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밤의 대통령

9. 통일

오늘의 쉼터 2015. 1. 1. 23:45

9통일 
 

 

하룻밤 사이에 군이 시내에 진입해 있는 데다가 아침에 있었던 대통령의 특별 성명,

안보 위원회의 발표와 계엄령 등으로 뒤숭숭한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밤이다.

계엄군은 시내에 드문드문 서 있었지만 검문도 하지 않았고 더욱이 이번의 계엄령은 통금도 없다.

놀란 국민들은 밤 외출을 삼가고 있어서 시내의 유흥가는 한산했지만 화려한 네온사인과 번화한

거리는 어제와 다름없었다.
계엄군을 장악하는 안보 위원회는 언론조차 통제하지 않았으므로 신문과 방송은 잇따라 특종을

터뜨리고 있었는데 이영근과 유덕환의 자살이 주 소재였다.

그들의 충성심과 군인다움을 오히려 더 강조하는 것이 대통령의 무능과 무책임을 더욱 드러낸다고

안보 위원회는 믿었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계엄군과 경찰이 나란히 서 있는 강남대로 변에 승용차 한 대가 
멈추어 섰다.

9시 반이었다.
차에서 내린 바바리 코트 차림의 사래는 이용덕이다.

그는 잠시 길가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리의 모퉁이에 군인 두 명과 경찰관 한 명이 서 있었고 한 쌍의 남녀가 바쁜 듯이

그의 옆을 지날 빨 거리는 한산했다.
몸을 돌린 그는 전자 제품 싱첨 옆의 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 안에 있는 일식집 해강은 여느 때는 손님으로 붐빌 시간이다.

그러나 이용덕이 들어섰을 때 흘에는 한 사람의 손님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그는 박현식이다.
다가,t.는 이용덕을 바라보며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서 오시오."
뒤에 호칭이 붙여지지 않은 것은 국회가 해산되었으므로 총장직도 없어진 때문이다.

그들은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종업원이 다가와 엽차잔만을 내려놓고 물러간 것을 보면 미리 주의를 받은 모양이었다.
"그래, 날 보자고 하신 것은 무슨 일로."
박현시이 입을 열었다.

그는 이제 안기부장이자 국가 안보 위뭔회의 외무분과위원장이다.
엽차간을 쥐고 있는 이용덕의 얼굴은 초례했지만 박현식을 바라보는 시선은 강렬했다.
"날 출국시켜 주시오. 가족과 함꼐 떠나게 해달란 말입니다. "
이용려의 말소리는 낮았으나 흐트러지지 쟈았다.
"이제 난 이 나라에 필요없는 몸. 날 전리품처럼 잡아 두고 즐기지말아 주었으면 좋겠소."
그러자 박현식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당당하시군. 과연 이 총장이시오."
"정권 장악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쟈았던 것은 당신과 다를 것이 없지요.

승괘가 결정이 되었으면 패자도 존중해 주는 것이 예의 아닙니ft?"
"도망시켜 주는 것이 예의요?"
"내가 남아 있어서 득될 것이 없습니다. "
"남아 계셔서 이제까지의 부정과부패,그리고 기만 행위에 대찬심판을 받아야 할 려니다. "
"쿠데타의 명분과 안보위 존저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증거물을 내가 내놓는다면

어떻습니까?"
한동안 이용덕을 바라보던 박현식이 입술만을 움직여 말했다.
"북한과의 비밀 회담 말이군."
"정상 회담의 비공개 부분의 내용이오."
"김재선이 갖고 있다가 어제 소각해 버려서 자료는 모두 없앤 것으로 알고 있지만

내가 모스크바에서 한부 복사괘 둔 것이 있습니다. "
"엄청난 내용이오. 국민들은 단숨에 쿠데타의 당위성을 인정하게 될 겁니다. "
"내가 아니더라도 심판을 받을 자들은 남아 있으니까. 어떻습니까?"
김양호가 피살되었다고 이동천에게 알려 준 것은 양유경이었다.
피살된 지 이틀이 지난 날 아침에 전화를 해온 것이다.
김양호는 오산 톨게이트 근처의 길가에 버려져 있었다고 했다.

신분을 확인할 물품이 없었으므로 지역 경찰은 만 하루 동안 수소문한 끝에 그가 입고 있던

양복의 양복점에 연락을 해서 김양호임을 알아 내었다는 것이다.
"허대수란 자가 같이 떠났다가 사라Bt어요.

