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38) 칼과 칼집-3

오늘의 쉼터 2015. 2. 1. 16:58

(38) 칼과 칼집-3

 

 

 

 

 

 

 

그때 또 전화가 왔다. 아내 지완이다.

 

“점심 먹었어? 별일 없어?”

 

“별일 있으면 좋겠냐?”

 

“왜 심통이야? 참 당신 트렁크 팬티, 괜찮지? 백화점 왔는데 속옷 세일하네.”

 

헐렁한 사각팬티는 유미가 딱 질색한다.

 

짜증 제대로 난다.

 

“나 노인네 같은 사각팬티 싫다고 했잖아.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좀 쓰지 마.”

 

“어머, 당신 요즘 이상해. 왜 내가 사주는 옷마다 트집이야?

 

암튼 요즘 배도 살짝 나왔잖아. 통풍도 잘 되고 편한 게 좋지.”

 

결혼하면서 잔소리꾼 엄마를 벗어났는데,

 

결혼하니 새엄마가 버티고 있는 꼴이라니.

 

하지만 엄마 같은 지완에게 제대로 졸라야 할 일이 있다.

 

“참 장인어른한테 얘기해 봤어?”

 

“그게…여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 요즘 경기도 안 좋은데 왜 그렇게 무리를 하려고 해?”

 

“당신, 아주 남편을 우습게 안다. 내가 그렇게 우스워?”

 

“웃기지 않아. 아니, 썰렁해.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 같아.”

 

“나를 당신 아들 현수, 진수 취급하지 마.

 

내가 우리 아버지 양은 냄비 회사에서 나와서 맨손으로 베네치아를 이렇게 만들었으면

 

대단한 거 아냐?”

 

“그래, 거기까진. 그러니 그거 하나라도 잘 건사해.”

 

“베네치아는 원래 물의 도시야. 양평 강변에 분점을 근사하게 지으면 얼마나 멋지냐.

 

거기다 난 곤돌라도 띄울 거라고. 그게 애초부터 내가 계획한 그림이었어.

 

이 강남 바닥에 쌔고 쌘 이태리식당 중의 하나로 내 꿈을 접긴 그렇지.”

 

“아유, 몰라! 아버지 요새 건강도 안 좋고 오빠 눈치도 보여. 나 전화받기 힘들어.”

 

지완이 전화를 툭, 끊어버린다.

 

이 나이에 마누라 좋다는 게 뭔가.

 

어차피 사랑에 눈이 어두워 한 결혼은 아니었다.

 

젊어서 양은 솥으로 시작한 부친의 회사는 스테인리스 스틸 그릇으로 한때

 

꽤 돈을 만진 중소기업이었다.

 

그러나 지완의 집은 돈보다는 권력 쪽이었다.

 

이를테면 두 집안을 아는 중매쟁이가 돈과 권력을 이어주었다.

 

지완의 아버지는 정계의 고위직으로 퇴직해 아직까지 영향력이 꽤 있는 노인네다.

 

게다가 손위 처남인 지완의 오빠는 행정고시 출신으로 정부부처의 요직에 있는 고급공무원이다.

 

인규의 꿈은 외식업체 재벌이다.

 

재벌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사업체인 이태리 정통 레스토랑인 베네치아를 명소로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이태리의 물의 도시인 베네치아에서의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 때문이다.

 

양평 남한강변의 어느 부지를 보고 와서는 계속 눈에 삼삼했다.

 

문제는 토지변경과 지가(地價) 때문에 처가의 도움을 좀 받아야 할 일이다.

 

그때 이 실장이 손님이 찾아왔다고 전했다.

 

고등학교 선배인 강이었다.

 

사무실에서 레스토랑으로 내려갔다.

 

왕년의 밤무대 가수처럼 차려입은 강 선배가 손을 흔들었다.

 

점심시간은 이미 지나서 손님은 거의 없었다.

 

“선배, 웬일이세요?”

 

“오늘 와인스쿨 있는 날이잖아.”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오후에는 인규가 강의하는 와인스쿨이 열리는 날이다.

 

매주 한 번씩 와인 시음을 곁들인 강연이다.

 

그는 말하자면 자원 조교이자 자칭 얼굴마담이다.

 

왕년의 카사노바인 강은 지금은 돈도 바닥난 백수다.

 

한마디로 왕빈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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