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개와 늑대의 시간

제5장 몽정기 9

오늘의 쉼터 2015. 1. 4. 13:27

제5장 몽정기 9

 

 

“더 이상 신세 지기 싫어.”


김중경은 나송림과 채연을 빤히 쳐다보았다.

 

갈비집에서 소주 한잔씩 걸치고 막 집으로 들어온 길이었다.

 

“무슨 소리야?”

 

중경이 커피 메이커에서 커피 세 잔을 만들어 응접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우리 둘이 중경씨에게 별로 도움이 안 되잖아.”

 

“생뚱맞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 하고 있어. 언젠 도움이 되서 내가 너희들 받아 준 건 줄 알아?”

 

송림과 채연은 나란히 앉아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중경은 아직도 자신이 두 사람에 대한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때문에 그런 거라면 신경 안 써도 돼.”

 

송림이 중경의 마음을 짐작하고 있기라도 한 듯 말했다.

 

“그런 거 아냐.”

 

“우리 이제 이런 기묘한 동거는 끝내야 하지 않겠어?”

 

채연이 끼어들었다.

 

“갈 데가 있다는 말투네.”

 

중경이 눈길을 피하며 커피 잔을 들었다.

 

“오피스텔 얻을 돈은 있어.”

 

송림이 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중경은 그런 송림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리고 너한테 가끔 전화하는 여자 말야.”

 

송림이 말하는 여자는 해원이었다.

 

그녀는 술에 취하면 한밤 중이고 새벽이고 할 것 없이 중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그게 싫지 않았다.

 

“너도 좋아하는 거 같아.”

 

“내가? 너도 알다시피 갠 그냥 회사 동료야.

 

너랑 나랑 이렇게 같이 어울려 사는 것처럼 말야.”

 

중경의 말투는 짙게 깔린 안개처럼 흐릿했다.

 

송림이 나즈막하게 길게 숨을 ?b었다.

 

그러나 결심한 듯 몸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사실 난 너랑 섹스하는 것보다 채연이랑 하는 게 좋아.”

 

이미 짐작하고 있던 바였다.

 

두 사람의 성 정체성에 대해 언젠가부터 고개를 갸웃거리던 중경이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중경씨, 고마워.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닌 거 같아.”

 

채연도 거들었다.

 

“채연씨는 누드모델 할만해?”

 

“의외로 재미있어. 뭐 보수도 쎄고.”

 

중경은 이제 더 이상 두 여자를 붙잡아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우선 자신을 속이는 일이었다.

 

“오피스텔은?”

 

중경이 마지못해 질문을 했다.

 

“이미 구해 놨지롱.”

 

송림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중경이 웃었다.

 

“우리 오늘이 마지막 밤이야. 중경씨가 어떻게 하든 우린 내일 나갈 생각이었거든.”

 

“심히 걱정된다. 다 늙은 노처녀 둘이 시집 갈 궁리는 안하고.”

 

“시집 못 가면 우리 둘이 살지 뭐.”

 

송림과 채연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가 오늘 중경씨에게 마지막으로 선물할 게 있어.”

 

“뭔데?”

 

“우리.”

 


송림은 침대에 누웠다.

 

그 위에 중경이 올라갔고 중경의 등위엔 채연이 있었다.

 

침실 맞은 편 벽에 걸린 거울 속에 비치는 침대위 풍경이 기묘했다.

 

중경은 문득 이 광경을 영원히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의해 주는 거지?”

 

중경이 자신의 뜻을 두 여자에게 전했다.

 

중경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송림과 채연이 한참동안 서로를 쳐다보았다.

 

“우리야 괜찮지만 중경씨 여자가 알면 안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나만 혼자 간직할 거야.”

 

“그게 그렇게 돼? 연예인들도 다들 처음엔 그렇게 시작했잖아.

 

그런데 유포되어서 망신당한 거지.”

 

“내가 무슨 연예인인가? 내가 언제 이런 화려한 밤을 보내 보겠어.”

 

두 여자는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중경은 서랍속에서 캠코더를 꺼냈다.

 

“둘이 누워 봐.”

 

송림과 채연은 중경의 말을 따랐다.

 

중경은 초점을 맞춰놓고 촬영 버튼을 눌렀다.

 

중경은 다시 두 여자 사이에 누웠다.

 

“한번은 누드 모델이 필요하다고 해서 갔거든.”

 

중경은 송림의 사타구니 쪽을 향해 누웠고 채연이 중경의 등뒤에 달라붙어 있었다.

 

“글쎄, 가보니 그게 비디오 작업인 거야.

 

비디오 작가 협회라고 하는데 첫 눈에 포르노 찍으려는 놈들이라는 거 알았지.

