침대로 든다.

 

그때 휴대폰이 울린다.

 

발신 번호가 뜨지 않는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

 

여전히 침묵. 폴더를 닫아버린다.

 

누굴까? 그일까…?

 

인규일까?

 

인규는 가족을 데리고 연말연시 해외여행을 떠났을 텐데…

 

전화 때문에 잠이 깬 유미는 커튼을 열어젖힌다.

 

해 뜬 지 좀 됐나 보다.

 

도시의 빌딩 스카이라인에서 백열등처럼 흐릿하게 빛나는 해가 한 뼘쯤 떨어져 있다.

 

새해의 첫날이다. 새해 첫날의 해는 흐린 날씨 탓인지 창백하다.

 

새해 첫날의 해라고 뭐가 다를까?

 

시간의 개념을 창조한 인간은 새것, 특히 첫 번째라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새해, 새 가방, 새색시, 새신랑, 게다가 첫 키스, 첫사랑, 첫 섹스…

 

모든 새것들이 처음 것들은 아닐 테지만, 인간은 ‘첫’이나 ‘새’라는 접두어를 붙임으로써

 

자신의 경험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엄마의 말이 떠오른다.

 

엄마는 늘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처음이 중요하단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다 어그러지게 되는 거야.

 

엄마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사람이었다.

 

그것이 엄마의 불행의 시작이었다.

 

게다가 인생을 마치 도미노 게임으로 생각했던 것 또한 엄마의 불행의 끝이었다.

 

그 말의 의미를 잘 몰랐던 어린 시절에 유미는 외투의 단추를 채울 땐 늘 밑에부터 채웠다.

 

“엄마, 그럼 이렇게 채우면 되지?”

 

그러면 엄마는 유미의 엉뚱한 발상에 약간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웃어주었다.

 

그 엄마 밑에서 자란 유미 또한 자라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우게 되었다.

 

하지만 유미는 모든 것이 끝이 좋아야 좋은 법이라고 생각한다.

 

최후에 웃는 자가 이기는 자라는 독일 속담을 좋아한다.

 

유미는 새것과 처음 것이 늘 좋은 거라는 생각을 이제는 하지 않는다.

 

생각이 인생을 바꾼다.

 

지금 현재 행하는 경험 자체가 새롭다.

 

섹스도 그랬다.

 

모든 섹스가 유미에게는 새롭다.

 

연말연시는 독신녀가 지내기에는 불편한 시간이다.

 

언제부턴가 유미는 그 시간을 자신만을 위해 즐기기로 했다.

 

보통은 큰맘 먹고 해외나 국내의 한적한 곳으로 여행을 가곤 했다.

 

그러나 올해는 연말의 여러행사 때문에 시내의 특급호텔 투숙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유미의 수입으로 볼 때 적은 돈은 아니지만,

 

1년간 애쓴 자신의 몸과 정신에 대한 위로라면 아깝지 않았다

 

어젯밤 그동안의 다이어리를 저녁 내내 정리하다가 조식 룸서비스를 전화로 예약하고

 

가볍게 칵테일이나 한잔하려고 바에 내려갔다.

 

그때 희미한 조명 속에서도 한 남자의 집요한 눈길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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