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25) 팔색조-4

오늘의 쉼터 2015. 2. 1. 12:20

(25) 팔색조-4

 

 

 

 

 


가슴이 벌렁댔다.


수술받은 날 이후로 몇 번의 통화를 시도했으나 설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오, 설희야. 잘 있었니? 몸은 좀 어때?”

 

유미가 한꺼번에 묻자 설희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나 지금 오래 통화 못하거든. 담탱이가 엄마한테 전화할 거야.”

 

“왜?”

 

“나 친구들이랑 걸렸어. 어젯밤 클럽 갔다가.”

 

“몸이나 추스르고 있지, 거길 왜 갔어?”

 

“아이 참, 엄마까지!


나 신마담 땜에 정말 미치겠어.


담탱이가 꼬치꼬치 캐물으니까 지난번에 수술한 거까지 불어버린 거 같아.


요즘 담순이가 얼마나 나를 갈구는지.


아무리 선생이지만 말이 안 통해.


시집도 못 간 서른여섯 살짜리 폭탄이 날 막 협박해. 나 학교 때려칠까 봐.”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엄마랑 담판을 지어야겠대. 학교로 오라 그럴 거야. 만나서 잘 좀 해 봐.”

 

전화가 끊기자마자 곧 처음 보는 전화번호가 떴다.

 

“설희 어머니 되시나요?”

 

여자의 목소리다.

 

설희의 담임인가 보다.

 

유미는 공손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예, 그렇습니다. 실례지만….”

 

“설희 담임입니다. 긴히 상의할 일이 있으니 학교로 좀 와 주셨으면 합니다.”

 

“지금요? 지금은 제가 강의를 시작해야 하는데 끝나면 너무 늦지….”

 

“아뇨. 끝나면 바로 와 주세요.”

 

단호하게 말하는 여자는 왠지 현진건의 소설, ‘B사감과 러브레터’의 B사감을 떠올리게 했다.

 

“예,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얼른 대답을 하고 나자 유미는 은근히 화가 났다.


어떤 경우든 이렇게 저자세로 군 적이 없었는데…


자식이 무섭긴 무섭구나.

 

강의를 끝내고 유미는 부랴부랴 설희의 학교로 차를 몰아갔다.


헐레벌떡 교무실로 갔더니 설희와 설희의 친구들이 마룻바닥에 쭈그려 앉아서


반성문을 쓰고 있었다.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옷에 꽉 달라붙는 교복 상의 때문에 허리가 반쯤은 드러났다.


교복 치마를 미니스커트로 짧게 수선한 탓인지 허연 허벅지가 드러난 계집애들이


고개를 들어 유미를 보았다.


그걸 보자 가장 섹시한 옷이 교복이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고만고만한 계집애들 사이에 설희의 얼굴이 보였다.


설희의 얼굴에 반가운 눈웃음이 실렸다.


유미는 그걸 보자 가슴이 찌르르했다.


퇴근 시간인지 교사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갔다.


남자 교사들이 계집애들을 보다가 유미를 번갈아 보았다.

 

그때 교실에 갔다던 설희의 담임교사가 들어왔다.

 

“어머나, 설희 어머니세요?”

 

나가던 교사들의 눈이 유미에게 다시 한 번 쏠렸다.


어떤 남교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갔다.


아이들은 담임을 보자 몸가짐을 바로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몸집은 다소 위압적이었다.

 

“야! 너희들은 이제 반성문 제출하고 일단 집으로 귀가해. 똑바로 해! 이것들아~”

 

아이들에게 일갈을 하고 그녀가 유미에게 돌아섰다.


과연, 그녀는…왜 설희가 그녀를 폭탄이라 부르는지,


처음으로 딸의 의견에 동의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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