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밤의 대통령

5. 포커 페이스

오늘의 쉼터 2015. 1. 1. 23:40

5포커 페이스 

 

 

  "김양호는 서귀포의 로얄 호텔에 있습니다. 방을 30개나 빌렸다고
 합니다. "
    강물을 내려다보며 말하던 박철규가 머리를 들고 웃었다.
    "김재선과 이용덕은 모스크바에 가 있다니 낮과 밤의 중요 인사들
은 모두 근거지를 떠난 셈이 되었습니다. "
   "아무래도 내 생각에는 체제를 위협하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
다. "
   낮은 목소리로 이동천이 말하자 박철규가 잠자코 다음 말을 기다
렸다. 그들이 앉아 있는 바위 등걸에서는 아래쪽의 강과 산기슭이 한
눈에 바라보였는데 점심을 마친 부하들이 삼삼오오 흩어져 있었다.
벌써 이틀째 이곳에서 머물고 있는 것이다.
   "박 부장이 군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꺼림칙해."
166 밤의 대통령 제4부 -lU
   "군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져 있고 그것을 심각한 국가의 위기로
생각하는 군인들이 많아."
   "실제로 그렇습니다, 형님."
   박철규가 머리를 들고 말했다.
   "모두가 색었습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북한이 우리를 집어 삼킬
지도 모릅니다. "
    "저도 인쇄소에 기무사 수사관들이 배치된 것을 보고 눈치를 채었
 지만 오히려 반가웠습니다. "
    "박 부장과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이용한 셈이지. 우리는 김양호
의 몰락을 목표로 했는데 박 부장은 이용덕과 로비 리스트에 나와 있
는 요인들의 매장을 목표로 했어."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
    "그런데 지금은 그 이상이 느껴진다. "
    이동천이 무거운 얼굴로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잘 훈련된 기무사 요원들의 파견은 기무 시령관의 지시가 있어야
돼. 안기부장과 기무 사령관은 별도의 체제야."
   "같은 육사 출신이라 도움을 청할 수도 있었겠지요. 안기부 요원
들 중에는 안홍건 같은 놈의 」1나풀이 남아 있을테니까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
   그러자 박철규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럼 우리들은 그 일이 성공하기를 바라야겠군요, 형님."
"대다수의 국민들은 현 정콘에 거부 반응을 느끼고 있숱니다.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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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해 있는 데다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하는 집
단이 현재의 정권 아닙니까?"
   "소비와 향락에 젖은 국가 풍토, 북한이 치고 내려오면 기득권충
의 90퍼센트가 도망친다는 여론 조사의 보근 이러한 분웠기에서 군
인들이 나서지 않는다면 나라는 이미 망해 있는 것입니다. "
    "아무리 우리가 기를 쓰고 나선다고 해도 정부를 응늘할 수는 없
지요. 정부가 색어 있을수록 우리가 힘을 펴는 게 사실이지만 말입니
다. "
    이동천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난 그저 구경만은 하지 쟈겠다. 이용물이 되지는 않겠다는 말이
야. "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형님이 어느 길을 가시든 저는 따르겠습
니다. 제가 지금 한 말에 신경 쓰지 마십시오."
   이동천이 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조성표가 죽었으니 이제 밤의 세계도 정리가 되어 간다. 밤낮의
세계가 모두 격변기를 맞고 있어,"
   주대흥과 고대구가 열차 괸으로 부산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7시가
되어 있었다. 해운대의 조그만 모텔에 여장을 풀고 나서 그들은 근처
의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육개장과 된장찌개를 시킨 후 말없
이 각각 공기밥 하나씩을 더 먹고 식당을 나와 택시를 탔다. 그들이
남구청 옆의 기린 카페에 들어섰을 때는 밤 10시 5분전이었다.
168 밤의 대통령 제실즌 -르
     카페는 좁고, 어두운 데다 담배 연기에 눈이 매웠으며 지독한 술
 냄새도 났다. 그리고 집안이 떠나갈 듯한 남녀의 소음으로 정신이 다
 어지러웠다.
     "이런 지기미 ."
    주대홍이 와락 얼굴을 정그리며 구석의 빈자리에 앉았다. 고대구
 가 앞자리에 앉자 조그만 여자가 다가찼는데 어둠 속에서 새빨갛게
 루즈를 칠한 입술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주문요."
    "에이, 씨발년아, 시끄러,"
    "맥주에 마른 안주."
    세 남녀가 연달아서 뱉은 소리였는데 여자는 잠자코 몸을 돌렸다.
    주대홍이 고대구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동천의 명령으로 고대구와
동행이 되었지만 영 마뜩찮은 눈치였고 그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나이도 그가 고대구보다 한 살 위인 데다가 서열도 위였으므
로 거칠 것이 없다.
    "야,니 코는 누구한티 맞아서 그러냐?"
    주대흥이 턱으로 고대구의 코를 가리켰다.
    "얌마,니 코를 보먼 여자가 붙겄냐?아예 그것이 없는 줄 알겄
다. "
   눈을 껍벅이며 주대홍을 바라보던 고대구가 시선을 돌랐다. 여자
가 술과 안주를 날라왔으므로 고대구는 주대홍의 잔에 술을 따랐다.
서울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 계속 이런 식의 분위기였던 것이다.
   "큰형님은 너를 어떻게 잘봤는지 모르3n지만 나는 니가 맘에 안
들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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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잔을 들며 주대흥이 말했다.
   "그러고 그 계집년, 양유경이도 맘에 알 든다. 그 년은 개같은 년
이다. "
   "아니, 여자는 다 그렇다. 그래서 그런 여자한테 빌빌 싸는 놈은
병신이다. "
   단숨에 맥주잔을 비운 주대흥이 고대구가 따르려는 술병을 딴리치
고 자신의 잔을 채웠다.
   "내가 배신자 한 놈을 얼마 전에 쥑였다. 모가지를 아주 한바퀴 돌
려 놓았지."
   그가 고대구를 노려보았다.
   "재미있어. 얼굴이 등 쪽으로 돌아가면 바로 안 죽어. 이게 웬일이
냐고 놀라는 얼굴이 되여. 엉뎅이가 눈 밑에 있으니께 말이다. "
   그러자 카페의 문이 열리더니 서너 명의 사내들이 들어섰다. 한눈
에 보아도 모두가 조직 사회의 어깨들이다. 사내들은 어지러운 카페
에 앉을 마음이 안 드는지 입구 쪽에 서 있었는데 사내 한 명이 카운
터로 다가가 주인인 듯 보이는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팔꿈치를
카운터에 짚고 기대 선 사래는 체격이 컸다. 주대홍만큼은 안되지만
체중이 100킬로그램은 넘어 보였다. 카페는 여전히 시끄러운 소음에
덮여 있었다.
   주대홍이 내려놓았던 맥주잔을 들고는 서너 모금에 잔을 비웠다.
