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밤의 대통령

2. 대리 전쟁

오늘의 쉼터 2015. 1. 1. 23:26

2. 대리 전쟁

 

 

장두식이 부하들과 함께 로비에 들어섰을 때 로비는 비어 있었다.
프런트의 직원도 보이지 않았으나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너회들은 계단을 지켜."
   프런트에 등을 기대고 선 장두식이 말했다. 배장근은 계단으로 해
서 20또=실로 을라갔을 것이고 기다리고 있던 오용식과 그의 부하들
에 의해서 지금쯤 시체가 되어 있을 것이었다.
   그러자 계단 위쪽에서 인기척이 들렸으므로 부하들이 긴장했다.
계단을 서둘러 내려온 두 사내는 오용식의 부하들이다.
   "다 끝났냐?"
   "어디 갔어요?"
   장두식과 사래들이 서로 거의 동시에 물었다. 그리고는 다음 순간
얼굴을 하얗게 굳히면서 당황했다.
   "올라가지 않았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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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함치듯 장두식이 물었을 때 호델 현관문을 박차고 대여섯 명의
사내들이 쏟아지듯 들어왔다.
   "퍽 ! 퍽! 퍽!"
   앞장선 사내가 쥐고 있던 권총에서 횐 섬광과 함께 무딘 발사음이
났고 장두식과 부하 한 명이 몸을 뒤틀면서 바닥으로 쓰러졌다. 부하
한 명은 재빠르게 계단을 뛰어 올라갔지만 나머지는 순식간에 제압
되었는데 저쪽은 모두 총을 들고 있었던 것이다.
   "방마다 뒤져라!"
   권총을 휘두르며 조형근이 소리쳤다.
   "놈은 아직 이곳에 있다!"
   사내들은 맹렬한 기세로 계단을 달려 올라갔다. 2충 계단의 꺾여
진 부분을 앞장서서 돈 것은 조형근의 부하로 발이 빠른 미하일 정이
다. 그는 루가 권총을 쥐고 있었는데 소음기가 끼워 있지 않았다. 한
걸음에 세 계단씩 뛰어 선뜻 2층의 복도에 몸을 드러냈던 그는 어두
운 복도 안쪽에서 번쩍이는 빛줄기를 보는 순간 뒤로 넘어지면서 계
단으로 굴러떨어졌다. 부하 한 명이 그에게 걸려 같이 굴렀고 조형근
은 계단 끝의 벽에 몸을 붙였다.
   "이 새끼들."
   놈들도 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계단의 귀퉁이에 엎어진 미하일
정은 꼼짝하지 않는 걸 보면 죽은 모양이었다. 조형근은 총을 움켜쥔
한쪽 손만을 복도로 내밀고는 연거푸 방아쇠를 당겼다.
   "퍽! 퍽! 퍽 !"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났고 총알이 쇠붙이에 맞아 날카로운 소
리를 내며 퉁겨 나갔다.
58 밤의 대통령 제샬L -lB
   "배장근이 눈치 챈 것이오."
   한윤호가 허둥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야단났는데. 이젠 우리가 갇혔어."
   "아, 거, 씨발, 되게 말 많네."
   전화기를 내동댕이친 오용식이 권총을 움켜쥐었다. 복도에서는 다
시 총소리와 함께 총알이 벽에 맞아 퉁겨 나갔다. 그들이 있는 곳은
205호실로 복도의 제일 안쪽이었는데 놈들이 여기까지 오려면 203
호와 203호에 있는 부하들을 거쳐야 할테니 시간은 있다. 호텔 방은
복도의 양쪽으로 다섯 개씩 있어서 205호와 206호가 양쪽의 맨 끝방
이었다.
   오용식이 옆에 서 있는 부하들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3충에서 애들이 치고 내려을 거다. 그때 같이 나간다. 준비해라."
   2충의 방 열 개는 오전부터 손님을 받지 못하도록 했지만 3충부터
   "배장근 이 쌍놈의 새끼. 오늘은 결판을 내겠어."
   문으로 다가간 그가 문고리를 잡으면서 말했다.
   그때 조형근은 한 톄의 지원군을 맞아들이고 있었다. 밖에서 대기
하고 있던 여덟 명의 부하가 몰려온 것이다.
   건물 출입구는 계단 한 곳떨이어서 로비와 현관, 그리고 바깥에
경비를 배치시키고 나자 그는 마음이 놓였다. 이제 치고 올라가서 놈
들을 몰살시키고 마약을 빼앗으면 된다.
   "이리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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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부하가 들고 있는 기관총을 잡아 채고는 자신이 들고 있던
미제 스미스앤웨슨을 던져 주었다. 총신을 짧게 만든 러시아제 AK
개량형 기관총은 손에 익숙하게 잡혔다. 그는 계단의 벽에 일렬로 늘
머서 있는 부하들을 내려다보았다. 그와 시선을 마주친 부하들은 모
두 그의 명령만을 기다리는 표정이었다.
    앞을 달리던 순찰차가 사이렌을 짧고 날카롭게 울킵자 승용차들이
 이차선으로 비켜났다. 이제 사거리에서 우회전만 하면 곧 남해 호텔
 이 나온다.
    순찰차의 뒤에는 경찰 호송 버스 한 대가 기를 쓰고 따르는 중이
었는데 버스 안에는 스무 명이 넘는 무장 기동 타격대가 타고 있었
다. 출입구 옆에 앉아 있던 건장한 체격의 경위가 머리를 들었다. 1
는 해운대 경찰청의 기동 타격대장이다.
   "이거 사하구 경찰청에서 난리를 치겠는데, "
   그러자 옆에 앉은 사복 차림이 혀를 찼다.
   "이봐요, 지금 구역 따질 접니까? 한 건 크게 올리는 판인데."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이 사내는 안기부 요원이다. 그는 초조해
보였다.
   "안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다니까 서둡시다. "
   "송정 근처에서 밀수꾼들의 싸움이 있다더니 갑자기 사하구의 남
해 호텔이라니." -
   못마땅한 듯 투덜거리던 타격대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잘 들어!"
   그가 소리치자 대원들이 일제히 그를 바라보았다.
60 밤의 대통령 제길1-르
    "호델 앞에 도착하자마자 호텔을 포위한다. 1, 2조는 정문, 3조는
좌측, 4조는 우측, 5조는 됫문이다!"
    버스는 이제 우회전해서 호텔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놈들이 총격전을 하고 있다니까 주의할 것! 한놈도 놓치지 마라!"
