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밤의 대통령

8. 여인의 향기

오늘의 쉼터 2015. 1. 1. 23:18

8. 여인의 향기 

 

 

 

강남대로변에 있는 중국 음식점 중경은 음식맛보다도 시설과분위
기가 뛰어난 곳이었다. 넓은 주차장과 옛것을 그대로 복원한 물레방
아에다, 인공 폭포 밑의 연못에는 수백 마리의 잉어가 꿈틀거리고 있
어서 가족 모임에는 그만이었다.
   6시 반이 되었을 때 중경의 현관 앞에 대형 승용차가 멈추었다. 운
전사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지만 스스로 됫문을 열고 나온 중년 사
내는 곧장 현관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이른 저녁 시간이어서 흘에는 빈자리가 많았지만 테이블 사
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들 때문에 소란스러웠다. 그에게로 종업원이
다가왔다.
   "저, 예약하셨습니까?"
   "천동일 씨."
   "아, 예. 이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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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업원을 따라 옆쪽의 복도를 걸으면서 박현식은 선글라스를 치켜
  올렸다. 이윽고 그는 복도 끝 쪽의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둥근
 데이블에 혼자 앉아 있던 이동천이 일어섰다. 3는 다가오는 박현식
 을 향해 정중히 머리를 숙였다.
     "나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
     "아니, 괜찮소."
    그들은 가볍게 손을 잡고는 자리에 앉았다. 방은 넓었지만 하나밖
 에 없는 창문에는 붉은 색 커튼이 드리워져 있고 바닥에 깔린 것도
 붉은 양탄자여서 답답하게 보였다.
    종업원이 뒤따라 들어와 주문을 받고 돌아가자 박현식이 먼저 입
 을 열었다.
    "당신 부하들이 부산에서 난동을 피웠소. 야마구치조원 두 명.이
 죽고 네 명이 중상이오. 죽은 사람 중에는 노무라라는 간부도 있더
군. "
    "알고 있습니다. "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시하셨』%지, "
    "1렇습니다. "
    "오후에는 조성표 쪽 간부 한 명이 이발소에서 누워 있다가 벼락
을 맞았더군."
   "아마 밤애는 몇 건이 더 생킬 겁니다. "
   "아깐 누가 나라를 망친다고 하더니만 당신이 먼저 망칠 모양이
오."
   "오후의 사건부터 언론이 발표하지 않고 있습니다. 당한조직이
사건을 감추고 또한 경찰이 보고를 하더라도 위에서 누르고 있으니
276 밤의 대퉁령 제실」 -8
까요. "
   "사건이 커지면 조성표, 김양호, 그리고 야마구치조까지 여론의
심판애 오를테니까 말입니다. "
   "흥, 잘 아시는군."
   이동천이 박현식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부장님은 지금 밤의 세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잘 알고 계실
겁니다. "
    "김양호는 가토 노부야스와 짜고 양 회장을 살해했습니다. 증인도
있슘니다. 놈은 야쿠자를 끌어들여 자신의 기반을 닦아 가고 있습니
다. "
   "양 회장 시대에는 만들지 못했던 ort구치조의 서울 본부와 부산
지부가 세워졌고 조성표 같은 자는 이제 야마구치조의 수족이 되었
습니다. "
   "그들이 어떻게 로비를 하는지 아시지요?정치인들 머리에는 내년
의 대선밖에 들은 것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야쿠자나 마피아는
이미 한국 권력의 상층부까지 깊이 파고 들어왔습니다. 어쩌면 청와
대까지."
   "잠간 이동천 씨."
   박현식이 그외 말을 잘랐다. 잔뜩 찌푸린 표정이었다.
   "날더러 어떡하라는 소리요?그리고 당신이 무얼 어떻게 하331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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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
   "한국과 외국의 조직 세계에 나는 모두 발을 걸치고 있지요. 지금
은 정부로부터도 탄Bl단하고 있지만."
   "난 한국의 밤의 세계를 정립시키TR습니다. 그리고 외세를 몰아낼
작정이오. 설령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나 같은 사래가 이끄는 조직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
   "날 도와 줄 사람은 부장님밖에 없습니다. 난 부장님이 군 출신으
로 색지 않온 관료 중의 하나라고 믿고 있습니다. "
   그러자 문이 열리더니 요리를 든 종업원이 들어왔다. 요리를 내려
놓은 종업원이 나가고 문이 닫혔다.
   박현식이 머리를 들고 이동천을 바라보았다.
   "얼마 전에 러시아의 외무 차관 안드로포프가 청와대에 들어가 대
통령과독대를 했소. 참석자는 정무 수석 김재선과셋이었는데 두
시간 반 동안이나 비밀 회담을 했소."
   "당신만큼 나도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이오. 난 대통령이 어떤 결
정을 했는지 알고 싶소.무슨 말인지 알겠소?"
   "알 것 같습니다. "
   "듐겠소, 당분간은."
   박현식이 상체를 세우고는 이동천을 바라보았다.
   "법을 어기는 일이지만 내가 나중에라도 대가를 치르도록 하지.
당신도 그런 각오를 해야 합니다. "
278 밤의 대퉁령 재갈」 -Bl
"각오하고 있습니다. "
요리가 식어 가고 있었지만 그들은 젓가락도 들지 않았다.
   그 시간에 박척규는 초량동좌 번화한 길을 요란하게 달려가는 중
이었다.
   운전대를 잡은 부하는 거칠게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서 속력을 내
었다. 일차선을 메우고 있던 차량들은 그들을 위해 일제히 오른쪽으
로 비켜 주었다. 119구급차에게 길을 양보하지 않는 몰인정한 한국
인은 없다. 신호등이 빨칸색이었지만 닥하간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
면서 사거리를 건너자 차량들이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멈추었다.
   사거리 한복판에 서 있던 교통순경이 반쯤입을벌리고는그들의
됫모습을 바라보았다. 차 안에는 모두 일곱 명의 사내가 타고 있었
다. 그중에서 두 명은 팔과 머리에 횐 붕대를 감은 부상자의 모습이
어서 차량과 어울렸지만 그들은 금방 조성표의 간부급 부하인 신천
