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밤의 대통령

8. 대통령의 패착

오늘의 쉼터 2015. 1. 1. 23:44

8대통령의 패착 
 

 

육본 작전 참모 부장실 안이다. 오후 1시 30분치 되었는데도 방안
의 불이 켜져 있는 것은 지금 전군에 비상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참
모 부장 이영근 소장은 의자에 앉아 벽에 붙온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
었다. =1의 옆에 서 있는 것은 유덕환 대령이다.
   이영근이 머리를 돌려 유덕환을 바라보았다.
   "안 중령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제』공수떨만 아니라 제2, 3공수 모
두가 가담했다고 봐야 되겠지. 엄상호 중장 모르게 움직일 수가 없으
니까. =1령다면 특전 사령관 엄 중장의 지휘로 일어난다는 이야기가
된다. "
   그의 말투는 차분해서 마치 작전학을 강의하는 것 같았다.
   "더군나 지금은 수도권과 전방의 모든 부대가 비상 대기 상태야.
모든 부대가 쿠데타 준비를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
   "부장님, 하지만 경계는 하셔야 됩니다. 참모 총장님이나 아니면
                                              대통령의 패착 277
  군 사령관님께라도."
     그러자 이영근의 날카로운 시선이 라르게 유덕환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참모 총장 이동진과 3군 사령관 오재국은 대장으로 수도권 방위의
 최고급 군 책임자였지만 이영근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영근은
 문민 정부가 들어서면서 물을 먹은 장군 중의 하나였는데 그 이유는
 하나회 장군들과 친했다는 것이었다. 고참 중장인 수방 사령관 이일
 섭이 이영근과 육사 동기생이었는데 장군 진급은 이영근이 빨랐으니
 그가 얼마나 견제를 받고 있는가를 알 수 있었다.
    "조금 두고 보자."
    이영근의 말에 유덕환은 입을 다물었다. 답답했지만 하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오재국과 이동진은 제각11 자리를 지키고 있었
으므로 사건이 발발하면 금방 연락이 되기는 할 것이었다.
    그러자 전화벨이 울렸으므로 유덕환이 전화기를 들었다;
    "참모 부장실입니다. "
    그러다가 유덕환이 몸을 뻣뻣하게 세우면서 눈만을 비틀어 이영근
을 바라보았다.
   "부장님, 대통령 각하이십니다. "
   이영근포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얼굴이 금방 하알게 굳어진 그는
전화기를 앗듯이 받아 들었다.
   "예, 참모 부장, 소장, 이영근입니다. "
   현 정권에 들어서서 진급을 한 적도 없고 대통령이 참석한 회의에
들어간 적도 없었으므로 전화상이기는 헌지만 이것은 그의 대통령과 ,
의 최초의 조우였다.
278 밤의 대통령 제식근 -템
    "참모 부장이오?"
    하고 꺼쪽에서 묻는 목소리는 분명히 텔레비전에서 듣던 대통령의
 것이다.
    "예, 라하. 참모 부장, 소장, 이영근입니다. "
    "그래, 이 소장, 지금 3군 사굉관과 참모 총장이 자리에 없어요."
    대통령의 굵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둘 다 누굴 만나러 갔다는데 아마 사고가 생긴 것 같아서 전화를
한 거요."
    "f1?"
    "잘 들으시오, 이 소장."
    "예, 각'하."
   "지금 우리나라가 매우 위험한 처지요. 군대가 그게, 다는 아니겠
지만 그것이 움직이려고 한단 말이오."
   대통령이 말을 아꼈지만 이영근은 머리칼이 쭈뼛거릴 정도로 놀라
고 있었다.
   대통령이 말을 이었다.
   "국방 장관을 시켜서 지시를 하는 것보다 내가 직접 하는 것이 나
을 것 같아서. 나는 군의 통수권자인 대통령으로서 이 소장에게 명령
하는 것o'1오. 모든 부대를 장악해서 반란군을 체포하시오. 이것은 대
통령의 명령이오. 알겠소?"
   "예, 각하."
   이제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이영근이 말했다.
   "시행하TE습니다, 각하."
   "수도권뿐만 아니라 제1군, 2군의 병력도 이 소장 명령에 따르도
                                             대통령의 패착 279
록 지시해'두겠소. 알겠소?"
   "예, 각하."
   "안기부장과 기무사가 배반을 했소.그것을 알고 있도록."
   "예 , 각fr."
   그리고 특전 사령부 소속의 3개 여단이다. 이제 안형규의 고발이
사실이 된 것이다.
   "즉각 시행하시오."
   다시 대통령의 말소리가 귀를 울렸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대통령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통령의 집무실 안이다. 방안에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방 장관
 권성무, 비서실장, 안보 수석 오병탁과 정무 수석 김재선, 그리고 이
 용덕이 끼여 있었다.
     청와대는 지금 비상 상황이다. 좀처럼 회의 때는 얼굴을 내밀 기
 회가 얼던 경호실장도 자주 들락거리고 있었는데 청와대의 경비 관
 계 때문이었다.
    전화벨이 울리자 안보 수석 오병탁이 대뜸 전화기를 쥐고 대답하
더니 대통령에게로 바겨 을렸다.
    "각하, 제1군 사령관입니다. "
    1군 사령관 김병진 대장은 지금 양구 북방의 전방 부대에 나가 있
었으므로 이제야 연결이 되었다.
   대통령이 전화기를 쥐었다. 그의 얼굴은 연이은 사태에 의한 긴장
으로 갑자기 10년은 더 늙어 보였다.
   "아, 김 대장. 나요."
280 밤의 대통령 제4부 -방
    대통령이 표정과는 달리 활기찬 목소리를 내었다.
    "군부에 쿠데타 음모가 있어. 그래서 이쪽에서도 제반 조처를 다
 취해 놓=B 있으니 바로 출동 준비를 해놓시오."
    그러자 저쪽은 어안이 벙벙한 모양이었다.
    "각하, 명령대로 따르겠습니다만, 어느 부대가."
    "안기닦와 기무사가 중심으로 일을 꾸민 것 같소. 아직 부대는."
    조금 전의 통화에서 이영근은 특전사 소속의 여단들을 말하지 않
았던 것이다. 서로 경황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 대장, 부대는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지요?"
   "예, 파하. 확실합니다. 그런데 지금 어디 계십니까?"
   "청와대요."
   "그곳이 위험하십니까?"
