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밤의 대통령

7. 붕괴되는 조직

오늘의 쉼터 2015. 1. 1. 23:17

7. 붕괴되는 조직 

 

 

 

  "네 명은 생명에 지장이 없습니다. "
    박철규의 말소리가 방안을 올렸다. 그러나 소파에 둘러앉은 사람
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신동석은 상처가 너무 깊었으므로 로
 비에 누운 채 숨이 :3어졌고 네 개 업체에서 수금한 3억 가까운 돈도
강탈당했다.
    "일본인이라면 야마구치조의 노무라가 움직였을 겁니다. "
    방안의 정적을 백복동이 깨었다.
   "놈들은 계획적으로 습격해 왔습니다. 공식적으로 우리에게 선전
포고를 한 것이나 같습니다. "
   말을 받은 것은 박철규였다. 새벽 3시였다. 모두 자다가 달려나온
참이라 옷차림이나 얼굴이 후줄근했다. 박철규 옆에 잠자코 앉아 있
던 기무라가 머리를 들었다.
   "상황이 좋지 않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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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이동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일주일 전에는 조성표가 해결사를 보내 시장님을 숱격했고 이번
에는 노무라가 업체를 친 셈이 되었는데 계산된 행동 같습니다. "
   그러자 이동천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지검장과 담당부장이 바러었단 말이야.그렇지 않나?"
   "그렇습니다, 사장님 ."
   "거기에다 야마구치조와 마피아가 묵계를 맺었다고 한다. "
   "우리가 곤경에 빠졌을 때 배장근이 움직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
   모두들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다. 한마디로 말해 사면초가인 것이
다. 창 밖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좁은 집안이어서 박철규와
백복동을 따라온 부하들이 마당에 가득 차 있을 것이었다.
   그러자 2층으로 오르는 나무 계단이 부서질 듯 삐걱거리더니 문이
열렸다. 주대흥이 들어서고 있었다.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두 눈은
술기운에 벌겋게 충혈된 모습이었다. 그러나 넥타이를 바짝 졸라매
어서 옷차림을 다듬은 흔적은 보인다.
   "사고가 생겼다고 혀서."
   그는 숨을 내쉬면서 끝 쪽 자리에 앉았는데 먼 쪽에 앉은 이동천
애게까지 술 색는 냄새가풍겨 왔다.
   "그래, 잘 왔다. "
   이동천이 부드러운 얼굴로 머리를 』I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네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다. "
   "신동석이가 죽었다먼서요?"
   그러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어깨를 늘어뜨렸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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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진퇴양난입니다, 형님 ."
   "움직였다가는 놈들이 파놓고 기다리는 함정에 빠 것 같은 예감
이 들고 가만히 있으면 조직이 내부에서부터 흔들리게 됩니다. 사기
는 털어져 있었지만 이제까지 애들은 오기로 버티고 있었습니다. "
   "전쟁을 하려면 지금이 좋습니다. 애들이 눈이 뒤집혀 있으니까
요. 시간이 지나면 사기를 일으키기가 불가능해집니다. "
   이동천이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다. 말을 멈춘 박철규도,그리고 방
안의 다른 사래들도 이것이 이동천의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결정이 될
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이것, 흥미진진하군."
   전화기를 내려놓은 사이토가 침대에 팔베개를 하고 누우면서 얼굴
에 웃음을 띠었다. 그는 옷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는데 가슴에
난 털과 아랫배에 커다랗게 문신된 용의 모습이 어우러져 근육질의
몸이 더욱 거칠게 보였다.
   "뭐가 말예요?"
   그헐게 묻는 양유경도 역시 알몸이다. 알맞게 그을린 피부는 윤기
가 났고 부드러운 곡선을 온통 드러내었지만 스스럼 없이 한쪽 다리
를 그의 하반신에 올려놓았다.
   "이동천이 말이야. 집에서 간부들을 모아 놓고 회의를 하고 있는
데 결론이 안 나오는모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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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팔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방안의 불은 꺼 놓았
지만 스탠드의 조그만 전구가 탁자 위를 비추고 있어서 사물의 윤곽
은 선명하게 보인다.
   양유경은 벌써부터 발기하기 시작한 그의 물건을 부드럽게 쓸었
다. 사이토는 절륜한 정력을 가진 사래폈다. 그는 마치 전쟁터에서
적과 사생결단을 하듯이 양유경을 깔아 뭉갰는데 1녀의 비명과 신
음 소리가 클수록 만족해했다. 하룻밤에도 네댓 번씩 정사를 치르고
난 다음날이면 양유경은 하루 종일 몽롱한 꿈속을 혜매는 기분으로
지내곤 했다.
   사이토가 머리를 돌려 양유경을 바라보았다.
   ".당신 아직도 그자에게 미련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어두웠지만 그의 입가에 웃음이 떠 있는 것이 보였다.
   "기분이 좋을 리는 없지요. 어쪘든 나와 결혼까지 하려다 만 사람
인데 ."
   그의 연장은 이미 돌덩이처럼 단단해져 있었다.
   "하지만 지난 일에 연연할 상할도, 입장El 아니니까. 지금의 내가
말이에요."
   "그렇지. 사람은 현실적으로 되어야지. 더욱이 당신 같은 위치에
서는 말이야."
   이제 사이토는 그녀의 깊은 곳을 더듬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치
렀던 정사의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있던 몸이어서 그의 조그만 자극에
도 불씨가 살아나는 것처럼 그녀는 금방 달아올랐다.
   그의 애무는 철저했다. 끈질기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머리 끝에
서 발가락 끝까지 혀와 손 끝을 사용하여 그녀가 몇 번이나 절정을
238 밤의 대통령 재실준 -ll
이루도록 하고 나서 그녀의 애걸에 못 이기는 척 깊은 곳에 들어가는
것이다.
   양유경은 목을 한껏 뒤로 젖히면서 다리 사이에 있는 사이토의 머
리를 두 손으로 움켜러었다. 저도 모르게 입에서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고 엉덩이가 들려졌다. 사이토가 개처럼 철벅이며 자신을 할고
있었다. 그녀는 은몸을 떨면서 다시 높은 신음 소리를 뱉어내었다.
    백복동이 집에 돌아온 것은 아룅 1시 반경이었다. 어젯밤엔 한숨
 도 자지 못했으므로 온몸이 뻐근했고 눈이 아팠다. 그러나 젊은 사람
들 앞에서 내색하기 싫어서 버티고 있었지만 나이가 쉰이었다. 체력
이 딸리니 정신력도 떨어지는 모양으로 요즈음은 간끔씩 멍하니 앉
아 있을 때가 많았다.
    "야,곧 나갈테니까 너도 준비해, "
    옷을 벗어 던지면서 백복동이 손달섭에게 말했다. 자지 않고 기다
렸던 모양으로 눈을 끔벅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어디서 전화 온 데 없어?"
   "없었어요."
   펀티 차림이 되어 화장실로 들어서던 백복동이 문득 몸을 돌리더
니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는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서울의 집에는 이틀에 한 번꼴로 전화를 했는데 이번에는 사홀 동
안 연락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는 경찰 봉급의 세 배 정도나 되
는 돈을 보내 주는 데도 여편네는 볼이 부어 있었다.
   20년 동안 같이 살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돈타령을 하던 여편네여
서 돈을 보낼 때는 가슴까지 두근거렸는데 지금은 돈 없어도 좋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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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살자는 헛소리를 한다.
    신호가 가자 곧 마누라가 받는다.
    "여보세요."
    "Ll4t. "
    그를 바라보고 서 있던 손달섭이 문을 열고는 밖으로 나갔다.
    "왜 이재야 전화하는 거유?"
    마누라의 목소리는 날이 서 있었다.
    "도대체 부산에 누구 데려다 놓』수? 내가 내려가지도 뭇하게 하
고,사는 집도,전화 번호도 안 가르쳐 주게."
