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난봉기 3
진국은 쉬이 잠이 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무엇보다 봉수 일이 걱정이었다.
봉수는 지금 중국 진출을 위한 속옷 디자인에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일주일 뒤 중국으로 출발할 때 30여 가지의 샘플을 들고 나가기로 되어 있었다.
상해에 있는 백화점 관계자들과 미팅이 약속되어 있었던 것이다.
총판을 내기 전에 인지도를 올리자는 계획에 의해 마련된 자리였다.
그게 문제가 될 경우 올해 안에 총판 스무 개를 낸다는 것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었다.
봉수가 자취집에서 국전 준비를 한다지만 실은 송화를 모델로 속옷 디자인에
몰두하고 있다는 걸 진국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오빠!”
수영이 침대에서 슬그머니 내려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곤 진국이 누워 있는 소파 쪽으로 다가와 귀엣말을 했다.
“안 잤어?”
진국도 소리 죽여 말했다.
수영이 진국의 몸 위로 올라왔다.
“잠이 안 와. 나 좀 재워 줘.”
“어떻게?”
수영이 진국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송화 깨겠어.”
“잰 한번 자면 옆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몰라.”
수영이의 손이 진국의 반바지 속으로 불쑥 들어왔다.
수영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터라 진국은 약간 당황했다.
수영이의 손이 뜨거웠다.
“내가 왜 이러는지 잘 모르겠어.
실은 생리 전후만 되면 몸이 막 뜨거워지거든.
대학 들어오기 전까진 몰랐는데 난 타고난 색년가봐.”
“어린 놈이 못하는 소리가 없어.”
“치, 오빠도 좋잖아. 난 내숭 떠는 거 딱 질색이야.”
“애인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수영이의 손이 바지 속에 있는 진국의 물건을 쓰다듬었다.
진국의 물건이 우람차게 발기했다.
“걔도 미국에 따로 애인 있어.
나나 걔나 서로 사생활 침범 안 하기로 했거든.
뭐 오빠도 나랑 즐기면 좋잖아.”
수영이의 말대로 나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송화가 신경 쓰였다. 다른 사람이 있는데 섹스를 해본 경험이 없었다.
진국은 송화가 잠들어 있는 침대 쪽을 바라보았다.
“잰 잠들었다 하면 시체라니까.”
수영이의 손이 진국이 입은 반바지를 끌어내렸다.
수영인 이미 알몸이었다.
창을 통해 들어온 달빛에 수영이의 몸이 은은하게 빛났다.
‘에라 모르겠다.’
진국은 수영을 와락 끌어안았다.
수영이의 부드러운 살이 진국의 몸을 덮었다.
수영이의 몸이 뜨거웠다.
그 동안 남자 경험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수영이 진국의 몸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오빠, 소리 내지 마.”
진국이 자신도 모르게 끙끙 앓았던 모양이었다.
“알았어.”
수영이 진국의 다리 사이로 얼굴을 가져갈 때 갑자기 방안의 불이 환하게 켜졌다.
“미안해, 오줌이 너무 마려워서 도저히 참을 수가 있어야지.”
송화였다. 진국과 수영은 엉킨 채 소파 아래로 떨어졌다.
진국은 수영이의 오피스텔에서 나오고 말았다.
민망했다.
잠도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어차피 두어 시간 후면 출근이었다.
진국은 아예 회사 근처 사우나에서 잠깐 눈을 붙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미쳤지.’
송화가 다 듣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얼굴이 붉어졌다. 결국 헛물만 켜고 말았다.
진국은 회사 근처의 24시 찜질방에 들어갔다.
여기 저기 사람들이 찜질복 차림으로 잠들어 있었다.
진국은 수면실을 찾아 들어갔다.
수면실은 고개를 숙여야 할 정도로 천장이 낮았다.
다른 사람들은 없고 구석 쪽에 한 남자와 여자가 잠들어 있었다.
진국은 입구 쪽에 누워 눈을 감았다.
갑자기 피곤이 밀려왔다.
“아이, 싫어.”
“싫긴 뭐가 싫어.”
“사람들이 듣는단 말야.”
진국이 막 잠으로 빠져들려고 할 때 구석 쪽에 누운 남녀가 소곤거렸다.
