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밤의 대통령

3. 분열되는 한반도

오늘의 쉼터 2015. 1. 1. 12:10

3. 분열되는 한반도

 

 

(1)

 

 

분열되는 한반도
   몽테뉴 거리에 있는 아담 부티크 앞에는 행인들이 많았다.

파리의 패션 거리였으므로 관광객들의 한가한 걸음이 보도의 통행 속도를
늦추었고 그것이 더욱 보도를 붐비게 한다.
   택시에서 내린 고동규가 행인들을 헤치고 불티크 앞으로 다가가자
어느 사이엔가 동양인 한 명이 그의 옆으로 바짝 붙어 왔다.
   "이쪽입니다, 선생님."
   작은 키였지만 단단한 몸매의 사내였다. 사내가 그를 안내해 간
곳은 아담 부티크에서 50미터쯤 아래로 내려간 길가의 조그만 카페
안이다.
   어둑한 실내를 헤치고 들어선 고동규는 벽 쪽의 테이블에 앉아 있
는 시바다 겐지를 알아보았다. 병맥주 한 병을 테이블 위에 세워 놓
고 있던 그가 다가오는 고동규를 향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어서 오십시오, 고 선생."
90 밤의 대통령 제3부 -및
   그의 손을 잡아 앉히면서 시바다가 말했다.
   "이제 우리가 한잔 할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안내해 온 사내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마주보고 앉았다.
   카페는 왜 넓었지만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들어 차 있었
다. 술냄새와 담배 연기에 숨쉬기가 거북할 만큼 공기도 탁했다. 웨
이터가 시키지도 않은 맥주병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돌아간다.
   시바다가 맥주병을 들었다.
   "우선 연합군의 서전에서 승리한 것에 건배를 합시다. "
   시바다의 밝은 분위기에 마침내 고동규도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아직 시작이오, 시바다 씨. 우리는 겨우 휴전선을 돌파하고 머물
러 있습니다. "
   "하지만 형세는 역전이 되었지요. 지금 북한은 동서로 나눠지려는
판이니까."
   그들은 맥주병의 주둥이를 부딪쳐 건배를 했다.
   맥주 한모금을 삼키고 난 고동규가 시바다를 바라보았다.
   "그 동안 산세 많았습니다, 시바다 씨. 우리 큰형 님께서도 인사를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
   "새삼스럽게 인사는 무슨. 동맹국끼리 당연한 일이지요."
   시바다가 테이블 위에 두 팔굽을 짚고는 상체를 고동규 쪽으로 기
울였다.
   "내가 고 선생을 보자고 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박은채 양 때문입
D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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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은채 양이 몇 시간 전에 공항에서 프랑스 경찰들에게 체포되었
어요."
   "몇 시간 전에 말입니까?"
   "그래요. 그 여자는 자카르타로 출국하기 직전에 체포되었습니다.
지금 경시청에 잡혀 있어요."
   고동규가 굳어진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박은채 씨는 며칠 전에 떠난 줄 알고 있었는데."
   "파리에 남아 있었던 모양입니다. "
   "야단났군."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 여자가 털어놓을 이야기가 많지는 않TR지
요?"
   "없어요. 하지만 우리 일행이었다는 것은 다 알고 있을 것 아닙니
까?"
   "물론이오. 내일 아침의 신문과 방송이 특종으로 보도할 겁니다.
오늘 밤은 철야 조사를 벌일 것이고, 내일 매스컴에 선을 보일 계획
인 것 같습니다. "
   "프랑스 법원에서 재판을 받겠지요. 스위스와 미국 정부에서도 그
여자를 심문할 것이고. 어떻게든 당신들을 찾아내려고 그 여자를 이
용할 겁니다. "
"안됐어요.유감입니다. 그 여자가 말이오."
고동규가 굳어진 얼굴로 시바다를 바라보았다.
"가서 큰형 님에게 말씀 드려야겠습니다. "
92 밤의 대통령 제3부 -111
     "경계가 삼엄해서 다른 생각은 안하시는 것이 낫습니다. "
     "그건 알고 있어요."
     "그리고, 고 선생."
    시바다가 다시 고동규에게로 상체를 기울였다. 카페 안의 소음이
 컸으므로 그들의 목소리도 컸다.
    "최광 씨는 당신들과 같이 행동할 생각이던가요?"
    "그런 모양히오."
    "한국이나 미국, 또는 우리 일본 정부에 망명할 의사는 없습니
까?"
    "아직 그것은 모릅니다. "
    "이을설 차수와 자주 연락을 하겠지요?"
    "예, 자주."
    "최쾅과 이을설이 무슨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무
 슨 말 하지 않던가요?"
    "나는 모릅니다. 그 사람과 직접 이야기해 보지를 않아서."
    "고 선생, 그것을 알아내야 합니다. 대단히 중요한 일이오."
    시바다가 눈을 치켜뜨고는 또박또박 말했다.
   "그래야우리 연합군이 이을설 씨의 1군단과손발을맞출수가있
단 말입니다. 우리 연합군 사령부에서는 그 계획이 필요합니다. 아시
겠소?그들은 계획 없이 움직일 노인들이 아니란 말이오."
   "알겠소. 큰형 님에게 말씀 드리73소."
   "최광 씨의 정보로 우리는 기갑 여단을 진격시켰소. 그리고 그것
이 성공을 했고, 이제는 다음 계획을 말해 줘야 우리가 손발을 맞출
수가 있는 겁니다. 이대로 군대를 멈춰 두고만 있다가는 기회를 놓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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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회담도 북한이 거부를 했으니 말이오."
   시바다의 두 눈이 흐린 불빛을 받아 번들거리고 있었다.
    방문 앞에서 안내해 온 안기부 요원이 몸을 돌리자 지희은은 숨을
 들여마시고는 노크를 했다.
    그러자 곧 방문이 안에서 열리면서 김원국의 모습이 나타났다.
    "들어와."
    옆쪽으로 비켜 서면서 그가 말했다. 문을 닫은 김원국이 주춤거리
 는 지희은에게 손으로 의자를 가리켜 보였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 김
 원국도 앞자리로 가 앉았다.
    "부친 장례식은 잘 치렀지?"
    "예.. "
    날카로운 김원국의 시선이 직선으로 부딪쳐 오자 그녀는 머리를
돌렸다.
    "우리 일을 도우려고 왔다면서?"
    "네, 하지만."
    더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일을 돕기는커녕 콩코르드 광장을 얼정
거리다가 하마터면 북한 공작원에게 끌려 갈 뻔했던 것도 김원국이
알고 있는 것이다.
   "부친의 복수를 하고 싶었나?"
   김원국이 묻자 지희은이 머리를 들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네, 그래요."
   "가족의 복수는 옛날 우리나라에서도 허용해 주기도 했지. 가장 .
치열한 감정이 생기는 법이니까."
94 밤의 대통령 제3부 -템
   "그런데 날 보자고 한 것은 무엇 때문이야?"
   "전 이제 스위스를 떠났어요.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그렇다면 한국으로 들어갈 셈인가?"
   "아직 그럴 생각은 얼습니다. "
   김원국이 잠자코 있었으므로 그녀가 말을 이었다.
   "저에게 일을 주세요. 일하겠어요."
   "그것 좋은 생각이야. 나라를 위해 일할 생각이라면 이곳 파리에
