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밤의 대통령

9. 심야의 초대

오늘의 쉼터 2015. 1. 1. 23:20

9. 심야의 초대 

 

 

 

전화기를 내려놓은 배장근이 오새미를 바라보았다.
   "포보비치가 저녁을 내겠다는군. 해운대의 비치 가든이야. 당신도 같이 왔으면 하는데."
   "그 사람, 그런 면도 있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오세미는 싫은 눈치가 아니었다.
   "몇 시까지 가야 돼요?"
   "아흠 시니까 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어. 서둘러."
   그들이 살고 있는 연립 주택은 20평형으로 지은 지 얼마 안된 새건물이었다.

 오세미가 오밀조밀하게 꾸며 놓은 집안을 바쁘게 오가면서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당신, 뭘 입고 갈 거예요?"
   안방으로 들어가 소리쳐 묻는 그녀의 목소리는 밝다.

그러고 보면 같이 나가 외식해 본 적이 없다.
   "난 저고리 하나만 걸치면 돼."
   "그러지 말고 이것 입어요."
    배장근은 안방으로 들어가 그녀가 건네주는 양복을 받았다.
   오세미는 조직의 자금 관리를 맡고 있었다. 시켜서가 아니라 그녀
가 자진해서 덤벼든 것이었는데 꼼꼼한 데다 손이 빨라서 지금은 없
어서는 안될 사람이 되었다.
   "이번 달에는 러시아로 20억이 나가요."
   원피스의 지퍼를 올리다가 그에게로 등을 돌려 대면서 오세미가
말했다.
   배장근은 잠자코 원피스의 지퍼를 올려 주었다. 마약과 밀수품의
판매 대금이 고스란히 송금륵는 것이다. 이번에는 배장근이 부산에
차려 놓은 무역 회사가 밀로체프의 회사에 신용장을 개설하고는 밀
로체프가 보낸 하물 대금을 지불하는 방법을 썼다. 몇푼 안 나가는
하물 대금으로 거액을 지불하면서 합법화시키는 방법인데 이쪽 새관
이 문제를 삼을 염려가 있지만 속았다고 둘러대면 대개 흐지부지된
다. 블라디보스토크 쪽애서는 문제가 있을 리가 없고 있어도 문제가
안 되었다.
   "앞으로 마약이 무더기로 들어오면 파는 것도 문제지만 송금시킬
일도 걱정이야."
   허리춤에 베레타를 끼워 넣으며 배장근이 말했다.
   "마약을 5톤이나 쌓아 두고 있다니. 한국을 마약으로 덮을 모양이
야. "
   오새미가 몸을 돌려 배장근을 바라보았다. 불빛을 받은 그녀의 검
은 눈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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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천 써는 이제 사라진 것일까요?"
   "그건 왜 물어?"
   "요즘 그 사람 생각이 자주 나요. 당신이 기분 나쁠지 모르지만 당
신하고 자꾸 비교가 되고."
   "무슨 소린지는 알겠는데 그 결과를 보라구."
   배장근이 손을 뻗어 그녀의 허라를 감싸 안았다.
   "난 부모를 끓었고 동생은 행방불명이야. 난 그놈에게도 낮을 들
수가 없어."
   "그리고 당신은 어때? 오빠가 그렬게 되었어. 그것도 나 때문이
야."
   "당신 때문은 아녜요."
   "밤의 세계를 당신도 이제 볼 수 있을 거야. 이동천 같은 자도 박
철규의 지원과 아이즈 고데츠의 세력을 업고 있었지만 더 큰 세력에
밀려 처참하게 붕괴되는 것을 보란 말이야."
   "밤의 조직은 어차피 존재하게 되어 있어. 그렇다면 러시아를 배
경으로 하는 세력은 아무도 무시하지 못해.우리한테 더 이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란 말이야."
   "그 빌어먹을 이상이나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다가 망한 이동
천 씨 이야기가 교과서가 될 거야."
