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팔색조-9
릴리, 아니 안지혜에게 답을 보내고 나자 박 피디에게서 전화가 왔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유미는 그를 집으로 불렀다.
남자를 집으로 부르는 것은 보안을 신경 쓸 경우다.
박 피디는 소심한 신중파다.
그래도 남자라고 박 피디가 처음에 방송을 전제로 미끼를 던졌다.
그때 유미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
“절 유혹하시는 거예요?
아님 제가 유혹해야 하는 거예요?
하지만 전 그런 관계로 가는 게 싫어요.
약간의 권력을 갖고 저를 갖고 논다고 생각하신다면 저를 노예로 보시는 거예요.
노예랑 한판 하는 게 낫겠어요?
황후랑 한판 하는 게 낫겠어요?
저는 제가 황후라 생각하면 상대를 황제처럼 해 드릴 수 있어요.
어때요?
우리 그런 먹고 먹히는 관계가 아니라 순수하게 즐겨요.
그런 의미에서 박 피디님도 저를 즐겁게 해 주셔야 해요.
다만 이건 약속해요. 비즈니스와 섹스를 섞는 건 싫어요.
박 피디님도 유부남이신 데다 유능한 피디님이시니까 소문나는 거 별로일 거예요.
저도 단미의 이미지로 봐서는 데미지가 크고요.
그러니까 연간 네 번 분기별로 정해 놓고 하기로 해요.
그 이상은 안 돼요.
그리고 안전하게 제 집에서 하기로 해요.
저는 집에 남자를 끌어들이는 여자는 아니지만 박 피디님의 사정을 고려해서
정말 특별대우 하는 거예요.
이런 약속이 싫으시면 당장 그만두셔도 돼요.
저도 값싼 여자는 되기 싫어요.
방송, 하면 좋지만 안 해도 그만이에요.”
남자는 이상한 동물이라서 새침한 여자에게 더 끌리며 뿌리치는 여자를 더 붙잡고 싶어 한다.
다행히 그는 쿨한 사람이었다.
판단력도 있고, 부담스럽지 않은 향수나 화장품 정도를 선물하는 센스도 있는 남자였다.
오늘도 큐 사인을 기다렸던 연기자처럼 박 피디는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려올 것이다.
이럴 때는 유미가 피디다.
식당에서 저녁밥을 사 먹고 들어오는 시간도 아까워서 박 피디는 음식도 집에서 먹자고 했다.
라면을 먹어도 좋다고 했지만, 유미는 수산시장에 들러 활어회를 준비했다.
그는 오랫동안 라디오 심야 음악 프로를 담당했지만,
정작 섹스를 할 때는 모든 음악을 꺼야만 했다.
집중이 안 된다는 것이다.
분기별로 하는 섹스.
유미가 보기에 그는 40대 초반의 평범한 남자다.
아니 속물이다.
그는 괜찮은 대학을 졸업하고 언론고시라 불리는 방송국 공채에 합격했다.
그 자신은 나름대로 중산층의 문화를 주도하는 지식인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유미가 사랑에 빠질 만한 환상적인 인물은 아니다.
이런 관계의 만남일수록 자괴감과 처연함에 빠질 수 있다.
그럴수록 유미 스스로도 분위기를 좀 띄워야 한다.
확실한 이벤트를 보여 주면 상대도 감동한다.
이번엔 어떤 분위기로 갈까,
유미는 살짝 고민했다.
생선회를 홀딱 벗은 온몸에 장식해서 올려놓는다?
마치 인어의 회처럼 유미 자체가 회가 되어 그에게 입으로만 먹게 한다?
그러나 그건 이미 영화에서 본 장면이다.
30분 후면 도착한다는 문자 메시지가 왔다.
유미는 식탁 위의 화병에서 일곱 송이의 붉은 장미를 빼냈다.
그리고 욕실로 가서 옷을 벗었다.
꽃뱀의 허물처럼 옷가지가 몸에서 떨어져 나가자 희디 흰 나신이 드러났다.
장미꽃에 코를 묻고 향을 맡다가 부드러운 장미 꽃송이로 젖가슴을 살살 간질여 본다.
유두가 산딸기처럼 단단하고 붉어졌다.
욕조에 받아 놓은 목욕물에 싱싱한 일곱 송이 장미 꽃잎을 따서 흩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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