경호원들도 모두. 차만 영등포 창고에 버려져 있었는데 차에 핏자국이 있다고 해요."
양유경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동천은 커피잔을 들었다. 이곳은 신용수 소유의 서울 호텔 특실이다.

응접실의 온도는 쾌적했고 커피향은 구수했다.
"허대수와 경호원들이 그를 살해하고 도망친 거죠. 떠날 때 네 대의 차에 회사 금고에 있던

달러와 한국 돈을 모두 싣고 갔다니까요."
이동천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사이토는 지금 일본에 있나?"
그러자 양유경이 한호흡을 할 동안 입을 다물었다가 열었다.
"아마 그렇겠죠."
"사이토가 서울에 남겨 놓은 업체들은 누구에게 관리를 맡겼지?"
"한동원 변호사애요."
대검 부장 출신의 거물이다.
그러자 양유경이 물었다.
"거기 있으면 위험하지 않아요? 안보 위원회에서 제일 먼저 폭력조직을 소탕한다고 했는데. "
"그래서 여기에 있는 거야."
"그래서 유경이한테도 내 위치를 알려 주었던 것이고."
그리고는 딸깍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겼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이동천은 넓은 웅접실 안을 둘러보며 다시 커피잔을 들었다.
폭력 조직을 소탕하73다는 그들의 선언은 당연한 조처었다.

국민들은 부산 사건 둥 연이어 일어나는 폭력 사태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이토뿐만이 아니다.

김양호는 도망차다가 부하에게 살해되었지만 이 호텔의 주인인 신용수도 어젯밤에 일본으로
떠나고 없다.
방문이 열리더니 박철규가 들어섰다.

그의 두 눈이 번들거리며 빛01 Hfl.
"형님, 김양호1가 죽었습니다. "
활기찬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허대수가 그를 죽이고는 수십억의 돈을 뻬앗아 달아났다고 합니다. "
"들었다. "
이동천이 말하자 앞자리에 앉은 그가 놀란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허대수가 영등포의 가게 안에서 오늘 새벽에 칼에 쩔려 죽었다는 소식도 들으셨습니까?"
"아니, 그것은."
"서너 명이 가게 근처에서 더 죽었답니다.

돈 싸움이겠지요. 그놈들은 서로 죽이고 죽은 겁니다. "
"계엄군이 근처에 곽 깔려서 통제를 하고 있다는군요."
이것은 아직 양유경도 모르는 정보인 것이다.
특전단 복장을 한 소령의 인솔로 계엄군이 들이닥친 것은 그로부터 한시간후인 오전 10시경이었다.

응굅실에서 신문을 칡고 있던 이동천은 기세등등한 소령의 지시에 따라 잠자코 일어섰다.
"준비하고 있었으니 갑시다. "
소령은 이동천에게 수갑이나 포승은 채우지 않았다.

그는 이동천 한 명만을 체포해 오라는 지시를 받은 듯 다른 사래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바바리 코트 하나만 걸치고 방을 나오던 이동천이 문득 걸음을 멈추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응접실에 모여 서 있던 부하들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자코 머리를 끄덕여 보인 이동천은 몸을 돌렸다.
오후 1시,

아침에 예고했던 대로 안보 위원회 중대 발표 시간이 되자 국민들은 텔레비전 앞에 몰려 앉았다.
텔레비전 발표자로 나선 것은 외교 분과 위원장 박현식이다.

그는 간단하게 인사를 마친 후에 이것은 청와대의 김재선 정무 수석과 이용덕 한민당 사무총장이

11월 2일 모스크바에서 북찬측 대표와 합의 한 정상 회담의 비밀 추진 내막이라고 말했다.

그는 담담한 말투로 회담의 배경과 내용을 설명해 나아갔다.
텔레비전 카메라는 가끔 그의 얼굴에서 그가 제시한 증거물인 합의서로 앵글을 맞춘다.

정상 회담의 내용은 물론 남북한불가침 조약과 남북간 상호 교류였다.

그리고 나서 그는 또 한 장의 서류를 보여 주었는데 남북간의 비밀 합의 초안이다.
박현식은 지휘봉으로 조목조목을 짚으며 말했다.
"경수로 자금의 집행은 전적으로 북한측에 일임한다는 내용이 여기에 기록되어 있숨니다.

