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전단살포
동남 상사에 신재득이 나타난 것은 오전 11시였다. 쏙룅 9시부터
건너편 길가아서 기다리던 허대수는 그가 택시에서 내리자 가슴을
쓸어 내렸다. 신재득은 흔자쳤는데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갈비집
옆의 빌딩으로 들어섰다.
"자,가자."
허대수가 차 문을 열고 내리면서 말헨다. 부하들이 따라내렸고 길
건너편의 자동차 부품상 안에서조 부차들이 쏟야져 나랴다. 이제는
신재득을 잡아서 이동천위 거처'를 실토받을 작정인 것이다. 2는 5
중짜리' 빌딩의 3충에 있는 동남 상사얘 들어가 있을 것미었다.
그들은 빌딩 현관으로 들어섰다. 모두 여텁 명이었으므로 재단 옆
에 의자를 갖다 놓고 신문을 읽고 있던 경비훤이 눈을 껌뻑치며 그들
을 바라보았다. 빌딩얘는 엘려볘치터가 없만으므로 현관예 세 명을
남겨 두고 나머지 차섯-명은 차단을 을라가기 시작했다. 앞창을 선
전단살포 129
것은 허대수다.
"죽이지만 말아라."
계단을 올라가던 허대수가 다시 한번 부하들에게 말했다. 놈의 입
만 다치지 않게 하면 되는 것이다.
신재득은 전화기를 귀에 대고는 의자에 기대앉아 있었다. 후배에
게 하는 전화였다.
"알았다. 그러면 내일 오후 1시애 거기서 보자."
전화기를 내려놓은 그는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사무실은 스무 평
정로 되었는데 신재득의 고향 선배가 직원 세 명을 데리고 청소기를
판하는 회사였다. 여직원은 계산기를 두드리느라 여념이 없었고
선배는 직원들과 함께 반품되어 온 청소기를 분해하느라 둘러앉아
있었다. 어젯밤 잠을 설쳤으므로 쩌뿌드드한 몸을 일으진 그는 다시
전촤기를 들었다.
그때 사무실의 문이 열라면서 사래들이 쏟아자 들어왔다. 사무실
안의 사람들이 일제히 머리를 들었는데 신재득은 튕기듯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신재득이, 다치지 말고 따라와."
앞장선 허대수가 소리쪘고 사래들은 그의 주위에 벌려 섰다. 여직
원이 몸을 일으켰으나사래 한 명에게 어를 눌려 그대로 의자얘 주
저앉았다.
"누구십나까?"
하고 선배가 일어서자마자 무지막지한 주먹과 발길질이 그에게로
날아들었다. 바닥얘 쓰러진 그는 신음칼라를 내었다.
130 밤와 대통령 쟤4부-방
신재득은 창가에 몸을 붙이고 서서 잎궤 벌려 선 사래들을 노려보
았다.
"이 새꺼들, 김양호의 강아지 새끼들이로구만."
악문 잇사이로 그가 말을 뱉었다.
"너는 동대문페서 변소 구멍으로 후장 바치고 살았다는 허대수구
나."
1는 주머니에서 선뜻 잭나이프를 러내어 들었다. 찰칵 소리와 함
께 횐 칼날이 주먹 속에서 튕겨져 나왔다.
"개새끼들, 싹 귁여 주겠다. "
여직원이 랍게 비명을 질렀다가 사내 한 명의 주먹에 배를 얻어맞
고 의자와 함꼐 바닥으로 엎어졌다.
그 순간이다. 책상 위로 뛰어오른 신재득은 발을 날려 앞에 선 사
내의 턱을 올려차면서 다시 옆쪽의 책상위로 뛰었다. 그러자 앞에
서 있던 사래가 회칼을 옆으로 길게 휘둘렀으므로 바지와 항께 종아
리가 베어졌다. 사래들은 소리도 내지 않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었는
데 결코 문을 비워 두지는 않았다.
신재득이 다시 옆 책상으로 뛰어 을겼을 허대수가 몸을 날려
옆쪽 책상으로 뛰어올랐다. 그의 손에는 짧은 일본도가 들려 있었다.
"이 새끼, 내가 병신을 만들어 주마."
그가 어지럽게 내려치는 칼날을 피해 신재득이 바라으로 뛰어내리
자 다시 양쪽에서 사래들이 달려들었다.
칼날이 어깨를 긋고 지나가자 신재득은 와락 그쪽으로 몸을 굽히
면서 사내의 배를 쪘렀다. 숨을 들이마시면서 사래가 허리를 숙이자
신재득은 몸을 세우면서 칼을 똔았다. 그 순간 어깨애 섬뜩한 느낌이
전단 살포 131
오면서 금방 활로 지지는듯한충격이 왔다.
손에 든 잭나이프가 바닥에 떨어지자 그는 몸을 획 돌리면서 온몸
으로 어깨를 찌른 사내에차 부덫쳐 갔다. 몸을 부딪치는 순간 머리를
뒤로 젖혔다가 이마로 사래의 콧잔등을 못질하듯 박는다.
다시 옆구리에 칼이 박히자 신쟤득은 성큼 한걸음 물러나 창문에
등을 대고 섰다.
"날 데려가려고 왔냐?"
그는 붉은 입을 활짝 벌리며 소리멉이 웃먼다.
"그래, 잘 모셔라."
그러면서 엉덩이를 창틀에 걸차는가싶더니 신재득은 아직도 웃는
얼굴로 몸을 뒤로 누였다. 반쫌 열려 있던 창문이 활짝 열리딴서 ·잠
간 신재득의 두 타리가 보였다가 금방 아래로 사라졌다.
이동천이 신재득의 추락사를 안 것은 그로부터 찬 시간쯤 지난 후
였다. 신재득을 찾아 동남 상사에 전화를 한 부하 한 명미 직원으로
부터 사건의 전말을 들은 것이다.
이동천은 신재득이 누워 있는 병원의 영안실에 찾아갈 상왔이 아
니었으므로 됫수습을 하고 나서 앞에 서 있는 주대흥을 바라보았다.
"신재득이만 로리를 잡힌 갓은 고대구가 정보를 주었기 때문일 것
이다. 신재득이 놈을 믿고 있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
"그 새끼를 형님한테까지 데리고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싹 윅여 버렸어야 하는데."
"놈들이 나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는 증거다. 직원 이야기를
들으니 놈들은 신재득미를 끌고 가라고 했어."
132 밤의 대통령 제좌부 -린
이동천이 찬찬히 주흥을 바라보았다.
"지난번처럼 백 상무의 복수를 한답시고 나서지 마라. 지금은 그
럴 메가 아니다. "
"내일 아룅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단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
어?"
"압니다. "
박철규는 지금도 인쉐소를 지키고 띤었는데 인쇄는 저녁 무렵이면
를날 예정이었다. 그러고 나면 내일 새벽 전단 살포를 위해 부하들은
충동원이 된다.
