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밤의 대통령

6. 암살 미수

오늘의 쉼터 2015. 1. 1. 23:15

6. 암살 미수 

 

 

 

 암살 미수
   포보비치는 서류를 덮고는 배장근을 바라보았다.
   "짧은 시간에 이만한 성과를 을린 것은 대단합니다. 배 사장, 밀로
체프 동지도 기뻐하실 거요."
   "천만에요, 포보비치 씨. 이제 막 벌여 놓았을 뿐이오."
   유창한 러시아어로 배장근이 말했다.
   "그리고 대동 상사의 이 사장이 도와 주지 않았으면 그것도 힘들
뻔했습니다. "
   "이야기를 들으니 그 사람 도움이 컸곯 것 같소."
   "지금도 우리가 의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배장근이 벌여 놓은 사업체의 하나인 나이트클럽 안이었다.
   한낮의 나이트클럽은 을씨년스럽기가 짝이 없게 마련인데 헛빛에
드러난다면 더욱 그렇다. 벽 위쪽에 뚫린 정시긱헝의 창문에서 쏟아
져 들어오는 빛줄기 속에 무수한 먼지들이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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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동천 씨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 주시오, 배 사장."
   포보비치가 부드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는 비행기 편으로 서울을
거쳐 부산에 도착한 것이다. 당당히 러시아 여권을 쓴 공식 방문이어
서 오히려 수배자인 배장근이 미안할 지경이었다.
   "이동천은 전직 검사로 서울의 최대 조직인 동원 그룹의 후계자가
되려다 만 사람이오."
   배장근이 입을 열었다. 이동천에 대해서는 이제 알 만큼 아는 것
이다.
   넓은 나이트클럽 안에는 중앙 부근의 테이블에 앉은 그들 두 사람
외에 입구 쪽의 의자에 서너 명의 사내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그중
에는 포보비치와 함께 온 루벤스키도 보였는데 윤경산은 없다.
   그는 아직도 영도의 아파트에서 행동의 제약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동천이 현재 어떻게 도와 주고 있는 것까지 말하고 나자 포보비치
가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 사람을 만나고 싶소,배 사장. 만날 수 있겠지요?"
   "어렵지 않을 겁니다. "
   머리를 」1덕인 포보비치가 주위를 둘러보는 시능을 했다.
   "난 이번에 러시아 정부의 외무 차관인 안드로포프 동지와 같이
왔소. "
   "물론 비공식 방문이지만 안드로포프는 지금쯤 한국 외무 장관을
만나고 있을 것이오."
"그리고 청와대의 고위급 인사도 만날 것이고."
198 밤의 대통령 제살L -H
   "무슨 일입니까?"
   긴장한 얼굴로 배장근이 묻자 그가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러시안인의 사업을 도와 달라는 내용이지. 말하자면 우리 사업을
말이오."
    "아마 곧 이곳에 있는 동지들의 신분 보장과 안전, 그리고 사업체
에 대한 단속이나 언론 보도 둥에서 위에서 압럭이 내려오게 될 거
요. 한국 정부는 안드로포프의 요청을 거부하지 못할테니까."
    배장근이 잠자코 머리를 끄덕이자 그가 말을 이었다.
   "얼마 전에 밀로체프 동지와 나는 일본 자민당의 이노우에 간사장
을 만났소. 그 사람한테도 부탁을 했지, 야마구치조가 우릴 건드리면
안된다고. 아마 그렬게 될 거요. 이노우에와 야마구치조의 가토 노부
야스는 밀접한 사이니까."
   "자민당 간사장과 가토 노부야스가."
   "이노우쉐한테서 약속을 받았소. 그자도 우리에게 부탁할 일이 있
었으니 서로 주고받는 것이지."
   "그런데 포보비치 씨."
   배장근이 1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윤경산을 어떻게 처리해 주실 겁니까?"
   "그자가도움이 될 일이 없겠소?"
  "없습니다. 방해만 됩니다. "
  포보비치가 잠자코 머리를 끄덕였다.
"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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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천의 말소리는 낮았으나 섬뜩하게 들렸다.
   "사내 자식이 책임감도 없고 끈기도 없다. 더욱이 살아가는 목적
도 잊어버린 놈이야."
   그의 앞에 앉은주대홍음 눈을 치켜 뜨고 있었지만 입을 열지 않
았다. 이동천이 말을 이었다.
   "배장근이 널 의지하고 있었는데 최기대가 도망친 것만으로 일이
끝나서 다행이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그러자 주대흥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박철규가 헛기침을 했다.
   "형님,·약속 시간이 되었습니다. "
   "잠자코 있어."
   이동천이 다시 주대홍을 바라보았다.
   "서울에서 뭐했어?"
   그러나주대흥은 입술을 부풀린 채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해랴."
"대답해."
그러자 주대흥이 입을 열었다.
"돌아다녔소."
"무엇하러?"
"그냥 술 먹었소."
"일주일 동안 술만 먹었단 말이냐?"
"더 술 먹지 왜 돌아왔어?"
"형님 만나러 왔소."
200 밤의 대통령 제살」 -ll
   "나를 왜?"
   박철규는 이동천의 말이 칼을 내려치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러자
다시 조바심이 났다.
   "형님, 말씀은 나중에."
   그 순간 주대흥이 입을 열었다.
   "떠날라고, 인사를 할라고."
   "어딜 떠나?"
   "농사를 짓든지 배를 타든지."
   이동천이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더니 한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방안에는 세 사람의 숨소리만 들렸다. 저녁 6시가 되어 가고 있었
다. 남루한 차림으로 얼굴의 수염을 깎지도 않고 주대흥은 일주일 만
에 나타난 것이다.
   눈을 끔벅이며 바라보는 주대홍에게 이동천이 말했다.
   "떠날 수 없다. "
   "어쪘든 넌 내 동생이고 난 네 형님이다. 넌 떠날 수도 없고 내 지
시를 어긴 대가를 받아야 된다. "
   "너 같은 놈을 내가 잘 알아.문제가 있으면 부딪치는 것이 아니라
도망치는 놈들이지. 비겁한 놈들이야.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 생각은
하지 않고 자포자기해 버리는 놈들."
   주대홍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동천의 말이 끝날 때
쯤이 되어서는 얼굴이 짙은 대춧빛이 되었다. 크게 치켜 떠진 두 눈
이 번쩍이는 빛을 발했고 악문 잇새에서 이가 갈리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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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윽고 그가 온몸을 부풀리며 목을 울리는 소리를 내었다. 무릎
    위에 놓인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고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배어 나
    왔다. 그러자 긴장한 박철규가 몸을 굳혔다.
        "정신이 있다면 내 말을 똑똑히 들어라."
        이동천이 그를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네 의기를 펴보일 수 있는 기회,능력
    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형제를 갖게 될 수 있는 기회가 바
    로 네 눈앞에 있다는 것을 너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충
    동에 의해서 버리면 안된다는 말이다. "
       벽시계를 올려다본 이동천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근신하고 있어. 곧 너에게 최기대를 놓친 대가를 치르게 할테니
    까. "
    해운대의 일식집 '은성'의 방안이다.