   "이봐, 시』B러 "
   "뭐가 시a러?"
   "이 여편네가 정말."
   전화기를 내던지려다가 참고는 말을 이었다.
   "어제 낮에 내가 당신 구좌로 2백 보냈어. 접대비가 납아서 말이
01. "
   "2백만 원 말이오?"
   목소리를 들으니 조금 기분이 풀런 것 같다. 며칠 전에 퇴직금도
몇천만 원 탔으니 마누라는 요즘 돈복이 터진 셈이다.
   "여보, 재훈이 데리고 나 부산으로 내려갈라요."
   "미쳤나, 이 여편네가?고3짜리를 어떻게."
   "그렇다면 당신 살고 있는 집이나 알려 줘. 찬거리나 가져가게."
   "곧 이사가니까,그때 알려 줄게."
   거짓말이다.
   "그럼 내일 다시 전화할테니까."
240 밤의 대통령 제수준-lE
   하면서 저쪽에서 뭐라고 하는 걸 듣지도 않고 전화기를 내려놓았
을 때 현관문이 열렸다. 그리고 들어선 것은 낮 모르는 사래들이다.
백복동은 팬티 차림으로 튕겨나듯 일어섰다.
   "너회들 누구이?"
   그러나 사래들은 입을 열지 쟈았다.
   구두를 신은 채로 성큼성큼 다가오면서 제각기 가슴에서 번쩍이는
칼을 뽑아 들었다.
   "이 새끼들."
   온몸에 찬 기운이 훌고 지나가는 느73은 잠간이다. 그는 펄쩍 뛰
어 물러나면서 손에 잡히는 재떨이를 집어 던졌고 이어서 식탁의 의
자를 던졌다. 그러는 사이에 다가온 사래가 휘두르는 칼에 어깨를 베
었으나 그는 주방의 냄비를 던지면서 도마 뒤의 식칼을 집었다.
   사내들은 네 명이었다. 식칼을 집어 몸을 돌리는 순간 백복동은
깊숙이 허리를 찔려 몸을 비틀었다. 그리고는 바짝 다가온 사래 한
명의 가슴에 식칼을 셀러 넣었다. 사내가 낮고 짧은 신음 소리를 내
면서 비틀거리는 순간 다시 칼날이 날아와 그의 배를 젤렀다.
   백복동은 주방의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머리를 들어 사
내들을 올려다보았다.
   "이 빌어먹을."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사태 두 명이 그의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사내 한 명은 비틀거리는 사래를 부축하고 밖으로 나가는 중
이다.
   "이놈,손달섭이."
   이윽고 백복동은 앞으로 고꾸라졌다가 반듯이 누웠다. 그러자 사
                                             붕괴되는 조직 241
 내들이 몸을 돌렸다. 백복동은 가물거리는 눈으로 그들의 됫모습을
 바라보다가 문이 닫히고 그들이 사라지자 손을 뻗어 주방의 싱크대
 를 움켜쥐었다.
    스물다섯 평형의 조그만 아파트였다. 싱크대를 쥔 손이 피에 미끄
 러졌으므로 그는 몸을 굴려 한쪽 무릎을 세웠다.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운 아수라 같은 모습이었다. 마누라의 얼굴이 눈앞에 스쳐갔고 아
들의 웃는 모습도 떠을랐다.
   그는 응접실을 건너 베란다로 나갔다. 그리고는 촤분을 들어 유리
창을 향해 던졌다. 세 개를 모두 던지고 나서 그는 벽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유리창 아래쪽의 주차장에는 차에서 부하들이 그를 기
다리고 있었다.
   가쁜 숨을 내쉬던 백복동은 이윽고 어지럽게 달려오는 발자국 소
리를 듣자 머리를 떨구었다.
   안기부 부장 박현식은 서류를 덮고 앞에 앉은 안홍건을 바라보았
다. 아침 8시 반이었으니 출근하자마자 안흥건과 마줄앉은 셈이다.
   "이것을 보면 이동천의 조직이 저회들끼리 싸운 것같이 되어 있는
데, 그렇지 않소?"
   박현식이 부드러운 얼굴로 물었다.
   "조성표든지, 아니면 일본의 야쿠자나 러시아의 마피아가 상대일
덴데, 이동천의 상대가 말이오."
   "그렇습니다. 부장님. 그들 중의 하나겠지요."
   "그런데 이동천의 조직만 목표로 삼아도 괜찮겠소?"
   "이동천의 조직은 가장 최근에 발흥한'세력이면서도 영향력이 강
242 밤의 대통령 제』닦 -lf
 합니다. 그것은 아이즈 고데츠가 조성표와 함께 닦은 기반을 물려받
았기 때문입니다. "
    "그건 알고 있어요. 이동천이 재미있는 경력을 갖고 있다는 것
도."
    "이동천 주변에 사건이 꿉이지가 않습니다. 며칠 전에 발생한 백
주의 총격 사건,사우나의 일본인 피살 사건에다 마산의 오리엔트 호
텔 앞의 총격 사건이 모두 미궁에 빠졌습니다. "
   "이동천이 언제나 사건의 주변에 있다는 것이 이해는 가는군."
   "주변이 아니라 핵심입너다, 부장님."
   안흥건이 박현식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안기부 터줏대감인 그로서
는 경력이 일년밖에 안되는 박현식을 언제나 가르치는 입장이었고
그런 자세가 굳어져 있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곤란괘집니다, 부장님."
   "그렇군. 그러면 야쿠자나 마피아들도 긴장을 하겠지."
   "아마 위에서는 이미 지시가 내려갔을 겁니다. 우리는 그 지시를
보완하는 입장입니다. "
   "그럼 이 서류를 위로 올리겠습니다. "
   "그러시오."
   위란 말은 청와대를 가리키는 말이고 지시를 내렸다면 청와대의
정무 수석 김재선일 것이다. 그는 정무 수석이었지만 외교,안보에
이르기까지 영향력을 뻗치고 있었는데 그것은 대통령의 신임이 없다
면 불가능한 일이다.
   대통령의 신임을 바탁으로 청와태 비서실을 틀어쥐고 있는 그에게
                                             붕괴되는 조직 243
비서 실장도 눈치를 살피는 실정이었다. 청와대를 들어갈 때마다 박
현식도 그것을 려은 것이다.
    "어썼든 조용해야 돼. 사회가 시끄러우면 바로 민심으로 연결되니
까."
    "그령숱니다, 부장님. 하지만 저회들이야 맡은 일이나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정치는 정치인들이 알아서 하라고 해야지요."
   서류를 챙겨 들면서 안홍건이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그저 중립적인 입장에서 일해야 된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
래야 판단도 흐려지지 않고 소신있게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요.그것이 공무원의 기본 자세요."
   서류를 든 안홍건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일이 끝나면 지시하신 마약 밀매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겠습니
다. "
   "그러시오. 보고서를 보았더니 마약 소비량이 50러센트 늘었습디
다. 그만큼 반입량이 늘었다는 말도 될테러까."
   "물론입니다, 부장님. 반입처는 부산이라는 정보가 있으니 저회들
단독으로라도 집중적으로 수사하겠습니다. "
   자신있게 말한 안흥건은 머리를 숙여 보이고는 방을 나갔다.
   대산 실업의 조화는 대문의 안쪽에서 세 번에 놓여 있었다. 종
이로 만든 둥근 조화는 벌써 서너 개의 꽃이 밖으로 라져 나왔고 받
침대도 부러져서 벽에 기대 세워진 상래였다. 막 발인 준비를 하는
초상집은 분주해서 상주들은 바쁘게 움직였고 문상객들은 서넛썩 모
여 서 있었으므로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244 밤의 대퉁령 제4력-ll
    조화 옆에 우두커니 서 있던 김달측는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낮선 얼굴들이었지만 모두가 문상객이나 상주들뿐이어서 고와 비슷
 한 눈치를 보이는 사람은 없다.
