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난봉기 1
조진국. ‘코지’ 입사 2년차. 해외 영업2팀 기획 팀장.
진국은 대리급으로 승진한 뒤 누구보다 채연의 축하를 받고 싶었다.
며칠 전 한 사무실에서 보았던 풍경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전문적으로 포르노를 찍는 놈들에게 걸려 채연이 그 주인공이 될 뻔했던 것이다.
채연의 경제 상황이 그 정도로 악화되었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 동안 채연에게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드모델이라니.’
진국은 창밖을 내다보았다.
멀리 신촌 로터리가 보였다.
금요일 오후라 그런지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채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저녁 맥주나 한잔 할까 해서요.”
“진국씨가 보자는 데 다른 일이 있어도 나가야죠.”
“그럼 저녁 8시 향(香), 괜찮죠?”
진국은 휴대폰 퓰립을 닫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건물의 다른 층들은 흡연이 불가능했지만 디자인실이 밀집해 있는 9층만은 예외였다.
창작에 몰두하라는 사장의 배려였다.
“조 팀장님, 오늘 시간 어떠세요?”
코트라에서 새로 스카웃 해온 마평수가 진국의 곁으로 다가와 섰다.
“어쩌죠? 선약이 있는데.”
“어쩔 수 없죠. 참, 출장비 결재는 다 끝났습니다.”
열흘 뒤 중국 출장을 소화련까지 포함해 세 사람이 함께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랄 게 뭐 있겠습니까. 앞으로 고생할 날이 창창한데.”
마평수는 진국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늘 깍듯하게 대했다.
“이제 말씀 좀 낮추세요.”
“좀 더 친해지면 그럴 수 있을 겁니다. 퇴근 하셔야죠.”
“네.”
마평수가 목례를 하고 뒤돌아섰다.
그의 뒷모습을 보면 늘 우직하다는 단어가 떠올랐다.
넓은 등판과 짧은 목, 다부진 체격이 그런 분위기를 풍겼다.
진국도 그의 뒤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갔다.
지난 밤 무슨 일을 했는지 봉수는 퇴근 무렵임에도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진국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봉수의 옆구리를 찔렀다.
“어제 뭐 했냐?”
봉수가 화들짝 놀라 눈을 뜨곤 두리번거렸다.
진국을 발견하곤 머리를 긁적였다.
“송화가 찾아와서 밤새 잠을 못잤어.”
“밤새 그 짓 했냐?”
진국이 눈을 흘기며 물었다.
“아, 아냐. 누굴 뭐 섹골로 만들려나….
국전에 그림 하나 출품하려고 모델 좀 되어달라고 했거든.”
“누드?”
봉수가 히죽 웃었다.
“니 놈이 그냥 지나갔을 리 없을 테고. 몇 번이나 했냐?”
“진짜 그게 아니라니까. 밤새 붓 잡고 씨름했어.”
“임마, 니 마빡에 열 번은 더 했다고 써 있다.”
“열 번은 무슨 여섯 번인가…”
봉수가 머리를 긁적였다.
진국이 혀를 내둘렀다.
건너편에 앉아 있던 애란이 진국과 봉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국이 ‘향(香)’이라는 간판을 확인하고 술집으로 들어섰다.
지하로 내려가는 술집이었다.
계단을 내려선 후 유리문을 열자 사찰 대웅전에서 피우는 향냄새가 몰려들었다.
아담한 술집이었다.
입구에 서서 홀 전체가 다 보일 정도였다.
주방과 가까운 쪽에 앉아 있던 채연이 손을 들었다.
진국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머리를 외로 꼬아 가슴 앞쪽으로 늘어뜨렸다. 고혹적이었다.
“그땐 정말 고마웠어요.
진작에 인사를 드린다고 하면서도 이사를 좀 하느라 바빴거든요.”
“이사요?”
“네, 신도림에 있는 오피스텔로 이사했어요.”
채연은 다리를 꼬아 앉았다.
진국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다리 쪽으로 향했다.
