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밤의 대통령

2. 소탕준비

오늘의 쉼터 2015. 1. 1. 23:09

2. 소탕준비 

 

 

마산의 타워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는 다도해를 떠다니는 갖가지
 선박들이 보였다. 여객선과 어선, 하물선과 경비정들이 남빛 바다 위
를 항진해 나아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던 이동천은 시계를 내려다보
았다. 8시 』분전이었다.
    아침이었지만 오늘도 찌는 듯한 더위를 예고하듯 따가운 햇살이
유리창을 통해 하얗게 비쳐 들어오고 있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인지 라운지에는 가슴에 이름표를 단 한 쌍의 일본인 노부부밖에 보
이지 않았다.
   그는 앞에 놓인 커피잔을 들어 한모금 삼켰다. 그러자 라운지로
사내 한 명이 들어섰다. 그는 곧장 이동천에게로 다가오더니 그 앞에
멈추어 섰다.
   "내려가시지요. 기다리고 계십니다. "
   자리에서 일어선 이동천은 사래의 뒤를 따랐다. 그가 라운지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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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의 1401호실에 들어서자 응접실에 앉아 있던 사래가 자리에서 일
어섰다. 가운을 입고 있었는데 그의 뒤에 서 있는 두 명의 사내는 신
사복 차림이었다. 그중 한 명이 기무라였다.
   "어서 오시오, 이 검사. 아니 이젠 이동천 씨로군."
   안도섭이 굵은 목소리로 말하며 그의 손을 잡았다.
   "자, 앉으실까? 여기 딨는 기무라하고는 안면이 있지요?그리고
이쪽은 서규호."
   인사를 마친 그들은 자리에 앉았다. 안도섭은 의자에 깊게 등을
기댄 채로 한동안 이동천을 바라보았다.
   "이야기는 모두 들었습니다. "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양 회장의 사건도,그리고 당신의 입장도 알고 있습니다. "
   "우에다 산자에몬을 제거한 것은 나에게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기
무라가 말해 주던데-Hr 맞습니까?"
   이동천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
   "양 회장 딸과는 이제 관계가 끝났겠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요."
   방은 특실이어서 응접실이 넓었고 안쪽엔 주방까지 갖추어져 있었
다. 주방에서 다가온 사래가 그들 앞에 찻잔을 내려놓고 물러갔다.
   "우리가 조성표에게 투자한 돈은 5백억 엔이 조금 넘어요. 한화로
계산하면 4천억 원이 넘는 금액인데."
   안도섭이 말을 이었다.
52 밤의 대통령 제』닥 -lf
   "조성표는 야마구치조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단 말이오."
   "아마 아이즈 고데츠와 인연을 끊고 싶겠지요. 그렬게 되면 4천억
이 고스란히 제 몫이 되니까."
   이동천의 말에 안도섭이 웃었다.
   "이젠 자본이 증식을 해서 두 배 정도가 되었소. 3천억으로."
   "야마구치조는 곧 적극적으로 조성표를 포섭하려고 할 려니다. 부
산을 장악하려는 의도요. 그러면 자연히 아이즈 고데츠는 한국에 설
땅이 없습니다. "
   "나와 손을 잡읍시다. "
   어깨를 펴며 이동천이 말하자 안도섭은 힐끗 기무라를 바라보더니
물었다.
   "조직은 어떻게 갖구고 있소?"
   "필요한 건 자금이오.조직은 얼마든지 활용할 수가 있으니까."
   "양 회장님 조직에서 이탈해 온 보좌관이 있소. 그가 조직을 맡을
거요. 신웅수 회장 조직애서 넘어온 주대흥이가 있고."
   그러자 안도섭이 입맛을 다셨으나 잠자코 이동천의 다음 말을 기
다렸다.
   "정보 수집에 베테랑인 수사관이 있고.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춘 그가 방안의 사내들을 둘러보았다.
   "러시아 조직도 이용할 생각이오."
   "배장근이 말이오?"
   "그렇소,조성표를 치기 위해선 그의 힘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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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나 보셨다고 들었는데 ."
   "그렇습니다. 말이 통하는 사내였습니다. "
   안도섭이 옆에 앉은 기무라와 서규호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제각
기 시선만 마주치면서 입을 열지는 쟈는다.
   이윽고 안도섭이 이동천을 바라보았다.
   "좋소. 협정을 맺읍시다, 이동천 씨."
   "한국에서 두 번째이자 마지막 협정이기를 바라겠소."
   "난 이것이 마지막 협정이오."
   이동천이 얼굴을 펴고 웃자 한동안 그를 바라보던 안도섭이 따라
웃었고 기무라와 서규호도 뒤를 따랐다.
   우에다 산자에몬과 그의 경호원 한 명이 죽고 다른 한 명이 중상
을 입은 사건은 신문과 방송에 떠들색하게 보도되었다. 거기에다 재
수없게도 지방 신문의 기자가 우에다에 대한 경찰 자료를 보고는
'야쿠자 피살'이라는 그럴 듯한 제목을 붙여 보도하는 바람에 한
동안 전국이 떠들색했다. 부산 지역이어서 언론 기관에 제때 손이 닿
지 못한 데다가 믿고 있었던 조성표마저 꽁무니를 감추려고 했기 때
문이다.
   범인의 윤곽에 대해서는 중상을 입은 피해자가 아직 인사불성이어
서 드러나지 않았지만 사우나 종업원이나 욕객의 증언은 가지각색이
었다.
   야쿠자같이 문신을 한 사내가 사우나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고 외국인이 나왔다고도 했다. 그러나 가토는 그것이 아
H 밤의 대통령 제살근 -H
 이즈 고데츠 측의 도전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회의를 긴급
 소집한 것이다.
     국제 호텔 특실의 응접실 안에는 10여 명의 사내들이 둘러앉아 있
 었다. 상석에 앉아 있는 것은 가토 노부야스였고 좌우에는 모두 일본
 에서 날아온 야마구치조의 간부급 보스들이다. 이것은 한국에서 열
 리는 야마구치조 최초의 간부급 회의였는 데다가 조장인 우줴다 신
 기치가 보낸 아베 스스무가 참관자로서 가토 옆에 앉아 회의의 무게
 를 더해 주고 있었다.
     이윽고 가토가 입을 열었다.