    이동천과 기무라, 박철규가 회접시를 앞에 놓고 앉아 있었다. 기무
라가 손에 든 정종잔을 내려놓고 이동천을 바라보았다.
    "조성표는 지금 2백억 엔을 상환할 능력이 없으니 일년만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다시 상의하자고."
   "다시 상의하자고 했단 말이오?"
   "예, 갚는다는 소리도 아닙니다. "
   기무라가 씁쓸하게 웃었다.
   "우리도 이번에 업체들 정리를 하면서 어느 정도 손해를 예상했지
만 조성표는 이제 해볼테면 해보라는 식입니다. "
    202 밤의 대통령 제식즌 -ll
    아이즈 고데츠에게 투자한 금액 중 조성표에게 남아 있는 것은 이
제 2백억 엔 가량이 되었다. 나머지는 정리가 되었다. 소유는 이쪽으
로 되어 있었지만 그들이 관리를 맡고 있던 업체들을 이동천 측에게
인계했고 그리고 합작한 업체들은 지분을 따져 아예 업체 몇 개의 명
의를 이쪽 사람들 앞으로 이전해 주는 것으로 끝을 낸 것이다.
    "조성표가 갖고 있는 빌딩 몇 개면 계산이 될텐데."
    박철규가 말하면서 힐끗 이동천을 바라보았다.
    "놈의 재산은 5천억을 훨씬 넘습니다, 형님."
   그러자 기무라가 입을 열었다.
   "조성표는 이제 야마구치조에 끕근해 있습니다. "
   이동천이 머리를 끄덕이자 그가 말을 이었다.
   "야마구치는 본격적인 한국 공략을 시작했습니다. 가토 노부야스
는 일본에서 지시를 하는 입장이 되었고 사이토 구시다란 자가 한국
본부장, 그리고 노무라란 자는 부산 지부장이 되었습니다. "
   "개자식들 "
   불쑥 말을 뱉은 것은 박철규였다. 그는 이동천을 바라보았다.
   "양 회장님이 살아 계실 적에 가토가 서울에 지부를 내겠다고 했
었습니다. 그러자 회장님은 동업하는 관계인데 지부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하셨지요. 그래서 가토는 서울에 지부도 만들지 못했던 겁
니다. "
   양승일이 죽고 난 지금은 김양호 시대다. 그들은 한동안 잠자코
앉아 있었다.
   기무라가 헛기침을 했다.
   "지끔 서울께 러시아의 외무 차관 안드로포프가 와 있습니다.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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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에 방문한 것인데 어제는 청와대에 들윽갔다 나왔습니다. "
   "마피아는 러시아 정부의 관리들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습니
다. "
   "배장근한테 밀로체프의 보좌관이 와 있어, 그럼 같이 왔3a군."
   "그령습니다. "
    기무라가 말을 이었다.
   "제가 서울에서 들은 바로는 야마구치조와 러시아 마피아와의 유
대설도 있습니다. "
   "그럴 라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오."
   박철규가 입을 열었다.
   "배장근이는 지금 우리에게 의존하고 있어요. 밀로체프도 그것을
알고 있을 거요."
   "양쪽에 다리를 걸치고 있을 수도 있지요. 필요한 때에 다리를 뻬
I:.
   그러자 이동천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 마피아가 야쿠자들과 한국 조직 세
계와의 공백을 뚫고 급격히 성장할 가능성이 있어."
   "그렬숨니다. "
   기무라가 말을 받는다.
   "권력층의 배경에도 우리가 밀립니다. 야마구치는 이노우에 간사
장을 내세우거나 한일 의원 연맹에 가입한 의원들을 내세워 로비를
하는데 우리 아이즈 고데츠는 뒤를 받쳐 주는 세력이 약합니다. 조센
징이기 때문이죠."
204 밤의 대통령 제살1-ll
    그리고 of쪽 이동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김양호가 이용덕 총
장, 검찰총장에 안기부 차장을 이용하는 반면 이쪽은 아무것도 없다.
   다시 한동안 침묵이 흐르고 나서 기무라가 정종잔을 들었다.
   "하지만 우리도 강점이 있긴 하지요. 사장님의 의기와 야망, 그리
고 여러분의 충성심, 거기에다 우리의 정보력이오. 야마구치조원의
20퍼센트는 조센징이오. 그들은 내 정보원이 되어 준단 말입니다. "
   돌아오는 차 안이다. 한동안 창 밖을 바라보던 박철규가 입을 열
었다.
   "형님, 대홍이한테 너무 심하게 하신 것 아닙니까?"
   "심한 것 려다. "
   이동천이 잘라 말했다.
   "최기대를 도망치게 한 책임은 져야 한다. "
   "책임을 회피할 성격이 아닙니다, 대홍이는."
   박철규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심한 말씀만 골라서 하셨습니다. "
   "서울에서 무슨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술만 퍼
먹고. "
"아무리 물어도 대답을 해야지요, 그 곰 같은 녀석이."
"여자에게 배신감을 느긴 모양이야."
이동천의 말에 박철규가 눈을 크게 떴다.
"여자라니요?주대흥이가 여자 문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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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또 배신을 당하다니요?"
    "백 상무를 시켜 놈이 행방불명된 동안 샅샅이 찾아보게 했다. "
    "전에 저회들도 샅샅이 뒤졌지만 대흥이는 연고 있는 사람이 없습
니다. "
   "백 상무의 정보원이 찾아래었어. 아버지처럼 따르던 주방장의 가
족이다. "
"대흥이는 그 딸을 찾아간 거야."
    "딸은 사래하고 동거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대흥이가 그 사내의
팔과 다리를 한쪽씩 부러뜨렸다. "
   "어이구."
   "알아보니까 여자 둥쳐먹는 놈이었어."
   "왜 많은 여자가 그놈한테 당했는데 주방장 딸도 2천만 원을 빌려
주었다는군."
   그러자 박철규가 입맛을 다셨다. 사연이 짐작이 간 것이다. 이동천
이 말을 이었다.
   "느슨해져 있는 놈은 정신이 번쩍 들도록 해야 한다. 악에 받쳐서
이를 가는 편이 훨씬 사래답고 희망이 있다, 늘어져 있는 놈보다. "
   "아마 그 돈은 너희들 동원 그룹에서 강탈한 돈 같던데. 딸이 제
애인한테 바친 2천만 원 말이야."
   "도대체 어떤 년인데 그렇게까지."
206 밤의 대통령 제4부 -lf
   "주방장은 죽었고 그 부인에게 준 모양이야. 생활에 보태 쓰라고,
t억을."
"멋진 놈이다. 여자와 운인 안 맞아서 그렇지."
   2충의 계단을 오른 이동천이 문을 열자윤혜선이 다가왔다. 시선
이 T마주치자 그녀는 웃음을 띠었으나 입을 열지는 않는다. 저고리와
넥타이를 받아 든 그녀가 방으로 들어가자 이동천은 소파에 앉았다.