지 파칭코 사장 정한태를 치고 가는 길이었다. 정한태와 부하들은 이
쪽 저쪽에서 일어난 습격 소식을 듣고 경계하고 있었지만 앞됫문으
로 일시에 쳐들어간 박철규의 부하들에게 5분도 안되어 처참하게 당
한 것이다.
   창 밖으로 지하도의 입구와도로의 요소요소에 대군모의 경찰병
력이 깔려 있는 것이 보였다.
   "조용한 데서 저녁을 먹자."
   뒤쪽에 앉아 있던 박철규가 소리쳤다.
   "밥 먹고 한탕만 더 뛰자."
   경찰에 잡혀 간 부하들은 모두 스무 명이 넘었다. 나머지는 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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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 뛰었는데 대부분이 서울에서 내려온 처지들이어서 딸린 식구가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러나 부산 변두리와 마산, 진주, 포항으로
  흩어진 부하들을 모으려면 시간깨나 걸릴 것이다.
     박철규는 차에 혼들리면서 문득 미국으로 건너간 부인과 아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러자 저도 모르게 어깨를 들색이며 풀색 웃었다.
 엊그제 모처럼 그녀에게 전화를 했던 것이다. 공기도 맑고 인심도 좋
 은 이곳 부산으로 곧 부를 것이라고 했더니 그녀는 뛸 듯이 좋아했었
 다.
    전화 벨이 울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그에게로 핸드폰이 넘겨졌
 다. 넘겨주는 부하의 얼굴이 긴장되어 있었다.
    "사장님이십니다. "
    "형님, 접니f."
    전화기를 귀에 대자마자 그는 커다랗게 소리쳤다. 이동천이 서울
로 을라간 이유를 알고 있었으므로 일부러 큰소리를 낸 것이다. 나
소식이 들리더라도 목청을 내리지 알을 것이다.
   "그레, 애들 더 이상 피해 없지?"
   이동천이 묻자그는 힐끗 다친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애들 모두 멀정합니다, 형님. 오후부터는 잡혀 들어간 애도 없습
니다. "
   "잘했다. 이젠 철수해라."
   "철수라니.a?"
   차 안의 부하들이 일제히 그를 바라보았다. 이동천이 다시 말했다.
   "잘되었어, 일이. 우선 포항으로 모여, 내 일은 비밀로 하고."
  "알았습니다, 형님 ."
280 밤의 대통령 제4달 -ll
   "난 내일 오전에 내려간다. "
   "기다리겠습니다, 형님."
   잠자기 목이 메어 왔으므로 핸드폰의 스위치를 끈 박철규는 헛기
침을 했다.
   "자, 포항으로 가자. 가서 밤새도록 퍼마시자."
   그가 소리치듯 말하자 운전석의 부하가 다시 사이렌을 켰다. 모두
눈치에는 제각기 일가견이 있는 부하들이다.
   차 안의 분위기가 갑자기 밝아지는 것을 느끼면서 박철규는 차체
에 둥을 기대었다. 어잿밤부터 한잠도 자치 못한 피로가 그제서야 밀
려오고 있었다.
   "아저써."
   문을 반쯤 열고 윤혜선이 부르자 복도의 벽에 기대어 섰던 사래가
몸을 세웠다.
   "와 그라노?"
   "f, 밖에 있는 아저씨한테 부탁할 것이 있어요."
   "뭔데?"
   "생수하고 과일,그리고 라면 좀 사다 주셨으면 해서요."
   그러자 30대의 사태는 눈을 끔벅이며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더니
이윽고 머리를 』1덕였다.
   "좋아, 내가 말해 보지."
   "제가 나가면 모두가 귀찮아 하실 것 같아서요."
   "제기랄."
   윤혜선이 건네준 장보기 목록과 돈을 받아 젼 사내는 계단을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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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다. 복도에 한 명, 아파트의 정문에 세워 둔 차에 두 명, 그리고 수
시로 그들에게로 오고 가는 사내들까지 함하면 아파트 주위에는 대
여섯 명의 형사들이 있었다.
   방으로 돌아온 윤혜선은 소파에 앉아 다시 텔레비전을 바라보았
다 뉴스가 끝나고 연속극이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이동천과 박 아무
개, 주 아무개 등 보스들의 행방은 아직 찾지 못했다고 했고 오전에
죽은 일본인 두 명은 고베에저 부동산업을 하는 사람과 그의 직원이
라고 아나운서가 말해 주었다.
   뉴스 시간 내내 자신의 이름이 나오면 어쩌나 하고 가슴을 졸였지
만 막상 나오지 않고 끝나자 어쩐지 허전하면서도 개운했고 그러자
시장기가 느껴졌던 것이다.
   윤혜선은 방바닥을 디딘 맨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발톱에 매니
큐어를 칠해 봐야Tf다고 생각했다.
   이젠 바라던 대로모든 것이 되었다. 거머리 같고무섭던 김 변호
사가 그렇게 겁먹은 모습을 하는 것도 처음 보았다. 그는 이제 조직
폭력단의 두목인 이동천의 애인을 찾을 생각은 꿈에도 못할 것이다.
   그러자 윤혜선은 어깨를 늘어뜨리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동천
은 어디엔가 숨어 있거나 쫓겨다니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곳에 앉아 있는 자신을 단 한순간도 생각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이동천이 다가가자 문재은이 펄쩍 뛰듯이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어머나, 세상에 ‥‥‥‥
   마리온 클펴은 전처럼 어두웠고 조용했으며 그저 사람들의 윤곽만
보였다.
282 밤의 대통령 제살L -lf
    "어서 이리로."
    문재은이 그의 소매를 잡고 끌고 간 곳은 주방 옆의 밀실이다. 이
 곳은 양승일만 사용했던 방으로 중요한 밀담을 나눌 때나 혼자 있고
싶을 때 들어가는 곳이었는데 물론 이동천은 처음이었다.
    밀실은 흘보다 밝았으므로 서로 마주보고 앉자 문재은은 얼굴에
수줍은 웃음을 띠었다. 전보다 여윈 것같이 보였으나 반짝이는 눈과
선이 분명한 입술은 여전히 요염했다.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서 이렇게 돌아다녀도 되는 거예요?"
    이윽고 문재은이 힐난하듯 물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누가 보면 어쩌려고 이래요? 전화라도 하지 않
구서. 그럼 내가 나갈텐데."
   그녀의 말은 날카로됐으나 따뜻함이 배어 있었다. 시선을 몌지 않
으면서 깜박이는 눈이 그것을 나타내 주었다.
   "갑자기 문 마담이 보고 싶어서."
   "미쳤어, 정말."
   "오늘 밤 나 재워 주지 않을랍니까?"
