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밤의 대통령

5. 야마구치 조의 서울 입성

오늘의 쉼터 2015. 1. 1. 23:14

5. 야마구치 조의 서울 입성 

 

 

 

 공항의 출구를 나온 주대홍은 곧장 택시 정류장으로 다가갔다.

반팔 셔츠를 입은 데다 맨손이어서 동네 수퍼에라도 가는 차림이었다.
택시는 많았고 승객은 별로 없어 그는 바로 택시에 오를 수 있었다.
   "봉천동 갑시다. "
   그가 불쑥 말하자 운전사는 두말 않고 차를 발진시켰다. 아침에
나을 적에 배장근에게 이야기를 안한 것이 조금 걸렸지만 저녁때쯤
돌아가면 서울 다녀온 것을 말 안해도 될 것이다.
   비행기는 한 시간도 안되어 부산에서 서울까지 데려다 주었지만
공항까지 가는 시간이 그 배나 되었다. 지금도 그렇다. 공항에서 봉
천동은 차가 덜 막혀야 한 시간이다.
   두 번이나 전화를 했지만 박미정과는 연락이 되지 않았는데 그것
은 당연한 일이었다. 양쪽이 모두 어떤 사정으로 전화 번호를 알려
주지 못했기 때문인데도 고 여사는 주대흥의 전화를 받으면 죄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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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것같이 미안해 했다.
   이상하게도 택시는 막힘없이 달렸고 차가 밀린 곳도 슬슬 움직이
더니 한 시간도 못되어 그를 봉천동의 비탈길 밑에 내려놓았다. 그는
비탈길을 단숨에 걸어올라 박미정의 집 앞에 닿았다. 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알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났다.
   "계세요?"
머리만을 문 안으로 들이밀고는 그가 부르자 부엌에서 고 여사가 나타났다.
   "아이고, 주 서방."
   손에 들고 있던 그룻을 떨어뜨릴 듯이 놀란다.
   "아니 라자기 이게 웬일인가?"
   "1냥 지나는 길에 ."
   주대홍은 주춤거리는 몸짓으로 집 안으로 들어섰다.

이 시간에 박미정이 집에 있을 리가 없다.
   "아침은 먹었어?"
   그의 팔을 끌어 좁은 마루에 앉히면서 고 여사가 물었다.

그 동안 얼굴의 주름이 더 늘어난 것 같았고 한쪽눈에는 눈꼽이 끼여 있었다.
   "예, 그 동안 몸은 건강하신가 궁금도 해서 ."
   "내가 요즘 밥맛이 없어. 이젠 걱정거리가 없어졌는가 했더니."
   그녀는 옆에 앉은 주대홍의 손을 끌어 쥐었다.

그러나 그의 손이 컸으므로 손가락 두 개만을 잡을 수 있었다.
   "주 서방이 우리 미정이하고 살림 차리는 걸 보고 죽는 게 내 소원이여."
   "아니 그게."
   "그년이 이젠 돈 벌 필요가 없다는데도 부득부득 고집을 부리고 나가 산다네."
   "어제는 점심때 와서는 회사 주식을 사둬야 한다고 2천만 원을 찾아갔어.

