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35) 팔색조-14

오늘의 쉼터 2015. 2. 1. 13:00

(35) 팔색조-14


 

 

강의가 시작되기 한 시간 전에 유미는 김성환 교수의 방에 갔다.


김 교수는 전에 회식자리에서 본 적이 있지만, 개인적인 일로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는 50대 후반의 점잖은 인상의 남자다.


그러나 노크를 하자 반갑게 유미를 맞아주는 그의 얼굴은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오유미 선생님,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아주 좋으시더군요.


나는 잘 몰랐지만 알고 보면 유명하신 분이라 하더군요.”

 

“과찬의 말씀입니다.”

 

유미가 고개를 숙여 답례를 했다.

 

“알음알음 업체나 기관에 특강도 많이 하신다고 하더군요.


명강사라고 소문이 자자합디다.”

 

아마도 연애학 블로그를 운영하며 라디오 방송작가이기도 한 유미의


다른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인 거 같았다.


아닌 게 아니라 업체의 직원 연수나 결혼정보회사의 단체미팅,


심지어 와인동호회 같은 데서도 특강 의뢰가 들어온다.


하지만 대학에서는 몇 년째 시간강사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아이, 전공과 좀 다른 강의라서….”

 

“아니, 그게 왜 다릅니까?


21세기는 문화혼종의 시대입니다.


연애는 예술이고, 인생의 예술은 연애입니다.


고로 인생은 연애.


인생을 경영하는 게 선생님 전공인 예술경영과 다 일맥상통하는 겁니다, 허허.”

 

아니, 이 근엄한 학자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그래 요즘 많이 바쁘십니까?”

 

“아, 바쁘다면….”

 

안 바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새벽에 말입니다.”

 

도대체 이 노교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그래서 좀 갑작스러운 부탁인지는 모르지만,


우리 대학의 최고경영자 과정의 강의를 맡아서 좀 해주셨으면 하고요.


이 최고위 과정의 면면들을 보면 정계, 재계의 VIP, CEO, 기업의 임원,


심지어 청와대의 사무관, 비서관 등 다양합니다.


이분들이 정말 바쁜 분들이라 새벽에 조찬 모임을 겸한 강의를 하는 거지요.


강사료도 훨씬 나을 테고, 특히 인맥관리 면에서는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좀 색다른 인간경영학을 원하는 분들이라 오 선생이 잘 맞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최고위 과정이라….


교수가 되는 거보다야 못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정규 강의를 하는 게 나쁘진 않을 거 같다.


사이버 세상의 검증되지 않은 인맥보다 현실의 검증된 인맥이 훨씬 낫지 않겠는가.


현실의 레드카펫에 한 발 올려놓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 선생, 우리도 아무한테나 이런 강의를 맡기는 건 아닙니다.


오 선생의 역량을 발휘할 좋은 기회 아닙니까?


우리 대학도 스타 교수, 이런 사람들 나와야 합니다.


제가 총장님께 역설했어요.”

 

김 교수는 은근히 공치사를 했다.

 

“예, 정말 감사합니다. 맡겨 주시면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김 교수가 노회한 눈빛으로 웃으며 유미를 바라보았다.

 

“이거야말로 지름길이죠.”

 

지름길? 유미는 김 교수의 방을 나오며,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길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교수라는 사회적 지위? 명성? 돈? 결혼?


내 욕망의 실체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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