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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 26장 즐거운 인생 [6]

오늘의 쉼터 2015. 1. 17. 14:40

<274> 26장 즐거운 인생 [6]

 

 

(544) 26장 즐거운인생 <11>

 

 

 

그날 밤, 서동수는 고교 동창 강정만과 둘이 서울 방배동의 한식당 방 안에 마주 앉아 있다.

온돌방에 놓인 상 위에는 한정식 요리가 가득 차려졌는데 찜과 전, 무침에다 젓갈은 네 종류나 된다.

술은 주전자에 담긴 소주다.

오후 8시 반, 지금은 독립해서 건설회사 사장이 되어 있는 강정만이 문득 물었다.

“야, 미혜가 몇 살이지?”

“스무 살.”

“다 컸네.”

술잔을 든 서동수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미혜는 이제 대학 2학년으로 장학금을 받는다.

아버지가 신의주 장관이라고 장학금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때 강정만이 다시 물었다.

“장치하고
결혼할 거냐?”

“아니.”

서동수가 저절로 뱉어낸 제 말을 제 귀로 듣고 방긋 웃었다.

그러나 강정만은 얼굴이 굳어졌다.

장치와 결혼할 것이라고 세계만방에 보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안 해? 내가 엊그제에도 신문 보도를 본 것 같은데? 너희 둘이 결혼한다고.”

“안 해.”

“왜?”

“이 정도면 목적은 달성했으니까 결혼은 필요 없어. 지금처럼 가끔 만나서 회포를 풀어도 돼.”

“목적이 뭐였는데?”

“한·중 연합이지.”

“나는 도무지…….”

그것으로 강정만이 말을 그쳤지만 장치의 남자관계를 언급할 생각은 없다.

배신감도 느껴지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장치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여자의 불륜에 대한 책임의 절반은 남자에게 있는 것이다.

그때 서동수가 강정만을 노려보았다.

“야 인마, VIP 접대가 이 따위냐?”

“가만.”

이맛살을 찌푸린 강정만이 손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알아? 야, 아무나 데려올 수가 있느냐고?”

“그 자식, 생색은.”

“10분만 기다려 봐.”

“도대체 누굴 부른 거야?”

“기다려.”

술잔을 든 강정만이 입을 다물었다.

이 식당은 강정만의 단골집인 것이다.

그러나 강정만은 파트너를 다른 곳에서 불렀다고 했다.

“소문이 나면 어때? 내가 여자 밝힌다는 건 세상 사람들이 다 안다.

공짜로 연애하는 놈들이 겁내지, 난 안 그래.”

그때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으므로 서동수가 입을 다물었다.

곧 문이 열리더니 여자들이 들어섰다.

“아이고, 어서 와.”

반색을 한 강정만이 벌떡 일어났다.

“안녕하셨어요?”

앞장선 여자가 강정만과 서동수 사이에 대고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아, 예.”

엉거주춤 일어선 서동수가 인사를 받으면서 낯익은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쯤으로 미인이다.

뒤쪽 여자는 웃고만 있다. TV에서 보았나?

“자, 앉자고.”

강정만이 자리를 권했더니 낯익은 여자가 옆에 앉는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서동수의 옆에는 뒤쪽 여자가 앉았다.

누구일까? 서동수가 앞에 앉은 강정만의 파트너를 보면서 생각했다.

어디서 만난 여자일까? 하도 많이 겪어서 전에는 가끔 실수를 했다.

같이 잔 여자한테 모르고 작업을 건 적도 있었던 것이다.

 

 

 

(545) 26장 즐거운인생 <12>

 

 

“저 모르시죠?”

앞에 앉은 여자가 불쑥 묻는 바람에 서동수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숨을 들이켠 서동수는 어설픈 대답은 하지 않기로 작심했다. 솔직해지자.

“미안합니다. 낯은 익은데 기억이 안 나네요.”

“21년 만에 뵌 건데요. 장관께서 동양전자에 다니셨을 때.”

여자가 생글거리며 말했다.

불빛에 얼굴이 비치자 연륜이 드러났다.

21년이란 선입견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때 20대 중반이었다고 해도 지금은 40대 중반이다.

그런데 얼핏 보면 30대 같다.

그때 강정만이 벙글거리며 거들었다.

“기억력은 깡통이군. 네가 김 여사 때문에 나하고 반년쯤 절교했잖아?”

“아.”

그 순간 탄성을 뱉은 서동수가 여자를 보았다.

기억이 난 것이다.

21년 전 같은 영어회화 고급반에 다녔던 여자. 외국계 투자회사에 다닌다고 했던가?

그때 강정만과 이 여자의 마음을 얻으려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러나 여자는 결국 강정만의 애인이 되었다.

“흐흐흐.”

저절로 서동수의 입에서 웃음이 터졌다.

“이 자식, 이런 식으로 나한테 자존심을 세우는군. 좋다, 졌다.”

그러자 강정만이 손을 저으면서 웃었다.

“아냐. 믿을 만한 여자를 고르다 보니까 김선실 씨가 생각난 거야. 나도 그때 보고 처음이다.”

“그건 됐고.”

서동수가 웃음 띤 얼굴로 옆에 앉은 여자를 보았다.

따라서 웃고 있던 여자가 서동수의 시선을 받더니 말했다.

“전 아녜요.”

“뭐가 말입니까?”

“전에 알던 사람이 아니라고요.”

“누가 뭐랍니까?”

서동수는 어깨가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강정만과 만나기 직전까지 동성의 미래를 심각하게 의논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분 전환하려고 강정만을 불러낸 보람이 있다.

그때 김선실이 말했다.

“제 친구예요. 인사해라.”

“유수경이라고 합니다.”

여자가 앉은 채로 머리를 숙였는데 귀가 빨개졌다.

서동수가 홀린 듯이 여자를 보았다.

이제 제대로 얼굴이 보인다.

갸름한 얼굴형에 부드러운 눈빛, 입술은 다물어졌지만 웃음을 머금고 있다.

재킷의 벌어진 사이로 가슴골 끝 부분이 보였다.

“수경이는 혼자 사니까 장관님은 걱정하실 것 없어요.”

김선실이 말을 이었다.

“장관님 이야기를 했더니 바로 나오겠다는군요. 하긴 안 나올 여자가 없지.”

“어이, 그만하셔.”

강정만이 김선실의 말을 막았다.

“이제 우리 둘이 오랜만에 회포를 풀자고. 옛날보다 더 아름다워졌어.”

하면서 강정만이 바짝 다가앉았으므로 김선실이 눈을 흘겼다.

“누가 강정만 씨 때문에 온 줄 알아요? 서 장관님 보려고 온 거지.”


“그걸 내가 모르나?”

강정만도 눈을 치켜떴다.

“떡 본 김에 제사를 지내자는 거지.”

쓴웃음을 지은 서동수가 유수경을 보았다.

 

따라 웃던 유수경이 서동수의 시선을 받더니 물었다.

“전에 선실이 좋아하셨어요?”

“좋아했죠. 그러다 저놈한테 빼앗겼지.”

이제는 서동수의 머릿속에 지난 일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당시에는 가슴이 미어졌다.

 

김선실이 강정만을 선택했다는 것을 알고 난 순간 절망했다.

 

그런데 지금은 도저히 그렇게 될 것 같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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