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섹스는 있어도, 맛있는 사랑은 없다. 사랑이 허기라면, 섹스는 일종의 음식이다. 이 도시에 음식점이 넘쳐나듯 사람들은 여러 메뉴를 놓고 고민한다. 먹음직스러운 음식과 맛있는 음식은 꼭 일치하지는 않으니까.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맛있기도 한 음식에 사람들은 안도와 만족을 느낀다. 그러나 미식가라면 먹음직스럽진 않으나 맛있는 음식을 탐색하는 데도 모험심을 발휘할 것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탐식가다. 게다가 맛있는 걸 절대로 남에게 뺏기지 않으려 한다. 그러므로 만족한 섹스 후에 남자들이 하는 말은 딱 두 마디로 집약된다. “으음… 맛있어.” 그리고 곧바로, “딴 놈이랑 하면 죽어.” 그런데 ‘맛있는’ 여자들은 딴 놈이랑 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대체로 맛있는 여자들은 딴 놈이랑 하다 걸리지 않을 만큼 영악하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건 오랜 경험으로 축적된 그녀들의 노하우일까?
유미(由美)는 자신이 ‘맛있는’ 여자라는 걸 안다. 오랜 학습의 결과다. 100명의 남자와 섹스한 건 아니지만, 백분위점수로 환산한다면 90점 이상은 된다고 생각한다. 섹스는 일종의 피드백이다. 또한 과격한 섹스 행위는 레슬링과 닮았다. 그런데 레슬링과 다른 점은, 승률을 결정하는 것은 힘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대는 유혹적인 먹이에는 곧바로 제압당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인규는 훌륭한 싱글매치 상대다. 게다가 그는 훌륭한 혀를 갖고 있다. 그는 실력있는 소믈리에다. 그러니 그의 혀를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는 포도주를 고르듯 여자를 고른다. 처음에는 눈으로 보고, 그다음에는 향을 맡고, 마지막으로 맛을 본다.
인규는 소믈리에면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한 레스토랑의 오너다. 그의 능력과 재력으로 보건대 어린 여자애들도 얼마든지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권위 있는 소믈리에답게 숙성된 맛을 좋아하나 보다. 어쨌거나 보졸레 누보 취향은 아닌 것이다. 호텔 객실에 카드키를 꽂자 에어컨디셔너와 조명이 동시에 가동되었다.
인규는 검은색 재킷을 레슬링가운 벗듯 휙 벗어 집어던지고는 유미에게 달려든다. 로프는 없지만, 유미는 그의 야수성을 자극하기 위해 한껏 심한 반동을 일으키며 침대로 떨어진다. 유미가 가볍게 저항할수록 인규는 허기진 짐승처럼 거칠게 유미의 옷을 벗겨낸다. 이제부터 심판 없는 그라운드 레슬링의 매치가 시작된다.
링, 아니 침대 위에서 펼쳐지는 매치에서 소믈리에 파트너는 늘 하던 대로 맛을 본다. 그러고는 마치 ‘오늘의 와인’에 대해 품평하듯 말한다. 그러나 그건 엄밀히 말하면, ‘오늘의 치즈’ 맛이다. 정복자 나폴레옹을 정복했던 조세핀의 그 치즈….
“으음…. 오늘, 좋아.”
인규의 기분 좋은 신음은 유미에게도 더할 나위 없는 애피타이저다. 그가 가장 즐기는 치즈는 ‘브리’라는 치즈라 한다. 혀에 감기면서도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은은한 향의 브리.
“자기, 배란일이 다가오는구나.”
이 민감한 남자는 이제는 맛으로 여자의 생리주기를 꿰뚫기까지 한다. 산부인과 의사보다 더 정확한 진단이다. 그의 보고에 의하면 배란일 전후에는 잘 발효된 향기로운 브리 냄새가 난다고 한다. 시큼한 요거트 맛일 때는 생리 전후라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