서도 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주선해 줄테니까."
   "같이 일하고 싶어요. 절 데리고 있어 주세요."
   "이건 직장에 들어오는 것하고는 달라. 너도 잘 알고 있겠지만."
   얼굴이 하얗게 굳어진 지희은이 김원국을 바라보았다.
   "다쓴 곳은 가지 않Td어요. 전 같이 일하려고 이곳까지 따라온 겁
니다. "
   "무엇인가 일을 해야 돼요. 그렇다고 평범한 일을 한다면 아마 미
쳐 버릴 거예요. 전 선생님과 여러분에게 빛을 갚을 것도 있어요."
   #‥‥
   "절대로 폐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저를 데리고만 있어 주신다면
요."
   한동안 그녀를 마주보던 김원국이 이윽고 머리를 끄덕였다.
   "옆방에 북한의 최광 주석이 있다, 최성산 대좌와 함께. 우리가 보
호하고 있는데 네가 맡아라.감시도 하고 심부름도 하는 역할이다. "
   "고맙습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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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희은의 얼굴이 금방 환하게 풀렸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
   "칠성이를 만나 내 이야기를 하도록 해. 아래층에 있을테니까."
   김원국이 턱을 들어올리자 지희은은 몸을 일으켰다. 들어설 때와
는 달리 그녀의 몸놀림에는 생기가 섞여 있었다.
   이을설 차수는 상황판 위에 펼쳐 놓은 지도를 내려다보며 서 있었
다. 그의 옆에 있는 장군은 어제 저녁 함흥에서 날아온 제7군단의 참
모장 강백진 상장이었는데 그는 이제 이을설 휘하 부대의 참모장이
되었다.
   제7군단은 3개 사단과 5개 여단을 거느린 2선 부대였지만 동군
(이을설의 부대 약칭)의 허리 역할을 했다. 7군단사령관송연철은
최광의 측근이었고 군단의 거사 소식을 듣자 즉시 부대를 장악하고
강백진을 보낸 것이다. 그것은 이을설과의 사전 합의에 의한 것이었
지만 회양의 1군단 사령부는 강백진의 등장으로 사기가 부쩍 오르는
중이었다.
   입춘이 지났지만 아직도 날씨가 쌀쌀한 』월 11일의 오후 9시였다.
남조선과 일본의 연합군 1개 부대가 휴전선을 밀고 들어온 지 만 사
흘이 지난 밤이다.
   한일 연합군은 제51사단의 전위 부대인 수색 중대 1개 중대를 전
멸시키고는 그들의 거점인 215고지를 앗아 진지를 보강하는 중이
다. 그들은 이미 1개 사단 가까운 병력을 공화국의 영토로 진주시켰
지만 이을설은 코앞의 그들을 내버려 두고 옆쪽의 제』군단에 대한
경계를 강화시켰다.
96 밤의 대통령 제3부 -템
   이을설이 입을 열었다.
   "제6군단의 38,43사단이 우리측파합류한다면 이미 합류 의사를
밝힌 2개 여단과 합해서 6군단의 반 이상의 전력이 우리측이 된다. "
   "그렇습니다. 유사시에는 43사단을 시켜 6군단 사령우를 점령할
수도 있습니다. "
   강백진이 대답하자 이을설이 머리를 저었다.
   "6군단 사령관이 곧 연락해 올 것이다. 조금 기다렸다가 움직여도
그쪽은 문제될 것이 없다. "
   각각 3개의 사단과 여단을 보유하고 있는 제』군단의 부대 중 사령
관이 장악한 것은 각각 한 개씩의 사단과 여단이다. 더욱이 부대 위
치가 함경북도 김책 근처에 있어서 이쪽과는 자리가 멀었다. 그러나
원산의 동해 함대 사령부와 공군 기지,미사일 기지는 모두 이쪽에
의해서 장악되고 있다. 북한의 19개 군단 중에서 이미 다섯 개의 군
단이 이을설의 지휘를 받고 있었는데 나머지 군단도 모두 김정일에
게 충성하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 군 사령관들은 얼마든지 마
음을 바괄 수가 있는 것이다.
    북한은 지금 양분되는 중이었다. 이을설과 김정일은 제각기 빼앗
 고 빼앗기지 않으려는 치열한 설득과 회유 작업에 매달리고 있었다.
    김정일이 제46잔악 여단으로 이을설을 제거하려다가 실패한 것이
 알려지자 양장도의 제9군단사령관이 이을설에게 연락을 해온 것은
 오늘 새벽이었다. 그것은 그가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였는데 김정일
 과 이을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기로에 서게 되었을 때 대부분
 의 지휘관은 강한 쪽에 붙는다는 것을 이을설은 잘 알고 있었다. 제9
 군단얘서도 이을설과 최광의 심복들은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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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이놈이야."
   이을설이 손끝으로 지도의 한 곳을 짚었는데 그곳은 바로 옆쪽에
있는 평강이다.
   평강의 제5군단에는 5개의 사단과 8개의 여단이 있었고 전차와
야포 등 화력에 있어서도 이쪽보다 월등한 것이다. 사령관 이무성 대
장은 지난 가을에 당의 정치국 후보 위원으로 추천받은 김정일의 심
복이었다.
   "이놈이 우리를 압박하기 전에 장악해 놓아야 돼."
   "총참모장 동지, 제105여단은 곧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김
대좌가 오늘 밤에 여단장을 만나기로 되어 있으니까요·."
   그들에게 참모 한 명이 다가왔다.
   "총참모장 동지, 파리에서 무력 부장 동지의 연락입니다. "
   이을설은 잠자코 그가 건네 주는 헤드폰을 머리에 썼다. 그는 이
제 전의 직책인 총참모장으로 자연스럽게 불렸고 최광도 마찬가지였
다.
   "최광 동지, 이을설이오."
   이을설이 생기 있게 말하자 최광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 왔다.
   "이을설 동지, 진위 수상에게 연락이 되었소. 그 사람과 괘 오랫동
안 이야기를 했습니다. "
   "그렬숨니까? 작지에서 고생이 많습니다. 최광 동지."
   "필요하다면 내가 북경에 들어가 해명하겠다고 했더니 지금은 시
기가 좋지 않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당 원로 회의에 우리 입장을 전
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
    "수고하셨소, 최광 동지. 국경 근처에 있는 부대들에게 좋은 소식
98 밤의 대통령 제3부 -lH
이 되Td습니다. "
   전화를 끊고 나서 이을설이 강백진을 바라보았다.
   "자강도의 제10군단에게 중국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전해라.
김정일을 도와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야."
   "흔들릴 것입니다, 총참모장 동지. 다른 군단들에게도 알려 주도
록 하fl습니다. "
   강백진이 활기차게 말했다.
   "하긴 중국은 김정일을 위해 군을 일으킬 수 없을 것입니다. 상대
가 우리니까 말입니다. "
   "이제 김정일은 남한을 침공할 수 없어."
   혼다 다카오 일본 정보국장이 녹음기의 스위치를 끄면서 말했다.
   "중국측은 오히려 최광과 이을설에게 호의적 이야."
   다다미방에 정좌를 하고 앉아 생각에 잠겨 있던 무라야마 고지 외
상이 머리를 들었다.
   "최광쯤 되는 인물이면 이 무선 통신이 우리에게 도청당할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
   "물론이지. 우리뿐만 아니라 한국과 미국, 그리고 김정일이한테도
말이야. 상관없다는 태도야."
   "트릭이 아니고?"
   "이 내용은 사실인 것 같아."
   "그렇다면 당신 말대로 북한은 동서 전쟁이 되TR는데."
   "김정일측의 군세력이 위축되겠지. 그렇지만 아직 놈의 세력은 막
강해. 동부는 거의 이을설한테 침식당했지만." 