북한이 원하는 금책을 얼마든지 레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
"1998년부터 연간 50만 톤의 쌀을 무상 지원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주로 태국과 미국의 쌀을 사서 지원할 애정입니다. "
"1998년부터 상기 조건 외에 연간 3억 달러의 경제 지원을 하는데 그 방법은 추후 결정하기로

되어 있숨니다. "
하나씩 서류의 내용을 짚고 설명해 나가던 박현식이 시청자를 바라보았다.
"이것으로 김한쳔 대통령은 남북 정상 회담을 성사시켰다는 업적을 세우고 싶었을 것입니다.

둘째로 자신의 후계자와 함꼐 일을 추진 하면서 그를 다음 대선에 당선시키려는 의도였습니다. "
이쯤 되었을 때 대다수의 국민은 긴가민가 하는 감정을 떠나 차츰 그 가능성을 믿기 시작했다.
"후계자는 정상 회담에 참석하여 대통령과 함께 비밀 합의서에 서명을 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북한측도 원하는 바였습니다.
다음 대통령이 될 사람이 서명을 해야 다음 5년을 믿을 수 있었던 것 입니다.

우리 한국의 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
박현식은 연단 위에 놓인 물컵을 들어 한모금을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국민은 후계자가 대통령과 함꼐 정상 회담에 참가하여 김정일의 신뢰를 받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북한측은 그에게 각별한 경의를 보일 것이고 그것을 본 여러분들은 그가 대통령이 되어야만

원만한 남북 관계, 이산 가족 교류, 나아가 상호 왕자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게 되실 것입니다.

이것은 북한과의 각본입니다. "
한 호흡을 쉰 그가 말을 이었다.
"또 하나의 각본이 있습니다. 김한쳔 정권의 무자비, 파렴치, 매국적인 행위의 증거로 그들은

북한측과 짜고 정상 회담 제의의 동기를 만들기 위해 북한측에게 요청하여 휴전선의 총격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 우리의 무고한 젊은 장병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
목이 메인 박현식이 기침을 하면서 시선을 내리자 3군 사령관 겸 안보위 위원 이일섭이 엄상호를

바라보았다.

엄상호는특전사를 그대로 맡은 채 안보위 위원을 겸하고 있다.
"이만하면 되었어. 이제 끝났다. "
그는 소리나게 찻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이것으로 안보위와 우리들의 거사는 명분이 섰다. "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엄상호는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면서 얼굴에 옷음을 띠었다.
열어 놓은 창문으로 싸늘한 바람이 몰려 들어왔지만 양유경은 내버려두었다.

커튼이 천천히 부풀었다가 다시 가라앉으면서 정원으로부터 진한 나무 냄새가 풍겨 왔다.
박철규는 창 밖으로 향해 있는 양유경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동천이 안보위에 잡혀 들어간 지 오늘로 열흘째가 되었지만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형편이다.

갖은 수단을 동뭔해 보았지만 저쪽은 이제 전혀 새로운 집단으로 바러어 있었으며 이동천은

경찰에 잡혀 있는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양유경으로부터 갑자기 만나자는 연락이 왔을 때 곧장 달려온 것도 무언가 이동천에 대한 소식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10일이 지나도록 양유경은 조직과 앞으로의 상황 이야기만 한다.

의도적으로 기피하고 있는 것이다.
박철규는 헛기침을 했다.
"형님의 체포 사실이 언론에 한번도 보도되지 않는 걸 보면 무언가 다른 속셈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조무래기들은 모두 보도가 되거든요."
그리고 박철규도 얼마든지 잡아갈 수가 있는 데도 내버려두고 있는 것이다.
양유경이 머리를 돌려 박철규를 바라보았다.
"그는 군 부대에 잡혀 있어요. 김포 어느 쪽에.그 이상은 나도 몰라요."
"아버지와 친분이 있던 군 관계자한테서 겨우 얻어낸 정보예요."
"김포라면 특전사나 수방사‥‥‥‥
"쿠데타의 핵심 부대지요.아무래도 나오기 힘들다고 했어요.

