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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좁은 문

오늘의 쉼터 2015. 1. 10. 12:00

1. 좁은 문 - 앙드레 지드.   
 

다른 사람들이라면 이 이야기로 한 권의 책을 꾸며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이야기 하는 것은
내가 그러한 생활을 하기 위해 내 모든 힘과 정신을 거기다 다 기울인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저 내 추억을 적어 볼 따름이며,
꿰매거나 맞추기 위해 조작까지 할 의도는 전혀 없다.
그러한 노력이란 내가 추억을 이야기함으로써 얻으려는
마지막 즐거움마저 잇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내가 아직 열 두 살도 채 되기 전이었다.
아버지가 의사로 계시던 르아브르에 더 이상 머물러 있을 아무런 이유도 없게되자
어머니는 파리로 가면 더 학업을 잘 마치리라는 생각에서 그리로 옮겨갈 작정을 하셨다.
어머니는 상부르 공원 근처에 조그만 아파트를 세내어
그곳에서 미스 아슈뷔르똥과 같이 살게 했다.
혈혈 단신의 미스 플로라 아슈뷔르똥은 처음에는 어머니의 가정교사였다가
이어 말벗이 되더니 곧 친한 친구가 되어 버렸다.
나는 다같이 부드럽고 쓸쓸한 표정에
늘 상복만 입고 있던 기억이 나는 이 두 여인 곁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퍽 오랜 뒤라고 생각되는데 어느 날 아침
어머니가 아침에 쓰는 모자의 검은 리본 대신 연보라색 리본을 단 것을 보고 나는,

"엄마!"하고 외치고 말았다.
"그 빛깔은 정말 엄마에게 어울리지 않아."
다음날 어머니는 다시 검은 리본으로 고쳐 달았다.

나는 꽤 허약한 편이었다.
그래서 어머니와 미스 아슈뷔르똥은 늘 내가 지치지 않도록 마음을 썼다.
그런데도 내가 게을러지지 않았던 것은 정말 공부하기를 좋아했던 때문이다.
초여름부터 두 여인은 나를 얼굴이 창백해질 뿐인 도시에서
떠나게 할 시기가 왔다고 들먹거렸다.
6월 중순 경 해마다 여름이면 뷔꼴랭 삼촌이 맞아 주는
르아브르 근처 퐁궤즈마르를 향해 우리는 출발했다.

그다지 아름답지도 않은 정원,
노르망디 지방의 다른 정원들과 별다른 특징이 없는
정원 안에 있는 하얀 뷔꼴랭 댁의 3층 건물은 18세기 풍의 별장들과 같은 것이었다.
정원의 정면 동쪽을 향해 20여 개의 창이 열려 있고 뒤켠에도 그만큼 달려 있다.
양쪽 곁에는 창이 없다.
창에는 작은 창유리들이 끼워져 있었는데,
최근에 갈아 낀 몇 개의 유리는 너무도 투명해서
그 주변의 것들은 푸르고 어두워 보이게 했다.
어떤 창유리에는 집안식구들이 '거품'이라고 부르는 흠이 있어
그리로 내다보면 나무는 뒤틀려 보이고
그 앞을 지나가는 우편 배달부는 갑자기 힘껏 달리기도 한다.

긴 네모꼴의 정원은 담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집 앞에는 그늘진 널찍한 잔디밭이 있고,
그 둘레로는 모래와 자갈 깔린 작은 길이 나 있었다.
이 편에서는 담이 낮아서 정원을 둘러싸고 있는 농가의 뜰이 보이는데,
너도밤나무를 심은 길이 이 고장 특유의 방식대로 이 농장의 뜰을 구분하고 있었다.

집 뒤쪽 서편으로, 정원은 더욱 활짝 트여 있었다.
남쪽 과수 울타리 앞, 꽃이 만발한 좁은 길은
포르투갈산 월계수의 두터운 장막과 몇 그루 나무로 바닷바람을 피하였다.
북쪽의 담을 따라 뻗어나간 또 하나의 오솔길은 나뭇가지 밑으로 사라진다.
내 사촌 누이들은 그것을 '어두운 길'이라 불렀고
저녁 노을이 지면 거기로 나가길 주저했다.
이 두 갈림길은 채소밭에 닿아 있고,
이 채소밭을 몇 층계 더 내려가면 밑에 정원과 붙어 있다.
그리고 채소밭 안쪽 조그만 비밀 문이 나 있는 담 건너편에 벌채림이 보이고
너도밤나무가 늘어선 길이 좌우 양쪽에서 그곳에 이르고 있다.

서쪽의 현관 층계에서는 이 숲 너머로 정원이 보이고
이 고원을 뒤덮은, 거둬들인 농작물을 바라볼 수 있다.
지평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조그마한 마을의 교회당이 있고
해질녘 바람이 잔잔할 때면 몇몇 집에서 피어 오르는 연기가 보인다.

여름철 아름다운 석양녘이면 저녁 식사 후 우리는 아래 정원으로 내려갔다.
우리는 그 작은 비밀문을 통해 어느 정도
주변의 경치를 바라볼 수 있는 길가의 벤치까지 갔다.
거기 폐광된 이회암 채굴터 이엉 지붕까지 놓인 벤치에
삼촌, 어머니,  미스 아슈뷔르똥이 앉는 것이었다.
우리 맞은편에 있는 조그마한 계곡은 함빡 안개에 잠기고
그 너머 숲 위의 하늘은 금빛으로 물드는 것이었다.
땅거미가 진 뒤에도 우리는 늦도록 정원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우리가 다시 집에 돌아오면
우리와 같이는 거의 밖에 나가지 않는 아주머니가 응접실에 있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것으로 저녁 시간이 끝나는 것이지만
흔히 밤이 이슥해서 어른들이 돌아오는 발소리가 들릴 때까지 각기 자기 방에서 책을 읽었다.

정원에서 보내는 외의 시간을 우리는 대부분
'책상'을 마련해 놓은 삼촌의 서재 '자습실'에서 보냈다.
사촌 동생인 로베르와 나는 나란히 앉아 공부했고
뒤에서는 줄리에뜨와 알리싸가 공부를 했다.
알리싸는 나보다 두 살 위였고 줄리에뜨는 한 살 아래였으며
로베르는 넷 중 가장 나이가 어렸다.

내가 여기서 쓰려 하는 것은 어린 시절의 여러 가지 첫 추억이 아니라
다만 이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틀림없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해다.
아마도 내 감수성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또한 자신의 슬픔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어머니의 슬픔을 보는 것으로
지나치게 자극을 받은 나머지 새로운 감정을 일으켰던 탓인지
나는 상당히 조숙한 편이었다.
그해 퐁궤즈마르에 다시 왔을 때 줄리에뜨와 로베르는 아주 어려 보였지만
문득 우리 둘은 이제 어린애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그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해다.
우리가 도착한 직후 미스 아슈뷔르똥과
어머니가 주고받은 대화가 내 기억을 확인해 주고 있다.
나는 어머니와 내 친구가 이야기하고 있던 방에 갑자기 들어갔었다.
외숙모에 관한 이야기였다.
어머니는 외숙모가 복을 지키지 않았다든가
혹은 지켰다 하더라도 벌써 그만 두고 말았다는데  화를 내고있었다.
(사실 소복을 하고 있는 뷔꼴랭 외숙모를 상상해 본다는 것은
 화려한 옷차림의 어머니를 상상해 보는 것만큼이나 어색한 노릇이다.)
내 기억으론 우리가 도착하던 날 뤼씰르 뷔꼴랭은 모슬린 옷을 입고 있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타협적인 미스 아슈뷔르똥은
어머니를 진정시키려 노력하면서 조심조심
말하고 있었다.

