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6)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6

오늘의 쉼터 2015. 1. 31. 15:39

(6)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6 

 

 

 

 

 

유미는 전에 지완을 만나 함께 ‘섹스 앤 더 시티’란 영화를 관람한 적이 있다.
 
그때, 여주인공 캐리가 매혹된 마놀로 블라닉이란 구두를 보면서 지완은 말했다.

“어머! 세상에! 저 구두, 어쩜 저렇게 섹시하면서 로맨틱할 수 있니? 정말 탐나!”

구두를 잃은 착하고 불쌍한 신데렐라처럼 말하던 지완. 샬롯 같은 지완.
 
그렇다면 나는 극중 누구와 닮았을까?
 
캐리와 사만다의 짬뽕? 섹시로맨스? 로맨틱섹스? 그것은 모든 여자들이 꿈꾸는 로망이다.
 
그러나 구두는 구두일 뿐이라고 유미는 생각한다.

지완은 친구고, 인규는 애인이다. 죄책감? 하지만 나는 인규를 독점하지는 않는다.
 
인규에게도 아내 지완은 필요한 사람이겠지.
 
나는 불륜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의 김희애가 아니다.
 
인규는 내게 라지 사이즈 도미노 피자의 한 조각일 뿐이다.
 
물론 지완 쪽에서 보면 ‘내 남자의 여자’는 바로 나일 수밖에 없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 속이 좀 간질간질하다.

유미도 한때 약간의 죄의식을 가진 적이 있었다.
 
아마도 그때가 인규와 유미가 정신없이 빠져들던 최초의 시기가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죄의식은 가장 강력한 흥분제다.
 
인규는 그 죄의식을 어떻게 처리하는 걸까.
 
쿨한 척 서로 아무 말 안하지만 가끔 궁금하다.
 
하지만 우정은 우정, 구두는 구두일 뿐이다.

유미는 호텔에서 나와 홀로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블로그에 적었다.


훔친 사과가 맛있듯이,
사랑에 있어 죄의식은
최고의 흥분제이자 최음제이다.


어찌 보면 죄의식은 가장 인간적인 특징이며 필요악이다.
 
죄의식 때문에 인간이 못할 일은 없는 것이다.
 
죄의식은 사후약방문 같은 것이다.
 
하지만 죄의식이라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싸구려 향수처럼 날아가 버린다.
 
점점 휘발성이 강해진다.
 
결국 그런 향기, 냄새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이 세상은 착한 동화 속의 여자가 살 곳이 못된다고 생각하는 유미도
 
간혹 선악과를 따먹은 이브의 후예답게 죄의식을 느끼긴 한다.
 
카프카가 말했다. 악은 인간을 유혹할 수는 있지만 인간이 될 수는 없다.
 
유미는 생각한다.
 
어쨌거나 영원한 악인이 될 수는 없어.
 
어쩔 수 없이 난 인간이야.
 
아! 그것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제 <단미의 사랑방>이라는 이 블로그도 혼자 관리하는 게 벅차다.
 
몇 년 전에 만든 유미의 블로그는 네티즌들에게 압도적인 인기를 얻었다.
 
사랑에 관한 낯간지러운 아포리즘이나, 좀 튀는 자신의 견해를 담은 이 블로그는
 
얼마 가지 않아 한낱 이류 미술대학의 시간강사 유미를 유명하게 해주었다.
 
교수로 채용될 희망은 싹수도 보이지 않던 30대의 이혼녀.
 
그러나 그 블로그는 점점 입소문과 실핏줄 같은 인터넷의 네트워크 덕으로
 
곧잘 유명 포털 사이트의 메인에 단골로 뜨게 되었다.
 
그리고 한때 유행했던 싸이월드의 개인 홈페이지에는 유미의 글들이 사이사이,
 
접착제처럼 붙어서 외떨어진 구슬 같은 사람들의 사이를 사이좋게 하는 데 일조했다.

유미는 ‘단미’라는 아이디로 통한다.
 
단미. ‘달콤한 여자’, ‘사랑스러운 여자’라는 뜻을 가진 순 우리말.
 
인규는 단미라는 단어를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달콤한 걸?
 
달콤한 아이스 와인도 좋지. 그래, 알아. 난 달콤한 걸(Gi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