언론채 보도하지 않츤 것도 그 때문이라고."
가라앉아 가는 커튼을 바라보며 그녀가 말을 이었다.
"박현식이 내버려두지 쟈을테니까요.그는 이용덕한테 박현식의 음모 내용을 말해 주었는데

그 사실을 박현식이 안 것 같아요."
이용덕은 해외로 도피했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그는 박현식에게 회담의 정보를 제공해 준 대가로 해외로 나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김한영 대통령과 김재선 수석, 그리고 비서관 서너 명은 안보위에 의해 국가 반역죄와

매국 행위로 기소당한 상태였다.
박철규가 억눌린 숨을 내쉬었다.

그도 그 소문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 개자식,'그놈은 형님을 이용하려고 했던 거요.
사람을 잘못 본 것이지."
그가 뱉듯이 말하자 양유경이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당하고 있으면 오히려 더 나았을텐데,왜 그랬죠?"
시멘트로 사방이 막혀 있어서 환풍이 되지 않는 감방은 습기에 절어 눅눅했다.

그리고 뼛속까지 시리도록 출다.

정시긱헝 감방의 안쪽에 나무 침상이 붙여져 있고 앞쪽 벽의 구석에 놓여 있는 양철통

두 개는 대소변을 받는 곳이다.

정면의 쇠문 밑으로 1센티미터쯤의 틈이 가로로 벌어져 있었는데

그곳에서 빛이 들어을 꽐 방안애는 전등도 없다.
나무 침상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던 이동천은 오늘이 열흘째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내었다.

시졔를 러앗겼으므로 하루 세 끼의 식사로 계산하여 28번이니 지금은 열톨 낮이다.

 이곳의 군인들이 모두 20명 가량이고 지휘관은 소령이었다.

감방에 처넣어진 이후 한번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심문 같은 것도 받지 않았으나 복도에서

들리는 병사들의 이야기로 추측해낸 것이다.
이동천은 똑바로 앞쪽을 바라보았다.

각오하고 있었으니만치 후회도 없고 미련도 없다.

군의 집권 세력은 조직 세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김양호도, 조성표도 사라진 데다 러시아 마피아도 머리를 잃었고 야쿠자와 신용수까지

줄행락을 쳤다.
수많은 곡절을 려으면서 그가 하나씩 닦아 가던 과정을 군은 단숨에 쓸어 없앴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껍질뿐이다.
그때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 오고 있었다.

그리고는 열흘만에 철컹이며 쇠문이 열리더니 폭풍 같은빗살이 안으로쏟아져 들어왔다.
박현식은 방으로 들어서는 이동천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천장에 달린 형광등 빛에 눈이 부신 이동천이 눈살을 찌푸리며 다가 오자

그가 뒤에 선 병사들에게 말했다.
"너회들은 나가 있어."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이동천은 박현식을 마주보고 앉았다.

긴 테이블에 의자만 서너 개 놓인 정사각형의 방이다.

그러나 박현식의 뒤쪽으로 난 유리창을 통해 창 밖의 나무가 보였다.
박현식이 담뱃갑과 라이터를 집어 그의 앞으로 밀었다.

그러자 그에게서 강한 쉐이브 로션의 냄새가 풍겨 왔다.
"논란이 왜 있었소, 우리 안보위 내에서도 말이오."
박현식이 입을 열었다.

티 한 점 묻지 야은 횐 셔츠에 짙은 남색의넥타이가 빈틈없이 조여져 있다.
"대부분이 처형시키자는 쪽이었지. 하긴 대통령도 직무를 박탈당하고 매국과 반역 행위로

재판을 받는 상황이니까."
"당신은 재판을 받게 되면 사형이야.수많은사건에 연루되어 있고 증거도 있어."
이동천이 텁수룩하게 수염이 자란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박현식이 말을 이었다.
"우습지만 당신을 구제하자고 주장한 것은 나야. 결정을 할 때까지 언론에

노출시키지 말자고 한 것도 나고. 나는 내 동지들에게 당신이 이용덕한테 나와

기무사가 반역을 뫼한다고 말했던 것도 이야기하지 않았어."
"부산에서 당신은 고의로 나서지 않았어.그때부터 나를 배신한 것이지."
그러다가 박현식이 테이블 위의 담배를 눈으로 가리켰다.
"담배 피우지 마랴겠나?"
이동천이 머리를 젓자 그가 풀색 웃었다.
"부산의 폭동을 계기로 일으키려던 거사를 대통령의 어설픈 작전 덕분에 성공하게 되었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지. 솔직히 나는 당신한테 원한 같은 것은 없어."
이동천이 입을 열었다.
"내가 폭동을 일으키고, 그리고 당신들이 거사에 성공했다면 그래도 나는 이렇게 잡혔겠지.

