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난봉기 10
눈을 동그랗게 뜬 신해수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는 무릎 위로 올라가는 치마를 자꾸 끌어내렸다.
우유처럼 흰 피부를 지닌 여자였다.
“저는 지금까지 회장님이 혼자이신 줄 알았는데.”
“다들 그렇게 알고 있지.”
진국은 서서히 어머니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가이아는 이미 많이 진행이 됐지?”
“네, 내달엔 상해와 북경에 가이아 할인점을 오픈합니다.”
진국은 귀가 번쩍 열렸다.
“내가 알기로 가이아가 이번에 오픈하는 중국 점들의 속옷 파트는
이미 ‘비라’가 독점하기로 계약이 되어 있지?”
“회장님께서 어떻게 그런 작은 계약까지 알고 계십니까?”
“뻔한 거 아냐?”
어머니의 입가에 엷게 미소가 그려졌다.
이미 그런 물밑 작업이 다 이루어져 있다면 마평수의 말대로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왜 진국을 불러다 놓고 이 이야기를 하는 걸까?
“진국아, 들었지?”
진국은 그제야 어머니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사업에서 어머니는 냉정했다.
어머니마저도 코지의 중국 진출을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는 말이었다.
진국은 무표정한 얼굴로 침묵했다.
총판 20개를 낸다는 건 곧 인지도가 그만큼 올라야 가능하다는 말이기도 했다.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길이 쉽지 않다고,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걸 진국에게 눈으로 확인시켜 주어야 무모하게 뛰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으리라.
그럼 이대로 물러나야 하는 걸까?
그 다음은? 어머니 밑에 들어와 그녀의 사업을 물려받으라는 뜻일 터였다.
진국은 가만히 앉아 돈으로 돈을 버는 그런 일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진국은 마음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신해수는 영문도 모른 채 진국을 힐끔힐끔 훔쳐보았다.
코지가 중국에 진출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어느 정도 알려진 상태였다.
그래도 가는 데까지 가 봐야지, 어차피 좌절될 일이라 해도 일단 해보는 게 중요하니까,
사업도 어차피 사람의 일, 사람의 일이란 원래 한 치 앞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다.
진국은 오히려 마음을 더욱 다잡았다.
“같이 저녁 먹자?”
어머니는 두 사람을 한식당으로 안내했다.
신 회장의 집엔 일식당, 한식당, 양식당으로 그렇게 식당이 셋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런데 말야, 왜 그 자원도 없는 그 불모의 나라에 다들 그렇게 애를 태우지?”
어머니는 식탁에 앉아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회장님도 참, 잘 아시면서.”
“음, 인구가 많다는 건 알지. 하지만 과연 중국의 인구 중에 정상적인,
그러니까 고급화된 소비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어머니는 진국을 앞에 두고 늘 그렇게 선문답하듯이 질문은 하되 답은 말하지 않는 대화법을 썼다.
진국은 어렴풋이 그녀의 뜻을 알 것도 같았다.
“사실 중국 전체 인구로 따져봤을 때 많은 수가 고급화된 소비를 할 수 있을 거라곤 보기 어렵죠.”
신해수의 말에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관건은 인지도였다.
인구가 많으면 분명 성공할 희망도 크지만 반면 일이 틀어졌을 경우
손해 또한 막심할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신 회장님, 아드님이 계신 줄 몰랐어요.”
어머니 집에서 저녁을 먹은 뒤 진국은 신해수와 함께 나왔다.
진국은 그녀의 단아한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의 숨겨진 의도를 또 하나 알아차렸다.
진국에게 말하지 않고 선을 보게 만든 것이었다. 진국은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왜 웃으세요?”
“아,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데 진국씨는 재벌 2세 특유의 그런 거만함이나 배타적인 아집 같은 게 느껴지지 않는군요.”
“어차피 아셨으니까 말씀드리는 건데, 사실 전 재벌 2세나 뭐 그런 사람은 아닙니다.
신 회장님은 저의 양어머니이실 뿐이죠.”
신해수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서 야릇한 향기가 풍겼다. 여자란 얼마나 변화무쌍한가.
채연과 에이꼬가 다르고, 수영 또한 나름의 색깔과 향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도 어쨌든 신 회장님의 유일한 적자시잖아요.”
“그, 그렇게 되나요?”
진국은 자신에 대한 평가가 어머니로부터 비롯되는 걸 원하지 않았다.
신해수의 말이 그런 뜻은 아니지만, 그런 의미가 될 수도 있었다.