   "그럴게요."
   말이 끝나자마자 문재은이 대답한다.
   "내가 열쇠를 줄테니까 먼저 들어가 있어요. 집엔 마침 아무도 없
어, 어머니도 시골 가셔서, 전화만 받지 말아요."
   "정말 이 검사님은 놀라운 사람이야. 아니, 이젠 이동천 사장인
가?"
   "지금 어떻게 삽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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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긴요. 맨날 이령지. "
그러던 문재은이 마침내 시선을 떨어뜨렸다.
"분해요, 정말."
"제가 얼마나 이동천 씨를 만나고 싶었다구요."
   "회장님께 의리를 지킨 사람들을 보고 싶었어요."
   "문 마담도 보기와는 다르시군."
   "왜요?그럼 날 그냥 누구의 정부로만 아셨나?"
   "그렬게 생각했다면 내가 여기 오지 않았소."
   문재은이 팔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이동천이 소파에 둥을 기대고
앉아 느긋한 데 반하여 문재은은 엉덩이를 반쪽만 붙이고 앉아 초조
해한다.
   "벌써 1 1시가 되었네."
   "열쇠 줄테니까 어서 가세요. 저 일쩍 들어갈테니까요."
   "일행이 있는데, "
   "괜찮아요."
   이동천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대흥과 부하 두 명은 흠바에 진열된 위스키와 코냑을 서너 병
비우더니 건넌방에서 잠에 곯아떨어져 있었다. 새벽 2시 반이었다.
   연거푸 스트레이트로 양주를 들이켠 문재은은 눈가와 양볼이 연지
를 칠한 듯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일주일쯤 전에 유경이가 를럽에 왔어요."
284 밤의 대통령 제4부-H
   문재은이 입을 열었다.
   "야마구치조의 사이토란 놈하고 같이 왔더군요. 사이토가 누군지
아시죠?"
   "야마구치조의 서울 련부장 아닙니까?"
   "유경이가 1놈의 정부가 되었어요."
   ‥‥‥‥
   "외로웠겠지요. 불안하기도 했을 것이고."
   그녀는 다시 술잔을 돌어 한모금을 삼켰다.
   "다 이해는 해요. 조직을 지키려고 당신을 배척한 것이라든가, 또
김양호의 독주가 불안해서 사이토를 정부로 삼았다는 것도."
   "갠 아버지를 닳았어요. 아니, 그보다 더 냉혹하고 철저한 성격인
것 같아요."
   "만나거든 내가 안부를 전하더라고 말해 줘요. 그리고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문재은이 눈을 깜박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참, 내, 기가 막혀서."
   그녀가 말을 이었다.
   "당신 지금 어떤 신세라고 그런 말을 해요?"
   "어떤 신세는 무슨. 미인 앞에서 술 마시는 근사한 신세지."
   다시 한동안 침묵이 흘렀을 때 정적을 깨고 시계가 3시를 쳤다. 시
선이 마주치자 문재은이 입을 열었다.
   "나하고 자고 싶어요?"
   "그러고 싶어."
                                               여인의 향기 285
"그럼 그렇게 해요."
문재은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기회에 둘이서 그들 부녀와의 미련을 끊자구요."
    문재은의 몸은 화가가 완벽함을 목표로 그린 것처럼 선이 부드러
웠고 아직도 튕겨 나갈 듯한 탄력이 있었다.
    벌거벗은 나신을 감추려 들지도 않고 침대에 누운 그녀는 이동천
이 다가가자 두 팔로 그의 목을 안았다. 달콤했고 감 냄새가 맡아지
는 짙은 입맞춤이 계속되자 그녀는 목에서 가르랑거리는 울림 소리
를 내었다.
    "날 죽여 질요."
   단단한 그의 물건을 움켜쥐면서 그녀가 속삭였다. 이동천은 그의
얼굴과 목 그리고 손바닥 안에 감출 수 있을 만한 아담한 유방에 혀
를 가져다 대었다.
   그녀가 꿈틀거리며 몸을 부딪쳤고 가빠진 숨소리와 함께 이제 목
안에서는 짙은 신음 소리가 물려나왔다. 이동천의 혀가 그녀의 아랫
배와 짙은 숲속으로 들어서자 그녀는 막힘 없는 목청으로 높은 신음
소리를 뱉어내었다. 사지가 램처럼 엉켜졌다가 침대 위에서 공처럼
튀어오른다. 이제 이동천도 열에 들뜬 듯 그녀에게 몰두하기 시작했
다. 그녀의 온몸을 빠짐없이 껏고 닦으면서 그들은 엉킨 채로 침대
밑으로 떨어졌고 그곳에서 다시 시작했다.
   문재은이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간간이 허리를 번쩍 치켜 들면서
신음 소리를 힘껏 내뱉으며 흐느껴 울던 문재은이 이윽고 온몸을 뻣
뻣이 굳히더니 사지를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길고 긴 비명을 쏟아
286 밤의 대통령 제삭」 -H
냈다.
    이동천은 그녀의 깊은 곳에서 머리를 들고는 늘어져 있는그녀의
몸 위에 올랐다. 문재은이 실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해줘요. 죽여 줘요."
    이동천은 그녀의 뜨겁고 넘쳐 흐르는 샘으로 들어섰다. 문재은이
그의 몸을 감아돌면서 다시 탄성과 같은 신음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아까보다도 더욱 격렬하고 힘찬 반응이었다.
    이윽고 그들은 함께 도달하고 나서 한동안 한덩어리가 된 채 움직
이지 않았다.
    "좋았어요."
    긴 한숨을 뱉으면서 문재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언가 몸에 남은 찌꺼기가 몽땅 빠져 나간 것처럼 개운한 느낌이
든 이동천이 입을 열려다가 멈추고는 그녀의 뺨에 입술을 가져다 대
었다.
   "어젯밤에는 별일이 없었습니다. 경찰이 깔려 있었고 그리고 우리
들도. "
   천기석이 말을 멈추고는 헛기침을 했다. 습격을 받아쳐서 별일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놈들이 움직이지 않아서 별일이 없었다는 말
이었으므로 무안해진 것이다.
   "어쩠든 애들을 풀어 놓았으니 곧 놈들의 꼬리가 잡힐 겁니다. "
   아침 10시였다. 조성표의 사무실에 모여 앉은 천기석과 허대수,
그리고 서울에서 내려온 사이토의 표정은 어두웠다. 각본대로라면
이동천을 위시한 박철규 둥이 모두 체포되고 조무래기 부하들은 산
                                               여인의 향기 281
 산이 흩어져서 부산와 조직 세계에는 평화가 찾아와야 하는 것이다.
    사이토가 머리를 들었다.
    "어쪘든 그자들의 발악이 오래 가지는 못할 거요. 하지만 이대로
 기습을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소."
    그는 심복이짜 친구였던 노무라를 잃은 참이라 눈에 펏발이 서 있
 었다. 어젯밤에는 눈도 붙이지 못하고 됫수습을 했던 것이다.