이미 빌려 둔 핸터카 50대에 각각 두 명씩 부하를 배치했으므로
백 명의 부하가 동원된 작전이다. ·기밀 보장을 위 밤 12시부터 차
얘 싣는 작텁카 운반, 포를 할 계획이었다. 서울을 10개 지역으로
나누어 각 지역마다 다섯 대의 차량이 10만 장의 전단을 뿌리게 될
것이니 내일 아침의 모든 거리는 전단으로 뒤덮이게 된다.
그 시간애 71양호는 찌푸린 얼굴로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이동천
의 부하들은 본레가 양숭일의 골수분자로 박철규를 따라나간 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모두 양승일이 김양호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믿
고 있었으므로 타협의 여지가 없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띠토록 행적
을 찾기 어려울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그것은 그만큼 그들이
조심하고 있다는 증거떴는데 겨우 알아낸 신재득을 잡지도 못하고
추락사시진 것이 생각할숫록 윤했던 것이다.
이윽고 김양호가 머리를 들어 앞에 앉은 최기대를 바라보았다.
"그놈이 서울에 온 것은 기빤을 잡으려고 온 것이고 신용수의 등
전단 살포 133
에 당분간 업힐 것은 틀림없어. 신용수 쪽을 훌어보면 로리가 잡힐
것이다. "
"그령습니다. 어됐든 곧 드러납니다. "
최기대는 서둘 것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신용수의 조직은 기반도
있고 홰 컸지만 사기가 풀어져 있는 상래였다.
"제가 대구 다녀와서 본격적으로 손을 쓰겠습니다. 부산은 한광철
에게 당분간 맡겨 놓아도 됩니다. "
"조성표가 저녁 1시까지는 돈을 준비해 놓는다고 했어. 늦지 않도
록 3H."
김양호가 탁자 위에 놓인 편지 봉투 하나를 집어 그에게로 건네
주었다.
"이건 영수증이다. 돈을 받고 건네 주도록."
봉투를 받은 최기대가 잠자코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후 3시였으니
곧 출발해야 할 시간이었다.
기무사 참모인 하쳔철 중령은 30대 후반으로 육사 시절에는 럭비
부 주장으로 날린 사래였다. 소위 때 전방 생활을 하고 중위 패부터
소령까지 공수 부대에서 지내다가 중령을 달고 기무사로 전출된 전
형적인 야전 장교다.
그러나 그는 오늘 잠바 차림이 되어 구멍가게 앞애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마른 멸치를 셉고 있었다. 저녁 6시가 되어 있어서 가게
안에서는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풍겨 나왔다.
그의 앞을 소형차 한 대가 낮은 속도로 달려 위쪽의 주택가로 을
라갔다. 차량 두 대가 겨우 비켜 갈 수 있는 길이었는데 아래쪽으로
134 밤의 대통령 제4달 -111
백 미터쯤 내려가야 큰길이 나왔다. 시장 바구니를 든 여자들이 그의
앞을 지나갔고 아이들 한례가 어지럽게 달려 내려갔다.
인쇄소가 있는 옆쪽 골목에서 김 대위가 나오더니 곧장 그에게로
다가왔다. 후줄근한 양복 차림이었다.
"2만 장씩 모두 50개로 구분해 놓았습니다. 이제 싣기만 하면 됩
니다, 참모님."
그외 앞에 선 김 대위가 말하자 하영철은 머리를 』1덕였다
"모두 교대로 식사를 시켜. 이제 몇 시간 후면 바빠질테니까. "
"알겠숨니다. 그런데 박철규 씨가 잠간 참모님을 뵙자는데요."
자리에서 일어선 하영철은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인채소 앞에 서
있던 서너 명의 사래들 중 몸을 굳힌 두 명이 그의 부하들이다.
좁은 마당에 쌓인 전단 더미 옆에서 부하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던
박철규가 그를 보더니 다가왔다. 마당에 켜놓은 전둥빛에 그의 얼굴
에서 번들거리는 땀방울이 드러났다.
"이봐, 하 중령. 차는 밤 12시부터 15분 간격으로 다섯 대씩 오기
로 했는데 길이 막히면 지랄이야."
박철규가 얼굴의 땀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큰길과 골목길의 위아래에서 교통 정리를 해야 돼, "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 선배."
하영철이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여기 와서 인사를 나누었지만 박철규는 그의 육사 2년 선배인 데
다가 공수 부대 선배이기도 했다. 이것은 대단한 인연이었는데 그 전
에 한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는 것이 하영철을 안타라게 했다.
"여기를 떠나실 때까지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박 선배."
전단 살포 135
"어쩠든 반갑군.자네를 만나서."
박철규의 얼굴이 부드러워졌다. 그는 전단 더미 위에 앉아 하영철
을 바라보았다.
"이 일이 끝나면 술 한잔 내가 사겠네."
"언제든지 불러 주십Al오, 박 선배."
박철규가 손바닥으로 전단 더미를 두드렸다.
H나는 우리의 이 전쟁에 군인까지 끼여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
어."
e저도 그령습니다. 솔직히 제가 밤의 조직 일을 도우리라고는 생
각 못했숨니다. "
박철규가 그를 바라보며 웃었다.
H글쌔, 누가 아는가? 밤낮이 거꾸로 될지. 이게 나가면 이용덕이는
바람 앞에 촛불이야. 김양호도 마찬가지고."
그는 일어서서 엉덩이를 털었다.
H어쩠든 지금 지체나 나는 좋은 편이야,그렬지 않나?"
대구 우성 호텔의 특실 안 조성표와 천기석이 최기대를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최기대가 입을 열었다.
-대선 후보가 되면 그것으로 끝이지요. 이제까지 여권 후보가 대
통령 안된 적이 없지 않습니까?"
"하긴 그렇지."
머리를 끄덕인 조성표가 술잔을 쥐었다. 최기대를 만나기 전부터
마시고 있었으므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136 밤의 대통령 제식준 -및
"이것으로 이 총장님과 끈이 닿는다면 나는 더 바랄 것이 없어."
그는 머리를 돌려 천기석을 바라보았다.
"준비한 것을 가져와."
천기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옆방으로 가더니 조그만 손가방을 들고
돌아왔다.
"여기 100억이 있어. CD로만 준비했으니 쓰시기에 편리할 거
야. "
손가방을 받아 최기대 앞으로 밀어 놓으면서 조성표가 말했다.
"여기 저회 회장님의 영수증이 있습니다. "
최기대가 김양호로부터 받은 횐 봉투를 내밀자 조성표는 받아 들
고 펼쳐 보았다. 100억 원을 영수한다는 김양호의 짧은 글과 그의 사
인이 그려진 영수증이다. 조성표÷가 종이를 접었다.
"뤘어. 이젠 대선이 끝나기만 기다려야겠군."
"회장님께선 사장님이 부디 자중하시기를 바라셨숨니다. 몇 달만
참으시면 되니까 외출 같은 것도 좀 삼가셔서‥‥‥‥
"고맙다고 전해 주게."
다시 술잔을 든 조성표가 말했다.