    윤혜선이 집에 머물고 있는 지 사홀이 되었다. 그녀는 다음날 아
침에 떠나지 않았고 그 다음날도 그리고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그녀
는 그가 집에 돌아오면 옷을 걸고 목욕물을 받아 두었으며 응접실에
앉아 있는 그의 앞에 소리없이 커피잔을 내려놓고 물러갔다가 다음
날 아침에 그가 일어나면 출근 준비를 해주었다.
    이동천은 머리를 들어 집안을 둘러보았다. 이제까지 청소는 아래
충의 경호원 몫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집안 분위기는 놀랄 만큼 달라
져 있었다. 지금까지 가구가 이렇게 윤기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창에는 밝은 색의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는데 어제까지는 맨 유리창
만 나 있었다. 소파 앞의 탁자에 덮인 횐 탁자보는 어젯밤에 발견한
것이다.
   옷을 걸어 두고 윤혜선이 다가왔다. 밝은 색의 헐렁한 원피스 차
림이었지만 허리를 조여 묶어서 시원하게 보였다. 드러난 팔과 다리
의 맨살에 윤기가 났다.
   "식사는 하셨어요?"
   인사로 묻는 것인지를 알았지만 낮은 목소리에는 진실이 담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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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다. 안했으면 해줄 거냐고 묻고 싶은 충동이 와락 일어났으므로
이동천은 그녀를 쏘아보았다.
   "했어 ."
   "썬으셔야죠."
   그러자 이동천이 턱으로 앞자리를 가리켰다.
   "거기 앉아."
   이 시간쯤되면 아래층에서 경호 책임자인 오무길이 올라와시키
실 일 없느냐고 의례적으로 묻고는 내려갔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병
원에 누워 있었고 새로 온 경호원들은 윤혜선의 존재를 의식해서인
지 아예 2층 출입은 않는다.
   윤혜선이 긴장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틀 전 밤의
사건 이후로 이런 일은 처음인 것이다. 그가 입을 열었다.
   "긴말 하지 않TE다. 나한테 원하는 걸 말해라."
   윤혜선의 눈동자가 가볍게 흔들리면서 서너 번 깜박였다.
   "클럽에 나가지 않겠어요."
   "박 상무님은 저에게 이곳에서 당분간 모시고 있으면 그렇게 해준
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지금 나가면."
   "제 단골 손님이 .있는데 김 변호사라고. 그분이 저를 찾고 있거든
요. 발이 넓은 분이세요."
   "약속을 어긴 거야, 너는."
   이동천이 그녀를 쏘아보았다
   "서 마담하고 1년 계약을 해놓고는 6개월밖에 나가지 않았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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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 계약 위반이다. 너를 단골로 하는 회원이 일곱 명이나 있어. 김 변
호사는 그중 가장 열렬한 회원이겠고."
   "너는 그 동안 그들로부터 자동차, 오피스텔, 그리고 몇천만 원에
이르는 돈을 모았다. 그리고 나서 갑자기 그만두겠다니. 여러 사람을
배신한 나뱉 년이야."
   "배신하지 않았어요."
   얼굴이 하얗게 굳어진 윤혜선이 그를 쏘아보았다.
   "모두 주고받은 거예요. 난 봉사의 대가를 받았어요. 그들은 만족
했고,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마구 주었어요. 그리고 계약 서류에는
1년으로 되어 있었지만 언니는 싫으면 언제든지 그만두어도 좋다고
   "그만 "
   이동천이 말을 잘랐다.
   "하긴 내가 널 이용하고 나서 못본 척 한다는 것도 도리에 맞지
않는 일이지."
   "이젠 가도 좋아. 클럽에서 널 귀찮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
   "그럼 김 변호사는요?"
   "그건 네가 알아서 처리할 일이야. 오피스텔을 돌려주든지 어쩌든
at . "
   "저를 경멸하고 계셨군요."
   "천만에."
   이동천이 머리를 저었다.
                                                  암살 미수 209
"그럴 만큼 내가 순진하지 않아."
   "자, 한잔 마셔."
    한잔이라고 했지만 벌써 열 번도 더 넘게 한잔을 권하고 있는 박
철규 앞에 앉아 있는 것은 주대흥이다.
   그들은 제각기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여자들의 시중을 받고 있는
데다 테이블 위에 놓여진 풍성한 안주와 최고급 위스키, 그리고 품위
있게 장식된 방안이었으니 술좌석의 분위기로는 그만이었다. 그러나
주대흥의 기분은 별로인 모양이어서 옆에 앉은 긴 머리의 여자를 불
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박철규가 벌개진 얼굴로 술잔을 들었다.
   "이봐, 대홍이.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된
다. "
   "윌 말이여?"
   유리컵에 담긴 위스키를 삼키고 난 주대흥이 눈을 끔벅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박철규와는 지난번 싸우고 나서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
다. 그런데 오늘은 술 한잔 마시자면서 부득부득 이곳으로 끌고 온
것이다. 박철규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세월이 약이란 말이야. 형님한테 깨진 것 마음에 두지 말어."
   "다 널 생각해서 하신 말이었어."
   "사람을 잘못 보았어, 그 양반은."
   주대흥이 다시 유리잔을 들고는 반쯤 남은 술을 한모금에 털어넣
었다.
210 밤의 대통령 제4부 -ll
     "난 서울로 놀러 간 것이 아녀."
     그가 눈을 부라리며 방안을 둘러보았으므로 가뜩이나 주눅이 들어
 있던 여자들이 몸을 굳혔다.
     "급헌 일을 보러 간 거여, 말헐 수는 없지마는."
    "그렇겠지."
    "난 진실되게 살고 싶은 놈이여. 그러고 넘을 배신허거나 비겁허
 게 산 적이 없어."
    "누가 모르나?내가 잘 알지, "
    그러자 주대흥이 박철규를 우두커니 바라보더니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박 형, 알고 있어?"
    "뭘 말이야?"
    다시 눈을 껌벅이며 그를 바라보던 주대홍이 술잔을 쥐었다.
    "아니, 됐어."
    "정 붙일 데가 없으면 가까운 곳에서 찾아봐."
   주대홍이 퍼뜩 머리를 들었다.
   "알고 있었구만, "
   "백 상무가 있지 않아?"
   "그 빌어먹을 영감."
   "부끄러울 것 없다. 너한테 지금 필요한 건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다. 그러면 훨씬 개운해지지."
   "나도 형님이 말해 주어서 알았다. 형님은 그래서 너를 일부러 혹
독하게 다룬 거야."
                                                 암살 미수 211
   "자극을 받으면 정신이 들 거라고 하시더라. 오기가 생기면 기운
이 난다고."
   그러자 머리를 든 주대흥을 바라본 박철규가 숨을 멈추었다. 주대
홍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씨발년, 남자라도 잘 고르지."
   웅언거리듯 그가 말했으나 잘 들렸다.
   "그런디도 울고 내려오더만, 병원에서."
   방안에서는 기침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아마 주대홍은 흔자서
양주를 다섯 병은 마셨을 것이다. 그러나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았고
말소리도 분명했다. 얼굴색은 오히려 밝아진 것 같았다.
   박철규가 헛기침을 했다.
   "요즘 세상에 너 같은 놈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난 네가 좋아졌
어."
   그는 물잔을 얼음통에 쏟아 비우더니 양주를 가득 따랐다.