   카운터에 기대 선 사내는 최기대의 심복인 한광철이었다. T·가 대
표 유도 선수 출신이었는데 눈치와 계산이 빨라 최기대가 부산으로
데려와 조직의 관리를 맡기고 있었다 힘도 좋고 머리도 좋은 데다
170 밤의 대통령 제4부-템
충성스러운 그에게서 약점을 찾으라면 여자를 밝히는 것 하나밖에
없다. 그래서 최기대는 틈틈이 주의를 주었는데도 한광철은 부산에
내려온 지 이틀 만에 건수를 올렸으니 여자 흘리는 재주도 비상한 모
양이었다.
   한광철이 매일 밤 11시에서 12시 사이에 기린 카페에 나타난다는
정보를 준 것은 기무라였다. 카페의 주인은 스물여털 살 난 모 건설
회사 상무의 정부로 사하구의 비치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한광철과
의 데이트는 카페 옆골목으로 들어가서 50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
청운장 여관에서 30분 정도 한다는 것이다. 이윽고 여자가 카운터에
서 나와 한광철과 함께 밖으로 나갔고 사내들도 뒤를 따랐다.
    청운장 여관의 현관 계단 밑에 서 있던 두 명의 사내는 비틀거리
며 다가오는 두 사내를 보았다. 한 사람은 거의 인사불성이 된 듯 다
른 사람에게 매달려 있었는데 두 명 모두 엉망으로 취한 듯 네 쪽의
다리가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다.
   그들이 다가오자 사내들은 찌푸린 얼굴로 비켜 섰다. 여관으로 들
어가도록 길을 비켜 준 것이다. 두 취객들은 여관의 계단을 오르려는
듯 발을 멈추었다. 그 다음 순간 양쪽으로 갈라서더니 단 한 주먹씩
에 사내들을 때려눕혔다.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말짱한 모습으로
재빨리 사내들을 골목 안쪽의 쓰레기통 옆으로 끌고 가 누여 놓았다.
   "아직 두 놈이 더 있습니다. "
   고대구가 말했다.
   "아마 한광철이는 방에 있겠지요?"
   주대흥은 잠자코 여관 쪽으로 몸을 돌렸다. 로비는 다섯 평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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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 보였지만 텔레비전 세트가 벽 쪽으로 놓여 있었다. 현관의 유리문
밖에 선 주대홍은 텔레비전을 향해 앉아 있는 두 사내의 옆모습을 보
았다. 그들의 거리는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채 3미터도 되지 않는다.
고대구가 계단을 올라와 그의 옆에 섰다.
    주대흥이 현관의 유리문을 열자 사내들이 머리를 돌려 1를 바라
보았다. 그들이 펄쩍 뛸 듯이 놀라 몸을 일으켰고 주대홍은 거의 동
시에 그들을 덮쳤다. 주대흥이 휘두른 주먹에 얼굴을 맞은 사래 한
명이 몸을 벽에 부딪치며 넘어졌으나 먼쪽의 사래는 제 권총을 뻬들
고 있다.
    주먹을 움켜쥔 주대흥이 아랑곳하지 않고 덮쳐 가자 사내는 이제
총구를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사래가 몸을 비틀면서 한쪽 어깨를 손
으로 움켜쥐었다. 권총을 쥔 쪽의 팔이 아래로 처졌고 움켜쥔 손가락
사이로 대검의 손잡이가 보였다. 그 다음 순간 주대흥의 주먹이 사내
의 틱을 날렸다. 이어서 다른 주먹이 해머처럼 휘둘러지면서 옆얼굴
을 치자 사내는 신음 소리 한번 제대로 뱉지 못한 채 뒤로 넘어졌다.
   "이 시키 봐라? 칼을 쓰네?"
   아직도 주먹을 견 주대흥이 못마땅한 얼굴로 고대구를 바라보았
다. 고대구가 놀라 입을 벌리고 있는 프런트 직원에게로 다가갔다.
   "조금 전에 여자하고 올라간 놈, 저기, 저놈들 일행, 몇 호실이
f?"
   낮게 물었으나 갓 스무 살정도의 사내가 몸을 멀며 말했다.
   "305호실요."
   마스터 키로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불을 켠 채로 두 벌거숭이 납
녀는 침대 위에서 하던 짓을 계속하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의 운동에
172 밤의 대통령 제식즌 -르
 맞추어 자지러질 듯한 신음 소리를 뱉는다. 그러다가 밑에 누운 여자
 가 그들을 보았다. 그리고는 째질 듯한 비명을 지르자 남자는 더 힘
 차게 허리를 놀렸다.
    주대흥은 주먹을 들어 한광철의 됫머리를 못을 박듯 내리쳤다. 그
 러자 남자는 침대에 코를 박고 엎어지면서 그제야 분위기를 알아차
 렸다.
    "어어어, "
    사내가 코에서 피를 홀리면서 두 팔로 침대를 짚고 상체를 세웠다
가 다시 엎어졌다.
    "이 씨발놈, 빨리 안 일어나?"
    다시 주대흥의 주먹이 사래의 옆구리를 치자 사래와 여자의 신음
과 비명이 함께 들렸다. 여자가 기를 쓰고 몸을 비틀어 빠져 나오려
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어럽쇼."
   고대구가 눈을 치켜 뜨고는 한쪽을 바라보았다.
   "붙어 있네, 아직도."-
   그러자 주대홍은 목욕탕으로 달려 들어가 양동이에 가득 냉수를
받아들고 나찼다. 그리고는 붙어 있는 두 알몸을 향해 물을 쏟아 부
었다. 물벼락을 맞은 남녀가 몸부림을 쳤으나 자세만 뒤집혀졌을 뿐
떨어지지 않는다.
   "지기미, 야, 칼로 꾼어 버려,"
   짜증이 난 주대흥이 소리치자 한광철이 기를 쌨고 여자는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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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광철이 납치된 사건은 아침에 도착한 최기대를 바짝 긴장시켰
다. 습격한 두 명의 사내가 주대홍과 고대구라는 것은 판명이 되었는
데 주대흥의 인상과 체격이 워낙 남달랐고 고대구는동료여서 얼굴
을 알고 있던 부하가 있었던 것이다. 고대구가주대홍과 같이 있었다
는 것은 충격이었다.
   김양호에게 보고를 하고, 부하들을 풀어 배장근의 조직을 감시하
도록 하는 한편 경호 체계를 재점검하는 데 오전이 금방 지나갔다.
그러나 경찰에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는데 그것은 김양호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전단 사건으로 신경이 곤두서 있는 김양
호였으므로 자신의 이름이나 조직이 다시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조직원 모두에게는 입단속하라는 엄
명이 내려졌다. 마피아는 물론 조성표의 잔당들에게 알려져서 득될
것이 없는 사건이었다.
   그가 천기석과 만났을 때는 오후 2시였다. 천기석이 지정한 신선
대 근처의 허름한 빌딩 2층 사무실에 들어서자 천기석이 소파에서
일어섰다.