주식도 돈이라니까 상관은 없겠지마는."
   "연락처는 아직 없습니까?"
   "곧 기숙사에 전화를 놓으면 알려 주」f다누먼 "
   "어느 화장품 회삽니까?"
   "방방인가 빵빵인가 모르겠어, 외국말이라."
   그러다가 고 여사가 퍼뜩 머리를 들었다.
   "그애 친구한테 연락하면 된다고 하던데.급한 일이 있으면 그애 한테 연락하라고 했어."
   자리에서 일어선 고 여사가 방으로 들어가더니 서랍을 뒤져 종이 쪽지를 찾아래었다.
   "어머니, 그 전화 번호 몇 번입니까?"
   그가 묻자 그녀가 쪽지를 건네주었다.
   "주 서방이 할텐가?당장에 집으로 오라고 하게,내가 그런다고."
   박미정의 친구 정회선은 방배동에 살고 있었으므로 그녀를 만난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 후였다. 정회선은 손님이 한 사람도 없는 카
페에 앉아 있다가 다가오는 주대홍을 보고는 입을 딱 벌렸다.
   "조금 전에 전화하신 분이세요?"
   "그렇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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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앞자리에 앉은 주대흥은 손바닥으로 이마의 땀을 껏었다.
카페를 찾느라고 바쁘게 걸었던 것이다.
   "미정이하고는 어떻게 되세요?"
   이제 놀라움이 호기심으로 변한 그녀가 물었다. 동그란 얼굴형에
쌍꺼풀 수술 자죽이 표가 났지만 귀염성이 있는 모습이었다.
   "지금 미정이는 어디에 있소?"
   주대홍이 대뜸 그렇게 묻자 그녀가 삐죽 입술을 내밀었다.
   "급하세요?"
   "말장난 할 시간이 없어, "
   "미정이한테 연락해서 물어 보구_알려 드릴게요."
   머리를 」1덕인 주대홍이 불쑥 손을 뻗어 그녀의 곱슬거리는 파마
머리를 한 손에 움켜쥐었다.
   정희선의 깍 하는 비명 소리를 듣고 주방에 있던 종업원과 카운터
의 주인 여자가 입을 쩍 벌리며 이쪽을 바라보았다.
   "가자, 이년."
   카페가 울리도록 주대흥이 소리치면서 정회선을 끌고 나오자 카운
터의 주인이 겨우 입을 몌었다.
   "손님, 계산요."
   정회선과 함께 주대홍이 택시에서 내린 곳은 논현동의 어느 연립
주택 앞이었다. 위쪽으로 호텔과 오피스텔 빌딩이 보이는 이곳은 주
택가였다. 조그만 상점들과 공구상, 비디오 가게가 늘어선 좁은 거리
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디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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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대흥이 묻자 젊희선이 손을 들어 붉은 벽돌로 된 연립 주택 2층
 을 가ㄹ1켰다.
     "201호실이오."
     그녀는 한 움큼 빠진 머리를 차 안에서 대충 손질했지만 머리칼은
 아직 부챗살처럼 퍼져 있었다.
     "틀림없지?"
     바짝 다가선 주대홍이 눈을 부라리며 묻자 그녀는 온몸을 오그라
 뜨렸다.
     "틀림 없어요."
     "틀렸다가는 곧장 네 굅으로 찾아간다. "
    "fl . "
    "집에다 불을 확싸질러 버릴테여."
    "fl . "
    "저곳에다 연락을 해도 그렬다. "
    "연락 안해요."
    "돌아가."
    정희선이 몸을 돌리자 주대홍은 주택 바깥 쪽으로 나 있는 계단을
올랐다.
   201호실은 계단 바로 안쪽이었다. 날럼으로 지은 서민 주택이었는
데 지은 지도 오래된 모양으로 복도에서는 책는 냄새가 났다. 벨을
누르자 곧 부스럭거리는소리가 안에서 들렸다.
   "누구요?"
   남자의 목소리였다.
   "관리실여. "
162 밤의 패통령 제구븐 -ll
    "관리실은 무슨."
    그러나 철거덕 소리와 함께 문이 반쯤 열리더니 사내가 얼굴을 내
 밀었다. 말끔한 얼굴이었는데 두 눈이 금방 둥그렇게 커졌다.
    "관리실이라구요?"
    "네가 김민수냐?"
    "아니, 당신이 누군데."
    그 순간 주대홍이 문짝을 손으로 와락 닫았으므로 사내의 얼굴이
문틈에 끼였다.
    "아이고."
    사내가 비명을 질렀고 다시 문을 잡아 열어 젖힌 주대흥은 사래를
집 안으로 밀어 젖히면서 안으로 들어섰다. 응접실로 나가 떨어진 사
내가 머리를 두 손으로 싸러고는 신음 소리를 내었다.
   문고리를 안에서 잠근 주대홍이 집 안을 둘러보았다.
    "미정이는 어디로 갔냐?"
   사내가 대답하지 않자 주대흥은 발을 들어 그의 엉덩이를 내질렀
다.
   "아이고."
   사내가 새우처럼 누운 채 몸을 앞뒤로 팔딱거렸다.
   "말해, 이 자식아."
   "미장원에 갔습니다. "
   "네 직업이 사진 찍는 거라면서?"
   다시 발끝으로 그의 옆구리를 차자 사내가 이제 몸을 번데기처럼
오므렸다.
   "예, 촬영 기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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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내가 허덕이며 말했다. 두 눈이 공포에 질려 크게 떠졌지만초
접이 없다.
   "이번에 미정이가 돈 가져온 것, 어디에 썼어?"
   다시 한걸음 다가서며 묻자사내가꿈틀거리며 반바닥을 기려고
애를 썼다.
   "빨리 말 안혀?"
   "빛진 것 갚았습니다. "
   "미정이한테는 촬영 장비 산다고 했다면서?"
   이것은 정회선에게 들은 말이다. 박미정이 그녀에게 말해 주었던
것이다. 사내가 누운 채 올려다보고만 있었으므로 주대흥은 손을 뻗
쳐 사래의 멱살을 잡고는 가볍게 들어 올렸다. 제법 큰 키의 사내였
으나 주대홍은 쓰레기 봉투를 던지듯이 그를 소파 위로 던졌다.
   "미정이하고 만난 지 얼마나 되었어?"
   "3개월 되었습니다. "
   사내가 금방 대답했다. 소파 위에 웅크리고 앉은 사내는 이제 온
몸을 떨었다.
   "3개월?"
   "예 ."
   그가 박미정을 찾아갔을 때와 비슷한 시기였다.
   "미정이하고 결흔할 거냐?"
   "예, 아니."
   사내의 눈알이 분주하게 움직였으므로 주대홍이 바짝 다가가 섰
다.
   "빨리 말혀, 이 자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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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갚고 혜어지겠습니다, 예 "
   "저는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미정이가 같이 살자고 해서.정말입
니다. 물어 보셔도 됩니다. "
   "그럴 펄요 없어."
   가라앉은 목소리로 주대홍이 말하자 사내는 몸을 굳혔다.
   "넌 집에 누워서 그년의 간호나 받고 살어라."
   주대홍은 사내의 팔목을 움켜쥐었다.
    박철규의 부하로 모텔에 파견된 임정남은 밤 12시 정각이 되자 계
단에서 몸을 일으켰다. 모텔 안은 이제 조용했고 조금 전까지 계단
아래쪽의 커피숍에서 들려 오던 텔레비전 소리도 그쳤다.
   복도 안쪽으로 우측 두 번째에 있는 최기대의 방까지는 10미터밖
에 되지 않았으므로 그는 금방 다가가문을 벌컥 열었다. 최기대가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이 복도의 불빛으로 드러났는데 러닝 셔츠 차림
이었다.
   꼼꼼한 성격의 임정남은 손을 더듬어 문 옆의 전둥 스위치를 올렸
다. 최기대는 반듯이 누워 눈을 감고 있다가 입맛을 다시면서 돌아누
웠다. 방안을 휘둘러본 임정남은 전등의 스위치를 내리고는 문을 닫
았다
   최기대를 감시하기 위해 항상복도에 한사람의 경비원이 지키고
있다는 것이 모텔의 분위기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었다. 그들은 최
기대를 감시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윤경산측의 입장에서 보면 감시
대상에 자신들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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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정남이 방을 나가자 최기대는 이불을 들치고는 침대에서 내려섰
다. 이번에 온 놈은 임씨 성을 가진 놈으로 매시간 정각마다 문을 열
어 보는 버룻이 있다는 것을찰고 있었다. 이것은차라리 생각날때
만 불시에 화인하는 다른 놈들보다 낫다. 앞으로 한 시간의 여유가
있는 것이다.
   그는 침대 시트 속에 넣어 둔 드라이버를 꺼내어 창가로 다가갔
다. 두께 1센티미터 정도의 철봉이 10센티미터 간격으로 박혀 있었
는데 창문의 나무틀에 너트로 고정시킨 것이다. 이미 너트는 끝까지
풀었다가 다시 박은 것이어서 드라이버를 대자 가볍게 풀려 나오기
시작했다. 너트 열 개를 푸는 데 10락이면 된다.
    그 시간에 배장근은 자신의 방에서 오세미와 마주앉아 있었다. 그
는조금 전에 주대홍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참이었다.
   "그 망할 자식,골치를 썩이는군. 잠자기 서울로 날아가다니."
   이맛살을 찌푸린 배장근이 혀를 찼다.
   "길들이지 않은 소 같은 놈이야. 툭툭 말을 거르지 쟈고 던지고 행
동이 거칠어서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 "
   "내가 보기엔 괜찮던데 ."
   오세미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 모텔 안에서 제일 믿음성 있어 보이는 남자예요, 그 사람."
   "하긴 누굴 배신하거나 속일 위인은 아냐. 그래서 동천 형님이 나
에게 보내 주었겠지만."
   "그 사람은 믿어요?동천 형님이라는 사람. 내가 보기에는 차갑던
데. 감정이 없는 사람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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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장근이 머리를 끄덕였다.
   "명분이 분명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를 믿어. 내가 지금 의지하고
있는 유일한 사내지 ."
    "지도자의 자질은 타고나는 모양이야. 그 사람은 몇 번 려어 보지
않았지만 무게가 있어. 사람을 따르게 하는 흡인력 같은 것이 느껴지
    ."