유리로 된 테이블을 통해 그녀의 허벅지가 훤히 보였다.
짧은 주름치마를 입고 있어 허벅지 깊숙한 곳까지 언뜻언뜻 보였다.
진국이 얼른 시선을 뗐다.
“뭐 드시겠어요? 여기 생선구이가 일품이거든요.”
“좋습니다.”
그녀가 모듬 생선구이와 소주를 주문했다.
“채연씨.”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진국이 먼저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비장하게 부르세요.”
채연이 미소를 지었다.
고생을 많이 하고 자라온 탓일까.
포르노 업자들에게 당할 뻔한 일이 있었으면서도 그녀는 밝았다.
현재 하는 일도 그녀가 원했던 일은 아닐 터였다.
“누드모델 일 계속 하실 생각이세요?”
“계속은 아니고…. 지금 우리도 일자리가 별로 없거든요. 다른 일 생길 때까지라도 해야죠.”
그녀의 눈이 잠깐 어두워졌다. 술과 안주가 나왔다.
“채연씨,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시고 들으세요. 혹시 매니저 하실 의향 없으세요?”
“매니저라뇨?”
“의류 매장 매니전데?”
“의류 매장이요?”
“네.”
채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튼 진국씨는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요.”
“어때요?”
“그게 어떤 일인지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옷 벗는 것보다 낫겠죠.”
“채연씨는 잘 하실 수 있을 거 같아요.”
“무슨 매장인데요?”
“프랑스에서 수입하는 속옷이랑 화장품, 그리고 잡화를 취급하는 매장이거든요.”
“명품이에요?”
“아직은 아니고. 머잖아 명품 반열에 오를 브랜드죠.”
“정말 제가 할 수 있는 건가요?”
채연이 테이블 가까이 바짝 다가와 앉았다.
그 바람에 치마가 위로 더 올라갔고 그녀의 허벅지 안쪽 깊은 곳까지 드러났다.
진국은 얼른 술잔을 들어 술을 털어 넣으며 딴청을 부렸다.
“이왕이면 불어도 좀 배우시면 좋을 거구요.”
진국은 채연의 허벅지에서 눈길을 떼 가슴 쪽을 쳐다봤다.
목쪽이 깊이 파인 브라우스였는데, 아마도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듯했다.
‘v라인 브래지어겠지.’
진국은 잡티 하나 없이 환하게 빛나는 그녀의 가슴을 쳐다봤다.
요즘 여성들의 노출이 자유로워지며 v라인 브래지어가 유행을 하고 있었다.
‘코지’에서도 두 달 쯤 전에 출시된 제품이었다.
‘내가 자꾸 왜 이러지?’
진국은 그녀의 가슴에서 얼른 눈길을 떼고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잔잔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불어 배우는 건 어렵지 않아요.
뭐든 열심히 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그런데 정말 제가 할 수 있는 일인지,
그리고 이렇게 진국씨한테 도움만 받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소주 몇 잔에 채연의 얼굴이 붉어졌다.
“실은 채연씨한테 축하를 받고 싶은 일이 있었어요. 그래서 전화 하고 그랬던 겁니다.”
“뭔데요?”
달큰한 입 냄새가 건너왔다.
지금껏 생각해보니 채연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을 뿐
손 한번 제대로 잡아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실은 지난주에 팀장으로 승진이 됐거든요.”
“어머, 그래요. 축하드려요.”
그녀가 호들갑스럽게 말하며 잔을 들어 건배를 청했다.
그녀가 급히 앞으로 몸을 당겨오는 바람에 그녀의 블라우스가 벌어지며
핑크빛 레이스의 브래지어 자락이 눈에 들어왔다.
브래지어가 채 담지 못한 가슴도 살짝 보였다.
‘채연이도 작심을 하고 오늘 나온 것인가?’
‘내 마음을 알고 나를 오늘 유혹하겠다는 뜻인가?’
진국은 채연의 마음을 가늠할 수 없었다.
하긴 채연을 향한 자신의 마음도 알 수 없는 터였다.