    "어차피 아이즈하고는 부딪치게 되어 있었고 놈들이 섞수를 친 것
뿐이다. 우에다는 안뤘지만 이것을 계기로 아이즈를 밀』붙여 버리
 겠다. "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방안의 사내들은 격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령다고 우리 손을 빌릴 것도 없다. 김양호에게 말해서 특공대
를 뽑아 부산으로 보내면 된다. "
    양승일이 있었다면 어림없는 수작이었다. 피는 김양호를 부하처럼
다루는 것을 일본에서 건너온 부하들에게 보이려고 했는데 실제로도
김양호는 그가 장악하고 있었다.
    말석에 앉은 부하가 헛기침을 했다.
   "가토 님, 아이즈를 치기 전에 미리 조성표와 비밀 협의라도 해 두
는 것이 낫지 않겠숩니까? 아직까지는 조성표와 아이즈가 동맹 관계
로 되어 있으니까."
   "알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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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토가 웃음 떤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이즈에 대한 정보는 조성표 쪽에서 나온다. 조성표는 이미 우
 리에게 매달러고 있어."
    "서울 진출 때문입니까?"
    누군가가 묻자 가토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다. 이제 조성표가 우리와 제휴하면 신용수가 당장에 곤란해
질 것이다. "
    그는 붉은 입안을 벌리면서 소리없이 웃었다.
    "조성표와 신용수가 서울에서 싸우게 되고 두 농이 힘이 약해질
때쯤이면 부산과 서울의 나머지 영역도 모두 우리가 장악하게 될 것
이다. "
   그러자 아베 스스무가 상체를 세웠다. 머리가 희끗한 50대 중반의
조그만 사내였다.
   "가토 씨, 양 회장의 사위는 지금 어디에 있소?"
   그의 목소리는 가늘고 낮았지만 모두들 똑똑히 들었다. 주의깊게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조장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
이었다. 직접 부하를 거느리고 사업을 맡는 보스는 아니었지만 모든
일에 상관을 하는 조정자인 것이다.
   "놈은 부산으로 내려갔소, 아베 씨."
   가토가 말했다.
   "지검에서 직위 해제까지 당했으니 아마 실의에 빠져 있을 거요."
   "양 회장의 딸과그의 관계는 어털소?"
   "끝난 상태요."
   아베는 머리를 끄덕이며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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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토는 김이 빠진 느찜에다가 어딘가 쩜찜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인지 아베에게로 몸을 돌렸다.
   "여자는 철저히 감시하고 있소. 아직은 말깽도 부리치 않고 협조
적이지만 우린 마음을 놓지 않소."
   "조장제서는 당신을 칭찬하셨습니다. "
   아베가 어깨를 펴고 말했다.
   우에다 신기치의 신임이 가토에게 내려져 있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리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당신의 계획에 찬동합니다. 조장께서도 틀림없이 지
지하실 겁니다. "
   "고맙소, 아베 씨."
   가토가 아베에게 머리를 숙여 보이고는 활기찬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 계획을 세우자."
   정뭔에 나온 양유경은 머리를 돌려 뒤에 선 고대구를 바라보았다.
   "김 사장은 갔나요?"
   "예, 가셨습니다. "
   양숭일이 하던 결재가 고스란히 양유경에게 넘어온 것이 아니다.
이틀에 한 번꼴로 그룹의 회장실에 들어가 결재를 하지만 그룹의 운
영은 전적으로 김양호의 손에서 놀아나고 있었다. 그녀는 다만 형식
적으로 도장만 찍을 뿐이었는데 얻은 것이 있다면 차츰 회사의 운영
실태를 파악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오늘은 집에서 쉬는 날이었는데 김양호가 찾아와 동원 기획의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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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상무를 대표 이사 사장으로 임명한다는 임명장에 사인을 해달
라고 했던 것이다. 사인을 하고 그가 내미는 몇 가지의 서류에 인감
도장을 찍어 주자 그는 만족한 듯한 표정으로 떠났다.
    양유경은 정원 끝쪽의 나무 그늘 밑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어머
니는 별채에서 이모와 함께 있을 것이었으므로 요즘은 조금 마음이
놓였다.
    "저녁때 잠간 나갔다 오겠어요."
    양유경이 뒤쪽에 서 있는 고대구를 바라보았다.
   "대구 씨가 차를 준비해 두세요. 7시쯤 나갈테니까."
    "저는 밖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
    낮은 목소리로 그가 말하자 양유경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밖에 왜 못 나가요?"
   "외출 금지를 당했습니다. "
   무표정한 얼굴의 그가 말을 이었다.
   "사흘 전부텁니다. "
   사흘 전이라면 양유경의 심부름으로 그가 동원 섬유의 강 사장을
만나러 간 날이다. 강인원 사장은 양승일의 친구이기도 한 경제 관료
출신이었다. 고대구는 동원 섬유의 정문 앞에서 김양호의 부하들에
게 잡혀 다섯 시간 동안조사를 받은 다음 불려 나온 것이다.
   양유경은 머리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반대쪽 정원의 담에 기
대어 선 사내 두 명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별채와 안채에는 아
마 대여섯 명의 감시인들이 더 있을 것이다. 양승일이 살해된 후에
오히려 경호원들이 더 는 것은 양유경을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집안
전화는 모두 도청이 되었고 챈드폰은 없어진 지 오래였다.
58 밤의 대통령 제』녈 -ll
"보죄괸님 소식은 아직 없습니다. "
고대구가 입술만을 달싹여 말했다.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갔다는 말도 있고,또
그는 한걸음 그녀에게로 다가섰다.
"이 검사님을 따라갔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
". ..
"회장님을 습격한 것은 아이즈 고데츠의 특공대라고 하더군요."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건 김양호가 일부러 퍼뜨린 소문입니다. "
    앙유경이 머리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이런 식으로 자신
 의 감정을 표현한 것은 처음이었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놈들이 들어왔습니다. 놈들이 들어왔을 때
감시 카메라는 고장이 나 있었고 담장 위의 전원도 끊겨 있었어요."
    그 당시 가족들은 정원 건너편의 본채에 있었고 고대구도 그들과
함께 있었던 것이다. 습격자들은 별채에 있는 양승일만을 습격한 다
음 바람처럼 사라졌다.
   "밖에 나가신다면 미스터 김한테 준비를 시키겠습니다. "
   고대구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으므로 양유경은 머리를 저었다.