 

"어쨌든 흰색도 상복 차림이긴 하잖아요?"
"아니, 그럼 그 어깨에 걸치고 있는 빨간 쇼올도 '상복 차림'이라 하겠어요?

플로라, 내 화를 그만 돋궈요."하고 어머니는 소리쳤다.

내가 외숙모를 본 것은 방학 동안 뿐이었으니까 늘 낯익은,
가볍고 폭이 넓은 그 웃옷차림도 여름의 더위 탓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드러난 어깨 위에 걸치고 있었던 쇼올의 타는 듯한 빛깔보다도
어깨를 그처럼 드러낸 모습이 더욱 어머니 눈에 거슬렸던 것이다.

뤼씰르 뷔꼴랭은 퍽 아름다웠다.
내가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외숙모의 초상은 그 당시 외숙모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딸과는 자매 지간으로 보일이 만큼 앳된 모습으로 비스듬히 앉아서는
언제나 변함없는 맵시로 턱을 왼손에 괸 채 새끼손가락을 맵시 있게 입술가로 굽히고 있다.
올이 긁은 헤어네트가, 목덜미 위에 웨이브를 한, 반 쯤 헝클어진 머리를 감싸도 있다.
웃옷 깃 사이의 움푹 파인 곳엔
검은 빌로오도의 헐거운 목걸이에 매듭이 흔들거리는 검은 빌로오도의 허리띠,
모자끈으로 의자 뒤에 달아매 놓던 차양이 넓고 부드러운 밀짚 모자,
이 모든 것이 외숙모의 모습을 더욱 앳되게 만들고 있다.
오른 손은 아래로 늘어뜨린 채 덮여진 한 권의 책을 들고 있다.

뤼씰르 뷔꼴랭은 식민지 출신이었다.
양친을 몰랐다든가 아니면 일찍 여의었다든가 했다.
그 후 어머니가 들려 준 이야기로는,
내버려졌거나 아니면 고아였던 외숙모는 아직 어린애가 없던 보띠에 목사 부처가 거두어서,
곧 마르띠니끄를 떠나게 되자 당시 뷔꼴랭네가 살고 있던 르아브르로 데리고 왔다는 것이다.
보띠에 댁과 뷔꼴랭 댁은 서로 친해지게 되었다.

삼촌은 당시 외국의 어떤 은행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어린 뤼씰르를 보게 된 것은 그로부터 3년 후 집에 돌아왔을 때었다.
삼촌은 홀딱 만해서 곧 청혼을 했는데 그로 인해 양친과 어머니는 어지간히 속은 썩였다.
당시 뤼씰르는 16세였다.

그간에 보띠에 부인은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다.
부인은 날이 갈수록 성격이 점점 비뚤어져가는 수양딸이
두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두려워하기 시작한 참이었다.
게다가 살림살이도 옹색했고...
이것은 모두 보띠에 부인이 어째서 자기 동생의 청혼을
반갑게 수락했던가 하는 것을 어머니가 내게 설명해 준 이야기다.

더 나아가서 내가 상상하기로는 사춘기에 이른 뤼씰르가
그들을 몹시 당황케 했으리라는 것이다.
르아브르의 사회를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처럼 매혹적인 용모를 지녔던

이 아이에게 사람들이 어떻게 대했으리라 하는 점은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훨씬 후에야 알게 되었지만 성격이 온유하고 신중하면서도 순박하여
속임수엔 감당을 못하고 악 앞에서는 완전히 당황해 버리는 보띠에 목사,
이 어진 목사는 정말 진퇴양난에 빠졌을 것이다.
보띠에 부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
부인은 넷째 아들, 나와 같은 또래로
후에 내 친구가 된 아들을 낳자 세상을 떠나고 말았던 것이다.

뤼씰르 뷔꼴랭은 우리 생활에 별로 참여하지 않았다.
점심 식사가 끝난 후에나 겨우 자기 방에서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소파나 혹은 해먹 위에 저녁까지 길게 누워 있다가 지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녀는 윤기라곤 전혀 없는 이마에 땀이라도 닦으려는 듯 때때로 손수건을 갖다 대곤 했다.
정묘한 모양에 꽃향기보다는 과일내가 풍기는 이 손수건은 내게 지극히 신기한 것이었다.

때로 그녀는 허리띠에서 여러 가지 물건과 함께
시계줄에 달린 매끄러운 은으로 만든 뚜껑이 있는 조그만한 거울을 꺼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자기 얼굴을 거기에 비춰보면서
손가락 하나를 입술에 갖다대어 침을 조금 묻혀다가 눈꼬리를 축이곤 했다.
흔히 그녀는 책을 한 권 들고 있었는데 늘 덮여진 채
책 중간 쯤엔 별갑으로 만든 페이퍼나이프 겸용의 서표가 끼워져 있었다.
사람이 다가가도 여전히 공상에 잠긴 채 누군가에게 시선을 돌리려고도 하지 않았다.

때로는 그 힘없이 나른해진 손에서, 소파의 팔걸이에서,
혹은 치마폭의 주름 사이에서, 손수건이나, 책, 혹은 무슨 꽃이나 서표가 떨어지는 것이었다.
어느 날 그 책을 주워--이건 어릴 때 추억이다--
그것이 시집인 것을 보고 나는 얼굴을 붉힌 적이 있다.

저녁 식사가 끝나면 뤼씰르 뷔꼴랭은 우리 가족 테이블로 가까이 오지 않고
피아노 앞에 앉아 쇼팽의 느린 마주르카를 치곤 했다.
때로 박자가 틀리면 어느 한 음만을 누른 채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다.

외숙모 곁에서 나는 언제나 까닭 모를 어색한 기분,
일종의 감탄과 두려움이 뒤섞인 그러한 느낌을 가졌었다.
무의식적인 어떤 본능이 외숙모를 경계하도록 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나는 외숙모가 플로라 아슈뷔르똥과 어머니를 경멸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미스 아슈뷔르똥은 그녀를 두려워하고 있으며
어머니는 그녀를 좋아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뤼씰르 뷔꼴랭 외숙모님,

나는 이제 당신을 탓하고 싶지도 않으며
또 외숙모가 많은 잘못을 저지른 사실도 잊고 싶은 심정입니다...
적어도 노여움 없이 당신에 대해 이야기 하렵니다.

그해 여름의 어느 날--

혹은 그 이듬해였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비슷한 배경 속에서 내 기억은 가끔 뒤섞인다--
책을 한 권 찾으러 응접실로 들어갔다.

외숙모가 거기에 있었다.
나는 곧 되돌아 나오려고 했다.
여느 때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듯하던 외숙모가 나를 불렀다.

"제로옴! 왜 그렇게 급히 나가니? 내가 무서우니?"

가슴을 두근거리며 나는 그녀 쪽으로 갔다.
나는 애써 미소를 짓고 손도 내밀었다.
그녀는 한 손으로 내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너의 어머니는 어쩌면 이렇게 흉하게 옷을 입히니, 가엾어라!..."
그때 나는 넓은 칼라의 세일러복을 입고 있었는데
외숙모는 그것을 구기적거리기 시작했다.

