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팔색조-10
은은한 장미향이 진동하는 욕조에 유미는 잠깐 몸만 담그고 나와 물기를 닦지 않고 그대로 둔다.
장미향이 자연스레 피부에 스며들 동안 얼굴에 ‘쌩얼’ 느낌이 드는 자연스러운 화장을 한다.
그리고 몸의 물기가 다 마르면 곱게 다려둔 흰색 리넨 에이프런을 벗은 몸에 두른다.
그것은 앞은 미니 원피스처럼 보이지만 뒤는 유미의 나신을 그대로 드러낸다.
잘록한 허리를 리본으로 묶은 끈만 보이는, 묘하게 섹시한 옷이 된다.
드러난 등과 엉덩이의 볼륨을 살려주는 뒤태가 유미가 보아도 섹시미의 절정이었다.
얼마 전에 식탁보와 세트로 장만한 것이다.
게다가 고급스럽고 깨끗한 흰색의 식탁보와 에이프런에는 유미가 직접 수놓은 P라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다.
박 피디의 P. 너만을 위해 장만한 거야.
말하지 않아도 알파벳 하나만으로 모든 의미가 다 전달된다.
이쯤 되면 박 피디는 감동하겠지.
그러면 이렇게 말하리라.
제 몸에 새기고 싶었는데 아쉬워요.
그리고 아침에 새로 간 흰 침대 시트와 흰 이불을 구김 없이 펼쳐놓는다.
이상하게 남자들은 순결한 느낌이 드는 흰색에 매료된다.
고급 호텔의 침구도 모두 흰색이다.
흰색의 침대에 파묻혀 있는 동안 구름 위에서 천상의 섹스를 하고 있다는 착각이 드는 걸까.
하긴 운우지정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박 피디가 거의 도착할 시간이다.
유미는 거울을 한 번 보고 그가 좋아하는 향수 샤넬 N.5를 꺼내 귓불과 에이프런에 살짝 뿌린다.
식탁 위에 냉장고에서 꺼낸 쌈 야채와 밑반찬을 차릴 때 벨이 울렸다.
유미가 문을 열었다.
박 피디는 어색하게 웃었다.
유미도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가 들어서자 유미는 매정하게 돌아서서 부엌의 싱크대로 향한다.
유미의 뒤태에 침을 삼킬 그의 모습이 보일 듯하다.
그러나 3개월 만에 집에서 만난 두 사람은 조금 어색하다.
그때 유미가 까치발로 서서 싱크대 수납장 위쪽에 있는
와인 잔을 꺼내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을 보며 그가 다가온다.
“맨 위에 있는 와인 잔 좀 꺼내 줄래요?”
와인 잔을 꺼내는 박 피디의 숨결이 이미 거칠다.
“아이 참, 역시 이럴 땐 남자의 손이 필요하다니까.”
샤넬의 향기를 맡은 그가 뒤에서 유미의 귀에 살짝 키스한다.
어느새 두 손은 유미의 엉덩이를 더듬고 있다.
“아이, 아직요.
참 술은 리슬링 품종의 화이트 와인으로 준비했는데 괜찮죠?
맞은편 식탁 의자에 앉아서 와인 좀 따줄래요?”
소믈리에 인규에게 추천받은 와인을 냉장고에서 꺼내 박 피디에게 건네준다.
그는 와인을 스크루로 돌리면서도 섹시한 뒤태를 보이며 일하고 있는 유미에게 넋이 빠져있다.
냉장고에서 회접시를 꺼내 올려놓으면서 유미는 생긋 웃는다.
“어머, 손 조심하세요.”
드디어 와인의 코르크를 따자 두 사람은 건배했다.
유미는 회를 한 점 싸서 박 피디의 입에 넣어 주었다.
싱싱한 회와 달콤하고 상큼한 과일향이 도는 알자스산 화이트와인은 잘 어울렸다.
술이 두 잔째 되자 유미는 박 피디의 손을 잡고 자신의 가슴께에 새겨진 P자를 따라 더듬게 했다.
마치 어린 아이에게 P라는 알파벳을 각인시키기라도 하듯이.
“이 이니셜, 모두 다 당신을 위한 거예요.
오늘 밤, 내 몸에도 깊이 새겨줘요. 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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