    "조 사장님 "
    사이토가 조성표에게로 며리를 돌렸다.
    "언론에 우리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도록 신경을 써주셔야겠습니
 다. 어제 날짜 석간 일간지 하나는 야마구치조원인 것 같다고 깼습니
다. "
    "앞으로는 안 나을 거요. 검찰이 1쪽 주간을 불러 단단히 경을 친
모양이오."
    "그건 그렇고."
   사이토가 방안의 사내들을 둘러보았다.
   "이동천의 업체들에 대한 조정이 친어야 할 것 같은데. 아니, 아이
즈 고데츠의 사업체라고 해야 맞는 표현이 되TR군."
   사이토는 방안의 분위기를 어느덧 장악하고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처음부터 모두 한두 마디씩 말을 꺼내고는 사이토를
바라보는 분위기였다.
   사이토가조성표를 향해 말했다.
   "곧 놈들의 사업체에 특별 세무 감사가 실시되고 세금이 떨어질
것이라들 예상하고 있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럴 거요.위에서 세무서로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아마 2, 3일
288 밤의 대통령 제길』 -ll
안에, 그리고 업체들 대부분이 영업 정지가 될 거요."
   "아이즈 고데츠는 업체들을 내놓겠지요?"
   "미치지 않은 이상 몇 푼이라도 건지려고 매입자를 찾TE지요. 부
동산에다 업체들을 내놓을 거요."
   "그렇73군."
   "하지만 팔릴 리가 없지. 사려고 나서는 놈이 있다면 그놈도 미친
놈이오. 그렇게 되면 자연히 똥값에 우리 몫이 됩니다. "
   "아이즈 고데츠의 업체들을 우리가 인수하게 해주시오."
   사이토의 말에 조성표가 입을 다물고는 침묵을 지켰다. 허대수와
천기석도 긴장한 얼굴이 되어 그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우리가 자금을 조 사장께 드리지요. 우리 대신 업체들을 인수해
달란 말입니다. "
   사이토가 부드첩게 말을 이었다.
   "물론 명의는 우리 몫으로 해야 하고 관리도 우리가 합니다. 조 사
장께선 우리 대신 인수자로 나서 주시면 되는 겁니다. "
   "그 업체들은 모두 내가 인수에서부터 시설, 관리, 영업에 이르기
까지 직접 만들었던 것들이오, 사이토 씨."
   조성표가 굳어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물론 아이즈 고데츠의 자금을 썼지만 말이오. 그러다가 이동천에
게 넘겨 주었었소."
   "그 업체들에 대해서 애착이 많으시군요."
   "내 회사라고 생각하고 있었소."
   "우리에게 넘기시고 서울로 진출하시면 됩니다. "
                                               여인의 향기 289
   "김양호 씨하고도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조 사장님 서울 진출에
대해서."
   조성표가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으므로 사이토는 말을 이었다.
   "신용수 씨의 업체들을 보면 이쪽은 아무것도 아니오. 조 사장님
은 서울에서 기반을 넓히실 기회가 이제 얼마든지 있습니다. "
    그 시간에 배장근은 피자 가게에서 이명오와 마주앉아 있었다. 문
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종업원들이 그룻을 껏고 있을 뿐 테
이블에 앉아 있는 것은 그들 두 사람뿐이다.
    이명.04가 입을 열었다.
   "핸드폰을 해봐도 꺼놓았는지 전화가 안됩니다 동호가 갈 만한
곳은 어젯밤에 다 돌아다녀 보았지요."
    변동호는 박철규의 부하로 이명오와 친한 사이였다. 그도 이번에
검찰의 검거자 명단에 끼였지만 재빠르게 몸을 피한 것이다.
   "제 생각입니다만 아무래도 부산을 떠난 것 같습니다. "
   이명오가 말을 이었다.
   "우리에게 연락을 할 리가 없지요. 그쪽도 우리와 야마구치조가
손을 잡았다는 것을 알테니까요."
   "서울에서 야마구치조의 본부장이 내려왔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어젯밤 시내에 야쿠자가 몇백 명이 깔렸답니다. "
   입맛을 다신 배장근이 시선을 들었다.
   "계속 찾아봐. 나는 동천 형님한테 신세를 졌다. "
   "그건 알고 있습니다, 형님."
290 밤의 대통령 제수준 -ll
   "아직 우리 조직이 그 형님하고 전쟁을 하는 것도 아니야.난내
개인적으로라도 신세를 갚겠다. "
   "예 . 이해합니다, 형님."
   이명오는 윤경산이 패를 갈랐을 때 제일 먼저 배장근의 편을 든
사내였다. 작달막한 키에 어깨는 넓고 상체가 길어서 별명이 원숭이
였는데 어제 오후부터 배장근의 지시로 이동천의 행방을 찾고 있었
던 것이다.
   "더 찾아봐라. 아직 이틀밖에 되지 않았어."
   "예, 그런데 ."
   이명오가 가늘게 눈을 좁히고는 배장근을 바라보았다.
   "어젯밤에 밀가루가 5톤이 들어왔습니다. "
   "저도 오늘 아침에야 알았는데 김달수와 윤경산이 애들을 데리고
울산 앞바다에 가서 밀가루를 받아 왔습니다. "
   밀가루는 마약이다. 마약 5톤이면 천문학적인 물량이었다. 아마
이것은 근래 들어 가장 큰 마약 반입이 될 것이다.
   "물건은 울산의 창고에 두었습니다. 형님은 모르고 계신 것 같아
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
   "173오가 혀로. 입끓 축였닷
   H포보비치 동지는 아마 끄S 때문에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배장근은 그의 시선을 피하듯이 머리를 돌렸다. 주방 쪽에서 그룻
이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종업원들의 웃음 소리가 들려 왔다.
                                               여인의 향기 291
    배장근이 르네상스 호텔의 특실에 들어선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
쯤 후였다. 셔츠에 넥타이를 맨 단정한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있던
포보비치가 그를 향해 웃어 보였다.
    "어서 오시오,배 사장.그렇지 않아도 배 사장을 만나려고 했소."
    앞쪽 의자에 앉으며 배장근이 따라 웃었다.
    "그런데 어디 가시려는 참입니까? 외출 준비를 하고 계신 것 같은
fl. "
   "아니, 지금 막 시내에서 돌아온 거요. 이제까지 시내 구경을 해보
지도 못해서, "
   포보비치는 88라이트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시내에 경찰이 잔뜩 깔려 있더구만. 그래서 어젯밤에는 밀가루를
울산의 창고에 둘 수밖에 없었소."
    "5톤이면 많은 물량이지요?"