   "어서 오시오, 최 사장."
   30평쯤 되어 보이는 사무실은 팅 비어 있어서 그들 두 사람뿐이었
다. 그들은 묵묵히 악수를 나누고는 낡은 소파에 마주보고 앉았다.
   최기대가 입을 열었다.
   "조 사장님 장례식은 내일입니까? 우리 회장님이 저 지경이니 아
무래도 내가 참석해야 할 것 같은데."
   "오늘 아침에 영주의 선산에 묻었숩니다. 가족들만 참석해서 간단
히 끝냈지요."
174 밤의 대통령 제샬1-및
   담담한 표정으로 천기석이 말을 이었다.
   "장례식이야 그저 절차일 뿐이니까. 수만 명이 모인다고 해서 죽
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아니, 그렬지만, 도리가."
   "도리고 체면이고 차릴 형편이 아니지요, 지금은."
    "그놈들을 잡고 나면 거창하게 해야지요. 무덤 앞에서 놈들의 심
장을 꺼내어 제사를 지낼 려니다. "
   "우리도 돕겠소, 적극적으로."
   최기대가 천기석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회장님도 조만간 천 실장을 만나실 거요. 그래서 우선 말씀만 전
해 드리는데,조 사장님의 뒤를 이어서 천 실장이 부산을 장악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
   "우리가 뒤에서 밀면 문제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조 사장이 돌
아가셨으니 지난번 사건을 수습하기가 수월해졌어요. 예정보다 빨리
천 실장의 딱지가 떨어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면 당당히 조 사장
님의 뒤를 잇는 것이지요."
   "솔직히 이번 대선이 끝나면 한국의 조직 세계는 우리 회장님이
장악하게 되어 있어요. 천 실장도 잘 아실 거요. 회장님의 배경이 어
떻게 되어 있는가를."
   최기대가 주머니에서 접혀진 전단을 꺼내어 탁자 위에 놓았다.
   "보셨는지 모르지만 며칠 전에 이둥천이 서울에 뿌린 전단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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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장님을 건드릴 사람은 현 정권 내에서는 아무도 없다는 증거
요, 이것이."
   천기석이 머리를 들었다.
   "당신의 조건을 말해 보시오, 최 사장."
   그러자 최기대의 얼굴에 부드러운 웃음이 떠올랐다.
   "우리는 지금 아무런 조건이 없습니다. 너무 잠작스러운 일이어서
말이오."
   "하지만 부산의 조 시장님 조직이 와해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예
를 들어 마피아나 야쿠자, 또는 이동천의 무리에게 흔들려서는 안된
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오. 그 다음에 천 실장과 상의해도 늦지 않
습니다. "
   대통령 집무실 안이다. 김한쳔 대통령은 공항에서 방금 도착한 김
재선과 이용덕을 마주보며 앉아 있었다. 벽시계는 저녁 1시 반을 가
리키고 있었다.
   "정상 회담은 11월 15로 정했습니다,각하."
   김재선이 말을 이었다.
   "예비 회담은 닷새 전인 11월 10일입니다. 각하,양측 대표는 예
정했던 대로 총리급으로 정했고 실무자는 다섯 명씩입니다. "
   대통령은 정보의 유출을 염려해서 모스크바에서 전화를 사용하는
것도 금지시켰다. 흑시나 안기부나 기무사 둥에서 도청할 것을 걱정
한 것이다.
   대통령이 잠자펀 머리를 끄덕이자 김재선의 말이 이어졌다.
116 밤의 대통령 제샬』 -및
    "말씀하신 대로 정상 회담 개최의 명분용 북측 도발을 이야기했더
니 그쪽에서는 평양에 연락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더니 김정일
의 허락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아마 2, 3일 후에는 북측의 도발이 있
을 것 같습니다. "
   "너무 심하면 안돼, 역효과가 날 수 있어."
   대통령의 말에 김재선이 머리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혼히 있었던 휴전선의 총격 사건쯤이 될 것이라고
김금철이 말했습니다. "
    "도발 하루쯤 지나 각하께서 특별 성명으로 북측에 정상 회담을
 제의하시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날헤 북한은
 각하의 제의를 찬성하는 발표와 함꼐 판문점의 예비 회담 제의를 할
 것입니다. "
    대통령이 만족한표정으로 머리를 」1덕였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된 것이다. 11월 15일의 정상회담은도쿄에서 열리도록 이미 결정
이 되었지만, 예비 회담에 참석할 김재선이 제의하고 북한이 받아들
이도록 각본이 짜여 있었다.
   "언론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해. 야당 놈들이 기를 쓰고 고춧가루
를 뿌리려고 할테니까."
   대통령이 머리를 돌려 이용덕을 바라보았다.
   "이 총장, 알아들었나?북한이 정상 회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
다는 둥하면서 국내외의 정세를 맞추어 이야기하는 얼치기 학자나
북한 전문가들, 이것들이 회담 개최의 분위기를 회석시킬 수 있어, "
   "알겠숨니다, 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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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덕이 머리를 숙였다.
   "그자들이 제아무리 떠들어도 이것은 이제까지 각하께서 꾸준히
노력해 오신 결과입니다. 아무도 이 업적을 평가절하시킬 수 없습니
다. 기필코 그자들의 준동을 막겠습니다. "
   "어쪘든 수고들 했어."
   대통령이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같이 저녁 식사라도 하고 싶지만 일찍 들어가서 쉬는 것이 더 낫
겠어. 자레들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많으니 건강을 생각해야 돼."
   김재선과 이용덕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물러가겠숱니다, 각하."
   1들이 머리를 숙이자 대통령은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군, 그래."
  그것은 북한의 도발을 기다린다는 말이었다.
    청와대를 나온 김재선이 강남의 대형 중국 음식점 중경의 밀실에
들어선 것은 밤 11시가 조금 넘었을 때였다. 둥근 식탁에 혼자 앉아
있던 박현식이 웃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서 오시오.고생 많으셨숨니다. "
   "고생이랄 것 있습니까? 나랏일인데."
   식탁 위에는 손을 댄 것 같지 않은 요리가 여러 접시 놓여 있었으
므로 자리에 앉은 김재선은 젓가락을 들었다. 요리를 새로 시키겠다
는 박현식을 말리고 돼지고기를 몇 점 먹고 나서 김재선이 머리를 들
었다.
   "북한측은 각하의 제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 같숨니다. 내부
178 밤의 대통령 제4달 -템
의 의견이 아직은 통일되지 않은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말입니다. "
   "북한에서는 김금철과 서중화가 나왔던가요?"
   "그래요. 그 사람들하고 만났어요."
   "그럼 회담 날짜는 아직 ‥‥‥‥
   "아직 미정이오. 아시랴습니까?군부와 당이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는 것을. 하지만 김정일이 직접 나설 것 같으니 기다려 봐야지요."
   "늦어도 1 1월 중순꿰는 열려야 당이 분위기를 탈텐데. 대선 후보
도 말이오."