    그매 앞쪽에서 횐 옷을 입은 상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한
사내가 몸을 돌리더니 그에게로 다가왔다. 곧장 이쪽을 보며 다가왔
으므로 김달수는 머리를 들렸다. 사내가 그외 앞에 멈추어 섰다. 40
대 중반쯤의 나이로 검정 양복에 조금 살찐 체격이었다.
    북한에서는 살찌고 나이 든 사람은 대개 공산당 간부였으므로 잠
간주눅이 들었던 김달수가 시선을 들었다.
    "곧 출발하겠지요?"
    그렇게 묻자 사래가 머리를 끄덕였다.
    "물건은 가져왔지요?"
    "f1? fl ."
   놀란 김달수가 커다랗게 머리를 8덕였다.
   "바깥의 차에 두었습니다. "
    "가십시다. "
   그들을 초상집을 나와 길가에 세워 둔 김달수의 차로 다가갔다.
차 안에 있던 부하 세 명이 긴장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김달
수는 사래와 차의 됫좌석에 올랐다.
   "어디, 물건을 보십시다. "
   사래가 서루르듯 말했으므로 김달수는 가방을 그의 무릎 위에 을
려 주었다.
   가방을 연 사내가 비닐 봉지에 든 네 뭉치의 마약을 롬꼼하게 조
사하기 시작했다. 우선 송곳 같은 핀으로 각 뭉치에 든 횐색 분말을
                                            붕괴되는조직 245
 레내어 무륨 위에 올려놓은 손바닥만한 플라스틱 판에 넣더니 주머
  니에서 무색의 액체가 든 조그만 병을 꺼냈다. 그가 병을 기울여 조
 그란 흠페 담아 둔 분말 위에 한두 방울을 떨어뜨리자 액체는 곧 청
 색이 되었다. 사내는 다시 주머니에서 손저울을 꺼내더니 비닐 봉지
 의 무게를 재었다.
    "이것 보시오.나는 아직 돈 구경을 못했는데, "
     김달수가 말했으나 사내는 건성으로 머리를 끄덕이며 비닐 봉지
 네 개의 저울질을 끝내었다.
    "물론 우린 이놈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잘 압니다. 하지만장사는
 확실하게 해야 하는 법이어서."
    사래가 저울을 주머니에 넣으면서 말했다.
    "돈은 저기 앞쪽의 제 차 안에 있습니다. 가져오도록 하지요."
    차 밖으로 나간 사래가 앞쪽에 대고 손짓을 하자 곧 길가에 세워
진 대형 숭용차의 문이 열리더니 사래 두 명이 제각기 무거워 보이는
트렁크를 들고 내렸다.
   사래가 김달수를 바라보았다.
    "이거 시간 웨나 걸리겠군요. 돈을 모두 세려면."
   "하루 종일이 걸리더라도 4어야지."
   "이번은 처음이라 현금 거래지만 다음에는 방범을 바려야 될 거
요."
   장의차가 그들 옆을 지나 초상집 앞에 멈추었다. 예정 시간보다도
30분쯤 늦게 출발할 것 같았다. 차 안에서 부하들이 가방을 풀어 젖
히고 돈을 확인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차체에 등을 기대고 나란히
섰다.
246 밤의 대통령 제4달 -ll
"이 물건은 어디로 갑니까?"
김달수가 지나가는 말처럼 묻자 사내가 빙긋 웃었다.
"나도 모릅니다. 난 중개자일뿐이오."
   "그리고 다음번에는 다른 중개자가 나타날지도 모르지요. 저쪽이
마음 먹기 달렸으니까."
   "그럼 당신도 신문으로 연락을 합니까?"
   "지금 연락하는 방법을 묻는 거요?"
   사내가 둥그렇게 눈을 뜨곤는 김달수를 바라보았다.
   "필요없는 일에 나서면 좋을 것 없어요. 내가 당신들을 잘 아니까
망정이지 그런 이야기를 물어서 판을 깨지 말아요."
   오정한 검사가 이동천의 집 앞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였다.
   어잿밤 삼호 빌딩에서 일어난 조폭(조직 폭력)의 난투 사건과 아
침에 일어난 백복동의 피숱 사건에 검찰은 대동 상사가 관련되었다
는 확증을 잡게 되었고 대동 상사가 이름만 빌린 조직 폭력단의 회사
라는 증거도 확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사관 10여 명을 인솔하고 문 앞에 선 오정찬은 긴장하고 있었
다. 이동천은 대동 상사에 나타나지 않았고 제2인자인 박철규도,주
대흥도 마찬가지였다. 몸을 숨긴 것이다.
   수사관이 벨을 누르고 문을 두드리자 한참 만에 문 위에 설치된
인터폰에서 사래의 목소리가 』ㄷ1.
   "누구십니까?"
   "경찰이야, 문 열어!"
                                            붕괴되는 조직 247
   수사관이 기세등둥하게 소리치자 오정찬은 어깨를 늘어뜨렸다.
   대동 상사측에서 본다면 그들은 피해자였고 가해자는도주한 상항
이었으니 피해자측만 잡아 가는 셈이 되었다. 그리고 영장이 멸어지
는 것도 그렇다. 어잿밤 사건 발생의 제보가 들어온 것은 새벽 1시였
고 안경호 부장으로부터 대동 상사의 조폭 관련자 멱단이 넘어온 것
은 새벽 2시, 영장 청구는 아룅 8시에, 영장 발급은 오전 10시였으니
대단한 기동력이었던 것이다.
   "이봐, 문 열어!"
   수사관 한 명이 주먹으로 철문을 두드리자 철컥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근』라관들이 쏟아지듯 집안으로 들어갔고 오정한도 뒤
를 따랐다.
   이동천은 잠시 동안이었지만 그의 직속 상사였던 인물이다. 부산
의 조폭을 정비하려는 임무를 며고 내려왔던 그가 이재는 조폭의 수
괴가 되었고 자신은 그를 체포하러 찾아왔으니 감회가 업을 리가 없
는 것이다.
   수사관들이 집안으로 흩어졌고 곧 집안에 남아 있던 사내 두 명이
오정한 앞으로 끌려왔다.
   오정한은 아래층의 소파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초라한 집이
었다. 오래된 주택이어서 곰팡내 같은 냄새도 났다.
   "이동천 씨는 보이지 쟈습니다. "
   수사관들을 인솔하고 온 지검의 한 계장이 다가와 말했다.
   "이놈들은 모른다고 하는데요."
   오정한이 두 사래를 훌어보았다. 두 명 모두 20대 중반이나 후반
으로 마주친 시선을 비키지 않는 것이 보통내기들은 아니다.
248 밤의 대통렬 제4부 -H
    "이동천 써 어디 갔어?시간 끌지 말고 말해."
   오정한이 어르듯 부드럽게 말하자 오른쪽에 선 사래가 턱을 치켜
들었다.
   "영장 한번 봅시다. "
   "01 THOI ."
    한 계장이 한대 칠 듯이 한걸옴 다가서자오정한이 말했다.
   "한 계장 보여 줘요."
   그리고는 다시 물었다.
   "영장 보여 줄테니 이동천 가 어디 있는지를 말해."
   "우리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러는 거요?"
   왼쪽의 사래가 소리치자 수사관들이 웅접실로 모여들었다. 집안의
수색은 끝난 모양이었다.
   오정한이 서류를 펼졌다.
   "당신 이름이 뭐of"
   "전봉식이여? 왜?"
   30명이 넘는 명단에 전봉식이라는 이룸은 없다. 이것은 검촹 자체
내에서 작성된 조폭 관련자 명단이었는데 오정한이 안경호로부터 넘
겨 받았을 빨 출처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주민둥륵증을 내놔 봐."
