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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26장 즐거운 인생 [5]

오늘의 쉼터 2015. 1. 9. 13:30

<273> 26장 즐거운 인생 [5]

 

 

(542) 26장 즐거운인생 <9>

 

 

 

 

“방에서 계속 혼자 있었단 말이지?”

다음날 오전, 동성유통의 사장실에서 전성남이 물었다.

이맛살이 찌푸려져 있다.

전성남은 50세, 둥근 얼굴에 건장한 체격이다.

머리가 벗어지기 시작해서 이마가 넓었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호남이다.

전성남이 앞에 앉은 허재영을 보았다.

상사에 있던 허재영을 유통 사장실로 불러낸 것이다.

유통 건물도 양재동에 위치하고 있어서 차로 5분 거리다.

머리를 든 허재영이 대답했다.

“예, 회장실에서 아무도 부르지 않고 수행비서 시켜서 이곳저곳에 연락을 하는 것 같더니

7시쯤 혼자 나갔습니다.”

“박 사장도 부르지 않고?”

“예, 부를까 봐 회의도 취소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하긴 나한테도 연락을 안 했으니까.”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린 전성남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마 정치인들하고 연락했겠지, 회사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어디 있어?”

“예, 하긴….”

“그런데 이번에 너희들 상사에서
이사 진급은 다섯으로 늘릴 테니까 네가 두 명쯤 더 알아봐.”

“그건 염려하지 마십시오.”

어깨를 편 허재영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정기 인사가 한 달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동성상사는 동성그룹의 모(母)회사지만 유통 사장 전성남은 이사 진급 심의위원장인 것이다.

심의위원은 각 계열사 사장 6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전성남이 조사팀까지 지휘하고 있어서

독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허재영이 목소리를 낮췄다.

“제가 두 명 골라서 각각 3억씩 걷겠습니다.”

“잘 하겠지만 증거를 남기지 마라.”

“제가 어디 한두 번 합니까?”

“너, 혹시 가운데서 빼가는 건 아니지?”

“그럼 제가 천벌을 받습니다.”

“천벌이 어디 있어, 인마.”

“속일 사람이 없어서 제가 매형을 속입니까?”

“너, 나 팔고 다니지 마.”

“아니, 무슨 말씀입니까?”

눈을 치켜뜬 허재영이 전성남을 쏘아보았다. 얼굴까지 굳어져 있다.

“누가 그럽니까? 우리 사이는 아무도 모릅니다.

여기 비서실에서도 10분이나 기다렸다가 들어왔단 말입니다.”

“인마, 그건 눈치채게 하지 않으려고 내가 그런 거야.”

쓴웃음을 지은 전성남이 다시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그 양반이 도대체 어디 간 거야? 나한테는 꼭 연락을 하던 양반이.”

“여자 만났을지도 모르지요.”

“하긴.”

전성남이 소파에 등을 붙였다.

“그 양반이 좀 밝히지.”

“신의주 장관으로 오래 갈 것 같은데 동성
경영에는 손을 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곧 그렇게 될 거다.”

 

“그럼 매형이 회장이 되셔야죠.”

“야, 시끄러.”

얼굴을 굳힌 전성남이 허재영을 노려보았다.

“미래를 생각하고 행동을 조심하란 말이다.

이번 이사 진급 건은 실수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 돼.”

“절대로 말 새나갈 이유가 없습니다.”

머리까지 저은 허재영이 말을 이었다.

“제가 녹음장치까지 확인하고 접촉합니다.

그리고 그들도 걸리면 공멸하는 걸 아니까 저보다도 더 조심한다고요.”

그리고 현금도 국내 계좌로 받지 않는 것이다.

해외 계좌다.

 

 

 

 

 

 

 

(543) 26장 즐거운인생 <10>

 

 

동성제과는 연간 매출액이 300억 규모로 동성의 37개 계열사 중 매출 실적으로는 최하위다.

사장은 김창국, 52세로 서동수가 동양전자에서 영업팀장을 할 때 하청공장 공장장을 했던 인연이 있다. 그러다 공장이 부도가 나자 서동수를 찾아왔는데 그것이 10년 전이다.

김창국은 의류 관리부에서부터 시작했다가 3년 전에 동성제과를 맡았다.

그런데 회사가 충남 천안에 있어서 본사가 위치한 서울 왕래가 드물었다.

오후 4시, 천안시 외곽 국도변의 식당 안으로 들어선 김창국이 안쪽 테이블에 앉아 있는

서동수를 향해 허리를 꺾어 절을 했다.

식당은 텅 비어서 손님은 그들 둘뿐이다.

미리 이야기를 해놓아서 김창국이 들어섰어도 종업원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선 서동수가 웃음 띤 얼굴로 김창국을 맞았다.

서동수가 이곳으로 불러낸 것이다.

누구한테도 알리지 말고 직접 차를 몰고 오라고 했기 때문에 김창국은 잔뜩 긴장하고 있다.

마주 보고 앉았을 때 서동수가 김창국 앞에 생수병을 내려놓으면서 물었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림이 더 잘 보인다고 하죠. 어떻습니까?”

“뭐가 말씀입니까?”

서동수 앞에서는 팀장과 공장장 관계였을 때도 긴장했던 김창국이다.

조심스레 묻고 나서 김창국은 기다렸다.

신중한 성격이다.

서동수가 차분해진 표정으로 김창국을 보았다.

“동성 말입니다.

사장단 문제, 경영관계, 회사 분위기, 경영진 소문, 인사 문제까지 여기선 어떻게 보입니까?”

김창국이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렸지만 시선은 떼지 않았다.

 37개 계열사 사장 중에서 야간대 출신은 김창국뿐이다.

고등학교도 검정고시로 졸업했다.

전자부품 공장경력 23년, 18살부터 근무해서 17년 만에 공장장이 되었지만 5년 후에 부도가 났다.

그러고 나서 1년간 공사장 잡부로 일하다 동성에 온 지 10년이다.

 

서동수는 잠자코 기다렸다.

머리가 반백인 김창국이 두 눈을 깜박이지도 않고 서동수를 응시하고 있다.

검은 피부, 이마의 주름살이 깊다.

영등포의 33평짜리 아파트에 12년째 살고 있는데 큰딸은 경찰 시험에 합격해서 여순경이 되어 있고

둘째 딸은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다.

그때 김창국이 말했다.

“동성 주가가 지금은 계속 오르지만 장관께서 회사로 돌아오시면 곤두박질을 칠 것 같습니다.”

그것은 증권가에서 진작부터 나온 이야기다.

지금은 너무 자주, 오래 들은 터라 모두 면역이 되어 있다.

다시 김창국이 말을 이었다.

“주인이 없는 회사는 방만해지기 마련입니다. 동성에는 지금 주인이 없지 않습니까?”

한 모금 물병의 물을 삼킨 김창국이 물끄러미 서동수를 보았다.

“제 회사가 아닌데 제 회사처럼 아끼고 아랫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이기를 바라는 것이 욕심이겠지요.”

“…….”

“배가 부르면 게을러집니다.

게을러지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앞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옆을, 뒤를 봅니다.”

“…….”

“2년쯤 전부터 동성이 게을러졌습니다.

지금 매출이 늘어나는 것은 거품입니다.

어느 한순간에 꺼질 수가 있습니다.”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러고 보면 서동수 자신도 배가 부르고 게을러져 있는 것이다.

배가 고플 때는 앞만 보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방법이 솟아났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서동수의 어금니가 저절로 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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