   안기부 수사관 한종규는 억눌린 숨을 내쉬었다. 사하구 지역에 있
는 남해 호텔에 해운대구의 기동 타격대를 데리고 올 줄은 모두에게
뜻밖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송정 근처에서 밀수꾼들이 싸움을 한다
는 정보가 있다고 초저녁부터 데리고 나와서는 송정까지 갔다가 장
소를 옳겼다면서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가 이곳 남해 호텔로 몰고 온
것이다. 경찰 내부에 있는 조직의 정보원들을 속이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다.
   그보다 1,2분쯤 늦게 사거리를 우회전해서 호텔로 달려가는 두
대의 승용차가 있었다. 앞쪽 차에 타고 있는 것은 한국신문의 부산
지사장인 전영문이다. 그는 머리를 돌려 뒤를 따르는 승용차를 바라
보았다.
   "씨발, 대한일보 놈들한테도 알려 준 것 아냐? 제기, 특종은 틀렸
다 그렇다면 서울일보, 국제신문 모두 올 것이다. "
   "그래도 마약 150킬로를 서로 랫으려고 조성표 조직과 러시아 마
피아가 총격전을 벌인다는 것은 대특종이오."
   옆자리의 김 기자가 떠들씩하게 말했다.
   "어이쿠, 저기 경찰 버스에서 타격대가 쏟아져 나오네.이봐,서
기자. 사진! 사진!"
   그들은 패맞추어 도착했다는 흥분감에 이제 다른 신문사와의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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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을 잊었다. 숭용차는 곧 버스 뒤에서 급정거를 했고 그들도 타격대
처럼 뛰어내렸다. 호텔 바깥은 10여 명의 행인들이 웅성거리며 몰려
서 있다가 기동 타격대에 의해 뿔활이 흩어졌는데 김 기자는 그 순간
호텔 안에서 들려 오는 요란한총성을 들었다. 기관총 소리였다.
    "타타타타."
   복도의 양쪽을 향해 기관총을 쏘아 젖히면서 조형근은 발로 202
호실의 문을 차 열었다. 복도의 등은 모두 깨어 있어서 끝 쪽의 부서
진 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불빛으로 희미하게 윤곽만 드러나 있다.
   3층에서 기습해 온 놈들의 총에 맞아 이쪽은 한 사람이 죽었고 자
신도 총알이 어깨를 스쳤다. 그러나 이미 이쪽편이 승기를 잡은 것
이다.
   20쓰신과 209호실, 그리고 203호실도 비어 있었으므로 그는 벽
에 기대어 서서 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복도에는 세 명의 사내가 쓰러져 있었는데 한 명은 아직도 가늘게
신음 소리를 뱉고 있었다. 부하 한 명이 208호실의 문을 발로 차 열
자 안에서 총성과 함께 총탄이 쏟아져 나왔다. 부하가 총페 맞았는지
옆으로 비켜서면서 비틀거렸다. 그때였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들어라! 너희들은 포위되었다! 무기를 버리
고 투항해라!"
   밤하늘을 울리며 마이크 소리가 퍼져 나왔다.
   "5분의 여유를 준다! 5분이 지나면 가차없이 공격하겠다!"
   조형근이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옆에 선 부하를 바라보았다. 어두
워서 투하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지만 눈의 횐 창은 이쪽을 향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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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기관총을 움켜진 채 그가 신음처럼 말을 뱉었다. 호텔에 돌입한
 지 5분이 겨우 될까말까 한 시간이었다. 한국 경찰이 이렇게 재빠르
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때 한윤호와 두 명의 사내는 20쑈신의 창문에 둘러쳐진 철봉
을 거의 뜯어낸 참이었다. 오래 된 철봉이라 받침대가 자아 세 명이
힘을 합해 비틀어 젖혔던 것이다. 도난 방지용으로 남해 호텔에는 2
충에만 철봉이 둘러쳐져 있었는데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받침대가 쁩
혀 나갔다.
   그때 경찰의 마이크 소리가 울려 왔다. 도로가 바로 창문 밑이어
서 마이크 소리는 조형근에게보다 더욱 생생하게 들렸다. 그들은 일
제히 창문으로 밖을 내려다보았다.
   "경찰이오! 기동 타격댑니다!"
   숨가쁜 듯한 목소리로 부하 한 명이 소리치자 문 옆에서 권총을
세워들고 있던 오용식이 부드득 이를 갈았다. 이것은 그야말로 진퇴
양난이었다.
   한국신문의 전영문 지사장이 걱정했던 것은 기우였다. 비록 5대
일간지의 기자들과뒤섞여 취재를 하게 되었지만 2충에서 뛰어내리
는 한윤호와 오용식 일당들을 젝은 것은 한국신문뿐이었다. 물론 다
리가 부러진 한윤호를 포함하여 사내들은 모두 체포되었고 조형근을
따라 여텁 명의 러시아 마피아도 항복해 왔다. 그리고 마약 150킬로
그램은 안기부 요원이 간단히 찾아내었는데 프런트의 테이블 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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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전히 놓인 두 개의 가방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남해 호텔의 2충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지만 3층 이상에 있던 투
숙객들은 다치지 않았다. 호텔에는 경찰과 기자,그리고 부상자와 죽
은 자들을 끌어내는 앨욜런스와 119구조대까지 출동해 있어서 아수
라장이었다.
    호텔에서 50미터쯤 떨어져 있는포장마차 안이다. 소주병을 앞에
놓고 민영택이 기동 타격대를 끌고 온 안기부 요원과 나란히 앉아 있
었다. 그가 민영택에게 물었다.
    "배장근 씨는 잘 빠져 나갔습니까?"
   "물론이지. 곧장 프런트로 가서 가방만 맡겨 놓고 됫문으로 빠져
나왔어. 놈들이 그곳에 있었더라도 잡지 못했을 거야."
   "양측 합해서 사망자가 5명이고 부상자 6명을 포함해서 19명이
체포되 었습니다. "
    한종규가 말하자 민영택이 머리를 끄덕였다.
   "이건 덮지 못하겠지."
   "덮다니요?못 덮습니다. "
   "조성표와 러시아 마피아가 이젠 도마 위에 올랐군."
   "마약을 가져온 마피아가 더 당하지 않겠습니까?더구나 놈들은
기관총까지 갖고 있었습니다. "
   그들은 소지했던 무기들을 제각기 버리고 숨겼지만 경찰은 금방
찾아내었다. 포장마차 밖은 경찰차와 군중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주인 여자도 술병과 안주만 내려놓고 밖으로 구경 나간 모양으로 포
장마차 안에는 그들 둘만이 앉아 있을 뿐이다.
64 밤의 대통령 제샬# -템
   "글쎄, 그건 두고 봐야지."
   민영택이 소주잔을 들면서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이제 여론은 이동천에게서 이쪽으로 옳겨지겠군 정치권에서 어
떻게 나올지 궁금해지는데."