   한 계장이 다그치자 옆에 서 있던 수사관들이 두 사태의 호주머니
를 뒤져 소지품을 꺼내 놓91다.
   "이 새끼, 주민둥록증도 안 가지고 다녀7"
   수사관 하나가 소리치자 한 계장이 오정한의 눈치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붕괴되는 조직 249
   "데리고 가,두 놈 모두."
   물론 대동 상사를 기습한 팀으로부터 회사가 비어 있다시피 되어
있다는 보고를 받은 터라 이쪽에 즌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이동천은 재빨리 간부들과 함께 몸을 피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조직은 이제 궤멸 직전의 상황이 되어 있었다. 10여 개의 관련업체
들은 모두 경찰의 조사를 받는 중이었고 간부급 30여 명 중에서 반
수 이상이 체포된 상태인 것이다.
   조성표는 전화기를 귀에 댄 채 눈을 치켜 뜨고 있었다. 얼굴이 붉
게 상기되어 있는 데다가 두 눈까지 번들거렸고 귀에 댄 전화기를 힘
있게 움켜쥔 모습이었다.
   "이동천이 숨어 있을 곳은 배장근의 시업체밖에 없습니다, 안 부
장님. 그곳을 수색하시면 됩니다. "
   열기를 떤 그의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배장근의 업체들 내역과 현황, 그리고 직원들의 숙소까지 기록된
서류가 있으니 지금이라도 보내 드리지요."
   "그래 주실랍니까?"
   안경호가 반자다는 듯 말했다.
   "사무실에서 기다릴테니 지금 보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
   조성표가 전화기를 내려놓자 천기석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애들 시켜서 지금 보내겠습니다. "
   "서둘러."
   천기석이 문을 열고 방을 나가자 조성표는 앞자리에 앉은 허대수
250 밤의 대통령 제갈1-ll
를 바라보았다.
    "러시아 자금을 받는 조무래기 놈이오, 배장근이라는 놈은."
    "서울에서도 이야기 들었습니다. "
    허대수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 처기대 사광이 놈들의 아지트에서 탈출해 나왔지요. 우리하
고도 빛이 있는 놈입니다. "
   "재빠른 놈이오. 그 다음날 경찰이 들이닥쳤지만 모텔은 깨끗이
비워져 있었소."
   허대수는 아쵱에 부산으로 내려와 진행 상황을 점검하는 중이었
다. 그는 아예 조성표의 사무실에 자리를 잡고 앉아 수시로 김양호에
게 상황을 보고했다. 이번에 부산 지검에 부임한 지검장과 부장은 모
두 김양호 인맥이어서 조성표 사이는 초면이었으므로 허대수는 그들
과 조성표 사이의 중개 역할도 해주었다. 이를 계기로 조성표는 그들
과 안면을 닦아 나갈 것이지만 일단 김양호에게 신세를 진 것이다.
   전화 벨이 울렸으므로 조성표는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조 사장님, 납니다. "
   이제 귀에 익은 노무라의 목소리였다.
   "아,노무라 써.지금 어디요?"
   그러자 허대수가 그를 바라보았다. 노무라는 어젯밤의 삼호 빌딩
습격에서부터 아침에 백복동을 친 것까지 이번 사건의 주역이었다.
그리고 모두 성공리에 끝낸 것이다.
   "난 시내애 있습니다. 그런데 이동천을 아직 잡지 못했다던데. 박
철규, 주대홍도."
                                             붕괴되는조직 251
   노무라가쏘아붙이듯이 말했으므로 조성표의 얼굴이 굳어졌다.
   "노무라 씨, 곧 잡힐 거요. 한국은 좁으니까."
   "영장이 떨어지기 전이었더라도놈들이 이동천의 집에 모였을 때
몽땅 잡았어야 했어요."
   "글,노무라씨.검찰이 이번처럼 빨리 움직인 적이 없었소.어
fn든 걱정할 필요는 없소. 곧 잡힐테니까."
   "어떻게 말입니까?"
   "놈이 도망칠 곳은 배장근의 조직밖에 없단 말이오. 곧 검찰이 배
장근의 업체를 샅샅이 수색할테니까."
   "내가 조금 전에 검찰로 배장근의 업체 관련 서류를 몽땅 보냈소.
이 기회에 그놈의 조직도 흔들게 될 거요. 일석이조가 되는 셈이지."
"기다리시오. 곧 좋은 소식이 올테니까,"
   "이동천이 러시아 마피아의 조직으로 숨어들어갔다는 중거가 있
나?"
   지검장 김성길이 묻자 안경호가 한걸음 다가섰다.
   "증거는 없지만 가능성이 많습니다, 지검장컴. 이동천과 배장근이
제휴하고 있다는 중거가 있으니 수색을 해도 별문제가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
   "이 기회에 러시아 마피아 조직도 함꼐 잡아 넣는 것이 조폭 정비
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252 밤의 대통령 제4부 -ll
   김성길온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덮었다. 조금 전에 안경9;가 내
려놓은 배장근의 업체와조직원 명단과 조직도가 기록된 서류였다.
   "배장근이 러시아 마피아의 대리인이라는 증거가 있나?"
   "예?"
   안경호가 눈을 껌벅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부산으로 내려오기 전
에 그들은 서울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 김성길은 앞으로의 계획
을 이야기하면서 러시아 마펴아의 대리인인 배장근도 정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더 이상 사건을 확대시킬 필요는 없어, 이쪽은 건드리지 말어."
   김성길이 서류를 앞쪽으로 밀었다.
   "이동천이와 검거 안된 잔당들의 수색은 계속하되 이쪽 지역은 접
근시키지 말란 말이야. 알아듣겠나?"
   "알겠습니다. "
   안경호도 산전수전 려으면서 출세 가도를 달려온 인물이다. 지금
당장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사연이 있을 것이라는 짐작을 했다.
그리고 이것은 지검장의 분명한 지시였다. 그것을 거스를 필요는 없
는 것이다.
   김성길이 밀어 놓은 서류를 집어 든 안경호는 지검장실을 나왔다.
이동천과는 안면이 없었지만 그가 서울 지검에 근무할 때 똑똑한 후
배라는 소문은 듣고 있었다. 어깨를 펴고 복도를 걸으며 안경호는 똑
똑한 놈은 출세하기가 힘들다는 어느 선배의 말을 떠올렸다. 이동천
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동천 써 애인인 것이 잘못인가요?왜 이러시는 거예요, 정말?"
                                             붕괴되는 조직 253
   윤해선이 소리치듯 묻자 수사관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이동천의 애인이라 여간내기가 아니구만."
   나이 든 수사관이 입맛을 다시더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색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20평짜리 원룸 아파트여서 들이닥친 다섯 명의
수사관들은 방의 이쪽저쪽에 서 있었는데 긴장이 풀려 늘어진 자세
였다.
   "이봐, 이동천이하고 만나기로 안했어?"
   소파의 쿠션이 너무 깊어서 한없이 몸이 빠져 들어팠으므로 끝부
분에 엉덩이만 걸치멸서 그가 다시 물었다.
   "몇 번 말해야 돼요?만나기로 안했어요."
   윤혜선이 흠 가운의 벌어진 틈을 여미면서 쪘정한 목소리로 대답
했다. 그러나 소매가 없고 앞이 트인 가운이라 그녀의 맨다리가 드러
나 있다.
   "거짓말하면 공범으로 몰려. 형무소를 가야 한단. 말이야. 그놈과
함 . "
   "가지-5, 뭐 . 내가 쬐가 있다면."
   머리를 든 윤혜선이 사래를 쏘아보았다.
   "도대체 그분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래요?"
