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난봉기 8
“무슨 문젭니까?”
진국과 단 둘이 있을 때 느슨하고 매혹적이던 에이꼬는 문제라는 말을 들은 후
딱딱하고 사무적인 자세를 취했다.
프로다웠다.
“외국 유명 패스트푸드점이 그 자리를 달라고 하네요.
거기선 보증금도 그렇고 월세도 거의 두 배 가깝게 내겠다니 저희 사장님 입장에선 망설이게 되시죠.
이왕이면 음식장사보다 속옷 장사가 더 깨끗할 것 같고 건물 이미지에도 좋을 것 같긴 한데…”
“이것 보세요!”
에이꼬의 말투가 차가웠다.
“제가 일본에서 왔다는 거 아시죠?”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럼 제가 일본을 떠나기 전 전화 드렸을 때 미리 말씀을 하셔야 할 게 아닙니까?
그리고 전화상으로 먼저 말씀 드린 가격으로 계약하기로 하고 오늘 미팅 날짜를 잡은 거구요.”
“전화상으로야 뭐 계약이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그리고 갑자기 그 쪽에서 그 자리를 달라고 해서….
그러지 마시고 일본에서 오신 그 수고도 있으시니까 제가 사장님께 말씀 잘 드릴 테니,
어떻게 좀 더 올릴 수 없을까요?”
남자는 능글능글 웃으며 세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남자는 능수능란하고 사람 부리는 게 고단수였다.
강남에서 부동산업을 해먹을 정도라면 알만 했다.
남자는 지금 가게를 두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속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높이 받으면 높이 받을수록 자신에게 떨어지는 수수료가 많아지는 건 당연한 이치.
그래도 일본에서 온 사람에겐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장님 성함이 어떻게 됩니까?”
진국이 씩씩거리는 에이꼬를 자리에 앉히고 조용히 물었다.
“저희 사장님을 아십니까?”
남자는 진국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물었다.
남자의 은색 뿔테 안경이 차갑게 빛났다.
“사장님과 직접 통화를 해보시겠다구요?”
남자는 계속 능글맞게 굴었다.
에이꼬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상기되었고 채연은
괜히 자신 때문에 일이 틀어지는 게 아닌가 싶어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구~동만이라고 하는데 들어 보셨겠습니까?”
남자는 진국을 쳐다보며 ‘니 까짓 게 구동만에 대해 알기나 아느냐’며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했다.
진국은 그 자리에서 남자의 얼굴을 한 대 후려치고 싶었다.
“아니,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어? 한국에선 돈 좀 있으면 다야?”
남자는 에이꼬가 내뱉은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창 밖을 내다보며 딴청을 부렸다.
진국이 에이꼬의 팔을 잡고 앉힌 후 신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랫만이구나.”
“어머니, 그 동안 별고 없으셨어요? 요즘 중국 진출 문제로 자주 찾아 뵙지도 못하고.”
“요즘 같은 불경기에 바쁘면 좋지. 언제 한번 오렴. 네 놈 좋아하는 게장 담아 놨는데.”
“중국으로 떠나기 전에 한번 들리겠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혹시 구동만이라는 사람 아십니까?”
“구~동만? 그건 왜?”
신 회장의 목소리를 들으니 아는 사이라는 감이 왔다.
“알다 마다, 그 놈 처음 땅 장사할 때 나한테 돈 엄청 갖다 썼지.
그런데 왜? 너 하는 일하고 그 구 사장하고 무슨 문제 있냐?”
신 회장. 사채업계에 전설적인 큰 손. 하지만
그녀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진국은 그녀에게 에이꼬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자 뻣뻣하게 등을 뒤로 젖히고 한량처럼 앉아 있던 남자가 몸을 점점 앞으로 숙였다.
의자 등받이에 활짝 펼쳐놓았던 팔도 접어 자신의 무릎 앞에 곱게 올려 놓았다.
자신보다 강한 자 앞에선 비굴하고 약한 자 앞에선 허세 떠는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그래, 알았다. 내 전화하마. 그리고 게장 맛있게 익었으니까 일간 다녀가라.”
“알았습니다.”
신 회장과 전화 통화가 끝난 후 남자의 얼굴엔 비굴함이 흘렀다.