    "그 사람 펀이 되었네."
    "나보다 나은 점이 있다는 거야. 하지만 실전에는 내가 강할지도
모르지, "
   시계를 들여다본 배장근이 목을 한바퀴 돌려 어깨의 근육을 풀었
다. 12시 반이 되어 가고 있었다.
   "윤경산은 지금도 목이 빠지게 밀로체프가 부하들을 파견해 주기
를 기다리는 모양인데 "
   그는 허리춤에 꽃은 베레타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밀로체프는 블라디보스토크에 마약 ?톤을 쌓아 놓았다는군. 윤
경산이 김달수에게 말해 주었어."
   "마약 5들이면 얼마나?"
   "천문학적인 물량이고 돈이지. 아마 1톤만 들여와도 한국은 뒤집
혀. 물론 처리할 능력도 없겠지만."
   "윤경산의 말이 사실이라면 나에게도 마약에 대한 이야기를 할 거
야. 루벤스키를 통하든지 아니면 직접 하든지."
   "그러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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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험해. 판매망도 알지 못하고. 이건 여자 장사나 파칭코로 돈을
모으는 것과는 다르니까."
   배장근이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안았다. 말랑한 피부의 촉감이
손 끝에 전해져 왔고 머리칼의 향기가 풍겨 오자 그는 다른 손을 그
녀의 젖가슴에 집어 넣었다. 오세미가 블라우스의 단추를 풀었다.
   언제나 둘의 미래에 대한 생각이 떠오를 때면 칼날 위를 걷는 것
같은 현실에 대한 이야기로 그것을 떨쳤다. 그리고는 미친 듯이 상대
방의 육체를 탐하는 것이다. 격렬한 정사 뒤에 가끔씩 더 큰 암담함
이 찾아을 때도 있었지만 현재로서는 둘이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보람
과 기대는 그것뿐이었다.
    최기대가 창틀에 맨 로프를 타고 땅에 발을 딛자 어둠 속에서 사
내 한 명이 나타났다. 그가 로프의 한쪽을 잡아당기자 2충의 창틀에
걸려 있던 로프는 곧 그의 손에 모아졌다.
   "앞쪽 계단으로 내려가시오."
   낮은 목소리로 사내가 말했다.
   "계단 중간에서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거또."
   말을 할 필요도 없었으므로 최기대는 절름거리면서 모텔의 앞마당
을 건너갔다. 계단은 걸음을 텔 때마다 아직 붕대를 감고 있는 다리
에 칼로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을 주었지만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
었다.
   계단의 중간쯤 내려가자 모퉁이에서 인기척이 났다.
   "이리로."
   사내는 절름거리는 그가 답답해 보이는지 그의 한쪽 팔을 어깨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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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 걸치고는 같이 계단을 내려갔다.
    "저기 끝 쪽의 보트를 타야 돼."
    모터 보트 옆에 서너 척의 2인승 보트가 매어져 있었는데 사내는
끝 쪽의 보트로 데려가더니 보트의 선미를 움컥쥐었다.
    "자, 어서 타.그리고 북쪽으로 노를 저어 가."
    최기대가 보트에 타고는 노를 내려놓자 사내는 밧줄을 풀었다.
    "빈로쯤 가면 불빛이 보일 거야. 거기가 어촌이야. 국도는 백 미
쯤 떨어져 있어. 거기서 알아서 차를 타라구."
   사래가 힘껏 보트를 밀었으므로 최기대는 서둘러 노를 저었다. 팔
힘은 넘칠 한큼 남아 있었으므로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문 그는 힘껏
노를 저었다. 노젓는 동작이 대여섯 번 졔속되자 보트는 이제 파도를
타 균형이 잡히면서 쑥쑥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강남 성심 병원의 중환자실 209호실 안이다.
    침대 옆의 의자에 앉아 있던 박미정은 머리를 돌려 김민수를 내려
다보았다.
   "그럼 어머니한테 연락할게."
   "그리고 너는 집으로 돌아가. 여기 있을 필요 없어."
   침대에 누운 김민수가 말했다. 그는 오른팔과 왼쪽 발에 깁스를
한 데다가 한쪽 얼굴에 커다란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으므로 보기에
도 섬뜩한 환자였다.
   "그리고 너한테 빌려 간 돈은 일주일 이내에 갚을 거야. 연립 주택
을 딤껄_로 해서라도."
   김민수가 어눌한 목소리로 말하자 박미정이 퍼뜩 눈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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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번이나 말했어? 나하고는 상관없는 남자라고. 난 그 남자와
요즘 말도 해본 적이 없어."
   "어쪘든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어, 너는."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난 널 유흑한 적 없어. 너한테 돈을 사기친 것도 아니고. 그건 분
명히 빌린 거야."
   "누가 뭐래?"
   핸드백을 집어 든 박미정이 김민수를 내려다보았다.
   "정말 ul안해. 어썼든 내 잘못이야. 나 때문에 이렇게 되어서."
    "하지만 나도 분해. 정말 분해서 나도 민수 씨처럼 다쳤으면 좋겠
어."
    "어머니한테 연락이나 해줘. 넌 가고."
    "t:'~H "
    상기된 얼굴로 문 앞으로 다가간 박미정이 머리를 돌려 김민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시선을 옆으로 한 채 움직이지 쟈았다. 그
녀는 어깨를 늘어뜨리며 방을 나왔다. 새벽 1시인지라 병원의 복도
에는 인기척이 없다. 복도를 울리는 자신의 발자국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 왔다.
   이윽고 2충의 계단 입구에 선 그녀는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닦
9rl. 그러자 주위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인지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으므로 그녀는 손수건에 얼굴을 파묻고는 연신 흐느껴
울었다.
   만난 지 두 달, 동거 생찰은 한 달뷔에 되지 않았지만 꿈 같은 시
170 밤의 태퉁령 제긱부 -H
 간이었다. 그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고 돈쯤은 문제가 아
 니었다.
    계단을 내려온 박미정은 현관 안쪽의 공중전화 박스로 다가갔다.
김민수의 어머니에게 전화하여 병원으로 오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주대흥은 박미정이 2충의 계단 위에서부터 흐느껴 울면서 내려오
는 것을 보았다. 그가 서 있는 곳은 아래충의 약국 접수대 옆이었으
므로 박미정의 모습을 비스듬히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마치 가족이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처럼 애처로운 모습으
로 계단을 내려왔다. 그리고는 현관 쪽의 공중전화 박스로 다가간다.
   주대흥은 한동안 그녀의 됫모습을 바라보다가 한쪽 팔을 들어 겨
드랑이에 코를 대었다. 하루 종일 서울을 혜집고 다녔으므로 온 몸애
서 땀냄새가 나고 있었다. 아침만 부산에서 대충 먹었을 뿐으로 하루
종일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으나 시장기는 없다.
   이윽고 전화를 마친 박미정이 힘없는 걸음으로 현관 밖으로 나서
자 그는 약국 앞의 플라스틱 의자로 다가가 앉았다.
   두 눈을 끔벅이며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는 그의 앞을 청소부가
힐끗거리며 지나갔다. 건너편의 응급실 쪽에서 앰욜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 왔으나 이쪽 로비는 조용했다.
   배장근이 최기대의 탈출을 안 것은 1시 정각이었다.
   1시 정각에 최기대의 방문을 열어 본 임정남이 방이 비어 있는 것
을 발견했던 것이다. 즉시 모텔에 비상이 걸렸고 모든 인원이 사방으
로 흩어져 그를 찾았지만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창틀을 뜯고
아래로 내려갔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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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시 가깝게 되어 아래층의 커피숍에 배장근과 김달수, 양재동과
임정남 등이 모여 앉았다. 임정남은 사고의 책임자이기도 했지만 주
대흥이 인솔해 온 사내들 중 선임자이기도 했다.
   "다리를 다쳤으니 걸어서 도망쳤다면 한 시간 안에 도로까지는 못
나감네다. "
   북한을 틸출해 온 경험이 있는 김달수가 입을 열었다.
   "계단을 내려가 배를 타는 방법이 제일 쉬운데 배는 =1대로 있
고."
   배장근이 머리를 들었다.
   "바다 쪽 경비원들 명단을 보자."
   김달수가 건네준 명단을 내려다보던 배장근이 입맛을 다셨다.
   "이종도, 김형채가 9시에서 11시까지,고필성이가 12시에서 1시
까지 겅비를 섰군."
   모두 윤경산의 계열로 분류되는 사내들이다. 김달수가 말했다.
   "하지만 형님, 윤경산은 최기대가 누구인지도 모릅네다. 저한테도
물었지만 가르쳐 주지도 야았시요."
   "f,다시 보고를 해야겠습니다. "
   조바심이 난 듯 임정남이 반쯤 엉덩이를 들고 배장근을 바라보았
다. 배장근이 머리를 끄덕이자 그는 전화기로 달려갔다. 바깥에서 사
내들의 거칠고 급한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 오고 있었다. 모두 불안
해져 있는 것이다.
   "누군가 안에서 도와 주었을 가능성이 있다. "
   혼자소리처럼 배장근이 말했으나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자 전화기에 대고 바쁘게 상황을 보고하던 임정남이 배장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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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보았다.
   "사장님, 전화 받으십시오."
   배장근이 다가가자 그는 송화기를 손바닥으로 가렸다.
   "저회 사장님입니다. "
   그의 사장이라면 이동천이다. 배장근은 전화기를 받아 들었다.
   "형님, 면목이 없습니다. "
   "그보다도 이제 네가 문제다. "
   낮은 목소리였으나 이동천의 똑소리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섞여 있
었다.
   "어서 그곳을 떠나야 한다. 장소는 내가 두어 곳 알아보고 있는데
우선 임시 거처로라도 옮겨라,"
   "저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
   "내가 최기대를 너에게 보낸 것이 잘못이다. 너에게 짐을 넘긴 것
01야."
   "아닙니다. "
   "조성표가 툰치채지 못하도록 해야 돼. 곧 백 상무가 배를 가지고
그곳에 도착할 것이다. 사람들을 데리고 갔어."
   "박 상무는 네 거처를 준비하고 있다. 어서 짐을 꾸려."