   이동천의 집에서 나촌 후에 아파트에만 틀어박혀 있었던 윤혜선이
다. 여우 같은 서 마담과 늑대 같던 정 상무는 이제 전화도 하지 않
았다. 이동천이 약속을 지켜 주었던 것이다.
   "엄청난 죄를 지었어."
   나이 든 사내가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어썼든 아가씨는 우리와 같이 가주어야겠는데. 조사를 받아야겠
로지 밤의 대퉁령 재식즌 -ll
어."
    그러자 방 뒤쪽에 서 있던 사래가 무전기를 귀에 대고 있더니 나
이 든 사래에게로 다가완 귓속말을 했다.
    "자, 모두들 흩어져 ."
   튕기듯이 일어난 사내의 한마디에 모두들 날렵하게 문의 양쪽에
붙어 섰다. 사래가 윤혜선을 바라보았다. 눈이 번들거리고 있었는데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문을 열어. 딴짓하면 죽을 줄 알아."
   그러나 윤혜선이 문을 열어 줄 것도 없이 딸그락거리는 열쇠 소리
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들어선 것은 김학봉 변호사다. 그가 몸
을 완전히 안으로 들여놓기도 전에 수사관 한 명이 손을 턴쳐 그의
멱살을 쥐고 방바닥fl 패대기를 졌다.
   "아이고!"
   김학봉의 비명이 방안을 울렸다. 수사관 두 명이 그의 몸을 덮쳐
서 잠간 동안 비명 소리만 연거푸 났는데 수사관들이 털고 일어나자
그는 바닥에 엎드린 채 뒤로 을려진 두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
다. 수사관 한 명이 수잠을 잡아 일으켜 앉헌으므로 그는 다시 비명
을 질렀다.
   윤해선은 반쯤 입을 벌린 채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전혀 상상할
수도 없었던 김학봉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언제나 오만했고 사나웠
던 김학봉이었다.
   "야, 이 자식, 너 이동천이 연락원이지?"
   수사관 하나가 기세등등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새끼, 어서 불어. 이동천이가 어디서 기다리고 있어?"
                                             붕괴되는 조직 255
   처져 있던 수사관들은 찰기를 띠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주먹이나
발길을 날릴 것 흗은 기세여서 김학봉은 앉은 채로 몸을 비척이며 물
러났다.
"당신들 누구이? 나는 잠깐 여기 들르러
"시』1러워, 이 새끼야."
수사잔 하나가 김학봉의 뺨을 쳤다.
"이동천이 어디 있어?"
"여보시오,나는 여기 잠간 쉬러 온 사람으로
"닥쳐 , "
   다시 주먹을 올리는 수사관의 몸을 밀면서 나이 든 수사관이 김학
봉 앞에 섰다.
   "검찰에 데리고 가서 불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불면
정상은 참작해 주마. 자, 이동천이 어디 있어?"
   김학봉이 눈을 들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구석에 서 있는 윤혜
선과 시선이 마주쳤다.
   "혜선아, 이게 도대체‥‥‥‥
   나이 든 사래가 다가가 손 끝으로 김학봉의 턱을 치켜 올렸다.
   "뭐?이동천의 애인 집으로 쉬러 들어왔어?더구나 열쇠까지 갖
고? 이런 씨발 놈의 새끼가 거짓말하는 것 좀 보게."
   구석에 서 있던 윤혜선이 길다랗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흄 가운
의 앞을 차분하게 여미었다.
"웃기는군."
전화기를 내려놓은 김양호가 창가에 서 있는 사이토를 바라보
256 밤의 대통령 제긱부 -토
았다.
   "이동천의 정부 집에서 부산의 거물 변호사 한 놈을 잡았다는군,
사01토 01."
   "무슨 말이오?"
   "그년이 두 머저리를 데리고 놀았다는 이야기요."
   "데리고 놀았다니?"
   "이동천과 변호사가 구멍 동서란 말이오. 남자들이란 하나같이 구
멍 앞에서는 눈이 먼다니까, 이동천이도 여자에게 놀아난 셈이지."
   김양호가자리에서 일어나사이토에게로 다가갔다. 저녁 1시경이
어서 호텔의 뒤쪽 정원은 그늘에 덮여 있었다. 잔디밭 위를 한가한
모습으로 걷는 한쌍의 외국인 남녀가 보였다.
   "사이토 씨, 러시아 외무 차관이 비밀리에 방문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자가 마피아의 로비를 했을 줄츤 나도 뜻밖이오."
   "부산 검찰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나서야 나도 알게 되었어.
놈들은 청와대를 움직인 모양이오."
   사이토가 머리를 돌려 김양호를 바라보았다.
   "러시아인들의 로비는 직선적이오. 그리고 당신네 정부에게 내보
일 카드도 우리보다 많고,"
   "아마 청와대에 픈 미끼를 던져 주었을 거요. 선거가 몇 달 남지
않았으니까."
   "남북 관계겠군."
   "러시아는 아직도 북한에 영향력이 크지요. 특히 군사 장비 면에
                                             붕괴되는 조직 257
있어서."
   입맛을 다신 김양호가 팔짱을 끼었다.
   "이번 일이 끝났을 때 우리와 조성표의 전리품 분배에 차질이 생
겼어요. 사이토 씨, 당신은 예상하고 있었겠지만."
   "우리가 이동천의 영역을 흡수해 버린다면 조성표의 몫이 없단 말
01오."
   "그자는 이동천이를 없애 준 것만 해도 우리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 려니다. "
   "서울에 진출하려고 할덴데."
   "그뻔 신 회장과 싸움을 붙입시다. "
   자르듯 말한 사리토가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약속이 있어서 가봐야겠습니다. "
"곧 이동천의 소식이 들리겠지요. 오래 숨어 있지는 못할테니까."
   "형님, 식사허쇼."
   주방에 있던 주대홍이 불렀으므로 이동천은 소파에서 일어섰다.
몇 발짝만 발을 몌면 응접실에서 주방의 식탁까지 을 수 있는 20평
짜려 아파트 안이다.
   식탁에 앉은 이동천은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밑반찬도 풍
성한 데다가 해물찌개와 생선회도 먹음직스럽게 보였는데 한 시간도
안되어 근사한 저녁상을 차려 내온 그의 솜씨가 놀라웠던 것이다.
   이곳은 포항의 변두리에 있는 서민 아파트였다. 집주인인 이병덕
258 밤의 대통령 제4닥 -lr
 은 기무라의 정보원이었다. 그들에게 열쇠를 맡긴 이병덕은 식구를
 데리고 처가가 있는 대구로 떠났으므로 주대흥이 주방을 차지한 것
 이다.
    "왜 나만 혼자 먹는 가"
    수저를 들면서 이동천이 말했다.
    "너도 이리 와서 같이 먹자."
    "먼저 드쇼. 나는 애들허고 같이 먹을랍니다. "
   이동천은 뜸이 잘 든 밥을 입애 떠 넣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처음
음식을 먹는 것이다.
   "백 상무가 어떻게 되었는지 걱정이다. "
   밥을 삼킨 이동천이 말하자 주방에 선 채로 무언가를 러던 주대흥
이 그를 바라보았다.
   "아까 애들 시켜서 시장 볼 때 병원에 전화했는디 수술 잘 끝났다
고 헙디다. "
   "잘되었다. 다행이야."
   "근디 3개꿜은 병원에 있어야 헌다고 헙디다. "
   이동천은 머리를 』1덕였다. 오전에 서울로 연락을 했으니 지금쯤
놀란 부인이 내려와 같이 있을 것이었다.
   "형님, 찌개 맛이 어떠요?"
   눈을 끔벅이며 주대홍이 그를 바라보았다.
   "간이 맞어요?"
   "맛있다. "
   "회 잡숴 보쇼. 근디 괴기가 싱싱허덜 안혀서."
  "초장이 맛있어서 됐다. "
                                             붕괴되는 조직 259
   "형님, 거시기."
