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78기갑 여단
(1)
2월 8일 오후 8시 55분.
이한성은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손바닥으로 닦으며 갈대숲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공격 명령이 떨어진 지 이제 15분이 지났
다. 전쟁인 것이다.
8시 35분에 비상이 걸렸고 완전 군장으로 집결한 것이 8시 낄랄,
그 순간 밤하늘을 가르며 수백 발의 포탄이 북쪽으로 날아갔다. 하늘
을 가닥가닥 찢어 발기는 것 같은 미사일과 다연장 로켓포의 굉음과
불즐기에 넋을 잃고 있을 때 공격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목표는 아
침 저녁으로 보아 왔던 4킬로미터 전방의 인민군 51사단의 수색 중
대 진지이다.
"전달! 대형 유지!"
이한성이 좌우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짙은 어둠에 잠긴 갈대숨이
어서 횡대로 뻗쳐 선 부하들이 흩어질까 걱정이 된 것이다. 오른쪽에
제78기갑 여단 .15
서 복창하는 목소리는 제대 병장 장영환이었다. 머리 위로 다시 한
무더기의 미사일과포탄이 밤하늘을 가르고 날아갔다.
이한성은 가쁜 숨을 올아처면서 뒤쪽을 돌아보았다. 일본군의 탱
크는 어둠 속이어서인지 아직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곧 나타날 것이
었다.
"소대장님, 무전입니다. "
뒤를 바짝 따르던 무전병 김 상병이 무전기를 떼내어 이한성에게
로 넘겨 주었다. 전방의 능선에서는 아직 사격해 오지 않는다. 이쪽
과의 거리가 핀로미터 되었으므로 소총이나 기관총으로는 무리일
것이다.
이한성은 무전기를 귀에 대었다.
"제 1소대장입니다. "
"나야. 지금 어디야?"
조명훈 대위가 악을 쓰듯 물었다.
"능선 전방 2킬로 지점입니다,중대장님,"
"네 뒤쪽 1킬로 지점에선 탱크대가 따라온다. 속도를 늦춰."
"예, 중대장님 ."
"대전차 지뢰반에게 길을 터줘라."
잡음과 함께 무전이 끊겼다.
중대장은 우측의 교1대와 함께 평행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제
곧 놈들이 묻어 놓은 지뢰받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이한성은 좌우의 부하들을 향해 짧게 지시를 내리고는 걸음을 늦
추었다.
"소대장님, 우리 뒤쪽으로도 쾌 많은 미사일이 날아갔습니다. "
16 밤의 대통령 제3부 -템
갈대를 헤치고 다가온 장영환이 말했다. 어둠 속에서 눈의 펀자위
가 짐승처럼 번들거렸고 가쁘게 숨을 뱉는다.
"사정 거리가 긴 것이 아니면 좋TR는데."
그러면서 장영환은 횐 이를 드러내었다.
"하지만 이젠 후련합니다. 언제 당할까 불안하기만 했는데 결판을
낼 수 있어서_0.."
뒤쪽에서 땅을 울리는 듯한 진동음이 들려 왔고 쇠가 부딪치며 찌
걱대는 소리도 났다. 일본군 탱크대인 것이다.
"74식 탱크야, 그것들은."
최상욱이 소리치듯 말하고는 핏발 선 눈으로 둘러선 참모들을 돌
아보았다.
"이미 24, 21부대는 전투 능력을 잃었으나 제 19자주포 대대로 이
쪽을 친다. 제33대전차 부대도 이 지점으로 집결시켜."
참모 하나가 옆쪽의 통신 지휘소로 달려가자 대좌 복장을 한 참모
가 소리치듯 말했다.
"참모장 동지, 제98저격 여단의 출동이 늦었습니다. 제일 먼저 움
직여야 할 부대가 아직도‥‥‥‥
제95저격 여단은 비행장 관제탑 등의 군사 기지에 대한 기습 공격
을 맡고 있는 공군 소속이다.
"참모장 동지, 15전차 사단이 출동했습니다. "
탁자 위의 한 지점을 짚으며 다른 참모가 말했다.
기습 공격 위주로 훈련해 왔고 이쪽이 기선을 제압한다는 가정 아
래 짜왔던 작전이다. 남조선이 먼저 공격을 해을 줄은 전혀 뜻밖의
제78기갑 여단 17
f;』
일이었고 그것도 군사 요지인 중부와 서부가 아닌 동부를 먼저 치고
들어온 것이다.
최상욱은 참모들의 표정에서 혼란과 당황한 기색들을 저을 수 있
었다. 그러나 동부의 남조선군 화력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첫 기습
에 이쪽이 상당한 피해를 입었지만 전열을 정비하여 반격하면 내일
아펀에는 놈들을 격퇴하고 밀고 내려갈 자신이 있었다.
그에게로 총정치국 소속의 정치 군판 대좌 하나가 다가왔다. 그는
최상욱의 귀에 입을 대었다.
"참모장 동지, 수령 동지의 전화입니다. "
머리를 』1덕인 최상욱은 몸을 돌렸다.
74식 전차는 일본의 주력 전차로 105밀리 포를 탑재하고 750마력
의 공냉식 엔진으로 도로 주행 속도가 시속 50킬로미터, 항속 거리 3백
킬로미터가 된다. 따라서 90식 전차보다는 성능이 떨어지지만 세계
정상급 전차 중의 하나이다.
74식 전차에는 레이저 거리 측정 장치,탄도 컴퓨터 등이 갖추어
져 있고,특히 74식에 주목할 만한 것은 자세 변경이 가능한 현가 장
치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장치는 차체를 전후 좌우로 기울여
능선 사격에 편리하도록 한 것인데,그것은 산이 많은 일본의 지형
때문이다.
다케다 요시하루 소장은 1번 전차의 조종실에 앉아 화면에 나오는
전방의 능선을 바라보았다. 머리에 쓴 헬멧에는 무전의 송추신 장치
가 부착되어 있어서 부대 원들이 주고받는 무전 연락이 희미하게 들
려 오고 있다.