   "아니, 아직. 하지만 다시 연락할데니까."
   "그럼 수도권은 3군 사령관이 장악하고 있습니까?"
   "박현식이 참모 총장과 3군 시령관을 저녁 초대 했다는대 수행원
들과 같이 모두 행방불명이오."
   "김 대장,최대한 빨리 부대를 대기시키시오.반역자들을 토벌하
는 데 김 대장이 지휘해 주어야겠소."
   "알겠숨니다, 각하."
   대통령은 오병탁에게 전화기를 건네 주었다. 참모 본부에 있는 이
영근에게도 모든 지휘권을 맡긴다고 했지만 지금 1군 사령관에게도
같은 말을 했고 조금 전의 2군 사령관에게도 국군의 작전권을 맡아
주어야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것은 아직 누가 반역자인지를 모르기
                                             대통령의 패착 281
때문이다. 그들을 섣불리 불러들였다가 당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밤 8시 30분.수방사령관 이일섭 중장은 부관이 건네 주는 전화
를 받았다.
   "전화 바찐습니다. "
   "수방 사령관이오? 나, 대통령이오."
   "예, 각하."
   상황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대통령의 전화인 것을 모두 눈치챈
것이다.
   "사령관, 지금 군에서 불순한 자들의 준동이 있는 것 같소."
   대통령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울렸다.
   "그래서 사령관에게 내가 직접 연락하는 것인데 절대 움직이지 마
시오. 내 명령이 있기 전까지 움직이면 안됩니다. 아시겠소?"
   "조금 전에 참모 부장한테서도 연락을 받았습니다, 각하 잘 알겠
습니다. "
   "사령관만 믿Tf소."
   "염려 마십시오, 각하."
   "그럼 끊겠소."
   전화기를 내려놓은 이일섭이 주위에 둘러서 있는 부하들을 바라보
며 웃었다.
   "나만 믿겠다는군, 대통령이."
   "기무사 연락으로는 대통령이 직접 전방의 사단장한테까지 전화
를 하고 있답니다, 사령관님."
   참모 하나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282 밤의 대통령 제4부 -토
   "특전사를 제외한 모든 부대의 지휘관에게 대기 명령을 내리고 있
습니다. "
   "그래, 어디 두고 보자."
   이일섭이 웃음 떤 얼굴로 말했다.
   "그 명령이 먹히는지 아닌지를."
   1군 시령관 김병진 대장은 한미 연할사 부시령관인 박윤집 대장의
전화를 받는다.
   "김 사령관, 각하의 전화 받았소?"
   "받았어. 누가 쿠데타를 일으킨다고 하던데, 어떻게 된 거야?"
   "안기부와 기무사, 특전사까지는 알겠는데 나머진 모르겠어."
   "그건 나도 들었는데. 그쪽 러셀 사령관은 어때?"
   "어떻긴. 지금 대통령의 전화를 받고 있는 모양이오."
   "대통령이?"
   "그래요."
   "그럼 미군을 움직여서 우리 군을 친다는 거야?"
   "글쎄, 그건 나도 모르T?t는데 ."
   "이런 빌어먹을,"
   그리꼬는 통화가 끊겼다.
   전화기를 든 제2군 사령관 신호중 대장은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매카시 중장,제2군의 전시 작전 통수건이 한국군에 있는 이상
난 부대 이동을 시키겠소. 난 대통령 각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
   "그건 압니다, 대장, 하지만 지금이 전시는 아니지 않습니까?"
                                             대통령의 패착 283
   그는 한미 연합 시령부의 참모장인 매카시 중장이다. 그가 말을
이었다.
   "2개 사단 병력을 이동시킨다면 대단한 혼란이 일어나겠는데. 더
구나 전차 연대까지 움직이면 말이오."
   "지금 쿠데타가 일어난다는 각하의 말씀이 있었어. 난 특전사 놈
들을 저지할 참이오."
   신호중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금이 어느 때라고. 난 당장에 출동하겠소. 이건 당신들께 통보
하는 것이지 지시를 받을 사항이 아니오."
   "할 수 없군요.그렇다면 행운을 빕니다,대장."
    같은 시간 육년의 작전 상황실, 10여 명의 장군과 영관급 장교들
로 북적이는 상황실은 활기에 차 있었다. 전화를 주고받는 고함치는
듯한 목소리와 전화벨 소리, 그리고 통신기의 기계 소음이 방안을 메
우고 있다.
   이영근이 부하가 건네 주는 전화를 받자 주위의 소음이 딱 그쳤
다. 어렵게 연결이 된 특전 사령관 엄상호 중장이다.
   "난 대통령 각하의 지시를 받아 군을 통제하고 있소, 엄 중장."
   이영근이 말하자 저쪽에서 웃음 소리가 났다.
   "이 소장,당신도 똑같군.대통령이 한 말씀 내려 주니까 용기가
충천되는가?"
   "엄 중장, 말을 삼가시오. 당신의 기도는 좌절될 거요."
   "난 그냥 죽지는 않아."
   "모든 부대가 』1금출동 준비를 하고 있어. 이겐 늦었어."
284 밤의 대통령 제살L _르
   "그 모든 부대가 우리쪽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대
통령은 출동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있지.이것이 한국 대통령의 현
주소다. 군을 믿지 못하니까 군을 움직일 수가 없어."
   "내가 작전 지휘권을 갖고 있다, 엄 중장. 네가 목숨을 걸었다면
나도 마찬가지야."
   "같이 죽겠군,우리는, 그래, 양쪽 모두 소신이 대단하니 후회는
없을 것이다. "
   전화가 꾼기자 이영근은 전화기를 귀에서 몌고는 머리를 들었다.
   그리고. 유덕환은 그의 얼굴에 떠오른 회미한 웃음기를 보았다. 그
것은 생기라고 표현할 수도 있는 표정이었다.
    수도 밧위 시령관 이일섭은 이번 쿠데타군의 실질적인 지휘관이라
고 볼 수 있다. 그는 초저녁부터 상황실에 앉아 걷잡을 수 없는 흔란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상황을 살펴로고 있었다.
   그의 알에 앉아 있는 것은 기무 사령관 조영찬이었다. 시간은 밤 9
시 20랄.본래의 거사시간은 자정이었지만 그것을 당겨야 할지 늦
추어야 찰지를 아직 결정하지 못한 상황이다. 조영찬이 머리를 들고
이일섭을 바라보았다.