"다시 부산에 돌아가 이동천이와 배장근을 갈아 마시는 것이 내
마지막 꿈이야. 그러고 나서 난 은퇴하Tf어."
"곧 기회가 올 겁니다. "
"그런데 최 사장은 부산으로 언제 내려갈 건가?"
"서울 들러서 회장님을 뵙고 곧장."
그러자 조성표가 술잔을 내려놓았다.
"천 실장도 수배중이긴 하지만 부산에 내려가 최 사장을 돕도록
전단 살포 137
했어. 아마 최 사장한테 큰 도움이 될 거야."
"OtOl, fl , "
"은신처도 여겆 있고 하니까 숨어 지내면서 조직을 정비하도록 했
으니 최 사장과 손발이 잘 맞아야겠어."
"잘 되었숩니다. 그렇지 않아도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사업체가
원체 많아서요."
"위험하지만 하는 수 없어. 두 사람 중 하나는 남아 있어야지."
"몇 개월만 고생하시면 될 겁니다. "
자리에서 일어선 최기대가 조성표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
그리고는 배웅하느라 문 앞까지 따라나온 천기석을 향해 머리를
끄덕여 보였다.
"천 형, 부산에서 뵙시다. "
11월 1일 새벽 5시 10분.천호대교를 넘어 88대로로진입한승용
차 다섯 대는 속력을 내었다. 아직 짙은 어둠이 깔려 있어서 차들은
모두 혜드라이트를 켰다. 88대로에는 차량의 왕래가 적었으므로 얼
마든지 속력을 낼 수 있었지만 100킬로미터를 오르내리고 있는 선두
차에 모두 속력을 맞추고 있다.
"야, 이대로 가다가는 강남에 20분이면 가겠다. "
운전석 옆자리에 앉은 김석도가 말했다. 그는 이번 작전에 조장이
되어서 강남 지역을 맡게 된 것이다.
운전사가 차의 속력을 더 줄였으므로 다섯 대의 차량은 88대로를
시속 90킬로미터의 속력으로 달려나갔다. 그러나 이것도 한남대교에
138 밤의 대통령 제갈』 -템
서 좌회전을 하여 강남대로에 들어서기 전까지만이다. 그곳에서 다
섯 대는 모두 맡은 구역으로 흘어져 나갈 것이다.
핸드폰이 울렸으므로 김석도는 스위치를 켰다.
"어디냐?"
뱉듯이 묻는 음성은 박철규의 것이다. 김석도는 허리를 폈다.
"예, 지금 영동대교 옆입니다. "
"넌 조금 빠르구나. 청소원하고 마주칠지 모르겠다. "
"아예 청소원 다리를 분질러 놓지요,뭐 ."
"이 새끼, 장난하지 마라."
박철규의 고함 소리에 김석도는 목을 움츠렸다.
"6시에서 1시 사이다. 알아들어?"
"알고 있숩니다, 형님."
"일 끝나면 차는 버리고 올 것."
"압니다, 형님, "
박철규가 더 이상 잔소리를 않고 전화를 꾼었으므로 김석도는 길
게 숨을 내쉬었다. 지금쯤 전단을 가득 실은 50대의 차량이 서울 시
내에 확 퍼져 달려가고 있을 것이다.
김석도는 벅차오른 가슴을 폈다. 비록 랍은 인생이었지만 1는 지
금처럼 흥분된 시간을 가진 적이 없었다.
6시 25분.시청 앞의 인도를 걷던 사람들은 인도 쪽으로 바짝 다가
온 승용차 한 대가 전단을 뿌리는 것을 보았다. 아직 이른 아침이어
서 인도에는 행인들이 많지 않았으므로 전단은 하얗게 흩날리며 인
도에 가득 뿌려졌다.
전단 살포 139
승용차는 한 무더기씩 전단을 뿌리면서 을지로 쪽으로 사라졌다.
행인들은 거의 대부분 전단을 집어 들었고 걸으면서 그것을 읽었다.
그들은 걸음을 멈추고는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리고는 주위에 흩
어진 전단을 대여섯 장빅 다시 모아 들었다.
6시 게달. 종로 5가를 달리며 전단을 뿌리던 승용차 한 대는 사이
렌을 울리며 쫓아오는 순찰차를 무시하고 출근길의 시민들을 향해
전단을 뿌려대었다. 화가 난 순찰차가 앞을 가로질러 막았을 때는 전
단이 모두 뿌려지고 난 다음이었고 어느덧 그들은 동대문에까지 와
있었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오른 경찰 두 명이 차에서 내리자 승용차
에 탔던 사내들이 문을 열고 나오더니 차도로 뛰어나갔다. 차도를 달
리던 승용차들이 급브레이크를 라고 멈추었으나 뒤쪽의 차들은 요란
한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놀란 경찰들이 입을 벌리고 그것을 바라보
는 사이에 사채들은 길을 건너 자취를 감추었고 경찰들은 사고 난 차
량으로 다가갔다.
강남역 사거리의 지하도 입구에도 한 무더기의 전단이 뿌려져 있
었다. 전철역에 들어서려는 시민들은 전단을 한 장씩 집어 들고 계단
을 내려갔다. 모두 열심히 읽는 것을 보고 호기심이 난 시민들이 너
도나도 전단을 집어 드는 바람에 거리는 도로 깨끗해졌다.
신촌 로터리를 달리던 서대문 경찰서 소속 121호 순찰차는 무전
연락을 받고 막 연대 쪽으로 우회전을 하는 순간에 전단을 뿌리며 다
140 밤의 대통령 제샬1-111
가오는 승용차를 보았다.
"저 새끼들이야, 잡아."
조수석에 앉은 김 순경이 소리치자 박 순경은 사이렌을 켰다. 6시
50분이었다.
"운동권이야, 뭐야?"
무전 지시가 애매했으므로 박 순경이 투덜거리며 액셀러레이터를
밤았다. 그러나 승용차는 전단을 뿌리며 태연히 다가초고 있다. 사이
렌 소리에 시민들의 관심이 쏠렸고 곧 전단을 뿌리는 숭용차와 함께
이목이 집중되었다. 너도나도 흩날리는 전단을 움켜쥐느라 인도에서
는 난리가 났다.
"저 씨발놈들."
약이 오른 박 순경이 중앙선을 넘어 반대 차선의 그들 앞으로 바
짝 순찰차를 붙였을 때였다.
"황."
소리와 함께 두 순경은 뒤로 몸을 젖혔고 다시 머리를 세웠을 때
는 순찰차의 보닛이 위로 올려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저, 씨발놈들."
머리를 뒤로 돌린 박 순경은 승용차가 뒤쪽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
았다. 모퉁이를 돌면서 숭용차는 다시 한 묶음의 전단을 인도 쪽으로
뿌리고 있었다.
7시 10랄. 영등포 역 앞에서 전단을 거의 다 뿌리고 오목교 쪽으로
달리던 승용차가 버스를 들이받고 멈추어 섰다. 승용차에 타고 있던
두 사내는 재빠르게 내려 인도로 뛰어 달아났는데 버스 운전사가 악
전단 살포 141
착같이 쫓아왔다.