진국은 어머니가 중국 출국 전에 다시 들리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차피 중국 출장 가기 전에 들릴 참이었다.
“참, 김중경씨는 잘 있나요?”
“중경이요? 잘 아십니까?”
“대학 동창이었거든요.”
신해수는 간단하게 말했다.
그 이상의 어떤 의미가 있을 듯한데 그녀는 뒷말을 잇지 않았다.
뭔가 헤어지기는 아쉬운 감정이 들었다.
“차라도 한잔 할까요?”
아쉬움 감정을 툴툴 털어버릴 즈음, 신해수가 먼저 제안을 했다.
“차보다야 맥주가 낫죠, 실은 오늘 기분 안 좋은 일도 있고 해서.”
“그럼 위로주 한잔 해야겠네요.”
절구에 절구공이 들어가듯 죽이 착착 맞았다.
진국은 어머니가 담아준 게장을 차 트렁크에 넣은 뒤 신해수의 차로 이동을 했다.
“차 안 가져가셔도 됩니까?”
“제가 혼자 사는 집은 여기서 멀지 않습니다.”
신해수는 광화문 쪽으로 차를 몰았다.
오늘 어머니를 만나러 오지 않았다면 실장실의 미스 진을 만나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엉뚱하게 다른 여자와 데이트를 하다니. 하지만 나쁘진 않았다.
신해수가 진국을 안내한 곳은 ‘겨울’이라는 바(Bar)였다.
실내도 제법 넓었고 짙은 색으로 인테리어를 한 때문인지 분위기가 착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선지 사람들도 조심조심 말했다.
“저도 실은 오늘 회장님 호출 받고 조금은 놀랬어요.
늘 제가 회장님께 연락을 드리고 만나러 오곤 했거든요.
그것도 늘 회사 자금 사정 때문이었지만 말이에요.
그래서 저도 대충 눈치를 챘어요.”
종업원은 맥주 다섯 병과 치킨 샐러드를 가져왔다.
“어머니가 그런 분이 아니신데…. 해수씨가 꽤나 마음에 드셨던 모양입니다.”
“그런가요? 회장님은 모르시겠지만 실은 저 한번 이혼한 경력이 있어요.”
진국은 도무지 모든 여자들의 속이 짐작되지 않았다.
홍조 띤 신해수의 얼굴을 진국이 슬쩍 훔쳐봤다.
‘가이아 백화점이 중국에 진출한다?
비록 비라하고 손을 잡고 있지만 알아두면 나쁠 것도 없겠다.’
진국은 그런 계산이 들었다.
진국이 자신의 잔을 들어 그녀의 잔에 가볍게 부딪혔다.
“중경이 하곤 친하세요?”
신해수가 한 손으로 턱을 받치고 빤히 진국을 쳐다보며 물었다.
“사실 부서가 달라서 자주 마주칠 일도 없고…
또 중경인 좀 냉정한 데가 있어서 된장이나 막걸리 같은 우리하곤 잘 안 어울려요.”
“어머, 진국씨가 된장이나 막걸리예요?”
놀란 표정을 짓는 신해수의 머리카락이 찰랑거렸다.
그녀의 지긋한 눈길은 연륜이 쌓이지 않은 처녀들과는 뭔가 달랐다.
뭐랄까, 이미 한번 결혼한 성숙함이 묻어 있었다.
또 그녀의 얼굴 전체에 자유분방함도 흘러 넘쳤다.
“저를 신 회장님 아들로 보지 마세요. 어린 시절은 산골에서 보냈으니까요.”
진국은 내심 진지하게 대응했다.
“허긴 얼른 보면 진국씨에게선 부자들에게서 느껴지는 그런 거만이나
독선, 아집 같은 게 느껴지지 않아요.”
“부자들이라고 해서 다 그런 건 아닐 겁니다.”
진국은 어머니를 마음에 두고 말했다.
“알아요, 신 회장님 같은 분도 계신다는 거.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자들이 더 많은 게 이 세상이잖아요.
실은 중경인 저랑 한 때 사귀었어요.
그런데 중경인 나랑 생각이 참 많이 달랐지요.”
그녀의 말투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 말투 속엔 남자를 묘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게다가 중경인 뭐든 최고급이 아니면 쓰질 않았어요,
심지어 양말 하나를 신어도 최고 좋은 걸 따졌으니까요.
그런데 전 진국씨 말대로 시골 촌년이거든요.”
