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 26장 즐거운 인생 [10]
(552) 26장 즐거운인생 <19>
방으로 들어선 전성남이 서동수를 향해 머리를 숙여 보였지만 건성이다.
얼굴이 굳어졌고 눈동자에 초점이 없다.
오후 4시 반, 전성남은 오후 2시에 면담 신청을 했으므로 빨리 만나게 된 셈이다.
서동수가 웃음 띤 얼굴로 전성남을 보았다.
전성남은 53세, 동성에서 근무한 지 15년이 된다.
서동수가 손으로 앞쪽 자리를 가리켰다.
“앉아요.”
“예.”
짧게 대답한 전성남이 앞쪽에 앉더니 똑바로 서동수를 보았다.
마음을 굳혔는지 눈동자도 흔들리지 않는다.
“새롭게 동성이 시작해야 한다는 회장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습니다.”
서동수는 웃음 띤 얼굴로 시선만 주었고 전성남의 말이 이어졌다.
“저도 신임 김창국 회장을 보좌해서 전력투구하겠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
“그동안 회장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과 함께 심기일전하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서동수가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얼굴에는 아직도 웃음이 띠어져 있다.
이윽고 서동수가 인터폰 버튼을 누르자 민혜영의 목소리가 울렸다.
“네, 회장님.”
“유 실장, 조 사장을 오라고 해.”
“네, 회장님.”
머리를 든 서동수가 전성남을 보았다.
“같이 이야기를 합시다.”
시선을 받은 전성남이 숨을 들이켰지만 대답하지는 않았다.
곧 옆쪽 문이 열리면서 유병선과 조기택이 들어섰는데 둘의 얼굴은 굳어져 있다.
둘은 잠자코 전성남의 앞쪽에 나란히 앉았다.
전성남의 면담 신청을 받자 둘이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서동수가 입을 열었다.
“전 사장이 새롭게 시작하자는 각오를 말씀하시려고 왔다는데 이 기회에 같이 이야기를 합시다.”
“예.”
조기택이 먼저 대답하더니 들고 온 서류를 펼쳤다.
“전 사장께서는 이미 오늘 오후 3시에 공금 횡령, 뇌물 착복, 부정 인사 개입 등
7가지 혐의로 검경에 고발되셨습니다.
현재 파악된 전 사장님의 축재 재산은 친인척 명의로 위장 분산한 1250억 원가량의 동산,
부동산이 있더군요.
이것이 동성에서 15년 동안 착복한 금액이 되겠지요.”
조기택이 머리를 들었는데 쓴웃음이 떠올라 있다.
“검경은 전문가들이니까 우리보다 더 밝혀낼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건 한동안 한국에서 뉴스거리가 되겠지요.”
전성남이 눈을 치켜떴지만 입을 떼지는 않았다.
이를 악물고 있는지 입술 끝이 희미하게 떨리는 것이 보인다.
그때 유병선이 말을 이었다.
“회장님 지시로 동성의 모든 것을 공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나쁜 놈은 처벌을 받고 억울한 사람이 있으면 구제가 되어야지요.”
서동수가 소파에 등을 붙이고 전성남한테서 시선을 뗐다.
전성남이 면담 신청을 한 것은 뭔가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한테 상의도 하지 않고 갑자기 수뇌급 인사를 단행한 것에 불길한 예감을 받았을 터다.
이것이 바로 전성남과 서동수의 다른 점이다.
서동수 같은 창립형 인간성은 이쪽저쪽을 옮겨 다닌 이주형 인간과는 사고방식이 다른 것이다.
잘게 장난을 치는 위인들은 큰 칼에 몸통이 잘리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서동수가 길게 숨을 뱉었다.
(553) 26장 즐거운인생 <20>
차에서 내린 서동수가 길 건너편의 2층 건물을 보았다.
초등학교 근처여서 아이들이 떼를 지어 앞을 지났다.
오후 2시 반, 하교 시간이 되어 있는 것이다.
옆으로 다가선 수행비서 최성갑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장관님, 저는 이곳에 있겠습니다.”
이제는 서동수의 분신이나 같은 최성갑이다.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얼마 걸리지 않을 거야, 수업이 3시부터라니까.”
발을 뗀 서동수가 길을 건너 2층 건물로 다가갔다.
건물 현관에 ‘초록미술학원’이라는 간판이 붙여져 있다.
최성갑의 보고서를 보면 2층 건물은 대지 105평 건평 85평인데 미술학원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다음 달에는 문을 닫을 예정이다.
건물주가 건물을 매물로 내놓은 데다 임차료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관 안으로 들어서는 서동수의 뒤로 한 무리의 초등학생들이 따라왔다.
좁은 로비가 금방 소음으로 가득 찼다.
안내 데스크도 없어서 두리번거리던 서동수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옆쪽 복도에서 유수경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어머나.”
놀란 유수경이 입을 딱 벌렸다가 곧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더니 서둘러 다가왔다.
유수경은 스웨터에 바지 차림이었는데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다가선 유수경이 물었다.
“여기 웬일이세요?”
서동수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반짝였고 볼이 조금 상기되었다.
“어디 잠깐 이야기할 곳이 있을까?”
서동수가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하면서 묻자 유수경이 팔을 끌었다.
아이들이 지나면서 떠들썩하게 인사를 했다.
건성으로 인사를 받던 유수경이 복도 옆쪽 문을 열었다.
10평쯤의 교실인데 석고상 서너 개가 놓여있을 뿐 비어 있다.
문을 닫은 유수경이 문을 등지고 서서 서동수를 보았다.
“연락도 안 하시고 이렇게 오시면 어떻게 해요? 준비도 못 하게.”
“내가 뭐라고 준비를 해?”
다가선 서동수가 웃음 띤 얼굴로 유수경을 보았다.
“여기 선생님이 몇 명이야?”
“저까지 여섯 명.”
“학생은 꽤 많네.”
“학교 옆이니까요.”
“이달 말까지 하고 문 닫는다면서?”
“임차료가 비싸요. 건물도 매물로 내놨고.”
그때 서동수가 쥐고 있던 서류봉투를 유수경에게 내밀었다.
“이 토지하고 건물을 내가 샀어. 이게 권리증이야.”
유수경이 눈앞에서 흔들리는 봉투만 보았고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다음 달부터 유수경 씨가 새 미술학원을 개업하도록 해.
권리증을 갖고 있으니까 임차료를 낼 필요가 없겠지.”
서동수가 봉투를 옆쪽 책상 위에 놓더니 다시 작은 봉투를 꺼내 위에 놓았다.
“이건 새로 개업하는 데 필요한 경비로 써. 한번 멋있게 해봐.”
“잠깐만요.”
유수경이 갈라진 목소리로 서동수를 불렀다.
얼굴이 하얗게 굳어져 있다.
“왜 이러세요?”
“어제 회사에서 숙청 작업을 했어.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이 인간들이 횡령한 금액의 백분의 일만 투자를 해도
즐거운 인생을 살게 되는 사람도 있을 텐데 하고 말이야.”
서동수가 발은 떼어 유수경 옆의 문고리를 잡았다.
“가끔 나는 이런 순간이 즐거워. 바쁘게 살다 보니까 이런 것이 내 취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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