   "어쪘든 우리 안기부도 전면에 나서게 되었어.우리도 각오해야
돼."
   "어서 오시오."
    김재선은 방에 들어서는 박현식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이거 오시라고 해서 미안합니다. "
   "아니, 그렇지 않아도 만나 뵈려고 했었습니다. "
   그들은 마주보고 앉았다. 아침 9시 30분이었는데 박현식은 출근하
다가 차를 돌려 청와대로 들어온 것이다.
   "각하는 바쁘십니까?"
   "네, 아침에 실장과 회의를 하t8니다. "
   박현식이 끄덕이던 머리를 멈추었다.
   "그렇다면 어젯밤의 부산사건도 보고가 되었겠군요?"
   "글쎄, 그것 때문에 부장님을 뵙자고 한 것인데."
   김재선이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무슨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해서요."
   "방법이라니요?무슨 방법 말입니까?"
   "사건이 미묘한 때 발생해서요."
   박현식의 얼굴이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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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수석, 그렇다면 각하께서는 어젯밤 사건을 모르신단 말이오?
대부분의 일간지에 대서특필되었는데."
   "모르실 리가 있습니가? 알고는 계십니다. 내가 일찍 보고를 드렸
기 때문에."
    "지금 한국과 러시아는 긴밀한 협력 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부
장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지난번 안드로포프가 각하를 만나기도 했지
요. "
   "내가 뭘 안다는 말입니까?"
   박현식이 한껏 얼굴의 표정을 부드럽게 만들며 물었다.
   "김 수석, 난 아무것도 모릅니다. "
   "도대체 어떤 협력 관계란 말이오?또 경제 협력입니까?"
   "아닙니다. 러시아가 남북 관계의 조정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입
니다. "
   "그것하고 이번 마피아의 마약과총격 사건하고 무슨 관계가 있숩
니까?"
   "체르넨코와 마피아 보스인 밀로체프가 가까운 사이라서 아니,
이번 남북 관계를 배후에서 도와 주는 것이 밀로체프라서요."
   "밀로체프가 적극적으로 주선해 주고 있어요. 체르넨코는 말하자
면 밀로체프에게서 부탁을 받아 일을 추진하고 있는 겁니다. "
   잠자코 있는 박현식을 향해 그가 말을 이었다.
   "내가 아침에 부산 시장과 관계 기관장에게 연락을 해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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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더 이상 확대되면 안될 성싶어서요."
   "마약은 한윤호라는 마약상이 태국에서 들여온 것으로 합시다. 그
리고 마피아는 일단 구속시켰다가 여론이 잠잠해지면 추방시키기로
하고. "
   "그렇다면 우리 안기부 보고서는 각하께서 읽으실 필요도 없군."
   "두고 가세요. 각하께 올릴데니까 "
   "하지만 조성표의 조직은 이 기회에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각하
께서도 진노하셨습니다. "
   박현식은 체르넨코와 밀로체프 둥의 이름만 흘렸을 뿐 남북간의
협상 문제는 슬쩍 비켜 지나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물어 볼
생각도 없다.
   들고 온 서류를 김재선 앞에 밀어 놓은 박현식은 자리에서 일어섰
다.
   "알았습니다. 정책 결정이야 내 몫이 아니니까 서류나 두고 가지
요."
   "그런데 부장님."
   따라 일어선 김재선이 박현식을 바라보았다.
   "내가 듣기로는 이동천이 무슨 자료를 갖고 있다던데, 로비 자금
지출 내역이라던가. 양숭일 시대에 말입니다. "
"그걸 한 부 얻을 수 없을까요?"
"글쎄요. 나도 아직 본 적이 없어서.하지만 그걸 뭐에 쓰시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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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 이동천이 꾸며내었을지도 모르는데,"
   "참고로 하겠습니다. "
   그는 박현식에게로 한걸음 다가와 섰다.
   "모두 각하와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이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
   "자신 없는데요. 그리고 그건 이 총장을 위해서도 좋지 않습니다.
이 총장을 중심 인물로 했다는 소문이 있어서요."
   김재선이 잠지:ㄹ서 있자 박현식이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혼자서 참고로 하신다면 노력은 해보지요. 이거 괜히 꺼림칙하군
요, 벌써."
   고대구가 응접실로 들어서자 신문을 읽고 있던 양유경이 머리를
들었다.
   "거기 앉으세요."
   그녀는 밝은 색깔의 투피스 차림이었고 긴 머리를 뒤쪽에서 묶어
올려 산뜻하게 보였다.
   "아침 신문 읽었어요?"
   앞에 앉은 고대구를 향해 그녀가 부드럽게 물었다.
   "예, 읽었습니다, 회장님."
   "조성표한테 연락을 해봤더니 당했다는 거예요, 배장근한테, "
    "조성표가 싸운 건 마피아 아닙니까?"
    "싸움을 붙인 건 배장근이란 말이에요."
"배장근의 배후에는 이동천이 있고."
양유경이 의자에 등을 기대고는 팔짱을 꼈다.
68 밤의 대통령 제식근 -및
"불가사리 같은 자야.잘라도 잘라도 새 몸이 생기는.
"고대구 씨가 부산에 다녀와 줘야겠어요."
"부산에 말입니까?"
"가서 이동천을 찾아서 만나고 와요."
   "숨어 있겠지만 고대구 씨는 찾을 수 있을 거야."
   "만나서 어떻게‥‥‥‥
   "내가 만나고 싶다고 전해 줘요. 가능하다면 시간과 장소도 정하
고. "
   "그냥 그렇게만 전합니까?"
   "상의할 일이 있다고 해요, 서로의 장래를 위해서."
   "아마 나에 대한 모든 것은 알고 있을테니 윌 물어 보면 아는 대
로 모두 대답해 줘요. 사이토와의 관계도, 그리고 내 기반이 굳어졌
다는 것도."
   "알겠숱니다. "
   고대구가 머리를 숙였다.
   "가서 찾아보겠습니다. "
   "아마 여자하고 같이 있을 거예요. 술집에 나가는 여자를 정부로
삼은 모양인데 신경 쓸 건 없어요."
   말을 마친 양유경이 머리를 창 밖으로 돌렸다. 말이 끝났다는표
시였다.
                                                대리 전쟁 69
    맑은 날씨여서 수평선의 끝이 선명한 선으로 그려져 있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수많은 배들은 마치 그려진 것처럼 전혀 움직임이 없는
 데 잠시 후에 바라보면 다른 그림이 되어 있다.
    윤혜선은 창에서 시선을 몌어 앞에 앉은 이동천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바다를 보는 것도 오랜만이에요. 우습죠? 바닷가에 살면
서."