그러나다리 힘이 약한버스운전사는마침내 허덕이며 멈추어 서
고는 다시 사고난 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승용차의 번호판을 보
더니 분을 참지 못하여 구듯발로 문짝을 걷어찼다. 번호판이 렌터카
용인 '허'자였던 것이다.
아침 9시 30분. 한민당 당사에 당무 위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모
두 침통한 얼굴이었고 목소리도 낮추고 있었으므로 마치 초상집에
문상 온 조문객 같은 자세들이었다. 간혹 꾸민 표정이 역력한 사람들
도 보였지만 그들은 중량급 인사들은 아니다. 경량급 졸개들이었다.
당대표실에 사람들이 모두 모인 것은 9시 50랄. 강운환 대표가 입을
열었다.
"모두 읽어 보았을테니 내용에 대해선 말할 필요도 없고. 자, 이걸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Td소?"
"국민당도 지금 당무 위원 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 때문에
하는 겁니다. "
하고 말한 것은 원내 총무를 지낸 장현길 의원이었다.
"얼른 수습해야지 큰일났습니다. "
"제가 경찰청에 알아보았더니 폭력 조직배 이동천이 김양호를 죽
이려고 만든 것이라고 했습니다. 언론을 막고 무시하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요."
대표 비서 실장 민영수가 다부지게 말했다.
"이건 조작된 것입니다. 지명 수배자가 퍼뜨린 일을 가지고 동요
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
142 밤의 대통령 제4부 -및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이용덕의 사람이다. 이용덕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터진 이번 사건을 죽기살기로 덮어 둘 작정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너무 커요, 사건이. 내용을 보면 국민들이 그냥 넘어갈 것
같지가 않아요."
상임 위원장 김재희가 찌푸린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서울 시내 전역에 뿌려졌어요. 1,2만 장이 아니오. 몇십만
장, 그것도 출근길에. 뭔가 구체적으로 납득할 만한 해명이 있어야
합니다. "
"해명은 무슨."
민영수가 김재회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위원장님, 그까짓 놈의 장난에 당이 말려든단 말입니까? 무시해
야 됩니다. 대표까지 모시고 말씀을 나눌 가치도 없는 일입니다. "
그 순간 방문이 열리더니 강운환의 비서관이 들어왔다. 그는 강운
환의 귀에 낮게 몇 마디를 하더니 책상 위의 전화기를 집어 그에게로
건네 주었다. 그러자 방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낮은 목소리로 몇 마디 대답을 하고 난 강운환이 전화기를 비서관
에게 건네 주더니 사내들을 둘러보았다.
"나, 청와대에 들어가봐이겠소."
"여러분들의 의견은 각하께 말씀 드리겠습니다. "
청와대가 이 사슬을 안 것이다. 이쪽은 아직 의견이라는 것도 다
내놓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입을 여는 사람은 없다. 이제 사건은 심각
해진 것이다.
전단 살포 143
대통령은 손에 들고 있던 전단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는 한동안 김
재선의 머리 위쪽을 바라보았다. 집무실 안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정적에 쉽싸여 있었다. 이윽고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이동천이란 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검사였다고 했나?"
"예, 각하. 동원 그룹의 양승일 회장이 사위 겸 후계자로 삼았던
인물입니다. "
김재선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양 회장이 죽고 후계자 자리에서 밀려나자 동원 그룹의
관리자인 김양호에게 원한을 품은 것 같습니다. "
"내용을 보면 놈의 목표는 김양호가 아니라 이 총장이야. 이 총장
이 죽일 놈이 되었어."
"더구나 야쿠자의 돈까지 먹었다고 적혀 있으니 국민의 반일 정서
까지 건드려 놓았어."
"각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동천의 조작된 음모에서 시작된 것으
로‥‥‥
"음모?"
대통령이 그의 말꼬리를 잡았다.
"그래, 음모야. 우리를 싸잡아서 매장시키려는 음모다. "
"각하, 제 소견입니다만 무시하시는 것이‥‥‥ 혹시나 어떤 질책
이 따른다면 이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공격당할 염려가 있습니다. "
"여론은 곧 잠잠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곧 정상 회담이
열리면 국민들의 관심은‥‥‥‥
144 밤의 대통령 제긱부 -및
"너무 해먹었어, "
문득 대통령이 말했으므로 김재선은 말을 멈추었다. 대통령은 책
상 위에 펼쳐진 전단으로 다시 시선을 주었다.
"3년 동안 해먹은 것이 천이 넘는군. 그 대가로 얼마나 많은 부정
과 비리를 저질렀을꼬."
"로비 자금이 있다는 것은 인정해.지금도 인사로 주는 돈,돌려
주는 것이 어색하다는 것도 알아. 한데 내 말은 이런 식으로 증거가
잡히게 노골적으로 해먹어야 하느냔 거야. 더구나 야쿠자 돈까지,"
"각하, 그것은."
"난 이 내용이 사실이라고 보네."
"근래에 들어서 해먹은 액수가 부쩍 늘어난 것을 보면 나름대로
대선 자금 준비를 하는 모양히야."
"각하,저는 아직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
"이렇게 많이 먹은 것을 말인가?"
"내 생각엔 자네에게도 얼마쯤 집어 주었으리라고 보는데, 그령지
않나?"
"동원 그룹과 야쿠자 등 밤의 조직에서만 이렇게 먹었는데 다른
대기업이나 단체에서 먹은 걸 계산하면 천문학적인 금액이 되겠구
만."
"각하, 이 총장은 충성심이 강한 사람입니다. 각하에 대한 충성심
전단 살포 145
은 아무도 따를 자가 없습니다. 단지‥‥‥‥
"모든 언론 기관을 철저히 단속하게. 절대로 이것을 내비치지 말
도록."
"알겠숱니다, 각하."
"강 대표가 오면 말하겠지만 야당이 만일 이 문제를 쟁점화한다면
야당 비자금 내역도 그냥 두지 않겠다고 해."
"저희들이 적극 손을 쓰겠습니다, 각하."
"정상 회담을 당걱야겠어 ."
대통령이 자리를 고쳐 앉았다.
"자레는 오늘 출발할 예정이지?"
"예. 그런데 이 일이 생겨서, 저녁 비행기로 늦추었습니다. "
"정상 회담을 열흘쯤 후인 11월 If일 전후로 잡도록 하게.북한놈
들이 이번 사건을 알고 또 토를 달지 모르지만 우리가 줄 만큼 주었
으니 따라오Tf지."
"알겠습니다, 각하."
"그리고."
대통령이 책상 위로 몸을 숙였다.
"내가 조긍 전에 생각했는데 ."
"북한 사람들에게 넌지시 제의해 보게. 휴전선 근처에서 총격이나
위협 분위기를 한번 조성한 다음에 내가 김정일에게 정상 회담을 제
의하는 것으로 말이야."
"저, 그러면 우리가."
