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몽정기 1
“청나라 시절 건륭 황제가 저장 지방이라는 곳을 시찰하고 있었는데
바다에 떠 있는 수백 척의 배를 보곤 저 수백 척의 배는 어디로 가는 배냐고
저장의 상인이 순무라는 사람한테 물었답니다.”
인화의 새 집엔 그녀의 가족이 한국에 입성한 기념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인화의 아버지가 해외영업 2팀원들을 향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아버지는 중국에 있을 때 교사였다고 했다.
다들 인화 아버지를 쳐다봤다.
진국이나 봉수 애란 병달이가 중국 총판에 대해 왈왈거리는 걸 듣고 덕담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아버지도 참.”
인화가 팀원들을 계면쩍은 얼굴로 둘러보았다.
“아니 괜찮습니다. 중국에 관한 이야기라면 뭐든 다 들어야 할 판입니다.”
진국이 인화를 쳐다보며 손을 저었다.
“아버진, 그래서요?”
바짝 마른 인화 아버지가 얼굴에 하회탈 같은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순무가 답하길 ‘저의 눈에는 한 척만 보입니다’ 그런 겁니다.”
“한 척만 보이다뇨?”
병달이가 가장 먼저 호기심이 이는 듯 바짝 당겨 앉았다.
진국의 눈엔 그가 인화의 아버지에게 점수를 따려는 것처럼 보였다.
“수백 척의 배가 있지만 그건 ‘이익’이라는 단 한 척의 배일 뿐이라고 설명한 겁니다.
그게 저장 상인들의 정신입니다.”
“저장 상인이라? 처음 들어보는 데요.”
“그러게 저장이라는 데가 어딥니까?”
봉수와 애란이 뒤질세라 관심을 보였다.
병달과 진국은 알고 있는 눈치였다.
봉수는 그런 진국을 보니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사실 한국과 가장 닮은 중국의 성은 상해가 아니라 상해 남쪽에 있는 저장성입니다.
저장성 사람들이 중국을 뒤흔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저장성은 장쑤성, 광동성과 더불어 중국에서 제일 잘 사는 성입니다.
누가 뭐래도 중국 상인의 서열 1위는 바로 저장상인일 겁니다.”
“그럼 어르신은 저희가 중국에 총판을 낸다면 먼저 저장성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네요?”
진국은 먼저 한 수를 짚고 넘어갔다.
“허허 그렇다기보다는… 저장상인의 정신을 배우라는 거죠.
가려면 먼저 상해로 가야 할 겁니다.
외국인 투자가 활성화되어 있어 절차가 다른 곳보다는 까다롭지 않고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편이지요.”
애란은 슬쩍 펜 마이크를 꺼내 녹음 키를 눌렀다.
한참 상해와 저장성, 중국인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인화 아버지가 그때서야
생각난 듯 가방에서 소주처럼 맑은 술병을 꺼냈다.
“이건 중국의 백주라는 겁니다.
만드는 곳이나 저장 시간 혹은 발효 시간, 원료에 따라 제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모두 백주라고 하죠.”
인화 아버지가 좌우를 쓱 둘러보더니 진국에게 술병을 내밀었다.
한 잔 따르겠다는 표시였다.
“제가 여러분에게 해드릴 건 없고 이렇게 술 한잔 대접할 여력밖에 없네요.”
“이게 우리가 중국음식점에서 먹는 고량주라고 봐도 되는지요?”
“맞아요. 고량주라고 보면 됩니다.”
손톱만한 잔에 술이 채워지자 인화의 동생인 여화가 안주를 들고 나왔다.
진국의 눈길이 여화에게 잠시 머물렀다.
“제 딸들 예쁘지 않습니까?”
인화 아버지가 노골적으로 물었다.
여화는 인화보다 통통했고 키도 컸다.
그래머랄까? 아니 슈퍼모델감이었다.
쭉쭉빵빵 미녀를 보면 남자의 눈은 자연스럽게 따라가기 마련이었다.
“두 따님 모두 미인이십니다.”
진국이 겸손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괜히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중국은 넓은 나랍니다.
북경 사람은 뜸을 들이고 이리저리 살피는 편이지만 제가 주로 자란 상해 사람들은
직접적이고 개성이 강한 편입니다.
주제넘은 이야기지만 우리 딸들도 그렇죠. 자 건배하시죠.”
인화 아버지가 잔을 들었다.
봉수는 목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인화 아버지가 단숨에 비워내니 다른 사람들도 따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좀 독하죠? 70도 가까이 됩니다.
불을 붙여도 붙죠.
중국 사람들이 화염병을 만들어 무기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니까요.”
“어서들 드세요.”
인화 어머니 얼굴에는 화색이 가득했다.
상위에 올라온 음식은 중국집에서 시킨 탕수육 같았는데, 맛은 조금 달랐다.
“이건 산동요리 중의 하나입니다.
한국 중국식당에서 하는 탕수육과 비슷한 건데 고기 대신 생선을 쓰는 요립니다.