   "너무 맙습니다, 포보비치 씨. 그걸 처리한다는 것은 너무 위험합
니다. "
   배장근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한국의 여러 조직이나 한국에 들어온 일본 새력들도 아직까지 조
직 내에서 공개적으로 마약을 취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밀수꾼들이
들여온 마약을 눈감아 주고 수수료를 는 정도였습니다, 포보비치
01. "
   "우리가 마약을 본격적으로 취급한다면 다른 조직들한테서나 한
국 정부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을 겁니다. "
292 밤의 대통령 제구분 -르
    "천만에, "
   포보비치가 담배 연기를 탁자 위로 길게 내뿜었다.
   "야마구치조는 우리에게 그러지 못합니다. 아마 우리를 흥내낼 거
요. 그리고 다른 조직이라니? 이재 한국에 우리와 야마구치조 외에
다른 조직이 있소?"
   "김양호와 조성표는 이미 야마구치조의 수중에 들어갔고 신용수
와 아이즈 고데츠는 바람 앞의 촛불이오. 이동천이는 이미 끝이 났
고. 그리고 다른 피라미들이야 우습지도 않고."
    "그러면 한국 정부 말인데."
    포보비치가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고는 상체를 세웠다.
    "안드로포프가 그저 빈손으로 청와대애 들어간 것 같소? 그자는
대통령이 벌떡 일어날 이야기를 했단 말이오. 그가 선물의 내역만 말
해 주었는데도 대통령은 얼굴을 벌겋게 붉히고 흥분했다고 하더구
만."
   "...
   "그 선물은 누가 만드는데?안드로포프가?그까짓 외무 차관 놈이
무얼 해?"
   "그럼 누굽니까?"
   "국방 장관 체르넨코야. 언제 갈릴지 모르는 대통령 따위도 필요
없어, 우리는."
"그 산물 내용은 내가 말할 수 없어요. 하지만 우리가 5톤이 아니
                                              여인의 향기 293
라 10톤의 밀가루를 들여오다 적발된다고 하더라도 한국 정부는 문
제삼지 않을 거요. 그저 돌려보내는 것이 고작일 거요."
   "안드로포프는 우리의 심부름꾼일 뿐이었소. 그놈은 대통령에게
선물의 내용과 선물을 제공하는 사람이 누군가를 설명해 주는 것이
임무였단 말이모."
   오후 2시 10분, 전화 벨이 울리자 이용덕은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이 총장님이시죠?"
   낯선 사내의 목소리였다.
   "그렇습니다만."
   "저, 이동천입니다. 기억하시겠지요, 물론, "
   이용덕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전화기를 귀에서 몌었다가 다시
붙였다.
   "그래, 무슨 일이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이번 사건 때문입니다. "
   "난 총장님과 김양호, 가토 노부야스의 관계를 잘 알고 있는 사람
01오. "
   "이봐, 난 바빠. 쓸데없는 소리 들을 시간이 없어."
   "그렇다면 할 수 없군. 자료를 야당에 넘기는 수밖에."
"당신이 양승일 씨로부터 받은 돈의 액수, 날짜와 시간, 장소까지
294 밤의 대통령 제』부 -ll
적어 놓은 기록이 있고 증인이 있다면 어쩔테요?"
   "이런 미친 놈 봤나?"
   "또 가토 노부야스로부터 받은 돈의 내역도 모두 가지고 있어."
   "전화 끊겠다. "
   "그럼 끊어라. 자신이 있다면 "
   "나는 검사 생활을 했던 사람이야.중거물 없이 이런 말을 할 사람
이 아니다. "
   아랫입술을 깨문 이용덕이 상기된 얼굴로 앞쪽을 노려보았다. 방
음 장치가 된 널은 총장실에는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이용덕
이 입을 열었다.
   "그래, 계속해라."
   "이 녹음 테이프와 자료들을 복사괘서 야당들에 배포하면 당신의
꿈은 깨져, 아니,뿐만 아니라 감옥에 갈지도 모르지."
   "용건을 말해."
   "우리 업체에 대한 세무 감사를 중지해,."
    "당신이 김양호와 야마구치조의 사주를 받고 압럭을 넣었던 거야.
당신이 만든 일이니 손을 써서 내 직완들의 구속을 불고 수배를 해재
시켜라."
   "말도 안되는 소리 , 법을 집행하는 검사 노릇을 했던 놈이 어떻게
그런 소리를."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는 곳이 한국이야. 너 같은 놈 때문얘."
   이동천의 목소리가 커지자 이용덕도 악을 썼다.
                                               여인의 향기 295
   "이놈! 감히 네가 누구한테!"
   "내가 가지고 있는 증언 테이프 일부를 복사한 것과 서류를 보냈
으니 저녁에 받아 볼 수 있을 것이다. "
   이동천이 때려붙이듯이 말했다.
   "그 증인은 너도 잘 아는 사람이야."
    전화를 마친 이동천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는 몸을 돌렸다. 승
용차 옆에 선 문재은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만 잘 부탁해요. 그 사람들이 조직 세계 사람들처럼 일흔
이나 먹은 노친네를 인질로 잡고 협박하지는 않겠죠?"
   그가 다가서자 문재은이 횐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파리에서 한국 신문 기다리는 재미로 살겠네, 나는."
   공항의 져은 주차장에서 이동천은 그녀와 마주보며 서 있었다. 횐
색 투피스 차림애 엷은 화장을 한 문재은은 아름다웠다. 부드러운 바
람이 스치고 지나가자 그녀에게서 엷은 향수 냄새가 풍겨 왔다. 시선
이 마주치자 문재은이 다시 웃었다.
   "집을 나오기 전에 내가 안방에서 뭘 했는지 알아요? 집안에 있던
내 사진 정리했어요. 마음에 안 드는 사진은 모두 버렸어."
   "기자들이 내 사진 찾으려고 올덴데. 이왕이면 괜찮은 얼굴로 신
문에 나야지."
   "곧 돌아오게 될 거야."
   이동천이 손을 뻗of 그녀의 손을 쥐었다. 그러자 문재은이 손을
내면서 그를 쏘아보는 시능을 했다.
296 밤의 대통령 제실』 -ll
"이봐요, 이제 신체 접촉은 끝벼시다. "
"어잿밤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지."
"거짓말, 당신 거짓말은 서툴러."
   "나에게 증언 부탁하려고 온 거야. 당신은 옛날 생각해서 나한테
온 것이 아냐. 잠잘 곳이 없어서도 아니었고."
   문재은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번졌다.
   "하지만 난 기쁘게 중언을 했어요. 오히려 그런 기회를 만들어 준
당신에게 고맙다고 해야 돼."
   "당신은 멋진 여자야."
   "어젯밤의 당신도 멋졌어 "
   "내 녹음 테이프가 시원찮으면 파리로 연락만 해요. 음향 효과까
지 넣어서 근사하게 만들어 보낼테니까."