“허, 저희 구 사장님하고 통화하신 분하고 무슨 관계라도…”
남자가 자신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때 책상 위에 놓여져 있던 전화벨이 울렸다.
남자가 전화를 받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 그런 내색을 안 하시길래 전혀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네? 보증금만 받고 월세는 없는 걸로 하라구요?”
전화를 건 사내의 목소리가 세 사람의 귀에도 들릴 정도로 컸다.
“니가 지금 어느 분하고 상대하는 줄이나 알고 있어?
신 회장 아드님이야.
그리고 내가 언제 두 배로 올려 받으라고 했어?
너 같은 놈이 내 얼굴에 먹칠하는 거야.”
“사장님, 그래도 월세를 안 받으면…”
“야! 그게 니 건물이야! 내가 받지 말라면 안 받는 거지, 무슨 잔소리가 그렇게 많아.”
에이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남자를 아니꼬운 눈으로 쳐다보던 채연의 얼굴에도 웃음이 감돌았다.
“자, 잘 알겠습니다.”
신 회장의 전화 덕분에 에이꼬는 예상치도 않은 좋은 조건으로 가게 계약을 맺게 되었다.
남자는 계약서를 작성하는 내내 절절 맸다.
“제가 몰라 뵙고 실례를 한 거 같습니다.
그러니 저희 사장님께 말씀 좀 잘 해 주십시오.
저야 저희 사장님 도와 드릴 생각으로…”
남자는 끝까지 비굴하게 굴었다.
세 사람이 주차장으로 내려올 때까지 따라와 허리를 90도로 굽혀 절을 하곤 돌아갔다.
“저런 남자 정말 밥맛이야! 채연씨도 그렇죠?”
에이꼬가 차에 올라탄 뒤 담배를 꺼내 물며 입을 열었다.
“정말 재수 없어요.”
채연도 맞장구를 쳤다.
“진국아, 안 그래?”
“저 사람이야, 나름대로 자신의 입장에서 충실하려고 한 거 뿐이지.”
진국이 룸미러로 뒷좌석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무튼 진국이 넌, 혼자 착한 척 다한다니까, 나랑 채연씨는 뭐 악년 줄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내가 저 친구였어도 그랬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야.”
“딴에 이해도 되네요.”
채연이 동조를 하자 에이꼬가 혀를 쏙 내밀곤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에이꼬를 경복궁 근처에서 내려준 뒤 진국은 채연을 태우고 신도림으로 향했다.
에이꼬는 진국 덕에 절약하게 된 월세 부분을 채연의 활동비로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여러모로 채연에겐 좋은 자리였다.
‘에이꼬는 내일 떠날 거니까 주말엔 채연씨랑 동해나 다녀오자.’
진국은 힐끔 채연을 쳐다보며 김칫국부터 마셨다.
채연은 차창 밖으로 시선을 둔 채 뭔가 생각하는 눈치였다.
“진국씨!”
채연이 진국을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불렀다.
“제가 그냥 이렇게 진국씨 호의만 받아도 되는 거예요?”
진국은 채연의 말에 숨겨놓은 마음을 들킨 듯 움찔했다.
“그, 그냥 어려운 사람들끼리 서로 돕는 거죠, 뭐.”
“저는 해 드릴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데.”
진국은 채연의 그 말 때문에 차마 주말 여행을 떠나자는 제안을 할 수 없었다.
진국은 앞만 보고 운전했다. 잠시 짧은 침묵이 흘렀다.
“진국씨, 다음 주에 중국으로 떠나신다고 하셨죠?”
“네.”
“그럼, 중국으로 떠나시면 언제 뵐 지 모르겠네요.”
“일 마무리가 잘 되면 빨리 돌아올 수도 있을 테지만 그래도 반년 이상은 있어야 할겁니다.”
채연은 왼쪽 다리를 들어 오른쪽 무릎 위에 올려놓으며 손으로 턱을 어루만졌다.
진국은 그런 그녀를 살짝 훔쳐보았다.
채연은 다리를 꼬는 바람에 치마가 말려 올라간 걸 모르는 듯했다.
허벅지 안쪽 깊은 곳의 뽀얀 맨살이 보였다.
진국은 얼른 눈길을 돌렸다.