    그녀의 목소리는 밝았고 들떠 있기까지 했다. 오후 2시,그들은 르
네상스 호텔의 스카이 라운지에서 점심을 들고 있는 중이었다. 이것
은 둘의 첫 외출이자 외식이었는데 물론 단 둘만의 행차는 아니었다.
라운지 안팔의 호텔 주차장에까지 경호원이 깔려 있어서 윤혜선은
다소 거북했지만 그것도 나쁜 기분이 아니다.
   윤혜선은 머리를 돌려 이제 라운지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호기심
에 눈을 빛내는 어린아이 같은 표정이었다. 몇 올의 머리칼이 자연스
레 흘러내린 둥근 이마에서 콧날로 이르는 부드럽고 섬세한 선과 깜
박이는 두 눈샙 밑의 맑은 눈동자를 한동안 바라보던 이동천이 입을
열었다.
   "이 라운지 바로 아래층에 있는 호텔 특실에 포보비치라는 러시아
인이 투숙하고 있어."
   이동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자는 러시아 마피아의 두목급이다. 이번에 배장근을 몰아낸 놈
0171. "
   "들어서 알아요."
   "내가 갑자기 이곳에 나타나는 바람에 그자는 지금 당황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 경찰에 신고도 했을 것 같은데."
10 밤의 대통령 제실』 -토
   "있는 대로 부하들을 끌어모으고 있을 거야."
   그 순간 라운지 입구에 배장근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곧장 이쪽으
로 다가왔다. 그는 이동천의 옆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형님, 만나겠답니다. 저쪽은 윤경산과 둘이고 우리도 형님과 저
둘입니다. "
   "좋아. 밖에서 기다려라,"
   배장근이 몸을 돌리자 이동천이 윤혜선을 바라보았다.
   "너와 둘만의 시간을 내지 못해서 미안하다. 여기 온 것도 포보비
치를 만나려고 한 거야."
   "무슨 일이 있으리라고는 짐작하고 있었어요."
   윤혜선이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그럼 저는 먼저 돌아가요?"
   머리를 」1덕여 보인 이동천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장 차림의 포보비치는 윤경산과 나란히 서서 그들을 맞았는데
손을 내밀지는 않았다. 호텔 2층에 있는 중국 식당의 밀실 안이다.
그들이 원형 데이블에 둘러앉는 동안 의례적인 인사도 없었으므로
방안은 잠시 정적에 덮였다.
   "갑자기 찾아와서 놀라신 것 같은데."
   이동천이 입을 열었다. 한국말이어서 윤경산이 포보비치에게 통역
을 했다.
   "더구나 어젯밤의 일도 있어서 말이오."
   그러자 포보비치가 짧게 러시아어로 말했다.
                                                 대리 전쟁 71
    "용건을 말하라는데요, 이 새끼가."
    배장근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고는 윤경산을 바라보았다.
   "저 새끼의 통역은 조금 서툴러요. 한국말이 서툴러서 그런 모양
01오. "
   "말을 삼가라, 배장근."
   "이런 개같은 자식."
   이것은 한국말 싸움이다. 이동천이 헛기침을 하자 둘의 말싸움이
그쳤다.
   "어젯밤 사건으로 너희들 마피아와 조성표 조직이 사정 기관의 조
사를 받게 될 것이다. "
   이동천이 말하자 윤경산이 통역을 했다.
   "한윤호는 처음부터 마약을 살 생각이 없었어.미리 조성표에게
정보를 주어서 배장근이 가져온 마약을 뺏으려고 한 것이다. "
   "그것을 너희들이 거기 정보를 얻어듣고는 덮쳤다가 싸음이 난 것
0171."
   포보비치가 눈을 치켜 떴으나 입을 열지는 않았다. 이동천이 말을
이었다.
   "안기부가 배장근을 찾고 있다. 왜냐하면 잡힌 네 부하들이나 조
성표의 부하들이 모두 마약은 자기네들이 가져온 것이 아니라고 하
기 때문이야."
   "그렇지. 맞는 말이야. 여기 있는 배장근이 가져간 것을 그들도 안
다. "
   턱으로 배장근을 가리키며 포보비치가 말했다.
72 밤의 대통령 제4부 -lB
   "마약은 우리와는 상관없다. "
   "그래서 말인데."
   이동천이 말을 이었다.
   "난 배장근을 내 부하로 받아들일 예정이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힘들게 되었어. 나까지 마약 문재에 연루될 슥가 있어서."
   "그래서 배장근을 안기부에 자수시킬 작정이야. 경찰은 믿을 수가
없어 ."
   "마약의 입수 경로, 밀로체프가 만든 마피아의 부산 조직, 너희들
의 밀수 내역, 자금 운용 방법과 조직원의 인적 사항, 그 모든 갓을
여기 있는 배장근이 알고 있어. 왜냐하면 그가 만든 조직이니까."
   "그렇지. 네놈들이 아니다. "
   윤경산의 통역이 끝나자마자 배장근이 러시아어로 말했다.
   "마피아는 내 손으로 만든 거야. 그런데도 네놈들은 날 배신하고
죽이려 했어. "
   그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러시아에서 어떤 수단을 쓰던 간에 내가 폭로해 버리면 너희들은
한국에서 끝장이야. 나도 이제는 막판시다. "
   그의 굵은 목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네놈들을 끌어안고 잘이 죽을테다. 이 더러운 배신자 놈들."
   그러자 포보비치가 엷게 옷으며 이동천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이렇게 협박만 하려고 우릴 갑자기 찾아온 건 아널텐데."
   "물론이지."
                                                 대리 전쟁 73
   이동천이 머리를 끄덕였다.
   "배장근의 신변이 보장된다는 약속과 증거를 대라.그러면 그가
자폭하지 않을 것이다. "
    "너희들이 증거를 갖고 있지 않다면 배장근만 회생시킬 수 없어.
 그뻔 너희들도 같이 죽는다. "
    "마약 수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다. "
    포보비치가 또켠하게 말했다.
    "그리고 더 이상 우리에 대한 수사가 확대되지 않는다. 조성표 조
직은 몰라도."
    "당신은 현재의 상황을 잘 모르는군."
   이동천이 찌푸린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안기부에서 전 수사력을 동원해서 배장근을 찾고 있다고 했지 않
아? 너회들의 입김이 닿지 먀고 있단 말이야, 그쪽은."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야."
   "그 말은 배장근만 죽이겠다는 말과 같다. 그 따위 시간 때우는 수
법은 나에게 통하지 않아."
   이동천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놈들이 어떻게 로비를 했는지 몰라도 이젠 방법이 없을 것이
다. 난 배장근만 죽게 하지는 않는다. "
   "배장근에 대한 조사도 곧 중지될 거야."