   박 상무는 박철규였고 백 상무는 백복동이다. 그들은 이제 대동
상사로 간판을 올린 이동천 휘하의 양쪽 날개였다.
   "또 신세를 입었습니다, 형님."
   배장근이 말하자 이동천이 자르듯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서둘러."
                                     야마구치조의 서울 입성 173
    "fl, 형님."
    "그런데 대흥이가 서울에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구?"
    "예, 어제 아침에. 하지만 밤에 전화는 왔숱니다. 오늘 돌아온다고
했는데."
    "걱정하지 마라. 우리가 놈을 잡을테니까.그리고 제 몸 하나는 추
스르는 놈이다. "
   전화기를 내려놓은 배장근이 그를 바라보고 있는 사내들에게 말했
다.
   "떠난다. 어서 짐을 꾸려라.창고의 짐은 달수가 맡고모텔 안의
물건은 재동이가 맡는다. 그리고 정남이,자레는 경비를 서라."
   사내들이 용수철이 퉁겨지듯 일어서자 배장근이 임정남을 바라보
았다.
   "윤경산이의 감시도 자레들이 맡아.그놈까지 도망치면 안된다. "
    아침 9시 정각이다.
    김양호의 집무실 안에 모여 앉은 다섯 명의 사래들은 제각기 긴장
된 표정들이었다. 상좌에 앉은 김양호는 잔뜩 찌푸린 얼굴이었클.
   "나에게도 이런 기적이 일어나다니, 기쁘다기보다는 우습군."
   김양호가 최기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의 생환은 나에겐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야. 고맙
01."
   "감사합니다, 그렇게 평가해 주셔서."
   최기대가 머리를 숙였다. 그는 곧장 이곳으로 달려왔기 때문에 아
직 옷도 갈아입지 못했고 썬지도 않아 꾀죄죄한 몰골이었다.
174 밤의 대통령 제걀L _If
    "그쪽 내부의 도움이 없었다면 살아 나오지 못했습니다. "
    "자네 덕분에 러시아 마피아의 실체도 파악이 되었어."
    김양호가 머리를 돌려 옆쪽에 앉은 허대수를 바라보았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연락했나?"
    "했숱니다. "
    "저희들끼리 내분이 있는 모양인데 우리로선 잘된 일이야."
    그는 이미 윤경산의 전갈 내용을 읽어 보았다. 그리고 윤경산으로
서도 최기대가 그 전갈을 안 보낼 이유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자 김양호의 앞쪽 자리에 사이토와 같이 앉아 있던 노무라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부산 경찰청에 신고를 한 것은 너무 빠르지 않을까요?조
금 더 지켜볼 수도 있었을텐데."
    익숙한 한국말이다.
    "그것도 윤경산이 말해 준 것이오."
    최기대가 그에게로 몸을 돌렸다.
    "서울에 도착하면 신고하라고 했습니다. 그 사이에 아마 본거지를
옮길 것이라고."
   "신고하는 것은 당연하지. 안하는 것이 이상해, "
    김양호가 머리를 끄덕였다.
   "왜 머리를 쓰는 자로군. 경찰이 쳐들어가지 않는다면 내부에 협
조자가 있다는 것을 믿게 될테니까."
   "그렇습니다. "
   최기대가 큼양호를 바라보았다.
                                     야마구치조의 서울 입성 175
    "주대흥이도 이동천의 부하가 되어 있었습니다. "
    갑자기 방안에 정적이 감돌았고 그것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이윽
고 김양호가 입을 열었다.
    "이동천의 실체가 예상보다 크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 이것도 자
네가 가져온 소득이다. "
    그는 방안의 사내들을 둘러보았다.
    "놈은 아이즈 고데츠를 업고 그리고 러시아 마피아를 안고 있다.
교활한 놈이야."
   "커지기 전에 잘라야만 하는 거요, 김 부회장 "
   사이토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놈은 배장근이를 도와 러시아 마피아 세력을 흡수하려는 것 같
소. 최 사장을 도운 윤 아무개는 밀로체프의 심복인 것 같고."
   김양호가 머리를 』1덕였다.
   "이번에도 조성표의 손을 빌려야겠군. 어떻소, 사이토 씨?"
   "나도 같은 생각이오. 하지만 지난번처럼 경솔하게 움직이면 안될
거요."
    수영만이 바라보이는 바닷가의 3층 건물은 본래 연락선의 사무실
과 창고로 쓰이던 건물이다. 그러나 오래 전에 연락선이 끊기자 건물
의 1층만으로 식당을 열었는데 찻길이 50미터쯤 떨어져 있는 데다가
주위가 갯벌이어서 인가와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가끔씩 들르는 낚
시꾼을 상대로 장사를 하던 주인이 결국은 문을 닫았는데 운 좋게도
창고로 쓰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동천은 그곳을 빌려 서동팔과 김억수를 상대로 하는 밀수 물품
176 밤의 대통령 제』털-lf
 의 집하장으로 쓸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배장근의 식구들이 이
 곳저곳을 바쁘게 움직이며 물품들을 옮기고 있다.
    건물의 외형은 자았지만 붉은 색 벽돌로 쌓아 올린 벽과 두터운
판자 바닥은 아직도 단단했다. 나무 계단은 발을 옳길 때마다 삐걱이
는 소리를 내었지만 아직 부서진 곳은 없다.
   건물의 텅 빈 3충에 의자만을 둥글게 놓고 사래들이 앉아 있었다.
상석에 앉은 것은 이동천이고 그의 좌우에는 백복동과 박철규, 그리
고 앞쪽에 앉은 것은 배장근이다. 아침 10시가조금 지난시간이어
서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이 방안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이곳은 창고와 사무실로 쓰도록 하고 숙소는 시내로 잡아라."
   이동천이 배장근에게 말했다.
   "어차피 모텔에 오래 있을 수도 없었을데니까. 부하들 숙소는 우
리가 나서서 해결해 주겠다. "
   "형님,우리 애들은 조선족출신들이어서 아직 이쪽문화에 서툽
니다. "
   배장근이 그를 바라보려 말했다.
   "주민등록증을 위조해 가지고는 있지만 아직 불안합니다. 그래서
같이 데리고 있는 것이."
   그러자 이동천이 백복동을 바라보았다.
   "백 상무가 소문을 말해 줘야겠군."
   머리를 끄덕인 백복동이 배장근을 바라보았다.
   "러시아의 조선족이 밀입국해서 조직 세계엔 깔려 있다는 것은 이
미 알려진 일이오.조직 세계에 있는 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어
요. "
                                 _ 야마구치조의서울입성 177
   "내가 보니 대강 30명쯤 되T3는데 이제 더 이상 러시아에서 사람
을 받지 마시오. 나머지 인원은 이곳에서 뽑도록 하고."
   "나도 그러려는 중이오."
   배장근이 이동천을 향해 몸을 돌렸다.
   "난 러시아를 배경으로 이곳에서 기반을 굳힐 겁니다. 이미 투자
도 많이 했고 기반도 굳어 가고 있다고 봅니다. E
   "비록 내가 표면에 나서지는 못하지만 대리인들을 운용하고 있고
내 부하들은 강력하게 무장되어 있어서 아무도 함부로 하지 못합니
다. ol제까지 한 명도 경찰에 걸리지도, 다른 놈들에게 당하지 않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
   "이제까지는 잘해 왔지."
   이동천이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문제일 것이다. 이제 막 사업을 벌여 놓았으
니 노출 안될 리가 없다. 한 사람이 잡히면 모조리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
   "잡히면 죽기로 했습니다. "
   "근본적인 대책이 있어야 한단 말이야. 죽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
다. "
   "형님이 저를 도와 주시는 이유를 압니다. "
   그러자 이제까지 딴전을 피우고 있던 박철규까지 머리를 돌려 그
를 바라보았다. 배장근이 말을 이었다.
   "러시아 조직을 흡수하시려는 것 아닙니까?저는 형님에게 도움을
178 밤의 대퉁령 제걀L -lf
받고 있지만 흡수되지는 않을 겁니다. "
   "쑤금 우리의 공동의 적은 조성표이고, 때로는 서울의 동원 그룹
이 될 수도 있지요. 야마구치조가 나나 형님을 좋게 볼 리도 없습니
다. 그러면 우리는 힘을 합쳐 부딪칠 것입니다. "
   "한시적입니다, 형님, 우리의 제휴는. "
   그러자 한동안 방안에서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밖에서 계단
이 삐걱이는 소리가 났고 사내들이 다투는 소리도 들렸다.
   이윽고 이동천이 입을 열었다.
   "하긴 그렇다. 네가 아니더라도 밀로체프는 기어코 한국에 기반을
굳히려고 할테니까."
   "밀로체프의 대리인이 너인 것이 차라리 낫지.그래서 널 도왔지
만. "
   그는 머리를 돌려 박철규를 바라보았다.
   "박 상무, 네 계획을 말해 주어라."
   "예, 형님."
   박철규가 그에게 머리를 숙여 보이고 나서 배장근을 바라보았다.
   "배 사장님, 앞으로 우리 조직원들이 배 사장림의 업체들을 도와
드릴 거요. 지금 상황에서는 조선족들이 얼굴을 내밀고 다닐 수가 없
는 형편이니까."
"배 사장님 말씀대로 그들이 문화에 적응하고 위조 둥록증을 갖고
                                     야마구치조의 서울 입성 119
다니더라도 신분이 굳어지면 우린 손을 몌TR소."
   "그리고 조선족들의 숙소도 우리 조직원들과 같이 쓰도록 합시다.
그것이 안전하고 적웅도 빠르게 될테니까."
   배장근이 머리를 돌려 이동천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마주친 이동
천이 얼굴에 웃음을 피었다.
   "그리고 나서 기반이 굳어지면 헤어지든 싸우든 네 마음대로 해
라. "
   이동천은 해운대의 2층 주택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주택가의 안
쪽에 자리잡은 단독 주택이어서 소음이 적었고 공기도 맑았으므로
도심에 위치한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1, 2층 합쳐 봐야 건평은 50평 정도에다 마당은 20평쯤 되
어서 박철규는 조금 더 큰 옷으로 옳겼으면 하는 눈치였다. 그는 됫
집의 벽이 바라붙어 있어 못마땅하게 여겼고 담장이 낮은 것도,대
문에서 현관까지 다섯 걸음이 안되는 점에 대해서도 불평을 했다.
   경호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고집을 부려 집안에 경호
원 네 명을 배치시켰는데 =1들은 아래충을 사용했다. 집안에서는 주
야 쑈B대로 두 명씩 근무를 하도록 했고 밤에는 대문 앞 길에 별도로
두 명이 차에서 지키고 있었다. 양승일의 피살을 려고 난 박철규여서
이러한 조처는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이동천이 집에 도착했을 때는 밤 10시가 되어 있었다. 배장근의
본거지 이동과부하들의 숙소 문제로 늦게까지 수영만의 창고에 있
다가 돌아온 것이다.
180 밤의 대통령 제걀L _If
   그가 2층의 숙소로 들어서자 계단을 따라 올라온 오무길이 문 앞
에 서서 물었다.
   "사장님, 시키실 일 없으십니까?"
   "없다. 가서 쉬어."
   오무길이 그의 됫모습을 향해 허리를 굽혀 보이고는 계단을 내려
갔다. 그는 이동천의 경호 책임자격이었는데 집 안에서 숙식을 같이
하면서 밖에서도 수행을 하는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샤러를 마치고 가운으로 갈아입은 이동천은 벽에 붙은 선반에서
위스괴병을 들고는 창가의 의자에 앉았다. 이제 자기 전에 한두 잔씩
마시는 것이 버룻이 되어 있는 것이다.