   "자, 마시자, 이 자식아."
   "어, 씨발, 욕허지 마."
   그러면서 손등으로 눈을 훔친 주대홍이 잔에 술을 채웠다.
   노무라는 보통 체격에다가 얼굴 생김새도 평범해서 특징이 없는
사내라고 볼 수 있었다. 옷차림도 눈에 띄는 색은 피하고 언제나 어
두운 색깔의 양복을 입었으므로 마치 그림자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사래였다.
   그가 길가에 세워 둔 차 안으로 들어가 앉자 운전대를 잡고 있던
212 밤의 대통령 재4력-ll
고노가 그를 바라보았다.
    "보스, 돌아가실 겁니까?"
    "아니, 아직."
    노무라는 의자의 둥받이에 둥을 묻었다. 번화가의 야경은 일본의
번화가와 비슷했고 사람들의 옷차림도 그렬다. 영문과 한문의 간판
이 많은 것도 그에게 친근감을 주고 있었다.
   "이동천이가 왜 기반을 굳혔어."
   혼자말처럼 노무라가 말했다.
   "서울에서 듣던 것과는 달라. 놈은 합법적인 사업을 벌여 놓았
어."
   "검사 출신이라니 법을 잘 알TR지요."
   고노가 가볍게 대답했다. 그는 노무라의 심복으로 검도가 4단이
다. 지난번 마산에서 어이없이 총에 맞아 죽은 구와베가 일을 총으로
처리하는 해결사 노룻을 했던 반면에 노무라는 고노와 짝을 이루어
손과 칼로 적을 없앤 전통적인 방법을 쌨다.
   사이토 구시다가 마쓰야마 지부장으로 승격되었다가 서울 본부장
으로 파격적인 영전을 거듐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 두 사래의 활약에
힘입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노무라와 고노는 다시 한국에서 가장 치
열한 전장인 부산으로 보내졌고 노무라는 부산 지부장을 맡게 되었
다. 이곳의 일이 잘 끝나게 되면 고노 또한 한국의 다른 지역 지부장
이 보장되어 있는 것이다.
   "조성표 조직과 비교하면 아직 규모는 작지만 규율이 서 있고 단
결되어 있어 보인다. 하긴 서울에서 내려온 놈들이 주축을 이루어서
그렇TR지만."
                                                암살 미수 213
      노무라가 네온이 번쩍이는 길 앞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번화한 거
  리에는 행인들이 많았다. 밤 10시였으니 밤거리가 가장 활기를 멀
  시간인 것이다.
     "저기 사파리 나이트만 해도 한 달전보다매상이 50퍼센트나을
  라갔어. 분위기와 출연진을 고급으로 바꾸고 서비스를 철저하게 한
  때문이지. 모두 박철규의 수단이다. "
     "조성표가 배가 아프겠군요."
     "당연하지."
     노무라가 머리를 돌려 길 건너편의 한쪽을 바라보았다.
     "저기 조성표의 허니문 나이트는 규모가 더 크지만 그 동안 매상
 이 30퍼센트나 줄었다. 사파리에게 앗긴 거지."
    밤하늘에 가득 펼쳐져 있는 허니문 나이트의 네온사인이 보였다.
    "저 위쪽에는 배장근의 디스코 클럽이 있다. "
    노무라가 턱을 들어 먼쪽을 가리키며 웃었다.
    "이곳이 한국판 삼국지야. 하지만 얼굴은 한국놈들이지만 배후의
조종자는 일본과 러시아지. 저것들은 로봇일 뿐이다. "
    "보스, 조성표가 두 개의 신흥세력에 밀리는 양상 아닙니까?"
   "하지만 각기 장단점이 있어. 조성표는 덩치가 커서 어느 한 곳이
무너져도 큰 타격은 안돼. 하지만 저것들은 그런 경우엔 치명상을 입
fT ."
   츠는 출발하자는 듯 고노의 어깨를 손으로 쳤다.
   "물론 머리를 몌면 어느 놈이건 모두 허물어지Tf지만 말이다. "
횟집 남강은 지난번에 고덕균과 함께 배장근의 부하 두 명과 전차
214 밤의 대통령 제식』 -ll
섭이 죽은 곳이다. 그때에는 조성표의 해결사 노룻을 한 주대흥이 배
장근과 서로 죽고 죽였지만 지금은 주대흥이 이동천의 동생으로 배
장근과 손을 잡은 상황이 되어 있었다. 사건 후에 남강은 내부를 조
금 고쳤을 뿐 곧 영업을 시작했는데 여전히 손님이 많았다.
   오늘도 한윤호는 비대한 몸을 분주히 움직여 손님을 보내고 다가
오는 손님을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그러던 한윤호는 주춤 몸을 굳혔다. 사래 두 명이 현관 앞에 서 있
었는데 그를 바라보기만 할 뿐 들어서런고 하지 않는 것이다.
   "한 사장,잠간 우리하고 이야기 좀 합시다. "
   사내 한 명이 말했다.
   "안은 시끄러운데 잠간 조웅한 곳으로 가실까요?"
   "누구십니까?"
   주위를 둘러보며 찬율호가 묻자 사내가 그에게로 한걸음 다가와
섰다.
   "우린 배장근 사장을 모시고 있는 사람들이오. 그만하면 우리가
왜 왔는지를 아실텐데."
   "연락을 못하고 와서 미안합니다. 하긴 지금은 지난번처럼 일이
엉망이 될 리는 없겠지만."
   "좋소. 저쪽으로 갑시다. "
   그들은 바다 쪽으로 나가 제방 가에 섰다. 어둠이 덮인 바다 위에
는 불을 밝힌 수십 척의 배가 떠 있었다. 낮에는 산책객치 가끔 있지
만 밤에는 인적이 드문 곳이다.
                                                  암살 미수 215
    두 사내 중 선임자로 보이는 키 큰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난번 전차섭이 들여온 마약이 아직 우리 손에 있다는 것을 잘
 아실 거요. 사장님은 그것을 처분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
    "연락해 봐야 되겠소."
    상대방의 신원이 확실해지자 한윤호가 말했다.
    "저쪽이 어떻게 나올지는 아직 알 수가 없지만 말이오."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처분하고 싶은데. 그건 오래 갖고 있을 물
 건이 아니어서."
    "사흘 후에 연락을 해_5., 나에게."
    "지난번처럼 실수가 없도록 합시다, 서로. 이번에 사고가 생기면
당신도 무사하지 못할테니까."
    "사고는 당신들이 일으켰지 나는 아니야."
    한윤호의 말투도 거칠어졌다.
    "나도 산전수전 다 려은 몸이야. 내 앞기럼은 내가 한단 말이야.
그러니 나에게 쓸데없는 잔소리를 늘어놓을 필요는 없어."
   "마음에 드는군, 당신 말이."
   사내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럼 사흘 후에 연락하겠소."
   어둠 속으로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한윤호는 입맛을 다시고는
손둥으로 이마의 땀을 썬었다.
"한국에서도 보드fl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이 재미있군."
포보비치가 술잔을 들며 말했다.