   "이대철 있을 수는 없숨니다. 시간을 당겨서 치고 나갑시다. "
   "71다3B , "
   이일섭이 짧게 말하고는 담배를 껴내어 입에 물었다. 이영근의 지
Al에 의해서 이미 각 부대에 파견되어 있는 기무사 요원들은 영내에
감금되매 있었다. 수방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참모장은 기무사
파견 대깡을 비롯하여 요원 모두를 막사에 감금시켰다고 이영근에게
                                             대통령의 패착 281
보고했지만 지금 파견 대장 정호일 대령은 옆쪽에서 누군가와 통화
를 하고 있었다.
    길게 연기를 내뿜은 이일섭이 입을 열었다.
    "2군의 제 18, 3B사단이 움직이려다가 중지했다는 것에 느긴 점이
없나?"
   2군 시령관 신호중 대장은 대전과 전주 근처에 주둔하고 있는 2개
의 보병 사단을 출동시키려다가 대통령의 지시로 중지한 것이다.
    "대통령은 군을 움직이지 못해. 따라서 우리가 움직이지 않는 한
진압군도 없다. "
    "우리가 움직여도 진압군을 출동시키지 못할 거요. 이영근에게 지
휘권을 주었다지만 그자도 믿지 못할테니까요."
   그러자 부관이 전화기를 들고 다가왔다.
   "사령관님, 안기부장입니다. "
   그는 서둘러 전화기를 건네 받았다.
   "박 부장, 지금 어디에 있어?"
   "시내에."
   박현식이 짧게 말했다.
   "부대를 움직이지 말어, 이 중장.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우리에
게 이롭게 되는 것 같으니까, "
   "그러고 있어."
   "지금은 반란군도 진압군도 업는 상황이 되었어, 특전사가 드러난
지 오래인 데도 병력을 움직이지 못해."
   "나도 지금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2군이 출동하려다가 그만둔 것, 알고 있지?"
286 밤의 대통령 제4부 -111
"f?ot."
"이영근이 기를 쓰고 있으니 그놈을 조심하고. 기다려."
"알고 있어. 상황을 봐서 움직일테니까."
전화기를 건네 준 이일섭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묘한 쿠데타로군."
   그 시간에 이영근은 대통령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이제 조금 지
친 얼굴이다.
   "제54라단은 어디에 있나?"
   대통령이 묻자 이영근이 벽에 붙은 지도를 을려다보았다.
   "예,자하.포천 북방에 있는 1군 소속 기갑 사단입니다. "
   "포천 북방이면, 그쪽에서 김포 쪽으로 이동한단 말이지?"
   "아닙니다. 서울로 들어와서 김포 쪽의 통로를 막도록 해야 합니
다. 그러면 특전사의 2개 여단은 서울 진입이 불가능해질 것입니다. "
   "사단장이 누구야?"
   "임장길 소장으로 육사 출신입니다. "
   "각하, 시간이 급합니다. 지금 김포와 서울 사이에는 헌병 1개 대
대와 포댕 1개 중대만."
   "미군 사령관하고 연락이 되었어."
   대통링이 말을 돌렸다.
   "미 3사단을 동두천에서 내려보내도록 이야기를 하고 있어. 그것
만 내려오면 되겠는데. 소장 생각은 어떤가?"
                                             대통령의 패착 287
   "이 소장 듣고 있나?"
   "예 , 각fl."
   "조금만 기다리게. 곧 연락할테니까. 그리고 5꾸사단 출동은 조금
보류시켜."
   "예, 각하."
   대통령의 집무실을 나온 김재선은 복도에서 서성거리는 경호원들
과 비서관들 사이를 지나 아래충의 휴게실로 들어섰다. 수석 비서관
용의 휴게실이어서 빈 소파들만 놓여 있을 뿐이다.
   그가 소파에 앉자 문이 열리더니 이갑종 비서관이 들어섰다. 언제
나 단정했던 그가 오늘은 넥타이의 매듭을 늘어뜨린 모습이다. 그의
앞자리에 앉은 이갑종이 충혈된 눈을 들었다.
   "이러다가는 군이 곧 밀고 옵니다, 수석님, 각하께서는 지금 결단
력을 잃으셨습니다. "
   "글쎄, 그건 알지만 난들 어떻게 하나?"
   김재선이 한숨과 함께 어깨를 늘머뜨렸다.
   "군 지휘관 누구 한 사람에게 작전 지휘를 맡겨야 하는데, 이 소장
이나, 1군 사령관, 아니면 2군 시령관한테라도."
   아무도 믿지를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휘권을 맡겼던 지휘관이
사태를 진압하고 나면 새로운 실력자로 부상하는 경우는 세계 각국
의 사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그래, 무엇 때문에 날 보자는 거of"
   김재선이 묻자 이라종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박 부장한테서 조금 전에 연락이 왔습니다. "
288 밥의 대통령 재4력 -111
      "무엇이?"
     이번에는 상체를 세운 김재선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철 말인가?"
     "예, 제 핸드폰으로."
     "그자가 왜?"
     "1, 2괄 시령관이 모두 쿠데타 세력이라고 하더군요."
     "거짓말이야. 우릴 이간질시키는 것이다, 그 교활한 놈이."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
    하지만 확신할 수가 없다. 그래서 군을 이동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박 부장이 제의를 해왔습니다, 수석넙."
    이갑종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국가 안보 회의를 설치하고 그 부위원장에 수석님을."
    "미친 수작."
   와락 눈을 치켜 뜬 김재선이 이잠종을 노려보았다.
   "내가 그놈들 노리개가 된단 말인가?꿈같은 소리 말라고 그래."
   "상황이 나뽐니다,수석님.미 3사단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러셀
대장은 1군 사령관 김병진 대장과 2군 사굉관 신호중 대장, 그리고
연할사 부사령관인 박윤집 대장의 반대를 받고 있답니다. "
   "그것도 박현식이 한 소리야?"
   "사실익 겁니다, 수석님."
   "대통령 각하는 지금 충성스런 군인들도 놓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수석님."
                                             대통령의 패착 289
      영동의 밤. 10시가 가까워지자 논현로의 컬튼 호델 근처에는 호텔
  주차장을 왁 채우고 남은 수백 대의 차량이 길가에 주차되어 있었다.