    걱정스러운 얼굴로 박현식이 말하자 김재선이 머리를 끄덕였디.
   "그래서 각하께서는 조만간 결단을 내리실 겁니다. 어떤 방법으로
든 김정일을 끌어내실 작정입니다. "
   "OIOt, fl ."
   "그런데 여론은 어떻습니까? 이제 좀 잠잠해졌나요?"
   "이대로 가면 이용덕 씨는 대참패를 하게 될 거요. 집권당 후보가
처음으로 낙선하는 사례가 될 겁니다. "
   "그럼 더 악화된 모양이군."
   "악화고 뭐고 없습니다. 처음부터 열세였는 데다가 이번 일까지
겹쳐서 아마 자유당의 김영필 후보보다도 적은 표를 얻을 거요."
   그러자 김재선이 요리 접시를 내려다본 채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
으므로 방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김재선이 머리를 들었다.
   "만일 북한이 회담 제의를 받아들이면 예비 회담에는내가 갑니
다. 물론 총리가 단장이 되3a지만."
   "그건 당연한 일이오. 김 수석이 가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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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아마 정상 회담에도 내가 대통령 각하를 모시고 가게 될
겁니다. "
    "그럼 이 총장은."
    "회담을 퇴색시킬 수 있으니까요. 이건 정치를 떠나 민족적인 일
이니까, "
    "그건 그렇지요."
    "박 부장이 앞으로 많이 도와 주셔야겠습니다. 난 박 부장만 믿습
니다. "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제가 잘 알아서 모시겠습니다. "
   머리를 』1덕이며 '박현식이 말을 이었다.
   "새 얼굴이 나서야 합니다. 그래야 해볼 만한 선거가 됩니다. 내
생각에도 김 수석만한 대안이 없어요, 후보자로는."
    그 시간에 이용덕은 여의도 일식집 동해의 밀실에서 민영수와 정
종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전단 시건으로 대표께서 각하를 만나고 나온 후부터는 당에서 이
야기가 나온 적은 없습니다. "
   민영수가 말을 이었다.
   "국민당이나 자유당에서 한때는 성명을 발표할 움직임도 보였지
만 청와대에서 연락을 하고 우리 당에서도 강력히 나오니까물러서
더군요, 하지만 진땀을 었습니다, 총장님."
   "제놈들도 뒤가 구린 때문이지."
   술잔을 든 이용덕이 한모금에 삼키고는 내려놓았다.
   "난 모스크바에서 김재선한테서 들었어. 각하께선 내가 걱정할까
180 밤의 대통령 제길L -트
봐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하셨다는군."
   "이동천 그놈이 무슨 억하심정으로‥‥‥‥
   하다가 민영수가 말을 바꾸었다.
   "어,쩠든 여론이 좋지 쟈습니다. 언론도 눌러는 놓았지만 조금 불
안하구요."
   "며칠만 참으면 돼."
   잔에 술을 따르면서 이용덕이 말했다.
   "이제 곧 단숨에 정세를 역전시킬 데니까 두고 보라구 "
   "그령다면 정상 회담이 끝나고 대선 후보 추대식을 한다면 20일
경이 되겠군요?"
   "아마 그쯤 될 거야."
   "그 전에 이동천이를 잡아 다시는 이런 소동을 벌이지 않도록 해
야 될텐데요."
   "김재선의 말을 들으니 안기부가 놈을 잡으려고 전력 투구하고 있
다더군. 경찰에 일을 맡겼다가는 시끄러워지기만 할 것 같아서 박 부
장에게 의뢰했다는 거야."
   "안 차광이 있었으면 더 나았을덴데 유감입니다,총장님."
   "할 수 없는 일이지. 부산 사건으로 누군가가 책임을 졌어야 되었
으니 . "
   입맛을 다신 이용덕이 다시 술잔을 들어 술을 입에 털어넣듯 마셨
다.
   "그런데 김양효가 제주도에 가 있다구?"
   "예. 전단 사건으로 골치가 아픈지 총장님 오실 때까지 내려가 있
겠다고 하더군요."
                                               포커 페이스 181
   "그 사람, 하는 짓이 왜 그래? 이동천이 한 놈 잡지도 못하고 이런
망신살을 뻗치게 하다니."
   "그 사람도 이동천이를 어떻게든 잡겠다고 하더군요.총장님을 뵐
면목이 없다고 했습니다. "
   찌푸린 얼굴로 이용덕은 다시 술잔을 들었다. 청와대에서 대통령
을 만났을 때 전단 사건에 대해 그가 아무 말도 안한 것이 내심 마음
에 걸렸다. 그의 경험에 의하면 그것은 둘 중의 하나였다. 말할 만한
가치도 없는 일이든가 아니면 자신에게 말하기 싫은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지극히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이용덕은 그럴 리는 없다고 자
위하고 있었다. 대통령의 심복으로 당에서 나설 대선 후보는 자신밖
에 없는 것이다.
    해동 여행사는 배장근이 관리하는 사업체로 본래 아이즈 고데츠의
자금으로 조성표가 운영해 오다가 갈라서면서 이동천에게로 관리가
넘어갔고 다시 배장근에게로 옳겨진 곳이다. 그러나 유흥업소와는
달리 기존 직원들이 조직 세계와 관계가 없는 데다가 왜 알려진 여행
사여서 고객들이 많았다. 그래서 조직 세계의 부침과는 상관없이 꾸
준한 영업 실적을 올리고 있는 회사였다.
   9시 반에 여행사사장 임동균은 회사의 현관에 서서 지하차고에
서 올라오는 자신의 승용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여행사 경력만
20년이 넘는 50대 초반의 전문 경영인으로 오늘도 일찍부터 거래처
를 방문하려는 것이다.
   차가 나오는 것이 조금 늦었으므로 그가 입맛을 다시는데 그의 앞
으로 검정색 대형 승용차가 다가와 멈추어 섰다. 그러더니 됫좌석에
182 밤의 대통령 제4부 -템
서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내린다.
    "사장님, 가십시다. "
    사내가 대뜸 말했으므로 임동균은 눈살을 모았다.
    "누구시더라?"
    "가시면 압니다. "
    "글쎄 . "
    "타란 말이야, 이 새끼야."
   그 다음 순간 임동균은 사내에게 멱살을 잡혀 차 안으로 끌려 들
어갔고 뒤통수에 강한 충격을 받고는 엎어져서 정신을 잃었다. 빌딩
현관 앞에 서너 명의 목격자가 그것을 보았고 현관 안에 있던 직원
두어 명이 뛰어나왔을 때는숭용차가사거리를 돌아사라진 뒤였었
다.
