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28) 팔색조-7

오늘의 쉼터 2015. 2. 1. 12:31

(28) 팔색조-7

 

 

 

 

 


유미가 고개를 숙이며 목소리 톤을 바꿔 진지하게 말했다.

 

“무례했다면 용서하세요.


그냥 선생님이 아직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인생에 혁명을 치러 보신 분 같지 않아서요.


사랑은 혁명이죠.


쿠데타예요.


열병이고요.


존재를 뒤흔들죠.


아직 어리고 철없는 설희는 면역력이 없는, 어쩌면 신종 플루 환자나 마찬가지예요.


너 왜 걸렸느냐고 묻지 말고 일단 먼저 치료해줘야죠.”

“…….”

유미가 쓸쓸한 미소를 머금으며 천천히 말했다.

 

“사랑이란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어요.”

 

안지혜의 얼굴에 복잡하고 묘한 마음의 동요가 떠올랐다.


유미가 고백하듯 말했다.

 

“이래봬도 저도 상처투성이죠.


인생에 많은 대가를 치르고 살았어요.


하지만 상처를 치료하는 것도 사랑이란 묘약이랍니다.”

 

기본 감성이 순정파인 안지혜의 얼굴에 묘한 연민과 친근감이 잠깐 어리는 걸 유미는 보았다.


어쨌거나 담임과 대면 이후에 설희의 문제는 좀 잠잠해졌다.

 

그런데 며칠 후 유미는 자신의 블로그 이웃으로부터 한 통의 e메일을 받았다.


아이디는 릴리(lily). 그러고 보니 유미의 블로그에 자주 들러 댓글도 많이 남기는


익숙한 아이디였다.

 

‘단미님, 안녕하세요?


저는 단미님의 블로그에 단골로 들르는 이웃이랍니다.


서른여섯 살의 여교사랍니다.


지금 저는 한 이틀 몹시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이겠죠.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그것 없이 인간은 정말 살 수가 없는 걸까요?


저는 남자와의 사랑 없이 살 수 있다고 저 자신을 무수히 세뇌해왔어요.


천분이라 생각하는 저의 일이 있고, 저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를 사랑하니까요.


그가 누구냐고요? 지저스 크라이스트. 하지만 인간의 여자로서


전들 왜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고 싶지 않겠어요?


아무에게도 저의 진심을 말해본 적이 없지만, 단미님께는 솔직해지고 싶네요.


하지만 솔직히 두려워요. 사랑을 한다는 것이….

 

저희 반에 행실이 얌전하지 못한, 소위 말하는 ‘발랑 까진’ 여자애가 있어요.


그 애는 어리지만 자신이 사랑받는 여자로서의 자부심이


얼굴에 가득한 거처럼 보이는 여자애죠.


임신까지 했던 그 애를 보면 너무 화가 나서 미칠 거 같아요.


정말 세상이 말세예요.


하지만 가만히 분석해보니 저는 무의식적으로 그 애를 부러워하고


질투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 애의 어머니가 학교로 찾아왔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그 여자의 당당한 언변과 미모에 사실 기가 죽더군요.


저는 그런 여자들이 제일무서워요.


게다가 그녀는 저의 속까지 빤히 꿰뚫는 거 같더군요.


제가 진짜 연애를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는 걸 간파하더군요.


그러면서 사랑은 열병과 같은 것이며, 상처를 입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으며,


그걸 고치고 치료하는 것도 사랑이라고 말하더군요.


아마도 그 여자 역시 단미님의 블로그를 뻔질나게 드나든 거 같더군요.


하지만 왠지 그 여자도 무언가 내면에 깊은 상처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어요.


저의 착각일까요?


세상은 그렇게 예쁘고 잘난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편리할 텐데


그런 여자에게 무슨 고통이 있겠어요.


하지만 사석에서 만난다면 왠지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좀 특이한 학부모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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