   "당신 파리 주소로 일본에서 돈이 갈 거야."
   "내 스위스 구자에 2백만 달러나 있어. 한국의 재산은 모두 안전
하고. 하지만 보내요.돈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말을 멈춘 문재은이 갑자기 다가서더니 이동천의 입술에 입을 맞
추었다. 그리고는 금방 한걸음 떨어졌다.
   "굿 바이, 마이 러브."
   그러더니 그녀는 활짝 웃었다.
   "영어가 좋긴 좋네. 내용이 까다롭지 않아서."
   트렁크를 든 그녀가 몸을 돌렸다.
   이동천은 공항으로 다가가는 문재은의 됫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때
                                              여인의 향기 297
갑자기 그녀가 걸음을 멈추더니 그를 바라보았다.
   "이봐요, 밤에는 나에게 연락하지 말아요. 자크가 오해할지 모르
니까."
    자크는 주한 프랑스 대사관의 영사였던 사래로 지금은 파리의 외
무부에 있다. 문재은이 손을 팔랑이며 저어 보이더니 다시 몸을 돌렸
다.
   "각하께서 요즘 얼마나 고뇌하시는지 아십니까?정말 옆에서 보기
에도 딱할 지경입니다. "
   김재선 수석이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정치인들이 각성해야 돼요. 지역 감정이나 부채질하면서 오직 대
권에만 욕심을 부리고. 국가의 장래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
   "글쎄 말입니다. "
   박현식이 머리를 끄덕였다.
   "이런 상태로 두었다가는 나라가 삼등분이 되겠습니다. "
   청와대의 정무 수석실 안이다. 김재선과 마주앉은 박현식은 30분
가깝게 국내 현안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김재선은 50대 후반으로 대통령이 야당투사였던 시절부터 20년
이 넘도록 옆에서 모셔 온 사내였으므로 측근 중의 측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대통령의 감(탈)을 제일 빨리, 정확히 읽는 사람
으로 정평이 나 있었는데 장관 자리도 마다하고 청와대에만 머문 지
3년이 넘는다.
   "그런데, 어재 이 총장이 다녀갔지요?"
   박현식이 문득 지나가는 말처럼 묻자 김재선이 머리를 끄덕였다.
298 밥의 대통령 제긱부 -ll
   "당무 문제로. 나도 옆에 있었지만 별 이야기는 없었어요."
   이용덕 총장과 김재선은 나이도 비슷했고 대통령을 모신 경력도
같다. 그들은 서로 격렬한 라이벌 의식을 품고 있었지만 위기 때에는
강하게 뭉친다.
   박현식은 녹차잔을 들어 한모금 마시고는 내려놓았다.
   "별일은 아니지만 조금 골치가 아파요.그 이동천 사건 문에."
   "그것, 끝나지 않았습니까? 이동천이만 잡으면 될텐데. 그놈이 어
디 며칠이나 버티겠습니까?"
   김재선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물론이오. 하지만 대선이 몇 달 안 남아서 사회가 시끄러울수록
우리가 불리하다는 통계가 나온단 말입니다. "
   그러자 김재선이 머리를 끄덕였다.
   "국민 의식이 예전처럼 순수하지가 않아요. 잘못은 모두 정부 쪽
에만 있다고 믿어요. 남 탓하는 국민성이 문재라니까."
   "어쨌든 이 사건도 빨리 마무리지어of겠습니다. "
   "곧 마무리되TE지요."
   김재선이 단언하듯 말했다.
   "제까짓 놈이 어딜 가겠습니까? 한국 안에 있겠지요."
   여의도의 중국 음식점 사천성의 밀실 안이다. 종업원이 엽차를 내
려놓고 물러가자 이용덕이 입을 열었다.
   "내가 그런 놈의 협박을 받아야 되다니 어디에다 말을 꺼내기도
부끄럽소. 그리고 그 자료라는 것이 조작된 것이기는 하지만 밖으로
유출된다면 큰일이오."
                                               여인의 향기 299
   그의 얼굴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동천이 보냈다는 테
이프와 서류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그것을 내놓지도, 그렇다고 자세
한 내용을 말해 주지도 않는다.
   안홍건이 헛기침을 했다.
   "총장님의 전화를 받고 바로 문재은에게 사람을 보냈지요. 그런데
그 여자는 3시발 파리행 비행기로 서울을 떠났습니다. "
   "문재은이 경영하던 마리온플럽의 종업원이 어젯밤 이동천이 찾
아왔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
   이용덕이 김양호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그 여자가 그런 감정을 품고 있는 것도 몰랐단 말이오?"
   "어썼든 야단났소. 문재가 커지면 우린 각하 앞에서 얼굴을 들 수
가 없습니다 "
   그가 표현한 우리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으므로 안홍건은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총장님, 그 테이프나 서류 내용에 신빙성이 있습니까?"
   "글쎄,조작된 것이지만 노출되면 문제가 커지리라는 생각이 안
든단 말이오?야당 놈들은 춤을 출 거요."
   미묘한 사안의 대답을 기술적으로 피하면서 되레 이쪽을 치는 이
용덕의 능란한 화술은 소문이 나 있었지만 안흥건은 입맛이 썼다. 이
용덕은 이미 물귀신처럼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이 없습니다. 청와대의 김 수석께 연락을 해서 부
산 지검과 국세청에 지시를 하도록 하는 수밖에요."
' 300 밤의 대통령 제4부-lf
   안흥건이 말을 이었다.
   "일단은 우리가 시간을 벌고 차분히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타. 강
공으로 나가서 득될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
   "이동천도 그령지만 그 여자, 문재은이 말인데."
   "파리로 갔다면 그곳에서 우리를 계속 귀찮게 할지도 모르겠군
출발한 지도 몇 시간 되지 않았는페‥‥‥‥
   "안됩니다, 총장님 ."
   안홍건이 머리를 저었다.
   "프랑스 대사관 직원과 동행이고 비행기는 에어 프랑스를 타고 있
습니다. 옛날처럼 공항에서 달리기를 할 형편이 못됩니다. "
   "아마 이쪽에서 어떻게 나올지를 생각하고 준비를 해놓은 것 같습
니다. "
   김양호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입을 열지 않았다. 그녀가 양승
일의 로비 자금 전달자라는 것은 방안의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었다.
이용덕은 말할 것도 없고 앞쪽에서 억울한 듯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안흥건도 그녀에게서 여러 차졔 돈가방을 받은 것이다.
