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44) 칼과 칼집-9

오늘의 쉼터 2015. 2. 1. 17:16

(44) 칼과 칼집-9

 

 

 

 

 

 

 

 


유미의 쌀쌀맞은 박대에 물러난 용준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그것은 유미에게라기보다 자신을 향한 것인지도 몰랐다.

 

바보처럼 유미의 아파트를 두 시간 전부터 꽃다발을 들고 배회했다.

 

리포트는 핑계고 무슨 수를 쓰든 유미의 집에라도 들어가 그녀의 몸을,

 

아니 마음을, 아니 입술만이라도 뺏고 싶었다.

 

꽃을 든 강도. 그 모습이 바로 자신의 어쩔 수 없는 모습이다.

 

그녀가 아무리 교수라 해도 여자로 보이는 것엔 어쩔 도리가 없다.

 

열다섯 살 소년 시절에 여교사를 짝사랑하던 그 심정이 서른이 된 지금 되살아나고 있다니.

 

용준은 할 수 없이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정류장에 내려 근처의 편의점에서 그는 맥주 한 캔을 사서 벌컥벌컥 마셨다.

 

왠지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비를 맞은 흑장미꽃은 이슬을 머금은 듯 더 요염해보였다.

 

이 꽃다발을 집으로 들고 가 마음에도 없는 미림에게 주는 게 싫다.

 

미림과는 틀어져서 며칠째 말을 않고 있다.

 

“어머! 용준씨!”

 

어쩐 일일까? 유지완이 용준의 눈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아! 웬일이세요?”

 

용준이 놀라서 물었다.

 

“집에 들어가는 길에 뭐 좀 살 게 있어서요.”

 

부끄러워하는 그녀의 비닐봉지 안에 생리대가 살짝 보였다.

 

어딜 갔다 오는지 예쁘게 화장하고 한껏 차려입었다.

 

용준은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지완이 말했다.

 

“타세요. 이슬비가 내리고 있어요. 집에까지 모셔 드릴게요.”

 

그녀의 빨간색 딱정벌레가 편의점 앞 길가에서 윙크를 하고 있었다.

 

용준은 차 안에 들어가자 왠지 금방 내리고 싶지 않았다.

 

“한동네 사니까 정말 좋네요. 저도 지완씨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머, 정말요? 타이밍 끝내주네요. 그런데 어딜 갔다 오세요? 저 꽃은?”

 

“갑자기 지완씨 생각이 나서 샀는데,

 

드리려니 너무 늦은 거 아닌가 싶어서 망설이고 있던 중이었어요.

 

그래도 맥주 한 캔 마시고 용기를 내서 드리려던 참이었는데….”

 

아아, 이 애드립! 용준이 지완에게 두 손으로 장미 꽃다발을 바쳤다.

 

운전을 하던 지완이 길가에 차를 세웠다.

 

지완이 감동한 얼굴로 장미 향을 맡았다.

 

“세상에. 그런데 이렇게 우연히 딱 만나다니! 저 장미 중에 흑장미 제일 좋아해요.”

 

아, 결국 유미의 악담대로 동네 아주머니에게 꽃을 주는구나.

 

하지만 예쁜 동네 아주머니와 동네 한 바퀴만 돌기에는 너무 감질난다.

 

“저 오늘 기분이 꿀꿀했어요.”

 

“어머, 그랬어요? 난 오늘 탱고강습 있는 날이었어요.

 

난 아직도 탱고리듬이 몸에 흐르는 거처럼 기분이 좋은데.

 

어쩌나 이 기분을 나눠 줄 수도 없고.”

 

“이 차 좋네요. 기분전환 삼아 북악스카이웨이나 한 바퀴 돌고 갈 수 있어요?”

 

북악스카이웨이가 동네에서 지척이다.

 

“아, 그럴까…?”

 

지완은 북악스카이웨이로 차를 몰고 갔다.

 

인적은 물론 차도 뜸한 구불구불한 단풍든 숲길을 차로 돌면서 지완은 음악을 틀었다.

 

무슨 탱고음악인 것 같았다. 용준은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취기가 살짝 올라왔다.

 

운전을 하는 지완의 옆모습이 무척 아름답게 느껴졌다.

 

“아름다우세요.”

 

용준이 운전하는 지완의 뺨을 살짝 만졌다.

 

지완이 움찔했다.

 

“잠깐, 차를 좀 세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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