해운대에 있는르네상스 호텔 특실 안이다. 응접실에 모여 앉은
216 밤의 대통령 제샬1-ll
 사내들을 둘러보던 그의 시선이 배장근에게서 멈추었다.
     "배 사장, 안드로포프 동지는 일이 잘되만다고 했소. 한국 대통령
 이 러시아를 방문할 계획이 있다니 그건 우리에게 더욱 잘된 일이
 오."
    "그렇군요."
    같이 술잔을 들며 배장근이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이젠 사업을 확장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곧 서울에도 진출해야지
 요. "
    머리를 끄덕인 포보비치가 한모금에 보드카를 삼키고는 술잔을 내
 려놓았다.
    "모두 잘 들으시오."
    그러자 웅접실에 모인 사내들이 일재히 움직임을 멈추었다. 특실
의 응접실은 넓었지만 소파와 탁상 의자까지 가져다 놓고 사래들이
앉아 있어서 좁게 보였다. 배장근과 윤경산, 김달수는 말할 것도 없
고 간부급들은 거의 모인 것이다.
    포보비치가 입을 열었다.
   "이재까지 윤경산 동무의 역할에 대해서 조금 오해가 있었던 것
같소. 그래서 나는 밀로체프 동지를 대신해서 그것을 지금 조정합니
다. "
   사내들이 숨을 죽이고 그를 바라보았다.
   "윤경산 동무는 지금부터 배장근 동무의 보좌관이오.지시를 받는
보좌관이란 말이오. 또한 루벤스키와 김달수 동무도 보좌관으로 임
명합니다. 세 명의 보좌관이 배장근 동무의 지시를 받아 일하게 되었
으니 그렇게 알고 계시도록."
                                                 암살 미수 217
     오늘의 모임은 이것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제까지 파벌로 나누어
 져서 금방이라도 살륙전이 날 것 같았던 조직 내의 갈둥은 이제 배장
 근을 정점으로 한 서열이 정해짐으로써 진정이 될 것이었다.
     "rr, 건배합시다. "
    포보비치가 술잔을 들자 모두들 잔을 들었다.
    "배장근 사장을 위하여."
    그러자 사래들이 따라 외쳤다. 응접실은 이제 떠들썩한 소음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술잔을 부딪치고 큰소리를 내며 웃는가 하면 누
 군가를 부른다.
    "배 사장, 잠간만."
    권하는 술잔을 받고 있던 배장근의 마깨를 포보비치가 건드렸다.
 그들은 창가로 다가가 나란히 섰다.
    "배 사장, 이동천과는 어떤 관계요?"
    어둠이 덮인 밤바다를 내려다보면서 포보비치가 물었다.
    "지난번에도 말씀 드렸지 않숩니까? 서로 이용하는 관계라고. 그
밖에 다른 관계는 없습니다 "
    "그자에 대해서 알아보았소. 보스 기질이 있는 놈이더구만."
   "양승일의 사위가 되려다 말았지.5.."
   "지금은 그쪽 조직과 원수가 되었고."
   "그렇습니다. "
   "우리가 야마구치조와 잠정적인 합의를 했다는 걸 알아야 돼요,
배 사장."
"야마구치조는 김앙호 조직과 연합한 상태이구. 무슨 말인지 압니
218 밤의 대통령 제샬1-ll
까?"
   "압니다. "
   "우리가 그들과 적이 되어서 이로울 것이 하나도 없어요. 이동천
과 아이즈 고데츠는 그들의 상대가 못돼요."
   "그렇다고 지금 당장 이동천과 손을 톄라는 것이 아니오. 아직까
지는 도움을 받아야 할 입장이니까, 조직 면에서. 하지만 그것을 기
억해 두시오. 김양호와 야마구치조와는 부딪치지 마시오. 그쪽도 우
리는 건드리지 않을테니까."
   "알겠습니다, 포보비치 씨, "
   "지금 우리 상대는 한 놈이오. 부산의 색은 거물, 조성표요."
   "하지만 조성표도 야마구치조와‥‥‥‥
   "야마구치조는 중려을 지킬 거요."
   포보비치가 창 밖을 바라보며 웃었다.
   "한국은 이제 러시아와 일본의 영토 싸움이 되었어, 어쪘든."
   10시 반이 되어서야 흥인철이 커피숍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400
중반으로 넥타이를 단정하게 맨 양복 차림에 햇볕을 받지 못한 피부
는 빛바랜 백지 색깔이었다. 커피숍 안에는 손님이 두 곳밖에 없었으
므로 홍인철은 금방 그를 발견하고는 다가와 앞자리에 앉았다.
   "미안합니다. 갑자기 위에서 부르는 바람에."
   그는 부산 지검의 30죠: 검사 서기로 서기 경력만 15년이 되는 사
내였다.
   "그래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암살 미수 219
    백복동이 여유 있는 표정으로 물으며 다가온 종업원에게 차 주문
을 했다. 아침에 전화를 했을 때 흥인철이 먼저 만나자고 했던 것이
다. 만나자는 것은 정보가 있다는 뜻이었으니 이제 흥정을 해야만 했
다. 이럴 몌 포커 페이스가 필요한 것이다.
    "애, 문제가 있어요."
   그렇게 말하는 흥인철의 표정은 심각했다.
    "아주 큽터다. "
   "우리하고 관계되는 일이오?"
   "아마 그럴 겁니다. "
   좌우를 둘러본 백복동이 상의의 오른쪽 안주머니oil서 봉투 하나를
꺼내어 탁자 위로 슬쩍 밀어 주었다.
   "백만 원이오."
   왼쪽 안주머니에 들어 있는 10만 원 봉투 정도의 정보를 예상하였
으나 직접 관계되는 일이라니 어쩔 수 없다.
   흥인철이 봉투를 집어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정동재 부장이 오늘 아룅 날짜로 진주 지청으로 발령이 났어요.
이건 엄청난 좌천인데, 그만두라는 것과 같아요."
   "후임은 서울에서 내려온다고 합니다. 이름이 안경호라던가?그런
사람인데."
   "그런데 소문이 이번 인사는 이동천 씨를 치기 위해서라는 겁니
다. 지난번 아침의 습격 사건  정 부장이 이동천 를 봐밌기 때문
애 조성표 씨가 앙심을 품고 로비를 했다는 거요."
220 밤의 대통령 제식준 -토
   백복동이 잠자코 머리를 끄덕이자 그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지검장도 갈린다는 소문이 있어요. 이건 내 동료 서기가
서울 지검의 친구한테서 들었다는데 서울 지검의 김성길 분장인가
그 사람이 올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
   "그 사람이면 내가 잘 알지."
   백복동이 얼굴을 펴고 말했다.
   "우리 보스가 서울 지검에 있을 때 형님 동생하는 사이였거든."
   그러나 김성길은 양승일을 조사하던 백복동을 불러 맡은 일이나
하라고 은근히 위협을 했던 인물이다. 백복동은 온몸이 긴장으로 굳
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다시 말했다.
   "앞으로 잘 풀리TE는데 "
   이동천이 정동재를 쥐고 있던 이유는 자신이 수집해 온 정동재의
약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동재가 갈리고 지검장마저 김성길이 온
다면 막막해진다.