  고급 나이트클럽이 운집되어 있는 곳이라 오늘도 눈이 번쩍 뜨이는
  미모의 여자들이 유행에 어울리는 차림새의 남자들과 거리를 메우고
  있다. 지금이 유흥가에서는 가장 활기찬 시간인 것이다.
     창 밖에 펼쳐진 화려한 거리의 야경을 바라보던 이동천은 옆에 앉
  은 박철규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이용덕은 아마 청와대로 달려갔을 것이다. 안기부장과 기무 시령
  관은 거물이야. 대통령에게 보고해야만 할 거야."
     "지금쯤 난리가 났을지도 모르겠군요."
     박철규가 얼굴에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가 나설 일이 아닙니다, 이제는."
     "정권이 썩었고 체제가 위험하다고 하더라도 나는 합리적인 정진
 E체를 원했던 것이다. "
    "알고 있습니다, 형님."
    박철규가 머리를 끄덕였다.
    "하지만 힘이 들 려니다. 이 정권이 이어지건 야당에게 넘어가건
 군인들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할테니까요."
    그러자 핸드폰의 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전화기를 귀에 대자 잉유경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어디 계세요?"
   이동천이 힐끗 박철규를 바라보았다. 그는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290 밤의 대통령 제4부 -르
   "지금 한남대교를 넘어가고 있어."
   "그러세요? 그러면 빨리 지방으로 피하시는 것이. 서울에 쿠데타
가 일어날 것 같아요."
   양유결이 서둘러 말했다.
   "사이토한테 들었는데 쿠데타군이 곧 서울로 진입해 들어을 것이
라고 해요. 그 사람 말로는 한국군 대부분이 쿠데타군에 가담한 것
같다고."
   "사이토는 누구한테서 들은 거이?"
   그가 묻자 박철규가 힐끗 이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일본 대사관에서요. 그 정보는 정화해요. 사이토도 지금 짐을 꾸
리고 있어요.부산으로 갔다가 상황을 봐서 일본으로 피하겠다고."
   "박현식 씨가 주도권을 잡은 것 같아요. 사이토는 부대 지휘관들
이 대통경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럴 리가."
   "그래서 대통령은 미군 사령관 러셀 대장한테 미군 제린을 서
을 방위걸 돌려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하는군요."
   러셀 대장은 백발의 노장이다. 그는 앞에 서 있는 연합사 부시령
관 박윤집 대장을 쏘아보았다.
   "장군, 난 당신 대통령의 협조 요청을 받았고 거기에다 우리 대통
령의 승낀까지 받았f. 더욱이 나는 연합사 사관으로 상황이 급박
할 경우체는 내 독단으로 병력을 동원해서 한국의 안보를 지킬 권한
도 있어."
                                             대통령의 패착 291
   그의 옆에 선 참모장 매카시 중장도 박윤집을 쏘아보고 있었다.
러셀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당신은 병력을 동원하지 말라니. 나에게 지시하는 거야,
뭐야?"
   "우리 한국군이 처리한다는 말이오, 장군."
   박윤집이 그에게로 한걸음 다가섰다. 작달막한 키에 마른 체격이
어서 매카시의 절반밖에 안되어 보이는 박윤집은 턱을 치켜들고 있
었다.
   "한국군끼리라면 유혈 충돌은 피할 수 있어요, 장군. 미군이 나서
면 금방 전쟁이 벌어집니다. 그러면 걷잡을 수 없게‥‥‥‥
   그는 책상 위에 두 팔을 짚고 러셀을 쏘아보았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 것 같소? 쿠데타군이 당하는 것을 본 다
른 한국군이 미군을 뒤에서 칠 상황이 안 일어난다고 누가 보장할 거
요."
   "나는 한미 연합군 사령관이야!"
   러셀이 손바닥으로 책상을 쳤다.
   "전시 작전권은 나에게 있어!한국군은 내 지휘하에 들어온단 말
이야!"
   "그걸 누가 따른단 말이야!"
   이제 박윤집도 목청을 높였다.
   "쿠데타군은 우리에게 맡기면 돼! 대통령은 우리가 설득할테니까
말이야."
   "당신도 쿠데타 세력인가?"
   러셀이 손가락으로 박윤집의 얼굴을 가리키자 매카시가 입맛을 다
292 밤의 대통령 제갈」 -111
 셨다.
    "내1'『 쿠데타 세력이라구?"
    그러자 금방 얼굴이 시뺄겋게 달아오른 박윤집이 갑자기 어깨를
 펴더니 허리춤에 두 손을 짚었다. 금방이라도 허리에 찬 권총을 낼
것 같은 기색이었으므로 질색을 한 매카시가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장군, 진정하시오, 진정하시고 차근차근 이야기를."
    "러셀, 나에게 사과해라."
   박윤픽이 고함치듯 말하자 러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
자 방문이 열리더니 대령 한 명이 들어섰다.
   "장군, 전화가 왔습니다. 제1군 사령관 김병진 대장입니다. "
   한동안 박윤집을 노려보던 러셀이 전화기를 귀에 대었다.
   "러셀이오."
   "장군, 나, 김이오. 미군 동원은 안됩니다. "
   김병진이 대뜸 소리쳤으므로 러셀은 와락 이맛살을 찌푸렸다.
   김병진이 다시 고함을 쳤다
   "한국 대통령을 미군이 지킨단 말인가? 백만 한국군이 있는데? 이
게 문슨 개같은 짓거리야! 미군 동원은 절대 안돼! 내가 가만두지 않
겠어!"
   10시 10분. 육본의 상황실. 수도 방위 사령부 소속 제7, 31사단이
쿠데타군이라는 증거가 확인되었다. 부대를 탈출한 장교 서너 명이
육본에 신고를 해왔기 때문인데 그들의 침공로와 공격 목표도 상세
하게 밝혀진 것이다. 그리고 수방 사령관 이일섭이 쿠데타군의 주장
이고 사령부에는 기무 사령관 조영찬이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대통령의 패착 293
     이영근은 즉각 대통령에게 보고를 했지만 가슴이 억눌린 듯한 기
 분이었다. 또 어느 부대가 쿠데타군인지 불안해진 것이다. 이쪽에서
 는 이일섭에게 두 번이나 전화를 해서 특전사의 침공로를 수방사 병
 력으로 막도록 부탁했던 참이었다.