그렇지 않소?"
"아마 그랬을 것 같군."
박현식이 다시 웃었다.
"그리고 즉각 처형했을지도 몰라. 지금처럼 여유가 없었을테니까. "
"당신을 풀어 주TE어."
금방 표정을 굳힌 박현식이 이동천을 쏘아보았다.
"지금 한국의 조직은 모두 머리를 왑고 사분오열 되어 있어.

조성표에 이어 김양호도 살해된 데다가 신용수도 일본으로 튀었고 야쿠자도 마찬가지지.

러시아 마피아는 머리를 잃은 데다가 상황이 이러니 숨을 죽이고 있고."
"모두 당신이 휘저어 놓았지. 안 그래?"
"당신이 나가서 통일을 해. 밤의 세계는 당신에게 위임할 데니까.
우린 박철규도 배장근이도 건드리지 않았어."
이동천이 데이블 위에 놓인 담뱃잠에서 담배를 레어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인 담배에서 한모금을 빨아 길게 연기를 내뿜은 그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박현식의 말이 다시 귀를 울렸다.
"사분오열 되어 있는 밤의 조직을 공권력으로 다스리는 데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기 때문이야."
그리고는 문득 말을 멈춘 박현식이 이동천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우스운 일이지만 내가 당신을 믿고 있기도 하고."
눈발이 회끗회끗 보이기 시작하는 2월 초순의 저녁 무렵.

시청 쪽에서 달려온 대형 승용차 두 대가 차량 사이를 빠져 나와 소공동 타워 빌딩의 현관 앞에서

멈추었다.

현관 앞에 늘어서 있던 사래들이 일제히 허리를 꺾었고 뒤쪽 차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박철규이다.
그는 부하들의 호위를 받으며 곧장 빌딩 안으로 들어섰다.
스카이 라운지에 있는 마리온 글럽은 이름도 그대로였고 실내 장식도 바꾸지 쟈았다.

들릴 듯 말 듯한 피아노 음악도 마찬가지였는데
박철규가 들어서자 다가오는 여자는 다르다.

지난 달에 일본페서 돌아온 윤해선이다.
그녀는 이제 마리은 클럽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문재은이 파리에 눌러 살기로 마음을 먹은 터라 그녀가 인수한 것이다.

그들이 창가의 자리에 앉자 종업원이 소리없이 다가와 술과 안주를 내려놓고 돌아갔다.
박철규가 머리를 들어 윤혜선을 바라보았다.
"안보위 이 위원이 몇 시에 은다고 했습니까?"
"10시경에 친구들하고 온다고 했어요."
박철규가 머리를 』1덕였다.
"가방만 전해 주시면 됩니다. 그자가 나갈 적에."
"돈인가요?"
그러자 박철규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f, 아실 것 없숱니다. 아시면 골치만 아파지실테니까요."
그 시간에 이동천은 양유경의 저택 응굅실에서 그녀와 마주앉아 있었다.

어둠에 덮여 가는 정원에 어지럽게 훌날리는 눈발이 보였다.
양유경이 찻잔을 내려놓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검정 바탁에 횐무의가 있는 가운 차림이었다.
"야마구치조가 일본 정부를 움직여 안보위에 손을 쓴다고 하던데요. "
이동천이 머리를 』1덕였다. 1들은 한국에 투자한 막대한 자산을
되찾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히 이동천이 장악하고 있었다.
양유경이 말을 이었다.
"언젠가는 풀리지 않겠어요?내년에 문민 정권으로 돌아가면 말예요. "
"그랄"
그러고 보면 러시아의 마피아도 마찬가지였다.

마피아가 투자한 업체들은 이제 배장근이 장악하고 있었다.

계엄령이 선포되어 마피아의 진퇴가 막히자 김달수는 부하들을 데리고 투항해 왔다.
"다시 예전같이 되리라고 생각해?"
이동천이 묻자 양유경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눈이 부실 듯 환한 웃음이었다.
"당신은 아버지보다 강해요. 몇 배나."
"나는 당신이 자랑스러워요."
그녀의 시선이 이동천의 얼굴에서 떨어져 잠간 가운에 머물다가 다시 올라왔다.

늘 사이토가 입던 가운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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