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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홀리데이 콜렉션-5

오늘의 쉼터 2015. 2. 8. 14:18

(56) 홀리데이 콜렉션-5

 


 

 

 

 

 

줘도 못 먹는 놈을 어쩌겠는가.

 

“유 투. 해피, 해피 뉴 이어!”

 

유미도 덕담을 해 주고 전화를 끊었다.

 

기분도 꿀꿀해서 바에 내려가서 한잔 더 하고 올까 하다가 유미는 단념했다.

 

그리고 가방 안에서 오래된 다이어리를 꺼냈다.

 

매년 신년에 하는 유미의 세리머니라 할 수 있다.

 

일명 S 다이어리. 하지만 영화 ‘S 다이어리’에서처럼 복수를 위해 사용되는

 

일은 없으리라는 게 유미의 생각이다.

 

유치하지만 유미에게는 소중한 기록이다.

 

이런 기록들은 유미의 블로그뿐 아니라 생각이나 의식에 영향을 주었다.

 

어떻든 유미의 인생에 다양한 추억을 제공할 것이다.

 

소녀기에 쓴 첫 일기에서부터 최근에 드문드문 쓴 일기까지 일기장은 총 여섯 권이나 되었다.

 

외롭게 자란 유미는 어린 시절부터의 취미가 수집이었다.

 

우표 수집부터 액세서리, 한때는 음반, 판화… 심지어는 한때 남자들의 정액을 모으기도 했다.

 

일부러 모은 게 아니라 정액이 든 콘돔을 색 리본으로 묶어서 분류하다 보니

 

나름대로 묘한 재미가 있었던 것이다.

 

한때의 취미였을 뿐이다. 호기심과 상상력이 많은 여자의 괴벽이었지만,

 

그 사실을 아는 남자들의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엽기적인 여자로 환영하는 경우와 그런 그녀를 ‘또라이’ 취급하는 경우.

 

다시금 유미가 이 다이어리에 관심을 가지는 건 최근에 무언가 이상한 조짐을 느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어쩌면 과거의 누군가가 그녀의 존재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누구일까? 유미는 다시 다이어리를 분석해 보았다.

 

그녀가 잔 남자는 대략 70여명선. 그러나 그녀의 가슴에 옹이처럼 박힌 남자만 해도 다섯은 되었다.

 

인간의 삶은 수많은 경험의 집적일 텐데, 그럴 때마다 유미의 삶은 마디가 굵어진 것 같다.

 

자신이 생각해도 많이 변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자신이야말로 ‘내추럴 본 섹시’다.

 

의도적이든 본능적이든 유미는 욕망에 자연스레 부합되는 삶을 살려고 했다.

 

욕망의 과정에서 만난 순수한 쾌락의 세계, 그 세계가 주는 자유로움의 경지.

 

그런 것들만큼 인생의 새로움과 열정, 창의성을 일깨우는 건 없었다.

 

다만 그렇게 되기까지 유미에게도 남모를 슬픔과 고통이 따랐다.

 

다만 그걸 가슴에 무덤처럼 안고 살아갈 뿐이다.

 

다이어리는, 그러므로 무덤에 순장된 쓸쓸한 경전 같은 것이다.

 

그때 휴대전화의 벨이 울렸다.

 

박용준이었다.

 

살짝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셨어요?”

 

“어머, 용준씨도요?”

 

“저야 뭐….”

 

“좀 취한 목소린데요?”

 

“술 조금 했어요. 제가 술을 안 마시면 감히 선생님께 전화 못하죠.

 

그나저나 이런 날 혼자 외롭지 않으세요?”

 

지완이 가족과 함께 해외여행 중이니 그도 외로울 것이다.

 

“동병상련이네요.”

 

겨우 가라앉힌 술 생각이 갑자기 났다.

 

“한잔 할까요? 전에 오셨을 때 문전박대한 것도 미안하고….”

 

“박용준, 어디든 불러만 주시면 쏜살같이 달려가겠슴다!”

 

박용준이 신이 나서 병사처럼 말했다.

 

유미는 호텔의 바로 용준을 오라고 했다.

 

제자와의 스캔들?

 

뭐, 강의도 끝나고 졸업만 남았을 텐데. 친구의 애인?

 

친구 지완은 내 애인 인규를 차지하고 있잖은가.

 

오늘은 욕망이 흐르는 대로 놔둘 것이다.

 

그게 윤 이사의 반응에 대한 반동적인 감정이라 할지라도.

 

유미는 다이어리 마지막 페이지에 박용준이라 써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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