“진국씨, 그럼 이번 주말에 시간 있어요?”
‘으잉?’
채연이 느닷없이 물었다.
“시, 시간이야 있지만.”
“그럼 우리 동해로 바람이나 쐬러 갈까요?”
진국이 제안을 하기도 전에 채연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진국은 내심 반가웠다.
“동해요? 그, 그러죠.”
진국은 가능한 반가운 마음을 숨기고 말했다.
“송림이랑 같이 가도 되죠?”
‘나송림?’
진국은 머리를 굴렸다. 채연과의 관계 속에서 자꾸 송림이 등장하는 게 께름칙했다.
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 서로 주고받는다는 기분은 안들 듯했다.
일자리와 높은 급여를 만들어 주었으니 몸이라도 달라는 식의 여행이 되는 건 진국 역시 바라지 않았다.
“나 선배만 괜찮다면 저도 괜찮습니다.”
진국은 기분 좋게 승낙했다.
“그래요, 나도 실은 오랫동안 바다가 보고 싶었거든요.”
채연이 몸을 진국 쪽으로 기울여 진국의 팔짱을 끼었다.
야릇하고,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여자 특유의 살 냄새가 진국에게 건너왔다.
‘이런 여자가 설마 레즈비언이겠어.’
진국은 지레짐작을 했다. 진국이 몬 차가 신도림 역 앞에 멈춰 섰다.
“그런데 진국씬 정말 어떤 사람이에요?”
채연이 차에서 내리기 전 그 말을 남겼다.
새벽까지 진국을 잠 못 자게 괴롭히던 에이꼬는
아침 일찍 일본에서 온 전화를 받은 후 서둘러 짐을 쌌다.
“일본엔 언제 한번 놀러 올 거야?”
“이번 여름 휴가 때나 가야지.”
“그나저나 어머니 한번 뵙고 가야 되는데.”
에이꼬 역시 신 회장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녀가 일본에서 생활할 수 있는 것도 모두 신 회장의 도움 덕이었다.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에이꼬는 신 회장의 일본 쪽 정보망 중 하나였다.
에이꼬가 말하지 않았고 신 회장 역시 말하지 않아 진국은 모른 척 지내왔다.
오사카 속옷 박람회가 실패로 끝날 뻔했을 때 신 회장이 일본으로 전화를 걸어
무대 인테리어 업자 등을 구해준 일이 있었다.
신 회장은 그렇게 발이 넓었다.
“나 몸 달아서 식기 전에 꼭 와야 돼.
뭐 월차 내거나 샌드위치 휴일 때라도 한번 와.
그리고 참 너네는 토요일에 안 노니?”
“한 달 한번.”
“무슨 회사가 그러니?”
“우린 예외잖아. 지금 다들 힘들 때고.”
“실은 나 내일 떠나려고 했는데.”
에이꼬는 야들야들한 하늘색 치마를 손으로 잡고 팔락거렸다.
진국의 눈길이 잠시 그녀의 허벅지로 향했다.
여자는 옷을 모두 벗고 있을 때보다 어느 정도 걸치고 있을 때가 더 매혹적이라고 생각했다.
에이꼬가 야릇하게 눈을 흘기며 진국에게 성큼 다가왔다.
“왜 그래?”
“비행기 시간 아직 많이 남았거든. 너도 출근하려면 아직 멀었잖아.”
“누난 내가 변강쇠쯤 되는 줄 아나봐.”
진국은 실소를 터뜨렸다.
에이꼬가 느닷없이 진국의 손을 잡고 바 쪽으로 끌어당겼다.
진국은 트렁크 팬티와 반팔 셔츠 차림이었다.
“누난, 정말 오래 굶은 사람 같아.”
“너 오사카에 왔을 때부터 한국에 나올 때까지 남자라곤 씨알도 구경 못했다고 했잖아.”
선천적인 요부. 하지만 마음은 넓고 의리도 깊은 여자였다.
“어쩔려고?”
에이꼬는 손을 진국의 트렁크 팬티 속으로 쑥 집어넣었다.
밤새 시달리고도 진국의 아랫도리는 꼬물꼬물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다.
“봐, 애도 하고 싶대잖아.”
에이꼬는 치마를 들추더니 팬티만 벗어버렸다.