   포보비치가 이동천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안기부도 청와대의 지시에는 따라야 할테니까. "
   "미쳤군. 그 말을 믿을 사람이 어디 있어?"
겨 밤의 대통령 제식즌 -및
   "우리 러시아가 한국 정부에 큰 일을 성사시켜 주려고 하기 때문
이야. 너희들은 몰라도 되는 일ol다. "
    "모두 우리 밀로체프 동지의 위력이지."
    "오늘 밤까지다. "
    따라 일어선 배장근과 함께 문으로 다가간 이동천이 몸을 돌렸다.
   "증거를 대, 그 빌어먹을 일이 무엇인지를. 그렇지 않으면 모두 끝
장이다. "
   오후 4시 30분경. 거래처에 가는 중이던 천기석은 카폰이 울리자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천 실장, 나 고노요."
   죽은 노무라의 후임으로 이번에 부산 지부장이 된 고노였다.
   "고노 씨. 그래, 무슨 일이오?"
   "지금 어디 계시오?"
   "시내에 있는데, 왜?"
   "곧 당신 사무실에 경찰이 갈 거요. 정부에서 당신 조직을 철저히
분쇄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어 ."
   "무엇이라고? 정부에서?"
   천기석이 눈을 부릅떴다.
   "그게 무슨 말이이? 우리가 왜?"
   "어젯밤 사건 때문이지, "
   고노의 목소리는 억양이 없기 문인지 차갑게 들렸다.
                                                  대리 전쟁 75
    "이것은 청와대의 특별 지시_0., 천 실장."
    "그렇다면 러시아 놈들도 함께."
    "러시아 놈들은 아니오."
    "뭐ㄹff?"
    "당신들만 소탕되는 거요."
    "아니 ‥‥‥‥
   "이미 당신이나 조 사장, 간부급들 모두는 지명 수배자 명단에 들
어가 있고 출국 금지 조처가 내려졌으니 깊숙이 숨는 것이 나을 거
요. "
   "자, 훗날을 위해 의리상 전해 드리는 것이니 서두르시오."
   그러면서 고노는 전화를 끊었다.
   "사장님께 연락을 해라!"
   카폰을 움켜뀐 채 천기석이 앞자리에 탄 부하에게 소리를 쳤다.
그리고는 자신도 분주하게 카폰의 다이얼을 누르다가 퍼뜩 머리를
들었다.
   "방향을 돌려! 시내를 빠져 나가라! 아니, 이것, 차를 바러야겠군."
   평소에는 냉정한 1였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처럼 허둥거렸다.
   그 시간에 조성표는 가운 차림으로 응접실에 앉아 핸드폰을 귀에
대고 있었다. 오늘은 심사가 좋지 않았으므로 새로 들여앉힌 정부의
아파트에서 빈둥거리면서 회사에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온몸을 뻣
뻣하게 굳힌 조성표의 얼굴은 무섭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렇다면 이쪽에써 손을 쓸 수도 없군. "
76 밤의 대통령 제4부 -lB
    조성표가 억눌린 듯한 목소리로 말하자 김양호가 말을 받았다.
    "나도 청와대에서 이렇게 강하게 나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소.
조 사장, 우선 어서 피하는 게 상책이오."
   "러시아 놈들은 그대로 두고 나만 당하다니 분하구만."
   "시기가 좋지 알았소, 러시아 놈들하고 부딪쳤다는 것띠.
   "구제될 방법은 없겠소?"
   "대통령 선거만 끝나면 틀림없소, 조 사장. 길어야 반년. 아니, 다
섯 달 후면 내가 책임지리다. "
    "그래서 말인데, 내가 지금 최기대를 내려보냈으니 그자를 만나
사업체 운영 문제를 상의하시오. 지금 조 사장한테는 남아서 수습해
줄 사람이 필요하니까."
   "오늘 밤 12시에 대구의 우성 호텔로 오라고 해주시오.H
   "알았소, 조 사장. 기운을 내시오."
   핸드폰을 내려놓은 조성표는 잠옷 차림의 정부가 전화기를 들고
옆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무어야?"
   "저, 친구라는 분의 전화가‥‥‥‥
  조성표는 낚아채듯 전화기를 받아들었다.
  "여보시오."
  "조 사장님, 나요."
  경찰청의 박 경감이다.
  "몸을 파하셔야겠소. 상부에서 지시가 내려와서.-
  "알고 있어."
                                                대리 전쟁 17
     자르듯 말한 조성표가 힐끗 벽시계를 올려다보았다.
     "날 잡으러 어디로 온다는 거이?"
     "사무실과 본가에 . 하지만 그곳도 마음 놓을 수가 없습니다. "
    "알았어. 고맙구만. 신세 잊지 않겠어."
    "여기 일은 걱정 마시고."
    "몇 달이야, 그까짓 것."
    전화기를 내려놓자 다시 벨이 울렸으나 내버려둔 채 조성표가 정
 부를 바라보았다.
    "옷을 입고 귀중품만 꾸려라, 어서."
    "f1?"
   여자는 얼굴이 하얗게 되었다. 아직 20대 초반으로 때묻지 않은
여자였으나 그래서인지 분위기에 겁을 먹고 있었다. 조성표는 자리
에서 일어섰다.
   "밖에 있는 명철이를 들어오라고 해."
   가운을 벗어젖히며 방안으로 들어간 조성표가 다시 소리치듯 크게
말했다.
   "윌 해? 어서 서두르지 않고?"
    "조성표의 조직은 방대합니다. 간부급들이 모두 체포되거나 도망
쳤다고 하더라도 하루아침에 망하지는 않습니다. "
   배장근이 말하자 기무라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관계 기관과 유착되어 있어서 남은 인원으로도 그럭저럭
사업체들을 꾸려 '갈 수가 있을 겁니다. 정부에서 사업체들에 대해 세
무 감사를 한다면 몰라도."
78 밤의 대통령 제』부 -르
   이동천이 머리를 저었다.
   "세무 감사 계획은 아직 없는 모양이야."
   "사업체가 원체 많으니까요. 감사를 하면 유흥업이 위축되고 여론
이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
   기무라가 말하고는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그리고 우리측도 감사를 받지 않은 것과 평형을 맞출 수가 있거
든요."
"망할 』닌들,"
박철규가 뱉듯이 말했다.
"모든 것을 정치적으로 해결하려고 드는 놈들이오. 정권을 위해서
나라를 팔아먹을 정치가 놈들입니다. "

   그들은 모처럼 동래의 2충 저택에 모여 앉아 있었는데 격한 음성
이 튀어나오기는 했지만 분러기는 밝은 편이었다. 한때 절벽 끝까지
몰렸던 이동천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배장근을 앞세워 조성표와 마
피아에게 치명타를 입히고 있는 것이다. 물론 마피아는 정치적인 문
제로 조성표처럼 당하지는 않았지만 크게 위축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동천이 술잔을 들고 사내들을 둘러보았다.
