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칼과 칼집-1
벌써 세 번째다.
흥분한 인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콱, 박아버렸다.
무엇을?
칼을.
인규는 나이프를 스테이크에 콱 꽂았다.
고기를 들고 경고하듯 말했다.
“당신 같은 사람들한테는 내 음식 팔지 않겠습니다.
저 옆 블록에 연탄 돼지갈비 집과 그 옆에 칼국수집을 추천해드리죠.”
바쁜 점심시간에 스파게티 면이 덜 삶아졌다고 한 차례 물리더니
스테이크가 제대로 안 구워졌다고 거만하게 두 번을 물린 손님들이다.
보아하니 교수들인지 공무원들인지 꽉 막히고 깐깐해 보이는 인상의 40대 남자들이었다.
차라리 졸부들이라면 자기들의 무식이 탄로날까봐 조용히 먹는다.
오늘 따라 아침부터 조찬 모임에 오후에는 와인스쿨,
내일은 결혼정보회사에서 열리는 월례파티준비까지…
신경이 곤두서 있는 날이다.
그런데 하필 셰프 조가 결근한 날이라 인규는 홀과 주방까지 신경을 쓰느라 정신이 없었다.
셰프 조는 거취문제로 인규의 신경을 긁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일부러 주인인 인규를 불러 주문했다.
무식함과 속물기가 잔뜩 밴 목소리로
“알덴떼, 아시죠? 그렇게 해주세요.”
잘난 척하면서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알덴떼는 약간 덜 삶아 스파게티 면의 속심이 가늘게 박힌 상태다.
이태리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상태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좀 더 삶은 걸 좋아한다.
“약간 덜 삶은 느낌이 들 텐데요.”
“이 사람이! 우릴 뭘로 보고.”
하지만 그렇게 삶은 스파게티를 내놓자 불평을 하며 도로 접시를 물렸다.
“이게 철사도 아니고, 이빨 빠지면 이 집에서 물어주나?”
아무 소리 하지 않고 면을 다시 삶아 요리하게 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나온 스테이크가 너무 구워졌다며,
핏물이 나오네 안 나오네 하며 트집을 잡았다.
새 고기로 다시 구워오게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덜 구워졌다며 또 물렸다.
접시가 다시 주방으로 갔다 왔다.
그걸 참고 바라보고 있으려니 웨이터 손이 다가와,
저 사람들 가끔 와서 상습적으로 저런다고 귀띔을 했다.
이제는 더 이상 못 참겠다 싶을 때
그 일행 중의 한 사람이 큰 소리로 손님들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이거 스테이크 하나도 제대로 못 굽고. 이게 뭐야.
개나 갖다 줘야지.
이 집도 이제 문닫을 때 됐어.
옆에 새로 생긴 올리브로 가자구.”
부주방장과 웨이터들이 말렸지만,
그들의 입에서 ‘개’소리가 나오자 참을 수 없었다.
“개? 이건 당신 같은 사람들이 먹을 음식이 못됩니다.
개만도 못한 사람들에겐 과분하죠.”
‘개’소리를 들으면 흥분하는 건 마찬가지다. 그들도,
“이게 무슨 개소리야?”
삿대질을 하며 일어섰다.
직원들이 말려서 사태를 진정시켰다.
화가 난 인규는 자신의 사무실로 문을 쾅 닫고 들어왔다.
아버지가 만든 중소기업에서 나온 지 어언 7년.
사양산업인 스테인리스 식기사업에 평생 매달리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선택한 이 외식사업이야말로 호기심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즐거운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남에게 서비스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세상이다.
차라리 도를 닦는 게 더 쉬울지 모른다.
피곤했다.
그는 유미에게 문자를 보낸다.
‘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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