   그러자 김양호의 머리에 문득 가토 노부야스의 모습이 떠올랐다.
야마구치조의 가토도 문재은을 통해 이용덕에게 정치 자금을 보내었
던 것이다. 저도 모르게 김양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열흘 전에
클럽에 들렀을 때만 해도 문재은과 세상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녀
의 표정은 밝았었다. 이동천과 이런 음모를 꾸미리라고는 전혀 생각
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러자 이용덕이 초점 엄는 시선을 들었다.
                                               여인의 향기 301
"김 수석에게 가봐야겠소."
   "그 친구한테 사실을 이야기해 줄 수는 없어요. 아무리 한솥밥을
먹었더라도."
   그는 얀홍건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부산의 민심이 혼란스러워서 사정을 강하게 하는 것이 불리하다
는 보고서를 만들어 주시오. 그리고 밑부분에 이동천의 업체들에 대
한 세무 감사도 보류시키는 것이 낫겠다고 써주시오."
   "그렇게 하지요."
   "김 수석은 영문을 모르겠지만 각하와 당을 살리려면 할 수 없는
일이지, "
   승용차가 마포대교를 지나 88대로로 들어섰을 때 이동천은 시계
를 내려다보았다. 오후 6시 반이었다. 언제나 막혀 있어서 88주차장
으로 불리던 대로가 오늘은 꿴일인지 앞쪽이 훤히 의어 있는 바람에
차량들이 속력을 내고 있었다.
   "서둘 것 없다. "
   이동천이 앞쪽을 향해 말했다.
 "박 상무한테 늦는다고 했으니 기다리지 않을 게다. "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 있던 부하가 머리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백 상무님은 상태가 양호하다고 합니다. 사장님 ."
   이동천이 잠자코 머리를 」1덕였다. 그러나 그는 이제 다시 돌아을
수는 없을 것이다. 행동이 불편한 몸으로 이 생활을 하기에는 벅찰
것이고 이동천도 받아들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말로만 들었지만 억
302 밤의 대통령 제4부 -3
척 같고 부지런한 아내 옆에서 가족과 향깨 남은 인생을 보내야만 한
다.
    "봉천동으로 가자."
    머리를 든 이동천이 갑자기 말하자 놀란 운전사가 퍼뜩 시선을 들
어 백미러를 올럭다보았다. 이동천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주대흥도
머리를 들었다. 승용차는 속력을 줄이면서 바깥 차선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세 시간쯤 시간이 있다. "
   이동천이 주대홍을 바라보며 말했다.
   "난 안기부 사람을 만날타니 넌 그 동안 아주머니한테 인사나 하
고 와."
   주대홍이 침을 끌어모아 삼켰다.
   "누구 말입니까?"
   "네 스승의 사모님 말이다. "
    "안기부 사람과 같이 있을테니 걱정할 것 없다. "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형님."
   "잔말 말고 내말대로 해 "
   눈을 치켜 뜬 이동천이 그를 쏘아보았다.
   "10시까지 영동 호텔의 주차장으로 돌아오면 된다. "
   골목길 입구에서 차를 내린 주대홍은 한동안 사라져 간 차와 골목
을 번갈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저녁 무렵이어서 그의 옆쪽을 사람들
이 바쁘게 지나갔다. 이윽고 그는 골목으로 발을 몌었다.
   "아이고 주 서방 "
                                               여인의 향기 303
   고 여사는 반색을 하며 부엌에서 뛰쳐 나팠는데 방안에서도 인기
척이 나더니 문이 열렸다. 박미정이 문고리를 잡고 서서 그를 바라보
았다.
   "아니, 너는 뭐하고 서 있기만 해? 인사로 않고."
   고 여사가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시선을 내린 박미정이 문을 소
리내어 닫고는 안으로 사라졌다.
   "저런 못된 년이 있나?"
   허리를 번쩍 편 고 여사가 손을 휘저으며 다가가 문고리를 잡았을
때 주대홍이 그녀를 안았다.
   "어머니, 여기 앉으시지요."
   그들은 쪽마루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마당의 수도꼭지에서 쏟아지
는 물이 플라스틱 그룻 위에 넘쳐 흐르고 있었다.
   주대홍이 헛기침을 하고는 상체를 세웠다. 그는 한동안 눈을 치켜
뜨고 수도꼭지를 노려보다가 슬그머니 일어나 수도를 잠그고 돌아와
앉았다. 그 동안을 고 여사는 눈도 깜박이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주대흥이 다시 헛기침을 했는데 입을 연 것은 고 여사였다.
   "미정이는 쭉 집에 있었어.회사도 그만두고.그런데 이 사람아,
왜 전화 한통 안했어?"
   "저는 어머니도 아시다시피 고아나 다름없이 자란 놈입니다. "
   주대홍이 말을 이었다.
   "박 선생님은 제 스승님이기도 했지만 아버님 같았지요, 예."
"어머님은 제 어머님 같았습니다, 예."
"암먼, 주 서방이야 우리 식구였어. 미정이가 얼매나 따렀다고. 안
304 밤의 대통령 제4부 -ll
그런가?"
   "예, 그렇지요."
   주대흥이 잠시 말을 멈추었는데 고 여사가 끼여든 때문으로 말의
가닥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나는 자네를 내 사위로 생각했어."
   다시 고 여사가 말했으므로 주대홍이 가닥을 찾았다.
   "그것이 잘못 되었단 말입니다, 어머니. 그저 미정이 오빠 노룻만
해야 혔는데 나는 미정이를 여자로 생각혔던 것입니다. "
   "참, 지금 생각허먼 기가 맥협니다. 고 쌘 것이 여잔디 미정이를
따러댕기먼서 괴롭혀만 줬다니까요."
   "아니, 자네가 언제."
   "차에서 내려 가지고 골목 앞에 섰을 때야 그 생각이 났단 말입니
다. 아아, 내가 잘못혔구나. 잘못혔다고 말허고는 호텔로 가자. 그렇
게 생각허니간 기운이 났다니요."
   고 여사는 멍한 얼굴이었는데 방에서 부스럭거리는 인기척이 들렸
다가 금방 그쳤을.
   "어머니도 그령게 생각허십시오. 아들로만 생각허시면 편허실 것
이고 나도 편헙니다. 미정이도 편헐 것이고."
   "내가 나쁜 놈이지요. 나 하나 생각만 고치면 다른 사람들이 편혀
질 것이라는 것을 인자사 깨달았다니께요."
   주대흥이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섰다.
   "인자 속이 시원헙니다, 어머러. 저는 바뻐서 이만."
   안기부의 민영택 수사관은 40대 초반의 건장한 사내였다.