 

그래도 이왕 왔으니…”

 

채연이 숨을 삼켰다. 그리곤 더욱 숨을 가쁘게 쉬며 말했다.

 

“처음엔 시키는 대로 자세를 취해 줬지.

 

사실 하루 일당 치고는 좀 괜찮았거든.

 

어차피 벗고 하는 건데 뭐 하는 생각도 있었고…”

 

그 순간 송림이 중경을 밀어내더니 채연을 끌어안았다.

 

채연은 익숙한 듯이 몸을 굴려 누웠고 송림은 천천히 그 위로 올라갔다.

 

그리곤 채연의 입술을 핥았다.

 

“그랬는데?”

 

송림이 채근했다. 얼굴은 열에 들떠 있었다. 좀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한 듯했다.

 

“조금 있으니까 어떤 남자 놈이 들어오더라.

 

그러면서 포르노 찍자는 말을 이리저리 둘러가며 설명을 하는 거야.

 

딱 한 시간만 찍자는 거지. 돈은 현찰로 당장 4백을 주겠다는 거야.”

 

중경은 송림의 몸 속으로 들어갔다.

 

이미 충분히 젖어 있었다.

 

송림은 쉽게 중경의 물건을 받아들였다.

 

“안 된다고 했지.

 

포르노는 안찍는다고 버텼어.

 

그런데 그 놈들 막무가내야.

 

나중엔 재크나이프를 꺼내더니 할거냐 말거냐며 협박까지 하더라고.”

 

“그래서 찍었어?”

 

송림이 헉헉거렸다. 중경도 달아올랐다.

 

“들어 봐. 이제 죽었구나 싶은 거야.

 

돈도 못 받고 망신만 당하게 생겼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

 

그래도 버틸 때까진 버텨야지.”

 

중경은 벌거벗은 채연이 남자들 사이에 둘러싸여 승강이를 벌이는 장면을 떠올렸다.

 

재크나이프를 든 험상궂은 남자들, 이미 팬티차림으로 몸이 달아있는 포르노 남자 주인공,

 

그 옆에 카메라를 든 제작진들….

 

또다른 여자 포르노배우가 벌거벗은 채로 그 장면을 재미 있게 쳐다보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위태위태한 그 순간, 채연의 몸은 어떻게 반응했는지 궁금했다.

 

또 그 말을 전하는 지금은….

 

그는 무릎을 조금 굽혀 채연과 높이를 맞췄다.

 

모든 광경이 캠코더에 고스란히 담기고 있었다.

 

“그래도 난 못한다고 했지.”

 

채연의 몸이 떨렸다. 중경은 이제 황홀한 섹스와는 결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놈들이 칼로 위협하는데 누가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거야.”

 

“그래? 그 사람이 누구였는데?”

 

“조진국씨!”

 

송림이 벌떡 일어났고 중경도 놀라 채연의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

 


 “조진국? 우리 회사의 조진국?”


중경이 놀란 눈으로 채연에게 물었다.

 

“그래 맞아.”

 

두 여자는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중경을 쳐다봤다.

 

송림 역시 많이 놀란 눈이었다.

 

“얼마나 놀랬는데. 그리고 얼마나 창피하던지.”

 

“창피할 건 없지. 어차피 누드 모델이었으니까.”

 

“그래도 진국씨가 내 생각 많이 해줬거든.”

 

송림과 채연은 너무 자연스럽게 말했다. 중경이 가슴을 쳤다.

 

“그건 그거고, 정말 조진국이었단 말야?”

 

“그렇다니까.”

 

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중경의 아랫도리를 쳐다보며 히죽 웃었다.

 

그제야 중경은 자신의 아랫도리를 가릴 생각이 들었다.

 

일단 소파에 털석 주저 않았다.

 

“그런데 진국씨가 어떻게 거기 나타난 거야?”

 

이번엔 송림이 물었다.

 

두 여자는 부끄러움도 없이 한껏 만개한 꽃처럼 편하게 앉아 있었다.

 

“그건 나도 모르겠어. 그런데 중요한 건 말야.”

 

중경이 앞에 앉은 두 사람을 힐끗 쳐다봤다. 송림의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촬영하는 놈이랑 새로 나타난 두 놈이랑,

 

그리고 뭐 조명을 설치해야 한다는 놈이랑 같이 작업하는 놈이랑

 

그렇게 모두 다섯인가 남자 놈들이 있었는데…

 

글쎄 그 놈들을 단숨에 해치워 버렸다니까.”

 

“단숨에?”

 

“그래. 그 놈들이 진국씨 보고 험악하게 인상을 쓰더라고.

 

나중에 안 건데 그 놈들 그렇게 벌써 몇 차례 포르노를 찍었던 모양이야.

 

그러니까 뭐 굳이 말하자면 조직 같은 놈들이었어.”