18 밤의 대통령 제3부-111
전차는 지금 남방 한계선을 지나 비무장 지대로 진입해 들어가고
있었다. 저지대였고 갈대숲이 끝없이 난 평원이어서 달리기는 좋았
으나 엄물이 없다.
다케다는 앞장을 서고 있는 대전차 지뢰 중대와 기잠 정찰, 기갑
보병 부대가 군사 분계선을 돌파하여 북방 한계선까지의 2킬로미터
를 빠른 시간 안에 제압해 주기를 바랐다.
그 2킬로미터만 돌파하면 그 다음은 능선이다. 인민군의 보병 부
대를 간단히 뭉개 버리고 나면 제15전차 사단이 나타날 것이었다.
소련제 T-62가 주종이 된 전차 사단이다.
다케다는 야간 조명 장치가 된 화면을 노려보았다. 놈들에게 다케
다 신겐의 후예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줄 것이다. 무법자 놈
들에게는 따끔한 맛을 보여 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전차가 굴곡이 심한 땅을 지나는지 털컹이며 흔들렸다. 대전차 지
뢰 중대는 이제 한국군 보병들과 나란히 진군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
군 보병들은 경보병이어서 그야말로 미끼나 다름없었지만 지휘부에
서 말리지 않았다면 따라잡기 힘들었을 만큼 진군 속도가 타르다. 다
케다의 전차 여단은 그의 선조 신겐의 기마 무사 집단처럼 땅을 을리
며 어두운 황야를 달려나갔다.
회양의 인민군 제1굴단사령부의 참모장실.
막 방을 나서던 최상측은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이을설과 마주치
자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무슨 일이오? 사령관 동지, 내 방에는 들어오지 말라고 말씀 드
렸을텐데."
제78기갑 여탄 19
"수령 동지, 1군단 사령관 동지십니다. "
"뭐ㄹf?"
제78기갑 여단 21
최상욱이 눈을 부릅떴다.
"당장 나가 주시오. 당신과 이야기할 시간이 없소."
김정일이 눈을 치컥떴다.
"누구라고 했어?"
"제 1군단 사령관 이을설 차수입니다. "
방안의 시내들이 모두 군관이 쥐고 있는 검정색 전화기를 향해 머
리를 돌렸다.
김정일이 수화기를 귀에 대었다.
"여보세요."
"수령 동지, 이을설입니다. "
"동무가 웬일이외"
"난 제1군단을 장악했소, 수령 동지."
이을설의 목소리가 커다랗게 수화기를 타고 울려 왔다.
"참모장 최상욱이는 내가 처형했습니다,수령 동지."
"동무, 지금 뭐라고 했소?"
이제 김정일의 얼굴이 하얗게 되었다.
"누구를 처형했다구?"
"최상욱이와 놈의 심복들을 말이오.수령 동지,이제 우리 1군단
은 당신의 명령을 받지 않소."
"그것을 알려 주려고 전화한 거요. 이만 끊겠소."
끊긴 전화의 수화기를 들고 김정일은 좌우에 앉은 사내들을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수령 동지, 무슨 일입니까?"
김강한이 참다못해 물었다. 그는 아직도 두 손으로 붉은색 전화기
를 들고 있었다.
22 밤의 대통령 제3부-템
"이을설이가 배신을 한 것 같소."
이윽고 김정일이 입을 열었다.
"최상욱 상장을 처형하고 1군단을 장악했다는 거요."
"그럴 리가‥‥‥‥
백학림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도대체 왜 ‥‥‥‥
김강환이 전화기를 내려놓고는 서둘러 벽 쪽으로 다가가 가지런히
놓여진 전화기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안용준도 의자를 밀치고
일어나 그쪽으로 다가갔다. 아랫입술을 깨문 김정일이 그들에게서
시선을 었다.
방안은 한동안 김강환과 안용준의 악을 쓰는 듯한 통화 소리로 뒤
덮여 있었다.
상황실에 모인 참모들은 모두 10여 명이 되었다. 모두 불안과 긴
장으로 굳어진 얼굴이었는데 최상욱과 그의 심복 참모들이 순식간에
살해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앉은 테이블 뒤쪽에는 무장한 군관
들이 지켜 서 있기 때문이다.
그들 중에는 보위부 복장을 한 군관도 있었고 특수 부대의 휘장을
단 군관도 보였다. 평양 근처 강서에 있는 제3군단의 휘장을 단 군관
도 있었는데 모두 이을설이 불러 모은 심복일 것이다.
이을설이 참모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긴말하지 않겠다. 제1군단은 내가 장악하고 지휘한다. 이미 주요
부대의 지휘관들은 나의 명령에 복종하기로 되어 있으니 동무들이
반발해도 소용없다. "
제78기갑 여단 23
칼로 내려치는 것 같은 말투여서 참모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는다.
이을설이 말을 이었다.
"이것은 김씨 부자의 세습 독재 기반을 굳히기 위한 전쟁이다. 인
민은 제물이 될 것이고 수백만 명의 희생 위에 김씨의 권력 기반이
다져지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참을 수가 없다. "
"포병단을 바러라. 내가 단장에게 직접 연락하겠다. "
참모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벽 쪽의 통신실로 서둘러 다가갔
다. 그의 뒤를 군관 한 명이 따른다.
"남조선군의 위치는 지금 어디인가?"
이을설이 묻자 참모 한 명이 대답했다.
"조금 전에 군사 분계선을 돌파했습니다, 사령관 동지. 그리고 제
15전차 사단은 20분 후에 그들과 접촉하게 됩니다. "
"15사단장을 찾아, 어서."
"예, 시정관 동지."
상황실 안의 분위기는 조금씩 열기가 더해져 갔다.
"51사단은 움직이지 말도록.북방 한계선의 전위 부대도 가능하면
철수시켜라."
"예, 사령관 동지,"
이을설은 바쁘게 움직이기 옥작하는 참모들을 바라보며 한동안 자
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참모들의 말소리와 통신음 소리가 귀에 선
명하게 들렸고 그들의 움직임도 또렷하게 보인다.