   그의 손을 푼 오세미가 돌아서서 귀걸이를 달면서 거울 속의 배장
근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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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서도 당신은 이동천 씨를 찾고 있지 않아요? 이명오 씨를
시켜서."
   "신세를 갚는다면서. 그렇지요?"
   "나는 은원이 분명한 사람이야. 이동천 씨 신세도 잊지 않고 조성
표와 천기석이를 내 손으로 없앤다는 것도 잊은 적 없어."
   "그런데 이동천 씨는 전화 한통 없어요. 당신을 믿지 않는 모양이
지요?"
   그러자 배장근이 머리를 끄덕였다.
   "우리가 야마구치조와 제휴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거야, 이동천
씨는."
   오세미가 핸드백을 집어 들었다.
   "가요. 러시아 마피아 양반."
   비치 가든의 특실에서는 밤바다가 내려다보였다. 짙은 어둠에 덮
인 바다 위에는 수없이 많은 선박들이 불을 반짝이며 떠 있었고 수평
선을 보여 주는 것도 크고 작은 배들의 불빛이었다.
   포보비치가 보드카 잔을 들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그들은 이제
술좌석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배 사장,난 내일 러시아로 돌아갑니다. "
   포보비치가 웃음 떤 얼굴로 배장근과 오세미를 바라보았다.
   "나는 부산에서의 마지막 밤을 두 분과 함께 지내고 싶었소."
   "고맙습니다, 포보비치 씨."
   배장근이 술잔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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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우리 조직은 단단하게 기반을 굳혔습니다. 모두 밀로체프
동지와 당신 덕분입니다. "
   "시기가 맞았던 겁니다, 배 사장."
   맑은 색깔의 보드카를 잔에 따른 포보비치가 오세미를 향해 들어
보이고는 한모금에 삼켰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대선을 일년 앞둔 올해를 한국 진출에 적기
로 보고 있었지."
   "그러면서 대리인을 물색하다가 당신을 선정한 겁니다. 우리는 그
것도 성공했지요."
   포보비치는 오세미의 빈잔에 보드카를 따랐다. 비치 가든은 해운
대의 끝 쪽에 위치한 고급 음식점이었다. 배장근이 개인 사업을 할
적에는 온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지금은 단골이 되어 있었다. 성공의
대가가 여러 곳에서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포보비치 씨, 마약은 앞으로 어떻게 공급이 됩니까?"
   술잔을 비운 배장근이 묻자 포보비치가 빙긋 웃었다.
   "그건 내가 돌아가사 알려 드리겠소.."
   "이쪽 소요량은 통계가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을 통틀어서 한
달에 15킬로그램 정도밖에 안됩니다. "
   "알고 있어요,배 사장."
   포보비치가 배장근의 잔에 술을 따랐다. 술을 한 병 가깝게 마셨
는데도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오세미가 배장근을 돌아보았다.
   "직원들 월급 이야기는 되었어요?"
   한국말이었으므로 포보비치가 웃음 떤 얼굴로 그들을 번갈아 바라
                                              심of의 초대 311
보gttl.
   "아니, 왜?"
   "포보비치 씨가 떠나기 전에 밀로체프 동지와 상의해서 알려 준다
고 했는데."
   "그렇군."
   배장근이 포보비치에게로 몸을 돌렸다.
   "포보비치 씨,직원들 보수문제는 밀로체프 동지의 허락이 있었
숩니까?"
   "아니, 아직. 그것도 내가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는 대로 알려
드리겠소."
   러시아에서 온 30여 명의 조선족들은 숙식과 피복비,교통비 둥
잡비 칠체를 배장근으로부터 지급받고 있었다. 그러나 월급은 러시
아에서 루블로 그들 앞으로 저축이 되고 있었는데 그것을 한화로 환
산괘 보면 한달 월급이 15만 원도 되지 않았다.
   따라서 배장근은 부산에 있는 조선족의 월급을 부산에서 자체 조
달, 지급하도록 하는 보고를 했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현실에 맞게
한달 월급을 백만 원 이상으로 책정했곤 그것은 충분히 지급 가능한
금액이었다. 지금 조직의 모든 조선족들이 기대와 회망에 부풀어 있
는 것도 배장근의 계획안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포보비치가 술병을 기울여 잔에 술을 채우면서 빙그레 웃었다.