   "아녜요. 나가지 않겠어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김장현은 며칠 전부터 집안에서 기거
하고 있는 경비 책임자였다. 그가 김양호의 끄나풀이라는 것은 말할
필9E 없었다.
"아니 오랜만이오, 기무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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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기석이 얼굴을 활짝 펴며 웃었다.
   "어서 앉으시오. 기다리고 있었소."
   남포동의 룸살롱 안이었다. 이미 몇 잔 술을 마신 모양으로 천기
석의 얼굴은 술기운에 달아올라 있었다.
   "뭐하냐? 너희들 어서 이 사람한테 술을 따라라!"
   양 옆에 앉은 아가씨들을 향해 천기석이 눈을 부라렸다.
   "잘 모시란 말이다. 알았어?"
   기무라는 아가씨가 건네준 술잔을 들어 한모금에 삼켰다.
   "어제 내려오셨다구?"
   일본어로 천기석이 묻자 그는 머리를 끄덕였다.
   "어젯밤에 도착했소."
   "그 동안 부산이 시끄러웠소. 우줴다 산자에몬이 사우나에서 죽었
f. 얼굴이 둥쪽으로 돌려져서,"
   "기가 막힐 일은 야마구치조 놈들이 우리를 의심하고 있다는 거
요."
   "당연히 우리도 의심하fl군요."
   "아마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당신은 그 동안 부하들과 서울에
가 있었으니까 우리보다 덜할 거요."
   "그런데 서울 소식 좀 자세히 들읍시다. 양승일이' 심장마비로 죽
은 것이 아니라고 하던데.총에 맞았다고도 하고 칼에 렸다고도 하
던데, 내막을 아시오?"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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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한모긍에 위스키를 삼킨 기무라가 여자들을 둘러보았다.
   "여자들을 내보내 주시오. 말씀 드릴 것이 있습니다. "
   "1럽Alf."
   천기석이 금방 여자들을 방 밖으로 내보내고 나서 자리를 고쳐 앉
았다.
   "무슨 이야기요?"
   "천 실장인 도와 주셔야겠소."
   기무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야마구치조는 이제 양승일의 조직을 거의 흡수해 놓은 상태요.
서울의 신 회장이 남아 있지만 정치력이나 자금, 조직 면에서 열세라
우리가 도와도 놈들을 견제하기가 어렵습니다. "
   "그러나 놈들은 당장에 신 회장을 치지는 않을 져니다. 지금 위축
되어 가고 있으니만치 조금 더 기다렸다가 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
겠지요. 나라도 그렬게 할테니까."
   술잔을 젼 채 천기석이 뚫어질 듯이 기무라를 바라보았다. 기무라
가 말을 이었다.
   "놈들의 목표는 o]곳 부산이오. 당신들과 우리란 말입니다. "
    "일본에서 대부대가 몰려온다는 정보를 얻었소. 부산으로 말이
오."
    "으음 "
    천기석의 꾹 다문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번쩍 눈
을 치켜 뜨고 기무라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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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다면 놈들의 목표는 우리와 당신이로군?"
"그렇소. 일차 목표는 우리지만 주 목표는 당신네 조직이오."
   "우리를 제거하고는 그 자리에 양승일의 부하들을 심어 놓을 거
요. 그렇게 되떤 당신들과 그들의 싸움이 시작되지."
"당신들은 머지않아 사라지게 될 거요."
"재수없는 소리 ."
천기석이 뱉듯이 말했다.
"우리가 그렇게 호락호락할 것 같은가?"
"우리도 마찬가지요."
어깨를 편 기무라가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우리도 병사를 모으고 있소. 놈들 생각대로는 안될테니까."
   "사흘 후에 조직의 보스급들이 도착하게 됩니다. 부회장께서도 오
시고. 그때 당신들과 같이 작전 계획을 세우도록 합시다. 이 말씀을
전하려고 만나자고 한 거요."
   "좋소. "
   머리를 커다랗게 』1덕인 천기석이 술잔을 들었다.
   "우리도 준비를 하겠소. 당신들이 올 때까지 말이오."
   해운패 구청 근처에 신축된 5층건물이 비어 있었던 것은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은 때문이기도 했지만 임대료가 비쌌기 때문이었다.
건물주는 좋은 재료로 단단하게 지었다면서 임대료가 높은 이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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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었지만 한국 사람 중에 그런 조건에 흑할 사람은 없다. 이동천이
군소리 않고 부르는 가격대로 5충 전체를 임대하자 건물주는 기뻐서
눈물을 홀릴 것같이 보였다.
   연건평이 5백 평이 넘는 건물이어서 처음에는 빈집에서 귀신이라
도 나을 것같이 을씨년스러웠지만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자 차
츰 규모가 잡혀 갔다.
   우선 당장 회사 등록을 하고 일을 시작할 형편이 아니었는데도 박
철규와 백복동은 분주하게 들락거리면서 회의실과 사무실, 응접실들
을 꾸며 놓았다. 사무실만 꾸며 놓은 것이 아니다. 박철규는 믿을 만
한 부하들을 서울에서 불러모았는데 그 숫자가 스무 명이 넘었다. 그
들은 박철규와 이동천 그리고 양숭일의 친정 라인을 아직까지도 믿
고 있는 사내들이었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 외출했던 이동천이 5층 차무실로 들어서자 박
철규와 백복동이 따라 들어왔다. 그들이 소파의 앞자리에 앉자 이동
천이 방안을 둘러보았다.
   "이곳이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돼. 지금이 중요한 시기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백복동이 말했다.
   "호텔이나 여관에 박혀 있는 것보다는 이곳이 횔씬 안전합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말씀 드리는 쩜니다. "
   "온 야마구치조와 아이즈 고데츠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거야. 도
화선에는 우리가 불을 붙여 놓았지만."
   그는 두 사내의 얼굴을 차분한 시선으로 둘러보았다.
   "가토 노부야스와 김양호의 연합 세력을 당해낼 한국 조직은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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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조성표와 신용수가 연합을 한다고 해도. 거기에다 아이즈 세력을
합한다고 해도 말이야."
   "놈들이 우에다를 처치한 것이 우리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다행이
군."
   백복동이 혼자소리처럼 말했다.
   "아이즈 고데츠도 당황하고 있겠숩니다, 형님."