 

 

 

(2)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해 놓고 있었어, 이을설과 최광이 ."
   "그들은 김일성 시대부터 갖은 풍파를 견디고 정상에 오른 놈들이
야.교활하고 군의 요소에 심복들이 많아."
   "D데이를 회담의 결렬 시기로 잡아 놓은 것도 적절했어 "
   "어쨌든 순식간에 형세가 역전이 되었어. 이제 김정일이는 남조선
침공은커녕 제 자리를 지키기도 힘들어졌단 말아야."
   그들은 한동안 마주보면서 입을 열지 않았다.
   밤 11시가 넘어 있었지만 무라야마 저택의 바깥 마당에서는 수선
거리는 사람들의 인기척이 들려 왔다. 좁은 마당이었고 장지문이라
소리가 금방 전해져 온다. 아마 혼다의 수행원들인 모양이었다.
   "이봐, 무라야마 수상께는 내일 아침에 보고 드려도 상관없을 거
야. 오늘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아."
   혼다가 마른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피곤하군. 한 달이 넘도록 제대로 잠을 자본 날이 없어."
   "최광이 중국의 진위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그것 녹음하지는 못
했나?"
   무라야마가 묻자 혼다가 머리를 저었다.
   "못했어. 최광이 공중 전화를 쓰는 바람에. 그리고 중국놈들의 도
청 방지 기술이 수준급이어서."
   "김원국이는 이제 최광의 보호자가 되었군 그래."
   "지금 상황으로는 김원국이가 제일 믿음직하고 부담 없는 사람이
지. 우리 연합군에게도 행운의 부적 같은 존재이고."
   혼다가 탁자 위의 녹음기를 집어 들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무라야마,내일 아침에 수상 집무실에서 만나자구.수상에
100 밤의 대통령 제3부 -llf
게 점수를 따려고 이걸 처음 듣는 것으로 해도 난 모른 척하겠네, "
    한일 연합군 시정부의 지하 상황실.
    넓은 상황실 중앙의 둥근 테이블에 연합군의 수뇌부가 모여 앉아
있었다.
    강동진을 중심으로 좌우로 앉은 사내들은 고성국과 강한기, 가토
와 이제다 네 사람이다. 그들의 뒤쪽으로 참모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고 전자 기기들의 소음이 들려 오고 있다.
   강동진이 옆에 앉은 고성국을 향해 입을 열었다.
   "교활한 늙은 여우 두 마리에게 희롱당하고 있는 기분이야. 우리
는 지금 이을설의 후방 부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인데."
   "사령관님,성급하게 생각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입장은 점
점 나아지고 있으니까요."
   "이건 이웃집 싸움 구경을 하는 것이 아니야."
   쓴웃음을 지은 강동진이 고성국을 바라보았다. 그는 청와대에서
한 시간 만에 시령부로 보내졌는데 그것은 강동진이 대통령에게 부
탁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고성국의 행동은 남북의 형세를 역전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니 명령
체계를 떠난다면 상을 받을 일이다. 그리고 고성국을 처벌한다면 강
한기와 이케다 등 연합 시정부의 고위 간부들이 줄줄이 처벌되어야
했고 대통령의 명령을 어긴 특전사의 지휘관들도 예외일 수가 없다.
대통령은 고성국을 내보내 주었지만 기꺼운로정은 아니었다
   "사령관님, 최광과 이을설은 우리를 끌어들일 생각이 아니었습니
다. "
                                            분열되는 한반도 101
   강한기가 입을 열었다
   "최광이 전해 준 쪽지를 보아도 한국군을 끌어들여 김정일을 축출
한다는 내용이 아닙니다. "
   그들의 대화는 일본인들과 합석한 자리였으므로 영어였다.
   이케다가 강한기의 말을 받았다.
   "그렇습니다, 사령관님. 이을설이 우리에게 응원을 청하지 않는
것도 그런 맥락으로 추측됩니다. "
   강동진이 가토에게로 머리를」돌렸다.
   "가토 장군, 한국 안기부에서는 이미 이을설, 최광과 중국 사이에
묵계가 이루어져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일본측은 어떻게 판단하고
있습니까?"
   "중국은 김정일과도 동반자 관계를 흐트리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
다. 중국은 누가 집권하건 상관하지 않겠다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
   "우리 연합군이 이을설의 혁명군과 함께 북한을 정복해도 상관하
지 않을까요?"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사령관 각하. 중국군은 김정일의 측근
부대와 합류해서 한일 연합군과 이을설의 혁명군을 상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일본 정보국이 내린 결론입니다. "
   강동진이 머리를 』1덕였다.
   "우리 안기부에서도 그런 결론을 내렸습니다,가토 장군."
   "이을설은 북한 정권을 장악하면 연방제가 어쩌구 했는데 그걸 믿
을 수는 없습니다, 사령관님 ."
   강한기가 나섰다.
   "그들은 정권을 잡기 위해서 우리를 이용하고 있다고 봐야 됩니
102 밤의 대통령 제3부 -lU
다. 1들이 남북한 통일이라는 원대한 이상과 북한 주민들의 압제와
빈곤에서의 해방을 생각해서 일을 일으켰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사
령관님."
    고성국이 머리를 끄덕였다.
   "동감이오. 이것은 권력 다툼이오. 최광과 이을설은 김일성의 측
근으로 적화 통일을 외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
   입맛을 다신 강동진이 허리를 폈다.
   "대통령 각하는 피를 흘리지 않는 결과를 바라고 계셔. 여러분은
그것을 명심하도록."
   모두들 그의 얼굴을 바라본 채 말을 멈추었다. 순식간에 테이블
주위의 분위기가 식어 버린 것이다.
   "이번의 전투에서 희생된 한일 양국군 4백여 명에 대해서 각하는
가슴 아파하셨어. 전쟁 없는 평화 통일이 각하의 목표이고 정부의 방
침이야."
   "몇 년 전에 배가 한 척 뒤집혀서 몇백 명이 죽었던 때가 있었지
요. 가스가 폭발해서, 배에 불이 나서, 비행기가 떨어져서, 그리고 다
리가 끊어져서도 몌죽음을 했습니다. "
   강한기가 상기된 얼굴로 말하자 강동진이 눈을 부릅떴다.
   "닥쳐! 강 소장."
   "예, 사령관님.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죽음보다 몇 배나 값진 죽음
이었고 당사자들도 장렬하게 전사했습니다. 가슴 아파하실 일이 아
닙니다. 그건 전사자들에 대한 모욕입니다. "
   "닥치라니까!"
   강동진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뒤쪽의 참모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이