진국은 꿈결이려니 싶었다.
“듣긴 누가 들어. 조용히 하면 돼.”
“어머머, 그렇게 막 벗기면 어떡해?”
순간 진국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요것들 봐라.
진국은 사타구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귀를 활짝 열었다.
채연의 얼굴이 떠올랐고 수영이의 벗은 몸이 아른거렸다.
진국은 깊이 잠든 척 얕게 코를 곯았다.
“너 팬티도 안 입고 이 반바지 입었냐?”
“자기는.”
남자가 끙 하는 신음 소리를 냈다.
진국은 잠결인 것처럼 그들 쪽을 향해 슬며시 돌아누웠다.
잠시 뜸을 들였다가 다시 코를 곯았다.
“저 사람이 다 본다.”
“야, 이 시간에 술 잔뜩 처먹고 들어와 자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야.
내가 가서 아랫도리를 만져도 깨어나지 못할 걸. 봐 코까지 곯잖아.”
남녀의 섹스는 누가 어떻게 하든,
어떤 상황이든 늘 흥미로운 법이다.
피로를 상쇄시키는 가장 좋은 운동은 섹스라고 하지 않았던가.
진국은 천천히 그리고 가늘게 눈을 떴다.
희미한 불빛 아래 반팔 셔츠만 입고 아랫도리는 벗은 여자와 남자가 보였다. 생 포르노였다.
“자긴 꼭 이런데서 하자고 하더라.”
여자가 숨가쁜 목소리를 냈다.
진국의 아랫도리가 슬금슬금 솟아올랐다.
“스릴 있잖아. 안 그래?”
남자가 여자의 다리가 벌렸다.
“너 잘 씻었지?”
“아까 샤워하고 나왔잖아.”
남자가 여자의 다리 사이에 코를 박았다.
서서히 발기하던 진국의 아랫도리가 힘차게 일어섰다.
꿩도 물 건너갔고 닭도 날아가 버렸는데 그 위로를 한 쌍의 남녀가 해주었다.
여자의 신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러자 남자가 갑자기 여자의 입을 막았다.
“야, 저 남자 깨겠다.”
“치이~, 코까지 곯면서 잔다며. 난 소리 안 지르면 맛이 안 난단 말야.”
진국은 코를 곯면서 속으로 키득거렸다.
이토록 적나라하게 다른 사람들의 섹스를 구경하기는 처음이었다.
이번엔 여자가 남자를 눕히고 남자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남자의 배 위에 앉아있던 여자는 다른 사람의 눈을 염려하던 때완 달리 적극적으로 몸부림을 쳤다.
“야, 부디 소리 작작 질러.”
남자가 여자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아이, 몰라.”
여자는 이제 안하무인이었다. 신난 건 상대 남자가 아니라 진국이었다.
여자는 남자의 몸 위에서 앞뒤로 몸을 격렬하게 움직였다.
열이 오른 탓인지 여자는 갑자기 반팔 셔츠를 훌랑 벗어던졌다.
아담한 젖가슴이 희미한 등불 아래 드러났다.
“야, 너 미쳤어?”
남자가 허둥거렸다.
“뭐 어때. 정말 스릴 있어 좋기만 한데.”
여자는 남자를 놀리듯 몸을 더욱 격렬하게 움직였다.
당황하는 남자의 모습이 진국의 눈에 선하게 떠올랐다.
남자가 잠깐 진국 쪽을 쳐다보았다.
진국은 실눈을 뜨고 두 사람의 섹스를 감상했다.
남자도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손을 뻗어 여자의 가슴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수면실 안이 남자와 여자의 신음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두 사람의 열기는 불가마 찜질방의 열기만큼 뜨거웠다.
“야!”
“왜?”
“누가 오잖아.”
“무슨 소리야?”
남자가 앞뒤로 움직이던 여자의 몸을 붙잡았다.
진국도 두 사람에게 집중하고 있느라
세 명의 남자가 수면실로 들어서고 있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들은 몸집이 우람했다.
남자와 여자가 납작하게 엎드렸다.
하지만 비릿한 열기와 땀내음은 미처 수면실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어떤 년놈들이 이런데 와서 유난을 떠냐.”
세 명의 남자는 두 남녀를 향해 거침없이 걸어갔다. 걸음걸이가 건들거렸다.