   배장근이 그 사건을 보고받은 것은 그로부터 5분도 되지 않아서였
다. 여행사가 조직과는 상관이 없는 업체여서 경비가 소흘했던 것이
다. 그가 부하들과 회의를 하려고 막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다시 전
화벨이 울렸다. 전화기를 든 배장근이 눈을 부릅떴다. 상대방은 최기
대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광철이를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임 사장이 죽는다. "
   최기대가 단조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저녁까지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다면 전쟁을 바라는 것으
로 알73다. 배장근, 잘 들어. 너회들 수단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네
놈들이 쓸 카드는 이제 없단 말이다. "
   "네놈이 이제는 정말 뒈지고 싶은 모양이구만, 절름발이 자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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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장근의 모텔에 감금되었을 때 최기대는 총에 맞은 다리를 절름
거리며 다녔었다.
   "나는 이 새끼야, 한광철이가 누군지도 모른다. 하지만 네놈은 분
명히 우리 여행사의 임 사장을 납치했어."
   "녹음해서 경찰에 넘겨 보아라."
   하고서 최기대가 웃음 소리를 내었다.
   "오늘 저녁 1시까지다, 배장근. 그때까지 돌려주지 않으면 전쟁이
야. 임 사장;I 없어질 것이다. "
   전화기를 내려놓은 배장근이 앞에 앉은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최기대가 단단히 화가 나 있구만, 전쟁을 치르TR다는군."
   배장근은 얼굴에 웃음을 떠올렸다.
   "놈은 총을 겁내게 되어 있어, 이제는. 그런 놈이 전쟁이라니."
   최기대가 부하들에게 입 조심의 엄명을 내렸지만 이틀이 지나자
한광철의 납치 사건을 모르는 조직원이 없게 되었다. 그것은 천기석
의 부하들이 입을 놀린 때문이었는데 그들은 서울에서 도와 준답시
고 내려온 최기대측과 아직 유대감이 형성되어 있지 쟈았다. 간부급
들의 공백을 낯 모르는 서울 뜨내기들이 차지하려는 것에 대해서 반
발하는 분위기도 섞여 있는 상황이었다.
   윤경산이 한광철의 이야기를 들은 것은 이틀이 지난 후였으니 정
보가 조금 늦은 셈이 될 것이다. 오전 10시, 부하들과의 회의를 마친
그는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섰다. 해운대에 있는 1'0층 빌딩의 3개 충
을 빌려 사무실로 쓰고 있었는데 그의 방은 9층에 있다. 책상으로 다
가간 그는 자리에 앉아 전화기를 들었다. 피부는 아직도 겁었으나 윤
1혀 밤의 대퉁령 제식준 -및
 기가 났고 옷차림도 몰라보게 세련되어 있었다.
    "여보세요, 접니다. "
    포보비치의 목소리가 들리자 윤경산이 부드럽게 말했다. 포보비치
는 고문관 역할로 아예 부산에서 상주하고 있었는데 그도 한국 생활
에 젖어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윤 사장, 점심 같이하게 12시에 해운대의 동산 호델로 와요."
   포보비치가 대뜸 말했다. 그는 절대로 중요한 이야기는 전화를 사
용하지 않는다.
   "알겠습니다. 동산 호텔의 중국 식당 말씀이지요?"
   "그렇소."
   전화기를 내려놓은 윤경산이 인터폰을 누르자 곧 경호실의 부하
목소리가 들렸다.
   "나, 12시에 포보비치 씨와 약속이 있다. 동산 호텔의 중국 식당이
야. "
   "알겠습니다, 시장님 ."
   한광철이 이동천의 부하들예게 납치당했다면 지금쯤 어딘가에 묻
혀 있을 것이었다.
   "9시 반에 배장근이 관리하는 해동 여행사 사장이 납치되었어. 이
제 최기대와 배장근이 치고받고 있어."
   포보비치가 서툰 젓가락질로 고기를 집으면서 말했다.
   "조성표가 죽고 나서 부산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것이지. 이동천이
가 먼저 선수를 쳤고."
   윤경산이 머리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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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우리는 물러나 있는 것이 낫겠습니다. 저희들끼리 실컷
싸우라고 하지요.우리는 손해볼 것 없습니다. "
    "이동천이 서울에서 전단을 뿌려 김양호를 코너에 몰더니 이제는
부산의 부하들을 치는구만."
    "김양호하고는 원한이 깊다고 들었습니다. 본래 이동천이는 동원
그룰의 사위이자 후계자로 정해졌다고 했습니다. "
    포보비치가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윤경산을 바라보았다. 초점이 먼
곳에 있는 시선이다.
    "조성표를 죽인 것이 누구일까? 이동천일까? 아니면 김양호인
가?"
    "야쿠자일 수도 있습니다. "
   "그령지. 우리까지 포함해서 조성표가 죽으면 모두 득을 볼 놈들
0171."
   그는 입술 끝으로 웃으면서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천기석이까지 포함해서 말이야."
   윤경산이 머리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천기석이도 말입니까?"
   "그래. 보스가 죽었으니 그놈이 이제 일인자 아닌가? 김양호가 배
후에서 지원한다면 금방 기반을 잡을 거야."
   "이젠 전쟁이야. 이동천은 킬러들을 내려보낸 것 같아. 최기대는
근것을 맞받아치고.우리도 준비를 단단히 해야 돼."
   "걱정할 것 없습니다. "
   어깨를 편 윤경산이 포보비치를 바라보았다.
386 밤의 대통령 제4부 -llf
    "지금조직이 제일 안정되어 있는 것은 우려니다. 그렇지 않습니
 까?"
    "하긴 그렬지. 야쿠자가 있지만 놈들은 김양호에게만 의존해 있
 어. 우리처럼 독자적으로 한국 정부를 상태해서 협상을 하진 못한단
 말이야."
    그때 방문이 열리더니 요리 접시를 든 종업원이 들어섰다.
    "곧 한국과 북한의 정상 회담이 열려. 그것도 모두 우리 러시아가
주선해 주었기 때문이야. 김정일을 움직이게 한 것도 따지고 보면 우
리ㄹf."
    종업원이 요리를 내려놓는 동안에도 포보비치는 말을 계속했다.
종업원이 러시아 말을 알 리가 없었고 설령 알아듣는다고 해도 이젠
감출 것도 없는 것이다.
    "이동천이 뿌린 전단을 보면 야쿠자도 로비 자금을 바친 모양이지
만 우린 그럴 필요가 없지 오히려 한국 정부한테서 사혜금을 받아
내야 할 입장이야."
   그가 입을 벌리고 소리없이 웃었다.
   그 순간이다. 막 그룻을 놓고 허리를 편 종업원이 옆에 앉아 있던
포또비치의 머리칼을 와락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힘껏 의자 뒤로 머
리를 젖히면서 다른 손으로 그의 목을 옆으로 훈어내었다. 너무나 순
간적인 일이어서 윤경산이 자리를 차고 일어났을 때는 뒤로 젖혀진
포보비치의 목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구쳐 나오고 있었다. 목이 잘린
것이다.
   윤경산은 가슴에 찬 루가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권총집에서 루
가를 쁩아들고 그를 향해 겨눈 순간에 두 팔을 벌린 사내는 덮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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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쪽에 다가와 있었다.