                                           분열되는 한반도 103
쪽을 바라보았다. 넓은 상황실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고성국이 헛기침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사령관님, 이을설이 궁지에 몰리게 되면 우리에게 응원 요청을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것에 대비는 해야 될 것 같습니다. "
   강동진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럴 확률이 지금은 희박하다
는 것을 둘러앉은 모두는 알고 있었다. 이을설측이 하루에도 수천 통
씩 주고받는 무선 내용은 모두 해독되어 보고받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을설은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강동진이 고성국을 바라보았다.
   "파리의 김원국 씨에게 연락하게. 최광을 단단히 잡아 두라고 해.
그리고 그의 생각이나 계획을 알아낼 수 있는 데까지 알아내 어서 보
고해 달라고."
   "알Tf습니다, 사령관님 ."
   "놈은 교활하게도 한국 정부 사람이 아닌 김원국에게 몸을 의탁하
고는 우리를 따돌리고 있는데, 잘못 보았어. 김원국은 우리 사람이
야."
   다음날 아침의 베르사유.
   호텔 아래층의 커피숍에 앉아 있던 조웅남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는 의자에서 상반신을 일으켰다.
   "저것들 어디 가는 거여?"
   앞자리의 김칠성이 그의 시선을 따라 머리를 돌렸다.
   최광과 지희은이 호텔의 현관문을 나서고 있는 것이 보였다. 두터
운 코트 차림의 최광은 방한모에 목도리까지 둘렀으므로 얼굴이 반
104 밤의 대통령 제3부 -템
 쪽만 드러나 있었고 지희은은 스키 파카에 횐색 털모자를 썼다.
    "동규가 알아서 내 보냈겠지요 뭐 . "
    그렇게 말은 했지만 김칠성도 엉거주춤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러
 자 2충의 계단을 고동규와 최성산이 내려오더니 밖으로 나갔다. 그
 러면 그렇지 하는 얼굴이 된 김칠성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산책 나가는 모양이오, 형님."
    "영감태기가 방구석에 처백혀 있을 것이지 산책은 무신."
    "저래봬도 북한의 이 인자였어요. 지금은 김정일이와 한판 벌이고
 있는 사람이오, 형님."
    말이 커피숍이지 테이블이 대여섯 개밖에 놓여 있지 않는 좁은 공
간이었다. 옆의 로비도 손바닥만해서 로비 안쪽의 프런트에 서 있는
김씨가 전화 받는 소리까지 들린다.
    조웅남이 입맛을 다시고는 의자에 둥을 묻었다.
    "빌어먹을, 그 지집애가 말템이여. 진작 빠져 나갔으면 되운을린
디."
   박은채를 말하는 것이다. 어제 아침에 프랑스의 거의 모든 언론
매체들은 박은채의 검거 사실을 보도했다. 그녀의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시간마다 방영되었으니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지집년이 문제여. 속을 안 색이는 년이 없고만."
   투덜거리는 조웅남에게 신경을 끈 채 김칠성은 현관 쪽을 바라보
았다. 정원 건너편의 호텔 입구에는 조기식이 있을 것이었다. 이제
안기부 요원은 조기식과 다른 두 사람 해서 세 명밖에 없다.
   베르사유의 아늑한 호텔에서 변두리에 있는 이곳으로 옳긴 것은
어제 아침이었다.
                                           분열되는 한반도 105
    호텔 주인 김씨가 한국인이었고 손님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 김원
국의 마음에 든 무양이지만 종업원이 김씨와 그의 부인을 포함하여
네 사람뿐이었고 방이 열 개밖에 안되는 싸구려 호텔이었다.
    조웅남이 입을 벌리고는 귀 밑까지 찢어질 듯 하품을 하는데 김씨
가 다가왔다.
    "2충의 김 선생님이 두 분더러 올라오시랍니다. "
    서둘러 일어선 그들은 잠시 후에 김원국과 마주앉았다.
    스웨터에 바지 차림의 김원국은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더니
그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곳도 오래 있기에는 위험하다. "
   조음남미 머리를 끄덕였고 김칠성은 잠자코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준비되는 대로 한국으로 출발한다. "
   그러자 김칠성이 머리를 들었다.
   "최광 씨도 데리고 잠니까?"
   "물론이야.그는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결국은 같이
가기로 했다. "
   "아니,뭐가 어썼다고 탐탁지 않다는 거요?"
   조웅남이 눈쌥을 치켜세웠다.
   "영감태기가 분수를 알어야지. 우리가 지 보디가든가? 가자은 가
Orl ."
   "어차피 최광 씨는 이곳에 혼자 남지는 못한다 그는 우리의 보호
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야."
   "그렇다면 최광 씨는 한국에 정식으로 망명하는 것입니까?"
   김칠성이 묻자 김원국이 머리를 저었다.
106 밤의 대통령 제3부 -및
   "비공식이 될 것이다. 물론 우리도 떳몃하게 이름을 쓰고 김포 공
항에 내릴 수는 없지. 아무리 한T이 전시 상태라지만 우리를 공식적
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
   "처음부터 각오했던 일이야. 안기부장 임병섭 씨가 음으로 도와는
주겠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어."
   "최광 써짜지 데리고 나가려면 신경이 많이 쓰이겠는데요."
   "그렇다고 프랑스에서 빈둥거릴 수는 없다. 한국에서는 최광과 이
을설의 정확한 의도를 모르고 있어, 연합군 시령부는 그들과 직접 이
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
   "잘되었군요. 최광 씨를 데려간다면 말입니다. "
   조웅남이 헛기침을 했다.
   "거시기, 형님. 박은채는 어뜨케 헐 거요?"
   잠자코 있는 김원국을 보자조웅남이 입맛을 다셨다.
    "갸는 내비리 두고 떠날 거요?"
    "할 수 없다. "
    "방법이 있을틴디, 여러가지로."
    "잔소리 말아라."
    김원국이 자르듯 말하자 머쓱해진 조웅남이 다시 입맛을 다신 뒤
 머리를 돌렸다.
   "어제 신문에 났던 그 여자, 당신 일행이었지?"
   불쑥 최광이 물었으므로 지회은은 머리를 들었다. 마른 잔디가 철
렁하게 느껴지는 넓은 공원은 아침 시간이어서 인적이 드물었다. 