   그의 형님 호칭은 다소 어색하게 들렸다.
   "그령지는 않아."
   이동천이 머리를 저었다.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다고 챘어. 주대흥이 치지 않았다면 자신들
이 했을 것이라고."
   "하긴 우에다는 기무라를 치기 위해 내려오려고도 했었지요."
   "부산은 야쿠자 간의 전쟁터가 될 것이야. 이곳에서 승기를 잡은
자가 곧 한국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
   이동천의 말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최기대는 서른아흡으로 박철규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양승일을 모
시게 되었었는데 그의 전력은 사제 금응 회시치 전무였다. 사제 금응
회사란 아파트나 카드, 또는 자동차 둥을 담보로 돈을 빌려 주는 허
가 없이 운영되는 회사를 말하는데 그는 그곳에서 해결사 노릇을 했
던 것이다.
   대학 중퇴의 학력과 특별한 기술도 없이 한밑천 잡겠다는 꿈에만
부풀어 있던 그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몸뿐이었다. 180센티미터
의 키에 8☞킬로그램의 단단한 체격에다가 어렸을 때부터 유도와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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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로 몸을 단련해 온 그는 이제까지 싸움에 져본 적이 없다는 것이
 자랑이었다.
    금융 회사의 전무로 잘나가던 그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일년쯤이
 지난 후였다. 그는 아파트를 담보로 3천만 원을 빌런 채무자를 그저
 위협만 할 생각으로 가볍게 밀었는데 벽에 머리를 부딪친 여편네가
 뇌진탕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 길로 도주한 최기대를 구해 준 사람은
 지금은 공동 묘지에 묻힌 우길만이다.
    소개장을 들고 간 최기대를 과장으로 채용하면서 우길만은 네 뜻
 을 펼 수 있는 곳이 이옷이라고 말해 주었는데 그것은 맞는 말이었
 다. 이제 최기대는 우길만이 차지하고 있던 동원 기획의 대표 이사
사장 자리에 앉아 있었고 그의 미래는 활착 열려 있는 셈이었다.
    최기대가 회의실에 들어서자 자리에 앉아 있던 사내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사래들은 스무 명이 넘었는데 모두 쳐기대가 고르고 고른
직속 부하들이었다.
    그가 자리에 앉자 사내들도 따라 앉았다. 아침 9시 정각이었다. 수
금 날짜를 어김없이 챙기는 옛날 버릇이 배어 최기대의 시간 관념은
철저했다.
    "모두 모였습니다, 사장님 ."
   오른쪽의 첫4 자리에 앉은 조태환이 말했다. 그는 최기대의 심복
으로 이번에 동원 기획의 부장이 되었는데 최기대와 함께 양승일을
친 공로 때문이다.
   최기대는 사내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제 그는 동원 그룹의 실
질적인 이인자였다. 대여섯 명의 고참 선배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로
봇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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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회의는 회사의 하반기 목표 달성을 위한 회의다. "
    최기대가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인지 모두 알Tf지?"
    굵은 목소리로 사내들이 일제히 대답하자 최기대는 말을 이었다.
   "오늘 우리의 모임,그리고 부산으로의 이동은 철저히 비밀로 해
야 한단 말이다. 한 사람의 경솔한 짓으로 사업 전체가 잘못 될 수도
있다. "
   회의실 안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긴장에 싸여 있었다.
이것이 서울에서의 마지막 회의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그
들은 부산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도 알고 있었다.
   "물론 일련 친구들도 내려가겠지만 우리와는 따로 움직이게 된다.
하지만 표면에 나타나는 것은 우리들이야. 그들은 우리를 지원하는
역할을 한단 말이다. 만일의 경우에 너희들이 노출되더라도 그들과
는 아무 관계 없는 것으로 해야 한다. 이 말을 명심하도록."
   오늘의 회의는 전송식의 의미를 띠고 있었다. 이 기회에 최기대는
부하들에게 다시 한번 다짐을 해놓은 것이다. 가토 노부야스가 누누
이 강조한 사항이어서 가볍게 넘길 수가 없는 일이었다.
   최기대가 얼굴을 펴고 부하들을 둘러보았다.
   "출발은 오늘 밤이다. 나중에 무용담을 이야기하면서 한잔 근사하
게 마시자. 나는 너회들의 공적을 잊지 않을 것이다. "
   "이만큼 만들어 놓은 것도 모두 동무의 공적이야. 동무가 돕지 않
았다면 배장근이는 이미 시체가 되었을 거야."
   윤경산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66 밤의 대통령 제식근 -교
    "지금도 마찬가지야. 우리가 손을 몌면 배장근이는 당장에 죽을
목숨이지 "
    아침 햇살이 내리쪼이는 제방의 돌계단에 서 있는 그들 옆으로 어
깨에 짐을 멘 사내들이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어젯밤에 공해상에
서 받아 온 짐을 모텔로 나르는 것이다.
   사내들이 지나가자 윤경산이 김달수를 바라보았다.
   "밀로체프 동지는 이 사실을 알면 당장에 배장근이를 처형하실 것
이네, 그리고 그에게 동조하는 자들도 말이야."
   "고문관 동지, 배장근 형님 없이는 부산에서 기반을 굳힐 수가 없
습니다. "
   김달수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무도 배장근 형님처럼 이렇게 일을 해내지 못했을 겁니
다. "
   "나에게 감시를 붙이고,밀로체프 동지에게 연락도 하지 못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배신자로 처형될 수 있어."
   윤경산이 힐끗 계단 위쪽을 바라보았다. 배장근이 붙여 놓은 감시
자는 모텔의 현관 쪽에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가 움직이면 조형
근이 미리 알려 줄 것이다.
   "배장근에게 몇 번이고 말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어,놈은 자기
식으로 조직을 운영하겠다는 거야. 이익금은 반분하고 한국의 일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Tf다는 것인데."
   입맛을 다신 윤경산이 김달수에게 한걸음 다가섰다.
   "잘 들어, 김 동무. 이대로 있다가는 밀로체프 동지가 가만 있지
않을 거야."
                                                  소탕 준비 67
   "배장근을 따르는 놈들은 대여섯 명밖에 되지 않아. 나머지 조선
족들은 모두 사할런이나 블라디보스토크에 가족을 가진 동무들이야,
내 말을 따를 거라구."