진국은 그녀와 건배를 한 뒤 단숨에 잔을 비웠다.
‘그래, 어디 오늘 취하도록 마셔 봐?’
진국은 마음속에 일어나는 많은 말들을 되새겨보았다.
“진국씨!”
채연이 조금은 강경한 말투로 진국을 불렀다.
“무슨 생각하세요? 사람 무안하게요.”
채연이 눈을 흘겼다.
“제, 제게 뭘 물어보셨습니까?”
“그날 어떻게 된 거냐구요?”
“그날이라뇨?”
진국은 채연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감을 잡지 못해 어리둥절했다.
“저 포르노 찍을 뻔했던 날 말이에요.
혹시 저 앞에 두고 딴 여자 생각하는 거 아니에요?”
“아, 아닙니다.”
진국이 손을 들어 강하게 내저었다.
진국은 얼굴까지 빨개졌다.
“그날은 어떻게 된 거냐구요?
진국씨가 엉뚱한 사람이라는 말은 몇 번 듣긴 했지만 그런 재주가 있는 줄 몰랐어요.”
“재주랄 게 뭐 있습니까. 그냥 불의를 보고 못 참는 거 뿐이죠.”
“그래도 그게 말이 되요? 그 놈들은 다섯이나 됐는데.”
“그러니까 그게 좀…”
뭔가 답을 해주어야 하는데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결국 과거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채연이 싱글벙글 웃으며 진국을 쳐다봤다.
그럴수록 진국은 말이 자꾸 헛나가기만 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택견을 가르쳐 주셨다는 거잖아요.”
십분 남짓 떠들었는데 결국엔 채연이 짧게 말한 그대로였다.
“네. 그런 셈이죠.”
“그래도 그렇지. 그 놈들 아주 나쁜 놈들 같았어요.
저는 행여 나중에 저한테 해코지 하지 않을까 얼마나 걱정했다구요.”
“그 놈들 양아치들입니다. 진짜 깡패나 건달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 놈들 같았으면 그렇게 누드모델 협회에 전화 걸어서 여자 구하거나 하지 않죠.
자기네들이 관리하는 여자들이 있으니까 그냥 시키면 되거든요.”
“정말 그래요?”
“채연씨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사실 억울하게 붙잡혀서 어쩔 수 없이 술 팔고 몸 팔고 하는 여자들 수천 명은 될 겁니다.
막말로 그런 여자들이 많은데 뭐 하러 채연씨를 부르겠습니까?”
“그래도 전 걱정이 돼요. 저 뿐만 아니라 진국씨도.”
진국의 마음이 울렁거렸다.
“아,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 놈들 속성이 그래요.
자기보다 센 사람한텐 함부로 못해요.
그러니까 자기들보다 더 큰 조직에 있는 사람이겠거니 생각하는 거죠.”
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고개를 숙일 때마다 앞섶이 잠깐씩 벌어졌다가 닫혔다.
전에는 채연을 보고도 그다지 큰 욕심이 일지 않았는데 오늘은 달랐다.
상당히 많이 달라졌는데 무엇이 달라진 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오래된 와인처럼 잘 숙성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버진 어떤 분이세요?”
채연이 느닷없이 아버지 이야기를 물었다.
진국은 가슴이 뜨끔했다.
바지 속에서 슬그머니 꼬물거리던 물건도 축 늘어지고 말았다.
어렸을 때 잠깐 보곤 그 뒤로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택견을 가르쳐준 사람도 실은 아버지가 아니라
진국을 어려서부터 보살핀 아버지의 친구였다.
“실은 아버지 뵌 지 오래 됐습니다. 연락도 안 되고…”
진국은 술기운에 괜한 말까지 지껄였다.
“어머, 죄송해요. 제가 너무 까불까불 말했죠.”
채연의 눈이 안쓰러운 자식을 바라보듯 애수에 젖었다.
‘모성 본능을 자극하라.’
진국은 잔뜩 찡그린 얼굴로 술을 털어 넣었다.