 

 

 

(3)

 

"네, 같은 일행이었요."
  "김원국 씨와 어떤 관계였나?"
   지희은이 퍼뜩 시선을 올렸다가 내렸다.
   "동료의 관계였습니다. "
   "흠‥‥‥‥
   입을 다문 최광이 얼어붙은 조그만 연못가의 벤치에 앉았다.
   그의 옆에 주춤거리며 선 지희은이 머리를 돌려 뒤쪽을 바라보았
다. 비들기몌들에게 모이를 주고 있는 여자 옆쪽에 고동규와 최성산
이 서 있었다.
    "이봐, 여기 앉아."
    최광이 손바닥으로 옆자리를 두드렸다. 인자한 할아버지 같은 표
정이었다.
    "고향이 어디야?서울인가?"
    옆에 앉은 지희은에게 그가 물었다.
    "아닙니다. 저는 스위스에서 태어났습니다. "
    "호오. "
    최광이 눈을 점벅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와 이렇게 이야기하
는 것은 처음이다. 가슴을 두근거리고 있는 그녀에게 최광이 다시 물
 었다.
    "부모님은 스위스에 계신가?"
    "네 . "
     "부모님 고향은 어디야?"
     "남쪽이에요."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최광이 머리를 끄덕였다.
108 밤의 대통령 제3부 -lH
   "남조선 사람들이 해외에 많이 퍼져 나갔다고 들었어.그건 잘된
일이야. 국토가 좁은 데다가 인구가 많으니 ."
   "북남이 통일되면 동북 아시아에서 우리 조선은 강대국이 되지.
그렇지 않나?"
   "전 통일 같은 건 모릅니다. 바라고 있지도 않구우."
   마침내 지희은이 머리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지겨워요, 그런 이야기."
    "스꾸스에서 자라면서 남북한이 싸우는 것을 보고 친구들과 함께
웃었어요. 저는 스위스 국적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렇군."
   "처음에는 창피하고 화도 났지만 커가면서 잊게 되더군요. 전 한
국에 대해서 지금도 애착이 없습니다. "
   "호오, 그럼 왜?"
   "휘말려 들었어요."
   최광은 더이상 묻지 않았다. 마른 낙엽 두어 개가 바람에 날려 잔
디 위를 구르다가 멈춘다. 바람끝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추위는 많이
풀려 있었다.
   "하지만 동무는 남조선측이 주도한 통일을 바라고 있겠지. 안 그
런가?"
   이윽고 최광이 다시 입을 열었는데 주름살이 가득한 얼굴은 지쳐
보였다.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분열되는 한반도 109
    지희은이 머리를 저었다.
    "가족을 희생시키면서, 그리고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빼앗기면서
까지 그런 것을 바라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군요."
    "남조선은 지금 똘똘 뭉쳐 있다고 하던데."
   "빼앗기지 않으려는 것이지요. 강도에게 당할 수만은 없으니까
요."
   최광이 주름진 얼굴을 펴고 웃었다.
   "강도에게 당할 수는 없단 말이지."
   "정신병자라고 해도 맞을 거예요."
   "지금 지구상에 이런 민족은 없어요.저는 한민족이라는 것이 어
떤 땐 부』1러워요."
   "그건 우리들 때문인가?"
   지희은이 대답하지 않자 최광도 입을 다물었다. 비둘기몌가 그들
쪽으로 몰려왔다가 소득이 없자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시바다 겐지가 차에 오르자 앞자리에 타고 있던 사쿠라이가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조장님, 혼다 국장님메 전화하실 시간입니다.
   "알고 있어."
   승용차는 경시청의 정문을 빠져 나와 혼잡한 차도로 들어섰다. 사
쿠라이는 시바다의 안색이 편치 않게 보였는지 더이상 입을 열지 않
았다.
   "사쿠라이, 다케무라한테서는 연락이 없나?"
110 밤의 대통령 제3부 -I[f
   시바다가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
   "예, 조장님. 없습니다. "
   "빌어먹을."
   다케무라는 파리 주재 한국 안기부의 책임자인 박남호와 만날 약
속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마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입니다,그쪽은."
   조심스런 목소리로 사쿠라이가 말했다. 승용차는 신호등에 걸려
멈춰 섰다.
   "박은채는 CIA의 취조를 받고 있더구만. 프랑스 경찰의 입회 하
에 말이야."
   시바다가 던지듯이 말했다.
   "그 여자는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었어, 내가 붙여 준 변호사가 아
니더라도 잘해 나갈 것 같아. 보기보단 다부진 여자야."
   그러자 차 안에 장착된 무선 전화기가 울렸다. 사쿠라이가 전화를
받더니 금방 몸을 돌려 시바다를 바라보았다.
   "조장님, 김원국 씨입니다. "
   번쩍 상체를 세운 시바다가 전화기를 넘겨 받았다.
   "김 선생님, 시바다올시다. "
   "시바다 씨, 도청될 염려는 없지요?"
   "아마 불가능할 겁니다. "
   그러면서도 시바다는 전화기에 매달린 도청 방지 장치의 푸른색을
확인했다.
   "지금 경시 청에서 나오는 길입니다, 김 선생님, "
   "그 여자가 알고 있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
                                           분열되는 한반도 1 1 1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더군요. 변호사도 옆에 있었습니다. "
   "CIA의 취조를 받고 있었는데 오후에는 북한측 사람들이 올 것
같습니다. "
   "시달리겠군 "
   "프랑스측은 중립적인 입장이지만 상대들이 원체 피해가 커서
요. "
   "그래서 제 부하가 KCIA의 박남호 씨를 만나러 갔습니다. 아무
래도 정부 차원에서 나서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요."
   "어쨌든 고맙소,시바다 씨."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김 선생님,본국에서 연락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재의 휴전선도 불안한 상태이고 이을설과는 연락도 되
지 않는 상태여서 말입니다. "
   "그렇겠지요."
   "그렇다고 최광 씨가 시원하게 입을 열지도 않고 해서요."
   "우리 대통령은 더이상 전투는 없을 것이라고 성명을 발표했던
fl . "
   "그건 압니다만 사령부에서는 이을설과 최광의 의도를 알고 싶어
합니다. 한일 연합군과 손을 잡으려는 것인지 어쩔지도 말입니다. "
   "최광은 아직 말해 주지 않았소."
   "입을 열게 해야 합니다, 김 선생님."
   "우리는 이곳을 떠나 서울로 가기로 했습니다, 시바다 씨."
   시바다가 전화기를 고쳐 쥐었다.
112 밤의 대통령 제3부 -llf
   "최광과 함께 말입니까?"
   "그렇소, 그도 동의했소."
   "그렇다면 망명입니까?"
   "아니오. 이곳이 불안하니까 비공식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어차피
우리도 떳떳이 움직일 입장이 아니니까."
    "이곳으로 와주시오, 시바다 씨. 당신과 상의할 것이 있습니다.
   통화가 끝나자 시바다는 전화기를 사쿠라이에게 건네 주었다.
   "다케무라를 당장 사무실로 들어오라고 해, 같이 베르사유로 간
다. "
   "알겠습니다, 조장님 ."
   "그리고 흔다 국장께 전화를 연결해라. 보고 드릴 것이 있다. "
   호위총국장 백학림이 호위총국 산하의 평양 경비 시령부에 들어서
자 부총국장인 안흥수 대장이 그를 맞았다.
    백학림 밑에는 다섯 명의 부 총국장이 있었는데 모두 계급이 대장
이었고 참모부와 정치부, 보위부, 평양 방어 사령부, 평양 경비 사령
부를 각각 책임지고 있다.