    이영근은 피로한 눈을 들어 벽시계를 올려다보았다. 대통령이 미
 제3사단을 서울로 끌어들이려고 했던 것이 모늘 밤의 결정적인 패착
 이었다. 그것이 알려지면서부터 제1군과 제2군 사령부에서 수없이
 걸려 오던 전화가 약속이나 한 듯이 뜸해지더니 이제는 간간이 상황
 만을 체크해 오고 있었다. 1군 사령부의 참모가 연락해 온 바에 의하
 면 시령관 김병진 대장은 미군이 움직인다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고
함을 쳤다는 것이다.
    상황은 태풍 전야처럼 갑자기 조용해져 있었다. 그러나 곧 닥쳐을
엄청난 태풍을 기다리는 불안한 정적이었다.
   신고자에 의하몃 쿠데타군의 출동 시간은 오늘 밤 자정이다. 세
시간이 넘도록 거의 모든 부대의 지휘관과 통화를 했지만 그가 한 일
은 서울로 통하는 도로에 총 1개 대대 규모의 헌병과 1개 연대 병력
의 보병을 이곳저곳에서 끌어모아 경계를 시킨 것뿐이다
   쿠데타군도, 저지군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동안에 한 일이 있다면
수십 명의 지휘관이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구두로 충성을 약속한 것
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집무실 안. 대통령은 수방사 병력이 쿠데타군으로 확인
되자 더욱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국방 장관 권성무가 청와패 경비
를 위해 안양에 있는 수도 기갑 사단 소속의 1개 기갑 대대를 불러들
294 밤의 대통령 제4부 -르
 이자고 건의하자 단번에 머리를 저었다.
     신임했던 참모 총장과 제3군 시령관이 박현식에 의해 실종된 것은
 대통령에게 엄청난 충격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그는 군을 불
 신하게 된 것이다.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말없이 앞쪽의 벽을 응
 시하고 있는 대통령의 모습은 외로워 보였다.
     이쪽도 소강 상태인 것이다. 처음에는 군사령관도, 군단장들도 경
 쟁하듯 진화를 걸어 왔는데 차츰 뜸해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간간
 이 전화벨.이 울리고 있다.
    그때 비서관 하나가 서두르며 다가왔다. 손에는 전화기를 들고 있
 었다.
    "각하, 러셀 대장입니다. "
    전화기를 건네 준 비서관이 통역을 하려는 듯 그의 옆자리에 웅크
 리고 앉아 다른 전화기를 귀에 대었다.
    "대통럼 각하, 러셀입니다. "
    비서관이 한국어로 말했으므로 방안의 사람들은 순식간에 조용해
졌다.
    "장군, 무슨 일이오?"
   "각하, 현 상황을 이대로 둘 수가 없습니다. "
   비서관치 한국말이 방안을 울렸다.
   "그렇다면 내가 요청한 대로 미군을 서울로 이동시켜 주겠소? 내
가 말했다시피 그령게만 해준다면 반란군을 단숨에 진압할 수가 있
소."
   "각하, =I건 어렵습니다. "
   "클린트 대통령도 승인했는데 도대체 왜 그러는 거요?"
                                             대통령의 패착 295
   "각하, 저쪽의 지휘관들과 협상을 하시는 것이 유혈을 피하는 최
선의 방법입니다. "
   "협상이라니?"
   대통령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반란군과, 반역자들과 협상을 하다니, 장군, 당신은 도대체 누구
편이오?"
   "각하 편입니다. "
   "그렇다면, 왜?"
   "각하를 위해서 말쏨드리는 겁니다. of대로 시간이 지나면 한국군
전체가 각하께 등을 돌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
   "각하꼐서 본관한테 미군의 서울 진입을 요구하신 것이 큰 실수였
습니다. 그것으로 한국군 주요 지휘관들이 큰 실망을 했습니다. "
   비서관은 그렇게 말하면서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썬었다.
   러셀의 말이 이어졌다.
   "각하, 국가를 생각하신다면 협상을 하시지요. 시간이 없습니다. "
   이렇게 갑자기 일이 일어날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김양호는
당황하고 있었다. 최기대가 부산에서 저지른 일도 앞뒤를 모두 재고
있었으므로 부하들이 1백여 명 잡혔다고 하더라도 손해는커녕 조성
표의 조직을 인수하는 발판이 될 것이었다.
   더욱이 이동천의 조직은 대부분 파괴된 데다가 이동천과 조성표의
전쟁으로 알려지게 되어서 다시는 이름 석 자를 내세울 수도 없게 된
것이다.
296 밤의 대통령 제식준 -및
   그는 국제 호텔 안에 있는 자신의 방에 앉아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쿠데타라니, 그야말로 난데없는 일이었고 조금 과장된 표현
으로 썩천벽력이었다.
   거기에다 서운한 것은 지금 청와대에 들어가 있다는 이용덕이다.
그 정도의 위치라면 쿠데타 같은 큰 사건을 누구보다 먼저 알았을텐
데 자신에게 한마디 언질도 주지 않았다. 부끄럽게도 사이토한테서
사태를 듣고는 이렇게 피난짐을 꾸리는 것이다.
   방문이 열리더니 허대수가 서두르며 들어섰다.
   "회작님 , 준비되었습니다. "
   그는 가죽 잠바 차림이었다.
   "사:1님과 자제분들은 30분 전에 출발하셨습니다. "
   "알=그 있어 ."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허대수를 따라 방을 나왔다. 식구들은 대충
짐을 꾸리고는 아미 포항으로 출발했다. 사업체야 운영인이 없더라
도 대리인이 할 수 있지만 문제는 조직이다.
   김양호는 어깨를 펴고 로비를 걸어나왔다. 쿠데타가 성공하게 되
면 그야말로 자신은 공적 제 1호가 될 것이었다. 그때에는 이용덕도,
그리고 그가 이제까지 공들여 만들어 놓은 모든 줄이 일시에 끊어지
게 되는 것이다.
   호텔의 현관 앞에서 허대수가 승용차의 됫문을 열고 그를 기다리
고 있었다. 그는 포항까지 김양호를 호위해 주고는 다시 서울로 돌아
올 예장이었다.
   "가자. "
   앞자리에 오른 허대수가 운전사에게 가볍게 툴했다. 허대수에게도
                                             대통령의 패착 291
그는 잠깐 일본에 쉬러 간다고 말한 것이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사이토가 양유경을 바라보았다.