"아니, 저쪽이. 저쪽더러 하라고 해. 우리 군인은 안돼."
146 밤의 대통령 제4부-및 .
"본래의 계획과 다른 것은 총격 사건으로 남북 관계가 긴장된 상
황에서 내가 정상 회담 제의를 하는 것이지. 그것이 명분도 있고 극
적인 효과도 있을 것 같은데."
"예, 그렬게 노력해 보겠습니다. "
김재선이 머리를 숙였다.
본래의 계획은 모스크바에서 세부 계획을 작성한 다음에 김한영
대통령이 남북간 정상 회담 제의를 하고 김정일이 즉각 수락한 다음
판문점에서 간단한 실무자급 회의를 마치고 제3국에서 정상 회담을
개최하는 것이었다.
김재선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대통령이 전단을 집어 그에게로 내밀
었다.
"이것,도로 가지고 가."
김재선이 받아들자 대통령이 똑바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 총장한데는 내가 그냥 넘겼다고 하게. 그자한테 충격을 주면
안되니까."
"알겠습니다, 각하."
"정상 회담 직전까지는 그대로 두겠어."
"정상 회담에는 자레만 데려가겠네. 내 말 알겠나?"
얼굴이 금방 상기된 김재선이 시선을 내렸고 대통령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따위 장난질에 정권이 털끝 하나 흔들릴 줄 알아?어림 없는
전단 살포 147
일이지."
김양호는 탁자 위에 놓인 전단을 차곡차곡 접더니 주먹 안에 움켜
쥐었다.
"언론은 입도 뺑긋하지 않고 있어. 야당도 움직이지 않고."
그는 주먹 안의 전단을 구석에 있는 쓰레기통을 향해 던졌으나 벽
에 맞고 방바닥에 떨어졌다.
"재야 단체들이 지랄을 할지 모르지만 하다못해 알뜰 시장 신문의
카메라맨조차도 가지 않을 것이다. 그 새끼들도 이제는 매스컴 안 타
는 사건들은 취급하지도 않아."
오전 11시가되어 있었다. 아침의 전단살포사건은구전을통해
서울 전역에 퍼져 나갔고 전단을 복사하여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시
민 단체나 학생들도 있었지만 정부와 언론은 입도 뺑긋하지 않고 있
었다. 다만 경찰이 서울시 전역에 깔려 젊은이들의 가방을 조사하는
등 불심 검문이 강화되어 있다.
김양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종암 경찰서에서 전단을 뿌린 두 놈을 잡았다고 했지?"
"예, 하지만 경찰은 언론이 알까 봐 감추고 있숱니다. 아마 위에서
지시가 내려온 모양입니다. "
그들이 이동천의 부하들인 것은 분명했지만 사건을 묵살하고 있는
마당이라 경찰은 잡은 것을 오히려 짐스럽게 생각할지도 몰랐다.
"이왕 이렇게 된 것,이 총장이 돌아오면 놈의 부산조직을모조리
세무 감사로 무너뜨리겠다. "
김양호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으며 말했다. 문제될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은 했지만 그의 이름이 박힌 전단이 서울 바닥을 온통 도배
148 밤의 대통령 제4력 -방
질한 형편이라 속이 편할 리는 없다.
방안에 다시 정적이 찾아들었는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거기 김 회장 계시오?"
전화기를 잡자마자 저쪽에서 소리치듯 사내가 물었다.
"난 조성표올시다. "
김 양호가 와락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조 사장. 웬일이시오?"
"사건을 들었습니다. 팩스로 전단을 지금 받아 보았는데, 쇈찮TE
습니까?"
"그건 문제도 아니오."
"들었다면 잘 아시TE지만 당국은 묵살하고 있어요. 그런 장난에
대국이 흐트러질 것 같습니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잠시 한 호흡 쉬고 난 조성표가 말을 이었다.
"이동천이 한국을 몽땅 뒤흔들어 놓는군요.도대체 당국은 놈을
잡을 생각이 있기나 한 겁니까?"
그는 잠간 자신의 입장을 잊은 모양이었다.
"그놈이 어딜 가TR소? 머지않아 잡힐 겁니다. "
김양호가 자신있게 말했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시오, 조 사장. 내가 이렇게 끄덕없이 앉아 있
는 것을 봐도 알 수 있을 거요. 그런데 누가 감히 그분을 건드린단
말이오?"
"걱정이 돼서 전화했습니다. "
전단 살포 149
조성표의 목소리도 조금 밝아졌다.
"어차피 우리는 지금 한 배에 타고 있는 입장이어서 말이오."
통화를 마친 김양호는 앞에 앉아 있는 최기대를 바라보았다.
"개자식, 돈을 날릴까 봐 조바심이 났던 모양이야."
"당연하지요. 부산으로 천기석을 보내어서 제 일을 감시하려고 드
는 자이니까요."
"여간 철저한 사람이 아닙니다, 회장님."
"하긴 그만큼 기반을 굳힌 자이니 그럴 만도 하지."
끊양호3가 시계를 내려다보는 시능을 했다.
"나도 며칠 간 쉬는 것이 낫겠어. 하다못해 이 총장이 돌아을 때까
지만이라도."
그 시간에 양유경은 벤츠 500의 됫좌석에 사이토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사무실에서 사이토를 만나 같이 식사하러 가는 길이다. 차가
한남대교를 건너 강남대로에 들어섰을 때 사이토가 입을 열었다.
"아침에 김양호는 별것 아니라고 허세를 부리고 있더구만. 하지만
경찰청과 서울 지검,그리고 한민당사에 몇 번씩 전화를 해대는 걸
보면 당황하고 있는 게 분명해."
그는 아침의 전단 살포가 있자마자 김양호의 사무실로 갔던 것이
다.
"여론이 심각하게 돌아갈 거야. 이것을 덮으려면 대통령이 크게
한건 터뜨려야 하는데 ."
"이용덕이 후보에서 밀려날 가능성은 없나요?"
130 밤의 대통령 제4달-lE
양유경이 묻자 사이토는 머리를 저었다.
"현재로서는 없어, 그렇게 되면 전단의 내용을 인정한 셈이 될테
니까."
"하지만 이용덕의 당선 가능성은 국민당의 김일중 대표보다 10퍼
센트 이상 더 낮아졌지. 이대로 가면 차기의 대통령은 김일중 씨지만
원체 한국 여당은 프리미엄이 많아서 뚜껑을 열어 봐야 돼."
"로비를 그쪽으로 해야 될까봐."
혼자소리처럼 양유경이 말하자 사이토가 웃었다.
"글쎄, 양다리를 걸치는 것이 제일 안전한 방법이긴 한데 잘못했
다간 양쪽에서 차이는 수도 있어서."
"아버지는 야당에도 가끔씩 로비를 했어요. 큰 돈은 아니지만."
"이제 사정이 이렇게 되었으니 그것도 고려해 봐야겠어."
차는 강남역 사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며 멈추어 섰다. 한
동안 창 밖을 바라보던 사이토가 입을 열었다.