 

“그런데 진국씨가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그러게 말야. 그냥 한 순간 후다닥하더니.

 

놈들이 다 바닥에 쓰러져 뒹굴고 있는 거야. 꼭 홍길동 같았다니까.”

 

중경이 턱을 쓰다듬었다. 채연의 이야기가 꿈처럼 들렸다.

 

“다 사실이야?”

 

송림이 채연의 어깨를 잡았다.

 

“그렇다니까.”

 

“진국씨가 뭐래?”

 

“처음부터 그 놈들 요절내려고 찾아온 거 같았거든.

 

뭐 마침 나도 그 놈들에게 걸려들었고.

 

그런데 나를 만나려고 했던 건 맞는 거 같아.

 

내가 그 놈들이랑 작업하고 있을 때 진국씨한테서 몇 번 전화가 걸려왔거든.”

 

송림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눈길이었다.

 

중경 역시 이해할 수 없었다.

 

‘코지’의 속옷 디자인 기획자가 어떻게 포르노 촬영 현장에 나타나 놈들을 모두 때려 눕힐 수 있는가.

 

도무지 연결이 되지 않았다.

 

“아무튼 진국씨는 묘한 데가 많은 남자야. 비밀스럽고…”

 

“그러게 혹시 코지에 오성 회장의 숨겨 논 아들이 있다는데 진국씨 아닐까?”

 

“그런 사람이 뭐 하러 그런 짓을 하고 다니겠어. 그리고 일단 진국씨는 조가잖아.”

 

그랬다. 중경도 몇번 그런 생각을 하다가 조씨 성에 걸려 ‘그럴 리가’하면서 고개를 젖곤 했다.

 

송림은 ‘이제 끝났지’하는 표정으로 채연을 쳐다보더니 중경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그녀의 다리는 여전히 크게 벌려져 있었다.

 

“조진국은 조진국이고 우리 이대로 끝내는 거야?”

 

머뭇거리던 중경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중경은 퇴근하는 즉시 집으로 달려왔다.

 

송림과 채연의 짐을 옮겨주기로 했던 것이다. 중경이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봉사였다.


“진국씨 봤어?”

 

“휴게실에서 잠깐.”

 

중경은 휴게실에서 여직원들에게 음담패설을 늘어놓고 있는 진국을 보았다.

 

아무래도 채연이 꿈을 꾼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진국에게 홍길동 같은 구석은 보이지 않았다.

 

“말 해 봤어?”

 

“아니.”

 

두 사람의 짐은 중경의 RV차에 모두 실렸다.

 

그는 신도림 쪽으로 차를 몰았다.

 

두 여자가 구한 오피스텔은 신도림 역 부근에 있었다.

 

“채연씨가 혹시 꿈 꾼 거 아냐?”

 

“아니라니까. 내가 워낙 경황이 없어서 나를 어떻게 왜 찾았는지 못 물었거든.

 

나중에 다시 연락한다고 했어. 그때 같이 만나 볼래?”

 

중경이 고개를 저었다. 같은 회사 내의 동료이긴 하지만

 

이젠 진국이 일하는 해외영업 2팀과는 경쟁관계에 놓여 있었다.

 

자신이 속한 해외 1팀이 강 실장 팀이라면 해외 2팀은 차 사장 팀이었다.

 

중경은 강 실장과 가까워지면서 ‘코지’ 내부에 확실한 두 개의 권력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두 여자가 구한 오피스텔은 신축 건물이라 깨끗했다.

 

언제 장만했는지 어지간한 전자제품도 모두 마련되어 있었다.

 

신혼 살림 집 같았다.

 

중경은 짐을 푸는 두 여자를 망연히 쳐다보았다.

 

중경이 유일하게 알게 된 동성애 커플인 셈이었다.

 

하지만 두 여자는 동성애자라기보다 중성애자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커피 한잔 줄까?”

 

송림이 회사로 복직하지 않는 한 두 여자를 자주 만날 수는 없을 듯했다.

 

중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심하지?”

 

채연이 텔레비전을 틀었다. 뉴스가 진행중이었다.

 

“…차상경 회장과 북측 국가정책발전위원장인 김상만 위원장은 오늘 북경에서 만나

 

신의주 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하는 협정서에 조인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성에 이어 두 번째로 신의주 공단의 새로운 역사가 쓰여질…”

 

중경은 귀가 번득였다. 화면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오성의 회장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의 뒤에 차덕수가 바짝 붙어 있었다.

 

차덕수는 얼마 전까지 ‘코지’에서 홈쇼핑 파트를 담당했던 인물이었다.

 

‘코지’에 있을 때완 달리 몰라보게 마른 체형이었다.