만족한 듯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길게 숨을 내쉰 그는 자리에서 일
어섰다.
24 밤의 대통령 제3부 -및
2월 8일 오후 9시, 동부 전선 비무장 지대.
74식 탱크는 전투 중량이 38톤이었고 750
마력의 엔진으로 주포는
105밀리에 7.62미리/ 12.7미리의
기관총 두 정을 장착하고 있다.
일본이 최근 배치시킨 90식 전차보다 성능이나 주포의 위력은 떨어
지지만 북한군의 주력 전차인 T'-62에 비해서는 뒤지지 않는다. 더
욱이 첨단 전자 장비를 갖추고 있어서 야간 전투에 있어서는 세계 어
느 기종의 전차와도 견줄 만했다.
북한의 T-62가 115밀리의 주포를 사용하고 있지만, 74식 탱크
는 레이저 거리 측정 장치와 탄도 컴퓨터의 작동과 발사에 이르는 고
속화(fcs) 기능에 있어서는 T-62를 능가하고 있었다. 또한
74식 전차는 야간에는 텔레비전 영상대신에 암시 영상을사용해서
야간 주행 사격도 가능했고, 90식과 같이 레이저 거리 측정
장치를 부착하고 있어서 전체적 성능에서는 가히 세계 최고의 수
준이었다.
갑자기 날카로운 쇳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리더니 가까운 곳에서
강력한 폭발음이 들려 왔다. 전차의 몸체에 두어 개의 파편이 부딪치
고는 퉁겨 나갔고 그것이 신호라도 된 듯이 주위에서는 폭발음이 계
속되고 있다.
"지그재그로 대피하라!"
다케다가 소리쳤다.
"전대, 지그재그 대피!"
폭발음으로 보아서 미사일은 아니다. 아마 적의 후방에 위치한 포
병단의 152밀리나 180밀리의 자주포일 것이다.
"A대대, 여기는 A대대, 두 대가 전열을 이탈했습니다. "
제78기갑 여단 25
리시버에서 숨가쁜 목소리가 들려 왔다.
"계속 전진합니다, 오바."
"C대대,보고합니다. 우리는 한 대가 당했습니다. "
"전진!"
다제다가 자르듯 말했다.
"지그재그로 전진하라. 대전차 지뢰 중대의 뒤를 따를 것."
다시 뒤쪽에서 폭발음이 들렸고 이번에는 뒤쪽이 들씩일 정도의
충격이 왔으나 그의 전차는 캐터필러를 요란히 굴리며 앞으로 전진
해 나아갔다. 그러나 뒤를 따르는 기잠 보병들은 상당한 피해를 입었
을 것이다.
브래들리 M2형의 장갑 전투차는 IFV(Infantry Fighting Ve-
hicle)로 기관포와 대전차 미사일까지 장착되어 있었고 9명까지 탑승
시킬 수 있는 기갑보병용이었지만 장갑이 약해 152밀리의 포탄파
편에도 치명상을 입을 수 있었다.
폭발음으로 가득 찬 전장을 74식 탱크 여단은 필사적으로 진격해
나아갔다. 이제 대대장들은 피해 상황을 보고하지 않았다. 예상하고
있던 적의 반격이었다.
다케다는 분계선을 돌파하여 북방 한계선에 도달할 때까지의 아군
피해를 30퍼센트로 잡고 있었다. 그것도 북한의 제24, 27미사일 부
대가 궤멸당했을 때의 경우이다.
다시 측면에서 요란한 폭발이 일어났고 차체가 흔들렸으나 다케다
는 스크린을 응시한 채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엔진의 소음, 캐터
필러의 쇳소리와 함께 다급하게 전열을 가다듬는 중대장, 소대장들
의 교신음이 리시버에 가득 차 있었다
26 밤의 대통령 제3부 -템
"5백 미터 전방입니다, 여단장님."
1번 전차의 전차장인 기혜이 상사가 스피커에 대고 말하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전차 내의 흐린 조명 아래에서 그의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군사 분계선이 5백 미터 남은 것이다.
14식 전차에 탑재된 105밀리 포의 APDS(AmorPiercingDiscar-
ding Sabot:철잠탄)는 사정 거리 1천 미터에서 320밀리의 장갑을
관통하고 3천 미터의 경우에는 120밀리로 떨어진다. T-62에 탑재
된 115밀리 활강포의 APFSDS(철갑탄)는사정 거리 2천 미터에서
3백 밀리 장잠판을 관통한다.
따라서 북한의 T-62가 APFSDS출 사용하고 있다면 관통력이나
유효 거리에서 우위일 것이고,포의 최대 최초 속도에 있어서도 74
식의 105밀리 활강포가 초속 1천 』백 미터인 데 반하여 T-62의
11삔리 활강포는 떫 객 미터이다. 그러나 활강포는 날개를 써서
포탄을 항공 역학적으로 안정을 시키기 때문에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아 2천 미터가 넘는 거리에서는 사격 정밀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그것을 전자 장비로 커버하는 것이다.
다케다는 기혜이를 향해 머리를 』1덕여 보이고는 스피커의 스위치
를 눌렀다.
"1열,사격 준비.2열부터는 토1간격을 두고 발사한다. "
아직 전방의 적 능선에서는 사격해 오지 않고 있었다. 이제 군사
분계선은 3백 미터 남짓 남아 있었지만 그들이 이쪽 전차 부대의 공
격을 모를 리가 없는 것이다.
제78기잠 여단은 10여 대씩의 전차가 옆으로 벌려 선 대항으로 전
진해 나갔는데 그것은 마치 신겐의 기마 무사 집단이 공격할 때와 비
제78기갑 여단 27
슷한 파도 대형이었다.
포탄에 맞은 장갑차가 다시 요란한 폭음을 내며 폭발하면서 불덩
이를 하늘 높이 뿜어 올렸다.
하늘을 가르는 쇳소리에 이어 쉴새없이 포탄이 떨어지고 있었으므
로 장영환은 헐떡이며 달렸다. 포탄은 뒤쪽의 탱크대를 목표로 퍼부
어지고 있었지만 점점 그에게로 가까워진다. 탱크의 진군 속도가 그
들보다 빠르기 때문이었다. 전차의 캐터필러 소리가 폭음에. 섞여 가
까워지고 있는 것이 이제는 든든하지 만도 야다.