“언제 또 샤워하고 화장하려고.”
진국은 바의 기둥에 걸린 벽시계를 올려다보았다.
“무슨 샤워를 해. 그냥 가는 거지.”
“콘돔도 안 끼고?”
“지금 괜찮은 시기야.”
에이꼬는 바를 두 손으로 짚고 서서 치마를 위로 끌어 올렸다.
그녀의 아랫도리가 훤히 드러났다.
창문을 뚫고 들어온 아침 햇살이 그녀의 싱싱하고 푸릇한 중심을 핥아댔다.
“빨리.”
에이꼬가 오른 손을 뒤로 돌려 진국의 허리를 잡고 끌어당겼다.
얼마나 몸이 달았던지 에이꼬의 몸은 이미 충분히 젖어 있었다.
옷을 전부 걸친 채 속옷만 끌어내린 그녀의 아랫도리를 보자
진국도 적잖이 흥분이 되었다.
“뭐해?”
에이꼬가 진국을 돌아보며 말했다.
무성하고 푸른 숲. 그리고 두 개의 빛나는 작은 동산.
에이꼬는 오른 손으로 진국의 아랫도리를 잡고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정말 시간 없는데.”
진국은 벽시계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그의 아랫도리는 이미 힘차게 일어나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나도 시간 없어.”
에이꼬가 다리를 한껏 벌렸다. 에라 모르겠다.
진국은 그녀의 중심을 향해 아랫도리를 들이밀었다.
순간 에이꼬의 허벅지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의 등이 뒤로 활처럼 휘었다.
바의 천장 모서리에 걸려있던 와인 잔들이 일제히 요란하게 몸을 떨었다.
바 안쪽의 유리 면에 두 사람이 붙어 있는 모습이 영상처럼 되비쳤다.
진국도 에이꼬도 그 거울 속에서 눈을 마주쳤다.
자신들의 모습을 거울로 보니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진국은 에이꼬의 깊은 곳을 향해 달려갔다.
에이꼬의 몸도 진국의 몸을 더 많이 받아들이기 위해 다리를 더더욱 넓게 벌렸다.
“전에도 말했지만 내가 만난 남자 중에 니가 최고야.”
“그런 소리하지마. 나보다 물건 더 좋은 놈들 많아.”
진국은 봉수를 떠올렸다.
입사 초기 때 음성 원단 공장으로 출장을 갔을 때
봉수와 전날 마신 술독을 푸느라 사우나를 들린 적이 있었다.
그때 진국은 봉수의 물건을 보고 적잖이 놀랬다.
누군지 몰라도 너랑 결혼하는 여잔 행복하겠다,
너도 만만치 않은데. 둘은 그런 말을 하며 서로 웃었던 적이 있었다.
진국은 봉수와 함께 송화가 생각났다.
봉수 아버지의 장례식을 다녀갈 정도면 뭔가 열매가 맺어질 듯 싶었다.
에이꼬의 몸 전체가 부르르 떨었다.
바 안은 그녀가 내지른 감창으로 가득 찼다.
들큰하고 뜨거운 숨이 뒤에 서 있는 진국에게까지 전해졌다.
진국의 몸도 부르르 떨었다.
에이꼬가 바 위로 엎어졌다.
그녀의 눈가에 기쁨의 눈물이 맺혔다.
“정말 훌륭했어.”
에이꼬가 진국을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그녀는 바닥에 벗어놓았던 팬티를 그대로 주워 입었다.
“안 씻어?”
“그냥 갈래. 이 기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어.”
에이꼬가 잠시 진국의 품에 안겼다가 떨어졌다.
“이제 일본 가면 너 그리워서 어떡하지?”
“뭐 먼 거린가?”
“아무튼 넌 결혼 천천히 해야 돼.”
에이꼬가 눈을 흘겼다.
“그러게 나한테 그냥 시집오라니까.”
발목까지 내려간 트렁크 팬티를 끌어올리며 진국도 눈을 흘겼다.
“나 한 남자한테 만족 못하는 거 알잖아.”
에이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가방을 끌며 문 쪽으로 향했다.
“나도 실은 지금까지 내가 만난 여자 중에 누나가 최고였어.”
“정말?”
에이꼬는 진국의 볼에 입을 맞추곤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