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7)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7

오늘의 쉼터 2015. 1. 31. 15:40

(7)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7 

 

 

 

 

 

사이버 세계에서 태어나 그 세상에서 유명해진 단미는 재작년부터는 백화점 문화센터와
 
라디오 방송으로까지 진출했다.
 
‘단미의 사랑학’이라는 문화센터의 강좌에는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실상은 연애에 관해 한 수 배우려는 꼼수를 가진 여자들로 넘쳐났다.
 
사랑을 말하는 단미와 섹스에 집착하는 유미가 반인반수 같은 괴물이라는 걸 사람들은 알까.
 
유미는 단미의 이미지로 먹고산다.
 
간혹 그 순수한 이미지에 감칠맛 나게 ‘색’을 잘 쓸 뿐. 사랑에 목마르고 섹스에 허기진,
 
골 비고 허전한 여자들이 있는 한, 자신의 배를 채우는 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오, 사랑. 영원한 나의 식량.

사람들, 특히 여자들은 겉으론 우아하고 고상, 더 나아가 숭고해지고 싶어 한다.
 
보통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스테이크 위에 맛깔스레 뿌려진 섹스라는 소스를 좋아한다.
 
그 반대, 요컨대 팥죽 같은 스테이크 소스 속에 빠진 미트볼 한 점을 좋아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랑에 배신당하면서도 사랑에 위안을 얻고자 한다.
 
유미가 쓰고 있는 라디오 인기 프로그램 ‘사랑은 달빛을 타고’라는 심야방송은 홀로 잠드는
 
여성이나 데이트를 끝내고 돌아가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 따스한 위안이 된다고 한다.

유미가 방송에까지 진출한 것은, 재작년에 박 PD라는 남자가 유미의 소문을 듣고
 
연락을 해 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유미는 소녀 시절 한때 꿈꿨던 작가의 꿈을 방송에서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프로그램 개편 때마다 잘리지 않는 걸 보면 신통방통했다.
 
어쩌다 밤늦게 귀가하는 차 안에서 유미 자신도 방송을 들을 때가 있다.
 
자신이 쓴 방송 원고를 읽고 있는 탤런트 출신 진행자 진유나의 촉촉한 목소리에 속이
 
느글거릴 때가 있다.
 
뭐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당신에게 사랑이 없다면

집과 돈과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당신에게 이미 사랑이 있다면

그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엑! 됐다 그래! 도대체 그럼 어쩌라구!?’

자기가 들어도 낯간지러운 멘트다.
 
결국 심수봉의 트로트 ‘사랑밖엔 난 몰라’의 철학적 버전이다.
 
여자들에겐 지적 허영심을 위해서라도 아포리즘이라는 약간의 당의정이 필요하다.
 
특히 밤 시간대의 청취자들에겐 더더욱.
 
그 시간에 라디오를 듣는 젊은 여자들은 아무래도 소심하고 외롭기 때문이다.
 
그녀들에게는 사랑의 환상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낮 시간의 강좌에서는 연애의 이론과 실전을 가르친다.
 
자고로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고 했다.
 
요즘 한창 뜨는 인기 드라마에서 주인공 미실도 그렇게 말했다.
 
고대에나 현대에나 색을 잘 쓰는 여자는 남자를 정복하게 되어 있다.
 
미실에게 수천의 화랑과 군사가 있었다면,
 
21세기의 유미에겐 자신의 블로그로부터 파생된 그물망 같은 네트워크가 있다.

미실처럼 족보가 복잡한 관계는 싫다.
 
그래도 여자에게 무지개 같은 연애는 이상적이다.
 
요일별로 색다른 7인7색의 섹스.
 
남자들은 힘들어도 오히려 여자들의 몸은 그게 가능하다.
 
그러나…… 능력 있는 현대여성이라면,
 
일과 사랑을 함께하기 위해서는, 책상다리처럼 안정감 있는 넷도 괜찮다.
 
아니 옛날 무쇠솥의 다리처럼 셋까지도 나쁘지 않다.
 
유미는 늘 최소한 다리 셋은 고수하고 있다.
 

'소설방 > 유혹' 카테고리의 다른 글

(9) 간발의 차이-2  (0) 2015.01.31
(8) 간발의 차이-1   (0) 2015.01.31
(6)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6   (0) 2015.01.31
(5)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5   (0) 2015.01.31
(4)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4   (0) 2015.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