   "전 가족이 없습네다. "
   "청진에 부모가 살고 있었지.지금은 자강도의 정치범 수용소로
을겼지만."
    "동무도 잘 알지만 지금도 나는 북조선 권력충과 제법 줄이 울단
말이야.동무 부모를 뻬내 오는 것은 일도 아니야."
    "지금 배장근 형님을 제거하면 안됩니다. "
   "지금 하겠다는 것이 아니야, 동무."
   윤경산의 두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그리고 동무더러 나서라는 것도 아니야. 동무는 내 간단한 심부
름만 해주면 된단 말이야."
    "오늘 시내에 나가거든 어젯밤 도착한 바린스크 호의 선장을 만나
주게. 아마 배에 있을테니까. 그 사람에게 이것을 밀로체프에게 전문
으로 보내 달라고 하면 돼. 내 부탁외라고 말하면 두말하지 않을 거
야. "
   그는 주머니에서 종이 쪽지 하나를 꺼내어 재빠르게 김달수의 주
머니에 집어 넣었다.
   "동무가 배장근이와 친밀해진 것은 알아. 하지만 조직과 가족을
회생시키면서까지 무모한 짓을 할사람은 아니야."
68 밤의 대통령 제길준 -ll
   그는 김달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는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배장근이는 날 어떻게 하지 못해,알Td나?그렇게 되면 당장에
이곳은 잿더미가 되거든. 놈은 시간을 끌면서 제 위치를 굳히려고 하
는 거야. 어림도 없는 수작이지."
   계단에 발을 디딘 그가 김달수를 향해 머리만을 돌렸다.
   "동무가 배장근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거야.나는 확신하네."
   오정한 검사가 다가가자 정동재 부장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온
얼굴이 주름으로 덮여 있어서인지 웃는 모습을 처음 보는 사람이면
그웃음에 따라 웃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로 가슴이 푸근해진다. 그러
나 여러 차켸 보아 온 오정한이다. 감동은커녕 어떤 배경이 깔려 있
을까부터 염려가 되었다.
   "부르셨습니까?"
   앞자리에 앉으며 묻자 정동재가 커피잔을 쥔 채 머리를 끄덕였다.
아직도 웃음기가 얼굴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점심 시간이어서 막 식
사를 마친 직원들이 커피숍 이쪽저쪽에 모여 앉아 있었다.
   "이동천이가 해임되고 나서 행방을 감추었어. 엊그제 지검장 앞으
로 사직서를 우송해 보냈다고 하더군."
   오정한도 알고 있는 일이었다. 동료 검사들 사이에서 요즘 화젯거
리는 대부분 』!에 대한 것이었다. 갑작스런 인사였고 내용도 충격적
이었기 때문이다
   "그자가 죽은 양승일의 사위가 될 뻔했다는 것을 아나?"
   "들었습니다. "
   "나도 요즘에야 들었어. 재산을 보고 딸한테 접근했다가 양승일이
                                                 소탕 준비 69
죽기 전에 파약을 시켰다고 하던데. 자네도 그렇게 들었어?"
   "예, 대충."
   "야침이 딸은 놈이었어, 그 친구 "
    "이런 식으로 소문이 뿌려지면 변호사 개업도 어려울텐데. 러정이
군. "
    오정한이 잠자코 있자 그는 자리를 고쳐 앉았다.
    "내가 자네를 보자고 한 것은 요즘 골치를 쌕이는 사건 때문인
fl ."
    "일본 폭력배들 말이야."
    "누구 말씀입니까?"
    "아이즈 고데츠."
    이제 오정한을 바라보고 있는 정동재의 긴장한 얼굴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안기부에서 정보가 왔어. 아이즈 고데츠가 곧 부산에 집결한다고
말이야.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지난번의 사우나 살인 사건 때문입니까?"
   "글쎄,그건 알 수 없고."
   오정한이 피살자들의 신원을 일본측에 조회했지만 아직 회신을 받
지 못했고 의식을 회복한 사래는 이쪽에서 말을 붙일 기회조차 주지
않고 일본으로 옳겨진 것이다.
   정동재가 말을 이었다.
   "아이즈의 조직원들이 오게 되면 안기부에서 연락을 해주기로 했
70 밤의 대통령 제4부 -ll
어. 그때 내간 자07에게 알려 줄테니 대기하고 있어. 그 말을 하려고
지헤를 부른 거야."
   "그렇다면 잡는 겁니까?"
   "어설프게 건드리면 괜히 외교 문재가 되어서 시』1러워져. 그러니
보안을 유지하고."
   "그건 알고 있습니다. "
   이제는 오정한의 얼굴도 긴장으로 굳어졌다.
   "부장님, 아이즈 고데츠가 조성표와 관계가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
다. "
   "조성표도 감시 대상에 둘까요?"
   "그릴 필요는 없어."
   정동재가 식은 커피잔을 들어 한모금을 마시고는 내려놓았다.
   "이제까지 조성표는 연루된 적이 한번도 없어. 다만 소문만 있었
을 뿐이야."
   "형님, 다 온 모양이오."
   보트가 선착장으로 다가가자 주대홍이 말했다.
   벼락 밑에 배 한 척을 겨우 댈 수 있는 나무 판자로 만들어진 선착
장이었다. 서너 명의 사래들이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들
위쪽으로 벼랑 끝까지 구불구불한 돌계단이 나 있는 것이 보였다.
   "여그가 소굴인 모양이네."
   주대홍이 다시 흔자소리를 했다.
   가 닿자 보트에 타고 있던 사내 하나가 선착장에 서 있는 사래
                                                   소탕 준비 11
 애게 로프를 던졌다.
     "어서 오십시오, 검사님."
     사내들 중의 한 명이 막 배에서 내리는 이동천에게로 다가와 머리
 를 숙였다. 김달수였다.
     "난 이제 검사가 아냐."
    이동천이 말하자 그는 다시 머리를 숙였다.
    "알고 있습니다, 검사님."
    주대흥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그들은 앞장을 서서
 계단을 오르는 김달수의 뒤를 따랐다.
    배장근은 그들이 계단을 다 올라왔을 때 마당을 가로질러 다가왔
 다.
    "어서 오십시오."
    이동천의 손을 잡으며 그는 힐끗 주대흥을 바라보았다-
    "이쪽은 배 사장, 여긴 내 동생 주대흥이오. 인사하게."