   "조성표와 천기석이 도주했으니 아직 놈들의 조직이 깨진 것은 아
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허물어질 거야."
   "물론입니다. "
   박철규가 말을 받았다.
   "조직적으로 영업 방해를 하면 한 달이 지나면 두 손을 들고 두
달 후에는 문을 닫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누가 차지하느냐
                                                  대리 전쟁 79
는 것입니다. "
   그 분야에서는 전문가인 박철규였으므로 모두 머리를 들었다.
   "마피아는 물론이고 김양호, 그리고 야마구치조의 고노까지 조성
표의 빈 공간을 노릴 것이 틀림없습니다. "
   "그렇군."
   이동천이 머리를 8덕이며 웃었다.
   "우스운 일은 부산의 기존 조직인 조성표가 꺾이고 남은 것이 모
두 외국 세력이라는 것이다. 러시아의 마피아, 일본의 야마구치조,
그리고 우리는 아이즈 고데츠의 기반으로 일어섰으니."
   "물론 우리는 한국 세력이다. 만일 우리가 일어나지 않았을 경우
를 생각해 봐라. 조성표는 이미 야마구치조에 흡수되었을테니 부산
의 밤세계는 외세의 식민지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
   문이 열리고 이동천이 들어서자 윤혜선은 침대에서 상반신을 일으
켰다. 베개를 높이 세워 놓고 기대어 잡지를 읽고 있던 참이었다. 문
앞에 선 이동천이 잠시 움직이지 않았으므로 그녀는 이제 침대에서
내려섰다.
   "시키실 일 있으세요?"
   "아니 . "
   가볍게 머리를 저으며 이동천이 다가왔으므로 윤혜선은 숨을 멈추
었다. 같이 살고 있었지만 다른 방을 썼고 이제까지 한번도 살을 스
친 적이 없파. 다가온 이동천이 그녀의 어깨에 두 손을 얹어 놓는가
했는데 어느 사이에 얼굴이 다가왔다. 저도 모르게 눈을 감은 윤혜선
80 밤의 대퉁령 제길근 -및
의 입술에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졌다. 뜨거운 숨결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그의 두 팔이 자씬의 허리를 당겨 안았다.
    "기무라에게 이야기해 두었다. "
    잠시 입술을 텐 이동천이 말했다.
    "넌 내일 일본으로 떠나야 돼. 기무라가 모두 알아서 해줄 것이
다. "
    그러자 윤혜선이 눈을 뜨고는 머리를 뒤로 젖혔다. 초점이 잡힌
시선에 이동천의 표정 없는 얼굴이 드러났다.
    "저를 놓아주세요."
   그러자 이동천이 손을 풀었으므로 힘이 빠져 있던 그녀가 뒤쪽의
침대로 주저앉았다. 잠시 그들은 그 자세로 움직이지 않았다. 밖에서
철문 여닫는 소리가 들리더니 주위는 다시 적막에 싸였다.
   "난 며칠 후에 서울로 간다. 아마 그곳에서는 여기보다 더 험한 생
활을 하게 될 거야. 그곳으로 널 데려가는 것보다는‥‥‥‥
   "알아요."
   그의 말을 자른 윤혜선이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는 한손을들어
헝클어진 머리를 천천히 쓸어 내렸다.
   "절 위해서 그러시는 것도 알아요. 갈게요. 하지만."
   머리를 든 윤혜선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왜 날 안으면서 그런 이야길 요? 왜 마음애도 없는 행동을 하
세요?"
"그러시지 않아도 돼요."
"마음에도 없는 행동은 아니었다. "
                                                  대리 전쟁 81
   그저 앞에 선 자세로 이동천이 말했다.
   "나는 결벽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절제 생활을 하는 것
도 아니야."
   "하루 하루를 칼날 위를 걷는 것 같은 생활을 하면서 내 옆에 부
담을 져야 할 사람을 끌어들이기 싫었던 모양이야. 이제까지 널 거부
한 것이."
    "아마 반년쯤 있으면 돌아와도 될 것 같다,내 생각엔."
    이동천이 윤혜선의 어깨에 잠시 한 손을 짚었다가 례었다.
    "걱정 말고 잘 쉬었다 와."
   몸을 돌린 이동천이 방을 나갔으나 윤혜선은 한동안 침대에 걸터
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이윽고 그녀는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긴
숨을 내쉬고는 몸을 일으켰다. 맨발로 방을 가로질러 문을 열고 거실
로 나와서는 곧장 앞쪽의 이동천의 방으로 들어섰다.
   셔츠를 벗고 있던 이동천이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으나 입을
열지 않았다. 그에게로 다가간 윤혜선은 뒤에서 그의 몸을 안았다.
   "조건도 필요없어요. 그냥 가져요."
   "그게 어디 네 마음대로만 되는 일이냐?"
   그러면서도 이동천은 바지를 벗고는 돌아서서 그녀를 안았다. 이
제 윤혜선은 두 팔과 다리로 그에게 매달려 있었다.
   "내 사업체는 모두 법인 등록이 되어 있고 주주가 있소. 사업체의
정식 고용 인력만 해도 3천 명이 넘지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다고
82 밤의 대통령 제살1-I【1
해도 회사는 굴러가게 되어 있어요."
   소파에 등을 기대며 조성표가 말했다.
   "물론 유흥업소들은 지장이 조금 있겠지. 마피아나 이동천 세력이
방해를 할테니까. 하지만 그것도 걱정할 것 없소. 아직도 부산 바닥
의 기관원들은 모두 내가 먹여살린 놈들이니까,"
    그는 앞에 앉은 최기대를 바라보았다.
   "최 형이 우리 대신 얼굴을 보이고 있으면 그럴 염려도 없지. 물론
우리도 수시로 체크를 하TR지만 말이오."
   "부회장님 말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원체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
서요. "
   최기대가 옆에 앉은 천기석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천 형, 그럼 어디 사업체 현황을 좀 살펴봅시다. "
   머리를 』1덕인 천기석이 탁자 위에 두툼한 서류 뭉치를 내려놓았
다. 조성표가 장악하고 있는 부산 지역의 사업체에 대한 자료였다.