포탄 한 발이 옆쪽에 떨어져 폭발하였으므로 장영환은 저도 모르
고 갈대을에 몸을 던졌다. 그러나 다음 순간 번쩍 상반신을 세웠다.
탱크에 깔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빌어먹을_"
울부짖듯 소리 친 그는 소총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그의 옆을 두
명의 검은 그림자가 스치고 지났지만 어둠 속이라 누군지는 알 수가
없다.
"공격! 공격, 앞으로!"
그러자 폭발음에 섞여 낯익은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 왔다가 금
방 폭음에 지워졌다. 소대장 이한성 소위의 목소리였다.
"탱크의 앞을 서라! 탱크의!"
다시 그의 목소리가 들렸고 일어션 장영환은 갈대를 혜치며 앞으
로 뛰었다.
"장 병장님!"
바로 옆쪽에서 고함치듯 부르면서 양만호 일병이 다가왔다. 어둠
28 밤의 대통령 제3부 -방
속에 두 눈의 철창만이 번들거리고 있다.
"3분대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
그와 나란히 달리면서 양만호가소리쳤다. 뒤쪽에서 다시 연쇄적
인 폭발음이 들려 왔으나 그들은 돌아보지 않았다. 밤하늘을 수백 개
의 빛줄기가 가르면서 고막이 터질 듯한 폭음이 계속되고 있다.
"탱크의 앞장만 서."
이제 3분대는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포탄 한 발에 당했을 수도 있
고 이쪽이 그들보다 앞섰을 수도 있다.
그들의 앞쪽에 두 명의 사내가 달려가고 있었다. 갈대를 헤치며
나아가는 그들의 철모 뒤쪽에는 횐 동그라미가 붙여져 있어서 금방
눈에 띈 것이다.
"저것, 일본군이다. "
장영환이 폭음 속에서 소리쳤다.
대전차 지뢰 중대원일 것이다. 그들과 함께 길을 닦고 전진해 나
가는 것이 임무였으므로 양만호는 헐떡이며 그들의 뒤를 따랐다. 다
시 뒤쪽에서 포탄이 폭발하면서 후끈한 열기와 함께 폭풍이 그들의
몸을 밀었다. 주위가 붉은 화염으로 잠간 밝아지면서 갈대와 앙상한
잔 가지로 덮인 황량한 들판이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온몸에서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2킬로미터 가람게 뛰어왔으므
로 심장은 격렬하게 박동했고 열기에 싸인 몸은 이미 추위를 잊은 지
오래였다. 앞에서 불어 오는 겨울의 밤바람이 세차게 얼굴을 할퀴며
지나갔다.
(2)
폭음 속에서 다시 이한성의 고함 소리가 들려 왔다.
"앞으-로 전진! 전진!"
그 순갈 옆쪽에서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포탄이 폭발했고 양만호는
몸이 하늘로 날마오르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눈 장학할 시간 동안이었지만 그에게는 왜 오랜 비행처럼 느껴졌다.
이윽고 그는 갈대 숲으로 어깨부터 떨어져 내렸다.
"나 ·안 죽었다!"
눈을 부릅뜬 그는 목청껏 소리치면서 두 손으로 땅바닥을 짚었다.
갈대 줄기가 얼굴을 쓸었고 어느 사이엔지 철모가 벗겨진 맨머리가 되어 있었다.
"난 끄떡없어!"
=I;가 다시 소리치며 상반신을 세워올렸을 때 다시 폭음과 함께 뒤쪽에서
땅이 울리는 것이 느껴졌다.
탱크다.
"어머니 !"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만을 힘껏 쳐들면서 양만호가 악을 쓰듯 외쳤다.
상반신은 세워지지 않았고 뒤쪽에서 쇠를 깎는 것 같은 탱크의 캐터필러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서울,2월 8일 오후 9시 10분.
대통령은 눈을 치켜뜨고 방금 통화를 끝낸 강동진 사령관을 바라 보았다.
그러자 집무실 안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옮겨졌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강동진이 천천히 몸을 돌려 대통령의 시선을 받는다.
굳어진 얼굴이었다.
"각하,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
대통령이 아무 대답 없이 잠자코 있자 그가 말을 이었다.
"계엄 사령부와 한일 연합군 사령부는 이미 강한기 소장과 가토 중장이
장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반란이군. 이건 쿠데타야."
낮은 목소리로 대통령이 말했지만 방안의 사람들은 모두 들었다.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에다가 이제는 찬 물벼락을 덮어 쓴 것처럼 토
두 눈을 치켜뜨거나 몸을 곧추세운다.
"전쟁을 막아야 돼, 어떻게 해서든지."
그렇게 말하면서 대통령이 벌떡 일어서자 강동진잇 그에게로 몸을 돌렸다.
"각하, 이제는 늦었숩니다. "
"늦다니, 군을 저대로 내버려두란 말인가? 그리고 우리는 이곳에
모여 앉아 나라가 망해 가는 꼴을 구경만 해야 한단 말이이?"
대통령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테이블에 앉아 있던 임병섭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통령에게로 다가 갔다.
"각하, 아직 확전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동부 전선의 1개 기갑 여단이 밀고 들어간 것뿐입니다. "
"미사일 기지들을 파괴당한 저들이 가만 있을 것 같은가?
이제 곧 전면전이야. 놈들이 바라던 대로 끌려 든 셈이라구."
"우선 고정하시고 앉으시지요,각하."
그러자 대통령은 지친 듯 소파에 주저앉으면서 어깨를 늘어뜨리고는 긴 숨을 뱉는다.
"시령관, 어떻게든 연락을 해서 부대를 퇴군시키도록 해. 지금 당장. "
"예, 각하."
제78기감 여단 31
굳게 입을 다물고 서 있던 강동진이 대답은 했지만 움직이지는 않는다.
