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칼과 칼집-2
유미에게서는 답이 없다.
불안하다.
인규가 따로 사준 프라다폰은 일종의 핫라인인 셈인데….
유미는 이 시간에 도대체 무얼 할까?
누구와 점심을 먹고 있는 걸까?
서운하다.
마흔이 되면서 마음이 약해진 걸까?
남자 나이 마흔이면 모든 게 생각과 조금은 어긋나기 시작하는 나이다.
몸도 마음도….
그래도 유미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잘 맞는 섹스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날것 그대로의 삭이지 못한 감정과 음탕한 말도 재치 있게 잘 받아주는 여자다.
그런데….
핑퐁게임처럼 탄력 있고 경쾌한 관계가 언젠가부터 좀 불안했다.
불안감을 비웃기라도 하듯 핸드폰이 온몸으로 요동치며 울어댔다.
그럼 그렇지.
유미다.
“왜 무슨 일 있어?”
“아, 재수 없어. 정말 짜증나는 날이다.”
인규는 유미에게 좀 전의 일을 다 일러바친다.
그리고 아무래도 이탈리아에서 스카우트해온 셰프 조가 조만간
배신을 때릴 것 같다는 불안도 미리 이야기한다.
모르긴 몰라도 그는 몇 군데 경쟁 외식업체에서 스카우트 유혹을 받고 있는 눈치다.
“아이, 좀 참지 그랬어. 또 그 다혈질 성격 나왔구나.
박긴 뭘 박아? 맨땅에 머리나 박고 반성하셔.”
“야, 너까지 이럴 거야?”
“하하하. 오늘은 쇠고기 안심에 콱 박은 걸로 넘어가. 오늘은 좀 그래.”
“야, 오늘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하면 안 되냐?”
“자기가 이순재 아저씨도 아니고, ㅋㅋ….”
“나, 너의 대박보험 아니었어? 다 보상해 줄게.”
“오늘은 내 상태가 ‘레어’야.”
“뭔 소리야?”
“오늘은 정말 자기 머리가 구동력이 떨어지는구나.”
아하! 한 달에 한 번…. 피 보는 날.
“ㅋㅋ…. 핫도그도 괜찮은데. 에이, 그럼 밥이나 먹을까?”
“요 며칠은 나 밥 먹을 틈도 없어.
참, 당장 모레부터는 조찬강의가 생겼어. 강의 준비도 좀 해야 하고….”
“뭘 찼다고?”
“조찬!”
“조찬? 그런 건 남자가 해야 하는 거 아냐?”
“어유, 저질!”
“보고 싶은데….”
“숨 좀 돌리면 바로 콜할게. 그리움 저축해 둬. 이자 많이 붙게.”
유미가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보니 이 실장의 보고를 들었던 것 같다.
조찬 스케줄 브리핑에서 유미의 대학 이름을 들은 것도 같다.
설마 유미가 그 강좌를 맡은 걸까?
나날이 유미의 사교무대가 넓어지는 게 싫다.
만인의 여자가 되는 게 싫다.
유미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그 특별함을 공유하는 게 탐탁하지 않다.
그 특별함이란 무엇일까?
시쳇말로 유미는 쿨하다?
들러붙지 않으면서도 묘한 자력이 있는 여자.
한마디로 리모컨이다.
유미는 묘하게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인규를 지배하고 있다.
지금도 어린애처럼 보챈 건 인규다.
가끔 그게 화가 난다.
그러나 유미는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게 그의 믿음이다.
그가 유미 과거의 한 편린을 알고 있는 한.
하지만 그래도 불안한 건 불안한 거다.
그녀를 잃을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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