"당신 말대로 로비 자금은 김양호의 손을 통하지 않도록 해야 돼
이제 오늘 아침의 일까지 생겼으니 쥐고 있다가 대선 후보가 결정되
면 우리가 직접 주자구."
"이용덕이 되지 말아야 해요."
양유경이 불쑥 말했다.
"오늘 일로 우리 =I룹의 명예가 손상을 입었지만 이용덕과 김양호
가 몰락하기만 한다면 감수할 수 있어요."
"그렇게 될 경우 김양호는 당신 부친의 심부름을 했을 뿐이라고
할 거야. 실제로도 그렬고."
전단 살포 151
"글쎄, 그룹의 피해는 감수하겠다니까요? 김양호만 없어져 주면."
"하긴 이만큼 기반을 굳혔으니 김양호만 없어지면 그룹을 장악할
있겠지."
그러면서 사이토가 다시 웃었다.
"이동천이 이번에는 당신을 위해 일을 벌인 것 같군 그래." 수
고대구가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걸어 산기슭을 돌자 왁자지껄한 사
내들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북한강의 물줄기가 산을 돌아 흘러 내려
오는 산기슭에 2충 벽돌집 한 채가 서 있었다.
늦은 오후여서 산 그림자가 짙게 덮인 강가의 자갈밭에는 10여 명
의 사내들이 모여 앉아 술을 마시는 중이었다. 고기를 굽는 냄새도
풍겨 왔고 누군가는 소리내어 웃었다.
고대구가 자갈길을 걸어 그들에게로 다가가자사래들이 일제히 그
를 바라보았고 그 중 한 명이 일어섰다.
"대구 아니냐?"
양승일 시대에 동료로 지냈던 서동철이다. 허리에 두 손을 짚고
서서 그는 고대구의 위아래를 훌어보았다.
"온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
사내들이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으므로 그의 목소리가 자갈밭 위
로 퍼져 나갔다.
"너 이 새끼,죽으러 왔다면 몰라도 살아서는 여기 못 나가."
그러자 위쪽의 벽돌집 쪽에서 사내 한 명이 뛰어 내려왔다.
"동철 형님,그 사람 올려보내랍니다. "
서동철이 힐끗 사내를 바라보고는 몸을 돌렸으므로 고대구는 벽돌
152 밤의 대통령 제4부 -lU
집 쪽으로 발을 돌렸다. 사내는 20대 중반이었는데 처음 보는 얼』
이었다.
"집안으로 들어가시오. 기다리고 계시니까."
잠자코 옆을 걷던 사내가 턱으로 앞쪽을 가리켰는데 그의 태도도
곱지 않았다.
이동천은 양옥집 마당에 내놓은 나무 평상에 박철규와 마주앉아
있다가 다가오는 그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그들의 앞에 선 고대구는
허리를 꺾었다.
"저, 동원 그룹을 떠났습니다. "
억눌린 목소리로 고대구는 말을 이었다.
"저를 죽여 주십시오."
박철규가 힐끗 이동천에게 시선을 주더니 입을 열었다.
"그렬지 않아도 네 연락을 받고 네가 온다면 돌려보내지 않을 생
각이었다. "
"비열한 놈, 친구의 우정을 배신으로 갚다니. 네가 여기서 죽어도
신재득이의 목숨값으로 부족하다. "
머리를 숙인 고대구는 선 채로 꼼짝하지 않았다.
"넌 죽어도 배신자란 오명을 껏을 수가 없단 말이다. 알아들어?"
"예, 형님 "
"난 네 형님이 아냐, 이 새끼야."
번쩍 한쪽 무릎을 세우며 상체를 일으킨 박철규가 번개처럼 손을
날려 고대구의 뺨을 쳤다. 고대구가 한걸음 옆으로 발을 디다가 다
시 제자리로 돌아와 섰다.
전단 살포 153
박철규가 말을 이었다.
"네가 죽으려고 찾아왔다지만 그것은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야.
난 개피를 보기 싫으니까."
몸을 돌린 박철규가 이동천을 바라보았다.
"형님, 지시를 내려 주십시오."
한동안 고대구를 바라보던 이동천이 입을 열었다.
"넌 그만하면 돌아가신 양 회장께 충성하TR다고 한 약속을 지킨
셈이다. "
고대구는 땅바닥을 내려다본 채 움직이지 않았다.
이동천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만하면 어떤 것이 정의인지도 알았을 것이다. "
"나는 네가 신재득이의 연락처를 김양호에게 말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너는 양유경에게만 보고를 했어. 신재득의 연락처를 말한 것
은 양유경이야."
고대구가 번쩍 머리를 들었다. 부릅뜬 눈으로 이동천을 바라보던
그가 다시 머리를 숙였다.
"그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너나, 양유경이나, 그리고 죽은 신재
득이한테도."
그러자 박철규가 크게 뜬 두 눈을 쩜벅이며 이동천과 고대구를 번
갈아 바라보았다. 이동천이 박철규에게 말했다.
"이제 이놈에게 필요한 것은 또다른 죽을 명분이야. 신재득의 피
값은 이놈이 모두 치를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 상무, fl가 명분을
주』라."
114 밤의 대통령 제』력 -트
"개같은 객기를 버리고 솔직히 이야기를 해야지요, 형님."
박철규가 고대구를 노려보았다.
"이 새끼, 너만 양유경 씨 생각하냐? 이 개새끼야."
그의 욕설은 험했으나 억양은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이런 개자식들이 있어? 내가 이민을 가든지 어쩐들지 해야 이 꼴
을 안 보지."
그러면서 전단을 책상 위에 내던진 것은 특전시령부 예하 제3공수
여단의 정보 참모 이평섭 중령이다. 그는 털색 의자에 몸을 던지듯
내려앉고는 앞에 앉은 김 대위를 바라보았다.
"서울 시내가 온통 떠들썩하다구. 이제 곧 대한민국 전체가 알게
될 거야."
"당국에서 지금까지 가만 있는 걸 보면 묵살할 모양입니다. "
김 대위가 말하자 이평섭은 어금니를 문 채 머리를 돌렸다. 오전
에 시내에 나갔다가 전단을 읽고는 귀대해 '보니 이미 부대 안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던 것치다. 김 대위가 자신의 책상 위에도 놓인
전단을 들여다보았다.
"누구는 너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조작한 것 같다고도 합니
다. "
"조작은 무슨, 이건 사실이야."
그는 머리를 들어 벽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여단장님 퇴근하셨나?"
"참모장님하고 같이 계십니다. "
"요즘은 매일 붙어 있군, 그 양반들이."
전단 살포 155
그는 책상 위의 전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눌렀다. 참모실의 손 대
위가 전화를 받았다.
"손 대위, 난데, 참모 있어?"
작전 참모 강학수 중령은 그의 육사 동기이다.
"참모님은 지금 여단장실에 계십니다. "
"참모장도 계신다던데, 무슨 회의를 하는 거야?"
"회의는 아닙니다, 참모님."
"그럼 뭐야?"