   "배 사장, 서두르지 마시오. 곧 해결이 될테니까."
   포보비치의 배웅을 받으며 엘리베이터에 오른 배장근은 문이 닫히
자지하 2층의 단추를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15충에서 내려가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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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했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어서 승객은 3들뿐이었다.
   엘리베이터가 12충에 도착했을 때였다. 배장근이 멈춤 스위치를
누르고는 오세미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묻지 말고 여기서 내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호텔의 빈 복도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
들이 복도에 내리자 엘리베이터는 아래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세미가 창백해진 얼굴로 물었다.
   "왜 이러는 거예요?"
   "예감이 이상해."
   그는 오세미의 팔을 잡고는 비상 계단 쪽으로 다가갔다.
   "내일 떠난다는 놈이 한국 책임자인 나애게 아무것도 알려 준 것
이 없어."
   그들은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배장근이 다시 낮
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도 알다시피 난 단순한 사람이 아냐. 난 언재나 조직 내에서
의 내 가치를 점검해 보지."
   "요즘의 나는 밀로체프 입장에서 보면 장애물일지도 몰라."
   "당신 ."
   "이재 정치적인 수단을 써서 배경도 든든해졌고 기반도 굳어졌어
마약께 대해서 부정적이고 지시에 거역하는 나를 그들이 어떻게 생
각하겠어?"
"놈은 울산에 있는 마약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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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장근이 오세미의 손을 움켜쥐었다. 그들은 이제 2충의 계단을
내려가고 았었다.
    차를 준비하라는 연락을 받은 아명오는 지하 2층의 주차장 엘리베
 이터 앞에 차를 세워 두고 있었다. 호텔의 현관은 공사중이어서 차들
 은 모두 지하실에서 출발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엘리베이터의 충수 표시가 깜박이며 내려와 1층세 멈추었을 때 이
 명오는 몸을 돌렸다. 인기척이 났기 때문이다.
    "아니, 여기 웬일이이?"
    이명오가 반가운 듯 물었다가 금방 얼굴을 굳혔다. 그의 앞에 두
사내가 서 있었는데 모두 윤경산의 패들로 사이가 좋지 않았턴 자들
이었다. 그러나 포보비치가 위아래를 정 준 뒤부터는 사이가 좋고
자시고 할 것이 없다.
    "을라가려고 그래 ."
   사래 한 명이 대답했는데 이명오는1들 뒤쪽의 기둥 옆에 서 있
는 윤경산을 보았다. 두 명의 부하가 그를 호위하듯 서 있었는데 시
선이 마주쳤는데도 표정이 없다. 그 사이에 엘리베이터는 그들 앞에
서 멈추었고 문이 열렸다. 그러나 안은 비어 있었다. 이명오는 그들
이 당황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래 한 명이 지시를 받으려는 듯
윤경산을 돌아보았고 다른 한 명은 이명오와 시선이 마주쳤다. 번들
거리픈 눈빛이었다.
   숨을 들이마신 이명오는 자신도 모르게 허리춤에 젤러 넣은 루가
를 움켜쥐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둥에 거친 충격을 받고 발을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면서 입으로 울컥 피를 토했다. 그러자 다리에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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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풀려 한 쪽 무릎이 꿇려졌고 이어서 이마가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머리속은 선명했고 소리도 잘 들렸다.
   "저놈을 차에 실어라. 그리고 로비에 있는 기성이에게 연락해 봐
라. =1놈이 내렸는지."
   윤경산의 목소리가 지하실을 울렸다.
   "그놈이 눈치챘을 리 없어. 조금 더 기다리자."
   이명오는 주머니에서 무전기를 꺼내 배장근에게 연락을 해야 한다
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몸에 깔린 필을 레내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뿐이었다. 팔은 그대로 있었고 이윽고 자신의 몸이 들려지는 것
을 느끼면서 그의 의식은 꿉겼다.