"세일러복의 칼라는 훨씬 더 젖혀 입는 거야!"
내 샤쓰 단추를 하나 빼면서 그녀가 말했다.

"자! 봐라, 더 낫지 않는가!"
그러고는 그 작은 거울을 꺼내더니

자기 얼굴에 내 얼굴을 끌어당기고
드러낸 팔로 내 목을 휘감고 반쯤 벌려진 내 샤쓰 속으로
자기 손을 집어 넣고 웃으며 간지럽지 않으냐고 물으면서
자꾸만 더 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내가 깜짝 놀라 펄쩍 뛰어 일어나는  바람에 그만 세일러복이 찢어지고 말았다.
얼굴이 홍당무가 된 채,

"아유, 이런 바보!" 하고 외숙모가 소리치는 동안 나는 도망쳤다.
그러고는 정원으로 달려가 거기 채소밭 조그마한 저수통에서 손수건을 추겨
이마에 대고 뺨과 목 할 것 없이 그녀가 손 댄 곳은 어디나 닦고 문질러 냈다.

때때로 뤼씰르 뷔꼴랭은 '그의 발작'을 일으키곤 했다.
발작은 불시에 일어나 집안을 뒤엎는 것이었다
미스 아슈뷔르똥은 부랴부랴 아이들을 데리고 가 돌보아 주었지만
침실이나 응접실에서 나오는 무서운 고함소리를 들리지 않도록 막을 수는 없었다.
삼촌이 반미치광이가 되어
수건이나 화장수나 에테르를 가지러 복도를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저녁때 아직도 외숙모가 나타나지 않은 식탁에서
삼촌은 근심에 찬 늙은 안색을 하고 있었다.
발작이 거의 지나고 나면 뤼씰르 뷔꼴랭은 자기 아이들을 그의 곁으로 불렀다.
주로 로베로와 줄리에뜨를 불렀다

알리싸를 부르는 일이란 거의 없었다.
이러한 슬픈 날이면 그의 아버지가 이따금 그녀를 보러 가곤 했다.
삼촌은 곧잘 그녀와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외숙모의 발작은 하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었다.
발작이 유난히도 심하던 어느 날 저녁, 응
접실에서 벌어지는 일이 잘 들리지 않는 어머니 방에
꼼짝 말고 들어가 있으라는 말을 듣고 어머니와 함께 들어가 앉아 있는데,

"주인님 어서 내려오세요, 마님께서 지금 돌아가셔요."하고
하녀가 소리치면서 복도를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삼촌은 알리싸의 방에 올라가 계셨다
어머니가 삼촌을 부르러 가셨다.
15분 후 내가 있던 방의 열려진 창 앞으로
두 분이 무심히 지나갈 때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똑바로 말해 볼까? 이건 모두 연극이야!"
그리고는 음절을 끊으면서 몇 번이나,
"연...극...이야!"라고 되풀이하는 것이다.

이 일은 방학이 끝날 무렵에 생겼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년 후의 일이었다.
그후로는 오랫동안 외숙모를 만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 집안을 뒤엎은 슬픈 사건을 이야기하기 전에
또한 그 사건의 결말에 조금 앞서 그때까지도 뤼씰르 뷔꼴랭에 대해
내가 느끼고 있었던 복잡하고도 막연한 감정을 그야말로
증오심으로 바꾸어 놓은 사정을 이야기하기 전에,
내 사촌 누이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가 됐다.

알리싸 뷔꼴랭이 예쁘다는 것을 나는 그때까지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이끌렸던 것은 단순한 미의 매력보다는 다른 어떤 매력 때문이다.
물론 그녀는 자기 어머니를 많이 닮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길이 주는 표정이 그녀의 어머니와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에
서로가 닮았다는 사실을 훨씬 뒤에야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 그녀의 얼굴을 그리지 못하겠다.
얼굴의 윤곽 뿐 아니라 눈동자의 빛마저도 이제는 기억에 희미하다.
단지 지금 생각나는 것은 그 무렵에 벌써 슬픔이 깃든 듯한 미소를 띤 표정과
커다란 곡선을 그리면서 눈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눈썹의 선뿐이었다.

나는 그러한 눈썹을 어디서고 본적이 없다.
오직 단테시대의 피렌체 조상에서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어릴 때의 베아트리체도
그처럼 높이 곡선을 그린 눈썹이었으리라 상상하고 싶다.
이 눈썹은 그녀의 눈길에, 그녀의 몸 전체에,
근심과 신뢰가 동시에 섞인 질문의 표정을, 그렇다, 열정적인 질문의 표정을 주었다.
그녀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질문이요, 기다림이었다.
이 질문이 어떻게 나를 사로잡았으며
나의 생애를 결정짓게 되었는가를 이제부터 이야기하겠다.

그러나 보는 이에 따라서는 줄리에뜨가 더 예뻐 보였을 것이다.
기쁨과 건강이 그녀에게서 그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미는 그 언니의 우아한 미와 비교 할 때
어쩐지 외형적이고 누구에게나 단번에 드러나는 것 같았다.
사촌 동생 로베르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아이였다.
단지 내 나이 또래의 아이였을 뿐이다.
나는 줄리에뜨가 로베르하고 같이 놀았고 알리싸와는 같이 이야기를 했다.

알리싸는 우리 장난에 끼는 일이 없었다.
아무리 먼 과거로 되돌아가도 내 눈에 그려지는 알리싸는
언제나 진지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명상에 잠겨 있는 모습이다.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했던가?

이제 나는 곧 그것을 이야기하겠다.
그러나 그보다도 먼저 다시는 아주머니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아주머니 이야기를 끝맺을 생각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년 후에
어머니와 나는 부활제 방학을 보내려고 르아브르에 갔다.
시내에서 퍽 비좁게 사는 삼촌댁을 피해
한결 집이 넓은 이모 댁에서 지냈다.
내가 좀처럼 만날 기회가 없었던 쁠랑띠에 이모는
여러 해 전부터 과부였다.
나보다 훨씬 나이도 많고 성격도 나와는 판이한
이모의 아이들을 나는 겨우 얼굴이나 알 정도였다.

르아브르에서 사람들이 쁠랑띠에 댁이라고 부르는,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 중턱에 있었다.
뷔꼴랭 댁은 상가 근처에 있었는데 가파른 언덕길로
이 두 집을 순식간에 오고 갈 수가 있었다.
나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이 길을 오르내렸다.

그날 나는 삼촌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후 얼마 안 있어 삼촌은 곧 외출을 했다.
나는 삼촌을 따라 사무실까지 갔다가 어머니를 찾아 쁠랑띠에 이모댁으로 갔다.
어머니는 이모와 함께 외출을 했는데 저녁 식사 때나 돌아오실 모양이었다.
곧 나는 다시 시내로 내려왔다.
이 시내에서 마음껏 산책할 기회를 그때까진 별로 갖지 못했었다.
나는 부두로 내려갔다.
바다의 안개로 뒤덮인 이 부두는 음울해 보였다.
나는 한두 시간 이 부둣가를 헤매다녔다.
문득 방금 만나고 온 알리싸를 찾아가 놀래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달음질쳐서 시내를 지나 뷔꼴랭 댁의 초인종을 눌렀다.
이미 나는 층계 위를 뛰어오르고 있었다.

대문을 연 하녀가 나를 가로막았다.
"올라가지 마세요, 제로움 도련님. 올라가지 마세요, 마님께서 발작이 나셨어요."