   "대통령이 협상을 받아들였어.협상대표는정부측에서 김재선과
이용덕, 그리고 국방 장관이고 쿠데타군측은 박현식과 이일섭, 조영
찬이야. 우스운 일은 1, 2군 사령관, 그리고 한미 연합사 부시령관인
세 사람의 대장이 러셀과 함께 참관인이 되었어."
   "그만하면 판도가 결정된 거야. 대통령은 지금 열세에 몰려 있
어."
   그의 정보원은 일본 대사관이다. 한반도의 문제나 진행되는 사건
에 대해서 일본은 미국보다도 더 빠르고 자세한 정보를 얻는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현재 상황을 상세하게 파악하
고 있었는데 사이토에게 아낌없이 정보를 주었던 것이다.
   소파에서 등을 멘 사이토가 시졔를 내려다보았다.
   "벌써 1 1시군."
   "김양호는 지금쯤 떠났겠네요?"
   "아마 그렬겠지. 당신한테 말하지 않던가?"
   그러자 양유경이 웃었다.
   "나한테 말할 리가 있나요?"
 . "쿠데타군이 세력을 잡으면 당신도 온전하지 못할텐데."
  "상관없어요. 각오도 하고 있으니까."
  사이토가 머리를 」1덕였다.
  "나도 곧돌아오게 될 거야.누가 정권을 잡든지 간에."
298 밤의 대통령 제걀1-트
자리에서 일어선 사이토가 양유경을 바라보았다.
"당신 주위의 남자들이 모두 떠나는군. 그렇지 않아?"
양옳경이 웃으며 몸을 일으켰으나 대답하지는 않았다.
   1 1시 낄달. 서울 톨게이트의 하행선을 빠져 나온 네 대의 숭용차
는 일걸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속력을 내었다. 깊은 밤이어서 차량 통
행이 줄어 들어 있었으므로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량들 대부분이 제
한 속도를 지키지 않는다.
   네 대의 승용차 중 두 번째 차의 됫자리에 앉은 김양호는 어두운
얼굴로.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짙은 어둠에 덮여 있는 산야였지만
가끔씩 비치는 불빛으로 산과 마을의 윤곽이 드러났다가 이내 사라
져 갔다.
   차 안에는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앞좌석에 앉은 운전사와 경호원
도 그치 분위기에 눌린 듯 입을 열지 않았다.
   기약이 없다. 문득 김양호의 머리에 그런 문구가 떠올랐다. 갖은
고생을 다하여 이루어 놓은 조직이고 재산이었다. 양승일의 눈에 들
어 외부 관료 생활을 청산하고 동원'그룹에 들어와 수모도 많이 당
했었디·.
   그리나 이제 수십 개의 업체를 소유하고 관리하게 되었는데 쿠데
타라니 땅을 칠 일이었지만 그것은 그의 능력 밖의 일이었으니 억울
하지만 조금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일본이나 다른 나라로 떠나게 되더라도 여생을 산유국 왕
자 못끼않게 보낼 수 있는 재산이 있다. 마누라가 챙겨 간 수십억 원
대의 덜석과 달러,그리고 지금 차에 실려 있는 300만 달러 가까운
                                             대통령의 패착 299
돈에다 스위스 은행 비밀 구좌에도 그만큼의 돈이 예금되어 있는 것
이다.
   조금 생기가 난 김양호는 창에서 시선을 례었다. 그러자 앞자리에
앉은 허대수가 몸을 들려 그를 바라보았다.
    "회장님, 최 사장님은 언제 올라오십니까?"
   "곧 올라온다. 지금도 부산 지역의 검문이 풀리지 않았어.%
   "사이토 씨는 부산으로 내려간다고 들었습니다. 그것도 오늘
떠난다고 하던데요."
                                                                            BHI
 퍼뜩 시선을 들어 허대수를 바라본 김양호가 머리를    ll덕였다.
 "그런가? 일이 있는 모양이군."
 "쿠데타가 일어났다고 하던데요. 회장님?"
 김양호가 굳어진 얼굴로 그를 쏘아보았다.
"누가 그러더냐?"
"회장님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런 건방진."
그러자 허대수가 의자 위로 권총을 올려놓았는데
 총신이 바로 김양호의 얼굴을 향해 있다.                          소음기를 긴 긴
    "쿠데타를 알고 도망치는 것 아닙니까, 회장님?w
    가늘고 높은 그의 목소리가 차 안을 울리자 김양호의 가슴에 차가
운 기운이 선뜻하게 지나갔다.
    "허 실장, 네가 감히."
   김양호의 놀람이 다음 순간 분노로 바러었다. 그는 얼굴을 붉히고
는 허대수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것, 치우지 못해! 이 배은망덕한 놈 같으니.
   300 밤의 대통령 제』부 -로
    그러f,1 허대수가 입을 벌리고 웃었다. 운전사는 잠자코 앞쪽을 바
라보며 =1들에게 시선조차 돌리지 않았다.
    "이젠 회장이고 지랄이고 없다. 저 살자고 부하들을 팽개치고 외
국으로 .도망치는 놈을 받들 부하는 없어 ."
   그는 전총을 고쳐 쥐었다.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세상, 오늘 네가 가지고 도망치려는 돈
을 부하들과 나누어 갖기로 했다. "
   "이, 이봐. 허 실장."
   눈을 ·치켜 뜬 김양호의 목소리가 이제는 떨려 나왔다.
   "이러지 말아, 넌 무엇을 오해한 모양인데."
   "사이토의 부하한테서 모두 들었다. 그놈은 언제 만날지 모르겠다
고 나에제 인사를 했어."
   "이봐, 허 실장."
   "인과웅보다. 내가 양승일을 죽였듯이 나도 마찬가지야."
   다시 입을 열려는 김양호의 눈앞에 횐 섬광이 번쩍이면서 그의 머
리가 벌떡 뒤로 젖혀져 의자에 부딪쳤다.
   이마에 구멍이 뚫린 김양호는 두 눈을 치켜 뜬 채 아직도 놀란 얼
굴이었는데 이미 의자에 기대 앉아숨이 꾼어져 있었다.
   "가만, 여기가 어디냐?"
   허대수가 앞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묻자 운전사가 그제야 입을 열
었다.
   "오산 근처요, 형님, "
   "오산 톨게이트로 나가. 거기서 다시 서울로 올라간다. "
   운전사가 라이트의 상향둥을 움직여 선도차에 신호를 하고는 차를
                                              대통령의 패착 301
바깥쪽으로 붙였다. 그러자 네 대의 차량은 곧 나란히 바깥 차선을
달려가기 시작했다.