   로비의 계단을 내려가던 배장근이 흠칫 발을 멈추더니 오세미를
벽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의 눈은 로비 왼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기 강기성이가 있어."
   그의 시선 끝은 이미 문을 닫은 매점 앞에 서 있는 사내에게 멈추
어 있었다. 윤경산의 심복 중의 하나였다.
   "저농이 오늘 여기 올 일이 없는데."
   배장근이 혼자말을 했다. 포보비치를 따라온 세 명의 경호원은 들
어을 때 주차장에서 만났던 것이다.
   그러자 배장근이 오세미를 들아보았다.
   "내 뒤를 따라와.조금 떨어져서,"
   그리고는 성큼 계단으로 몸을 내놓고는 서너 계단씩 내려 로비에
발을 내디을 때 강기상이 그를 보았다.
   그러자 펄쩍 뛸 듯이 놀란 그가 손에 들고 있던 무전기를 귀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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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가 이내 례고는 바지 혁띠에 손을 집어 넣었을 때는 거의 뛰다시
피 다가간 배장근이 그의 다섯 걸음쯤 앞에 와 있었다.
    배장근은 하나도 놓치지 않젠다는 듯이 줄곧 강기성의 얼굴에서
시선을 몌지 않았다. 놀람과 두려움, 그 다음에 어떤 결의가 눈을 두
어 번쯤 깜박이는 순간에 1의 얼굴에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것도 보
았다. 이제 강기성의 손에 쥐어진 권총이 바지 주머니에서 빠져 나와
총구가 위로 들리는 순간이다.
    배장근은 바지 주머니 안에서 움켜쥐고 있던 권총의 총구만을 을
려 그를 향해 쏘았다.
   "타앙!"
   로비가 들썩이도록 큰 총성이 났고 강기성이 입을 쩍 탈리더니 놀
란 얼굴을 했다. 그러나 아직도 손에는 권총이 쥐어져 있다.
   "타앙!"
   다시 한 발의 총성과 함꼐 가슴에 두 발을 맞은 강기성은 됫머리
를 로비에 부딪치며 반듯이 넘어졌다.
   택시 안이다. 들고 있던 무전기의 스위치를 끈 배장근이 오세미를
바라보았다.
   "전화를 받지 않아, 이명오가."
   표정이 의외로 담담하였으므로 오세미가 소리 죽여 숨을 내쉬었
다.
   "이명오도 당한 모양이야."
   그는 힐끗 운전사를 바라보더니 창 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이렇게 배신을 당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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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자 무전기의 신호가 울렸으므로 그는 무전기를 귀에 대었다.
   "여보세요."
   "배 사장, 나요."
   포보비치의 목소리였으므로 그는 눈을 치켜 떴다. 그리고는 심호
흡을 했다.
   "포보비치, 웬일이오?"
   "오해가 있었던 것 같소, 배 사장."
   "뭐가 말이오?"
   "강기성은 개인적인 원한이 있었던 모양이오, 배 사장한테."
   "강기성의 신원은 알 수도 없을테니 걱정할 것 없소. 배 사장, 지
금 어디 있소?"
   "이명오를 바러 주시오."
   "잠깐 기다리시오."
   그러더니 잠시 후에 그가 말했다.
   "당신을 찾는다고 나간 모양이오."
"배 사장, 만납시다. "
무전기의 스위치를 끈 배장큰이 오세미를 바라보았다.
"놈들이 이명오를 해치웠어 "
   "이제는 나머지 애들이 위험하다. "
   배장근이 운전사의 어깨를 두드려 차를 세웠다. 밤이 깊었으므로
길가에는 인적이 드물었지만 상점들의 네온 사인은 여전히 휘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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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고 있었다.
   "개새끼."
   전화기를 내려놓은 사이토가 뱉은 말이다. 그는 앞에 앉아 있는
고노를 쏘아보았다.
   "고노. "
   "예, 보스."
   "이동천의 업체들에 대한 세무 감사가 보류되었다. "
   "그리고 경찰에도 비밀리에 놈들에 대한 수배 지시가 철회되었어.