    배장근과 주대홍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 죽이려 들던 관계였
다. 주대홍은 배장근을 죽이려고 쇗집에 쳐들어가 그의 부하 두 명을
죽였고 배장근은 주대흥의 동생인 고덕균을 죽였다. 그들은 건성으
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들 일행은 모텔의 커피숍에 들어가 앉았다. 사내들만 보이기 때
문인지는 몰라도 분위기는 삭막했다. 배장근의 표정도 언제나처럼
굳어 있었다.
   "마치 요새처럼 단단하군. 모텔 뒤쪽은 확 트인 황무지라고 들었
는데. 이만하면 자궈잡고 일할 만하겠소."
   이동천의 목소리는 가벼됐다. 분위기를 밝게 만들려는 의도였다.
72 밤의 대통령 제살1-ll
   "난 5충 빌딩을 임대해 들어갔지만 시내 찬복판이야. 경찰서가 한
블록밖에 떨어지지 않았어."
   "축하 드려야겠군요, 자리를 잡으셕서."
   배장근이 입을 열었다.
   "그 전애 일어났던 일들은 화제얘 을리지 않겠습니다. "
   "고맙소, 배 사장."
   얼굴에 웃음을 떤 이동천이 배장근을 바라보았다.
   "내 배경에 양 회장의 조직이 있고 얼는 것에 제일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당신이오."
   "난 내 앞길도 바뽐니다. 먼 앞날을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
   그러면서 배장근이 옆에 앉은 김달수애게 머리를 돌렸다.
   "준비한 물건을 가져와."
   "41, 형님."
   김달수가 일어나 서둘러 커피숍을 나갔다.
   모텔의 좁은 로비와 2층의 충계 부글, 그리고 현관 쪽에서 사래들
의 말소리가 들려 왔는데 귀를 기울여 들으면 대부분이 이북 사투리
였다. 억센 발음으로 누군가를 부르고 꾸짖고 지시를 하고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고문관이 왔습니다. "
   배장근의 빠른 말투에 이동천이 머리를 들었다.
   "날 감시하고, 지시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놈인데, 지금 부하들
을 선동하고 있어요."
   그가 서두르듯 말을 이었다.
   "나도 심복을 몇 명 만들어 놓았지만 모두가 러시아에서 온 놈들
이어서,"
                                                  소탕 준비 73
   "고문관을 제거하면 당장애 러시아에서 수십, 수백 명이 몰려들어
올 겁니다. 그렇다고 그놈 지시를 받을 수도 없고."
   "당연히 려어야 할 일이야."
   그때 김달수가 커다란 트렁크를 든 사래 두 명과 함 커피숍으로
들어섰다.
   "가져왔습니다, 형님 ."
   사태들이 탁자 위에 트렁크를 겨우 내려놓자 김달수는 자물쇠를
풀고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각종 총기와 실탄 그리고 수류탄까지 가
방에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이 드러났다. 무기들은 기름이 잘 발라져
반질거리며 윤이 났는데 모두 새것이었다.
   "주문하신 대로 모두 준비뤘숱니다. "
   배장근이 말하자 이동천의 눈짓을 받은 주대흥이 들고 온 가죽 가
방을 탁자 위로 밀어 놓았다.
   "약속대로 달러로 가져왔소. 5만 달러요."
   배장근이 가방을 열어 안을 들여다보고는 김달수에게로 밀어 놓았
다.
   이동천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림 우린 가겠소."
   "제가 선착장까지 모셔다 드리지요."
   따라 일어선 배장근이 김달수에게 말했다.
   "배를 준비시궈라."
   "예, 형님, "
   돈뭉치를 뒤적거리던 김달수가 서둘러 일어섰다. 가방 뚜껑을 닫
까 밤의 대통령 제길근 -ll
 은 주대흥은 가방 손잡이를 쥐고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올렸다.
    이동천과 배장근은 모델의 현관을 나와 차단 쪽으로 걸어갔다.
    "적진에 떨어진 형상이로군. "
    옆에서 걷는 배장근을 향해 이동천이 불쑥 말했다.
   "하지만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지. 내가 살아가는 것처
럼."
    이동천을 배웅하고 2층의 방으로 들어서는 배장근에게 오세미가
다가왔다. 머리를 뒤쪽에서 묶어 올렸고 반팔 셔츠와 진 바지 차림에
발에는 농구화를 신었다. 그녀는 잠자코 배장근을 따라 방으로 들어
섰다.
   "윤경산이 온 후로 집안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소파에 앉으면서 그녀가 말했다.
   "모여서 수군대는 사람들이 많아요.내가 다가가면 말을 그치고."
   "놈이 편가르기를 하고 있는 거야."
   그녀의 앞쪽에 앉으면서 배장근이 웃었다.
"어느 정도 피아가 확실해지면 놈은 날 밀어내T%지. 아마·
"아마, 뭐예요?"
"날 제거할 거야."
"우리 편은 몇 명이나 되죠?"
   "글, 업체 사장들하고 이곳에서 고용한 인원은 일단 내 편이라
고 보아도 되겠지만 결집력이 약해서 보스가 누가 되든 따라갈 놈들
01 TfOl."
                                                 소탕 준비 75
   "날 끝까지 따를 사람은 아마 네댓 명 정도."
   "김을수 씨는 어때요?"
   "알 수 없어."
   시선을 내린 배장근이 오새미의 허리춤을 바라보았다.
   "권총을 넣고 있군."
   "사격 연습도 했어요."
   "밀로프는 한국 일을 나에게 일임한다고 약속했었어. 그 말을
믿은 내가 잘못이지만."
   "없애요, 그 두 놈을. 그러면 분위기가 정돈될 거애요."
   오세미가 눈을 치켜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도무지 그자들이 마음애 걸려서 밖에 나갈 수도 없어요."
   "김달수도 믿을 수 없다면 그자도 없애요.나쁜 자식 같으니. 언제
는 동생처럼 갖은 아양을 떨더니."
   "그때는 전쟁이야."
   배장근이 부드럽게 말했다.
   "당장에 이쪽은 진정이 된다고 하덕라도 밀로체프가 특공대를 보
낼 거야. 그렇게 되면 여기 남아 있는 놈들 상당수가 동조할 것이고.
조직은 깨져."