    "탕!"
    요란한 총소리가 방을 울리면서 사내가 휘청 몸을 쩔었다. 그러나
두 눈을 치켜 뜬 채 다시 그를 향해 한발짝 다가왔다. 그의 한쪽 손
가락 사이에는 횐 면도날이 반짝이고 있었다.
    "탕!"
    다시 총소리가 났을 때 문이 벌컥 열리면서 부하들이 쏟아지듯 들
어섰다.
    "탕!"
    세 발의 총알은 모두 가슴에 맞았으므로 치명상이었다. 부하들이
사래를 향해 달려와 막 어깨에 손을 대었을 때였다. 사래는 입에 가
득 고여 있던 피를 윤경산을 향해 뱉어내었다. 입으로 총을 쏘듯 뱉
어낸 펏물에 윤경산의 얼굴은 피범벅이 되었다. 이윽고 사래는 두 눈
을 부릅뜬 채 바닥으로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병원!"
   윤경산이 소리쳤는데 목이 꺾어진 포보비치를 향해서였다. 의자
뒤쪽으로 목이 젖혀진 포보비치는 이미 시체가 되어 있었다. 그의 목
에서 뿜어 나온 피가 식탁 위를 가득 덮었고 아우성을 치는 윤경산의
모습도 피투성이였다.
   "병원으로!"
   윤경산이 다시 소리쳤지만 이미 끝난 것을 알았으므로 목소리는
힘이 빠져 있었다.
호텔 앞은 구급차와 경찰차가 어지럽게 멈추어 서 있는 데다 이리
388 밤의 대통령 제실근 -르
저리 몰려다니는 구경꾼들로 흔잡했다. 그러다 보니 앞쪽 도로에 체
증이 생겨 양쪽 차선에 차들이 가득 차게 되었으므로 경찰이 정리를
하는 중이었다. 길가의 가로수 옆에 선 주대흥은 눈을 끔벅이며 현관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대구가 나을 시간은 이미 지났으나 차마 발을 몌지 못하는 것이
다. 그때 현관 앞의 사람들이 와락 뒤로 밀려나더니 들것 두 개가 들
려 나왔다. 횐 천을 머리 위까지 덮은 것을 보면 시체였다. 턱을 치켜
들고 그것을 보고 있는 주대홍의 옆으로 사내 한 명이 다가와 섰다.
   "주 형, 이만 돌아가시지."
   안기부 수사관 한종규였다.
   "고 형은 죽었소. 총에 맞아서."
   그는 주대홍의 팔을 끌고 가게 옆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포보비치도 목이 잘려 죽었소. 고 형이 해치운 것이지. 해
치우고 나서 윤경산의 총을 맞은 거요."
   그는 사건 현장을 보고 온 것이다.
   "잠깐 둘러보겠다고 들어가서 일을 벌일 줄은 나도 몰랐소. 자, 갑
시다. "
   주춤거리는 주대흥을 끌고 그는 옆쪽 빌딩의 주차장으로 다가갔
다.
   "계획보다 빠르게 일이 되었지만 어쨌든 상관없어. 다만 고 형이
안되었어."
   차의 시동을 걸며 한종규가 말하자 추대흥이 머리를 들었다.
   "윤경산이의 총을 맞았다고?"
   "그령소. 하지만 놈은 현장에 없었다면서 부하 한 놈이 제가 했노
                                               포커 페이스 189
라고 나섰는데 한국 경찰이 그렇게 어수룩하지는 않아. 놈의 얼굴의
피는 닦았지만 옷도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소."
   "그래서 수사관 한 명에게 귀띔을 했지. 놈의 옷을 증거물로 압수
하라고. 그것은 고 형의 피요."
    "놈은 불법 무기 소지와 정당 방위인지 어쩐지를 가지고 당분간
구속되어야 할 거요."
    체증이 심한 사거리를 겨우 지나자 차는 속력을 내었다.
    "이제 러시아 마피아는 무주공산이 되었어, 주 형."
    한종규가 힐끗 주대홍을 바라보았다.
    "고 형은 목숨값을 한 것이니 심란하게 생각하지 마시오."
   "그게 어디 ‥‥‥‥
   목소리가 뒤틀린 주대홍이 헛기침을 했다.
   "그짯 놈 목숨하고 고대구를 어떻게 똑같이 취급할 수 있단 말이
8?"
   ‥‥‥‥‥
   "그 시키는 나한테 잠간 안을 둘러보겠다고, 30분만 기다리라고
했어 ."
   한동안 침묵이 흐르자차 안에는 엔진 소리만 크게 들렸다.
   포보비치의 피살 사건이 발생한 지 한 시간도 못 되어 방송 보_도
가 되었는 데다 현장을 다녀온 부하로부터 보고를 들은 최기대는 한
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는 배장근의 조직과 일전을 불사할 준비를
갖추고 저녁 1시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고대구는 한광
190 밤의 대통령 제4부-lU
 철을 납치한 데다가 이제는 포보비치까지 살해한 것이다.
     그는 앞에 서 있는 부하를 바라보았다.
     "윤경산까지 경찰에 잡혀 갔다면 마피아는 몸뚱이만 남아 있겠는
 fl ."
     "그렇게 되겠숨니다, 형님,"
     "도대체 이동천이 이렇게 좌충우돌하는 이유가 뭐야?"
     이맛살을 찌푸린 그가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
    "그 개자식이 단숨에 부산을 집어삼킬 모양인데 뜻패로 되지 않을
 거다. "
    그때 전화벨이 울렸으므로 그는 전화기를 들었다.
    "나, 배장근이야."
    배장근의 툭툭 던지는 듯한 말소리가 들려 왔다.
    "7시까지 기다릴 것도 없어서 미리 말해 주는데 전쟁이다,이 새
끼야. 이제 곧 네 목을 톄러 갈테니까 기다려라."
    이건 그야말로 최소한의 예의도 체면도 지키지 않은 무지막지한
통보였다. 최기대의 얼굴이 금방 벌겋게 되었다.
   "이 개새끼, 나를 어떻게 보고."
   "너도 포보비치처럼 목이 떨어져 나갈 놈으로 본다. "
   "좋아, 전쟁이다. "
   "솔직히 언제는 전쟁 아니었나?하지만 지금부터는 다를 것이다. "
   그러면서 전화가 끊겼으므로 추기대는 전화기를내동댕이쳤다. 그
는 전화기를 줄는 부하에게 소리쳤다.
   "간부들을 모아라! 그리고 제주도로 연결해!"
   저쪽이 전쟁을 선포한 상래이니 이제 타협이고 협상이고가 없다.
                                              포커 레이스 1있
죽이지 않으면 죽는 것이다.
