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27) 팔색조-6

오늘의 쉼터 2015. 2. 1. 12:29

(27) 팔색조-6

 

 

 

 

 


“예, 제가 줬어요.”

 

“세상에, 어머니! 정말 교수 맞아요?”

 

아, 이 여자…. 정말 밉상으로 말하네. 유미도 지지 않고 말했다.

 

“아니, 그럼 선생님은 피임 안 하세요?”

 

“예? 뭐라고 하셨어요?”

 

여자의 얼굴이 칠면조처럼 붉으락푸르락했다.


갑자기 여자가 할 말을 잃은 듯했다.


그 틈에 유미가 조곤조곤 말했다.

 

“예, 선생님. 도덕적으로는 다 이치에 안 맞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도덕 교과서가 아니잖아요.


아이들도 성숙도가 다 다르고요.


게다가 우리 애는 방황하고 있어요.


학교에서고 집에서고 따뜻함을 못 느껴요….


아이가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는 걸 알았어요.


요즘 아이들, 우리 세대랑 너무 달라요.


순결, 중요하죠. 교육, 해야 합니다. 순결서약서,


지금이 기사 서약을 하는 중세도 아니고 이런 거 쓴다고 순결이 지켜지는 거 아닙니다.


그런데 이미 그런 교육이 먹혀들지 않는 상황이고 세상이라면 현실적으로 무엇이 필요하겠어요?


모든 게 섹스를 권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이 다치지 않으려면 피하는 수밖에 없잖아요?


만약 섹스를 피할 수 없으면 안전하게 잘 해야 한다고 저는 말해줬어요.


여자로서 최소한의 방패를 갖춰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우리 아이,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지요.


어떤 부모인들 아이가 곱게 자라기를 바라지 않겠어요?


이렇게 된 부분에는 저의 잘못과 책임도 큽니다.


하지만 상황윤리라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선생님? 이런 상황에서는 그게 차선책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유미의 설득이 먹혀든 것일까?


푸푸거리며 침을 튀기던 담임은 기가 막혔는지 꺾였는지 멍하니 유미를 바라보았다.

 

“제가 무리한 주장을 펼쳤나요?


아니면 무례했나요?


제가 좀 직설적으로 표현했다면… 죄송합니다.”

 

안지혜가 생각난 듯 마지막 카드를 내밀었다.

 

“어쨌든 설희는 학생의 본분을 어겼어요.”

 

유미도 한 발 물러섰다.

 

“죄송합니다. 제가 앞으로는 잘 지도하겠습니다.


교칙을 위반한 부분은 처벌하시더라도 학교에서도 모르고 지나간 보름 전의 그 일은…


선생님도 여자니 아이의 앞날을 생각해 주세요.


불완전한 인간은 실수를 통해서 배우게 되니….”

 

결국 엄마 된 죄인으로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안지혜가 정말로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머니의 간곡한 말씀의 뜻은 잘 알겠어요.


하지만 교육자 이전에 여자로서 이해가 잘 안 가요. 어떻게….”

 

유미야말로 동년배의 고지식한 안지혜가 답답하게 여겨졌다.


이 여자는 여자로서 자신을 얼마나 많이 생각해 보았을까.


극도로 깊이 아니면 전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유미는 망설이다 물었다.

 

“선생님, 혹시… 미혼이시죠?”

 

“예? 그런데요….”

 

안지혜가 얼굴이 붉어지며 마지못해 대답했다.


유미는 그런 안지혜의 눈을 바라보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

 

“찐하게 연애하신 적 없죠?”

 

 

“무슨 뜻이죠?”

 

너무 당돌한 질문이라 생각되었던지 안지혜의 눈썹이 꿈틀 올라갔다.


유미는 이 여자가 여포족이라는 걸 직감으로 깨닫는다.


여포족. 여자임을 스스로 포기한 족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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