강 실장에게 배신당한 기분을 위로받으려다가 되려 위로를 해줘야 할 판이었다.
“고향이 어디세요?”
“장고라고 아주 작은 바닷가 마을이에요.”
진국도 언젠가 들어본 듯한 지명이었다.
“지금이야, 서해안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 곳 중의 하나라고 각광을 받지만
제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그야말로 깡촌이었죠.
사람도 별로 없었고, 옆집에 숟가락이 몇갠지, 어젠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슬픈 일이 있으면 같이 울고 같이 웃기도 하는 그런 동네였거든요.
그런데 서울에선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몰라요.”
그녀가 말을 할 때마다 잘 익은 매실주 같은 냄새가 진국에게로 건너왔다.
진국은 여러 여자들을 떠올려 보았다. 채연은 보고만 있으면 죽는 날까지
같이 살을 비비고 싶을 정도로 육감적이고 섹시했고, 수영은 귀엽고 발랄했다.
에이꼬 역시 채연 못지 않은 여자였다.
강 실장실의 미스 진은 질리지 않는 순수함이 매력이었다.
하지만 신해수는 전혀 달랐다.
어머니가 괜히 소개팅을 시켜준 게 아닐 터였다.
“중경이는 특히 그런 걸 싫어했어요.
득이 되지 않는 사람이면 일체 상종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캐리어 우먼인 그녀에게서 의외의 향기가 풍겼다.
그건 야생의 냄새였다.
그건 다듬어지지 않은 순수의 냄새이기도 했다.
거칠고 강하고 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지만
한편으론 잠든 바다처럼 고요하고 넓은 마음을 지닌, 그런 향기였다.
진국이 보기에 신해수는 아직 자신의 매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이런 여자와 이혼한 남자 역시 그녀의 매력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것이다.
“사실 중경일 보면 어떤 땐 불쌍하기도 해요. 오로지 출세하는 게 목표니까요.”
“샐러리맨이면 당연한 거죠. 그런데 어쩌다 얼굴이 마주치면 그냥 서먹하더라구요.
입사 동긴데도 말이죠.”
“모르긴 몰라도 진국씨가 신 회장님 아들이라고 그랬으면 태도가 달라졌을 걸요?”
신해수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건 신해수의 말이 맞을 지도 몰랐다.
채연이나 미스 진, 그리고 수영이 역시 진국이 신 회장의 아들이라는 걸 알았다면
더 적극적으로 접근을 했을 수도 있고, 한편으론 더 멀어질 수도 있을 터였다.
그런 점에서 진국에게 신해수는 편했다.
숨길 게 없기 때문이었다.
“실은 저 결혼할 때 신 회장님이 반대하셨어요.
한번 같이 인사 드리러 간 적이 있었는데 제 짝이 아니라고,
상처 입기 전에 헤어지라고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냥 밀고 나갔죠.
젊은 사람이 관상이나 사주 따위 믿지 말자며 그냥 결혼한 거예요.
그런데 그 사람 결혼하니까 자신도 모르게 달라지더군요.
제가 조금만 늦게 집에 들어와도 분초를 따져가며 어디에 갔었냐고 묻는 거예요.”
의처증, 결국 사람을 의심하는 그 병은 병 중에 가장 무서운 병일 터였다.
“결국엔 제게 손찌검을 하게 되더군요. 제가 왜 이런 말을 하죠.”
신해수가 발갛게 달아오른 볼을 양손으로 감쌌다.
진국도 뭔가 그만한 답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 하나 해 드릴까요?”
진국 역시 신해수에게라면 뭐든 가리지 않고 말할 수 있을 듯했다.
봉수에게조차 하지 못했던 말들. 묘하게도 뜻이 통하는 이성에겐 할 수 있을 듯했다.
“듣고는 싶지만 제가 한 말에 대한 보답차원이면 안 들을래요,
그래도 말씀하시고 싶다면 들을 용의가 있구요.”
신해수가 진국에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진국만의 느낌인지도 몰랐다.
‘내일 채연이랑 동해에 가야 하는데…’
진국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밀려오는 신해수의 느낌들이 싫지 않았다.
그럼에도 채연의 일이 걱정이었다.
진국은 걱정을 지우기 위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버지와 자신을 버리고 모 기업의 후처로 들어가 살고 있는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버진 어디로 사라졌는지 소식이 끊겼고 유일한 혈육이 되어버린 어머닌 자식을 찾지 않는다는 이야기. 진국은 이야기를 꺼내놓고 나니 마음이 허전했다.