   6시 반의 한강 고수부지는 황량했다. 쌀쌀한 강바람이 넓은 주차
장을 훌고 지나자 휴지 조각이 공중에서 맴돌다가 떨어졌다. 어둠이
덮여 오는 강가에는 서너 명의 남녀가 웅크린 자세로 앉아 있었다
    이동천이 탄 차가 주차장에 들어와 멈추어 서자 앞쪽에 세워져 있
던 검정색 승용차가 움직이더니 그의 차 옆으로 다가와 섰다. 그리고
는 뒤쪽 창문이 내려지면서 박현식의 얼굴이 나타났다.
    이동천은 곧 차에서 내려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부산에서 곧전쟁이 일어날 거요,우리와 최기대가.그리고 마피
아도 우리의 등을 칠지 모릅니다. "
    이동천이 말하자 박현식이 머리를 8덕였다.
    "어차피 정리하기 위해선 한번은 일어나야 할 일이오. 그리고 기
회는 지금밖에 없어요. 조성표의 죽음으로 부산 조직이 중심을 잃었
고 김양호가 움츠러든 지금이 절호의 기회란 말입니다. "
   박현식이 말을 이었다.
   "마피아는 머리를 잃었으니 당장에 나설 수는 없을 거요. 그리고
야마구치조도. 그들은 김양호의 전단 사건 이후로 김양호와 떨어져
서 눈치만 보고 있으니까."
   "대선 후보가 결정되기 전에 주도권을 잡고 후보에게 선거 자금을
제공하는 것이 순서요. 그렇게 되면 이 사장은 정부로부터도 보호를
받게 될 거요."
   "그렇다고 해도 김양호의 서울 조직은 살아 있을 것 아니오?"
192 밤의 대통령 제4턱 -르
   "그건 그렇지. 서울의 김양호와 부산의 이동천이 되는 것이지. 대
선 후보는 부담 없이 양쪽에서 선거 자금을 받을 것이고."
   "최기대를 치면 조성표의 조직이 넘어을 것이고,흔란에 빠져 있
는 마피아 조직은 천천히 요리하면 될 거요. 그령게 되면 야마구치조
는 약삭빠르게 이 사장에개 동업을 요구할 게 틀림없소. 옛날 양승일
에게 붙었던 것처럼."
   한동안 앞쪽을 바라보던 이동천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해보겠소. 여러가지로 고맙습니다, 박 부장님."
   그러자 박현식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내가 애국하는 마음으로 이 사장을 돕고 있다면 사람들이 웃을
까?"
   "남이 웃든 말든 박 부장님은 상관하지 않으실 분 같은데."
   "그렇소. 솔직히 나는 지금 법을 어기고 있지만 부담이 없소. 왜냐
하면 신념이 있기 때문이오."
   "우리도 힘껏 도울테니 부산을 장악하시오. 외세를 몰아내고 강한
힘을 갖추어야 합니다. "
   그러기 위해서는 전쟁을 거쳐야만 하는 것이다. 어느새 창 밖은
짙은 어둠에 덮여 있었고 강 건너 먼쪽의 불빛이 겨우 보였다.
   11월 6일 주대흥이 이 날을 기억하는 이유는 몇 년 전에 봉천동으
로 스승을 찾아갔다가 박미정이 제 애인이라는 사내놈을 소개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그날 허름한 선술집에 앉아 소주를 마시면서 벽에
                                               포커 페이스 193
걸려 있던 달럭을 바라보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주대홍은 찌뿌드드한 몸을 일으키며 어젯밤에 너무 마셨다는 생각
을 했다. 고대구에 대한 죄책감이 소주를 열 병도 넘게 마시게 했는
데 취하지도 않았다. 고대구는 아직도 병원의 영안실에 누워 있었고
아마 천안에 있다는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에게 연락이 갔을 것이다.
    침대에 걸터앉아 한동안 멍한 얼굴로 있던 주대홍은 어깨를 늘어
뜨리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대흥이"
    이쪽에서 전화기를 들자마자 묻는 것은 배장근이다. 벽시계는 아
침 8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배장근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지금 양재동이를 보낸다. 아마 1 1시쯤에는 도착하겠는데."
    "아,글쌔, 나는 혼자 뛴다니까 그러네."
   짜증난듯 주대흥이 말하자전화기에서 혀 차는 소리가들려 왔
다.
   "큰형님 지시야. 또 독불장군 노룻 했다가는 너 이 새끼 가만 안
둘 거야."
   "아 씨발, 되게 잔소리가 많구만."
   "잔소리 말고 거기서 기다려."
   그러고서 배장근이 전화를 끊었다. 배장근이 서열상 형님이었으나
주대흥은 기분 내키는 대로 대하는 형편이었다. 그가 형님 대접을 깍
듯이 올리는 것은 박철규와 이동천뿐이다.
   모델 안은 밤 손님이 모두 빠져 나갔는지 조용했다. 한동안 그대
로 앉아 있던 그는 손을 뻗쳐 전화기를 들고는 다이얼을 눌렀다.
194 밤의 대통령 제4부 -템
    "여보세요."
   신호가 떨어지자 곧 고 여사의 목소리가 들려 왔으므로 그는 상체
를 세웠다.
   "저 주대홍입니다. "
   "아이고,주 서방."
   고 여사가 반색을 했다.
   "지금 거기 어딘가?"
   "좀 멀어요, 어머님."
   그의 머리에는 고대구의 시신 앞에 앉은 얼굴도 모르는 그의 어머
니 모습이 떠올랐다.
   "고 서방, 미정이 바러 줄게. 여기 미정이 있어, "
   그가 뭐라고 말할 사이도 없이 곧 박미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라. "
   "왜 그려 "
   "집에 언제 오세요?"
   "왜?"
   "그냥, 보고 싶어서요."
"난 그냥 집에 있어요, 어디 나가지도 않고."
"오빠 기다리고 있었는데 ."
그러자 다시 전화기가 그녀의 어머니 손으로 읖겨졌다.
"이 사람아, 미정이가 마음 잡았다네. 자네만 괜찮다면‥‥‥‥
하다가 전화기를 딸에게 빼앗긴 모양인지 잠시 말이 끊겼다.
                                               포커 페이스 195
   "그럼 언제 오려는가?"
   잠시 후에 고 여사의 숨가쁜 목소리가 들렸다.
   "곧 가지요."
   목이 메인 주대흥이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허리를 폈다.
   "어머님, 그럼 다음에."
   오늘은 11월 6일이었고 다시 기억에 남을 날이 될 것이다. 오늘
밤의 전쟁은 그 다음이다.
   "배장근에게는 러시아에서 들여온 무기가 많아. 놈들은 아예 총을
쏘아젖히면서 올 것이다. "
   최기대가 부하들을 둘러보았다.
   "덕봉이, 네가 지금 고노 씨한테 가서 총을 받아와ol겠다. 전총이
열 자루쯤 된다니까 그걸 애들한테 나누어 저라."
   고노와는 어젯밤에 이야기가 되어 있었으므로 필요하면 인원도 지
원해 줄 것이었다.
