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남몰래 흐르는 눈물-8
용준이 샤워기 밑에서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시간에 지완 또한 욕조에 누워 있었다.
이상한 예감으로 가슴이 설??다. 그동안 한 번도 이런 기분이 된 적은 없었다.
결혼 십년. 권태기인 걸까.
하긴 언제 불꽃처럼 타올랐던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두 집안을 잘 아는 지인의 소개로 만나 1년 정도 교제하다 두 사람은 결혼했다.
허니문 베이비가 생기는 바람에 충분히 둘만의 알콩달콩한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그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지완은 인규에게 큰 불만은 없었다.
그는 늘 바쁜 사람이었지만, 책임감 있고 능력 있는 가장이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지완은 허전했다.
그것은 일종의 채워지지 않는 허기 같은 것이었다.
온실에서 자라는 화초처럼 아름답지만 어딘지 생기가 부족한 꽃처럼 여겨졌다.
얼마 전부터 탱고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몸속에 무언가 근질거리는 느낌이 왔다.
재채기가 터지기 직전의 조마조마한 간질거림처럼.
그런데 주책이지. 젊은 남자에게 덥석 먼저 전화를 하다니.
예전 같으면 생각도 못할 일이다. 사춘기도 아니고, 요즘 내 몸의 호르몬이 미쳤나?
내 안에 호박씨 까는 기계가 들어 있나?
사랑은 타이밍이라 했다.
이럴 때 나타난 박용준. 왠지 딱 걸릴 것 같은 예감이다.
지완은 싱숭생숭한 기분을 누르기 위해 심신을 안정시킨다는
라벤더 오일을 뿌린 욕조의 물속에 누워서 심호흡을 해본다.
그리고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두 손으로 가슴을 모아 쥐고 메릴린 먼로처럼 섹시한 표정을 지어본다.
역시 어딘지 어색하다. 연예인들은 셀카로 온갖 섹시한 표정을 잘도 찍더구먼.
욕조에서 나와 타월로 몸을 닦고 서랍장을 열어 속옷을 꺼낸다.
빅토리아 시크릿이 얌전히 개어져 있다.
그걸 꺼내 입으려다 첫 대면에 너무 오버하는 자신에게 짜증이 났다.
언젠간 내게도 시크릿이 생기겠지.
그 대신에 가슴이 크게 보이는 ‘뽕’이 들어간 브래지어를 골랐다.
첫인상을 좋게 하기 위해서는 남자에게 ‘뻥’이 필요하듯, 여자에게는 ‘뽕’이 필요하다.
옷장을 열고 고민하다 그리 화려하지 않은 캐주얼한 원피스를 골라 입는다.
동네에서 만나 잠깐 얼굴이나 익히며 커피나 한잔 마시고 오는 자리다.
오버하지 말자, 유지완. 신발도 섹시한 마놀로 블라닉이 있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자. 캐주얼한 단화를 신었다.
그가 마음에 든다면, 기회는 또 올 것이다.
그러나 지완은 현관을 나서며 살짝 망설였다.
카페 러브홀릭은 걸어서 한 20분 정도 되는 거리다.
편한 차림으로 산보 가듯 걸어도 되지만, 지완은 차고에서 차를 뺐다.
어디서나 눈에 띄는 빨간색 폭스바겐 뉴비틀.
일명 딱정벌레에 시동을 걸며 지완은 자신의 속물근성에 쓴웃음을 흘렸다.
자신의 가치를 이런 식으로라도 드러내고 싶어하다니.
그렇게 자신이 없다는 말인가.
‘러브홀릭’ 앞에 차를 세우자 테라스에 있던 남자가 유심히 지완을 쳐다보았다.
일별하는데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짝퉁 배용준! 배용준 같은 섬세한 미모는 떨어지지만 머리칼의 웨이브와
안경 낀 모습이 사진으로 보았던 박용준이 틀림없었다.
갑자기 얼굴이 달아올랐다.
“혹시 유지완씨?”
“어머, 박용준씨?”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이 동시에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몇 초간의 시간이 흘렀다.
성과학자들의 주장으로는,
사랑할 사람을 결정하는 것은 처음 만난 몇 초간이라고 한다.
용준은 앞에 나타난 여자를 본능적으로 아래위로 쓱 훑었다.
그리고 그 몇 초 안에 여체의 투시도를 보았다.
지완은 몇 초 안에 남자의 그윽한 눈과 부드럽게 미소 짓는 입술을 보며 따스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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