   11월 7일 자정, 11월 8일 0시가 된다. 한 시간이라도 탈리 협상을
하자는 것에 양측이 의견의 일치를 보았으므로 러셀은 자정으로 시
간을 정한 것이다. 장소는 김포 가도에 있는 빅토리아 호텔의 대회의
실이었는데 이것도 러셀이 정해 주었다.
    빅토리아 호텔은 청와대와 특전사 제5여단과의 딱 중간에 위치한
호델이었다. 호델 주위에는 1개 중대 가량의 미군 헌병들이 진을 치
고 있었던 까닭에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경찰 순찰차 한 대가 놀라
본부에 상황을 물었다가 대답이 없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회의실의 책상 구조는 t자 형식으로 정부측과 반란군이 마주보
게 되어 있었고 참관단은 그들을 좌우로 보는 위치였다. 회의는 인사
도, 절차도 무시한 채 대뜸 시작되었는데 먼저 입을 연 것은 반란군
측 군 지휘관 이일섭이다.
   "국가 안보 위원회를 설치하고 그 권한을 보장해 주어야겠소. 물
론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겠지만 다음 대통령 선거는 정확
히 일년 뒤가 될 것이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의 정부측 대표들을 향해 그가 말을 이었다.
   "국가 최고 의결 기관인 안보 회의가 일년 동안 한국을 통치하게
될 것이오. 그 조직과 제도는 여기 만들어 왔습니다. "
   "잠깐만."
   하고 국방 장관 권성무가 입을 열었다.
   "이건 너무 자작스러운 일이어서.그렇게 말하면 회담이 아니라
302 밤의 대통령 제식근 -및
 마치 ."
     "회닮은 무슨 회닭 일년 동안 군사 정권이 들써선다는 통보요.대
 통령은 전의 최 대통령 모양이 되지 않게 배려해 드리겠소."
     이일섭이 자르듯 말하고는 참관단의 대장들을 바라보았다.
     "난 r'1 회담을 성사시키고 죽을데니 사령관들께서는 일년 동안 국
 가의 기틀을 다시 세워 주시오."
    대장돈이 제각기 머리를 돌렸는데 1군사령관 킴병진만이 이일섭
 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월남전 때 같은 부대의 중대장과 소대
 장 사이'췄다.
    그러짜 박현식이 입을 열었다.
    "나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군 사령관도 모두 모이셨고 하니 이 자
리에서 안보 위원회를 구성했으면 합니다. "
   통역판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던 러셀이 통역이
끝나기」1 전에 번쩍 머리를 들었다.
   "잠간만, 이런 식으로 회담을 하는 것이 아니오. 우선 상대방의 의
견을 충닥히 듣고 나서."
   "들은 것이 없어요, 장군."
   이일섞이 다시 나섰다.
   "정치 협상 하자고 이곳에 오지 않았소. 솔직히 우리는 쿠데타를
일으켰괴 정부는 고려되어 있습니다. 국군을 믿지 않았던 대통령과
정부의 당연한 결과인데 우리가 저 사람들에게 조건을 말하라고 할
이유도 없고 필요도 없습니다. "
   그는 머리를 돌려 대장들을 바라보았다. 참관단으로 각군 사령관
과 연합사 부시령관 등 세 명의 대장을 요청한 것은 그들이었는데 청
                                              대통령의 패착 303
와대에서도 이견이 없었다. 미국에 가 있는 합참 의장과 박현식에 의
해 납치된 두 명의 대장을 잰 육군의 나머지 대장들이다.
   "이왕 우리가 시작했으니 기틀을 잡고 군인의 명예를 위해 죽을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안보 위원회가 발족하는 즉시 저는 자살하겠
숨니다. 선배들께서 뒤를 맡아 주십시오."
   "이봐, 이 중장."
   하고 김병진이 입을 열었다가 힐끗 정부측의 대표들을 바라보았
다. 그리고는 마음을 정한 듯 말을 이었다.
   "언놈이 역사가 일년 후퇴한다 어쩐다 하겠지만 내가 네 시체는
치워 주마."
   11월 8일 오전 9시 30랄. 육군 본부의 상황실.
   이영근 소장은 책상에 앉아 전기 면도기로 틱수염을 밀고 있었다.
넓은 상황실에는 이제 서너 명의 장교들이 앉아 걸려 오는 전화를 느
긋한 몸짓으로 받거나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쿠데타
군과 회담이 타결된 것이 새벽 4시, 그리고 육본에 수방사 병력이 밀
고 들어온 것은 아침 1시였다.
   수방사 소속의 중령은 예의 바르고 공손했다. 그러나 그의 눈빛에
는 자부심이 있었다. 상황실에 모인 수십 명의 장군과 장교에게 해산
할 것을 부탁하는 그의 목소리는 당당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상황실의 문이 열리더니 유덕환 대령이 들어섰다. 다가온 1는 면
도기로 수염을 미는 이영근을 이상하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부장님, 이제 쉬셔야지요."
   "그래야지. "
304 밤의 대통령 제4부 -르
    가볍게 대답한 이영근은 말끔해진 턱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반란
군과의 회담이 전격적으로 국가 안보 위원회의 구성과 현 정권의 퇴
진으로 이어질 줄은 전혀 뜻밖이었다.
    안보 위원회의 위원장은 1군 시령관인 김병진 대장이었고 위원으
로는 두 면의 대장과 이일섭, 엄상호, 박현식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
었다.
   정부는 오늘 아침부터 군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는데 아침 9시의
특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은 자신의 모든 권한을 국가 안보 위원회에
일임한다괴 발표했다. 그리고 계엄령이 발동되었다. 국회는 당분간
해산이 되겐지만 정부 활동은 예전과 다름없다는 것이 강조되었다.
   이어서 안보 위원회도 성명을 발표했다. 군은 국민의 모든 생업을
보장하겠라는 약속을 했고 해외 출국도 전과 다름없이 보장했으며
기업 활동:포 마찬가지였다. 다른 것이 있다면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제반 요소는 하나씩 정화시킨다고 했을 뿐이다.
   그리고 강조된 것이 안보 위원회의 일년 통치였다. 현재의 위기
상황을 일년 내에 바로잡고 다시 대통령 선거를 하되 군인은 철저히
배제시킨라는 것이었다.