그러나 나는 그대로 지나쳐 올라갔다.
외숙모를 보러 온 것은 아니니까...
알리싸의 방은 4층에 있었고 2층에는 응접실과 식당이 있고
3층에는 외숙모 방이 있는데 그곳에서 말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방문이 열려 있는데 그 앞을 지나가야만 했다.
한 줄기 불빛이 흘러나와 층계참을 꺾어 비치고 있었다.
들키지 않을까 조마조마하여 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몸을 숨긴 채 다음과 같은 광경을 보아 아연했다.
커튼이 내려지긴 했지만 두 개의 가지 달린 촛대에 꽂힌 촛불이
화려한 불빛을 뿌리고 있는데 방 한가운데
외숙모가 긴 의자에 누워 있고 그 발 밑에는 로베르와 줄리에뜨가 있었다.
외숙모 뒤에는 중위 복장을 한 낯선 청년이 서 있었다.
이 두 어린애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망측한 일이지만
당시 나의 순진한 생각으론 오히려 그것이 안심이 되었었다.

맑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뷔꼴랭, 내게 양 한 마리가 있다면 정말 뷔꼴랭이라 이름 붙여줄걸."하고
되풀이하는 이 낯선 사나이를 두 아이는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외숙모는 깔깔대고 웃었다.
외숙모는 그 젊은 사나이에게 담배를 한 대 내밀자
그는 불을 붙였고 외숙모는 몇 모금 빠는 것이었다.
담배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자 사나이는 그 담배를 주우려고 달려나와
쇼올에 발이 걸린 척하면서 외숙모 앞에서 무릎을 끓는 것이었다...
이 우스꽝스러운 연극 덕분에 나는 들키지 않고 빠져나갔다.

나는 알리싸의 방문 앞에 섰다.
잠시 나는 그대로 기다리고 있었다.
웃음소리와 떠드는 소리가 아래층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아마도 그 소리가 내 노크하는 소리를 덮어 버렸는지 대답이 없었다.
문을 밀어 보니 조용히 열렸다.
방안은 어둠이 깃들어 나는 곧 알리싸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저무는 저녁 햇살이 스며드는 창문을 등진 채 침대머리에 무릎을 끓고 있었다.
내가 가까이 접근해 가자 여전히 앉은 채 고개를 돌리고는 이렇게 속삭였다.

"아, 제로옴 또 왔어?"
나는 키스를 하려고 몸을 굽혔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에 젖어 있었다....

이 순간이 나의 생애를 결정지었다.
지금도 그 순간을 회상해 보면 마음이 괴롭다.
물론 나로서는 알리싸의 슬픔의 동기를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슬픔이 팔딱거리는 이 조그마한 영혼,
흐느낌으로 온통 흔들리는 이 연약한 육신에 대해서는
너무도 심한 것이라는 사살을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여전히 무릎을 끓고 있는 그녀 곁에 서 있었다.
나는 내 마음속에 솟아오르는 이 새로운 격정을 무엇이라 표현할지 몰랐다.
단지 그녀의 머리를 내 가슴에 꼭 껴안고
내 영혼이 흘러넘치는 입술을 그녀의 이마에 대고 있을 따름이었다.
사랑과 연민, 그리고 감격, 희생감, 정성이 뒤얽힌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도취되어 나는 애 힘껏 하느님을 불렀고
이제는 내 삶의 목표가 공포의 악과 삶으로부터
이 소녀를 보호하는 것 뿐이라 다짐하면서 스스로 내 몸을 바치기로 했다.
기도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감싸 주었다,
어렴풋이 그녀의 말이 들려 왔다.

"제로옴! 들키지 않았어? 자 빨리 가, 들키면 안 돼."
그리고는 좀 더 음성을 낮추어,

"제로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불쌍한 아버진 아무것도 모르셔...."
그래서 나는 어머니에게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러나 쁠랑띠에 이모와 어머니와의 끊임없는 속삭임,
두 분의 뭔가 숨기는 듯한 안절부절 못하는 근심스러운 모습,
또 그들이 밀담하는 곳에 내가 접근할 때마다,
"애야, 저리 가서 놀아라."하면서 나를 멀리하던 일,
이런 모든 것이 나로 하여금 두 부인이
뷔꼴랭 댁의 비밀을 전혀 모르지는 않는다는 것을 짐작케 했다.

 

우리가 빠리에 돌아오자마자 한 장의 전보가
어머니를 다시 르아브르로 불러 갔다.
외숙모가 도망쳐 버렸다는 것이다.
"어떤 남자하고요?"
나는 어머니가 나를 맡기고 간 미스 아슈뷔르똥에게 물었다.
"얘야, 그것은 어머니께 여쭈어 봐라. 난 뭐라 대답할 게 없다."라고
이번 사건을 완전히 어리둥절해 진 이 노부인은 대답했다.

이틀 후에 그녀와 나는 어머니를 좇아 떠났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그 다음날 교회에서 사촌누이들을 만나기로 되었는데
그 생각만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어린 내 마음으로는 우리가 이런 장소에서 만난다는 것으로써
우리들의 재회가 신성화된다는 것이 대단히 대견스러웠던 것이다.
어쨌든 아주머니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으며
어머니에게 묻지 않는 편이 좋으리라 생각했다.

그날 아침 작은 교회당에는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았다.
보띠에 목사는 아마도 의식적으로,
좁은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묵도의 주제로 삼은 것 같았다.

알리싸는 나보다 조금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녀와 옆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에
주의 깊게 듣고 있던 그 말씀도 그녀를 통해 듣는 듯 싶었다.
삼촌은 어머니 곁에 앉아 울고 있었다.

목사는 먼저 전체 구절을 내리 읽었다.
'좁은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작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드무니라.'
그러고 나서 주제를 명백하게 분류하면서
목사는 먼저 넓은길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나는 멍하니 정신이 나간 채 꿈속에서처럼 아주머니 방을 다시 그려 보았다.
누워서 웃고 있는 아주머니가 보였고
번쩍이는 복장을 입은 장교가 웃고 있는 것도 보였다.
웃음이라든가 기쁨 자체가 불쾌하고 모욕적인 것으로 생각되고
추악한 죄악의 과장인 것처럼 보였다.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보띠에 목사는 계속했다.
그러고도 자세히 설명해 나갔다.
나는 빈들빈들 히히덕거리며 앞으로 나가면서
행렬을 이루는 화려한 차림새의 군중을 보았다.
그들과 발을 맞추어 한 걸음 나가자면 알리싸에게서 떨어져야 하기 때문에
나는 그런 행렬에 낄 수도 없고 또 끼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러자 보띠에 목사는 인용문의 첫구절을 되풀이했다.
나는 힘써 들어가야 할 그 좁은 문을 보았다.
잠겨있던 꿈속에서 나는 그 문을 흡사 압연기처럼 상상하고
나 자신이 그 사이로 애써 들어가며 말할 수 없는,
그러나 하느님의 축복의 예감이 섞여 있는 그러한 고통을 느낀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이 문은 바로 알리싸의 방문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그리로 들어가려고 스스로를 억제하며
내 속에 이기심으로 남아 있는 모든 것을 비워버리는 것이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작고 협착하여' 보띠에 목사는 계속했다.
그리고 모든 고난, 모든 슬픔 너머네 또 다른 하나의 말고 신비롭고 거룩한 기쁨,
내 영혼이 이미 갈망하기 시작한 다른 하나의 즐거움을 나는 상상하고 예감했다.
그 기쁨은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러운 바이올린과 같았고
또한 알리싸의 마음이 녹아 버리는 맹렬한 불꽃처럼 상상되었다.