   큰소리는 뺑뺑 치고 있었지만 간부들 대부분이 구속되고 나머지는
뿔활이 흩어진 지금 조성표의 사업체는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는 처지
였다. 건설 회사나 여행사, 운송 회사 등은 그럭저럭 운떵이 된다고
는 하지만 당장애 은행 거래가 막힐 것이고 어음 회전이 안되어 자금
압박을 받게 될 것은 뻔했다. 그러나 유흥업채는 조직에서 직접 관리
해 왔던 터이니 만치 자금 압박은 말할 것도 없고 외풍(차겐)에 약해
서 잡아주지 않으면 틀림없이 무너질 것이었다.
   "이건 어지간한 인원으로는 어렵겠는데."
   서류를 대충 훌어본 최기대가 혀를 내두르는 시능을 했다.
   "벌여 놓은 것이 너무 많아서 야단이군요."
                                                  대리 전쟁 83
    "수배되지 않은 똘마니들을 모으면 금방 자리가 잡힐 거요. 이동
천이 놈도 지금 그런 방법을 쓰고 있른데."
   조성표가 양주병을 들어 술를 따르면서 말했다.
   "나는 기반이 굳어 있으니까 오히려 그놈보다 낫지. 안 그렇소?"
   "이동천의 경우와는 다릅니다, 사장님."
   최기대가 정색을 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이동천이는 잘은 몰라도 정권어 함부로 하지 못할 카드를 갖고
있어요. 하지만 사장님은‥‥‥‥
   "내가줄이 없다는 말인가?"
   조성표가 벌컥 화를 내었다. 술잔을 내려놓은 그는 벌개진 얼굴로
최기대를 바라보았다.
   "부산의 검경, 기관장, 하다못해 말단 공무원 중에서 날 모르는 사
람이 있는 줄 알어? 아무도 날 무시하지 못해."
   "이 일은 부산에서 결정된 일이 아니오."
   최기대의 말소리는 낮았으나 힘이 실려 있었다
   "정치관애서, 그것도 청와대애서 결정된 일이란 말이오. 부산의
기관장이나 말단 공무원들을 상대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
   최기대가 머리를 돌려 천기석을 바라보았다.
   "사장님은 패곤하실테니 우리는 옆방으로 가서 상의합시다. "
   조성표가 잠자코 있었으므로 천기석은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전화벨이 울렸는데 탁자 위아 놓인 사이토의 핸드폰이다.
   토스트에 딸기잼을 바르다 말고 일어난 사이토는 한동안 통화를
하고 나서 다시 식탁으로 돌아왔다, 아침 8시였고 여느 때와 마찬가
84 밤외 대통령 제4부 -lH
지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사이토가 토스트는
내버려두고 우유만 한 모금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김양호가 조성표의 조직을 접수할 모양인데."
   그는 퍼뜩 머리를 든 양유경을 향해 웃어 보였다.
   "재빠른 사람이야. 코너에 몰려 있는 조성표에게 접근해서는 최기
대를 부산으로 내려보냈어 아마 임시로 관리를 맡아 주겠다고 했겠
71. "
   "그리고 최기대에 대해서는 부산의 기관장들에게 손을 써놓도록
할 거야."
   양유경이 물잔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물론 당신에게 조성표 조직을 접수하게 되면 지분을 나누자는 제
의를 했겠지요?"
   그러자 사이토가 다시 웃었다.
   "아니, 아직. 내 생각엔 그런 제의는 안할 것 같군 "
   "이젠 김양호도 나름대로 자신의 기반을 굳혔다고 믿고 있어. 예
전에 당신 아버지를 살해할 때만 해도우리의 지원이 없었으면 크게
흔들렸겠지. 박철규가 반란을 일으켰어도 무너졌을걸?"
   "그자가 굳힌 만큼은 못하지만 나도 기반을 닦았어요. 물론 당신
덕분이지만."
   "나는 당신들 양쪽을 키운 셈이군. 그러면 이제 나는 무용지물인
가?"
   사이토가 양유경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얼굴의 웃음기는 이미 사
                                                 대리 전쟁 85
라져 있다.
   "물론 나도 당신들을 이용해서 기반을 닦았지. 이제 역삼동에 대
형 백화점과 호델이 건설될 것이고."
   "김양호는 이용덕의 자금줄이야. 내년의 대선에 이용덕은 엄청난
자큼이 필요하지."
   사이토가 손에 든 우유잔을 내려놓았다.
   "대선이 이용덕의 승리로 끝났을 경우를 생각해 보았어?"
   "조성표의 조직이 김양호에게 흡수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리고 당신과 나는 어떻게 될까?"
   "김양호3가 뿌리였군. 거기에서 뻗어 나갔어."
   녹음기의 스위치를 눌러 끈 김재선의 목소리는 지쳐 있는 것처럼
들렸다.
   "이건 엄청난 사건이오. 이 총장이 나한테 말해 준 내용하고도 전
혀 달라."
   "이 총장이 뭐라고 하던가요?"
   박현식이 묻자 김재선이 입맛을 다셨다.
   "양승일의 로비 자금이 정치인들에게 뿌려진 증거를 이동천이 쥐
고 있다고만 했소."
   "구체적인 이름도 없이 말이오?"
   "말하지 않았소, 이 총장은."
   "이 총장이 주 로비 대상이었소."
86 밤의 대통령 제4부 -템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 채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청와
 대 정무 수석실 안이어서 방에는 1들 두 사람뿐이었다. 창 밖으로
 정원의 잔디가 노랗게 물들어 가는 것이 바라보였다. 정원의 한쪽에
 는 겅호뭔 두 명이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윽고 김재선이
 입을 열었다.
    "안흥건 차장이 끼여 있다는 것도 놀람군요.투장께서도 애로가
많으시TR소."
    박현식이 퍼뜩 시선을 들었다.
    "김 수석,솔직히 나는 이 테이프를 가져오면서도 꺼림칙했습니
다. 그 이유를 알고 계시지요?"
   "압니다. 저도 이 총장과 팎통속으로 보고 계셨을테니까."
   "날 경질시킨다는 소문도 있어서요. 내가 이동천운 잡는 데 비협
조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입니다. "
   김재선이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글쌔,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각하꼐 경질을 건의한 사람이 있
었는데 내가 말씀드렸지요. 선거가 넉 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안기부
장을 경질하면 안된다고."
    "박 부장이 적극적이지 않다는 이유였어요. 그쪽이 들고 나온 것
은."
   "이 총장이었습니까?"
   그러자 김재선이 말머리를 돌렸다.
   "부산의 포보비치에게 이동천이 배장근이라는 자를 데리고 와서
협박을 했다는 이야기는 들으셨지요?"

"글 나는 금시초문인데."
   박현식이 눈을 크게 떴다.
   "그건 또 무슨 이야깁니까?"
   "밑의 직원이 아직 보고를 안한 모양히구만 "
   "무얼 말이오?"