이미 수십 번 강한기와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령부는 이미 강한기를 중심으로 한 강경파 장교 그룹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다.
일본군이 그들에게 적극 협력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로젠스턴의 폭로와 휴전선의 대남 방송 등으로 위기 의식을 느긴 그들은 순식간에
군부를 장악했는데 장교 대부분의 적극적인 호응이 있었을 것이다.
문이 열리더니 비서 실장 박종환이 전화기를 들고 서둘러 들어섰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대통령에게로 다가간 그가 전화기를 내밀었다.
"각하, 하시모토 수상입니다. "
잠자코 전화기를 건네 받은 대통령이 귀에 대었다.
"수상 각하, 이영만입니다. "
"대통령 각하, 그러지 않아도 연락 드리려고 했습니다. "
하시모토의 목소리도 긴장되어 있었다.
"우리측이 치고 들어 갔다던데요.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수상 각하."
"허어,그런데 그것이 군 일부가 명령을 어기고 공격한 것이라고
"그렇습니다. 수상. 연합군 사령관은 지금 내 옆에 있습니다만."
대통령이 전화기를 귀에 댄 채 집무실 안을 둘러보았다.
모여 앉아 있는 임병섭과 강동진, 박종환, 김형태 등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지도자였던 인물들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허수아비처럼 나라가 망해 가는 꼴을 구경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수상, 유감스럽게도 북한을 공격하는 주력은 일본의 78기갑 여단입니다. "
"각하, 나도 들었습니다. "
"가토 사령관이 군부의 반란 세력과 동조한 것입니다. "
"각하, 그것은 아직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작전 지휘 책임은 한국에 있으니까요."
"가토 사령관과 연락이 되었습니까?"
-우리도 아직. 하지만 중국의 장자량 주석과는 통화가 되'컸습니다.
한국군의 일부가 명령을 어기고 침입해 들어간 것이라고 했어요.
곧 퇴군시킬 것이니 북한측과의 조정을 부탁했습니다 "
"저도 조금 전에 연락을 했습니다. 수상."
"퇴군시켜야지요, 각하. 확전되면 안됩니다. "
"예, 수상 각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
이윽고 대통령이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집무실은 다시 무거운 정적에 잠겨 들어갔다.
같은 시간의 파리, 2월 8일의 오후 1시 15분이다.
북한 대사관의 대사 집무실에 앉아 있던 최광은 대사가 건네 주는 전화기를 받아 귀에 대었다.
"최광십니다. "
"최 주석, 로젠스턴입니다. "
"웬일이십니까, 장관께서?"
"남한이 휴전선을 돌파했다고 들었는데,물론 평양과 연락은 하셨겠지요?"
"그거야‥‥‥‥
로젠스턴의 저의를 알 수 없었으므로 그는 말끝을 흐렸다.
로젠스턴이 말을 이었다.
"최 주석, 한국 정부에서 다시 회담을 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물론 비무장 지대로 진입한 부대는 철수시킨다고 하더군요.
우리에게 꼭 회담을 성사시켜 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이번에는 총리금의 대표를 보내겠다는데, 최 주석과 격이 맞는 사람으로.
나는 그쪽 말을 전해 줄 뿐입니다. "
"나로서는 결정할 수가 없소, 로겐스턴 장관. 수령 동지에게 연락을 해야 합니다. "
"그런데 최 주석, 이을설 장군은 대단히 신중한 사람인 것 같군요.
동부 전선의 북한군이 적극적인 방어를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
"최 주석, 혹시 그 이유를 알고 있습니까?
그걸 나에게 말해 준다면 도움을 드릴 수도 있겠는데."
"파리에 와 있는 내가 알 리가 있겠소?난 그쪽 일은 모릅니다,장관. "
"그렇습니까? 하지만 한국군의 선제 공격으로 미사일 기지 두 곳과
야포의 30퍼센트 정도가 파괴되었는데도 한국군의 진격을 막지 않고 있단 말입니다.
그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마 1쪽의 작전이33지.0.."
34 밤의 대통령 제3부 -및
"최 주석, 한국과 미국은 지금도 동맹국입니다. 한국이 어떻게 생각하건 간에 말이오."
로젠스턴은 끈질기게 매달렸다.
"난 아무래도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최 주석."
"최 주석과 이을설 장군이 북한군의 원로이고,
지금은 서로 뜻이 맞는 관계라는 것도 알고 있지요,우리는."
"어쪘든 남조선측의 회담 제의는 수령 동지께 보고하겠소, 장관."
"미국 정부의 입장은 한반도의 전쟁을 막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최 주석, 당신의 수령에게 꼭 그 말을 전해 주시오."
전화기를 내려놓은 최광이 입맛을 다시고는 대사를 돌아보았다.
"남조선이 총리급 회담을 하자는군.
지금 치고 들어온 부대는 남조선의 반란군인 모양이야."
현만식 대사가 불안한 듯 눈을 껌벅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습니까? 반란군입니까?"
"한일 연합 반란군이지.일본 1개 전차 여단에 한국군 1개 대대 병력이니 ."
말을 멈춘 최광은 의자에 등을 묻고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같은 날 오후 9시 20랄, 한일 연합군 사령부의 상황실.
전자 기기들의 작동음과 말소리가 상황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분위기는 활기에 차 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도 장교들의 움직임
에는 탄력과 생기가 엿보였다. 중앙 테이블 주위에 둘러서 있는 강한기,
이케다,가토등의 지휘부 장군주위로 참모들이 끊임없이 몰려 왔다가
제78기갑 여단 35
명령을 받고는 재빠르게 물러간다.
일본군 장교 한 명이 서투르며 중앙 테이블로 접근해 왔다.
"참모장님, 다케다 여단장으로부터 긴급 연락이 왔습니다. "
중좌는 이케다를 향해 말했지만 테이블 주위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모아졌다.
"무슨 연락이야?"
긴장한 이케다가 그를 쏘아보았다.
"예, 적의 포격이 갑자기 그쳤다고 합니다.
아군은 진군해 가고 있지만 적은 포격해 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
이케다가 머리를 돌려 가토와 강한기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그들의 주위로 서너 명의 참모가 몰려들었다.