   그들은 잠자코 안흥수의 사령관실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넓은 사령관 집무실의 한쪽 벽은 평양과 인근 지역의 지도로 덮여 있
었는데 주석궁에 칠해진 황금색이 번들거리며 을 내었다.
   평양 경비 사령부는 두 개의 기계화 보병 사단으로 이루어진 평양
내부의 경비를 맡는 부대였다. '
   백학림이 머리를 들어 안흥수를 바라보았다. 두 볼의 근육이 늘어
                                           분열되는 한반도 113
진 피로한 모습이었다.
   "동무, 하남철 상장은 이을설에게 이제까지 두 번 무선 연락을 받
았다는 증거가 있소.내가 참모부 1국장을 불러 확인해 보았소."
   "총국장 동지, 하남철 동무는 이을설의 무선을 받고 즉시 저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그 내용에 대해서도 감춘 것이 없었습니다. "
   굳은 얼굴의 안흥수가 말을 이었다.
   "하남철 동무의 당과 수령 동지에 대한 충성심은 제가 보장합니
다, 총국장 동지. 이을설에게서 무선 연락이 왔다는 것이 죄가 될 수
는 없습니다. "
   50대 후반의 안흥수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신임을 이어받고 있는
소련 유학파 군인이다. 왜소한 체격과는 달리 기개가 출중했으므로
특히 김일성의 총애를 받았었다.
   백학림이 조그맣게 머리를 끄덕였다. 이런 상황에서 하남철을 두
둔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행동이다. 잘못하면 하남철과 연루될
수가 있고 그때에는 옷을 벗는 정도가 아니다.
   "새 사단장으로 참모부 2국장인 조세일 상장이 올 거요. 하루라도
사단장 자리를 비워 놓을 수는 없으니까."
   "내가 수령 동지께 직접 선처를 호소해 보TR소. 그 동안 동무는 자
숙해 주시오."
   안흥수가 어깨를 늘어뜨리며 시선을 내렸다.
   이을설은 전후방의 각 부대장뿐만 아니라 호위총국의 지휘관들에
게까지 연락을 해왔다. 지휘관급 장성들은 대부분 비밀 직통 전화를
갖고 있었는데 총참모장인 이을설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다.
114 밤의 대통령 제3부 -및
   평양 경비 시정부의 제3사판장인 하남철도 그의 전화를 받았고 즉
각 안흥수에게 보고를 했다. 전군의 지휘관에게 이을설과의 연락을
금지시켰고 만일 연락이 온다면 즉시 보고하라는 명령을 지킨 것이
다. 그러나 그는 오늘 아침에 참모부 소속의 제1호위부 장교들에 의
해 연행되었다.
   "물론 이을설이 우리를 분열시키려는 의도로 연락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소. 하 상장은 결백하다면 곧 풀려 나을 것이오."
   백학림이 뒤쪽의 벽에 동상처럼 서 있는 부관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걸 가져오게."
   부관이 다가와 서류 가방 안에서 횐 서류를 꺼내어 백학림의 앞에
내려놓았다.
   "이걸 읽고 우선 부총국장 동무부터 결재를 해주시오."
   백학림이 서류를 안홍수의 앞으로 밀어 주었다.
   "수령 동지에 대한 충성의 서약서요. 정치부의 정일 대장은 혈판
을 찍었습니다. "
   "사령부 내의 참모급 이상 군관들의 서약서는 부총국장 동무가 받
아주시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
   서류를 든 안흥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 기꺼이 서약을 할 것입니다. "
   책상으로 다가간 그는 서람을 열고 조그만 칼을 꺼내더니 망설이
지 않고 둘째손가락의 끝을 베었다. 피가 방을져 책상 위로 떨어지자
한동안을 기다리고 있던 그는 고인 피 위에 손바닥을 덮어 문질렀다.
                                           분열되는 한반도 115
서약서의 뒤쪽 백지에 혈판을 찍고 난 안흥수가 휴지로 손을 닦자 백
학림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부총국장 동무,-나는 내 가족들 모두를 주석궁으로 보내기로 했
소. "
   안흥수가 움직임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지휘관급 이상의 동무들은 모두 자진해서 가족들을 주석궁으로
보내는 모양이오. 가족들을 수령님께 맡겨 놓으면 마음 놓고 싸우다
죽을 수 있지 않겠소?"
   그들의 시선이 잠간 동안 부딪쳤다가 떨어졌고 안흥수가 커다랗게
머 리를 」1덕였다.
   "당연한 일입니다, 총국장 동지. 저도 즉시 가족을 모아 주석궁으
로 보내겠습니다. 수령께서 받아 주신다면 그런 영광이 없습니다. "
   정오가 되었으나 215고지를 훌고 가는 바람결은 칼날같이 선뜻하
게 피부에 와 닿는다.
   고지의 9부 능선에 집결한 18연대 수색 중대의 병력은 추위에 떨
면서 옹기종기 모여 서 있었다. 그들의 옆으로 깨끗한 방한복을 입을
보충 부대의 병사들이 지나갔다.
   캐터필러의 삐걱이는 쇳소리를 내면서 한국군의 K - 1 전차 네 대
가 능선을 올라오고 있었다. 아래쪽의 비무장 지대는 이제 연합군의
통로가 되어 있어서 이쪽으로 전진해 오는 전차부대와 장갑차들의
긴 대열이 이어지고 있다.
   장영환은 방한복의 호주머니에 두 손을 찌르고는 아래쪽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보병들은 전차의 측면에 횡대로 서서 구불구불한 긴 줄
116 밤의 대통령 제3부 -및
을 만들며 행군해 온다.
   "저, 장 병잡님,"
   옆으로 다가선 최 상병이 담배 한 개비를 그에게 건네 주었다. 분
대원 중에 남아 있는 끗은 이제 3와 둘밖에 없다. 이번 작전에 참가
한 여덟 명의 분대원 중 분대장 김형만 하사 이하 네 명이 전사했고
두 명이 부상으로 후송되고 나서 남은 것이 그들이다.
   장영환이 담배에 불을 붙여 물자 최 상병이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 여기가 우리 땅이 되었구만요."
   그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안 그래요?매일 망원경으로만 바라보던 곳이 말입니다. "
   장영환이 머리를 』1덕이자 1는 가래침을 소리 내어 뱉었다.
   "그, '껑간호 일병 놈이 살았으면 좋았을텐데요, 장 병장님."
   "괜히 기분이 드럽구만요."
   그러자 앞쪽에서 조t대장 김정환 소위가 나타났다. 그는 중대에서
살아 남은 유일한 장교였는데 총상을 입은 팔을 목에 매달고 있다.
   "준비되었나?"
   그의 목소리가 찬바람을 타고 들려 왔다.
   "인원 확인 했어?"
   초쳬한 얼굴의 그가 코소대의 중사에게 물었다. 앳된 얼굴의 그는
살아 남은 중대원의 선임 하사관이다.
   "예,총원 48명 . 이상 없습니다. "
   "그럼 출발이다. "
   열을 만들지도 않았으나 중대장 대리인 김정환은 상관하지 않았
                                           분열되는 한반도 117
다. 그들은 둘씩 셋씩 무리를 지어 215고지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150명 가까웠던 중대 병력이 전사자와 부상자를 백 명이 넘게 내고
는 교체되는 것이다. 내일 사단 본부에서는 살아 남은 병사들에게 한
달 간의 포상 휴가를 줄 것이었다. 그리고 전사자와 부상자를 포함한
중대원 전원은 일 계급씩 특진이 된다.
   길게 횡대로 늘어서서 215고지로 올라가던 병사들이 무표정한 얼
굴로 그들을 흘끗거렸다.
    김포 공항의 경비대 소속 윤한경 대위가 제2공항의 대합실로 들어
서자 문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갑석 중사가 다가왔다.
   "중대장님, 사무실로 데려다 놓았습니다. "
   그들은 대합실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헤치고 안쪽의 사무실로 향
했다
   승객들의 대부분은 미국인들로 어제 아침에 대통령이 발표한 미국
민과 미국 정부에 대한성명에 의해 억류에서 풀려 난 것이다. 그들
은 옆을 스치는 윤한경 등을 향해 곱지 않은 시선을 주었으나 노골적
인 행동은 하지 않았다.
