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 26장 즐거운 인생 [4]
(540) 26장 즐거운인생 <7>
그때 심호흡을 하고 난 최성갑이 정색하고 말했다.
서동수는 최성갑의 뒤에 서 있다.
“제가 지금 회장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네?”
여직원의 인형 같은 얼굴이 찌푸려졌다.
아마 모시러 왔다고 들은 것 같다.
그때 옆쪽 문이 열리면서 남자 직원 둘이 나왔다.
그쪽은 비서실이다.
“무슨 일로 그러시죠?”
다가온 직원 하나가 조금 긴장된 표정으로 물었는데 아마 여직원이 호출 버튼을 누른 것 같다.
마침내 최성갑이 조금 큰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지금 회장님을 모시고 왔단 말이오. 이 사람들이 정말.”
그때 뒤쪽 사원 하나가 서동수를 보더니 입을 딱 벌렸다.
마침 서동수는 선글라스를 벗어 든 참이었다.
이 사원은 서동수를 알아본 것이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서동수가 회장실에 들어서자
곧 본사 사장 박윤호가 서둘러 따라 들어왔다.
50대 초반의 박윤호는 전문경영인으로 대기업인 대진상사 사장 출신이다.
“회장님, 오신다고 말씀해 주셨으면 그런 결례가 없었을 텐데요.”
당황한 박윤호가 두 손을 모으고 서서 말했다.
안내 데스크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쓴웃음을 지은 서동수가 잠자코 박윤호를 보았다.
박윤호는 동성에 채용된 지 1년도 되지 않는다.
창립멤버가 아닌 것이다.
창립멤버 대부분은 계열사 사장이 되어 있다.
서동수가 박윤호로부터 현황 브리핑을 듣고 났을 때는 세 시간쯤이 지난 후였다.
방 안에 혼자 남았을 때 최성갑이 들어와 앞쪽 탁자에 프린트된 서류를 내려놓았다.
“유 실장한테서 온 보고서입니다.”
서류를 집어 든 서동수에게 최성갑이 말을 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보신 상무는 인사담당 중역인 허재영 상무입니다.”
서동수가 서류를 펼쳤다. 허재영은 45세, 인사담당 상무가 된 지 6개월쯤 되었다.
입사 경력은 1년 반인데 유진건설의 총무이사를 지내다가 동성상사 총무부 이사로 채용된 것이다.
그때 최성갑의 목소리가 울렸다.
“서류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유 실장이 회장님께 구두로 보고하라고 전했습니다.”
“….”
“허재영 상무는 전성남 사장의 처남이라고 합니다.”
“….”
“회사에는 비밀로 했지만 소문이 퍼진 것 같습니다.
허재영 상무가 위세를 부리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죠.”
서동수는 머리를 끄덕였다.
전성남은 계열사인 동성유통의 사장이다.
동성유통은 전 세계에 뻗친 동성그룹 유통 사업을 총괄하는 핵심 회사인 것이다.
그때 최성갑이 손에 들고 있던 서류 한 장을 서동수 앞에 내려놓았다.
“여기 전 사장의 인맥이 있습니다.”
최성갑이 유병선으로부터 직접 받아 놓은 것 같다.
서동수가 서류에 적힌 내용을 보고는 다시 호흡을 골랐다.
전성남의 인맥이 적혀 있는 것이다.
동성상사는 물론이고 해외 법인에도 대여섯 명씩이나 중역급으로 박혀 있다.
동성유통 본사에는 중역급만 3명, 부장급은 6명이며 대리급 이상은 20여 명이나 된다.
모두 친인척, 그야말로 사돈의 8촌까지 포함되었으며 친구의 동생과 처제, 학교 은사의 딸까지 있다.
전체로는 200여 명, 중역급이 17명, 부장급은 36명이다.
이윽고 머리를 든 서동수가 웃음 띤 얼굴로 최성갑을 보았다.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최성갑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전성남은 창립멤버 중 하나인 것이다.
(541) 26장 즐거운인생 <8>
그날 밤,
서동수는 양재동의 한정식 식당 방 안에서 조기택과 둘이 마주 앉아 있다.
조기택은 저녁 무렵에 한국에 도착한 것이다.
상에는 서동수가 좋아하는 한정식 요리가 가득 놓였지만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주전자에 담은 소주만 두 주전자째를 마시는 중이다.
술잔을 든 서동수가 붉어진 얼굴로 조기택을 보았다.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그런 식으로 회사를 배신한 셈이니까.”
“아닙니다.”
얼굴을 굳힌 조기택이 서동수를 보았다.
“회장님께선 동양을 나오실 때 배신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건 제가 압니다.”
서동수는 초점이 먼 시선으로 조기택을 보았다.
그렇게 볼 수도 있다.
도태되기 전의 몸부림이었다.
절박했다.
그때 조기택이 말을 이었다.
“전성남 씨는 회장님께서 동성을 창립하신 지 2년 후에 전문관리직으로 영입하셨습니다.
전성남 씨는 그 당시에 대호상사 관리부장으로 재직하다가 사표를 낸 지 3개월이 되었지요.”
전성남을 소개해준 사람은 고등학교 선배인 임준호다.
전성남은 임준호의 친척이 된다고 했다.
행정고시에 패스해서 상공자원부 공무원이었던 임준호는 고등학교 6년 선배로
가끔 부탁을 들어주었던 관계였다.
조기택이 서동수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전성남 씨가 대호상사를 그만둔 것도 인사에 부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사에서는 그 증거를 갖고서도 전성남 씨가 자진 퇴사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지요.”
“…….”
“왜냐하면 전성남 씨가 회사의 약점을 폭로한다면서 협박했기 때문입니다.”
머리를 든 서동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조기택은 신의주 행정청의 감찰비서관이다.
서동수로부터 내막을 들은 지 다섯 시간 만에 전성남의 15년 전의 비밀을 추적해낸 것이다.
“하지만 전 사장은 입사 후에 동성의 뼈대를 굳히는 데 일조를 했어요.”
“그러면서 재산을 엄청나게 축적했더군요.
처자식 명의로 분산시켜놓은 부동산이 700억 원대가 됩니다.”
조기택이 손에 든 서류를 보았다.
“요즘은 몇 시간이면 추적이 됩니다. 실명제인 데다 컴퓨터 조회가 되니까요.”
놀란 서동수가 숨을 들이켰다. 자신보다 부동산이 많은 것이다.
서동수의 재산은 대부분 주식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머리를 든 조기택이 서동수를 보았다.
“이런 말씀 드리기 거북하지만 회장님께선 암세포를 키우고 계셨습니다.
바로 수술해서 암을 제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서동수는 다시 잔을 들어 술을 삼켰다.
화가 나지는 않는다.
처음 유병선한테서 전성남의 인맥을 들었을 때는 놀랐지만 그럴 만한 인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조직관리 능력이 뛰어난 위인인 것이다.
이윽고 잔을 내려놓은 서동수가 조기택을 보았다.
“다행히도 난 약점이 없어요. 전성남이 협상을 할 수가 없을 거요.”
“어떤 방법으로 처리하시겠습니까?”
조기택이 조심스럽게 묻자 서동수가 긴 숨을 뱉고 대답했다.
“준비를 철저히 해놓고 공개적으로 처리합시다. 회사 결산 자료가 다 노출되어도 돼요.”
“예, 회장님.”
조기택은 아까부터 회장님이라고 부른다.
지금 동성그룹 회장과 만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는 것 같다.
조기택이 서동수의 시선을 받고는 머리를 끄덕였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갑니다. 동성을 모두 공개하겠다는 생각이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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