 

“이로써 생산과 판매 모두가 북측에서 이루어지는 최초의 공단이 세워질 전망입니다.

 

이에 통일부 장관은…”

 

통일부 장관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차 실장이 정말 성공했어.”

 

송림이 중얼거렸다.

 

소파에 앉아 있는 중경의 뒤에 서서 텔레비전을 쳐다보고 있었다.

 

채연도 아직 풀지 않은 박스 위에 앉은 채 커피를 홀짝이며 텔레비전에 시선을 주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인데 실은 차 실장이 하두 졸라서 한번 같이 자준 적 있었거든.”

 

송림과 중경이 동시에 채연을 쳐다보았다.

 

채연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사실 차 실장이 저만한 인물이었던가 싶어. 안 그래?”

 

중경도 그 생각은 비슷했다.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오성의 차 회장이 차덕수를 이용해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덕수는 위스키를 따른 잔에 얼음을 채워 넣으며 중국의 현재를 내려다보았다.

 

북경은 서울 못지 않은 야경을 지니고 있었다.

 

서울보다는 도로가 넓직 넓직 했고 건물 또한 대국답게 컸다.

 

하지만 도로엔 자전거와 오토바이, 자가용들이 뒤엉켜 다니는

 

그야말로 근대와 현대가 한꺼번에 존재하는 도시였다.

 

낡은 자전거와 벤츠 차가 한 도로 위를 달리는 풍경은 희극적이기까지 했다.


차상경 회장은 조인식이 끝난 직후 한국으로 돌아갔다.

 

차덕수는 냉장고에서 다시 위스키를 꺼내 잔에 따르고 얼음을 채워 넣었다.

 

호텔방은 최고급 호텔답게 웅장하면서도 근사했다.

 

차덕수는 술잔을 들고 조금씩 마셨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 가장 화려하고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오늘은 한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언론에 자신의 얼굴이 알려진 날이었다.

 

몸이 공중에 둥둥 떠 있는 기분이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아내인 김효순이었다.

 

“여보, 정말 자랑스러웠어요.

 

당신 얼굴이 뉴스에 나온 걸 보고 전 감격해서 울기까지 했거든요.

 

아빠랑 엄마랑 여기저기 전화해서 자랑하고 난리가 났다니까요.”

 

김효순의 목소리는 울먹울먹했다.

 

차덕수는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힘으로 뭔가를 해냈다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그 동안 차덕수가 건재했던 이유는 차상경의 먼 친척이라는 것과

 

아내의 재력이 뒷받침 덕이었다.

 

‘신의주개발사업단장.’

 

차덕수는 아내와 통화를 하면서도 자신의 직함을 조용히 마음으로 읊어보았다.

 

“언제 와요?”

 

“음, 나는 내일 중요한 미팅이 더 있어. 그래서 빠르면 모레쯤 가게 될 거야.”

 

“정말 자랑스러워요.”

 

차덕수의 얼굴에 미소가 활짝 피었다.

 

아내와 통화를 끝내자마자 초인종이 울렸다.

 

이번 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기획을 담당했던 김 실장이었다.

 

“그래, 모든 건 이상 없이 준비가 됐지?”

 

“네, 내일 본사로부터 12시까지 10억불이 입금되기로 되어 있습니다.”

 

10억불이면 1조가 넘는 돈이었다.

 

신의주 개발의 독점권을 오성에게 주기로 하면서 북측이 요구한 리베이트였다.

 

오성 회장과 몇몇 간부들을 제외하곤 모르는 돈이었다.

 

“그 동안 고생 하셨습니다.”

 

“고생은 뭐, 다 같이 고생한 거지.”

 

신의주 개발은 하나의 새로운 신도시를 건설하는 사업이었다.

 

한국에서 생산한 물자를 중국, 나아가서 러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전초기지의 건설이라는 역사적인 의미도 담긴 일이었다.

 

“그래서 저희가 조촐한 자축 술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김 실장이 차덕수의 눈치를 살폈다. 차덕수는 자신도 모르게 침이 넘어갔다.

 

그 동안 새로운 이미지로 태어나겠다고 마음 먹은 뒤 술자리를 자제해 왔던 것이다.

 

‘술 하면 여잔데, 여자 없는 술자리라. 탐탁치가 않네.’

 

차덕수는 김 실장의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창 밖을 내다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여자를 품어본 게 언제인가 싶었다.

 

“회장님께서 특별상여금을 주고 가신 것도 있고 해서…. 전에도 몇 차례 와본 술집이 있어서.”

 

김 실장은 일 처리 할 때완 달리 말끝을 제대로 맺지 못했다.

 

차덕수의 취향을 알지 못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옛날의 박춘만이었으면 알아서 다 처리했을 텐데.’

 

그렇다고 그냥 지나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럼 한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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