아버지와 연락이 끊긴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간혹 외로울 뿐 큰 상처는 아니었다.
진국은 속으로 키득거렸다.
어쨌든 채연과의 관계를 진척시키고 싶었다.
“죄송해요, 정말.”
채연이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던 진국의 손을 슬그머니 잡았다.
촉촉했다.
진국은 채연의 옆자리를 슬쩍 쳐다보았다.
기회를 만들어야 했다.
진국은 화장실을 다녀온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 들어온 진국은 가글을 하고 이 사이를 살폈다.
옷매무새롤 고치고 거울을 봤다.
그렇게 못난 얼굴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았어!’
화장실에서 나온 진국은 술 취한 척하며 그녀의 옆자리에 앉을 계산이었다.
“저도 잠깐 실례 좀 할게요.”
진국이 그녀의 옆자리에 앉기도 전에 채연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휴대폰을 들고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그런 법이 어딨어요? 이건 제가 계산을 해야죠.”
진국은 화장실에 간 채연이 기다려도 오질 않아 먼저 계산을 끝내고 기다렸던 것이다.
독하게 품었던 마음도 풀어져버렸다.
계산을 하기 위해 카운터 앞으로 왔을 때 채연이 진국을 쳐다보며 눈을 흘겼다.
“그럼 우리 한잔 더 해요.”
채연이 먼저 2차를 제안했다.
도무지 채연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
‘어쩌자는 거지?’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럼 채연씨 집 근처로 갑시다. 그래야 나중에 가기도 편하고.”
“그래요.”
두 사람은 택시를 탔다.
진국은 이미 채연과 술 마실 생각에 차는 회사에 두고 나왔다.
채연이 먼저 택시에 올라탔다.
허리를 굽히고 다리를 올려야 했는데 그 짧은 순간 진국은 채연의 속옷을 보았다.
전에 진국이 개발했던 젖꼭지 브래지어를 했을 때의 채연을 보고도
별다르게 흥분이 되지 않았는데 오늘은 유독 흥분이 됐다.
뒷좌석에 나란히 앉았는데 채연의 흰 허벅지와 팬티만 머릿속에 뱅뱅 돌았다.
신촌에서 마셨던 터라 신도림까지는 먼 거리가 아니었다.
“그 매장 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예요?”
“채연씨만 오케이하면 되는 겁니다.”
“그런 게 어딨어요?”
“실은 지금 일본에도 매장이 네 갠가 있는데 한국에도 진출을 하려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거기 총 매니저가 제가 아는 분이라 제게 한국에서 매니저 할 사람을 부탁했던 것입니다.”
지난해 초 오사카 박람회 때 도움을 주었던 에이꼬의 부탁이었던 것이다.
에이꼬의 부탁도 들어주고 채연에게 경제적이면서 제대로 된 일 소개도 하는 일석이조의 기회였다.
진국으로서는 에이꼬를 돕는다기 보다는 채연을 사로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었다.
“그런데 전 학벌이 딸려서…”
“학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학벌보다는 센스와 감각 그리고 융화력 그런 게 필요한거니까요.
물론 미모도 중요하지만 말입니다.”
진국은 말을 해놓고 슬쩍 웃었다.
“그렇게 봐주시니까 고맙긴 한데 폐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실은 저, 그런 일 한번 해 보고 싶었어요.”
그녀가 왼쪽 다리를 들어 오른쪽 다리 위로 올리며 꼬았다.
지나가는 자동차 불빛에 그녀의 다리가 빛났다.
운전기사도 가끔 룸미러로 채연을 훔쳐보았다.
키, 몸매, 가슴, 잔잔한 눈빛. 매니저로 손색이 없는 여자였다.
‘진국씨가 천거하는 사람이면 나 백프로 믿어. 그러니까 천거해.’
에이꼬가 전화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쨌든 중국 출장 나가기 전에 일을 매듭지어야 했다.
마음은 급한데 여러 일들이 겹쳐 있었다.