이동천의 협박에 굴복한 것이다. "
   고노는 잠자코 사이토를 바라보았다. 노무라의 오른팔이었던 그는
이제 부산 지부의 지부장 대리가 되어 있었으므로 이동천의 일은 그
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사이토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고노. "
   "예,보스."
   "어떻게든 이동천을 없애야 한다. "
   "예,보스."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우선 없애 놓고 보는 거야."
   자리에사 일어선 사이토가 창 밖을 바라보았다. 아침 헛살을 받은
바다 위에는 수백 척의 배가 떠 있었다.
   "끈질긴 놈이로군, 그놈은."
   창 밖으로 시선을 준 채 사이토가 혼자소리를 했다.
   "아니면 운이 좋은 놈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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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고노는 이동천이 어떤 협박을 하였는지 아직 자세히 알지 못했으
                                  므로 잠자코 서 있었다.
                                     사이토가 몸을 돌렸다.
                                      "난 서울로 돌아가70다. "
                                      "비행기로 가시겠습니까?"
                                     사이토가 머리를 』1덕였을 때 전화 벨이 울렸다. 고노가 전화를
                                  받더니만 송화기를 손바닥으로 막고 사이토를 바라보았다.
                                     "보스, 포보비치 씨입니다. "
                                     잠자코 전화기를 건네받은 사이토는 소파에 앉았다. 부산에 내려
                                  온 후로 그와 한 번씩 통화만 주고받았으니 이번이 세 번다.
                                     "안녕하시오, 포보비치 씨."
                                     "사이토 씨, 바쁜데 전화한 것 아닙니까?"
                                     "천만에. 그리고 당신 전화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받숱니다. "
                                     포보비치는 용건 없이 전화할 사람이 아니고 그것도 시원찮은 내
                                  용이 아닐 것이다.
                                     사이토의 기세에 눌린 듯 포보비치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
                                  었다. 유창한 일본말이다.
                                     "먼저 이번에 이동천 조직을 제거한 것에 대해서 축하를 드려야겠
                                  소, 사이토 씨 ."
                                     그러자 입맛을 다신 사이토가 힐끗 고노를 바라보았다. 포보비치
                                  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우리에게 문제가 조금 생겼습니다. "
                                     "뭡니까?"
                                     "배장근이 조직을 배신했습니다. "
                                                                                                                                          심야의 초대 323
   "당신도 잘 알다시피 놈은 이동천과 맥을 통하고 있었소. 그래서
이번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동천을 돕지 못하도록 단단히 경계하고
있었는데 어젯밤에 조직을 이탈했습니다. "
"이동천과 합류하려는 거요. 그러니 당신이 놈을 잡으시오.
    "이것도 당신의 조직을 위한 우리 쪽의 호의라는 것을 알아 주시
 오."
    "그것, 고맙군."
    사이토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보스 자리를 팽개치고 이동천을 도우려고 떠랐다니, 그놈은 미친
 놈이군."
    "이왕이면 김양호와 조성표 양쪽 조직에도 알려 주시오. 놈은 서
너 명의 일당을 끌고 떠났습니다. "
    "알겠소, 포보비치 씨, "
   통화를 끝낸 사이토가 고노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한동안
고노를 바라보았는데 무언가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of윽고 그가 입
을 열었다.
   "배장근이 마피아에서 이탈했다. "
   "Of , 보스. "
   "포보비치는 배장근이 이동천을 도우려고 이탈했다고 하는데 러
시아 놈들은 단순해, 거짓말도."
324 밤의 대통령 제살L -ll
   "내부의 알력이 있었을 것이다. "
   "그렇습니다, 보스."
   "놈은 아직 이동천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모르는 것 같다. 나
에게 축하를 하는 걸 보면."
"어썼든 배장근도 찾아라. 이동천이와 함깨."
   동원 1룰의 회장실.
