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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남몰래 흐르는 눈물-7

오늘의 쉼터 2015. 2. 1. 00:43

(20) 남몰래 흐르는 눈물-7

 

 

 

 

 

 

 

대학원에서 유명한 강사인 유미의 존재를 알고 난 이후부터 용준의 마음속엔

 

새로운 불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얼음 꽃처럼 차가운 유미는 물론 쉬운 여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를 흠모하기만 해도 용준은 행복했다.

 

소년 같은 치기인지는 몰라도 그녀의 노예가 되어도 좋았다.

 

그 무렵부터 미림이 더 시들해졌다.

 

게다가 ‘쫑’의 정체를 알고 나서는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쫑’은 하민종의 약자, 아니 애칭이었던 것이다.

 

그럼 하민종은 누구인가.

 

미림의 죽은 남편이었던 것이다.

 

미림은 남편을 ‘쫑’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습관은 무서운 것이다.

 

십년간의 세월 속에 새겨진 습관들.

 

 ‘쫑’이 미림의 귀와 목덜미를 핥고 절정 중에 미림은 쫑을 불러대야

 

오르가슴에 도달했던 것이다.

 

미림은 ‘쫑’이 죽고 나서도 그를 잊지 못했다.

 

그의 옷과 물건과 사진을 마치 아직도 함께 살고 있는 것처럼 치우지 않았다.

 

6개월에 걸쳐서 용준은 미림을 설득했고 그것을 치웠다.

 

미림의 얼굴에는 섭섭함이 묻어났다.

 

미림이 그것을 결국 버리지 않고 박스에 보관하는 것마저 뭐라 그럴 수 없어서 덮었다.

 

그러나 미림의 몸에, 기억에 새겨진 ‘쫑’은 내쫓을 수가 없었다.

 

‘쫑’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이 펄펄 살아있는 용준보다 힘이 셌다.

 

그게 서글펐고 화가 났다.

 

그녀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그리고 그녀는 내게 어떤 존재인 것일까.

 

차라리 ‘쫑’이라 불리는 애완견 신세가 이보다 낫겠다.

 

언제부턴가 화병 난 주부가 살림하면서 중얼대듯 용준도 가끔 중얼댔다.

 

살맛도 안 나던 차에 유지완이라는 여자의 휴대폰을 눌렀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 또한 연상의 유부녀. 유부녀는 가라.

 

하루빨리 출세해서 싱싱한 젊은 여자랑 살아야지.

 

그래서 미림과 유미한테 복수를 하고 싶다. 하지만

 

그동안의 자신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자 기운이 빠졌다.

 

파산하여 7년 동안 뇌졸중으로 누워있는 아버지와 대책 없는 식구들이 생각났다.

 

식구들은 당장이라도 용준이 취직하길 바라지만,

 

어릴 때부터 세계적인 화가가 되고 싶은 용준은 자신의 꿈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어쨌거나 유지완이라는 여자와 만날 약속을 했다.

 

지완과의 만남에 별로 기대도 흥도 나지 않지만 용준은 욕실에 들어가 옷을 벗었다.

 

머리를 감고 깨끗이 샤워를 하기 시작했다.

 

물방울이 돋은 거울로 갓 서른인 용준의 몸이 보였다.

 

갓 구운 바게트 빵처럼 담갈색의 윤기 나는 물 묻은 피부가 섹시해 보였다.

 

용준의 사정을 아는 대학원의 한 선배는 용준에게 강남의 호스트바의 호스트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슬쩍 간을 보았다.

 

수입이 보통 짭짤한 게 아니라며, 그 몸이 아깝다고 치켜세웠다.

 

가진 거라고는 이 몸밖에 없다니.

 

그렇다고 그런 짓을 하기는 죽기보다 싫다.

 

대학원만 졸업하면 이 집을 나가서 뭐든 하리라.

 

차라리 이 건강한 몸으로 노가다를 할지라도.

 

아니 정말 그림 작업에만 매진해보고 싶다.

 

유지완 같은 부잣집 여자에게 몸을 파는 게 아니라 그림을 팔 수 있다면.

 

용준은 잔뜩 비누거품을 내어 온몸을 북북 문지른다.

 

아닌 게 아니라 아무리 봐도 자신의 물건이 잘 생기긴 했다.

 

대중목욕탕에 가 봐도 공중 화장실에 가 봐도 썩 괜찮은 물건들이 안 보였다.

 

새끼 바게트처럼 딱딱하게 부푼 그것에 크림 같은 거품을 잔뜩 묻히며 용준은 휘파람을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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