   "그렇게 되기를 밀로체프가 바라지는 쟈겠지요? 당신이 없으면 조
직이‥‥‥‥
   "김달수가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밀어붙이겠지."
   "그러니까 그자까지 없애야 해요."
   그러자 배장근이 웃었다.
76 밤의 대통령 제4부 -H
"당신은 보기보다 잔인한 성격인 모양이야."
"적응해 가고 있어요."
오세미가 금방 대답했다.
"이젠 어설프게 감상에 젖거나 망설이지 않아요."
"조금 전에 이동천 씨에게 이야기를 했어."
"지금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빨이야.물론 당신은 례고."
   핸드폰을 귀에 댄 천기석은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밤거리의 불빛이 가장 화려하고 생기 있게 보이는 시간이었다. 밤
10시경이 되면 밤의 세계는 활짝 열린다. 아룅을 맞는 것처럼 새롭게
단장한 사람들과 건물, 그리고 거리가 온통 활기를 띠는 것이다.
   "여보시오."
   "아,천 실장.납니다. "
   저쪽의 웅답소리에 천기석은 의자에서 둥을 몌었다. 기무라애게
서 온 전화였다.
   "아, 기무라 씨. 지금 어디 계시오?"
   "부산에 있습니다. "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나뿐만 아니라 사장님께서도."
   "내일 모두 도착합니다. 그래서 그쪽과 만나야겠는데."
   "우린 모두 준비하고 있어요.그래, 언제가 좋33!소?"
   "내일 저녁."
   기무라가 거침없이 말했다.
   "내일 저녁 8시로 시간을 정합시다. 장소는 우리가 한 시간쯤 전
                                                 소탕 준비 77
에 알려 드리기로 하지요."
    "알겠소, 기무라 씨.그런데 부회장께서도 오실 거요?"
    "물론이오. 실무자급 간부들하고 같이 오십니다 부회장께서는 내
 일 구체적인 작전 계획까지 말씀하시게 될 저오.."
    "우리도 준비를 하지요."
    "그런데 참."
    잊었다는 듯이 기무라가 말했다.
    "야마구치조에 대해서 들어온 정보가 있숱니까?"
    "아직 확실한 건 없소. 하지만, "
    "하지만 뭐요?"
    "그들이 당신들을 노린다는 소문은 있어요. 이건 서울 쪽에서 흘
러온 이야긴데."
    "그럴태지."
    기무라가 가볍게 말했다.
   "당연한 일이오, 그건. 우아다의 복수를 하지 않으면 우선 체면이
서지를 않을테니까."
   "그림 내일 연락 기다리겠소."
   "그쪽도 준비를 단단히 해주시오. 양쪽 조직의 간부급 회의가 될
데니까 "
   "그쪽 인원은 몇 명이오?"
   "부회장님 포함해서 간부급이 일곱, 부하들이 50명 가량 됩니다.
   "숙소 준비는 안해도 되겠지요?"
   "서울에서 오는 사람도 있고 오사카,도쿄, 고베 등지에서 제각기
모이게 되니까 흔란스러울 거요. 고맙지만 사양합니다. "
78 밤의 대통령 제살L _ll
   전화가 끊기자 천기석은 게 숨을 내쉬고는 창 발을 바라보았다.
이제까지 창 밖을 보며 통화를 했지만 지금아서야 사물이 눈에 들어
오고 있었다.
    "내일 8시에 아이즈의 안도섭 부회장과 간부들이 이곳에 모인다. "
    최기대가 방안에 모인 사내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간부급으로 나
이는 30대 초반에서 중반까지였는데 공명심에 가득 차 있는 표정들
이다.
    "놈들이 모이는 목적은 조성표와 연합하여 우리를 치겠다는 것이
Ot. "
    그러면서 그가 빙그레 웃자 사래들도 소리없이 따라 웃었다.
    "선수를 치겠다는 것이지. 우리가 우에다의 복수를 하기 전에 말
이야."
   사내들의 얼굴을 둘러본 최기대가 헛기침을 했다.
   이들 중 우에다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조태환밖에 없을 것이다.
야마구치조와의 동맹 관계는 윗대가리들이 정책적으로 맺은 것이어
서 중8: 간부급들조차도 그들과 접촉해 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따라
서 형제라는 개념이 회박했고 복수 운운 하는 것도 스스로 어색하게
느껴진 것이다.
   "싹 쓸어버리고 서울로 올라가자."
   최기대가 말을 바꾸었다.
   "이번 일로 한국의 판도가 결정되는 거다. 사장님깨서도 말씀하셨
어."
   "조성표 쪽은 몇 명이 나옵니까?"
                                                   소탕 준비 79
   조태환이 재빠르게 말을 받았으므로 최기대는 탁자 위에 놓인 종
이를 내려다보았다. 그가 백지 위에 어지럽게 칼겨쓴 것이 보였는데
다른 사래들은 보면서도 무슨 내용인지를 알 수 없었다.
   "조성표는 늦게 나온다고 해놓고는 안 나을 것이고."
   그가 종이를 보면서 말했다.
   "천기석과 네 명의 보스급 부하들이 회의에 나간다. 그들은 회의
장소에서 적절하게 우리를 도와 주도록 되어 있어."
   "회의 장소를 한 시간 전에 아이즈측에서 알려 주기로 했다는데,
장소가 특별하면 어떻게 합니까?예를 들어 배에서 한다든가."
   부하 한 명이 묻자 최기대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럴 경우도 생각해 두었어. 하지만 우리가 침투하지 못할 경우
는 없을 것이다. 모든 상황은 우리 편이야."
   "보스급은 한 명도 놓치지 않고 없애야 한다. 실수하지 않도록."
   최기대가 다짐하듯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벽시계가 저녁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시간에 바닷가의 모델 안애서는 윤경산과 김달수가 식당에 마
주앉아 있었다. 식사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식당 안에는 안룰에 있는
=I들과 입구 쪽에서 =1들을 힐끗거리며 앉아 있는 사래까지 세 사람
이 있을 뿐이다.
   "저놈은 이재 러시아에 돌아갈 생각이 없는 모양이군 "
   윤경산이 사내를 눈으로 가리키며 낮게 말했다.
   "러시아에 가족이 없는 놈은 앞으로 이쪽에 보내지 말아야겠어."
80 밤의 대통령 제』녈 -ll
"배 사장의 심복입네다, 고문관 동지."