여자의 신음 소리를 듣고 찾아온 듯했다.
두 남녀는 그대로 굳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남자들은 그냥 돌아갈 태세가 아니었다.
여자의 알몸을 본 것이다.
세 남자는 두 남녀 앞으로 다가가더니 벌거벗은 여자를 한참 내려다 보았다.
“야, 일어나 봐.”
남자 중 하나가 도둑질을 하다 들킨 것처럼 숨조차 제대로 쉬지 않던 남자의 어깨를 발로 찼다.
“왜, 왜 그러세요.”
남자는 여자를 자신의 몸 뒤로 옮기며 겨우 말했다.
여자는 남자를 꼭 끌어안은 채 부들부들 떨었다.
“왜 그러긴 너만 재미 보냐? 같이 재미 좀 봐야지.
니 애인 쌕쓰는 소리가 죽여주더라.”
세 명의 남자가 둘을 에워싸며 앉았다.
남자는 반바지를 벗은 채 여자는 알몸인 채 구석 쪽으로 물러났다.
“몸매 죽인다. 안 그러냐?”
하나같이 짧은 머리였고 팔뚝이 울퉁불퉁 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아, 아저씨 잘못했어요.”
여자가 손을 모아 빌었다.
진국은 눈을 크게 뜨고 그들을 지켜보았다.
여자는 손을 모아 비느라 가슴도 다리 사이도 제대로 가리지 못했다.
“잘못은 무슨 잘못. 오우, 털도 죽이는데.”
순간 여자를 감싸던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다, 당신들….”
남자가 호기롭게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몸집 두툼한 사내가 그의 배를 향해 주먹을 질러 넣었다.
남자가 폭 고꾸라졌다.
이미 은밀한 남녀 관계가 들켰을 때 약자 였다.
큰소리 치려던 남자의 태도도 애초에 그들에겐 위협이 되질 못했다.
마지막 몸부림이나 다름 없었다.
“어이, 가만있어, 우리 간단하게 재미만 보고 갈 테니까.”
여자가 비명을 지르려 하자 다른 사내가 여자의 입을 틀어막았다.
한 사내는 남자의 입을 틀어막았고 나머지 사내는 버둥거리는 여자의 다리를 벌렸다.
“야, 야. 이 년 몸매 죽인다.”
남자들이 여자의 나체를 이리저리 훑어보며 침을 질질 흘렸다.
진국은 더 이상 자는 척하거나 구경만 할 수 없었다.
“거, 잠 좀 자기 무척 힘드네.”
진국이 벌떡 일어서며 낮게 소리를 질렀다.
세 명의 남자가 동시에 행동을 멈추었다.
섹스를 하던 남자와 여자는 애처로운 눈으로 진국을 쳐다봤다.
“어이, 아저씨. 아저씨는 밖에 좋은데많으니까
우리 일 신경 쓰지 말고 가서 자빠져 자슈.”
여자의 다리를 벌리던 사내가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진국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세명의 남자들이 진국을 쳐다보며 코웃음을 쳤다.
사내가 여자의 다리를 놓고 돌아앉았다.
“어이, 내가 잠들게 해줘?”
사내는 일어서지도 않은 채 진국을 째려보았다.
진국이 그 사내의 앞에 다가가 털썩주저앉았다.
세명의 사내들은 진국보다 모두 덩치가 좋았다.
“어린애들이 돈이 없어서 여기 와서 사랑 좀 하겠다는데 그러면 쓰겠냐?
원상태로해놓고 꺼져!”
“허, 이런 호로자슥이.”
진국과 마주 앉아 있던 사내가 주먹을내미는 순간 진국이
그의 겨드랑이를 향해두개의 손가락을 가볍게 찔러 넣었다.
진국을 향해 오던 팔이 접혀지면서 사내는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비명 소리도 나지 않았다.
“야, 야, 뭐해 임마!”
단한번의 급소 공격이었다.
남자와 여자의 입을 틀어막고 있던 사내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천장이 낮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얘들아. 나자빠진 애 곱게 데리고 나가라.
오늘 하루종일 잠 못 자서 정말 머리가 복잡하거든.”