짙은 적막이 덮여 가고 있는 밤이었다. 아직 11시도 되지 않았는
데 주택가는 깊은 밤의 정적에 싸여 있었다. 그는 유리컵에 담긴 붉
은 색 알콜을 한모금 마시고는 어두운 창 밖을 바라보았다.
    양승일의 죽음으로 인생이 바러어졌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
 리고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후회해 본 적도 얼다. 한번 f,『음 먹은 것
 은 꼭 해내었던 지난날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밤의 조직을
 뿌리째 뽑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그는 스스로
 조직 세계에 몸을 던진 것이다. 양승일이 정략적인 접근이었다면 이
 쪽도 그렇다. 그러나 양유경이 양쪽에서 이용당한 피해자라는 생각
 은 들지 않았다.
    이동천은 다시 한모금 위스키를 삼켰다. 그녀는 이용당할 여자가
 아니다. 현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거나
 만들어 나가는 여자역다.
                                         마구치조의 서울 입성 181
    "난 한번 결흔했지만 실괘했습니다. 여자가 일년도 안되어 도망을
 쳤지요."
    사이토가 술잔을 든 채 웃었다.
    "견디지 못했을 거요. 가끔씩 피투성이가 되어 집에 돌아오고, 며
 칠씩 소식도 없이 집을 비웠므니."
    "애는 없었나요?"
    양유경이 묻자 그는 머리를 저었다.
    "다행히."
    벽시계는 밤 10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커튼을 내려 창 밖은 보
이지 쟈았지만 후두둑처리며 유리창에 부딪치는 텟소리가 났다. 사
이토가 소파에서 등을 톄더니 양유경을 바라보았다.
    "너무 늦은 것 아닙니까?"
    "괜찮아요.신경 쓰지 마세요."
    그녀는 반소매의 원피스 차림이었다. 머리칼을 뒤쪽에서 묶어 산
뜻한 느낌을 주었고 화장기가 없는 두 볼이 붉어진 것은 양주를 반병
쯤 마셨기 때문이다.
   사이토는 지난번에 말한 대로 거의 매일 양유경에게 들렀다. =1는
주로 저녁 무져에 찾아왔는데 양유경의 퇴근이 조금 늦으떤 집에서
기다렸다.
   오빠와 어머니가 미국으로 떠났으므로 혼자 경호원들과 함께 살고
있는 양유경이다. 사이토가 주위에 신경을 쓰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집에서 같이 저녁을 먹고 어떤 날은 술을 마셨다. 그리고 양유경이
피곤한 눈치를 보이면 사이토는 옆방에라도 가는 것처럼 슬쪄 떠난
다. 이제 양유경은 사이토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했고 사이토 역시 마
1잃 밤의 대통령 재긱부-ll
찬가지였다.
    "좋아했지요, 그 여자를."
    사이토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도망친 여자 말칩니다. "
    "찾지 않았어요?"
    한모금 입안에 넣었던 로냑을 삼킨 양유경이 묻자 그는 슬쩍 웃었
다.
   "찾을 수야 있었지요, 금방. 하지만
"놓아 주었습니다. "
"좋아했다면서요?"
"그래서 놓아 준 겁니다. "
   "나중에 알고 보니 일년을오빠 집에 있었더군요.그리고는중학
교 교원과 재혼을 했습니다. "
   "지금은 애가 둘이라더군요."
   "일년간 오빠집에 있으면서 사이토 씨를 기다렸군요."
   술잔을 내려놓은 양유경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제 눈가까지 달아올라 있었고 물기가 젖은 입술이 조금 벌려져
있다. 그녀는 더운 듯 원피스 앞쪽의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그러자
가슴의 브래지어가 드러났다.
   "여자를 기다리게 하다니요."
   다시 두 개의 단추를 풀자 아랫배가 보였다. 사이토가 자리에서
                                       마구치조의 서울 입성 183
일어섰다.
   탁자를 비켜 성큼 그녀에게로 다가간 사이토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가 원피스를 벗기는 동안 양유경은 손으로 그의 머리칼을
쓸었다.
   그녀가 브래지어와 팬티 차림이 되자 사이토는 일어나 바지를 벗
어던졌다.
   그는 이제 서두즈고 있었다. 소파 위에 앉혀진 양유경이 스스로
브래지어와 팬티를 벗었을 때 사이토도 알몸이 되었다. 그는 거칠게
양유경을 소파 위에 누이고는 입술을 빨았다. 허덕이는 숨소리와 함
꼐 세차게 입술이 빨리는 소리가 났다.
   "천천히 해요, 사이토 씨."
   겨우 입술을 땐 양유경이 가쁜 숨을 몰아러며 그렇게 말했으나 사
이토는 잠시 한국말을 잊은 모양이었다. 그가 그녀의 다리를 벌리고
거칠게 진입해 오자 양유경은 두 손으로 그의 등을 감차 안았다. 소
파가 뒤로 밀리면서 삐걱이는 소리를 내었다.
   "나오신다. "
   오무길이 서둘러 문 뷔으로 나오면서 말하자 차 주위로 사내들이
둘러섰다. 집 앞에는 두 대의 대형 승용차가 세워져 있었는데 뒤쪽
차의 됫문은 이미 열려져 있다. 아침 6시 반이다.
   아직 이른 아침이어서 길은 텅 비어 있었고 차량의 움직임도 없
다. 습기를 떤 아침 공기는 곧 빗발로 바필 것 같았다.
   이동천은 정장 차림으로 대문을 나와 곧장 차에 올랐다. 집 앞의
길은 일방 통행로여서 내려가는 길밖에 없다.
184 밤의 대통령 제살」 -H
   오무길이 운전자의 옆자리에 타자 차는 곧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
차선의 도로를 백 미터쯤 내려가면 사차선의 큰길이 나오는 곳이었
다. 오무길이 머리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어젯밤 블루 클럽에서 소동이 있었숱니다. "
   이동천이 잠자코 있자 그가 말을 이었다.
   "김학봉 변호사가 기관에 있는 손님하고 왔다가 집기를 부수고 서
마담의 뺨을 쳤습니다. "
   "단골 파트너를 준비하지 않은 데다 손님 접대가 마음에 들지 않
았던 모양입니다. "
   "파트너는 왜 준비하지 않을 거야?"
   "몸이 아프답니다. "
   이동천은 창 밖으로 머리를 돌렸다.
   블루 클럽은 고급 콜걸들을 모아 놓은 곳으로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클럽의 관리는 박철규의 부하인 정동성이 맡고 있었지만 얼
굴 마담은 서향숙으로 화류계에 관록이 있는 여자였다. 블루 클럽은
영도구의 바닷가에 세워진 복층 빌딩으로 겉으로는 평범하게 보이는
건물이었지만 2층에서 4츈까지가 여섯 개의 아파트로 나뉘어져 있었
다. 그리고 각 아파트에는 세 개의 방에 각기 목욕탕과 화장실이 딸
려 있었는데 응접실에서 마시고 나서 방으로 들어가 쉬게끔 만든 것
이다.
   그러나 시설만 호화롭게 만든 것이 아니다. 서향숙이 거느리고 있
는 여자들은 회원의 어떤 기호에도 어울리게끔 훈련되』 있는 데다
가 용모나 수준이 최고급이었다. 따라서 비밀리에 모집했지만 회원
                                      마구치조의 서울 입성 185
  은이미 5백 명이 넘었다. 한사람당의 1회 회비가3백만원이었는데
  도 글럽에서 즐기려면 일주일 전에 예약해야 했고 비회원은 받지도
  않았다.
      차는 천천히 비탈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블루 클럽은 박철규의 구상이었다. 그러나 연중 무휴로 영업하는
  클럽의 하루 순이익이 」천만 원이 되었으므로 이동천은 두어 개를