   주대흥이 주충거리며 말을 멈추었다.
   "그래, 왜?"
   "아까 방송에서, 뭣이냐, 여자분도 시달리고 있을 것 같은디요."
   윤혜선을 말하는 것이다. 방송 뉴스는 시간마다 이동천파의 검거
소식을 전하고 있었는데 내연의 관계에 있는 윤모 양의 집을 수색했
다는 말도 나온 것이다.
   이동천이 잠자코 있자주대흥이 흔자소리처럼 말했다.
   "밤낮으로 따러댕길텐디. 사람 미치게 만든단 말이오."
   그는 이동천과 윤혜선의 관계를 모른다. 윤혜선이 알리바이를 만
들기 위해 이동천의 집에 보내진 것까지는 알았지만 같이 생활한 것
이 여러 날이다. 아마 박철규마저도 방송에서 말한 대로 그녀가 자연
스럽게 이동천과 내연 관계로 발전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
랐다.
   "내일 아침에 네가 백 상무 병원에 다시 전화해라, 괜찮은가."
   이동천이 말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아주머니 앞으로 돈을 좀 보내."
   "그건 걱정허지 마쇼."
   주대흥이 던지듯이 말했다.
   "그건 그렇고 그, 손달섭이를 잡어서 회를 쳐야겠소. 정말이오. 내
가 회를 쳐서 초장에 찍어 먹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오."
   벌써 열 번도 더 넘게 뱉고 있는 말이었지만주대홍의 얼굴은 다
시 대춧빛이 되었다.
   가물가물한 의식 속에서도 백복동은 손달섭의 배신을 부하들에게
260 밤의 대통령 제4력 -ll
말해 주었던 것이다. 화분이 떨어지는 것에 놀란 부하들이 아파트로
달려갔을 때 손달섭은 보이지 않았고 피바다 속애 백복동만 엎드려
있었을 꽐이었다.
   이동천은 수저를 내려놓았다. 손달섭은 암살자들에게 문만 열어
준 것이 아니다. 노무라나 조성표에게 이쪽의 조직 현확과 간부들의
명단까지 만돌어 넘겨 주었던 것이다.
   물잔을 들면서 이동천은 벽시계를 을려다보았다. 저녁 8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기무라가 찾아온 것은 밤 11시가 조금 지났을 매었다. 그는 부하
두 명과 함께 집안에 들어섰는데 부하들은 제각기 무거줘 보이는 가
방을 들고 있었다.
   이동천과 마주앉은 그가 서두르듯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경찰이 우리 아이즈 고데츠를 연관시키지 않았었는데
위에서 지시가 내려온 모양입니다. 경찰은 이제 우리까지 찾고 있숱
니다. "
   "fl가 여기로 출발하기 전에 저회 조직원 새 명이 잡혔습니다. 그
래서 지금 모두 부산을 떠나고 있숨너다. "
   "저도 서울로 을라가는 중에 들른 져니다. "1ㅁ1구치조와 김양호는
이 기회에 철저하게 우리들을 몰아낼 작정인 겁니다. "
   머리를 든 그가 집안을 둘러보는 시능을 했다.
   "이곳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사장님. 차라리 저와 함꼐 서울로 가
                                              붕괴되는 조직 261
 시는 것이‥‥‥‥
    이동천이 머리를 저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기무라 씨."
    시선을 내린 기무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는 끝났다는
태도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반수 이상의 조직 간부들이 체포된 데다
가 경찰들이 지키고 서 있었으므로 업체들은 영업을 하지 못하고 있
었다. 곧 세무서에서 사찰이 내려을 것이고 그때는 엄청난 세금을 추
징당하게 된다. 세금을 내려면 업체들을 팔아도 모자랄 형편이 될데
니 사업은 끝난 것이다.
   "정말 분합니다. "
   이윽고 기무라가 머리를 떨군 채 입을 열었다.
   "우리 아이즈 고데츠는 일본에서도 배척되었고 한국에서도 받아
들여지지 않았습니다. "
    "일본 정치인 놈들이 야마구치조를 지원하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한국 정치인들이 야마구치조와 한패가 되어서 우리를 밀어내
다니 ."
   그러자 이동천이 입을 열었다.
   "안도섭 부회장께 내 말을 전해, "
   그의 말소리가 가라앉아 있는 방안을 울렸다.
   "나는 최후의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3a다고. 그리고 내 시체를 확
인하고 나서야 졌다는 것을 알아 주시라고."
"놈은 이제 끝났어. 남은 길이란 자수하든가 잡히든가 두 가지 방
262 밤의 대통령 제4부 -ll
법밖에 없어."
   정사를 막 끝낸 다음이어서 네 활개를 펴고 기진해 누워 있던 양
유경을 향해 사이토가 말했다. 어느 사이에 그는 담배에 불을 붙여
물고 있었다.
   "하지만 영리한 놈이야. 놈은 배장근이한테도 가지 않았어, 그령
게 되었다면 잡아낼 수가 있었는데."
   "배장근이가 말애요?"
   그녀가 묻자 사이토는 담배 연기를 길게 그녀의 벌거벗은 가슴 위
로 왐어내었다.
   "배장근이는 아냐."
   "그럼 누구?"
   "포보비치, 밀로체프의 보좌관으로 냉흑한 놈이지. 그놈이 지금
부산에 있거든."
   "비린내 나는 놈이 욕심만 가지고 무얼하겠다고."
   이것은 혼자말이다.
   "아이즈 고데츠는 한국에서의 실패로 일본에서도 세력이 약화되
3a지. 아마 안도섭은 총회에서 부회장 자리띠서도 밀려날 거야."
   양유경이 몸을 옆으로 누였다.
   "그러면 이번 일에서 당신의 소득이 제일 크군요."
   "글써. 당신네나, 조성표, 그리고 우리의 이해가 일치된 거지. 우
리만을 위한 일이 아니었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끈 사이토가 양유경의 젖가슴을 손바닥으로
감싸 주었다.
                                            용괴되는 조직 263
                   "당신과 내가 이렇게 같이 있는 것이 이해 관계가 서로 맞는 것처
                럼 말이야."
                   "내가 당신 곁에 있는 한 김양호는 당신의 털 하나 건드릴 수가
                없지 ."
                   "당신은 동원 그룹의 상속자를 정부로 삼고 있으니 마음이 놓이겠
                지요. 김양호가 배신을 하더라도 래가 있으니까."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어둠에 익숙해 있어서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똑똑히 바라볼 수 있었다. 이윽고 그들은 거의 동시에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당신이 단순한 여자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어."
                   "말해 주어서 고마워요."
                   양유경이 젖가슴에 놓인 그외 손을 몌어내었다.
                   "아직까지 김양호는 우리 조직의 얼굴이에요. 난그를 존중하고
                있어요."
                   "당연하지."
                   "그리고 그도 지금 우리의 관계를 알고 있을 거구요."
                   "그것도 당연해 ."
                   "당신의 입장이 이곳에서도 제일 낫군요, 사이토."
                   "모두 당신들 덕분 아닌가?"
                   방안에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벽시계는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
                었다.
      .·'a÷   사츄에서 눈을 든 박현식은 앞에 앉아 있는 안홍건을 바라보았다.
                261 밤의 대통령 제살1-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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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인물들이 잠적쟀으니 검찰의 이번 성과는 반감이 되었군."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장님. 하지만 아이즈 고데츠의 한국
세력은 분쇄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습니다. "
    안흥건이 말을 이었다.
    "곧 국세청에서 그들의 16개 업체들을 상태로 특별 세무 감사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살아 남기 어렵지요."