우리는 다같이 묵시록에 적혀 있는 것 같은,
휜 옷을 입고 손에 손을 잡고 꼭같은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이러한 어린애의 갖가지 꿈이 미소를 자아낸들 어떠랴.
나는 그것을 꾸밈없이 이야기할 뿐이다.
혹시 분명치 않은 점도 있겠지만 그건 단지
아주 정확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언어와 불완전한 비유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를 찾는 이가 드무니'라고 보띠에 목사는 끝을 맺었다.
'찾는 이가 드무니라'... 나는 그 중의 한 사람이 되리라.

설교 끝난 무렵 내 마음은 너무나도 긴장되어 예배가 끝나자
나는 사촌 누이를 찾아보려 하지도 않은 채 뛰어나왔다.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벌써부터 나의 결심을(나는 이미 결심한 바가 있었던 것이다)
시련에 던져 보고 싶었으며,
이렇게 곧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옴으로써
더욱 그녀에게 적합한 인간이 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준엄한 교훈은 의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 뿐아니라
천성적으로 그 터전이 마련되어 있는 하나의 영혼을 발견하였으며,
또한 부모님이 보여 주신 모범은 내 마음에서 싹트기 시작한
충동을 억눌러 주던 청교도적 규율과 결합되어
이 영혼을 '덕'이라 하는 것에로 이끌어가 버렸다.
자신을 억제하는 것은 남들이 방종하는 것만큼 내게는 자연스러웠고
네가 굴종했던 이 엄한 규율도 혐오감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내 마음을 기쁘게 했다.
나는 행복 그 자체보다도 행복에 이르기에까지의
무한한 노력을 미래에서 찾았으며 이미 행복과 덕을 혼돈하고 있었다.

물론 열 네 살된 소년으로서 막연히 기다리는 상태였다.
그러나 알리싸에 대한 나의 사랑이 단연 그러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게 하였다.
그것은 급작스러운 마음의 계시였는데 그로 인해 나는 나 자신을 의식하게 되었다.

즉 나는 내성적이며 활발치 못하고 늘 기다리고 있는 상태로서
남의 일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과감성도 없이
자신과 싸워 이겨낸다는 외에 다른 승리를
꿈꾸어 보지 못하는 그러한 인간으로 보였다
나는 공부하기를 좋아했으며 장난도 깊이 생각을 하거나
혹은 힘드는 것이 아니면 열중할 수 없었다.
내 나이 또래 아이들과는 별로 사귀지 않았고
같이 어울린다해도 그것은 단지 우정이나 호의로서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이듬해 빠리에 와 내 동급생이 된 아벨 보띠에와는 잘 어울렸다.
그는 상냥한, 만사 태평의 소년으로서
나는 그에 대해 존경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애정을 느꼈다.
적어도 그와 어울리고 있으면 내 마음이 늘 날아가고 있던
르아브르와 퐁궤즈마르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가 내 사촌 누이의 동생이 아니었던들--
게다가 그는 누이들과 별로 닮은 점도 없었다--
나는 그를 만날 생각이 별로 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나는 사랑에 열중해 있었기 때문에
로베르나 아벨에 대한 우정도 어떤 의미를 가질 수가 있었던 것이다.
알리싸는 복음서에 나오는 값진 진주와 같았고
나는 그 진주를 얻기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 버린 사람이었다.
비록 내가 아직 어린애이긴 했지만 지금 그것을 사랑이라 이야기하고
사촌 누이에 대해 느낀 감정을 그렇게 부르는 것은 잘못된 일일까?
그 후 내가 경험한 중에 이보다 더 사랑이라는 이름에 적합하다고 여겨진 것은 없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육체적인 가장 뚜렷한 고민으로
괴로워할 나이가 됐을 때도 내 기질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즉 어렸을 때 내가 그녀에게 적합한 인간이 되려고 했던
그녀를 보다 직접적인 방법으로 내것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공부, 노력, 경건한 행위 등 모든 것을 나는 신비롭게 알리싸에게 바쳤으며
그녀만을 위해 한 일을 그녀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보다 깨끗한 덕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나는 독한 술 같은 겸양에 도취해 있었다.
내 자신의 즐거움이란 별로 염두에 두지도 않고...
아! 나는 어떤 노력이 필요치 않은 일에는 만족 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나만이 이러한 덕행에 대한 경쟁심에 사로잡혀 있었던가?
알리싸는 그러한 내 마음을 눈치 채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고,
단지 그녀를 위해서만 노력을 기울였던 나 때문에,
나를 위해, 특별히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꾸밈없는 그녀의 영혼 속에서는 모든 것이 아주 단순한 아름다움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덕은 너무나도 자유롭고 우아했기 때문에 방임 상태에 있는 것 같았다.

그 앳된 미소로 인해 그녀의 눈길에 깃든 엄숙한 빛도 오히려 매력적이었다.
그녀가 너무나도 부드럽고 다정한,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듯한 시선을 위로 치켜올리는 모습을 나는 지금도 다시 그려본다.
그러고 보면 삼촌이 마음이 괴로울 때면
이 맏딸에게서 조력과 의견을 구하시던 까닭도 이해할 수가 있었다.

그 이듬해 여름 나는 자주 삼촌이 그녀와 이야기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슬픔으로 인해 삼촌은 훨씬 더 늙으셨다.
식사 때도 삼촌은 통 말이 없다가 때때로 갑자기
쾌활한 표정을 애써 지어내곤 하셨는데,

그것은 침묵보다도 더 쓸쓸하게 느껴졌다.
알리싸가 찾으러 갈 때까지 삼촌은 서재에서 담배만 피웠고
알리싸가 빌다시피 해야 겨우 방에서 나왔다.
알리싸는 삼촌을 마치 어린애처럼 정원으로 인도했다.
둘이는 꽃이 만발한 오솔길을 내려가 채소밭 층계 근처,
몇 개의 의자가 놓인 둥그런 갈림길에 가서 앉는 것이었다.

어느 날 석양 무렵,

나는 크고도 붉은 한 그루의 너도밤나무 그늘 밑 잔디밭에 누워 늦도록 책을 읽고 있었다.
꽃이 만발한 그 오솔길과 나 시이에는 월계수 울타리가 있을 뿐이어서
보이지는 않아도 소리는 그대로 들리는 곳인데,
알리싸와 외삼촌의 말소리가 들려 왔다.
아마도 막 로베르 이야기를 하고 난 듯 싶었다.
알리싸가 내 이름을 말하는 소리가 들려,
내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자 삼촌은 큰 소리로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음! 그 애, 그 애는 늘 공부하길 좋아할 거야."

나도 모르게 엿듣게 된 나는 자리를 떠나거나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내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무슨 기척이라도 내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 기침을 할 것인가?
'나 여기 있어요! 이야기 소리가 들려요!'라고 소리를 칠 것인가?
내가 잠자코 있었던 것은 더 들어 보고 싶은 호기심에서가 아니라
어색하고 수줍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둘이는 그냥 내 앞을 지나갔을 뿐이고
나 또한 그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지도 못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천천히 걷고 있었다.
아마도 알리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팔에 바구니를 걸고,
시든 꽃을 따버리기도 하고 자주 끼는 바다 안개 때문에
울타리 밑으로 떨어진 아직 푸릇푸릇한 열매들을 줍기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와 맑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아버지, 펠리씨 고모부는 훌륭한 분이었어요?"

