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26) 팔색조-5

오늘의 쉼터 2015. 2. 1. 12:25

(26) 팔색조-5

 

 

 

 

 


남자들이 보면 분명 ‘뒷담화’를 할 외모였다.


여자는 유미와 비슷한 또래지만, 도수 높은 굵은 뿔테안경 때문인지


1970년대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분위기다.


머리 스타일과 패션이 대체로 촌스러웠다.


아니 미장원에서 여성잡지나 패션잡지 한두 권도 보지 않았는지


요즘 젊은 여성들의 모습과는 어딘지 달라보였다.


저런 옷은 어디서 사 입었을까.


마치 70년대 어느 양장점에서나 맞춰 입었을 것 같은


유행이 지난 디자인의 옷차림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유미는 직업적인 혜안으로 여자의 모습에서 매력을 찾아보려 했다.


외모에 무신경한 여자치고 타고난 피부가 건강했으며 눈빛이 진지했다.


이 여자는 곧은 성격의 순정파다.

 

“안녕하세요? 설희 담임 안지혜라고 합니다. 도덕 과목을 맡고 있어요.”

 

역시 고지식한 도덕 과목이다.

 

“설희가 엄마를 많이 닮았네요.


오늘에서야 설희한테 집안 사정을 들었어요.


그것도 모르고 집에 계신 어머니에게 만날 설교를 늘어놓았네요.”

 

“제가 면목이 없습니다, 선생님.”

 

“강의를 하신다니, 대학 교수세요?”

 

여자가 유미의 아래위를 훑더니 의외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예, 뭐 아직 강사입니다.”

 

“이런 말 드리기 뭐 하지만, 교육자께서 어떻게 아이를 저렇게…… 참 이해가 안 가요.”

 

여자가 두툼한 손으로 이마를 짚더니 당장 설교를 할 태세로 몸을 앞으로 들이민다.


여자가 주위를 한 번 둘러보더니 유미의 얼굴로 바짝 들이대 말한다.


살짝 구취가 났지만 유미는 예의상 경청을 하는 태도를 보인다.

“정말 남부끄러워 크게 말도 못 하겠네요.


보름 전에 설희가 아프다며 3일 결석했을 때 진단서를 떼오라고 하니까 끝내 무시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그게 그러니까… 그 수술을 한 거였다면서요.


저는 정말 충격이었어요.


교사생활 13년에 그런 일은 처음이거든요.


아이들 순결교육만큼은 제가 확실히 시키거든요.


학기 초엔 순결각서도 쓰게 합니다.


가만, 설희 것도 어디 있을 거예요.”

 

유미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순결각서요?”

 

“예, 순결각서요.


게다가 수술 후 이제 겨우 보름이나 지났을까,


얘가 정신을 못 차리고 어젯밤 여자애들 넷이서 사복 입고 화장하고


홍대앞 클럽에 가서 놀았어요.


소지품 검사를 했더니 책상 안에 하이힐이 들어 있더라고요.”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아이가 너무 어릴 때 헤어져서 제가 아이를 충분히 돌보고 사랑해주지 못해


사춘기가 되면서 좀 비뚤어진 거 같아요.


늘 그 부분에 대해 자책감과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어요.”

 

유미는 슬슬 진땀이 났다.

 

“그런데 제가 어머니를 부른 것은, 바로 어머니가 문제이기 때문이에요.”

 

“제가요?”

 

“네, 어머니의 사고방식이 너무도 위험해서요.”

 

“애가 그러더군요.


어머니가 콘돔을 줬는데 그 콘돔이 어딘가 샜는지 임신이 됐다고요.


그러면서 ‘아니, 그런데도 애를 낳아야 된단 말이에요?’ 하고 따져 묻더라고요.


기가 막혀서!”

 

여자는 성난 하마처럼 푸푸거렸다.


그럴수록 유미는 목소리를 깔며 미소를 지었다.

 

“요즘에도 콘돔이 불량이 있나 보네요.”

 

담임이 기가 막히다는 듯 쳐다보더니 다시 자신의 본분을 확인했다.

 

“어머니, 아이에게 콘돔 주신 거 맞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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