그래도 명색이 양아치인데 그냥 보고 넘길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여자의 입을 틀어막았던 사내가 진국을 향해 발을 드는 순간
발바닥 가운데를 향해 역시 두 개의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어이쿠!”
덩치큰사내가 그대로 뒤로 자빠졌다.
남은 한 사내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빨리 안 나가?”
진국은 앉은 자세 그대로 으름장을 놓았다.
멀쩡한 사내와 발을 공격당한 사내가 옆으로 쓰러진 사내를 질질끌고 나갔다.
허세만 잔뜩 부리는 양아치들이었다.
“그러게 왜 이런 데서 그 짓을 합니까.”
남자와 여자는 벗은 그대로였다.
여자는 겨우 손으로 가슴과 아랫도리를 가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스릴도 좋지만 이런 데서 막 하지는 말 아요.
거나저나 오늘은 하던거마저 해요.”
진국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무렇지도않게 말했다.
그리고 목욕탕으로 향했다.
진국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술을 마신 데다가 잠까지 제대로 자지 못해 몸이 몹시 피곤했다.
할 일은 태산인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우리 봉수씨 집에 가봐야 하지 않겠어요?”
애란이 진국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병달과 마평수 그리고 소화련도 진국을 빤히 쳐다보았다.
진국이 출근하자마자 봉수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진국이 찜질방에 있던 시각 봉수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가긴 가봐야 하는데 봉수 집이 강원도 고성이라…”
“가는 데 다섯 시간 오는 데 다섯 시간.
오늘 퇴근하고 출발하면 내일 아침에 회사에 출근할 수 있겠네요.”
병달이 안경을 끌어올리며 히죽 웃었다.
“모레 오전에 강 실장 앞에서 브리핑해야 하는데 그건 어떡하구?”
중국 진출을 위한 속옷 샘플 브리핑이 있었다.
강일환이 실질적으로 해외 개발1팀을 맡고 있지만
개발 1팀이나 중국과 아시아 쪽을 담당하는 개발 2팀 역시 그의 지시를 받아야만 했다.
오늘 밤하고 내일까지 야근하면 겨우 맞출 수 있었다.
브리핑 지시는 오늘 아침에 떨어진 것이었다.
“강 실장님,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마평수가 진국과 애란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우리가 중국에 진출하는 걸 별로 바라지 않는 눈칩니다.”
병달이 투덜대듯 말했다.
“그럴 리야 있겠어요. 어쨌든 우리 회사 사람인데.”
애란은 강 실장을 두둔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이 조금 일그러졌다.
“그걸 모르진 않지만 가끔 강 실장님 생각하면 이해가 안돼요.
그 학벌에 외국어를 세 개나 원어민처럼 구사하는 실력에,
그 외모에, 배경까지. 그런 사람이 뭐 하러 코지에 들어온 건지 모르겠다니까요.”
“허긴 그래.”
마평수도 이미 회사내의 중요 인물들에 대해 파악하고 있었다.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가 되겠다는 거겠지.”
진국은 묘수를 떠올리고 애썼다.
그때 진국의 책상 위에 있는 전화벨이 울렸다.
“네, 실장님.”
전화를 건 사람은 강일환이었다.
“바로 가겠습니다.”
진국이 노트를 들고 개발 2팀의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그의 모습을 부원들이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진국은 강 실장의 방 앞에서 헛기침을 한 후 여비서를 쳐다보았다.
여비서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실장으로선 특별대우였다.
출장이 잦고 처리할 업무가 많다 보니
같은 실장이라고 해도 강일환의 사무실은 달랐다.
우선 다른 실장들의 방엔 비서가 없었다.
그건 곧 그의 권력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비서가 인터폰을 들어 진국이 왔음을 강 실장에게 알렸다.
“들어오시랍니다.”
진국이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엔 홈쇼핑 담당의 박춘만 실장이 함께 있었다.
진국이 목례를 하고 소파 말석에 가서 앉았다.
“부르셨습니까.”
“음, 불렀으니까 왔겠지.”
강 실장의 목소리가 딱딱했다.
그가 앉아 있는 소파 앞에 말간 녹차가 놓여져 있었다.
잔이나 받침은 순백색으로 어떤 문양이나 그림도 없었다.
진국이 아는 한 강 실장은 늘 깔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