   "부장님, 우린 어떻게 될까요?"
   유덕환이 물었으므로 그는 머리를 들었다.
   "어떻게 되다니?"
   "우린 진지 않습니까?"
   "그런가?"
   "대통령치 갈팡질팡 하지 않았으면 우린 벌써 수방사와 특전사 몇
개 부대쯤츤 진압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 제5긱사단만이라도 진입시
                                             대통령의 패착 305
 켰더라도."
     "그만해."
     이영근이 웃음 떤 얼굴로 머리를 저었다.
     "대통령은 유혈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
     "그만큼 군인을 아끼는 사람일까요?"
     그러자 이영근이 머리를 들고 유덕환을 바라보았다. 그는 소장이
 었지만 어젯밤의 쿠데타에서 정부측의 최고 지휘관이었다. 대통령은
 직접 그에게 작전을 위임해 주었던 것이다.
    "모두 집에 돌아갔지?"
    이영근이 묻자 유덕환이 머리를 끄덕였다.
    "돌아갔☞D다. "
    그러자 상황실 안쪽에 있던 장교 하나가 전화기를 들고 다가왔다.
    "부장님, 특전 사령관칩니다. "
    유덕환이 긴장한 얼굴로 이영근을 바라보았다. 어젯밤 그들은 극
 과 극을 달렸던 적이었다. 이영근이 전화기를 쥐었다.
    "여보세요."
    "이 소장, 납니다. "
    엄상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아, 엄 중장님. 웬일입니까?"
   "상황실에 남아 계시다고 해서. 어젯밤 분투하신 것에 대한 경의
도 표할 겸해서요."
   그의 말에는 진실성이 담겨 있었다.
   "이 소장은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나는 그 말씀을 전해 드리고 싶
었습니다 "
306 밤의 대통령 제식즌 -템
   "고맙급니다. "
   "우린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
다. "
"내가 소늘 중으로 찾아뵙지요. 그리고 같이 일해 봅시다. "
전화기존 내려놓은 이영근은 유덕환을 바라보았다.
"이제 깟황실을 비워라. 저 친구들도 모두 데리고 나가."
    유덕환이 이영근의 죽음을 안 것은 세 시간이 지난 오후 1시경이
었다. 집에 돌아가 쉬고 있던 그에게 부하 장교가 전화로 알려 준 것
이다.
    그가 육본으로 달려온 것은 오후 2시. 이영근이 권총으로 머리를
쏘았다는 상황실 앞에는 계엄군이 지키고 있었지만 그는 그들을 밀
어젖히고 안으로 들어섰다.
    이영근은 그들을 상황실에서 모두 내보낸 다음 문을 안에서 걸어
잠그고는 의자에 앉은 채로 머리를 쏜 것이다. 의자와 책상 받침대에
는 아직도 그의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유덕환은 허리에 두 손을 짚고는 한동안 빈 의자를 바라보았다.
외형으로는 그가 자살할 이유가 없다. 쿠데타군 지휘부까지 그에게
경의를 보연고 아침에는 김병진 대장으로부터도 위로의 전화가 왔던
것이다.
   유덕환은 아랫입술을 물었다. 대통령은 그를 무시했지만 그는 죽
음으로써 대통령의 권위를 세워 준 것이다. 그는또한 밤이 새도록
혜매기만 했던 이쪽 군인들의 명예를 죽음으로써 지켜 주었다.
                                            대통령의 패착 307
   유덕환은 턱을 치켜들고는 몸을 돌렸다. 그가 어떻게 해서 2충의
작전실에 들어왔는지는 모른다. 허청거리며 복도를 걷다 열린 문으
로 들어왔던 것인데 칸막이가쳐진 방의 안쪽에서 두런거리는 말소
리가 났다. 우두커니 서 있는 그의 귀에 그들의 말소리가 이젠 똑똑
히 들렸다.
   "우리 여기는?"
   "여기는 이일섭이가 물망에 오른다는 얘기가 있는데."
   "아직 결정 안됐다면서."
   "1군에는 엄상호."
   "이동해야 할 사람이 많아요.수도 군단도."
   "G3는 어때요."
   "우리 박 형 어디 한자리 없는가?"
   "이번에 바로 장군으로 해가지고 어디 한자리 얻을까 싶은데 사양
을 하고 있습니다. "
   "장군은 그만두고 그 옆자리나 옆방이나 밀지 뭐."
   "요즘 월급 타먹고 애들하고 편히 사는 게 좋지. 감투 많이 써봐야
맨날 청결이나 하고 말이지."
   "그 옆방이나 밀고 들어가요."
   "하하하, 참."
   "참 불행한 일이야. 이영근, 참 그‥‥‥ 3군 시령관도 그렇고. 높은
게 좋은 것만은 아니예요."
   "그저 편하게-"
   "심부름이나 열심히 하고."
   "은하 식당에서 만두에다 소주 한잔 하는 팔자가 제일 좋지. 대략
308 밤의 대통령 제걀1-및
그런 상황이에요."
    "변동이 있으면 좀 알려 줘요. 요즘 말이야 귀가 멀어서."
    "알았습니다. "
    "OK. 고맙습니다. "
   유덕환은 칸막이의 문을 열어젖혔다. 막 갈라서던 두 명의 대령이
놀라 그를 향해 몸을 돌렸는데 모두 낯선 얼굴들이다.
   허리에 찬 권총을 빼어든 유덕환은 먼저 왼쪽에 서 있는 대령의
얼굴을 겨누어 쏘았다. 요란한 총성이 방안을 울렸고 사내가 벌떡 뒤
로 넘어졌다.
   유덕환은 남아 있는 대령의 얼굴을 겨누었다. 식당에서 만두 안주
에 소주를 먹는 평범한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다시 총성이 울렸고 이마에 구멍이 뚫린 사래가 벽에 몸을 부딪치며
주저앉았다.
   "빌써먹을."
   두 시체를 내려다보며 유덕환이 중얼거렸을 때 요란한 발자국 소
리가 들려 왔다. 그러자 번쩍 머리를 든 유덕환은 권총을 들어 자신
의 옆머리에 가져다대었다.

'소설방 > 밤의 대통령'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 작가의 말 [끝]  (0) 2015.01.01
9. 통일   (0) 2015.01.01
7. 재회   (0) 2015.01.01
6. 위대한 피에로   (0) 2015.01.01
5. 포커 페이스   (0) 2015.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