   "그럼 내일 아침에 또 연락 드릴테니 정보나.잔뜩 모아 주시오."
   백복동이 웃음 떤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나도 흥 형처럼 돈 좀 모았으면 좋겠어. 세금 없지,증거 없지, 그
리고 약점 잡힐 일 없지. 이런 장사가 어디 있어?"
   커피숍을 나온 백복동은 길가에 주차되어 있는 자신의 회색 승용
차로 다가갔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손달섭이 머리를 돌려 그를 바라
보았다. 노상주차장에는 빈틈없이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어서 빈자
리가 보이지 않았다.
                                                 암살 미수 221
    차 안에 오른 그가 핸드폰을 꺼내 들며 말했다.
    "회사로 가자."
   아직 오전이었으므로 이동천은 자리에 있을 것이다. 차는 곧장 차
도로 들어가더니 속력을 내었다. 신호가 가자 곧 저쪽에서 전화를 받
았다.
    "여보세요."
    "사장님, 접니다. "
    처음쉐 백복동도 이동천을 형님이라고 불렀으나 이제 그는 이동천
을 사장이라고 불렀다. 박철규 둥이 부르는 형님이라는 말에 거부감
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인데 이동천은 내색하지 랴았다.
    "사장님, 법원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
   그러면서 그는 문득 뒤쪽을 돌아보았다.
   "제가 지금 가서 보고를 드리지요."
   "알았어. 기다리찌 "
   이동천이 가볍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형님, 법원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손달섭이 머리를.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지난번 사건으로 백
복동한테서 흔이 난 데다가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야단났다. 앞으로가 심상치 않아."
   백복동이 흥인철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대충 말해 주자 손달섭이
굳어진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다.
   "최기대가 불었기 때문일까요?"
   "그럴 수도 있지."
222 밤의 대통령 제살』 -ll
    "그렇다면 골치 아파지Tf는데."
    』넌 그럴 필요 없어, 이 자식아."
    백복동이 그의 뒤통수를 흘겨보았다.
    그가 조직원이었다면 이미 박철규나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서 병
신이 되어 쫓겨났을 것이다. 조직 내에서 절도 행위를 하면 배신 행
위 다음으로 중벌을 받게 되어 있는 것이다. 박철규 둥은 백복동을
의식해서 더 이상 그 일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손달섭을 보는 눈이 곱
지 않았다. 그것을 눈치 빠른 손달섭이 모를 리가 없었으므로 좀체로
백복동의 옆을 떠나지 않으려 했다.
    회사에 도착한 백복동이 이동천의 방으로 들어서자 박철규도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백복동이 지검 내의 분위기를 들은 대로 보고하고 나자 박철규가
입을 열었다.
   "안경호는 남부 지원에 있던 부장으로 김양호와 가깝던 인물입니
다. "
   "그렇다면 김성길과 죽이 맞겠구만."
   백복동이 입맛을 다셨다. 힘으로 부딪쳐 온다면 이쪽도 어떻게든
준비할 수가 있다. 그러나 공권력으로 조여 오는 김양호의 저력에 대
해서는 대처할 길이 막막한 것이다. 박철규가 이동천을 바라보았다.
   "애들에게 무기 소지를 금지시키겠습니다. "
   "총기 소지가 발각되면 조직이 위험하게 됩니다. 차ㄹ터 개인이
당하는 것이 나아요."
   이동천이 머리를 」1덕였다.
                                                 암살 미수 223
   "총기를 모아라. 그리고 애들한테 주의를 시키고."
   "예, 형님. 다만‥‥‥‥
   "다만 무엇이야?"
   "애들 사기가 문젭니다. 총기를 회수해 가는 이유를 모두 알테니
까요."
    한윤호는 시멘트 벽에 어깨를 기대더니 들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나는 중개자일 뿐이오. 난 당신들 얼굴이야 어쩔 수 없이 알게 되
었지만 물건을 가져가는 사람을 본 적도 없소. 전화 번호도 그래서
목소리도 출언‥‥본 적이 없단 말이오."
    그는 주머니에 찔러 두었던 신문을 례내더니 그들 앞에 펼쳤다.
    "이것 보시오. 여기 회답이 있습니다. "
    그는 신문의 광고란 한쪽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구인 광고란이었
는데 회신에서 아르바이트 직원을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여기 대산 실업은 그쪽이 이번에 사용하는 암호명이오. 아르바이
트 직원 4명을 모집한다는 것은 4킬로그램 모두를 사Td다는 뜻이고
월수 20만 원 보장은 킬로그램당 2억이란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킬로그램당 2억이라니?우린 3억을 받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
소린"
    한윤호가 머리를 저었다.
    "2억이오, 이 가격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상담은 끝나는 거요. 대
산실업으로 연락을 해도 회답이 안 옵니다. "
224 밤의 대통령 제살L -ll
   "이 상담이 끝나면 전보가 한 장 오지요, 내 지역구 국회의원한테
서.생일이네 뭐네를 축하한다고. 거기에 다음번 암호가 적혀 있어
요."
    "자,2억으로 하실 거요?그만둘 거요?"
    부산 백화점의 지하 주차장 안이었다. 맨 밑쪽의 지하 3충이어서
주차된 차량은 10여 대밖에 되지 않았다. 오른쪽의 비상계단 입구에
서 있는 부하 두 명이 이쪽을 힐끗거리고 있었다.
    배장근이 옆에 서 있는 김달수를 힐끗 바라보고는 머리를 끄덕였
다.
    "좋소, 그 가격으로 합시다. 그러면 교환 장소는 어디요?"
    그러자 한윤호÷가 들고 있던 신문을 뒤집더니 첫번째의 부고란을
짚었다.
    "여기요. 이번에는 대학 교수의 모친이 죽었군. 발인 날짜가 내일
아침 10시 30분이오. 전화 번호도 여기에 있고."
    "1럼 이곳에서?"
    "그렇습니다. "
    "이곳에 우리가 가는 거요?"
    "내가 웨 갑니까? 내 일은 이것으로 끝인데. 내일 아침 10시 30분
에 이곳얘 가서 대산 실업에1,』 보낸 조화 옆에 서 계시오. 그러면 됩
니다. "
   "그러면 그자가 나타난단 말ol오?"
   그러자 한윤호가 머리를 저었다.
   "그f:의 대리인이 나타날 거요,돈을 가지고. 아마 나 같은 중개자
                                                  암살 미수 225
일01지요."
   "나도 말만 들었습니다. 나나 그 중개자는 목숨을 걸고 중개자 노
룻을 하는 거지요. 당신들 물건이 확실하지 않으면 내가 목숨을 잃습
니다. 정보가 새었을 때도."
   "5퍼센트의 중개료는 너무 비싸."
   김달수가 투덜거리듯 말했으나 한윤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좋소."
   배장근이 신문을 구겨 주머니에 넣었다.
   "내일 초상집에 가겠어."
    남포동의 삼호 빌딩 지하 파칭코는 업계에서 장사가 잘되기로 소
문난 옷이었다. 주위에 사무실 빌딩들이 늘어서 있는 데다가 옆쪽으
로 사우나와 음식점 둥 유흥가로 이어지는 중간 부근에 자리잡고 있
어서 유동 인구가 많았기 때문이다.