   양승일이 쓰던 집기와 아끼던 그림, 그리고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장서들은 그대로였지만 데이블쉐 앉아 있는 사람만 양유경으로 바커
었다. 그렇지만 회장실에 들르는 사람들은 엄청난 변화를 느끼게 되
는데 그 이유는 그녀가 풍기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우선 그녀는 아름
답다. 매섭고도 부드러운 양면성을 가진 성격은 수시로 바러는 얼굴
의 표정과 더불어 사무실의 분위기를 화려하게도, 또는 싸늘하게도
만들곤 했다.
   오후 3시, 김양호와의 점심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양유경은
한동안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벽에 걸린 그림에 시선이 가 있었으나
초점은 멀고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때 테이블 위에 놓인 여러 대의 전화기 중에서 검정색 전화기에
달린 램프가 반짝였다. 교환을 통하지 않는 직통 전화의 하나이다.
양유경은 전화기를 귀에 대었다.
   "여보세요."
   "유경이구나."
   문재은의 목소리는 공처럼 가볍게 튀었다.
                                              심야의 초대 325
"나야, 잘 있었어?"
   "대답 않는 걸 보니 알고 있는 모양이네."
   "정말 어쩌면 그럴 수가."
   양유경이 말을 멈추고는 한 호흡을 쉬고 나서 말을 이었다.
   "아버지를 그렇게 매도할 수가 있어요?"
   "매도?또 김양호÷가 농간을 부렸구나."
   문재은이 가볍게 코 끝으로 웃었다.
   "회장님을 살해하고 조직을 앗은 놈이 이제 문제가 생기니까 회
장님 탓으로 돌리던? 개새끼 같으니라구."
   "왜?네 입장이 난처해졌어? 난 네 생각까지는 못했는데."
   "마담 언니, "
   "난 네 아버지의 여자였어. 언니라니 당치도 않다. 마담이라고 부
르는 것도 네 아버지를 모욕하는 짓이야."
   "내가 너보다 단순하다는 걸 알아. 넌 냉혹하고 교활하지만 큰 것
은 보지 못해 아버지가 너 대신으로 이동천 씨를 고른 것도 이유가
있었다. "
   "이봐요. 말을 함부로 하지 마!"
   양유경의 얼굴이 하알게 굳어졌다.
   "당신이 윌 안다고 쓰래? 아버지에 대해서, 그리고 나도."
   "다 알아, 아버지에 대해서도. 나와 수없이 살을 섞으면서 치부까
지 보였던 사람이야. 냉혹했지만 폭이 컸어. 국가관이 있었고 자존심
326 밤의 대통령 제4력 -ll
이 강했다. "
   "일본놈의 정부 노룻을 안해도 얼마든지 유지해 나갈 수 있었을
거야. 넌 논개 같은 성품도 아니고 요즘 세상에 너에게 안겨 물뛔 빠
져 죽을 왜장도 엄어."
   "용건을 말해."
   양유경의 얼굴은 이제 빨갛게 달아올랐다.
   "더러운 입을 그만 놀리고 어서."
   "내 기록과 테이프를 공표했다면 한국이 벌컥 뒤집혔어야 되는데
별다른 소식이 없는 걸 보니 협상을 한 모양이지? 이동천 씨는 한숨
올 돌렸을 것이고."
   "너에게 작별하려고 전화한 거야. 그것이 내 용건이야."
   "우린 진작 끝났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부터."
   "끝나지 않았었어. 그건 너도 잘 알 거야. 아버지의 정부로 나는
네 가슴에 남아 있었지, 그라고는 쌓였던 감정이 뿜어나와나얘게 그
렇게 무관심했었다. "
"이젠 끝났다,나와 이동천 씨는 네 집안과."
   "이동천 씨는 나와 밤을 같이 보냈어.나는 밤새도록 그 사람 품에
안겨 있었다. 난 내 생애에 그령게 힘찬 남자를 받아들인 것은 처음
이야."
   "이 개같은 년."