   박현식은 잠자코 머리흘 」1덕였다. 그는 아비역 육군 중장으로 안
기부장에 임명된 지 만 일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 력범한 인상에다
말수도 적었고 뚜켠한 연줄도 엄던 그가 일약 안기부장 자리에 오른
것은 전임 부장인 권용호의 추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권용호는 지난 정권 때 군부의 실새에 밀려 말 찬번 재대로 못했
던 국방 차관이었다. 그는 역시 정치 장군들애 밀려 군단장을 끝으로
전역한 박현식을 강력히 추천했던 것이다.
   "청와대의 김 순석이 러시아쪽은 건드리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그쪽 자료는 넘겨주지 않았습니다. "
   안흥건이 말을 이었다. 그는 국내 담당 1차장으로 이번 사건은 그
의 소관이다.
   "아마 청와대와 러시아 쪽과 무슨 이야기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
다. "
   박현식이 시선을 들어 그콜 바라보았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대
통랑과 몇 멱의 수석들만 알고 있을 것이다.
"청와태와 검찰이 알아서 하는 일이니까."
   앞에 놓인 서류를 옆으로 밀면서 박현식이 말했다.
   "이번에 이동천을 친 것은 야마구치조TR구만?"
                                             붕괴되는 조직 265
   "검찰은 폭력 조칙 간의 싸움으로만 발표했지만 실재로는 야마구
치조였습니다. "
   "부산 지부의 노무라가주동이 되었겠지요."
   "야마구치조의 조직원은 현재까지 몇 명이오?"
   "한국에 와 있는 놈들이 대략 백여 명,그리고 놈들이 포섭한 한국
인들이 200명 정도로 모두 300명 가량입니다. "
   "김양호의 동원 그룹과 동맹 관졔를 맺었으니 거칠 것이 없3n지."
   "양승일의 사인이 심장마비가 아니라는 소문도 있던데.아이즈 고
데츠에 의해 피살당했다고도 하고."
   "김양호애게 당했다는 소문도 있고 정부와 같이 있다가 복상사했
다는 말도 있습니다. "
   "어꼈든 김 수석한테서 무슨 연락이 오면 협조해 주도록 해요. 각
하도 알고 계실테니까."
   "알겠습니다. "
   안흥건이 방을 나가자 박현식은 옆으로 밀어 놓았던 서류를 당겨
다시 읽기 시작했다.
   아이즈 고데츠의 대리인인 이동천의 사업 내용과조직 체계,그리
고 조직원의 명단까지 상세히 기록된 서류였다. 그러나 이제 이동천
은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그와는 일면식도 없었지만 죽은 양숭일의
후계자가 되었던 인물이고 촉망받던 검사라는 것은 전부터 들어
왔었다.
   전화 벨이 울렸으므로 그는 전화기를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들었
266 밤의 대통령 재살t -lf
던 것은 구내용 전화였고 지금 울리고 있는 것은 횐색 전화인 것이
다. 그는 전화기를 귀에 차었다.
   "여보세요."
   "안기부장외십니까?"
   낮선 목소리였으므로 박현식은 조금 긴장이 되었다. 휜색 전화는
직통으로 정계와 관계의 고위급 몇 명만이 알고 있는 번호였다.
   "Lll, 박현식입니다.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f, 이동천입니다. "
   박현식이 상체를 세우고는 눈을 크게 떴다.
   "이동천이라면?그럼 부산의‥‥‥‥
   "그렇지요. 지금 도망자가 된 이동천입니다. "
   그러는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굵었다.
   "부장님을 뵙고 말씀 드릴 것이 있는데, 시간을 내주시Tf습니까?"
   "이것, 난처하군."
   박현식이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난데없는 일이어서. 그리고 당신도 관직에 있었으니 당신의 요구
가 상식을 벗어난다는 것을 잘 아슬덴데."
   "알지요. 하지만 국가 대사에 관한 일입니다. 상식을 따질 일이 아
니지요."
   "설군 아이즈 고데츠와 함께 나라를 구하려고 했다는 말씀은 아니
겠지요?"
   "거기, 안흥건 차장이 김양호와 끈이 닿고 있다는 건 아시지요?"
   오히려 저쪽에서 그렇게 묻자 박현식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
나 전화기를 내려놓을 생각은 없다.
                                              용괴되는 조직 267
   "안 차장 이야기는 갑자기 왜?"
   "그자는 내가 양 회장의 후계자로 선정되던 때에 후원자가 되었던
사람입니다. "
   "그 자리에 야마구치조의 가토 노부야스와 한민당의 이용덕 총장
이 같이 있었지요. 그들은 양 회장에게 내 후원자가 되겠다고 약속했
었습니다. "
   "그 이후의 사건들은 부장님이 잘 아실 겁니다. 그렬다면 느끼신
점이 있으실텐데요."
   "글쌔, 나는 도무지,"
   "정부에서 누구 하나 제동을 거는 사람이 없습니다. 야마구치조와
러시아의 마피아가 지금 한국을 어떻게 흔들고 있는지 잘 아실텐데
요. "
   "대선of 몇 달 남지 않았다고 위애서부터 눈속임이나 한탕하려고
하고 밑의 놈들은 제 사리사욕만 챙깁니다. 러시아와 일본은 그것을
이용해 밀려 들어오고 말입니다. "
   "이러다가는 나라가 망합니다, 부장님 ."
   박현식은 전화기를 바러 쥐고는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는 벽시계
를 올려다보았다. 오전 10시 반이었다.
노무라가 해양 빌딩에 도착한 것은 10시 반이 조금 지났을 때였
268 밤의 대통령 제4력 -lf
다. 아룅에 조성표와 천기석을 만나 이동천의 잔당을 잡을 계획을 세
우고 돌아오는 길이다.
   해양 빌딩은 범일동의 번화한 거리에 새워진 10층짜리 빌딩이었
논데 노무라는 5층과 6충 두 개 층을 빌려 신일 상사라는 회사의 간
판을 걸어 두고 있었다.
   신일 상사는 야마구치조가 서울에서 운영하는 10여 개의 수퍼마
젯과 체인점, 그리고 두 개의 백화점애 물품을 공급하는 유통 회사의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설져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회사의 기반이
잡혀 있었다. 판매망이 구축되어 있는 상태여서 생산자를 고르는 것
은 문제가 아니다.
   노무라는 대여섯 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빌딩의 로비를 지나 엘리
베이터로 다가갔다. 어두운 색깔의 양복에 무의 없는 넥타이를 맨 노
무라는 언재나처럼 표정이 없다. 엘리베이터가 멈추더니 사람들이
내렸다. 사래 세 명과 여자 두 명이었다. 1들은 빌딩 내의 사무실에
서 일하는 동료 사이인 모양으로 지껄이면서 로비 안쪽의 매점으로
몰려갔다.
   경호뭔들에게 애워싸인 노무라가 앨리베이터에 오르자 부하 한 명
이 6울의 단추를 눌렀다. 안에 탄사람들은'모두 노무라 일행이다.
그러자 부하 한 명이 무전기를 귀에 대었다.
   "지금 올라간다. "
   빌딩의 안말은 철저하게 경비되고 있었다. 노무라는 요즘 들어 호
위병의 수를 두 배로 늘렸는데 그들이 움직일 때는 살기가 둥등해서
사람들이 피할 정도였다.
   엘리베이터가 3층에서 멈추었으므로 안에 있던 누군가가투덜거
                                             붕괴되는 조직 269
렸다. 벽에 둥을 기대고 서 있던 노무라는 앓에 서 있는 부하의 등을
바라보았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고 그 다음 순간 안
에서 어지러운 고함 쏘리가 터져나왔다.
   앞에 서 있던 사래가 몸을 돌리더니 노무라를 두 팔로 안았다. 그
순간 노무라는 독한 가스 냄새를 맡았다. 부하들의 고함 소리는 아우
성으로 바러었다. 기습을 받은 것이다.