"과장님 "
이번에는 한국군 대령 한 명이 강한기를 소리쳐 부르며 다가왔다.
"제 15전차 사단의 이동이 멈추었습니다. "
사람들을 헤치고 테이블로 다가온 대령이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짚었다.
"이곳에서 멈췄습니다,과장님.위성 레이더에 분명히 잡혀 있습니다. "
강한기는 그의 손끝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끝은 인민군 제51사단과는 비스듬한 위치를 짚고 있었는데
옆쪽에는 3백 미터 높이의 산맥이 가로놓여 있다.
51사단의 정면으로 돌진해 오는 78기갑 여단을 막으려면 산맥을 우회하여
지나 51사단의 측면으로 다가가야 했다.
이것은 방어의 위치이지 78기갑 여단을 잡으려는 포진이 아니다.
강한기가 머리를 들었다.
그러자 그를 바라보고 있는 수십 개의 시선과 마주쳤다.
"강 장군, 다케다 부대는 지금도 진군해 가고 있소."
가토가 정적을 깨었다.
"사령관과 참모장이 부재인 지금 한국군에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당신이오. 당신의 의견을 말해 보시오."
"진군합니다, 북방 한계선까지."
강한기가 다섯 손가락으로 51사탄의 전면을 짚었다.
215라고 표시된 지점이다.
"이 능선까지 진격해서 이곳을 장악하고 멈춥니다. "
"좋군. 위치가 좋소. 그곳에서 다시 경사면으로 내려가니 5킬로는
우리가 또 벌어 들였어."
가토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대로 진군하겠소. 그리고 그곳을 장악합시다. "
일본군 중좌가 바람을 일으키며 몸을 돌렸고 몰려든 참모들이 제
각기 위치로 서둘러 돌아갔다. 모두 활기가 넘쳐흐르는 모습이다.
"포격과 전차 사단 이동을 멈춘 것은 전쟁을 할 의사가 없다는 것
밖에는 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
강한기가 가토와 이케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가토가 머리를 」1덕였다.
"모험이었소, 강 장군. 하지만 우린 이것이 실패로 끝났다고 하더
라도 전력을 다해 전쟁을 치를 생각이었소."
"저는 꼭 해야 할 일이었다고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 "
그들의 뒤쪽에서 장교 한 명이 다가와 강한기 옆에 섰다.
최우식 대령이다.
"과장님,사령관께서 청와대를 출발하셨다고 합니다. "
한국말이었으므로 가로와 이케다는 테이블 위의 지도로 시선을 내렸다.
강한기가 머리를 끄덕였다.
"이제야 대통령께서 놓아 준 모양이군. 예상하고 있었어."
"과장및, 사령관께서는 헌병 1개 중대 병력과 청와대 경호실의 요
원들을 인솔하고 오십니다. "
"당연한 일이야. 이상할 것 없다. "
"지시를 내려 주십시오. 밖에서 우 대령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우중철은 계엄 사령부의 경비 대장으로 제29연대장이다. 바짝 다
가선 최우식의 얼굴을 힐끗 바라본 강한기는 잠자코 지도 위로 시선
을 돌렸다.
이맛살을 찌푸린 최우식이 입맛을 다셨다.
"과장님, 대통령께서는 김두삼 중장에게도 출동 명령을 내리셨습
니다. 사령부를 즉시 장악하라는 명령입니다. "
김두삼 중장은 김포에 주둔하고 있는 공수 특전단의 사령관이다.
계엄 사령관인 강동진 대장과는 육사 동기인 고참 중장이었다.
강한기가 가토 쪽으로 몸을 돌렸다.
"가토 장군,곧 연합군 사령관께서 이쪽으로 오십니다. "
"헌병과 청와대 경호실 병력을 데리고 오시는 모양이오."
"그렇습니까?회의가 이제 끝난 모양이군요."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연합군 작전 참모로서 공격 명령을 내
38 밤의 대통령 제3부 -llf
린 것은 납니다. 그것을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
한동안 강한기를 바라보던 가토가 시선을 테이블 위의 지도로 내
렸다. 그의 시선이 꽃힌 곳은 215고지와 비무장 지대의 조그만 공간
이었다. 지금 그곳을 78기잠 여단이 한국군 1개 대대와 함께 공격해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같은 시간, 김포의 특전 사령부 지하 벙커 안.
짧게 깎은 반백의 머리에 깊고 굵은 주름살로 덮인 얼굴의 김두삼
중장은 전투복 차림으로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긴 철제 테이블 끝쪽에서 그를 바라보고 서 있는 것은 참모장인 한병옥 소장이다.
그는 김두삼과는 대조적으로 큰 키에 어깨가 딱 벌어진 체격의 사내였다.
김두삼이 입을 열었다. 왜소한 체격에 어울리지 않는 굵은 목청이었다.
"대통령 각하의 명령이야.제2여단을 즉시 시령부로 출동시켜서
강한기와 일당들을 체포해야 돼. 다른 말 할 것 없다. "
"사령관님,가토 중장과 이케다 소장은 어떻게 합니까?"
한병옥이 찌푸린 얼굴로 물었다.
넓은 벙커 안에 두사람의 말소리가 벽에 부딪치면서 울렸다.
"그들을 내버려 둔다면 이치에 맞지가 않습니다.
215고지를 공격해 들어가는 것은 일본군 기갑 여단입니다. "
"공격 명령은 강한기가 내렸을 것이다.
물론 가로의 묵인하에 내려졌겠지만."
"가토 중장의 독단이 아닙니다.
사령관님. 일본 정부의 묵인이 있었을 것입니다. "
"어쩠든 카토와 이케다는 안돼. 우선 강한기와 사령부에 있는 놈들
일당들만을 잡는다. "
"사령관님,시령부 안에 있는 모든 장교들을 잡아야 할 겁니다. "
한병옥이 머리를 들고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사령부 전체가 강한기에게 동조한 것입니다. 강한기가 제105,
108포대에 포격 명령을 내렸을 때 제 1군 사령부에서도 적극 협조를 했습니다.