삼촌의  음성은 낮고 희미해서 나는 삼촌의 대답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알리싸는 재차 물었다.
"아주 훌륭하셨어요?"

여전히 희미한 대답이었다.
그러자 알리싸가 다시 물었다.
"제로옴은 총명하죠?"

내가 어떻게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러나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훌륭한 사람이 되리라 생각하세요?"

여기서 삼촌의 음성이 높아졌다.
"여기서 넌 어떤 뜻으로 '훌륭한'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지 먼저 알고 싶다.
겉보기에는 그렇지도 않고,
적어도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으면서도 사실은 아주 훌륭한 사람,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아주 훌륭한 사람이 있는 법이다."

"나도 그런 뜻으로 말한 거에요."라고 알리사가 말했다.
"게다가 또... 어디 벌써부터야 알 수 있겠니?
그 애는 아직 너무 어리니까... 그래 분명히 유망한 애야.
하지만 그것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야..."
"또 무엇이 필요하죠?"
"글쎄, 무엇이라 할까? 신뢰라든가, 조력이라든가, 사랑이라든가...."
"조력이라뇨?"하고 알리싸가 물었다.
"내가 받아 보지 못한 애정이라든가 존경 같은 것 말이다."
삼촌은 쓸쓸하게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는 두 사람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저녁 기도 시간에 나는 본의 아닌 실수를 뉘우치고
사촌 누이에게 고백하리라 작정했다.
이때는 좀 더 캐보려는 호기심도 섞여 있었을 것이다.
그 이튿날 내가 말을 꺼내자마자 그녀는,
"그렇지만 제로옴, 그렇게 엿듣는 건 아주 나쁜 짓이야.
기척을 내든가 자리를 떠나든가 했어야 할 게 아냐?"하고 말했다.

"정말 난 엿들은 게 아냐. 그저 들려왔을 뿐이야,
그리고 그쪽도 그냥 지나가 버렸잖아."
"우리는 천천히 걷고 있었는걸."
"그래, 그렇지만 내게는 들릴락말락할 정도였어.
그리고는 곧 들리지 않게 되었어...
그런데 성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물었을 때 삼촌이 뭐라 대답하셨지?"

"제로옴."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다 듣고 나서 뭘 그래. 내게 한 번 되풀이시키고 싶은 모양이지?"
"아냐, 정말 첫머리밖엔 듣지 못했어.
신뢰와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셨을 때 말이야."
"그리고 나서 또 여러 가지 많은 것이 필요하다고 하셨어."
"그래 뭐라고 대답했어?"

그녀는 갑자기 정색을 하고는,
"인생에 있어서의 도움을 말씀하시길래
네게는 어머니가 계시다고 대답했어."하고 말했다.

"아아 알리싸,
어머니가 언제까지나 나와 함께 계실 수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아...
그리고 그것은 다른 일 아냐...."

그녀는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아버지도 그렇게 대답하셨어."

나는 떨면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내가 장차 어떤 사림이 되든 간에 그것은 모두가 너를 위해서야."
"그렇지만 제로옴, 나도 또한 떠날지 모르잖아?"

나의 영혼은 내 말 속에 들어가 있었다.
"나는 절대 너를 떠나지 않을 테야."

그녀는 어깨를 약간 으슥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혼자서 걸어다닐 만큼 강하지 못해?
하느님께는 혼자 걸어서 도달해야 돼."

"그렇지만 내게 길을 가르쳐 줄 사람은 너야."
"왜 그리스도 외의 다른 인도자를 찾을까...
우리가 서로 가장 가까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우리 둘이 저마다 서로를 잊고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때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래."

나는 말을 가로챘다.
"우리를 결합시켜 주십사고 나는 밤낮으로 기도하고 있어."
"넌 하느님 품안에서 결합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잘 알고 있어.
그것은 둘이서 꼭같이 찬양하는 동일한 것 속에서 서로를 열심히 찾는 거야.
네가 찬양하는 것을 나도 역시 찬양하는 것은
너를 다시 찾아보려는 생각에서인 것 같아."

"너의 찬양은 순수하지가 않구나."
"너무 나를 궁지에 몰아넣지 마.
천국이라도 거기서 내가 널 찾지 못할 것이라면 난 멸시해  버릴 거야."
그녀는 손가락을 하나 입술에 갖다대더니 약간 엄숙한 말투로 말하는 것이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우리들의 대화를 여기에 옮기면서
나는 아이들이 얼마나 애써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가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어린애답지 않아
어색하게 생각도리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변명이라도 할 것인가?
나는 우리의 대화를 좀 더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꾸며 대고 싶지 않다.
우리는 라틴어판 복음서를 구해서 긴 구절들을 외곤 했다.
동생 로베르를 도와 준다는 구실로 알리싸는 나와 함께 라틴어를 배웠다.
그러나 지금 사실 그녀가 따라올 것 같지 않은
공부에는 나도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이것이 때때로 내게 방해가 외었다 할지라도
남들이 생각하듯이 내 정신적인 비약을 저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녀는 어디서나 자유롭게 나보다 앞서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의 마음은 그녀를 따라 방향을 정하는 것이었으며
그 당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던 것,
우리가 '사색이라 부르던 것도 흔히는 좀 더 그럴 듯한 마음의 일치에 대한 하나의 구실,
감정의 가장 ,사랑을 덮는 겉치레에 지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깊이를 알 수 없었던
나의 그러한 감정에 대해 처음에는 염려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차츰 기력이 약해짐에 따라 우리 둘을 어머니로서 포옹해 주고 싶어하셨다.
어머니는 오래 전부터 숙환이었던 심장병의 고통이 차츰 더해 가셨다.
발작이 매우 심하던 어느 날 어머니는 나를 곁으로 부르셨다.

"얘야, 너도 보다시피 나도 이제는 퍽 늙었다."하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언제 갑자기 너를 두고 가버리게 될지...."
숨이 가빠져서 어머니는 말을 끊으셨다.
나는 더 참을 수가 없어 내가 말을 꺼내기를 기다리는 듯한 그 말을 그만 하고 말았다.

"어머니, 아실 테지만 난 알리싸하고 결혼하고 싶었다."
그러자 이러한 내 말이 필경 어머니의 가장 깊은 속마음에 있던 생각과 바로 이어졌음인지

어머니는 곧 이렇게 받으셨다.
"그래, 내가 하려던 이야기가 바로 그거다, 제로옴."
"어머니!"
나는 흐느끼면서 말했다.
"알리싸는 날 사랑하죠?"
"그럼, 얘야."
어머니는 몇 번이나 정답게 '그럼 얘야' 하고 반복하셨다.
어머니는 말씀하시기가 힘든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이어,
"만사를 하느님이 하시는 대로 맡겨 두어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는 곁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내 머리 위에 손을 얹으시고 다시,
"하느님이 너희를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하느님께서 너희를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하시고는 잠속에 빠지셨는데 나는 끼우려고 생각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았다.
그 다음 날은 어머니의 기분도 좀 나으셨다.
나는 또 다시 학교로 되돌아갔고
절반밖에 못한 고백담 같은 이야기는 또 다시 침묵에 싸였다.
뿐만 아니라 그 이상 내가 무엇을 알 수 있었을 것인가?
알리싸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은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설혹 그때까지도 내가 그 점에 대해 다소 의심쩍었다 하더라도
뒤이어 일어난 슬픈 사건을 당하여서는
그러한 의심은 영원히 내 마음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어느 날 저녁 어머니는 미스 아슈뷔르똥과 내가 지켜보는 앞에서

아주 조용히 운명하셨다.
어머니의 생명을 앗아간 마지막 발작은
처음에는 그 이전의 발작에 비해 그다지 심한 것 같지 않았다.
임종에 가까워서야 위험한 증세가 나타났기 때문에 친척들도 달려올 틈이 없었다.

