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칼과 칼집-15
용준과 개통식을 한 이후로 지완의 삶은 좀 달라졌다.
삶이 풍부, 또는 복잡다단해졌다.
적어도 권태롭진 않았다.
약간의 조울증 같은 상태라고나 할까.
뭐든지 처음이 문제였다.
그날 황당한 상황에서 갖게 된 첫 섹스에 대한 어색함과 미련이 지완에게는 있었다.
그러나 그것 또한 환경의 문제였다.
만약 무인도였다면 지완 역시 그렇게 주눅이 들진 않았으리라.
우선 모텔이나 호텔에 들어가는 것부터가 제일 싫었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일까. 불륜을 하고 있다는 자격지심 때문일까.
그래서 지완이 한 일은 용준에게 월세 원룸 오피스텔을 얻어 준 것이었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 50만원짜리 18평형 오피스텔이었다.
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게 그렇게 좋았다.
시내에 나가면 그곳엘 들렀다.
그러면 솜씨 좋은 용준이 된장찌개나 제육고추장볶음 같은 반찬이나 안주를 만들어 놓았다.
그와 함께 반주로 마시는 소주가 그렇게 맛있는지는 처음 알았다.
술이 살짝 취하면 흥분이 더 잘된다는 것도. 늦가을 햇빛이 스며드는 한낮의 섹스도 좋았다.
곯아떨어져 달게 자는 낮잠도 시간이 많은 애인과 함께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그날도 용준의 팔베개를 하고 잠이 들었다 깨어났다.
“오유미씨와는 언제부터 친구였지?”
용준은 이제 지완에게 자연스레 반말을 한다.
“그러니까, 같은 대학을 나왔어. 물론 과는 다르지만.”
“그땐 어땠어?”
“그때도 물론 예쁘긴 했지. 지금과는 많이 다르긴 하지만. 걔는 학교 앞 카페에서 알바를 했었지.”
“남학생들한테 인기 많았겠네.”
“집이 어려웠나 봐. 걔 자취방엘 가 본 적 있는데…. 가난했어.”
“화려해 보이는데.”
“그렇지. 유미가 내게 먼저 말을 붙였는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인상이었어.
혹시 동창인가 하고 유치원서부터 맞춰 봤는데 아니었어.”
지완은 그 옛날, 어스름 녘에 캠퍼스에서 만났던 유미의 모습을 떠올렸다.
‘너 유지완 맞지?’ 유미는 마치 지완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을 붙였었다.
그러며 웃었는데 화사한 그 웃음이 꼭 어스름 녘의 복사꽃처럼 요요해 보였다.
섬뜩한 아름다움이었다.
그 웃음이 어딘지 낯익다고 생각되었었다.
“그런데 2학년 겨울방학에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이 돌았었지.
들리는 말로는 시댁에 들어가 산다고도 했고. 그때부터 좀 뜸하게 만나긴 했어.
걔 그때 낳은 딸이 지금 여고생쯤 됐을걸?”
“뭐라고? 정말?”
“겨울에 낳았다고 설희라고 이름 지었다고 했어. 이거 괜히 말했나 보다. 모른 척해.”
“완전 처녀 같은데. 그럼 뭐야, 지금? 유부녀? 돌싱? 과부?”
“졸업하고 이혼했다는 거 같아. 근데 왜 그렇게 유미에게 관심이 많아?”
지완이 용준을 꼿꼿하게 쳐다보았다.
“아냐, 그런 거 없어. 내겐 당신이 소중해.”
“걔가 이혼한 후로는 소식을 끊었어. 걔가 어떻게 살았는지 난 몰라.
이상한 소문이 들리기도 하고…. 한 7년 만에 유미가 나타났어.
그게 요즘에 아는 유미야. 그동안 유미가 어디서 무얼 했는지 모르겠지만,
왠지 난 걔가 딴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졌어. 그냥 내 느낌이야. 여자들은 잘 변해.”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말도 있지.”
“그래. 남편에게 와인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어. 내 남편 소믈리에거든. 내가 소개시켜 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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