  더 만들 계획이었다.
     어젯밤에 다녔갔다는 김학봉 변호사는 부장 판사 출신으로 그의
  사법 고시 20년 선배가 되었다. 일젝 법복을 벗고 변호사를 개업하
  여 재산을 모았는데 블루 클럽의 단골 회원 중의 하나였다.
     고객 우선이다. 아프다면서 손님을 받지 알은 그의 파트너부터 처
  벌해야만 할 것이다.
     차가 잠자기 멈추어 섰으므로 이동천은 머리를 들었다. 앞쪽의 경
 호차 문이 양쪽에서 열리더니 경호원들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는데
 서둘고 있다. 순간 오무길이 머리를 돌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그의 두 눈이 크게 치켜 떠졌다.
     "엎드려!"
    오무길이 아우성을 치듯 소리쳤으므로 침이 튀었다. 그러면서 와
 락 옆쪽의 문을 열고 상반신을 밖으로 내밀었다. 차 밖으로 반쯤 빠
 져 나간 그의 한 쓴이 허리춤에 끼워 넣은 권총의 손잡이를 움켜쥐고
 있었다.
    이동천은 그가 소리치는 순간 머리를 돌려 뒤쪽에서 닥쳐온 두 명
 의 사내를 보았다. 그들은 차의 트렁크 부근까지 다가온 참이었다.
 그가 막 몸을 아래쪽으로 미끄러뜨렸을 때 뒤쪽 유리창이 부서지는
186 밤의 대통령 제길근 -ll
소리가 들렸다. 총탄이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운전사와 오무길이 좌우의 문을 열고 막 발을 내디을 때였다.
오무길이 신음 소리를 내며 땅바닥으로 넘어졌고 이어서 운전사도
밖으로 굴러 떨어졌다. 총소리가 울리지 않은 걸 보면 소음기를 긴
총이다.
   그 다음 순간 사내들의 모습이 좌우의 창문으로 선뜻 다가왔다.
그러자 쪼그리고 앉아 있던 이동천이 번쩍 한 손을 들었다. 그는 우
측의 창을 향해 베레타의 방아쇠를 연속으로 당겼다.
   "탕, 탕,탕!"
   요란한 총소리가 차 안을 울리면서 유리창이 부서졌다. 다음 순간
이동천은 좌측의 창문을 향해 '다시 베레타를 겨누었으나 사내는 보
이지 않았다. 그러자 앞쪽에서 경호원 한 명의 모습이 보이더니 와락
창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사장님, 괜찮으십니까?"
   눈을 부릅뜨고 그가 소리치자 머리를 끄덕인 이동천이 상반신을
세웠다. 좌측 사내는 앞 차의 경호원이 해치운 것이다.
   "서둘러라! 어서 저놈들을 차에 실어라!"
   그가 문을 열면서 소리쳤다.
   쓰러져 있는 사래에 문이 걸렸으나 곧 열렸다. 오무길은 한 손을
땅바닥에 짚고 주저앉아 있다가 이동천과 시선이 마주치자 얼굴에
안도의 웃음을 띠었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
   "어서 차에 타라,"
   아직 주위에 사람은 나타나지 쟈았지만 바로 주택가 앞길이다. 총
                                       마구치조의 서울 입성 187
성이 여러 번 울렸으므로 언제 어느 쪽의 대문이 열리면서 사람들이
나타날지 모르는 것이다.
   이동천은 가슴에 총을 맞고 이미 시체가 되어 있는 사래를 들어
됫좌석에 쑤셔 넣었다. 처음으로 사래를 죽였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
었고 다만 이곳을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놈들은 조성표가 보낸 해결사들입니다. 부상당한 한 놈이 자백을
했습니다. "
   방안에 들어선 박철규가 rl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일주일 전부터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모두 네 명이었다는
데 한 놈은 앞쪽에 있다가 도망쳤으니 나머지는 로두 잡은 셈인데."
   그러나 이쪽도 앞쪽 차의 경호원 한 명과 이동천의 운전사가 죽었
다. 오무길은 가슴을 맞았으나 치명상은 아니었다.
   "조성표도 긴장하고 있을 겁니다. 계획이 실패했다는 것을 알고
있을테니까요."
   그러자 방문이 열리더니 백복동이 들어섰다. 셔츠의 단추를 빼먹
고 채운 어수선한 차림이었고 얼굴은 잔뜩 찌푸려 있었다.
   "사장님, 경찰청에 신고가 들어갔습니다. 총격 시간과 장소, 그리
고 차에 시체를 싣고 갔다는 것까지 자세하게 신고되었어요."
   그는 앞쪽 의자에 털색 앉았다.
   "곧 경찰청에서 수사관이 을 겁니다. 그래서 미리 알리바이를 만
들어 두었숱니다. "
   "어떻게 말이오?"
   박철규가 묻자 그는 입맛을 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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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 관록을 이럴 때 써먹는군. 사장님 차에 타고 있었던 사람은
박 형, 당신 부하 강주현이야. 사장님하고 비슷한 체격에다 인상이
야. 골라내느라고 한참 걸렸네."
   숨을 내쉬며 그가 말을 이었다.
   "괴한들의 습격을 밤아서 우리가 둘 죽고 하나가 다쳤다고 하겠
어. 놈들은 도망을 치고. 우선 그렬게 끌고 갈 수뷔에 없어 "
   말을 멈춘 그가 이동천을 바라보았다.
   "사장님은 어젯밤 박 상무하고 같이 계셨던 ·겁니다. 경찰이 오면
박 상무가그렇게 말할 겁니다. "
   그러자 이동천이 머리를 저었다.
   "그러면 안돼. 위증이 금방 탄로;가 나."
   "그들이 우릴 잡으려고 ㅁt음만 먹는다면 그것은 알리바이도 되지
않는다. "
   "박 상무는 내 부하 직원이야. 알리바이의 신빙성도 떨어지고 오
히려 박상무까지 엮어 들어갈 위험이 있어. "
   백복동이 순순히 머리를 』1덕였다. 1는 금방 경찰의 관록을 운운
했지만 이동천이 검찰 출신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난 집에 있었다. 그리고 강주현이도 함께.난 집에 있다가 늦게
나갔어.사건이 일어난 다음에 말이야."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
   "하지만 같이 밤을 지낸 사람이 있어야겠다. "
   "그렇지요."
   "여자가 좋겠다. "
                                       마구치조의 서울 입성 189
이동천이 눈을 들어 벽을 바라봤다.
"여자 하나를 데려다 놓아라,박 상무. 잘 교육을 시켜서."
"알』E습니다. "
박철규가 서둘러 방을 나가자 이동천이 백복동을 바라보았다.
"조성표는 번번이 허탕을 치는군."
"이것이 끝이 아니란 말입니다. "
찌푸린 얼굴로 백복동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것 봐요, 정 부장. 그놈들이 백주에 총질을 하는 것을 주민들이
모두 들었으면 되는 것 아뇨?더구나증인도 있고."
    조성표가 전화기에 대고 언성을 높였다. 테이블 앞에는 천기석이
그를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시체를 싣고 갔다는 거요. 이동천이가 쏘아 죽이는 것도 보았다
고 하지 않습디까?"
 "잠깐만 조 사장님, 너무 그러지 마시오. 그렇게 밀어붙이면 곤란
하단 말이오."
   정동재의 목소리도 곱지 않았다.
   "그증인이라는 사람이 현장에 있었던 이유가 조금 불분명하고,
또‥‥‥‥
   "아니, 뭐-5.?"
   눈을 치켜 뜬 조성표가 입을 벌리고는 천기석을 바라보았다. 이런
식으로 정동재가 나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 증인이 조성표가 보낸
킬러열다는 것은 정동재도 모를 리가 없다. 이동천을 숱격하려다가