첫날밤은 나는 어머니의 옛 친구 곁에서 이 그리운 이의 주검을 지키면서 새웠다.
나는 어머니를 생전에 깊이 사랑했다.
그러나 눈물이 흘러내리는데도 마음속은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데 놀랐다.
내가 눈물을 흘린 것은 자기보다. 훨씬 나이가 적은 친구가
이렇게 자기보다 앞서 하느님 곁으로 가는 것을 보고 있는
미스 아슈뷔르똥이 측은히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가심으로써 사촌 누이가 보다 속히
내게 가까이 오리라는 숨은 생각이 나의 슬픔을 억누르고 있었다.

다음날 삼촌이 오셨다.
삼촌은 당신 딸의 편지를 내게 전하셨는데,
그녀는 그 다음날 쁠랑띠에 이모와 같이 왔다.
...제로옴, 나의 벗, 나의 동생, 기다리고 계시던 큰 만족을 드릴 수 있었을
몇 마디 말을 돌아가시기 전에 드리지 못한 것이 얼마나 마음 아픈지 몰라.
이제는 어머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앞으로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길 빌 뿐이야.
그럼 안녕히, 내 가엾은 벗! 어느 때보다도 더욱 다정한 너의 알리싸.

이 편지는 무엇을 뜻하는 것이었을까?
여쭈어 드리지 못해 마음 아프다는 그 몇 마디 말이란
바로 우리 두 사람의 앞날을 기약하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러나 나는 아직 너무도 어렸기 때문에 대번 구혼을 하지 못했다.
그 외에 그녀와 무슨 약속이 필요했던가?
우리는 이미 약혼한 사이나 다름없지 않았던가?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삼촌도 거기에 아무런 이의가 없었다.
오히려 삼촌은 벌써부터 나를 자식처럼 대해주고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에 시작된 부활절 방학을 나는 르아브르에서 지냈다.
묵기는 쁠랑띠에 이모 댁에서 묵었지만
식사는 거의 뷔꼴랭 삼촌 댁에서 했다.
펠리씨 쁠랑띠에 이모는 더할나위 없이 훌륭한 부인이었지만
내 사촌 누이들과 나는 그리 친숙하게 지내지 못했다.
늘 숨이 턱에 닿을 정도로 분주했다.
태도나 음성이 다같이 거칠었다.
아무 때나 우리들이 귀여워 죽겠다는 듯 귀찮을 정도로 애무를 하는 것이었다.
뷔꼴랭 삼촌도 이모를 퍽 좋아했지만
이모와 이야기하는 목소리만으로도
얼마나 어머니를 더 좋아했던가 넉넉히 짐작할 수가 있었다.

"얘야."
어느날 저녁 이모가 말했다.
"네가 올 여름엔 뭘 할 작정인지 모르지만
내 할 일을 결정하기 전에 네  계획부터 좀 알았으면 좋겠다.
혹 네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아직 별로 생각해 보지 못했어요."하고 나는 대답했다.
"여행이나 해볼까 생각합니다."

이모가 말을 이었다.
"알겠지만 퐁궤즈마르와 마찬가지로
우리 집에서도 애가 오는  것은 언제든지 환영이다.
하긴 거기에 가면 삼촌이랑 줄리에뜨가 반가와하겠지만...."
"알리싸 말씀이죠?"
"참 그렇구나! 미안하다.
네가 좋아하는 건 줄리에뜨라고 생각했구나!
네 삼촌이 이야기해 주기 전까지는...
그게 아직 한 달도 채 못됐다...
알다시피 난 너희를 퍽 사랑하지만 잘 알지는 못하는구나.
너희들을 만나볼 기회가 별로 없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난 또 살피는 성격이 못돼서 나와 관계 없는 일은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너는 노상 줄리에뜨하고만 놀길래...
난 생각하길...

그 애는 참 예쁘고 활달하니까."
"네, 저는 여전히 그 애하고 잘 놀아요.
하지만 제가 사랑하는 건 알리싸입니다."

"옳아! 옳아, 그야 다 너 좋을 대로가 아니냐.
난 말하자면 그 내를 전혀 모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그 애야 어디 그렇게 말이 있니?
어쨌든 네가 그 애를 택했을 때야 무슨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하지만 이모님, 저는 알리싸를 골라서 사랑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또 이유 같은 것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화낼 건 없다. 제로옴. 악의로 한 말은 아니니까...
네 말을 듣다 보니 무슨 말을 하려했는지 깜빡 잊었구나...
옳지 옳지! 그러니 결국 만사는 혼인을 해야 끝장이 나는 건데,
네 복장 때문에  벌써 청혼을 할 수야 없지 않니? 예법상 말이다.
게다가 넌 또 아직 어리고...
그래 내 생각으로는 어머니와 함께도 아니고 하니
네가 퐁궤즈마르에  가는 것도 좀 쑥스러워 보일지 모르고...."

"글쎄, 제가 여행 이야길 꺼낸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래, 그러니 말이다. 내가 있으면 만사가 순조로울 것 같아서
이번 여름 한 달 동안만은 여유를 두었단다."
"제가 말만 하면 미스 아슈뷔르똥이 와줄 텐데요."
"그녀가 와 주리라는 건 나도 알고 있다.
하나 그것만으론 충분치가 못해! 나도 함께 가지.
아니, 내가 가엾은 어머니 구실을 대신 하겠다는 건 아니다."

이모는 갑자기 흐느끼면서 말했다.
"단지 집안 일을 돌볼 작정이다...
그러면 너나 삼촌이나 알리싸가 어색해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

펠리씨 이모는 자신이 우리와 함께 있는 일의 효과를 착각하고 있었다.
사실 우리는 단지 이모 때문에 거북살스러웠다.
예정대로 이모는 7월부터 퐁궤즈마르에 와 있었고
미스 아슈뷔르똥과 나도 곧 따라왔다.
알리싸의 집안 일을 거들어 준다는 구실로
그처럼 조용하던 이 집안을 늘 시끄럽게 했다.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려고 또 이모 말을 빌면
'만사를 수월하게'하기 위해 서두르는 폼이 너무도 심해서
알리싸와 나는 이모 앞에서 늘 어색한 채 반벙어리가 되는 것이었다.

이모는 우리가 퍽 쌀쌀하다고 생각했을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인가?
반대로 줄리에뜨의 성격은 호들갑스런 이모의 성격과 잘 어울렸다.
그리고 이모가 작은 조카딸을 유별나게 귀여워하는 것을 보는 데서 오는
어떤 반감이 이모에 대한 애정을 줄게 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아침 우편물을 받고 나서 이모는 나를 불렀다.
"제로옴, 정말 딱하게 됐다.
내 딸아이가 앓는다고 나를 부르니 아무래도 널 두고 떠나야할까 보다...."