    파칭코의 영업 부장 최지만의 표현으로는 유동 인구란 돈 있는 사
람들이 움직인다는 뜻이었다. 저녁 1시가되자 최지만은 50대의 파
칭코가 가득 손님을 물고 있는 것을 보고는 빌딩의 로비로 나왔다.
파칭코의 후문은 빌딩의 로비 옆쪽쉐 나 있는 비상 계단 바로 아래였
으므로 대부분의 단골들은 점잖게 빌딩을 통해 파칭코로 내려왔다.
   그가 로비 안쪽에 있는 커피숍으로 들어서자 출입구를 향해 앉아
있던 조 반층이 손을 들었다. 40대의 사내였는데 말끔한 양복 차림
에 머리도 단정한 것을 보면 이발소에서 안마까지 받은 모양이었다.
   "기다리셨습니까?"
226 밤의 대통령 제4부 -ll
   앞자리에 앉으며 최지만이 묻자 그가 빙긋 웃었다.
   "금방 왔f."
   그리고는 번들거리는 시선으로 최지만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증사가 잘되더군."
   "서울보다는 약해요. 배팅을 스무 배는 해야 되는데."
   "장사 그만둘라고 그래?"
   최지만은 파칭코를 인계받은 지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지만 조
반장과는 지금 세 번째 만나는 것이다.
   서울에서도 박철규의 후배로 파칭코 관리를 했던 몸이라 조성표의
조직에서 이곳을 인계받아 영업을 하는 데는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
다. 그러나 문제는 안면이었다. 상납할 곳이 열 군데도 넘었는데 그
중 제일 큰 몫을 쥐고 있는 것이 경찰청이었고 그쪽의 수금원은 조
반장인 것이다.
   차 주문을 하고 난 최지만이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짧게 깎은 머
리에 인상이 다부졌고 배가 나온 체격으로 몸무게가 85킬로그램이
다. 나이 서른으로 조직 생활 10년이었으니 박철규의 중량급 부하였
다.
   "솔직히 서울에 있을 때는 내가 이렇게 놀지 야았는데."
   최지만이 웃음 떤 얼굴로 말했다.
   "양 회장 밑에서 파칭코 세 개를 관리했었지요. 그때가 좋았는데,
씨팔."
   "이봐, 웃기지 말어,"
   조 반장이 조그만 눈을 치켜 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왕년에 끝내주지 않았던 놈 없다. 그러고 왕년 자랑하는 놈치고
                                                암살 미수 221
 제대로 돌아가는 놈 못 보았다. "
    "내 말은 두고 보란 말이오. 이까짓 파칭코 하나만 달랑 업고 있을
 이 최지만이가 아니란 말씀이오."
    "그래 ?"
    "그때는 조 반장님도 날 괄시하지는 못할 거요, 아마."
    "그펀 그때고, 지금 너희들은 바람 앞의 촛불이야. 솔직히 너회들
봐주는 놈이 누가 있어? 조성표는 시장에 국회 의원에, 검찰에다가
중앙 정부 놈들까지 줄줄이 으로 가지고 있는데. 우리 정보과에 너
회들 소문이 어떻게 난지 알기나 해?"
"이제 곧 너회들은 간다는 거야, 윗대가리에서부터.
"홍, 그런 소문이야 언제나."
"지금 내가 널 만나주는 것도 고맙게 생각하란 말이다. 다른 놈들
 같으면 통밥 재어 가지고 안 만났어."
    "어이고 만나 주어서 고맙시다. "
    "이 자식이 그냥."
   그러자 최지만이 바지 주머니에서 두툼한 봉투 하나를
자위에 놓인 신문지 밑에 슬쩍 집어 넣었다.
                                                           꺼내어 탁
    "백만 원이오."
    "이봐, 우리 계장 몫도 줘야지."
    "술마시는데 반장 따로 계장 따로 술값 낸다는 거요?"
   "백만 원 가지고 부족해."
   입맛을 다신 최지만이 다른 주머니에서 같은 부피의 봉투를 꺼내
어 신문지 밑에 넣었다.
228 밤의 패통령 제딘부 -lf
"이번 달 술값은 이것으로 끝냅시다. "
"걱정 말어, 다 너희들 로비 자금이니까."
조 반장이 신문지를 뭉쳐 쥐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욕하려면 내가 나가고 나서 해라.등뒤에다 하지 말고."
   신동석이 파칭코에 들어온 것은 12시 5분이었다. 안쪽의 사무실에
들어선 신동석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야, 너, 술 먹었어?"
   그러자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그래, 먹었다. "
   얼굴이 벌개진 최지만이 풀린 눈으로 신동석을 바라보았다.
   "야 이 새끼야, 술 한잔 먹었다고 일러 바칠래?"
   "이 새끼가 미쳤구만."
   그러고는 신동석이 뒤에 몰려선 사내들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빨랑 확인해라."
   그는 최지만과 동급 보스로 수금 담당이었다. 해병대 중사출신으
로 1미터 7뻔떠미터 정도의 키에 몸무게가 65킬로그램 정도여서
최지만보다 훨씬 작은 체격이었지만 검은 피부에 인상이 매서웠다.
부하들이 가져갈 돈을 확인하기 시작하자 그는 최지만의 앞자리에
앉았다.
   "근무중에 술을 처먹다니, 이 새끼 군기가 빠졌구만."
   "시』1러, 씨발놈아."
   소파에 기대고 앉은 최지만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입맛을 다
신 신동석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암살 미수 229
    부산에 내려온 후로 최지만이 근무 시간중에 술을 마신 것은 처음
이었다. 그리고 그는 술을 즐기는 성격도 아니었다. 수금해 갈 돈은
 1억이 넘었으므로 계산을 끝낸 것은 그로부터 15분쯤 후였다.
    파칭코의 경리에게 영수증을써주고 난신동석이 세 명의 부하와
함께 사무실을 나오는데 자는줄로만 알았던 최지만이 소파에서 일
어섰다.
    "나도 같이 가자."
    "그래, 내가 데려댜 줄게."
    신동석이 선선히 대답했다. 그들은 아직도 열기를 띠고 있는 파칭
고장을 지나 후문으로 나왔다.
    "야, 너 무슨 고민 있어?"
    계단을 오르던 신동석이 입에서 색는 냄새를 풍기고 있는 최지만
에게 물었다.
   그들은 부산으로 내려와서 부쩍 가까워진 사이라고 볼 수 있었다.
최지만은 방위 출신으로 조직 경력이 10년인 반면 신동석은 군 경력
이 7년에 조직 경력은 4년밖에 되지 않는다. 서올에서 박철규의 부
하로 있을 때의 그들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다. 서로 무시
했던 것이다.
   최지만이 머리를 저었으므로 신동석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들
은 계단을 올라 빌딩의 로비로 나왔다. 12시가 넘은 빌딩의 로비는
텅 비어 있었고 반질거리는대리석 바닥에 그들의 발자국 소리만이
울려 나왔다.