차라리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을 땐 그들이 그리웠는데 막상 말을 꺼내버리니 그 그리움이 사라져버렸다.
신해수가 맥주 잔을 쥔 진국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의 손처럼 부드럽고 따스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한 순간 마음이 소용돌이쳤다.
진국과 신해수의 눈이 테이블 위에서 마주쳤다.
불꽃이 일고 강렬한 자성이 서로를 끌어당겼다.
진국은 순간 신해수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주변 사람들의 눈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몇몇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지만 진국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진국에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술에 취하지도 않은 상태임에도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신해수 역시 사방에 있는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았고 거부하지 않았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미쳤나 봅니다.”
신해수가 자신의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그럼 미쳐서 제게 키스를 한 건가요?”
“그게 아니라, 제 말은 그러니까. 저도 모르게…”
진국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신해수가 몸을 당겨 진국의 입술을 덮쳤다.
술을 마시던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운명이라는 건 언제나 예기치 않은 순간에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공을 들여도 입술 한번 훔치지 못한 채연과 달리 만난 지 불과 몇 시간만인
신해수와 키스까지 하게 되리라곤 진국 역시 상상하지 못했다.
“사실 마음에 두었던 여자가 있었습니다.”
신해수가 히죽 웃었다.
“진국씨는 보기보단 순진하네요.
우리가 키스 한번 했다고 해서 뭐 갑자기 서로 중요한 사이가 된 건 아니잖아요.”
“그렇긴 한데, 그래도 사실 전 이런 경험 처음입니다.”
“저도 결혼까지 하긴 했지만 남자를 만나서 이렇게 몇 시간만에 입을 맞추게 되리라곤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두 사람의 테이블을 지나쳐 가는 사람들이 힐금힐금 쳐다보며 미소를 짓기도 하고,
낄낄거리기도 했다.
두 사람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그런 시선이 즐겁기만 했다.
“그리고 진국씨도 많은 여자를 만나 보세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냥 만나는 걸론 안돼요.
만나서 섹스도 하고 그 후의 자유분방함도 같이 즐겨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은 제가 결혼했던 그 남자 서로 순결을 지키자고 다짐해서 결혼하기 전까지
우린 섹스를 하지 않았어요.
결혼해서 첫 섹스를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람의 몸을 보게 되고
차츰 그 사람의 병적인 집착을 알게 되면서 그 사람의 몸 일부분이 그렇게 싫어질 수 없는 거예요.”
“몸 일부분이요?”
“말하긴 좀 그렇지만….
실은 그 사람 물건에 사마귀처럼 작은 혹이 하나 나 있는데
그 사람은 그걸 무슨 대단한 무기쯤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는 그게 그 사람 몸에서 가장 싫었거든요.
그러니까 제 말은 결혼하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 서로에 대한 검증 시간이
필요할 거 같다는 말이에요.”
“말하자면 1년쯤 혼인 신고 없이 살아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헤어지고 기다 싶으면
결혼하지 이런 거죠?”
“한번 살아보니까 어쩔 수 없더군요.
그리고 한국적 상황에선 그냥 동거하는 것과 시부모 친정부모까지 염두에 두며
사는 삶은 천지 차이에요.
그런 경험도 해봐야 해요.
요즘 의식있는 젊은 여자들 중에 외국 남자를 선택해서 결혼하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그게 시집의 남성적 문화에 적응하기 힘들어서 그런 거죠.”
그녀는 그저 이끄는 대로 끌려가는 여자들과 달랐다.
그런데 막상 정색을 하고 말하자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것도 왜 그런지 부끄러웠다.
진국이 슬그머니 그녀의 손을 놓았다.
“부끄러우세요?”
신해수가 진국의 마음을 간파하고 정곡을 찔렀다.
“어떻게 그걸 아셨어요?”
“육감.”
그녀가 진국의 손을 다시 끌어다 잡았다.
“그냥 회장님 뜻대로 우리 사귀어봐요. 물론 다른 이성들도 만나구요.
대신 서로의 사생활을 침범하지 않구요. 어때요? 해볼까요?”
신해수는 진국처럼 우유부단하지 않았다.
진국은 신 회장이 신해수를 귀히 여기는 이유를 조금은 알듯했다.
“그래도 어쨌든 중국 출장을 다녀온 뒤에나 가능할 거 같습니다.”
“오늘은 그냥 보내구요?”
신해수는 진지한 눈으로 진국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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