   회의실의 분위기는 다소 어수선했지만 활기에 차 있었다. 지금은
조직이 기업화되어서 어지간한 간부급이면 대차대조표를 읽을 줄 알
고 외국어도 한두 마디씩은 뱉는 기업가형으로 변신이 되어 가는 중
이었지만 대부분의 태생은 싸움꾼인 것이다. 이동천의 도전을 받고
그것이 조직과 자신의 장래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안 그들은 이제
맹렬한 전의를 보이고 있었다.
   "형님, 천기석 씨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
   부하 한 명이 다가오더니 그에게로 핸드폰을 넘겨주자 회의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이곳의 전쟁은 서울에서 내려온 최기대의 세
196 밤의 대통령 제샬」 -및
 력과부산의 배장근 세력 간의 전쟁이었지만 김양호와 이동천의 대
 리전이다. 그리고 명분상으로 말하면 조성표의 보호자인 김양호와
 적대자인 이동천의 전쟁이었다. 따라서 최기대가 싸움에서 진다면
조성표의 세력은 이동천에게 흘수당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천 형, 무슨 일이오?"
    "이쪽은 준비되었습니다, 최 형."
    천기석이 시원스럽게 말했다.
    "그쪽은 어떻습니까?"
    "준비랄 것도 없지 우리도 이미 끝냈소."
    최기대가 좌우에 둘러앉은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아예 이 기회에 깨끗이 청소를 해버릴데니까. "
    "그럼 계획대로 진행합니다. "
    "물론이오."
   전화기의 스위치를 끈 최기대가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이 친구,불안한모양이야.아침부터 벌써 두 번째 확인 전화를
하고 있어."
   천기석은 홑어진 부하들을 모아 200명 정도의 인원으로 해운대구
를 맡기로 했는데 1쪽은 덜 중요한 지역이었다. 공격과 방어를 해야
할 피아의 사업체가 다섯 개도 안되었으므로 천기석에게 그쪽을 맡
긴 것이다. 중요한 지역은 양쪽 업체 30여 개가 산재해 있는 남구와
동구, 중구, 영도구 등이다. 최기대는 서울에서 데려온 500명 가까운
인원으로 그곳을 쉽쓸 작정이었다.
   장방형의 원탁 위에 대형 지도를 펴놓고 회의를 하고 있는데 다시
부하가 다가와 전화를 건네주었다.
                                              포커 페이스 197
      "회장님이십니다. "
     이제 서울로 돌아와 있는 김양호였다.
     최기대는 전화기를 귀에 대었다.
     "접니다, 회장님."
     "이봐, 애들한테 주의시켰지?"
     김양호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는데 도청을 염려하는 것이다. 그는
 절대로 전화를 통해 중요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예, 염려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우리는 나서지 말어, 알겠나?"
     "예, 회장님. 우궈는 나서지 않습니다. "
    "그럼 수고하게."
    전화기를 건네준 최기대가 그를 바라보고 있는 부하들에게 말했
 다.
    "회장님의 당부가 다시 내려왔다. 절대로 우리 조직을 내세우지
말 것. 만일 그런 놈이 있다면 배반자가 될 것이다. "
    모두들 잠자코 머리를 끄덕였다. 이미 말단 부하들에게도 철저히
교육시켜 놓았으니 만일 경찰에 잡히더라도 이쪽은 조성표의 부하가
된다. 공식적으로는 이동천과 조성표 잔존 세력과의 전쟁이 되는 것
이다.
해운대 경찰서의 정보 과장 서을수 경감은 전화기를 귀에 대었다.
"예, 정보 과장입니다. "
"서 경감, 나야."
"아, 예, 김 총경님."
198 밤의 대통령 제4력 -르
   부산 경찰청의 정보 과장인 김상만이다.
   "그건 때문에 전화했는데 말이야."
   김상만이 느리게 말을 이었다.
   "해운대뿐 아니라 동부와 영도에서도 같은 내용의 보고가 들어와
있어.특히 영도에는 여관에 폭력배로 보이는 사내들이 20, 30명씩
집단 투숙하고 있다는 신고도 들어와 있고."
   "아무래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총경님. 조성표의 피살
사건에다가 포보비치의 살해 사건까지 겹쳐졌지 않습니까?"
   "글쎄, 그것이."
   "시장님께 보고드려서 아예 경찰 전 병력을 투입시켜서 검문 검색
을 펼치는 것이."
   "조성표의 부하들이 모이는 것은 확실하지?"
   "예, 천기석이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것도 확실합니다. 그리고
   "그리고 뭔데?"
   "서울에서 내려온 최기대가 천기석과 손을 잡고 있지요. 영도에
집단 투숙한 놈들은 아마 최기대의 부하들일 겁니다. 천기석의 부하
들은 바닥이 이곳이라."
   "배장근은 어때?"
   "그놈은 본래 집단으로 시위하듯 움직이는 놈이 아니지 않습니까?
밀입국 마피아를 데리고 있어 놓아서 그런지 종적을 잡을 수가 없습
니다. 다만‥‥‥‥
   "다만 뭐Of"
   "배장근 업체 주변에 소문이 파다합니다.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입
                                               포커 페이스 199
 니다. "
    "글쎄,나도 영도와 남부에서 그런 보고를 받았어,"
    "그럼 무슨 조처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봐, 서 경감. 이건 구두 지시니까 잘 들어."
    김상만의 목소리가 딱딱해졌다.
    "아무래도 폭력 조직 간의 전쟁이 일어날분위기인데,이쪽저쪽
 의 정보를 모아봐도."
    "제 의견도 그렇습니다. "
    "조성표 잔당과 이동천 세력 간의 싸5이야.그렇지 않나?"
    "예, 겉으로 드러난 것은. 하지만."
    "싸우도록 내버려둬."
    "애?"
    서을수가 눈을 둥그렬게 뜨고 앞쪽을 바라보았다.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정부는 이 기회에 조직 폭력배를 일제히 소탕할 계획이야. 그러
러면 저회들끼리 싸움을 벌이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낫다고 결정을
했어 ."
   "누가 말입니까?"
   "고위층이야."
   "0101, fl ."
   "시민이 다치는 경우는 드물겠지만 공포 분위기가 될 거야. 우리
가 나서는 때는 그때야."
   "놈들의 전쟁이 를나고 나서 말입니까?"
   "그렇지. 그령게 결정이 되었어."
200 밤의 대통령 제4부-lU
   "전쟁을 하게 되면 놈들의 조직은 모조리 노출된단 말이야. 아마
양쪽 놈들을 잡고 나면 서로 상대방 조상의 전과까지 폭로하겠지.그
렇지 않나?"
   "그건 그령습니다, 총경님."
   "그럼 그렇게 알고 있어. 곧 다시 지시가 내려갈테니까."
   서을수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김상만의 말
이 맞는 것도 있었고 틀린 것도 있었는데 문득 고위충의 지시였다는
말을 떠올리고는 생각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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