킬러와 경호원들만 죽고 죽이는 싸움이 일어났다는 것도 말 안해도
190 밤의 대통령 제길근 -Bl
알 정동재였다.
   "아니, 정 부장. 당신 왜 이래?"
   조성표의 말소리가 낮아졌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았을 때의 말
투인 줄을 아는 천기석인지라 침을 삼켰다.
   "중인 신분만 따지고 있는 이유는 뭐야? 당장에 이동천이를 살인
혐의로 잡을 수가 있는데, 당신."
   "글쎄 살인의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실종 신고라도 들어와 있숨
니까? 아니면 시체가 발견되었단 말이오?"
   이제 정동재가 언성을 높였다.
   "경찰 수사관이 대동 상사를 찾아가 부상지이 증언을 들었어요.
그들은 습격을 받아두 명이 죽고 한 명이 다쳤다고 했습니다. "
   "증인은 이동천이 총을 쏘아 두 명을 죽였다고 하는데 시체 두 구
는 이동천의 부하요. 억지로 생각을 해도 서로 총격전이 일어나죽고
죽였다고 해도 상패방의 시체가 없단 말입니다. "
   "치웠다고 하지 알소?놈들을 추궁하면 나을 거요,정 부장."
   "글쎄, 그쪽은 습격을 받았고 습격한 놈들은 모두 도망쳤다고 하
는데 어떡합니까?증인이 습격자라고 말하고 털어놓는다면 몰라도."
   "그리고 뒤에 타고 있던 자는 이동천이 아니오. 이동천의 부하로
강 아무개라는 놈이었소."
   "이동천이 아니라구?"
   "이동천은 그 시간에 여자하고 같이 집에 있었소. 요즘 사귄 애인
인 모양인데 수사관이 확인을 했습니다. "
                                     야마구치조의 서울 입성 191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난 바빠서."
    그러자 조성표는 전화기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사정을 눈치챈 천
 기석이 딴전을 부리고 있었으므로 방안에는 한동안 차가운 정적이
감돌았다.
    "정동재, 이 새끼‥‥‥‥
    이윽고 조성표가 잇사이로 나직하게 말했다.
    "이 새끼,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구만."
   "정동재가 말씀입니까?"
   천기석이 놀란 듯 묻자조성표가 의자에 둥을 기대었다. 얼굴이
돌덩이처럼 굳어져 있었다.
   "놈이 예전과 달라, 하는 짓이."
   "혹시 이동천과‥‥‥‥
   "약점이 많은 놈이니까 이동천이 찌르고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
   "놈은 이번 사건으로 어떤 보복을 해올지도 모릅니다,사장님."
   "이미 시작되었던 거야. 이 일이 일어나기 전부터."
   조성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후 6시가 되어 있었다.
   2충의 계단을 올라 문을 열자 응접실의 소파에 앉아 있던 여자가
일어섰다. 횐색의 반팔 티셔츠에 진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늘썬한 몸
매였다.
   짧게 자른 머리칼이 귀 밑에서 안쪽으로 굽어졌고 계란형의 얼굴
에서 또켠한 두 눈이 이동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장기가 없는 얼굴
이었지만 도톰한 두 입술은 붉다.
192 밤의 대통령 제식준 -Tl
     그녀는 이동천이 다가가자 머리를 조금 숙였다.
     "저, 윤혜선입니다. "
     맑은 목소리였으나 조금 떨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박철규
 가 준비한 알리바이용 애인이다. 이름은 미리'외우고 있었으나 얼굴
 은 처음 보는 것이다.
    이동천이 자리에 앉자 그녀는 그가 소파 위에 벗어 던진 저고리를
 집어 들었다. 옆방의 옷장에 저고리를 걸어 놓고 돌아온 윤혜선이 그
 의 앞에 섰다.
    "저녁 식사는 하셨어요?"
    그러자 이동천이 풀썩 웃었다. 이제까지 집에서 밥을 먹어 본 적
 이 없다. 아래충의 경호원들은 저회들끼리 윌 해먹는 모양이었지만
 그는 커피나 끓여 마셨을 뿐 식사는 나가서 했다.
    "하고 왔어. 난 집에서 식사를 안하니까 신경쓸 것 없다. "
    그는 주춤거리며 서 있는 그녀에게 앞쪽 자리를 눈으로 가리켰다.
    "거기 앉아."
   그녀는 블루 글럽의 여자였다. 전에 한번 가본 적이 있었지만그
때는 낮이었고 서향숙을 만나 시설을 둘러보았을 뿐이다. 앞자리에
앉은 윤혜선이 눈을 깝박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전 언제까지 이곳에 있게 되나요?"
   "곧 나가게 돼 "
   이동천이 부드럽게 말했다.
   "오늘 경찰한테 잘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나쁜 짓 한 것은 아니니
까 부담 느끼지 않아도 된다. "
   "그런 건 안 느껴요."
                                     야마구치조의 서울 입성 193
    윤혜선이 무릎 위의 두 손을 깍지꼈다.
    "시간이 남아서 청소를 했어요. 그런데 그룻 같은 걸 조금 사왔으
면 해서요."
    "=I룻은 왜?"
    "제가 며칠 있을지는 모르지만 밥을 나가서 먹을 수는 없잖아요?"
    "그럼 내일 나가도 된다. "
    자리에서 일어선 이동천이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그런 걸 시키려고 널 부른 건 아니니까."
   "전 사장님의 애인 아녜요?"
   뒤에서 셔츠를 받으면서 윤혜선이 물었으나 이동천은 대답하지 않
ffl.
   "샤워하시겠어요? 아니면 물 받아 놓을까요?"
   "샤워 . "
   "저 클럽을 그만두려고 했었는데 오늘 불려 나왔어요."
   퍼뜩 머리를 돌린 이동천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양손에 넥
타이와 셔츠를 든 채 시선을 내렸다.
   "돈도 조금 모았으니까 미국에 있는 언니한테 갈 작정이에요."
   클럽의 관리 책임자인 정동성이 내버걸 둘지 어쩔지는두고봐야
할 일이다.
   화장실에 들어간 이동천은 샤워기의 찬물을 틀고는 머리끝부터 물
줄기를 받았다. 그리고는 문득 양유경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녀의 얼
굴과 알몸을 떠올린 것이다.
벽시계는새벽 1시 10분을 가리키고 입었다. 이제 어둠에 익숙해
194 밤의 대통령 재4부 -ll
 져서 야광도 아닌 분침과 시침의 바늘이 침대에서도 볼 수 있었다.
    아래층은 경비가 강화되어서 여섯 명의 사래가 있었고 대문 밖에
도 차 두 대에 나눠 부하들이 타고 있었지만 주위는 기침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박철규는 서울에서 김양호에게서 소외된 부하들을 끌어 모았는데
 대부분이 그의 부하들과 새로운 세력에 의해 밀려난 자들이었다. 김
양호는 자신의 기반을 굳히려고 양승일 회장과 가람다고 생각한 대
부분의 부하들을 한직으로 밀어내거나 쉬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제
는 그런 사람들이 스스로 이동천의 그늘 아래로 모이게 되다 보니 부
산과 서울이 양승일과 김양호의 세력으로 나누어진 모양이 되었다.
그리고 이곳도 그들을 먹여 살릴 만한 사업체들이 깔려 있고 자금력
도 있다.
   조성표가 어떻게든 이쪽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은 당연했다. 부
산의 그의 조직원들이 반감을 가지고 있는 상패는 서울의 김양호인데 반해