부질없는 걱정에 사로 잡혀 나는 삼촌을 보러 갔다.
이모가 떠난 후에도 그대로 퐁궤즈마르에 머무를 것인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서두를 꺼내자마자 삼촌은,
"자연스러운 일들을 누이는 왜 또 복잡하게 생각할까?
그래 넌 무엇 때문에 우리 곁을 떠나겠다는 거냐, 제로옴?"하고 소리쳤다.
"너는 이제 내 자식이 아니냐?"

이모는 단지 두 주일을 퐁궤즈마르에 머물렀을 뿐이다.
이모가 떠나자 집은 다시 잠잠해졌다.
내 복장은 우리의 사랑을 흐리게 하기는커녕 더욱 깊게 했다.
단조로운 나날이 시작되었다.
거기에서는 마치 메아리치는 곳처럼 우리 마음의 작은 움직임도 들려 오는 것이었다.

 

이모가 따난 며칠 후인 어느 날 저녁
우리는 식탁에 앉아 이모 이야기를 했다.
지금도 그것이 생각난다.
"왜 그렇게 법석이람!"하고 우린 말했다.
"인생의 파도는 그다지도 그의 영혼에 휴식을 줄 수 없는 것일까?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이여, 그의 그림자는 여기서 무엇이 되었는가?"
...라고 한 건 괴에테가 슈타인 부인을 두고
'이 영혼 속에 세계가 비치는 것은 보기에도 아름다우리라'고
쓴 말이 생각았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대번 무슨 등급 같은 것을 정하고
가장 으뜸가는 등급은 명상의 능력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때까지 잠자코 계시던 삼촌이 쓸쓸히 웃으면서 이야기를 이으셨다.
"얘들아, 비록 부서져 있다 하더라도 하느님은 당신의 모습은 알아 보신단다.
사람의 생애 중에 어느 한 시기만을 가지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피하자.
너희들이 싫어하는 모든 점은 더 여러 가지 사건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고,
그런 사건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너희들처럼 가혹하게 그를 비난할 수가 없다.
젊은 시절에 남들이 좋아하는 성격도 늙어 갈수록 타락되는 거란다.
지금 너희들이 분주하다고 부르는 펠리씨 이모의 성격도
처음에는 생기 발랄하여 귀엽고 생각나는 대로 해버린다든가
소탈하다든가 애교가 있다든가 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우리도 지금의 너희들과 비슷하다.
나는 너와 퍽 비슷했었다. 제로옴,
아마 지금 생각하기보다도 훨씬 더 비슷했었을 거야.
펠리씨는 또 지금의 줄리에뜨와 아주 비슷했다... 그래, 몸맵시까지도...."


그리고 문득 삼촌은 그 딸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네 목소리를 들으면 펠리씨 목소리를 듣는 것 같다.
미소지을 때도 너와 같았다.
그리고 이건 얼마 안 가서 없어졌지만
가끔 아무것도 안하고 의자에 앉아서 팔꿈치를 짚고
깍지 낀 두 손을 이마에다 갖다대곤 가만히 있곤 했었다."
미스 아슈뷔르똥은 나를 돌아보고 속삭이듯이 말했다.
"네 어머니 모습을 지닌 것은 알리싸다."

그해 여름은 찬란했다.
만물에 푸른 하늘이 스며든 것 같았다.
우리의 열정은 불행도 죽음도 극복하고 있었다.
어둠은 우리 앞에서 물러났다.
아침마다 나는 기쁨으로 잠을 깼다.
동틀 무렵이면 일어나서 해를 맞으러 달려가곤 했다
... 지금도 그때를 회상해 보면 이슬로 함빡 젖은 시절이었다.
늦도록 자지 않는 습관이 있었던 알리싸에 비해
아침 일찍 일어나는 줄리에뜨는 나와 함께 정원으로 내려가곤 했다.
자기 언니와 나 사이에서 그녀는 심부름꾼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는 끊임없이 그녀에게 우리의 사랑을 이야기했고
그녀도 내 이야기에 싫증을 내는 것 같지 않았다.
알리싸 앞에서는 너무나 격정적인 사랑으로 인한 조심과 압박감 때문에
감히 하지 못하던 이야기도 줄리에뜨에게는 털어놓았다.
알리싸도 나의 이런 장난을 눈치챈 것 같았다.
우리가 자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는지
혹은 모르는 척한 것인지, 자기 동생 앞에서 내가
아주  쾌활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도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았다.

아! 사랑의, 벅찬 사랑의 가장된 미묘함이여!
어떤 비밀의 길을 거쳐 그대는 우리를 웃음에서 눈물로,
가장 천진한 기쁨에서 덕행의 요구로 이끌어 가는가!

그 여름은 너무도 맑게, 너무도 매끄럽게 가버렸기 때문에
나는 그 가버린 날들에 대해 이제 아무런 기억도 남은 것이 없다.
그 무렵에 있었던 일이란 단지 이야기와 독서 뿐....

"슬픈 꿈을 꾸었어."
방학이 끝날 무렵의 어느 날 아침 알리싸가 내게 말했다.

"난 살아 있었는데 넌 죽어있었어.
아니, 네가 죽는 걸 본 건 아니고 단지 네가 죽어 버렸다는 거야. 정말 무서웠어.
그건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일이어서 네가 잠시 어디 가고 없을 따름이라고 마음 먹었어.
우리가 떨어져 있기는 했지만 꼭 다시 만날 길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
어떻게 하면 되나 하고 안간힘을 쓰다가 잠이 깼어."

"아침에도 꿈속에 있는 것 같았어.
꼭 그 꿈을 계속하는 것 같았어.
여전히 너와 떨어져 있는 것 같았고, 앞으로도 오래오래..."
하고는 낮은 소리로 덧붙였다.

"일생 동안 떨어져 있게 될 것 같았어.
그리고 일생 동안 몹시 애를 써야 될 것 같았어...."
"어째서?"
"저마다 서로를 만나기 위해 몹시 애써야만 할 것 같았어."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정색해서 받아들이지 않았거나
혹은 정색해서 받아들이기가 두려웠다.
나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그녀에게 반박이나 하려는 듯이
갑자기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난 오늘 아침 어찌나 너와 결혼하려고 했던지,
죽음 밖에는 아무것도 우리를 떼어 놓지 못하리라는 꿈을 꾸었어."
"너는 죽음이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하고 그녀는 말을 받았다.

"말하자면...."
"나는 오히려 죽음이 접근시켜 줄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그래 생전에 떨어져 있던 것을 접근시켜 줄 거야."
이 이야기는 모두가 골수에까지 사무쳐 지금도 그 말의 억양까지 들리는 둣하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지닌 중대한 뜻을 훨씬 후에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여름은 사라져 가고 있었다.
벌써 들판은 대부분 텅 비어 있었고
시야는 더욱 허전하게 넓어졌다.
내가 떠나기 전날, 아니 그 전전날 
줄리에뜨와 같이 나는 아래 정원 숲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어제 저녁 알리싸에게 암송해 준 게 뭐지?" 줄리에뜨가 물었다.
"언제 말야?"
"그 폐광 벤치에서 말이야. 둘이만 남겨놓고 우리가 먼저 와버렸을 때...."
"아아, 보드레르의 시 구절이었을 거야...."
"어느 거지? 내게는 말해 주고 싶지 않아?"
이윽고 우리는 차가운 어둠 속에 잠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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