                                                    심야의 초대 327
   그러자 깔깔대는 문재은의 웃음 소리가 들렸고 두 여자는 거의 동
시에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저기 문 옆에 두 놈, 그리고 옆쪽 벽에 한 놈이 앉아 있습니다. "
    양재동이 손으로 가리키지 않더라도 배장근은 경비원들의 얼굴까
 지 알아볼 수 있었다. 아직 오후 4시여서 헛살은 머리 위에서 내리쪼
 였고 그들이 앉아 있는 음식점 바깥애는 행인들의 왕래가 잦다. 양재
 동이 머리를 돌려 1를 바라보았다.
    "두 명은 아마 창고 안에 들어가 있는 모양입니다. "
    다섯 명을 한 조로 해서 하루 또째로 근무시킨 것은 배장근이다.
 울산의 바닷가에 세워진 창고는 의 기관을 수리하는 공장으로 바
 러었으나 이제 공장도 문을 닫아 빈 곳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직
도 벽이 단단하고 철문도 아귀가 맞았으므로 일년 계약으로 빌려 두
었는데 수출용 하물의 창고로 쓰이고 있다.
    배장근은 손을 들어 옆쪽을 가리켰다.
    "저기, 벽에 기대앉은 애는 쟤동이 네가 맡아라. 옆으로 돌아가."
    "예, 사장님." .
    "뒤쪽으로는 고대철이 돌아가서 후문으로 들어가도록."
   창가에 서 있던 고대철이 머리를 끄덕였다.
   "난 정문으로 간다. 재동이는 일 마치면 곧장 나하고 함께 창고 안
으로 들어간다. "
   말을 마친 배장근이 그들을 둘러보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저놈들은 내 부하였다. 정말 내키지 않는 일이
지만 할 수 없다. "
328 밤의 대통령 제4력 -lf
   "저놈들은 윤경산의 심복입니다. 우리가 해치우지 않으면 저놈들
이 우리를 죽입니다. "
   양재동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명오는 실종되었지만 살채된
것이다. 틀림없었다. 그리고 오늘 새벽에 미처 연락이 당지 않았거나
행동이 재빠르지 못했던 배장근의 지지 세력 세 명이 목숨을 잃었다.
양재동은 도망쳐 나오면서 동료 한 명이 피살되는 현장을 보았던 것
이다. 이제 러시아 마피아는 자중지란이 일고 있었다.
   "좋아, 가자."
   물컵을 소리나게 놓은 배장근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창고는 정사각형의 단층 시멘트 건물이다. 사방 폭이 20미터쯤 되
었고 높이가 10미터 정도로 소형 어선을 바다에서 그대로 끌어 오도
록 바다 쪽으로 철문이 나 있었다. 그리고 이쪽 배장근이 다가가는
쪽은 국도 가에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 곳이다. 국도에서 창고까지는
일차선 찻길이 나 있었는데 좌우는 어구와부서진 배들이 어지럽게
깔린 공터였다. 공터에서는 아이들이 나무 막대를 휘두르며 노는 중
이었고 아낙네 대여섯 명이 그물을 손질하며 앉아 있었다.
   양재동과 고대철은 어느 사이에 옆으로 빠져 나가 보이지 않았으
므로 배장근은 곧장 창고의 정문을 향해 다가갔다. 도로의 단단했던
땅바닥이 이제 발이 푹푹 빠지는모랫길이 되어 있었다. 아이 한명
이 소리를 지르면서 그의 옆을 스쳐 앞질러 달려갔고 바로 뒤를 조금
큰 아이가 쫓아갔다.
   그러자 창고의 철문에 기대 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던 두 사내가
거의 동시에 이쪽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들은 펄쩍 될 듯
                                              심야의 초대 329
이 놀라 제각기 한 손을 옷 속에 집어 넣는다. 거리는 20미터가 조금
넘었지만 배장근은 선뜻 권총을 뻬어 들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달
려들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울산 시외의 바닷가에 요란한 총성이 울려 퍼졌다. 그것이 신호라
도 된 듯이 다시 옆쪽에서도 총성이 울리자 공터에 앉아 있던 아낙네
들이 비명을 지르며 뛰어 달아났다.
