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5)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5

오늘의 쉼터 2015. 1. 31. 15:38

 

(5)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5 

 

 

 

 

 

인규의 휴대폰 벨소리가 바뀌었다.
 
탱고 음악. 어디서 많이 듣던 곡인데…그러나 냉큼 인규가 전화를 받았다.
 
유미는 자신의 핸드폰 벨이 무음으로 되어 있는지 다시 확인한다.

“오! 그래. 미안. 미팅이 있어서…금방 끝나. 한 시간 내로 갈게.”

유미는 누운 채 창밖을 내다본다.
 
한강을 끼고 명멸하는 가로등의 띠가 럭셔리한 네크리스처럼 보인다.

인규가 침대에서 일어나며 말한다.

“미안, 가야 할 거 같아. 오늘 집사람 생일인 거 깜빡 했어.
 
애들이랑 밥 안 먹고 기다리고 있대.”

유미는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고 심상하게 대답해준다.

“그래. 가 봐. 여기서 전식은 했으니 가서 코스요릴 끝내야지.
 
먹을 복 있는 놈은 엎어져도 꼭 스테이크 접시에 코를 박아요.”

“자기, 화났어?”

“화나긴. 내가 언제 그깟 일로 화내?
 
그나저나 자기나 제대로 씻고 가라.
 
빡빡 문질러서. 에프킬라 냄새 풍기지 말고. 걔는 코가 개 코라며.”

“ㅋㅋㅋ…자긴 정말 멋진 여자야.”

인규가 개구쟁이처럼 웃더니 욕실로 향했다.
 
잠시 후에 생각난 듯 고개를 내밀고 묻는다.
 
머리칼에 샴푸 거품을 잔뜩 묻힌 채.

“근데 선물은 뭐가 좋을까?”

“한 시간 안에 간다면서? 걘 현금 좋아하잖아.”

“혹시 센스 있는 자기의 센스 좀 빌리려 했지.”

“으음…참, 그러고 보니 마놀로 블라닉 하이힐 샌들을 신고 싶어 했어.”

“뭐? 마늘…?”

“‘섹스 앤 더 시티’에 나오는 구두광 여주인공이 열광하는 구두 있거든.”

“문자로 좀 찍어 보내줘.”
“알았어. 그런데 서둘러야 할 거야.
 
그거 사러 갤러리아로 가려면 총알처럼 가야 해.”

인규는 물기도 닦지 않고 욕실에서 나왔다.
 
유미는 등의 물기를 닦아주며,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관대해지기로 했다.
 
인규가 돌아서더니 유미를 꽉 껴안았다.

“이러지 마. 또 냄새 밸라.”

“오늘, 이해하지? 내 단미. 더 있다 갈래?”

유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규가 서둘러 나가고 유미는 강변 쪽의 커튼을 활짝 열어젖히고 담배를 피웠다.
 
비즈 장식이 된 검은 벨벳 같은 어둠만이 통유리창에 가득하다.
 
그 안에 벌거벗은 유미의 나신이 하얗게 떠오른다.
 
유미는 담배 연기를 한 모금 머금고는 클림트 그림의 여주인공 같은 도취된 표정을 지어본다.
 
그러다 그 모습을 향해 장난스럽게 담배 연기를 훅 내뿜었다.
 
담배 한 대를 다 피우고 나서 가방 안에서 휴대폰을 꺼내 화면에 또박또박 문자를 박아 넣는다.
 
작년에 인규가 선물한 검은색 프라다폰이다.
 
유미는 은색과 검은색, 두 개의 휴대폰을 휴대하고 있다.
 
요컨대 프라다폰은 프라이빗 폰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규의 필요에 의한 것이다.
 
선물은 필요한 사람이 하는 것이다.

“마놀로 블라닉. 2009 여름 컬렉션. 은색 하이힐 샌들. 사이즈 235.”

선물을 받은 지완은 어떤 표정일까?
 
야릇한 표정이 유미의 얼굴에도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