그들은 사령관께서 청와대에 가 계신 줄도 알고 있었습니다. "
"사령관님, 그렇다면 제1군 시정관인 박정찬 대장과 참모장 현규연 중장도
체포해야 합니까?"
"자넨 강한기와 육사 동기이던가?"
"제가 강한기 소장의 1년 후배 됩니다, 사령관님."
"대통령의 명령을 거역할 순 없어."
"군이 마비됩니다, 사령관님. 분열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반란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강한기는 순순히 잡힐테니 까요. 하지만‥‥‥‥
"그런 사고 방식으로 내 선배들이 정권을 잡았었지. 잔말하지 마라."
김두삼이 눈을 부릅떴다.
"이것은 반역이다. 더이상의 변명이 필요없다. "
"지금 78기갑 여단은 밀고 올라가고 있습니다.
지휘부를 장악한다고 해서 그들을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
"북한은 움직이지 않고 있어. 그놈들만 없어지면 원상태로 돌아간다. "
"사령관님."
얼굴이 상기된 한병옥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대통령 각하께선 정상이 아닙니다.
놈들에게 항복하는 거나 다름 없는 강화 조건을 받아들이려고 했고
지금은 우리 군의 중추부를 무력화시키려고 합니다.
그 명령대로 했다가는 군은 궤멸됩니다. "
그러자 방문이 열리면서 부관이 전화기를 들고 서둘러 다가왔다.
"사령관님, 제2여단장입니다. "
김두삼이 잠자코 전화기를 받아 쥐었다.
"장 준장인가? 나야."
김두삼의 때려붙이는 듯한 목소리가 벙커를 울렸다.
"출동 준비 되었나?사령부까지는 한 시간이면 진입할 수 있겠Tl?"
"사령관님, 저, 못합니다. "
"뭐ㄹff?"
전화기를 고쳐 쥔 김두삼이 목을 어깨 속으로 박고는 눈을 부릅떴다.
한병옥이 숨을 죽이고는 그를 바라보고 있다.
"장 준장,너 뭐라고 했어?"
"사령관님, 저를 쏘아 죽이십시오.
하지만 제 부대원을 사령부로 진입시킬 수는 없습니다. "
"너, 항명하는 거냐? 이것은 대통령의 명령이야."
"항복할 수는 없습니다.
사령관님. 대통령은 우리 군을 불신하고 있는 겁니다. "
(3)
"무엇이?"
"군을 믿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런 똥같은 조건으로 북한놈들에게
항복하는 것입니다. 저는 못 잡니다. "
"이놈, 장규범이, 이놈."
"저를 차라리 죽이십시오.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사령관
님."
김두삼이 전화기를 부관에게 던졌는데 넋을 잃고 있던 부관이 손
을 뒤늦게 내미는 바람에 전화기는 시멘트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
자 벙커 안에 한동안 괴괴한 정적이 흘렀다. 아무도 입을 열지도 움
직이지도 않는다.
같은 시간의 주석궁 내 지하 상황실.
모여 앉은 인원의 변동은 없다. 이쪽도 마찬가지로 숨소리조차 들
리지 않는 정적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방안의 어디에선가 금방이라도
칼날이 내려쳐질 듯한 섬뜩한 분위기였다.
김정일은 석고처럼 굳은 얼굴로 앞쪽을 바라보았으나 눈의 초점은
없고 입술이 반쯤 벌려져 있다. 두 손으로 의자의 팔걸이를 움켜쥐고
있는데 숨을 쉬는 것 같지도 않다.
백학림과 안용준, 김강환 등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모두
먼저 정적을 깨는 것이 두려운 듯 눈동자만 굴리고 있었다.
이윽고 김정일의 두 눈이 안경알 속에서 두어 번 깜박였다. 그러
자눈의 초점이 잡히고 입술이 닫혀 지면서 입가에 물기가번져 나왔
다. 고여 있던 침이다.
"이을설이, 이 반동 분자 놈."
42 밤의 대통령 제3부 -lB
그의 목소리는 가늘었지만 모두에게 선명하게 들렸다. 그가 입술
만 움직였더라도 =1들은 알아들었을 것이다.
"회양으로 진격할 수 있는 부대는 어느 부대가 좋겠소?"
김정일이 억양 없는 목소리로 묻자 방안의 사내들이 모두 그에게
로 머리를 돌렸다.
이을설이 최상욱을 사살하고 제 1군단을 장악했다는 것은 여러 경
로를 통해 사실로 입증되었다. 사령부를 빠져 나온 정치 군관 몇 명
은 거리에서 방황하고 있다. 주석궁은 그 이후부터 흥흥한 분위기로
돌변했다.
김강환 등이 서둘러 1군단의 예하 부대인 1개 사단과 8개 여단의
지휘관들을 단속하였지만 연락이 안된 지휘관이 다섯 명이나 되었
다. 수령 동지의 직통 전화라고 해도 전화를 받지 않는 사람은 곧 이
을설의 일당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김강환이 입을 열었다.
"수령 동지, 회양 북방에 있는 제46·신과 여단의 방현수 소장이 믿
을 만합니다. "
그와 통화를 나눈 지휘관 중의 하나였다.
"그에게 군단 사령부를 진압하라는 명령을 내리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믿을 만하오?"
"예, 수령 동지. 제가 신임하고 있는‥‥‥‥
김정일의 시선이 둘러앉은 사내들을 하나씩 훌고 지나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남조선 국방군의 반란을 비웃으며 그들과의
강화 조약에 더 무거운 짐을 지도록 해야 한다면서 득의에 차 있던
제78기감 여단 43
사내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김강환을 제외하고는 누구 하나 선뜻
나서서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지를 않는다.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것
이다.
어금니를 문 김정일이 데이블 위의 지도로 시선을 내렸다. 지금
비무장 지대를 일본군의 기갑 여단과 한국군 보병 대대는 포탄 한 발
맞지 않고 진격해 들어오고 있다. 1군단의 2개 포병 여단은 포격을
멈추었고 제 15전차 사단은 움직이지 알고 있는 것이다.