   윤한경이 사무실에 들어서자 이쪽 저쪽에 모여 있던 병사들이 모
두 움직임을 멈추고는 그를 바라보았다.
   "어디 있나?"
   그렇게 물었지만 윤한경의 시선은 구석의 의자에서 일어서는 50
대의 사내에게 이미 돌려져 있었다. 사내는 말쑥한 양복 차림이었고
얼굴의 표정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사내에게로 다가갔다.
118 밤의 대통령 제3부 -방
   "파리로 가실 예정이지요?"
   "그렇소. 난 정식 허가증을 갖고 있습니다. "
   머리를 』1덕인 윤한경이 옆방을 턱으로 가리켰다.
   "저쪽으로 가시지요. 말씀 드릴 것이 있습니다. "
   "난 4시 비행기를 타야 합니다. "
   "비행기는 언제든지 타실 수 있으니까. 자, 어서."
   사내는 마지못한 듯 윤한경을 따라 옆방으로 들어섰다. 책상 두
개와 소파가 놓여 있는 철렁한 분위기의 방이었다. 그들은 소파에 마
주앉았다.
   "박도영 씨, 맞지요? 박은채 씨의 아버님 되시는."
   윤한경이 부드러운 어조로 묻자 박도영이 굳어진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소. 내가 애비 되는 사람입니다. "
   "그런데 파리에는 웬일로."
   "웬일이라니?"
   눈쌥을 치켜올린 박도영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걸 몰라서 묻습니까?내 딸을 만나러 가는 거요."
   "가져도 별로: 도움이 안될텐데요."
   "이봐요, 대위. 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오. 도와 주지는 못할망정
가지도 못하게 하는 법이 어디 있소?"
   그의 목소리가 컸으므로 바깥의 사무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내. 딸이 김원국 씨 일당으로 잡혔다는 뉴스를 듣고 정부 쪽에 연
락을 안해 본 데가 없소. 그런데 모두 모르는 일이라고만 했어. 외무
부는 아예 전화를 받지도 않아."
                                            불열되는 한반도 119
    그러자 방문이 열리더니 40대의 신사복 차림이 들어섰다.
   윤한경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아들였으나 박도영은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 뵙습니다. 난 안기부의 권만섭이라고 합니다. "
   사내가 손을 내밀었으므로 박도영도 그의 손을 잡았다.
   "진작 연락을 드리려고 했는데 늦는 바람에 이곳에서 뵙게 되었습
니다. "
   "안기부에도 연락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담당관이라는 사람이 모
르는 일이라고 합디다. "
   권만섭이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할 수밖에요."
   "그렇다면 내 딸은 정부의 일을, 당신들과 함께‥‥‥‥
   "그렇습니다,박 사장님. 나라를 위해 일하다가 잡혔습니다. "
    "모르고 계셨던가요?"
   "전혀 ."
   박도영의 굳은 표정이 풀리더니 이제는 어깨를 늘어뜨린 허탈한
모습이 되었다.
   "난 싱가포르에 가야 할 애가 도착하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갑자기
스위스에서 연락이 왔습디다. 그래서 그냥 제 말대로 여행을 하는 것
이려니 했었소.그런데 걔가 김원국 씨와 함께 있었다니,지금도 믿
겨지지가 않습니다. "
   "훌릉한 일을 했습니다. "
   "그런데 그 애는 어떻게 하다가 그렇게 되었습니까?"
120 밤의 대통령 제3부 -템
"공항을 나갈 때 문제가 좀 있었지요."
"계엄군에게 끌려 가피 되었었다고 합니다, 허가증 문제로."
    "그것을 김원국 씨 일행이 우연히 보고는 데리고 나간 것으로 알
고 있습니다. "
   "그랬습니까."
   박도영의 어깨는 더욱 늘어져서 이제는 머리를 들 힘조차 없어 보
였다.
   권만섭이 말을 이었다.
   "파리에서 이미 변호사를 고용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일본
정부 양국이 백방으로 공작하고 있습니다. 물론 표면에 드러낼 수는
없지만요."
   "심정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곳에 가시는 것은 백해무익입니다.
제가 수시로 연락을 드릴테니 댁으로 돌아가시지요."
    청와대로 들어가는 차 안에서 임병섭은 박도영의 귀가 조치 결과
를 보고받았다. 공항 책임자인 권만섭과 차장 선에서 처리를 해놓고
는 결과만을 보고했는데 그것은 당연한 조치였다.
   그가 청와대의 지하 상황실에 들어션 것은 회의 시간 5분 전인 5
치 55분이었다.
   국가 비상 회의는 이틀에 한 번씩 대통령의 주재로 열렸고 참석자
는 총리와 계엄 사령관, 안기부장, 국방과 외무, 내무, 비서 실장이었
                                          분열되는 한반도 121
 고 필요에 따라 해당 각료가 추가될 수도 있다.
    임병섭이 마지막으로 들어온 각료인 모양이어서 먼저 도착한 사람
 들과 가려운 인사를 마치고 나자 안쪽의 쿤이 열리더니 대통령이 들
 어섰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대통령을 맞았고 그와 함께 자리에 앉
 는다
    "김 장관, 몸은 어때요?"
    갑자기 대통령이 국방 장관 김형태를 바라보며 물었으므로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모아졌다. 김형태가 놀란 듯한 얼굴이 되어 몸을 굳
혔다.
    "아, 예, 일하는 데 지장은 없습니다,각하. "
    "위가 나쁘면 첫째로 식이요법을 쓰는 것이 낫습디다. 나도 젊었
을 때 고생을 해봐서 잘 알아요."
    "예, 각하. 그래서 저도."
    대통령이 강동진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그곳,215고지는 배치를 끝내었소?"
    "예, 각하. 완전히 끝냈습니다. "
    김형태가 상체를 뒤로 물렸고 강동진이 말을 이었다.
   "인민군 1군단의 경계 지역인 휴전선 15마일은 개방된 것이나 다
름없습니다, 각하. 그 구간의 대남 방송도 중지된 지 오래 되었습니
다. "
   대통령이 잠자코 머리를 끄덕이자 강동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붙은 대형 지도 앞으로 가서 섰다. 그는 옆에 놓인 지휘봉으로 회양
부근의 휴전선을 짚었다.
   "각하, 정보에 의하면 이곳의 이을설 차수는 이미 북한의 동부 지
122 밤의 대통령 제3부 -lH
역을 장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 김정일측과 서로 치열한 세력
확보전을 벌이고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을설측이 유리할 것으로
추측됩니다. "
   그러자 임병섭이 헛기침을 하고는 강동진의 말을 이었다.
   "김정일은 부대 지휘관들에게 철판이 찍힌 서약서를 받고 사령관
급의 가족들을 주석궁 안으로 데려오고 있다는 정보도 있습니다. 이
것은 일본 정보국에서 받은 정보입니다. "
   "그런가?"
   대통령이 치켜뜬 눈을 서너 번 점벅여 보였다.
   "그것, 인질이군. 볼모야."
   "그렇습니다, 각하. 그것은 부하들을 믿지 못한다는 증거도 됩니
다. 그만큼 자신이 없다는 표시입니다. "
   강퐁진이 대통령의 주의를 돌리려고 지휘봉으로 지도를 가볍게 쳤
다.
   "각하, 이곳 15마일에 대한 진입을 허락해 주십시오."
   각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의 지휘봉 끝으로 모아졌다. 인민군 제
1군단의 휴전선 경계 지역이다.
   "비무장 지대 4킬로의 지뢰원을 청소하여 진입로를 만든 다음 북
방 한계선의 1군단 지역까지 북상한 다음 멈추겠습니다,각하."
   대통령이 입을 다물고 있었으므로 김창덕 총리가 상체를 세웠다.
   "사령관, 그것은 이을설 씨와 합의한 일입니까?"
   "아닙니다, 이을설 씨와는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