   숨을 멈추었지만 밀리고 부딪치는 바람에 한모금 숨을 들이쉰 노
무라는 폐가 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스총은 특수 제작된 것으로 보통의 가스보다 발사량이 10배 정
도 많아서 한 번 발사로 대여섯 명은 쓰러뜨릴 수 있었는데도 박철규
는 무려 다섯 발을 쏘아젖혔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 사래 두 명이 엘리베이터 밖으로 뛰쳐 나
왔지만 밖에서 기다리던 이규식과 조봉기의 쇠뭉치에 맞아 주저앉았
다. 3충은 제약 회사의 실험실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복도에 나와 있
는 사람은 없다.
   박철규는 가스 마스크를 쓴 얼굴을 돌려 뒤에 서 있던 부하들에게
손짓을 했다. 역시 가스 마스크를 쓴 이규식과조봉기가 복도에 쓰러
져 있는 사내들을 끌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섰다. 박철규는 엘리
베이터의 문을 닫고는 비상 정지의 단추를 눌렀다. 그리고는 그들은
가스를 맡고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뱉으며 쓰러져 있는 사래들을
쇠뭉치로 내려치기 시작했다. 주로 내려치는 곳은 어깨와 팔굽, 그리
고 무릎 등 치명상은 안되지만 병신이 되는 곳이었는데 마구잡이로
내려치다 보니 얼굴에도 맞고 등레도 맞는다.
270 밤의 대통령 제살』 -Tl
   엘리베이터 안은 금방 아비규환의 살륙장이 되었다. 처절한 비명
과 신음, 고통에 못 이겨 철판에 머리를 부딪고 손톱으로 긁는 소리,
그리고 쇠뭉치가 뼈에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이윽고 세 사래는 허리를 세웠다. 바닥에 가득 쌓여 있는 사래들
을 둘러보던 박철규가 엘리베이터의 비상 정지의 단추를 열림 쪽으
로 눌렀을 때였다.
   이규식은 한 사래가 엎어져 있는 모습이 이상했으므로 옆에 서 있
던 조봉기의 어깨를 쳤다. 그리고는 고쪽으로 다가가 엎어진 사개의
목덜미를 잡아 옆으로 젖혔다. 그러자 번쩍이는 것이 눈에 보이는가
했는데 다음 순간 그의 옆구리에 섬뜩한 충격이 왔다. 칼이다. 밑에
깔려 있던 사내가 칼을 찌른 것이다.
   튕기듯이 일어난 노무라는 이규식의 옆구리에서 칼을 잡아 쁩으면
서 그를 조봉기에게로 밀어젖혔다. 그러다가 쓰러져 있는 부하의 몸
에 발이 걸려 비틀거렸다.
   그 순간이다. 박철규가 내려친 쇠뭉치가 노무라의 뒤통수를 쳤다.
그러자 입으로 울컥 피를 토하면서 노무라의 몸이 순간 정지되어 있
는 것처럼 보였다. 그 다음 순간 앞에서 겨우 중심을 잡은 조봉기의
쇠뭉치가 노무라의 머리 윗부분을 내려쳤다. 그리고 이어서 옆구리
를 움켜쥐고 있던 이규식의 악을 쓰고 휘두른 쇠뭉치가 옆머리를 치
자 노무라는 반듯하게 넘어지더니 사지를 떨었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조성표가 한껏 치켜 뜬 눈으로 천기석을 바라
보았다.
   "사이토가 내려온다는군. 그자는 놀란 모양이야."
                                             용괴되는 조직 271
    그러나 그 자신의 놀란 표정은 아직까지도 가셔지지 쟈았다.
    천기석은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배장근 이후로 이동천이 등장한
지금까지의 몇 달 동안 그는 조성표의 진면목을 보게 되었다. 사람의
대부분은 곤경에 빠져 있을 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나타내는 법이다.
배장근이 나타나기 전만 해도 조성표는 오만한독재자였지만 여유가
있어서 부하들을 심복시켰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야마구치조에
매달려 있으면서 이동천을 상태로도 일회일비하는 것이다.
    "지독한 놈들, 놈들은 노무라의 머리를 형체를 알 수 없도록 부수
어 놓았어."
   조성표가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이제 발악을 하는 모양이다. 최후의 발악을."
   "염려하지 마십시오, 시징림. 놈들이 여긴 못 옵니다. "
   "집에도 애들을 보내 놓았지?"
   "예, 경수가 일곱 명을 데리고 갔으니 모두 20명쯤 됨니다. "
   "오늘 저녁에 사이토도 부하들을 데리고 오TE지."
   "아마 모두 데려을 겁니다. 한국에 파견된 이인자가 죽었으니까
요. 이제 곧 부산 바닥에 일본놈들이 곽 깔리겠군요."
   "어쩠든 해양 빌딩 사건으로 이동천은 끝났습니다. 이 세계에서
발을 딛지 못할 겁니다. "
   "놀을 잡아야 돼 ."
   조성표가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그놈을 없애야 된단 말이야. 그래야 아이즈 고데츠가 이곳에서
손을 멜 거야."
212 밤의 대통령 제살」 -lf
     배장근이 방으로 들어서자 자리에 앉아 있던 포보비치가 머리를
 들었다. 1는 창백한 얼굴이어서 더욱 붉게 보이는 입술을 을려 웃었
 다.
    "배 사장, 마치 우리는 전쟁의 참관자로 있는 것 같아서 괜히 어색
 하구만."
    "모두 포보비치 씨 덕분입니다. "
    배장근은 그의 앞자리에 앉았다.
    "이동천 씨를 잡으려고 시내에 경찰이 가득 깔려 있습니다. "
    "조금 전에 조성표의 간부급 부하가 이발소에 누워 있다가 야구
배트에 맞아 병원으로 갔소."
    "야구 배트에 말입니까?"
   배장근이 눈을 크게 떴다. 오전에 노무라가 쇠뭉치에 맞야 죽었으
므로 시내 전역에는 비상이 걸려 경찰이 곽 깔려 있었다.
   "그렇소. 그자는 조성표의 나이트플럽 사장이라던데 중태이고,부
하 세 명이 병신이 된 모양이오."
   "이건 군대가 투입될지 모르겠는데. "
   "천만에."
   포보비치가 머리를 저었다.
   "조성표는 경찰에 신고를 하지 쟈았소. 그것까지 언론세 보도되면
이젠 불똥이 자신에게로 튈데니까."
   "야마구치조나 김양금도 말린 모양이오. 사건이 더 이상 확패되면
골치아파지니까."
   "그렇군요."
                                              붕괴되는 조직 213
   "그런데 배 사장, 이동천의 부하들이 한꺼번에 빠져 나가서 영업
에 지장이 있지는 쟈겠소?"
   "지장은 없숱니다. 이제 우리 식구들도 익숙해져서요."
   "그리고 신분도 보장이 되었으니 말이지요."
   배장근이 머리를 끄덕였다. 이동천의 도움을 받으면서 개운한 기
분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쪽이 익숙해졌으니 더 이상 도움은 필요없
다고 말할 것을 생각하면 꺼림칙했었는데 이재 일순간에 그들이 빠
져 나간 것이다.
   "이제 우리도 한국에서 확실한 기반을 다져 나가게 되었소, 배 사
장. "
   포보비치가 탁자 위에 놓인 술잔을 들어 보드카를 따르더니 그에
게로 내밀었다.
   "자, 한잔 듭시다. "
   아직 오후 5시뷔에 되지 않았으나 포보비치는 개의치 않았다. 배
장근이 보드카를 한모금에 삼키자 포보비치가 빈잔에 다시 술을 따
랐다.
   "이동천이 도움을 청할 곳은 우리밖에 없을 것 같은데."
   포보비치가 웃음 떤 얼굴로 배장근을 바라보았다.
   "혹시 연락이 오지 않았소?"
   "없습니다. "
   "그래요?그 친구, 자존심이 강한 모양비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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