   "이번에 압수된 마약 150킬로는 배장근이 가져온 것이어서 안기
부가 그자를 쫓고 있다는 거요. 그런데 그것은 본래가 마피아 것이었
으니 배장근이 그것을 폭로하겠다고 포보비치를 협박했답니다. "
   "김 수석은 그 이야기를 누구한태 들었습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러시아 대사관에서 들었습니다. "
   "이동천은 자신과 배장근의 신분 보장을 요구했어요. 안기부 요원
이 쫓지 않도록 말이오."
   "부장께서 부산의 요원들에게 지시를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이미
경찰에서 방향을 잡은 대로 마약은 한윤호가 태국에서 들여온 것으
로 처리하라고."
   박현식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지요. 하지만 나부터가 정확한 줄거리를 잡지 못하고 있으니
밑의 실무자들을 통제하기가 어렵습니다. 요컨대 안홍건이 알고 있
는 일을 내가 모르고 있는 경우 같은 것 말이오."
   "곧 남북 회담이 열리고 남북의 정상이 만나게 됩니다. 러시아 사
람들의 주선으로 말이지요."
88 밤의 대통령 제샬1-llf
    "내용은 불가침 선언과 남북 교류요. 각하는 임기 말년에 찬란한
업적을 남기시게 되는 겁니다. "
    "위대한 업적이 될 것입니다. "
    머리를 」1덕이며 박현식이 말했다.
    "훼방꾼들이 몰려들테니 기밀을 지키는 것이 좋겠지요."
   "알고 있는 사람은 다섯 손가락 안입니다. "
   "이 총장이 안흥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을까요?"
   "글쎄. 안홍건이라‥‥‥ 그 사람이 이 총장 사람이긴 한데."
    김재선이 물끄러미 박현식을 바라보았다.
   "안 차장이 국내 담당이지요?"
   "치안 담당이오."
   "이번 일에 책임이 있겠군요."
   "아무래도 담당이니까."
   "그렬다면 책임을 지도록 합시다. 보직 해임 기안을 올려 주시면
각하의 결재를 받지요."
   잠자코 김재선의 얼굴을 바라보던 박현식이 이윽고 천천히 머리를
11덕였다.
   청와대를 나온 승용차가 광화문 앞을 지날 때까지 박현식은 됫자
리에 기대앉아 입을 열지 않았다.
   남한이 국민 소득은 물론이고 생활 수준, 그리고 국민의 기본 권
리인 자유를 누리는 수준 모두가 북한보다 몇십 배 월둥한 것은 세계
가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문민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대한민국은 북한에게 끌려다
                                                  대리 전쟁 89
 니기만 했는데 어떤 때에는 갖은 수모를 당하고서도 사실을 은폐하
 기에만 급급했다. 그것을 알고 있는 북찬은 점점 더 억지를 쓰게 되
 었고 자신감을 상실한 정부는 이제 사건만을 덮는 데 정신이 없다.
    박현식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막강한 현대식 무기로 무장해 있
 고, 교육 수준과 영양 상태가 월등한 데다가 엄청난 인적,물적 자원
 을 보유한 국군의 사기가 떨어져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밖에 없다.
 문민 정권이랍시고 역대의 군사 문화, 군사 정권을 모조리 배척하면
서 군인에게 군복을 부끄러워할 정도로 사기를 떨어뜨린 현 정권의
 실정 때문이다.
    역대의 군사 정권을 배격하다 보니 현 정권은 북한의 위협이 실제
 보다 과장되어 왔다는 선전이 필요했고 경제력, 국민 소득 둥의 단기
전에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들어 흡수 통일이네 뭐네 하는 환상적인
설명이 필요했었다.
    부패한 장군들을 가차없이 자르는 것에 갈채를 받았으나 그 여팍
로 성실하고 충성스런 대다수의 군인들의 사기가 떨어져 가는 것을
간과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군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자 문민 정권은 다시
군인을 불신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유사시에 정권에 충성할지가 의
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원인을 제공했으면서도 이제 정권은
국군을 믿지 못하는 불안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정권이 국군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니 대북 외교에 저자세일 수밖
에 없고 그것에 대한 국민의 여론이 두려우니 숨길 수밖에 없다. 국
민이 납치를 당하고,어선이 나포를 당해도 몇조 원이 넘는 경수로
비용을 혈세로 부담하고 몇천억 원의 쌀을 지원하면서도 갖은 수모
90 밤의 대통령 제길준 -트
를 받고 사죄를 하는 상황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정권은 끊임없이 국민을 속이고 거짓말로 호도하고 있
다. 이것은 봉건추의 시대에 조공을 바치는 것보다도 한수 더 떠서
침략하TH다고 위협까지 하면서 강탈해 가는 것과 같은 상황인데 문
제는 국민 대다수가 위기 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이번에는 또 무엇인가?
   박현식은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김정일은 남한과 대통령의 성격까
지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이다. 몇 번이나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정
상 회담을 부탁했는데도 그쪽은 웅하지 않았었다. 그것이 이번에 이
루어진다니 심상치가 않은 것이다. 김정일의 정권은 안정되어 가는
상황이고 가뜩이나 저자세였던 이쪽은 대선까지 앞두고 더욱 중심을
잡지 못하는 입장이 되었다.
   박현식은 창에서 시선을 몌었다. 안기부장에게까지 비밀로 하는
이번 정상 회담은 결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문민 정권의 능력은 이미 한계를 드러냈고 주관 없는 국가관과 대
북관으로 북한군이 치고 내려오면 기득권충부터 항복할 것이라는 통
계까지 내보내는 상황이 되었다. 어떻게 이런 통계를 내고 발표까지
할 수 있단 말인가?
   박현식은 저도 모르fiB 어금니를 물었다. 미국도, 중국도, 러시아도
이제 북한군의 남한 침공을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보스니아 사태 때
에 미국이 단 한 명의 지상군을 파견시키지 않은 것으로도 알 수 있
듯이 이제는 냉전 시대가 아니다. 한반도가 북한에 의해 통일되어도
북한과 외교 관계가 있는 미국으로서는 그것으로 그만이다.
   창 밖으로 유행하는 가수의 커다란 대형 간판이 걸려 있었고 수십
                                                   대리 전쟁 91
명의 젊은이가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저놈들은 북한이 이곳을 점령할 때도 저렇게 웃고 있게 될 것인
가? 사상에 의해 분류되어 수옳소루 학습소루 노동 현장으로 보내
지면서도 통일이 되었다고 만족할 것인가? 그리고 우리의 백만 국군
은 어떻게 될 것인가?그리고 북한 정권에 붙어 갈 놈들은 누구인가?
   박현식은 손을 뻗어 카폰을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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