   배장근의 총격은 처음 발산로 사내 한 명을 그 자리에 쓰러뜨렸지
만 다른 한 사내는 맞지 않았다. 권총을 꺼내든 시래는 두 다리를 벌
리고 두 손으로 총을 움켜쥔 자세가 되었다. 권총의 총구는 똑바로
배장근에게 향해진 익숙한 자세였다. 배장근은 달려드는 중이었다.
그는 앞으로 권총을 내밀고는 커다랗게 발을 몌어 뛰면서 쏘았다. 저
쪽에서도 요란한 총소리가 났다. 15미터,그리고 10미터가 되었을
때 사내가 두 손을 치켜 들면서 뒤로 벌떡 넘어졌다. 조준이 흔들린
것은 오히려 저쪽이었던 것이다.
   양재동이 달려왔다. 눈을 부릅뜨고는 이를 악문 얼굴이었다. 배장
근은 철문의 옆에 달린 쪽문을 발로 차 열면서 안으로 구르듯이 들어
섰다.
   "탕!"
   총소리가 한 번 울렸고 이어서 요란한 총소리가 났다. 그러나 배
장근이 총을 쏜 사내를 제대로 보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사지를 늘어
뜨리는 중이었다. 그러자 뒤쪽에서 고대철의 모습이 나타났다. 고대
철이 쏜 것이다.
   "ffITr!"
330 밤의 대통령 제4부 -ll
   배장근이 고함치듯 말했다.
   "여기요!"
   그의 말을 받기라도 하듯 양재동이 소리쳤다. 그는 바닥에 엎어
놓은 보트를 들어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자 땅바닥에 쌓여진 네
댓 개의 뭉치가보였는데 어두운 색의 거친 천으로 만든 자루였다.
밖에서 자동차의 엔진 소리가 들려 왔다.
   "어서 실어라!"
   배장근이 자루 하나를 들어 올리면서 소리치자 고대철과 양재동이
달려들었다. 이제 마약 5톤을 앗은 것이다.
   윤혜선은 시장을 보러 수퍼마켓에 나와 있었다. 물론 경찰 한 명
이 수퍼마켓 밖에 서 있었지만 웬일인지 오늘은 한 사람밖에 보이지
않는다. 모처럼 나온 참이어서 플라스틱 바구니는 금방 가득 찼으므
로 바구니를 하나 더 가져올까말까 하고 머리를 들었는데 여자 한 명
이 옆에 와 서서 조미료를 만지작거렸다.
   "윤혜선 씨 맞죠?"
   조미료를 바라보면서 묻는다. 윤혜선은 머리칼이 쭈뼛거릴 정도로
놀라 온몸을 굳혔다.
   "날 보지 마세요."
   여자가 다시 말하자 윤혜선은 울상을 지었다. 모든 사람에게 이동
천의 정부라고 알려는 졌지만 그래서 형사들이 줄줄 따라다니고 있
었지만 윤혜선은 여유로웠고 어쩌면 그것을 즐기기까지 했다. 자신
이 이동천의 정부는커녕 손 한번 잡은 사이가 아니라는 것은 둘만이
아는 사실이었고, 그래서 이동천은 절대로 자신을 찾지 않으리라고
                                              심야의 초대 331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여자는 이동천이 보낸 여자이다.

여자가 참기름 병을 바구니에 넣으면서 말했다.
   "난 배장근 씨 부인 되는 오세미라고 합니다.

댁은 잘 모르시겠지만 이동천 씨는 아실 거예요."
   "우린 포보비치한테 배신당해 겨우 빠져 나왔어요.

지금 모두 여섯 사람이 마피아를 나왔습니다. "
   "저어 ."
   겨우침을 삼킨 윤혜선이 입을 열었으나오세미가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연락이 닿으면 그 사실을 알려 주세요. 그리고 만나고 싶다고 전해 주시고.

내일 이 시간에 이곳에서 뵈었으면 해요. 결과를 알고 싶으니까."
   미처 윤혜선이 대답하기도 전에 오세미는 몸을 돌리더니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윤혜선은 이제까지 들고 있던 무거운 바구니를 내려 놓았다.

그리고는 가슴을 두근대며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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