"잘 모르겠습니다, 참모님."
혀를 찬 이평섭이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김 대위가 이평섭을 바라
보았다.
"곧 남북한 정상 회담을 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참모님."
"그 빌어먹을소문은 김일성이 살아 있을때부터 있었어 이젠 그
만 써먹으라고 해."
이평섭이 버럭 역정을 개었다.
"회담 한답시고 하나도 제대로 한 것도 철으면서 무슨."
청와대의 정무 수석실 안이다. 공항으로 출발할 준비를 마친 김재
선은 대통령에게 인사를 드리고 돌아와 기다리고 있던 박현식과 마
주앉아 있다. 박현식은 월례 보고차 비서실장을 만나고 나온 길이니
부자연스러운 만남이 아니다.
"회담은 내일이오. 내가 출발이 늦어서 모스크바에 도착하자마자
회담을 하게 되었어."
김재선이 시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오후 5시 10랄전이었다.
156 밤의 대통령 제살』 -fll
"각하께서는 더 이상 사건이 확래되는 것을 바라지 않고 계십니
다. "
김재선의 말에 박현식이 머리를 」1덕였다. 오후 1시경에 대통령의
지시라면서 김재선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던 것이다.
"회담은 만 하루면 끝날테니 난 사흘 후인 11월 4일에는 돌아을
수 있을 겁니다. "
"그렬다면 정상 회담은 언젭니까?"
"저쪽 사람들을 만나 봐야 알3a지만 일주일에서 열흘 후요. 각하
께서는 15일 전후해서 열리기를 바라십니다. "
"내용은 불가침 조약과 남북 교류 그대로‥‥‥‥
"물론이오."
김재선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어쨌든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
"아니, 천만에요. 난 당연한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솔직히 나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내가 권력욕
이 있는 사람입니까?모두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
말을 멈춘 김재선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만둡시다, 이런 이야기. 서로 어색하니까."
"그런데 각하께서는 이 총장을 그대로 밀고 나가실 건가요? 정부
당국이 언로는 막았지만 아무래도 여론이‥‥‥‥
"그건 나도 모릅니다. "
"각하께서 무슨 생각이 계시겠지요."
"우리끼리 이야긴데 난 김 수석이 이번에 대선 후보가되는 것이,
전단 살포 157
신선감이라든가 청렴성, 그러고 정상 회담이나 남북 관계를 이어가
는 점에 있어서도 적임자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이런, 그 이야기는 그만합시다. "
김재선이 찌푸린 얼굴로 손을 젓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럼 다녀와서 다시 만나지요."
그들은 함께 방을 나와서는 제각기 갈라전다. 박현식이 본관 현관
으로 나오자 대기하고 있던 그의 전용차가 다가왔다. 앞자리에 타고
있던 민영택이 서둘러 내리더니 문을 열어 주었다.
"민심이 극도로 악화되어 있습니다. 정부가 이번 사건을 묵살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이 대단합니다. "
차가 청와대의 정문을 빠져 나가자 민영택이 말했다. 박현식은 잠
자코 머리를 끄덕였다. 안기부 요원들은 극의 지시에 의해 야당과 시
민 단체, 언론사에 총출동하다시피 파견되어 있었다.
민영택이 말을 이었다.
"이동천은 북한강 가에서 부하들과 함께 있습니다. 박철규와 통화
를 챘는데 시내 사정을 봐서 서울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
"그리고 김양호는 가족과 수행원을 데리고 오후 4시 비행기로 제
주도로 떠났습니다. 인원이 50명이 넘었습니다. "
김양호도 시내 사정을 봐서 서울로 돌아을 모양이었다.
주왕산은 단풍철이 지났지만 깊은 골짜기와 수목이 울창한 능선들
이 절경이었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내려다보면 잠시 속세를 잊
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158 밤의 대통령 제갈L -및
조성표는 주왕산의 절경 중의 한 곳인 계곡 위쪽의 농가 세 채를
매입하여 2충짜리 통나무 별장을 지어 놓았다. 별장은 건평이 150평
이나 되었고 주변의 숲과 어울린 다소 투박한 겉모양은 세련된 건축
가의 솜씨임을 보여 주고 있었다.
별장에 온 지 이틀째 되는 날 아침, 조성표는 지난 밤에 과음을 했
음에도 불구하고 아침 6시에 눈을 떴다. 옆에는 머릭카락을 흐트린
그의 정부가 벌거벗은 몸으로 엎드려 자고 있었다.
침대에서 일어난그는 버릇처럼 탁자위에 놓인 담배를 집었다가
곧 내려놓았다. 아침 운동을 한 후에 태우기로 마음을 바꾼 것이다.
별장에 머물러야 할 기간은 김양호의 말대로 길어야 다섯 달,짧
으면 넉 달이다. 조성표는 그동안 맑은 공기를 마시며 체력을 단련해
두기로 계획을 세운 것이다. 밤에 어쩔 수 없이 부하들을 부르거나
정부와 함께 술을 마시게 되더라도 아침 운동은 빼먹지 않을 작정이
었다.
그가 운동화와 운동복 차림으로 마당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두 명의 부하가 다가왔다. 그들도 운동복 차림이었는데 제각기 허리
가 불룩했다. 재킷으로 덮은 허리에 가죽 벨트를 찼고 그곳에 끼워넣
은 권총 때문이었다.
조성표는 개울가로 나 있는 사잇길을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저 몸
을 푸는 정도의 속보로 걷는다 싶을 정도의 속도로 뛰었다. 부하들이
그의 뒤를 따라 뛰기 시작했고 별장에서 기르는 횐싹 잡종개가 그들
의 뒤를 따랐다.
조깅 코스는 어제 아침에 뛴 대로 개울의 사칫길을 500미터쯤 달
리다가 나무 다리를 건너 앞쪽의 산 밑에 나 있는 포장도로로 나와서
전단 살포 159
다시 500미터쯤 뛰고 별장 앞 다리를 건너 오는 코스였다. 아침 안개
가 개울 위를 가득 덮고 있었으므로 숨을 들이마시면 습기와 함께 물
냄새도 맡아졌다.
산새가 파닥이며 머리 위를 날아갔고오른쪽숲에서는새들이 울
었다. 인적이 없는 산길을 달리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으므로 조성표
는 가쁜 숨을 내쉬면서 사칫길을 달려 나무 다리로 다가갔다.
나무 다리는 안개에 덮여 양쪽의 기둥 윗부분만 드문드문 보일 뿐
이다. 개울물은 얕았지만 다리는 2미터쯤의 높이였다.
그는 발을 옳길 때마다 가볍게 흔들리는 나무 판자의 탄력을 느끼
면서 다리 위를 뛰었다. 부하들이 다리 위로 오르자 다리의 진동이
조금 커졌다.
안개를 혜치며 막 국도에 발을 디딘 조성표는 갑자기 앞에서 나타
난 사래의 모숩을 보았고 그 다음 순간 가슴에 타는 듯한 통증을 느
끼면서 안개 속으로 주저앉았다. 뒤를 따라 부하들의 모숩이 드러났
을 때 이쪽 사내들의 상반신도 안개 위로 나타났다.