검게 탄 피부에 짧은 머리, 각진 턱은 영락없는 사복 군인으로

그를 보이게 했는데 실제로 1는 제대한 지 일년 밖에 안된 애비역 중령이다.

전에 박현식이 군에 있을 때 전속 부관이었던 민영택은 제대하자마자
안기부에 특채되었고 지금은 안기부의 조사관이 되어 있었다.
    영동 호텔의 506호실은 간단한 구조의 일반 객실이다.

창가의 의자에 이동천과 마주앉아 있던 민영택은 손을 뼘쳐 녹음기의 스위치를 쩠다.
    "이것, 대단하군요."
    그는 탁자 위에 놓인 서류와 녹음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잘못하다가는 나라가 뒤집히겠습니다. "
    "나라가 아니라 정권이겠지요. 한민당이 온전하게 남지 못할 져니다. "
   이동천이 말을 이었다.
   "양승일 회장은 정치인뿐만 아니라 정부의 주요 인사들을 포섭해 두었지요.

지금은 그들이 모두 김양호의 로비스트가 되었지만."
   "가토 노부야스가 이렇게 깊게 정권 내부에 들어와 있다는 것도 충격적이오."
   "가토뿐만이 아니오."
   이동천이 그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러시아 마피아는 직접 청와태를 쑤시고 있어요.

부장꼐서도 그 내막을 알고 싶다고 하십디다. "
   민영택이 머리를 」1덕였다.
   "안드로포프가 청와대에 들어간 것을 알아낸 것은 나입니다.

즉각 부장께 보고했지요."
   "난 기무사 출신이오. 정보 수집력이 조금 있습니다. "
   박현식이 그를 끌어들인 이유가 될 것이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엎드려 있는 것 같이만 보이던 박현식은 나름대로 방법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민영택이 책상 위에 놓인 서류와 녹음 테이프를 가방즉 넣었다.
   "이건 가져가겠숨니다. 원본은 갖고 계시지요?"
   이동천이 머리를 끄덕이자 그가 횐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용덕이나 안홍건이는 아마 지금쯤 결론을 내었겠지요.

이걸 보고 듣고 나서 배짱을 부릴 수는 없을 져니다. "
   그는 가방에서 고무줄로 매어진 한 묶음의 수첩을 꺼내어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우리 수사관 신분증과 수첩입니다. 우선 이 사장님과 박철규 씨,
주대홍 씨 세 분 것만 만들었는데 완벽합니다. 사진이 조금 다르게
보이는 건 박철규 씨, 주대흥 씨 주민등록에 있는 사진을 썼기 때문이죠."
   "고맙습니다. "
   이동천이 수첩을 집어 주머니에 넣자 민영택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앞으로 같이 일하게 되어서 기뽐니다, 이 시징검."
   그와 악수를 나누면서 이동천의 머리에 문득 백복동의 모습이 떠
올랐다. 경찰 공무원이었던 그도 기쁘게 이동천의 부하가 되었으나
동생처럼 돌보아 주던 손달섭에 의해 잔흑한 배신을 당했던 것이다.
    "손달섭이는 아마 서울 쪽으로 튀었을 겁니다. "
    벽 쪽에 앉은 최지만이 말했다. 그는 화려한 무의의 남방셔츠를
 걸친 모습이었는데 남방 밑은 온통 붕대로 동여매져 있었다.
    "애들 몇 명을 보내 놈을 잡아 와야 할 것 아닙니까?"
    머리를 든 박철규가 그를 바라보았다. 사건 전에는 다소 무기력증
에 빠져 있는 것같이 보였던 최지만이 숨격당한 후부터는 가장 공격
 적인 사내가 되어 있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신동석이 죽고 난 후부
 터라고 해야 될 것이다. 항상 으르렁대던 사이였는데 이제야 그것이
우정으로 바뀐 모양이라고 박철규는 생각했다.
    "지금 당장은 안된다. "
    박철규가 공장의 이쪽저쪽에 흩어져 있는 부하들을 둘러보았다.
    "형님이 오시고 나서 정리한다. "
    공장의 문이 열리더니 부하 서너 명이 밥통과 국통을 나누어 들고 들어섰다.
 공장 안은 금방 음식 냄새로 가득 찼고 흩어져 있던 부하들이 꾸물거리며 모여들었다.
    이곳은 포항 변두리의 조그만 자동차 부품 공장이다.

 건평이 3백 평쯤 되는 깨끗한 공장이었지만 한 달 전에 부도를 내고 폐업을 했기 때문에

경비원 한 명만 남아 있던 이곳에 그들이 입주하게 된 것이다.

50대 중반의 경비원은 그들이 누구인지를 알았으나 5백만 원의 사례금을 받고는

이제 그들을 위한 경비원이 되어 있었다.

기간은 길어야 닷새 정도라고 했으니 얼마든지 해볼 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박철규는 밥통 주위에 몰려 있는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검거 대상자로 수배된 57명의 조직뭔 중 26명이 검거되었고 1명이 죽거나 입원해 있었으므로

남은 것은 24명이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 있는 부하는 15명도 되지 않았다.

부산에 흩어져 정보를 수집하거나 이동천을 따라 서울로 갔기 때문이다.
   "오빠."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주대홍이 몸을 돌렸다.

  어둠이 깔린 골목에서 나오는 박미정의 모습이 보였다.

  고 여사에게 인사를 하고 나을 때에도 문도 열어 보지 않았던 박미정이다.
   앞에 선 박미정이 얼굴을 들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동그란 얼굴과 반짝이는 두 눈이 뚜켠이 드러났다.
   "오빠, 미안해요."
   그녀한테서 옅은 비누 탬새가 났다.

   주대흥이 잠자코 있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저도 잘못했어요. 오빠 마음을 알면서도 반발하기만 했어요."
   "다 끝난 일이여.난 그 말을 할려고 온 것이다. "
   주대홍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마음대로 머시매들 만나고 살어. 앞으로 그런 일들은 없을테니께."
   "그려. 돈이 끼먼 잘 안된다고 허더라. 너나 내가 마찬가지고만."
  주대홍이 몸을 돌리자 박미정이 그의 소매를 잡았다.
   "오빠. "
   "왜 초려?"
   "날 용서해 줄 수 있어요?"
   "이 씨발년이 왜 이러는 거여?"
   주대흥이 부드럽게 욕설을 뱉었다.
   "옛날 일은 다 끝났다는디 뭘 용서허란 말이여? 좇 같은 소리 말고.
   주대홍이 손을 들어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어머니 잘 모셔라. 속 색이지 말고. 나도 시간 나면 자주 올 것이여."
    "니가 시집 가면 내가 어머니 모시고 살 거여. 그렁께로 걱정 말고 열심히 혀. "
   몸을 돌린 주대홍은 휘적이며 골목을 나왔다.

   밤거리는 휘황한 불 빛으로 현란했고 폐에 들여마셔지는 공기는 오늘따라 신선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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