   그들이 로비를 반쯤 건너갔을 때열다. 신동석은 현관의 유리문을
밀고 들어오는 사내들을 보았다. 그들은 마치 쏟아지듯 안으로 들어
230 밤의 대통령 제걀L _If
 왔는데 모두 어두운 색 양복 차림이었다. 그리고 들어서자마자 제각
 기 레어 든 것은 칼이다.
    "치고 나가라!"
    로비가 울리도록 먼저 소리친 것은 신동석이다. 그러자 부하들이
 현관을 가로막고 둘러선 사내들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신동석은
몸을 날려 옆쪽의 사래에게 와락 달려들었다. 사래는 손잡이가 있는
짧은 칼을 쥐고 있었는데 무모하게 보일 정도로 덮쳐 오는 신동석을
피하려는 듯 반걸음쯤 뒤로 물러섰다.
    옆쪽의 최지만이 어느 사이에 저고리를 벗어 한 손에 움켜쥐고는
휘두르고 있었다. 그러자 현관 앞에서 낮은 신음 소리가 들렸다. 손
과 발로만 치고 젝던 부하 한 명이 칼에 쩔린 것이다. 사내들은 모두
여섯 명이었고 이쪽은 다섯이었는데 이제 네 명이 된 것이다.
    "야!뒤다!"
    최지만이 악을 쓰듯 소리쳤으므로 신동석은 빙글 몸을 돌리고는
그대로 대리석 바닥 위로 넘어지면서 앞으로 미끄러폈다. 그러자 사
내들이 당황한 듯 좌우로 한 발짝훽 뛰었다. 바닥에 누운 채 미끄러
져 들어오는 신동석을 치려면 허리를 완전히 굽혀야 한다.
   신동석은 오른쪽 다리를 힘껏 옆으로 턴어 사래 한 명의 다필를
찼다. 사래'가 휘청거리면서 앞으로 쓰러지는 순간 그 빈틈 사이로 윙
기듯 일어서면서 그는 주먹으로 사내의 양미간을 쳤다. 해병대에서
배운 육박전 기술이다. 사래가 힘없이 앞으로 엎어졌는데 급소를 맞
았으므로 죽었거나 눈알이 튀어나랐을 것이다.
   그러자 이제 앞에 깔린 사래들이 보였다. 로비의 안쪽 화장실 쪽
에서도 사래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신동석은 발을 휘둘러 닥쳐
                                                 암살 미수 231
 오는 사래의 칼 끝을 견제하면서 바닥에 떨어진 칼을 주뭐 들었다.
 그리고는 가슴이 섬뜩해졌다. 일본도인 것이다.
    "야! 이 새끼들 일본놈들이다!죽더라도 한 놈썩 죽이고 죽자!"
    이제까지는 기합 소리와 숨을리, 구두가 대리석 바닥에 세게 부덫
 치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었다. 신동석의 고함 소리가 신호라도 된
 듯이 싸움은 더욱 격렬해졌다. 다시 신음 소리가 연거푸 들렸으므로
 칼을 휘두르던 신동석이 힐끗 그쪽을 바라보았다. 부하가 두 명째 쓰
 러지고 있었고 일본측도 두 명이다.
    순간 신롱석은 옆에서 휘두른 칼날에 팔을 스치고는 선뜻 몸을 틀
 어 사래의 옆구리를 쑤셨다. 억눌린 신음 소리를 뱉는 사래에게서 칼
을 뽑자마자 빙글 몸을 돌려 사래를 방패로 삼자 칼날이 사내의 배를
스치고 지나갔다.
    "Tle01!"
    신동석이 사래의 팔을 쳐서 칼을 받으면서 소리쳤다. 최지만은 옷
을 휘둘러 찔러온 칼을 막으면서 발 끝으로 사래 한 명의 사타구니를
쳐올리고 있었다.
   "칼 받아라!"
   와락 그에게로 다가간 신동석이 최지만에게 칼을 쥐어 주고는 서
로 등을 마주대고 섰다. 그러자 남은 부하 한 명이 사래 세 명의 칼
에 난자를 당하면서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이재 그들은 두 명이 되었고 상태방은 여섯 명이 되었다. 신동석
이 거칠게 숨을 물아려고 있었다. 그는 이미 서너 군데 상처를 입었
는데 배를 젤린 상처는 깊었다.
   "지만아, 현관으로 뛰자."
232 밤의 대통령 제4부 -H
    역시 헐떡이며 신동석이 둥뒤의 최지만에게 말한다.
    "네가 먼저 뛰어라.뒤는 내가 맡는다. "
    "좇까고 있네."
    숨에서 쇳소리를 내며 최지만이 말했다. 이제 여섯 명의 사래들이
그들을 둥그령게 에워쌌다.
    "씨발놈아, 해병대면 장뻥이냐?방위가 뛰는 것을 봐, 이 새끼야."
    "좋아, 뛴다. 현관으로, 같이. 하나, 둘,셋."
    두 사람은 동시에 현관을 향해 뛰었다. 앞을 가로막고 칼을 휘두
르는 사내를 피하면서 신동석은 옆으로 몸을 틀었다. 그러자 자면스
럽게 그가 최지만의 뒤쪽으로 서게 되었는데, 그때 최지만은 무거운
몸을 가볍게 날려 가로막는 사 한 명의 턱을 차올려 길을 만들고
있었다.
   "뛰어라!"
   그의 뒤를 향해 목청껏 고함을 치고 난 신동석은 서너 발짝 그의
뒤를 쫀아 달리다가 몸을 홱 돌렸다. 최지만이 유리문을 밀치고 밖으
로 나가자 이제 문을 가로막고 선 것은 신동석이다.
   "씨팔놈들, 내가 싹 죽여 주마."
   피범벅이 된 손으로 칼을 고쳐 쥐면서 신동석이 말했다. 그러자
좌우에서 번쩍이는 칼날이 날아왔다.
   그는 몸을 왼쪽으로 틀면서 왼쪽 사내가 찔러 오는 칼날을 보았
다. 허리를 비틀면서 쥐고 있던 칼로 사래의 배를 찌르자 반동에 의
해 그와 몸이 부딪쳤고 사내의 그르렁거리는 신음 소리와 함께 뜨거
운 숨결이 얼굴을 스쳤다.
   그 순간 앞에서 쩔러 온 칼날이 그의 옆구리에 박혔다. 신동석은
                                                 암살 미수 233
몸을 비틀면서 앞에 선 사래의 얼굴을 머리로 박았다. 그러자다시
좌측에서 칼날이 날아와 그의 어깨를 쩔렀다.
    "이 새끼들!"
   로비가 떠나갈 듯한 고함을 지르면서 그가 칼을 사래에게서 내
자 다시 배에 뜨거운 충격이 왔다. 이를 악문 신동석은 칼을 휘둘렀
으나 이제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칼날이 유리창에 부딪쳐 날카로운 소리를 내었고 이어서 몸이 부
딪치면서 그는 대리석 바닥 위로 넘어졌다. 그는 넘어져서도 위쪽으
로 칼을 휘두르다가 이윽고 칼과 함께 몸을 바닥 위로 늘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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