택시가 한 상가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상가 건물 전체가 유흥음식점이었다.
진국은 신도림도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채연이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진국의 팔짱을 꼈다.
진국이 흠칫 놀랬다.
그녀의 가슴이 물컹 어깨에 닿았다.
‘관계를 더 진전시켜 보자?’
진국은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아직은 종잡을 수 없었다.
진국이 아는 한 채연은 늘 붙임성이 좋은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별 놈이 다 있어요. 죄송해요. 별 사람이 다 있어요.”
채연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채연이 진국을 끌고 들어간 보쌈집은 방으로 꾸며져 있었다.
채연은 하루 종일 대학에서 누드모델을 하느라 다리가 아프다며 진국 쪽으로 쭉 뻗었다.
진국의 무릎에 채연의 다리가 닿았지만 채연은 다리 오므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그런 대로 귀여워요.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애들도 있고 어떤 애는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선 어쩌지를 못하는 거예요.”
채연이 깔깔거렸다.
진국은 씁쓸했지만 덩달아 웃었다.
‘만약 내 와이프가 과거에 누드모델이었다면?’
진국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성인들이 음탕해요.
나를 쳐다보는 눈도 그렇고 은근슬쩍 수작 부리는 것도 그렇고.”
진국이 술을 입에 털어 넣자
채연이 백김치에 돼지고기와 무채를 말아 진국의 입으로 가져왔다.
“얼른 먹어요. 제 손이 부끄럽잖아요.”
채연이 술에 취한 듯했다.
‘와이프는 와이프고 지금 당장은 채연씨 밖에 없다.
집도 바로 앞이겠다. 나도 취해버리자.’
진국은 채연이 먹여주는 대로 덥석 받아먹었다.
채연이 앞으로 몸을 바짝 굽히느라 살에 닿아 있는 브래지어까지 벌어졌다.
붉고 건강한 유두. 젓가슴을 본 적은 있지만 붉은 유두를 보긴 처음이었다.
물고 싶었다.
진국이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이지, 고마워요. 우리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도 와 주시고,
나쁜 놈들한테서 구해주시고, 그리고 일자리까지. 제가 뭘로 다 갚죠?”
“갚기는요, 그냥 서로 돕고 사는 거죠.
실은 열흘 뒤에 중국으로 출장을 갑니다.
일이 잘 해결되면 일찍 나오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몇 달을 있어야 할지 모르거든요.
그래서 채연씨도 보고 싶고 마침 일도 생겼고.”
“중국이요?”
“그렇게 됐습니다.”
채연이 무릎걸음으로 기어 진국의 곁으로 다가왔다.
진국의 가슴이 후끈 달아올랐다.
진국은 흐뭇했다.
그녀가 바짝 곁에 앉았다.
진국의 머릿속에 그림이 떠올랐다.
은은한 불빛, 터질 듯 풍만한 육체, 아름다운 얼굴.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제 전화예요.”
채연이 곁에 앉은 채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채연은 술기운이 도는지 머리를 진국의 어깨에 기댔다.
진국의 손이 자연스럽게 채연의 허벅지 위로 올라갔다.
“응, 집 앞에 보쌈 집. 그래? 그럼 나와. 너도 잘 아는 분인데 뭘.”
채연이 휴대폰을 가리고 진국을 쳐다봤다.
“같이 방 쓰는 친군데 나와도 돼죠? 진국씨도 아는 사람이거든요?”
진국은 갑자기 머리속이 텅 비었다.
술기운까지 달아나 버렸다.
“그, 그러세요.”
채연이 계속해서 누드모델을 하며 겪은 에피소드를 늘어놓았지만 진국의 귀엔 들어오지 않았다.
잠시 후 문을 열고 수수하게 입은 한 여자가 들어왔다.
“오랫만이에요.”
그녀는 나송림이었다.
“나 선배!”
진국은 나쁜 짓 하다 들킨 아이처럼 채연의 허벅지 위에 올려져 있던 손을 빼냈다.
진국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