"퍽, 퍽, 퍽 !"
사래들이 쥐고 있는 것은 소음기를 끼운 권총이었다. 무방비 상태
로 달려오던 부하들이 다리 위로 쓰러지자 다시 이쪽의 다릿목에서
사내 한 명이 안개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손에는 날이 20센티미터
쯤되는 칼을 쥐고는 헝겊 조각으로 칼날의 피를 닦고 있었다.
"됐다. 죽었다. "
그는 마치 닭을 잡은 식당 주인처럼 말했다.
"주왕산 아침 안개는 멋지군. 자, 이제 돌아가자."
160 밤의 대통령 제샬L _및
천기석이 조성표의 죽음을 안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였다. 부산에 내려와 임시 거처로 삼고 있는 영도의 아파트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던 그는 전화를 내동댕이치듯 내려놓고는 벌떡 일어
섰다. 식탁에 둘러앉아 있던 부하들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천기석의 통화 내용을 통해 조성표가 피살되었다는 사실을·알게 된
것이다.
두 눈을 부릅뜬 천기석이 벽을 쳐다본 채 움직이지 않았으므로 부
하 한 명이 다가갔다.
"실장님."
천기석을 바라보던 부하는 몸을 굳혔다.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동안 방안에는 숨소리도 출리지 않을 정도로 무거운 정적이 흘
렀다. 이윽고 천기석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훔치고는 부하들을 바라
보았다.
"사장님은 돌아가셨지만 조직이 무너진 건 아니다. 내가 일으켜
세우고야 만다. "
그의 낮은 목소리가 집안을 울렸다.
"그리고 이 원수를 꼭 갚고야 말 것이다. "
"실장님, 범인은 누굽니까?"
부하 한 명이 묻자 천기석은 처음 만난 사람처럼 그의 얼굴을 바
라보았다.
"그건 아직 모른다. "
"부산에는 이동천이, 러시아 마피아, 그리고 야쿠자까지 기반을
전단 살포 161
뻗쳐 가고 있으니까그 중 하나일 수도 있고."
그때 전화벨이 울렸으므로 사내들은 일제히 전화기로 시선을 돌렸
다. 부하 한 명이 전화기를 들더니 곧 천기석을 바라보았다.
"실장님, 최기대 씨인데요."
천기석은 전화기를 받아 들었다.
"나 천 실장이오."
"천 실장, 금방 주왕산에다 전화를 했더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
tf"
최기대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있었다.
"경비를 어떻게 세웠길래 그런 일이."
"난 여기 서울인데 당장 내려가겠소. 만나서 이야기를 합시다. "
"그럽시다. "
천기석이 주위의 부하들을 둘러보았다.
"그래야 될 것 같소."
"우리 회장님께 연락했더니 놀라셔서 당장에 천 실장과 대책을 상
의하라고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
"내가 있는 한 조직은 무너지지 않아요. 놈들은 잘못 생각했어."
전화기를 움켜쥔 천기석이 잇사이로 말했다.
"두고 보시오. 어느 조직의 짓인지 드러난다면 우리 힘으로 몰살
을 시킬데니."
"그래야지."
최기대의 목소리도 흥분되어 있었다.
"우리도 돕겠소. 당연히 도와야지."
162 밤의 대통령 제구분 -llf
배장근은 이동천의 조직을 인계받고 나서 그야말로 밤잠을 자지
않고 열성적으로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본래 이동천의 부산 조직은 아이즈 고데츠의 사업 기반을 관리하
면서 금방 기반을 잡게 되었던 것이었으므로 이동천이 빠져 나간 공
백을 메우는 것이 그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이동천과 박철규가
만들어 놓은 기존 조직과 본래의 사업 기반을 관리만 하면 되는 상황
은 아니다. 기존 터줏대감인 조성표의 조직이 비록 서리를 맞았지만
아직도 건재했고, 마피아좌 야쿠자가 언제나 빈틈을 노리는 곳이 부
산이었다. 그리고 김양호의 부하들이 조성표의 조직을 돕는다는 명
목으로 대거 내려와 있는 것이다.
해운대의 창고에 가 있던 배장근이 기무라의 전화를 받은 것은 그
날 오전 10시 반경이었다. 11월 3일이다.
"배 사장, 조성표가 암살되었소. 오늘 새벽에 주왕산의 별장에서
조깅을 하다가 칼을 맞았다는 거요."
배장근은 핸드폰을 귀에 댄 채 서둘러 조용한 사무실로 들어섰다.
"누가 그랬답니까?"
"아직 모릅니다. "
기무라도 홍분한 듯 말투가 빠르다.
"아침에 부산에 남아 있는조성표의 모든 조직원들이 비상 대기
상태로 들어갔습니다. 천기석이 부산에서 지휘하고 있어요."
기무라는 정보 수집력이 뛰어난 사내였다. 그는 전부터 10여 명의
정보원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 자들인지 그 외
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기무라가 말을 이었다.
전단 살포 163
"막판에 몰린 천기석이 어떤 행동으로 나올지 예측할 수가 없어
요, 배 사장. 조심해야 됩니다. "
"젠장할."
배장근이 와락 이맛살을 찌푸렸다.
"우리가 왜 그 새끼들한테."
"서울 형님한테서도 곧 연락이 올 거요. 내가 보고했으니까."
핸드폰의 스위치를 끈 배장근이 사무실을 나와 창고 안을 둘러보았다.
무역 회사를 통해 수입해 온 갖가지의 상품이 쌓여 있는 사이로 양재동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소리쳐 부르자 양재동이 서둘러 다가왔다.
"조성표가 암살당했다. "
배장근이 대뜸 말하자 양재동의 얼굴이 굳어졌다.
"누구한테 말입니까?"
"그건 아직 모른다. 새벽에 조깅하다가 칼을 맞았다는 거야."
"잘 죽었습니다. "
"하지만 천기석이 부하들을 모으고 있어. 놈은 이를 갈고 있을 것01다. "
"우리한테 말입니까?"
"놈들을 그 꼴로 만든 것이 우리란 말이야.그럴 가능성도 있지."
"한판 붙지요,뭐.제 사격 솜씨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
"애들을 비상 대기 시켜라. 연락망도 점검하고. 곧 서울 형님한테서 연락이 을 것이다. "
부산에서 조성표가 사라졌으니 이제 그의 거대한 사업체와 조직은
시체에 달려드는 하이에나와 같은 여러 조직의 먹이의 대상이 될 것은 틀림없는 일이었다.
천기석이 악을 쓴다고 해도 그는 조직의 관리자일 뿐이지 소유주가 아니다.
양유경의 경우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 될 것이다.
양재동이 서둘러 몸을 돌리자 배장근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누가 조성표의 조직을 흡수하느냐에 따라서 부산의 지배자가 결정이 된다.
그리고 그 가능성이 제일 큰 것은 서울의 김양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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