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간발의 차이-2
약간 작은 듯했다.
거울을 보았다.
새하얀 빅토리아 시크릿 속옷과 은색 마놀로 블라닉 구두를 신은 여자가 서 있다.
세상에, 이렇게 유혹적인데! 결혼을 하면 왜 남편들의 눈에 붙은 콩깍지가 벗겨지는 걸까?
아니 지독한 원시가 되는 걸까?
멀리 있는 여자들은 예뻐 보이고, 이렇게 가까이, 집안에 있는 예쁜 여자는 보이지 않다니.
코를 고는 남편을 보다 화가 난 지완은 거실로 가서 오디오에 CD를 걸었다.
탱고 음악이 흘러나왔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 나왔던 곡이 흘렀다.
‘뽀르 우나 까베자’. 감미로운 선율이다. 하지만 제목은 좀 썰렁하다.
간발의 차이. 샤워하고 온 고 사이를 못 참고,
간발의 차이로 잠든 남편을 원망하며 지완은 탱고음악에 맞춰 고고하고 우아하게 스텝 연습을 했다.
그래 탱고엔 역시 하이힐이야. 지완은 두 달 전부터 탱고 강습을 받기 시작했다.
안방으로 돌아온 지완은 남은 포도주를 털어 마시고 곧 잠이 들어버렸다.
이미 생일날이 물러간 시각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킹사이즈의 너른 침대에 빅토리아 시크릿 속옷을 입고
마놀로 블라닉 하이힐까지 갖춰 신은 여자가 쪼그리고 자고 있었다.
남편은 이미 출근하고 없었다.
아무리 섹시한 명품을 걸친 반라의 아내라도 그의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나 보다.
그 생각을 하며 한숨을 쉬던 지완은 칙칙해진 속옷을 집어던지고 오디오에 CD를 건다.
이번에 흐르는 곡은 ‘꼼므 일 포’다.
그래, 어쨌든 당당하고 우아하게! 미운 오리새끼라고 생각되더라도 백조처럼 우아하게,
공작처럼 당당하게, 스텝을 밟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때 휴대폰 벨이 울렸다.
박용준이었다.
무슨 생각인지,
얼마 전에 유미가 소개시켜 준 남자다.
분양이라 해야 맞을까?
넘치는 강아지 새끼를 분양하듯.
어느 날, 유미가 전화했다.
“너, 연하남 하나 안 키워 볼래?”
“어우, 얘는!”
공연히 내숭을 한 번 떨어보았다.
“싫어?”
“…….”
황당하기도 해서 잠시 머뭇거리자,
아쌀한 성격의 유미는 곧 전화를 끊을 듯했다.
언젠가 ‘섹스 앤 더 시티’라는 영화를 함께 보고 나서 지완이 처음으로 푸념을 한 적이 있었다.
“저건 미국 여자들이나 가능하겠지.”
“부럽니?”
“솔직히 쪼금.”
유미가 말했다.
“한국에서도 능력 있는 여잔 가능해.
요즘 누가 남편 하나만 달랑 델꼬 사니?
남편 하나면 한심한 여자,
남편과 애인, 합쳐 둘이면 양심 있는 여자,
셋이면 세심한 여자고,
넷이면 사심 없는 여자고,
열이면 열심히 사는 여자라더라.”
그때 둘은 식은 커피를 마시며 웃었던 적이 있다.
유미가 금방이라도 전화를 끊을까봐 지완이 슬쩍 물었다.
“몇 살인데?”
“갓 서른이래.”
“뭐? 그럼 일곱 살이나 어리잖아.”
“같은 학년인데, 뭘.”
“총각이니? 난 총각은 부담스러워.”
“총각은 아닌데, 유부남도 아니고.”
“그럼 돌싱?”
“그것도 아니고. 동거하나 봐.”
“에이, 부담스러워. 그리고 난 우리 가정이 너무 소중해.”
“얘는. 그러고 보니 내가 꼭 무슨 가정파괴범 같구나.”
유미가 발끈 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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