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팔색조-13
나흘 후에 박 피디가 전화했다.
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커피를 한 잔 만들어 먹으려 할 때였다.
오후에 대학원 강의만 있는 날이었다.
어제와 그저께는 두 군데 업체에서 특강을 했다.
“잘 있었지? 오늘 점심 같이 할까? 아님 저녁?”
“글쎄요. 시간이 여의치 않을 거 같은데…어쩌죠?”
사실 박 피디와 얼굴을 자주 볼 일은 없다.
유미는 라디오 방송 원고를 이메일로 보내며 간혹 몇 달에 한 번 회의를 하거나 할 때만
방송국에 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 피디가 이런 전화를 하는 건,
그가 지난번 황홀한 만남에 미련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미끼를 물고 오는 경우일 것이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일단 전화로 말씀하시면 안돼요?
제가 스케줄을 좀 봐야 할 거 같아서요.”
“할 수 없지. 유미씨 혹시 광고 출연 같은 거 안 해볼래?”
“네에?”
유미는 풋, 하고 웃었다.
“무슨 광고요?”
“글쎄, 광고야 여러 가지 있겠지.
내가 광고기획사에 얘기 한 번 해볼까?
나야 그런 데 많이 알고 있으니까.”
이건, 현실성이 없는 얘기다.
박 피디가 자신의 하찮은 권력을 이용해 유미의 환심을 얻으려고 하는 것일 게다.
“아이, 제가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연예인에 크게 뒤지지 않지.”
“아, 그렇게 봐주시니 황공해요.
기회가 닿아서 하고 싶은 광고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전 아직 그런 거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박 피디님이 얼마나 절 생각해주시는지 그 성의는 제가 잘 간직할게요.”
“유미씨는 비주얼이 되잖아. 라디오 방송 원고 백날 쓰는 거보다 광고 한 번 뜨는 게….”
“예, 저 좀 띄워 주세요.
박 피디님이 방송국의 유능한 피디님이시니까 뭐 그럴 날이 있겠지요.
어쨌든 든든해요.
구체적인 얘기가 있게 되면 밥 한번 먹어요, 우리.”
이쯤 얘기하면 박 피디도 알아들을 것이다.
그쪽 계통의 일은 돼야 되는 일이다.
엎어지는 게 예사다.
게다가 박 피디는 상을 차리기는커녕 아직 뒤주에서 쌀도 푸지 않은 상태다.
그래도 모든 일의 여지는 남겨두어야 하므로 유미는 상냥하게 통화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잠시 후에 또 전화벨이 울렸다.
커피 잔에 입술을 대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오유미 선생?” 50대 남자의 중후한 목소리다. 누굴까?
“예, 그런데요.”
“나 김성환입니다.”
유미는 얼른 커피 잔을 내려놓고 반색을 했다.
“어머, 김 교수님! 어쩐 일이세요?”
그는 유미가 강의를 나가는 대학의 교수였다.
대학원장이라는 보직도 함께 맡고 있다.
“긴히 할 얘기가 있어서 말입니다.”
“무슨…?”
“오늘 내 방으로 좀 와주시겠습니까?”
“예, 그렇게 할게요. 안 그래도 오늘 강의가 있는 날이라….”
“예, 잘됐네요.”
“근데 대학원장님이 불러주시니 막 떨리는 거 있죠. 무슨 일일까 궁금하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교수로 채용하는 건 아니겠지?
'소설방 > 유혹' 카테고리의 다른 글
(36) 칼과 칼집-1 (0) | 2015.02.01 |
---|---|
(35) 팔색조-14 (0) | 2015.02.01 |
(33) 팔색조-12 (0) | 2015.02.01 |
(32) 팔색조-11 (0) | 2015.02.01 |
(31) 팔색조-10 (0) | 2015.0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