"흥, 언재는 동무도 심복 아니었나?"
입술을 찌푸린 윤경산이 김달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전문은 분명히 전했지?"
"예,·고문관 동지 선장인 파스킨애게 전했습니다. "
"좋아, 앞으로 일주일 후면 특공대가 온다. "
   "해야 할 일이 많아. 북한에서 구입한 마약이 15톤이나 있어. 한국
에서 소비를 시키고 이곳을 기점으로 일본과 미국, 유럽까지 시장을
넓혀야 돼."
   "배장근이가 고용한 업체 대표들은 동무가 설득시키도록 해, 다른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이야. 하지만 놈을 따르는 심복 몇 명은 처
치해야겠어. 배장근의 정부까지."
   "여자까지 말입니까?"
   "당연하지. 화근은 없애야 돼."
   "놈이 마약 판매는 위험하다면서 한사코 마약을 들여놓으려고 하
지 않길래 내가 온 거야. 그런데 오길 잘했어.조금만 더 시간을 끌었
다가는 이곳이 완전히 배장근의 소굴이 될 뼘했어. 우리는 돈과 인력
만 날리고."
   말을 그친 윤경산이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런데 배장근이는 밤에 어딜 간 거이?"
   "밀수 조직 보스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
                                                  소탕 준비 81
    "소문은 이미 들었어, 돈 생기는 일이라면 무슨 짓이든 한다는 놈
들 아닌가?"
    "그렇습니다, 고문관 동지."
    "그런 놈들은 다루기 쉽지."
    입구 쪽에 앉아 있던 이명오÷가 헛기침을 했다.
    김달수가 한국 조직의 이안자였으므로 섣불리 나서지는 않았지만
얼굴이 찌푸려 있는 것을 보면 초조한 모양이었다. 이명오는 배장근
에게서 윤경산과 김달수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도록 하라는 지시를
받지는 않은 것이다.
   "일주일만 기다리자구."
   웃음 떤 얼굴로 낮게 말한 윤경산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날 이렇게 감시하는 것만으로도 저놈은 처형감이야."
    주대홍은 손을 뻗쳐 손달섭의 목덜미를 쥐었다. 그러자 막 도망치
 려던 손달섭은 머리와 하체만 앞쪽으로 뽑아져서 몸이 둥글게 휘었
다.
    "이 쌍노무 시키."
    얼굴이 대춘빛이 된 주대홍이 와락 한 손을 휘두르자 손달섭의 몸
이 날아 소파 위로 떨어졌다. 창 뷔으로 던졌다면 유리창을 깨고 5층
아래의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졌을 것이다.
   소파와 함께 넘어진 손달섭이 겨우 상반신을 세우자 주대흥이 손
가락을 벌려 그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이 도적놈의 시키 "
   그가 냄비만한 주먹을 불끈 쥐고 쳐들었을 때 방문이 열리더니 박
82 밤의 대통령 제』부 -ll
 철규가 들어섰다.
     "이봐, 대흥이. 멈춰!"
     그가 소리치자 주대흥이 머리만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는 거여?"
    "무슨 일로 그러는 거이?"
    밖헤서 소동을 듣고 들어온 박철규도 눈을 치켜 뜨고 있었다.
    "왜 사람을 죽이려고 그래?"
    "상관허지 말어."
    그는 아직도 손달섭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있었다.
    "이건 내 일여. 넌 빠져."
    "너라니? 이 자식이."
    박철규가 어깨를 펴고 주대흥에게로 다가갔다.
    "보자보자 하니까 이 자식이 위아래도 몰라보고. 야 인마, 너 나이
가 몇이야?"
    "서른 살이다, 이 자식아."
    머리칼에서 손을 텐 주대흥이 발끝으로 손달섭의 허리를 가볍게
지르자 자지러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났다. 주대홍은 박철규의 앞에
버티고 섰다. 박철규도 당당한 체격이지만 주대홍 앞에 서자 머리끝
이 턱에 닿는다.
   "너 이 새끼, 마침 잘되었다. 이 참에 분명히 해둬야겠어."
   박철규가 눈을 번쩍이며 말했다.
   "나이도 열 살이나 어린 놈이 기어오르는 꼴은 못 보겠어. 너 이
새끼,내가 누군 줄 알고."
   "벼엉신."
                                                   소탕 준비 83
    입맛을 다신 주대흥이 말했다.
    "위 아래 따지고 살 바에는 내가 여기로 기어오지 않았어, 이 씨발
놈41."
    "뭐라고?"
    "나한테 형님은 딱 한 명이여. 개소리 말고 꺼져, 이 새끼야."
    그러면서 번쩍 몸을 날린 박철규가 발을 뻗어 주대흥의 옆구리를
찼다. 제아무리 주대흥의 체격이 크다고 하더라도 쇠뭉치로 치는 것
 같은 충격에 주대흥은 두 발짝 옆으로 비켜 났다. 다시 빙글 몸을 돌
린 박철규가 발을 뻗었다. 이제는 주대흥의 턱을 노리고 연속으로 차
올렸으나 성큼 몸을 렌 주대홍의 얼굴 앞에서 바람만 일으키고 떨어
졌다.
    "지랄을 하는구만, "
   주대흥이 두 손바닥을 두어 번 덜고는 어깨에 힘을 풀면서 한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뷔에서 백복동이 들어섰다.
   "그만둬!"
   그의 고함 소리에 그들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자 한쪽 구석에
박혀 있던 손달섭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형님, 제가‥‥‥‥
   그러자주대흥이 머리를 돌려 그를 노려보았다.
   "왜 이러는 거야?"
   대머리의 끝부분까지 붉게 달아오른 백복동이 소리치듯 묻자 손달
섭이 앞쪽으로 한걸음 나섰다.
   "형님, 저 때문에‥‥‥‥
   "글쎄, 왜 그러냔 말이야! 빨리 말해!"
84 밤의 대통령 쟤4부 -B
   "제가 주 형님의 돈가방을‥‥‥‥
   백복동은 형사 출신이다. 그리고 손달섭에 대해서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망할 자식 같으니."
   "돈 문제는 둘째여."
   주대홍이 박철규를 쏘아보았다.
   "본래 이 시키 회사 돈이었으니간."
   그는 박철규의 앞으로 바짝 다가가 섰다.
   "니 실력 알었다. 다음번에는 내가 보여 줄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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