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47) 칼과 칼집-12

오늘의 쉼터 2015. 2. 1. 17:27

(47) 칼과 칼집-12

 


 

 

 

 

“그나저나 장인어른께 그것 좀 얘기하라니까!”

 

지완은 남편 인규의 속셈이 얄미웠다.

 

그래도 지금은 토를 달지 않는 게 좋다.

 

겉으로야 태연하지만, 지완의 가슴은 아까부터 계속 벌렁댔다.

 

인규를 무시하고 안방으로 왔다.

 

드레스룸으로 가서 옷을 벗고 거울을 바라본다.

 

붉게 칠한 루주가 뭉개져 있다.

 

오늘 따라 탱고 댄서처럼 흑장밋빛 루주를 발랐는데…

 

세상에, 인규가 이걸 보지 않은 게 다행이다.

 

드디어 용준과 첫 키스를 하게 되다니…

 

그런 격렬한 키스는 결혼 전, 인규와의 데이트 이후 10년이 훨씬 넘었다.

 

남편에게 살짝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나 그만큼 느낌이 더욱 달콤했다.

 

오늘밤 생리가 시작되지만 않았어도 어쩌면 문호를 개방했을지도 모른다.

 

지완은 자신이 어쩌면 어느 날 베를린장벽처럼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자유와 개방의 의지를 억지로 벽돌로 누르고 있는 장벽.

 

그런데 두 몸이 합쳐질 통일의 날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며칠 후 낮에 용준에게서 연락이 왔다.

 

동네의 카페 ‘러브홀릭’에서 만나자고 했더니, 홍대 앞으로 나오란다.

 

홍대 앞 선배 화실에 기거하고 있단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실 때 그가 말했다.

 

“저, 집에서 나왔어요.”

 

“어머, 왜요?”

 

“그날… 걸렸어요.”

 

“…?”

 

“지완씨 루주가 범벅이 된 걸 보고는….”

 

지완은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어머, 어떡해요. 정말 미안해요.”

 

“아니에요. 다만 선배 화실에서 지내는 게 불편해서요.”

 

“작업실이 없어요?”

 

“예. 제가 아직 형편이… 이런 얘기 그만해요. 저 술 좀 사주실래요?”

 

지완은 용준에게 술을 사주었다.

 

용준은 급하게 폭음을 했다.

 

“저 형편없는 놈이죠.

 

지완씨랑은 어울리지 않죠.

 

알아요. 하지만 제 마음을 어쩔 수 없어요.”

 

술이 취한 용준은 자괴감에 젖어 말했다.

 

운전 때문에 술을 거의 마시지 않은 지완은 그런 용준에게 연민이 일었다.

 

두 사람이 밖으로 나왔을 때는 짧은 늦가을 해가 이미 저물어버렸다.

 

일단 취한 용준을 차에 태웠다.

 

“지완씨, 나 머리가 너무 아파요. 지완씨 곁에서 좀만 잤으면….”

 

이게 무슨 소리야? 어디 가서 쉬려면 모텔에 가야 하는데.

 

그런 데 한 번도 가본 적도 없는데….

 

더군다나 내 발로 맨 정신으로는 절대 못가지.

 

그러자 유미의 집이 여기서 그리 멀지않은 게 생각났다.

 

“일단 유미 집에 여분의 방이 있으니, 우리 거기 가서 잠깐 쉬면 어떨까….”

 

“오유미씨 집요? 아, 그래요. 좋아요.”

 

“전화를 해야 할 텐데.”

 

“운전하세요. 제가 문자 보낼게요.”

 

“그럼, 그러세요.”

 

어느새 유미의 아파트에 다다랐다.

 

용준은 더 이상 흐물거리지 않고 조용히 앉아 눈을 감고 있다.

 

지완이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려는데 저쪽에 눈에 익은 차가 보였다.

 

이 차가 왜 여기에 와 있을까?

 

그것은 놀랍게도 인규의 차였다.

 

그때 용준이 눈을 떴다.

 

“내려야죠.”

 

용준이 혀 꼬부라진 소리로 말했다.

 

지완은 순간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었다.

 

지완이 용준의 팔을 잡았다.

 

“잠깐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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