이쪽을 노리고 있는 대상은 조성표이다.
   아이즈 고데츠를 의식하여 조성표는 노골적인 공격을 하지 않았지만
 어제 아침 같은 기숱이나 모략, 방해는 앞으로도 쉴새없이 일어날 것이었다.
   방문이 소리없이 열렸으므로 이동천은 숨을 멈추고는 손을 침대 밑으로 뻗었다.

 침대 밑의 권총을 쥐려는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방문이 열리고 모숩을 드러낸 것은 윤혜선이었다. 횐색의 짧은 속옷 차림으로
 그녀는 등뒤의 문을 닫고는 서서 이쪽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야?"
   누운 채로 이동천이 낮게 묻자 그녀는 두어 걸음 발을 몌어 침대앞에 섰다.
     "침대에 올라가도 돼요?"
    "돌아가."
    이동천이 부드럽게 말했다.
    "올라오지 않아도 된다. "
    "제가 싫어요?"
    "흔자 있고 싶어." '
   그러자 윤혜선은 말을 멈추고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동천이 상반신을 일으켰다.

      "돌아가서 자."
      "젠가 잘못했어요?"
      "잘못 생각한 거야."
      "............"
      "네 몸까지 나에게 봉사하라는 것이 아니었어."
      "전 스스로 왔어요."
      "돌아가."
  이동천의 목소리가 조금 굵어지자 윤혜선이 한발작 물러섰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문을 열고 소리없이 빠져 나갔다.
  침대에서 일어선 이동천은 손을 뻗어 스탠드의 스위치에 대었다가 다시 거두어 들였다.

  차라리 어듬이 나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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