 

 

 

(4)

 

"그렇다면 만일에 ."
   "1군단이 연합군을 공격해 올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총리님."
                                           분열되는 한반도 123
   학자 출신의 김창덕 총리는 힐끗 대통령에게 시선을 주었다가 다
시 물었다.
   "내 생각입니다만 그것은 위험한 일 같습니다. 잘못 되면 그들이
집안 싸움을 그치고‥‥‥‥
   "잘못 되지 않습니다, 총리님."
   강동진이 그의 말을 잘랐다.
   "지금 이을설은 우리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배후에 한국군이 있는
것으로 선전하여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면서 정작 우리에게는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습니다. 이것은 휴전선은 그대로 고착시켜 놓고 북한
의 정권을 탈취하Tf다는 의도로밖에 는 볼 수 없습니다. 이것은 곧 이
을설과 최광에 의해 북한이 정복되면 다시 예전의 긴장된 남북 관계
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시령관, 15마일의 휴전선을 돌파하여 북방 한계선에 우
리 진지를 구축한다고 합시다. 그 다음엔 어떻게 할 작정이오?"
   이번에 물은 것은 김형태였다.
   그러자 강동진이 서슴없이 대답했다.
   "우리도 이을설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는 한국군을 치지 못합니
다. 이을설이 싫건 좋건 동부 지역을 흡수하고 작전을 같이 하73습니
다. 이을설이 지금 상승 기류를 타고 있는 동안에 그와 같이 움직여
야 합니다. 그가 기반을 굳힌 후에는 늦습니다. "
   그러자 대통령이 가볍게 기침을 하였으므로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로 모아졌다.
   "시령관, 그것은 일본측과는 상의한 작전인가?"
   "아닙니다, 각하, 저희 한국군 참모들하고만 협의했습니다. "
124 밤의 대통령 제3부 -llf
   왜냐고 묻는 듯 대통령이 바라보고 있자 그가 말을 이었다.
   "각하,저와 시정부의 참모들은 일본이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그러자 상황실의 분위기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무겁게
가라앉았다.
   "일본이 우리를 도운 것은 북한에 의해서 한반도가통일될 것이
우려되었기 때문이라고 저희들은 믿고 있습니다, 각하. 그 반대의 상
황도 마찬가지라고 믿습니다. "
   말을 마친 강동진이 지친 듯 어깨를 늘어뜨리고는 대통령을 바라
보았다.
   그러자 임병섭이 입을 열었다.
   "저도 시령관의 의견에 동감합니다. 사령부의 정보도 저희들과 일
치하고 있고 판단도 같습니다. 각하,저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됩니다. 각하께서 염려하시는 회생도 없는 통일의 기회입니다. "
   "그것은 모험이야."
   대통령의 한마디에 모두는 몸을 굳혔다. 단호한 얼굴로 대통령이
말을 이었다.
   "이을설과 합의를 했다고 해도 김정일과의 전쟁 위험이 있는데 합
의도 없는 상태에서 올라갈 수는 없어.나는 가능성만을 믿고 국민을
전쟁으로 끌고 갈 수가 없어 ."
   "더욱이 일본군과도 협의를 하지 않았다니, 연합군 내에서도 갈등
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 셈인가? 전전 분열 상태가 될 것인데, 당신들
말대로 일본이 통일을 싫어한다면 말이야."
                                           분열되는 한반도 125
   "하지만 각하,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일본은 저희 군이 충
분히‥‥‥‥
   강동진의 말을 대통령은 손을 들어 막았다. 대통령은 상체를 세우
고는 주위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조금 전에 김정일이한테서 직접 연락이 왔어요. 나하고 통화를
했는데."
   모두가 숨을 죽이고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그는 남북한 평화 회담을 맺자는 거요. 불가침 조약과 이산 가족
의 자유 왕래,정상적인 통상 관계에까지 합의할 용의가 있다고 했
소. 우리가 원한다면 며칠 내로 대표단을 파견한다는 거요. 장소는
서울도 좋다고 했고."
   "각하. "
   강동진이 한걸음 다가서며 불렀으나 대통령은 말을 이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논의해 보기로 합시다. 평화회담에 대해
서 말이오."
   가토와 이케다는 간단한 도시락으로 저녁을 먹고 있었다. 연합군
사령부 벙커 내에 있는 일본군사령관의 집무실이었고 뒤쪽의 테이
블 옆에는 한일 양국의 대형 국기가 엇갈리게 꽃혀 있다.
   된장국 그룻을 들어 한모금을 마시고 난 가도가 이케다를 바라보
았다.
   "김정일의 진면목을 보는 것 같군. 평화 회담 제의를 해을 줄은 정
말 뜻밖이야."
   "저도 놀랐습니다, 사령관님. 아무래도 우리는 김정일의 호전성만
126 밤의 대통령 제3부 -및
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이케다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의 성격이 변화무장하다는 것을 잊었습니다. 한없이 비굴해질
수 있다는 것도 말입니다. "
   "전형적인 한국인의 성격이지. 약자에겐 강하고 강자에겐 비굴한
것."
   "이영만 씨가 김정일의 제의를 받아들일 까요?"
   "지금쯤 청와대에서 갑론을박을 하고 있을 거야. 강경파는 강동진
과 임병섭이고 국방 장관은 무조건 강동진의 의견에 반박할 것이고,
총리와 외무, 내무는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을 거야."
   "강경파가 많건 적건 간에 이영만 씨가 결정할 것입니다, 사령관
님."
   다시 된장국을 한모금 삼킨 가토가 머리를 끄덕였다.
   "이번의 진격 사건으로 이영만이 군부를 잔뜩 경계하고 있을 거
야. 그 사람, 독점욕이 대단한 성격이니까."
   "고집이 세다고 들었습니다, 쇼맨십이 강하고."
   "몇십 년 전의 통치 스타일이지 내 추측이지만 이영만은 김정일
의 제의를 받아들일 것 같은데."
   "설마, 그럴까요? 잘만 하면 통일이 될 기회인데요."
   "이제까지 군부에 주도권을 빼앗겨 의기소침해 있던 차에 김정일
에게 직접 제의를 받은 거야.이영만의 지금 감정은 대통령이 나설
때를 툰나 흥분되어 있어."
   "그렇군요. 군사 작전의 설명은 이해도 잘 안될테니까. 자존심도
상한 판에 말입니다. 평화 회담을 성사시키고 나면 통일의 기회를 놓
                                           분열되는 한반도 121
쳤다는 비난은 얼마든지 뭉개 버릴 수 있습니다, 사령관님."
   그들은 서로 마주보고 웃고는 도시락을 물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들은 옆쪽의 의자로 옮겨 앉았고 이케다가 엽차를 따라 가토와 자
신의 탁자 앞에 한잔씩을 내려놓았다.
   "김원국이 최광을 데리고 곧 서울로 들어을 것 같습니다. "
   이케다의 말에 가도가 머리를 끄덕였다.
   "우리 정보국 요원에게 일본 여권을 부탁했다면서?"
   "예, 프랑스를 빠져 나오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쪽은 프랑스
경찰뿐만 아니라 미국과 북한측도 눈에 불을 켜고 있으니까요."
   한동안 찻잔을 두 손으로 감바고 있던 가토가 머리를 들었다.
   "최광이 한국에 오면 달라질 상황은 뭔가?"
   "모리 대좌에게 그것에 대해 연구해 보라고 지시해 놓았습니다.
아마 정 보국에서도 검토하고 있을 것입니다. "
   머리를 끄덕인 가로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서둘러1주게, 이케다. 김원국과 최광은 태풍의 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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