"전쟁이야."
갑자기 머리를 번쩍 치켜든 김정일이 소리치자 방안의 사내들이
모두 몸을 굳혔다.
"총공격이야! 이제는
"수령 동지."
헛기침을 하며 백학림이 그에게로 몸을 돌렸다 눈꼬리를 치켜세
운 얼굴이었다.
"침착하셔야 합니다.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닙니다. "
"무엇이? 침착하라구?"
이런 식의 말은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김정일의 얼굴색이 다시 새
하얗게 변했다.
"감히, 나에게‥‥‥‥
그는 말을 잇지 못한다.
"수령 동지, 우선 1군단부터 수습을 하고 결정 하셔도 늦지 않습니
다. "
백학림이 말을 이었다.
"만일 이 시점에서 총공격을 한다면 동부 전선은 비게 됩니다. 국
44 밤의 대통령 제3부 -르
방군은 손상 없이 동쪽으로 침입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 1군단이 놈
들과 연합하게 될 가능성도‥‥‥‥
"우선 1군단을 진압시키고 나서 결정을 하시는 것이‥‥‥‥
"그렇다면 지금 치고 올라오는 땅크 부대는 어쩌란 말이오? 응?
만일 놈들이 1군단과 손을 잡게 된다면 동부 전선이 뚫리는 건 마찬
가지 아니오?"
"남조선 대통령이 퇴군시킨다고 약속했으니까 그 말을 믿어 보시
는 것이‥‥‥‥
그러자 김강환이 헛기침을 했다.
"이영만이가 제1군단의 이을설이가 반역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마음이 변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을설이가 이영만이에게 연락을
해서 국방군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1군단을 진압시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씀 드린 거
요. "
백학림이 목소리가 커졌다.
"지금 섣불리 총공격을 해서는 안됩니다, 수령 동지."
"그렇다면 제46산악 여단을 보내서 사령부를 장악해야겠군요."
그렇게 말하고 나선 것은 보위부장 안용준이다.
"수령 동지, 지시를 내려 주십시오. 회양의 보위부대도 합류하도
록 하TE습니다. "
앞쪽에서 연속적으로 들려 오는 폭음은 지뢰 제거용 장갑 차량이
지뢰원을 향해 쏘아 대는 포탄 때문이었다. 앞장선 다섯 대의 장갑차
제78기라 여단 45
는 제각기 롤러나 체인을 앞쪽에 매달고 지뢰를 폭발시키면서 전진
해 나아갔다.
대전차 지뢰는 일반적으로 130킬로그램 이상에서 200킬로그램 정
도의 압력을 받아야 폭발하는 압럭 발화 지뢰 또는 진동에 의해 폭발
하는 진동 발화 지뢰,음향 발화 지뢰, 자기 발화, 원격 조정 발화, 시
한 발화, 전기 발화 등으로 종류가 많은 데다가 플라스틱 제 지뢰는
베트남전에서 쓰였던 PRS -3 탐지기로도 탐지되지 않는다.
따라서 다케다는 지뢰원의 돌파 방법으로 지뢰 제거용 장갑차를
전진시키면서 앞쪽을 무조건 폭파하는 적극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
었다.
먹물 속에 잡겨 있는 것같이 어두운 밤이다. 지뢰 제거 장갑차의
뒤를 횡대로 따르는 한국군 보병 대대의 뒤쪽에는 APC나 IFV(장
갑병력 수송차)에 나눠 탄 일본군 기갑 보병 대대가 진군해 왔고, 그
다음이 오늘 밤의 주역인 74식 탱크대가 포신을 치켜든 채 나아가고
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하늘과 땅의 구별이 안될 만큼 쏟아지고 터지
던 포탄이 마치 꿈속에서 있었던 일처럼 일순간에 딱 그치자 이쪽은
대열을 정비하면서 질서를 찾았다.
그러나 묵묵히 진군해 나아가는 부대 원들의 긴장과 불안감은 오히
려 증폭되는 중이었다.
"이런 지기미, 어떻게 된 거야?"
조명훈이 뒤를 따르는 이한성을 돌아보며 소리치듯 말했다.
"저 새끼들이 모두 내뺐나? 이거 왜 이래?"
중대장이 모르는 일을 소대장이 어떻게 아느냐는 듯 이한성은 대
46 밤의 대통령 제3렬 -lH
답하지 않았다.
지뢰 제거 장갑차가 조금 속력을 내었으므로 그들은 헐떡이며 뛰
다가 다시 속보가 되었다. 폭음이 앞쪽에서 다시 대여섯 발씩 한꺼번
에 터져 올랐다.
이제 215고지는 1킬로미터도 남지 않았다. 그쪽의 기관총 유효 사
정 거리 안에 들어온 셈이었지만 보병들의 총격도 없다.
"중대장님, 대대장님입니다. "
뒤에 바짝 붙어 있던 무전병이 R -442의 송수화기를 조명훈 대위
에게 건네 주었다.
"조명훈입니다. "
그가 소리쳐 말하자
"앞에 놈들이 있어. "
오진감도 대뜸 소리쳤다
"놈들이 기다리고 있단 말이다. 마음 놓지 말란 말이야."
"알았습니다. "
"기운 내 얼마 남지 않았다. "
그러고는 무전이 끊겼다. 앞에서 폭발한 파편 몇 조각이 후드득
거리며 그들의 몸 위로 떨어져 내려왔고 붉은 화염 속으로 장갑차의
검은 몸체와 갈대숲의 횐 줄기들이 어른거리며 드러났다
조명훈이 이한성을 다시 돌아보았다.
"기운 내라. 얼마 남지 않았다. "
"뭐가 말입니까?"
헐떡이며 이한성이 물었다.
"죽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어깨를 치켜올렸던 조명훈이 다시 몸을 돌리며 서둘러 걸음을례 었다.
이한성은 이미 소대원 반을 잃었다.
다른 소대도 마찬가지의 피해를 입었는데 인민군의 포격이 지금까지 계속되었다면
아마 성한 병사가 없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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