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4)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4

오늘의 쉼터 2015. 1. 31. 15:38

(4)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4 

 

 

 

 

 

하긴 제자신도 시시각각 다른 세계로 유목민처럼 옮아가는 주제에…….
 
설희를 낳던 촌뜨기 여대생 처녀와 지금의 서른일곱 살의 자신과는 중세와 현대만큼의
 
차이가 있지 않은가.
 
그때는 어린 나이에 짊어진 결혼과 엄마라는 짐이 벗어날 수 없는 굴레처럼 여겨졌다.
 
남들이 청춘을 구가할 때 유미는 서슬 시퍼런 시집에 들어가 여종처럼 살았다.
 
유미가 다녔던 여대에는 당시에 금혼법이라는 게 있었다.
 
그러나 인생은 새옹지마, 전화위복, 요지경이다.

 

20세기 말과 21세기 초의 17년의 세월은 어쩌면 역사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중세의 170년보다
 
파란만장한 세월이었다.
 
오히려 21세기 디지털의 시대를 맞아 유미야말로 새봄을 맞고 있지 않은가.
 
호적을 까보지 않는 한 아무도 유미를 ‘돌싱’, 게다가 어쩌면 딸의 임신으로
 
자칫 할머니도 될 뻔한 여자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다.
 
유미는 타고난 동안에다가 가녀리고 볼륨 있는 몸매가 십년 정도는 젊어 보인다.
 
골드미스라 불리는 것도 억울할 지경이다.
 
우리 나이 서른일곱, 서양식으로는 만 35세10개월.
 
이 나이는 여자들에게 다양한 신분의 스팩트럼을 제공한다.
 
유부녀에 처녀에 이혼녀에 재혼녀까지…….
 
그러나 설희의 존재는 유미의 가슴에 박힌 아픈 가시였다.

 

유미는 공연히 화가 나서 핸들에 머리를 박았다.
 
클랙슨이 빵! 방정맞게 울렸다.
 
그 소리에 제풀에 깜짝 놀란 유미는 고개를 들었다.
 
다 잊어버리자.
 
이 우울한 기분을 빨리 떨쳐버리자.
 
유미는 머리칼에 붙은 송충이를 떼어내듯 머리를 흔들었다.
 
꽂았던 자동차 키를 다시 빼내어 밖으로 나와 자동차 문을 잠갔다.
 
그리고 지하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1층을 눌렀다.
 
한 시간 기분 전환을 위해서 백화점의 1층은 꽤 괜찮은 공간이다.
 
수입향수 코너가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급히 나오느라 향수 뿌리는 걸 잊었다.
 
새로 나온 리프레시한 향이 있으면 공짜 테스터를 듬뿍 뿌려야겠다.
 
오늘은 인규의 혀뿐 아니라 코도 즐겁게 해주어야겠다.

 

아, 그랬는데…….

 

“씻고 와라.”

 

인규가 갑자기 절정 전에 몸을 뗐다.

 

“오늘 에프킬라 뿌렸냐?”

 

그러고 보니 백화점 향수코너를 돌며 이것저것 죄다 귓불에다가 뿌려댄 생각이 났다.
 
아차, 잠시 헷갈렸다.
 
참, 이 남자는 향수를 싫어하지.

 

“난 자기 몸의 자연 향을 좋아한다구. 도무지 집중이 안 되잖아.”

 

이진우는 불가리 향수를 특히 좋아하고,
 
또 박 피디는 샤넬을…… 남자들의 향수 취향은 다양하다.
 
인규는 똑바로 누운 채 담배에 불을 붙였다.
 
가슴에 난 털이 땀으로 지저분하다.
 
우리나라 남자치고는 가슴에 털 난 남자는 흔치 않다.
 
처음엔 섹스어필이 되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자연향수인 페로몬이 땀 냄새와 비슷하다고 하지만,
 
유미는 인규의 땀 냄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좀 짙다 싶은 그의 체취는 남들보다 많은 체모에 기인하는 게 아닐까.
 
오늘은 왠지 성능 좋은 전기면도기로 확 밀어버렸으면 좋겠다.
 
그가 담배연기를 입으로 내뿜기 시작하자
 
그의 심벌은 공기가 빠져나가는 풍선처럼 점점 쭈그러졌다.
 
담배와 남성의 심벌은 필시 연결된 게 아닐까.

 

유미는 씻을 생각을 않고 그대로 누워 있다.
 
귀찮다.
 
씻고 와서 저 불씨를 다시 살려 땀을 빼고 싶지 않다.

 

“씻고 와. 깨끗이 씻고 다시 먹게.”

 

담배를 다 피운 인규가 부드럽게 말했다.

 

“나, 피곤해. 오늘은 그만하자.”

 

“무슨 코스 요리를 먹다 마냐?”

 

“오늘은 일품요리 먹었다 생각해. 건강을 위해서 간혹 소식도 해야지.”

 

그때 인규의 휴대폰이 울렸다.
 
인규가 슬쩍 눈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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