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3)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3

오늘의 쉼터 2015. 1. 31. 15:37

(3)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3 

 

 

 

 

 

 

“그래서 말인데, 이럴 땐 친모가 가봐야 되는 거 아니야?”

“왜 친부가 가 보시지.”

말이 곱게 나가지 않는다.

“어떻게 거길 아빠가 가냐?
 
그리고 나 KTX 안이야.
 
부산 출장이 있어.
 
애 엄마가 가긴 했을 텐데.
 
그래도 이런 일은 챙겨주면 좋잖아.
 
우리 애 엄마가 무슨 죄냐?”

우리 애 엄마?
 
마치 설희는 제 자식이 아닌 양 말하는 효수가 밉살스럽다.
 
애 엄마란 물론 설희의 엄마는 아니다.
 
효수에게는 재혼하여 낳은 아홉 살 난 진국이라는 아들이 있다.
 
설희의 엄마는 두 시간 후에 유능한 소믈리에이자 레스토랑 업체 사장인
 
애인과의 약속이 보름 전부터 예약되어 있는 몸.

“나, 당신 애 엄마랑 거기서 조우하고 싶지 않거든!”

“니가 가면 애 엄마가 왜 가겠냐! 암튼 알고는 있어. 설희에게 전화라도 해줘.”

효수는 거칠게 전화를 끊었다.
 
유미는 설희의 휴대폰에 전화를 걸어야 할까,
 
잠시 망설인다.
 
모녀는 설희가 아주 어릴 때 헤어졌다.
 
아무리 친 모녀지간이라 해도 어색한 건 고사하고 설희는 늘 까칠하게 위악을 떨었다.
 
그러나 유미는 설희의 휴대폰 번호를 결국 눌러버린다.
 
받지 않는다.
 
왠지 또 눌러야 할 것 같다. 또 누른다.
 
한참이 지나 전화를 받는다.
 
설희다.
 
약간 잠기가 묻은 목소리다.
 
거의 반년 만이다.

“어, 왜에……?”

“엄마야.”

“알아, 오마담! 내가 전화하지 말랬지? 근데 왜 전화해?”

설희는 유미를 한 번도 엄마라 부르지 않는다.
 
양모(養母)를 보고도 엄마라 부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녀 보고는 신마담이라 한다든가.

“왜! 왜 전화해? 하지 말랬잖아!”

설희의 목소리가 히스테릭해진다.
 
덩달아 유미의 목소리도 높아진다.

“야, 이 바보야! 어쩌다가! 그래 몸은 괜찮니?”

“꽤나 생각하네. 됐거든!”

툭! 전화가 끊겨버린다.
 
그러나 이미 터져 나온 유미의 말은 차 안에서 쩌렁쩌렁 울린다.
 
꼴 좋다!
 
애 주제에 애나 떼고!
 
잠시 후 유미는 자신의 먹통 휴대폰을 귀에서 떼어 멍하니 보다가,
 
그만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러다 마치 마이크에 대고 말하듯 또박또박 말한다.
 
바보야, 조심하지. 엄마가 예쁜 콘돔 두 박스나 선물했잖아.

설희는 작년 이맘때에 가출했다.
 
정효수로부터 그 연락을 받은 지 보름 후, 돈이 떨어졌는지 설희가 생전 처음
 
엄마인 유미의 아파트를 찾았다.
 
아이는 열여섯. 그러나 이미 첫 경험을 한 나이였다.
 
아니 첫 테이프를 끊은 아이의 성생활은 브레이크 풀린 자동차처럼 불안했다.
 
운전조작이 미숙한 열여섯살짜리 여자애는 욕망의 브레이크를 아직은 잘 다루지 못할 터였다.
 
그러다 원하지 않는 애라도 생긴다면!
 
당연히 애가 애를 원하지는 않을 테니,
 
색색가지 콘돔 세트를 선물했던 거다.
 
피임에 실패하면 인생에 실패하는 거라는 엄포와 함께.
 
막을 수 없다면 피하기라도 해야 한다.
 
그런데 그건 어디다 두고 무모하게 일을 치렀단 말인가.
 
아니면 1년 동안 그 두 박스의 콘돔을 다 써버렸단 말인가.
 
유미는 화가 났다,
 
딸의 소파 수술에. 망할 년! 소파수술이라니.
 
그게 낡은 소파를 수술하는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이토록이나 소통이 되지 않는 딸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분노와 서글픔이 함께 솟아났다.
 
하지만 딸과 자기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세계에 다른 존재로 살고 있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한때 잠시, 열 달 동안 딸이 비록 자신의 몸, 자궁 속에 살았다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