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46) 칼과 칼집-11

오늘의 쉼터 2015. 2. 1. 17:24

(46) 칼과 칼집-11

 

 

 

 

 

 

“당장 내 집에서 나가!”

 

미림이 자려고 누운 용준에게 베개를 집어던졌다.

 

용준은 뜬금없는 미림의 포악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뭐야? 나 피곤해.”

 

“지금껏 뭘 하고 왔기에 피곤해? 누구랑 붙어 있었던 거야?”

 

“누구랑 붙어 있어? 무슨 말버릇이 그래? 도서관에서 리포트 쓰고 왔는데.”

 

“리포트 좋아하네. 무슨 킨제이 보고서라도 쓰고 왔니?

 

술 냄새도 펑펑 나는데. 거울 좀 보고 얘기해.”

 

그제야 용준이 놀라 거울을 보았다.

 

허걱! 아뿔싸! 이를 어째.

 

지완의 루주가 벌겋게 묻은 주둥이로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용준은 금방 개처럼 꼬리를 내렸다.

 

그 틈을 타서 미림이 소리를 질렀다.

 

“입이라도 닦고 와야 같이 사는 여자에 대한 예의 아니니?

 

나, 힘들게 돈 벌어서 너 부양 못해.”

 

“그럼, 난 이 집에서 공밥을 먹었단 말이야? 나를 착취한 게 누군데?”

 

“착취? 누가 착취야? 낮에 돈 벌러 나가고 밤엔 너한테 당하고.”

 

“당해? 길을 막고 물어봐.

 

하인처럼 낮에 일하고 아홉 살 더 먹은 할망구한테 내가 야간 봉사한 거지.

 

그리고 넌 날 모욕했잖아. 죽은 남편의 유령보다 못하게 날 취급했잖아.”

 

“뭐? 할망구? 너 말 다했니? 당장 나가! 이 거지 같은 놈.”

 

“뭐? 거지?”

 

할망구와 거지라는 단어는 두 사람에게 치명적인 단어였다.

 

용준은 용수철이 튕기듯 일어났다.

 

할망구라 불린 미림은 분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용준은 대충 옷가지를 챙겨 미림의 집을 나와 버렸다.

 

집을 나오니 막막했다.

 

여전히 이슬비가 내렸다.

 

용준의 입술에는 30분 전까지만 해도 지완의 입술 감촉이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손으로 거칠게 입술을 닦아냈다.

 

용준은 지나가는 택시를 세웠다.

 

1주일에 두 번 나가 입시생을 지도하는 선배의 화실에서 임시로라도 기거할 수밖에.

 

비슷한 시간에 지완도 집으로 들어섰다.

 

현관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인규가 거실에서 TV에 정신이 팔려 있다.

 

눈길도 주지 않고 말했다.

 

“도대체 지금이 몇 시인데 이제야 들어와?”

 

“지금? 열한 시 사십 분이네. 오늘 탱고강습 회원 중에 생일인 분이 있어서….”

 

“그러다 춤바람 날라. 그런데 그 꽃은 또 뭐야?”

 

“응. 집이 좀 썰렁해서 꽂으려고 샀어. 예쁘잖아?”

 

“그 요란한 리본 달고 있는 걸 보면 집에다 꽂으려 산 거 같지는 않은데?

 

누가 준 거야?”

 

“으응, 생일 맞은 분이 꽃다발이 많이 들어왔다며 줬어.”

 

“아깐 당신이 샀다며?”

 

이크, 그랬나?

 

“아이, 뭘 자꾸 좀스럽게 그래? 나이 드니까 좁쌀영감이 되는 거야, 응?”

 

지완이 일부러 먼저 성질을 내자 인규가 입을 다물었다.

 

“알았어, 알았어. 당신이 인기가 좋으면 나도 좋지, 뭐.”

 

한껏 누그러진 인규가 눙치며 한 발 물러난다.

 

그런데 일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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