하지만 여기 탕수육처럼 느끼하지 않죠. 탄추위하고 하는 겁니다.”
상 중앙에 탄추위가 놓였다.
행여 중국 음식이 손님에 맞지 않을까 싶어 미리 조치한 것인지 김치도 올라 있었다.
처음 보는 밑반찬까지 상 위에 올라 있었다.
인화 가족의 꼼꼼함을 보여주는 듯했다.
상도 여덟 사람이 앉아도 넉넉할 만큼 컸다.
“너도 앉아라.”
아버지가 여화를 불렀다.
맞춤한 자리가 없어 여화는 진국의 곁에 앉았다.
“방바닥에 앉는 게 불편하지 않습니까?”
병달이 탄추위를 젓가락으로 집으며 물었다.
“중국 사람들은 책상다리를 못합니다.
의자 문화죠.
하지만 우리도 조선 사람입니다.
얼마간은 불편하겠지만 금방 익숙해지겠죠.”
술자리는 흥겨웠다.
여화가 배웠다는 한국 가요를 한 곡 불렀다.
왁스의 ‘관계’라는 노래였다.
그녀가 스스럼없이 일어나 노래를 부르는 걸 보고 모두들 적잖이 놀랬다.
봉수는 소변이 마려워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 나왔다.
백주 몇 잔에 취기가 확 올라 쉬엄쉬엄 술을 마셔야 할 것 같았다.
그는 텃밭 쪽으로 향했다.
드문드문 떨어진 다른 농가들의 불빛이 보였다.
“뭐해?”
봉수가 바지를 추스리고 있는데 진국이 다가왔다.
“놀랬잖아.”
“놀라긴…”
진국도 바지 지퍼를 열었다.
“나도 이런 시골에 와서 살고 싶다.”
진국이 넋두리를 했다.
“너 같이 오지랖 넓은 놈이 이런 시골에 처박혀서 어떻게 사냐.”
“오지랖이 넓으니까 시골로 들어가야지.”
봉수가 돌아서려다 멈추며 불쑥 물었다.
“진국아, 너 도대체 정체가 뭐냐?”
“뭐?”
진국은 별소리 다 듣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봉수를 돌아보더니
“내가 나지 누군 누구냐?”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생각해 보니까 난 한번도 네가 사는 집엘 못 가봤다.”
“그래? 내일이라도 당장 가지 뭐.”
봉수의 눈에 진국은 지금 능청을 떨고 있을 뿐이었다.
“어휴, 정말 지겨워!”
박춘만의 아내 조현실이 남편을 깨우며 코를 감싸쥐었다.
“어제는 또 얼마나 마신 거야? 출근 안 해?”
귀찮은 듯 게슴츠레 눈을 뜬 박춘만이 갑자기 아내를 와락 끌어당겼다.
“어머, 이이가 아침부터 왜 이래?”
“우리 한 지 얼마나 됐지?”
“뚱딴지 같이 무슨 소리야. 당신 출근 안 해?”
박춘만이 아내의 헐렁한 셔츠 속으로 손을 불쑥 집어넣었다.
풍성하면서도 아직까지 탄력이 살아 있는 아내의 젖가슴이 만져졌다.
“당신 나 잘 알잖아. 술 마신 다음날이면 왜 그렇게 피가 끓는지 모르겠어.”
“이이가 애들 깨겠어.”
“출근은 출근이고 일단…”
“어머머머!”
박춘만은 다른 손으로 아내의 치마를 들췄다.
“패, 팬티도 안 입었는데.”
아내의 놀라는 말에 박춘만이 치마를 위로 활짝 올렸다.
사실이었다.
“아니, 왠일일까? 우리 사모님이… 원래 집에선 안 입었어?”
아내의 체모는 풍성했다.
그 동안 보았던 어린 여자들의 체모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머리카락을 옮겨 심어놓은 정도였다.
아내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우물쭈물하는 게 뭔가 사연이 있는 듯했다.
“집에선 안 입고 지냈어?”
박춘만이 웃음기를 머금으며 장난스럽게 다그쳤다.
“그게 아니라 어제 밤에 샤워하고 당신 기다리다가 그냥 잠드는 바람에…”
아내도 굶주렸던 모양이었다.
술 취한 남편이 이른 새벽에 욕정을 돋우는데도 싫지 않는 표정이었다.
환한 대낮은 둘째 치고 밤에 불을 켜놓는 것도 질색하던 아내가 어쩐 일인가 싶었다.
박춘만은 풍만하고 풍성한 아내의 몸 위에서 맘껏 놀았다.
아내도 아이들이 깨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자기 콘돔 안 해?”
아내 몸 안으로 박춘만의 물건이 막 들어가려 할 즈음 그녀가 제지했다.
“배란기야?”
“아니지만 그래도…”
박춘만은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그녀의 부드러운 살 속으로 들어갔다.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이렇게 서로 뜻이 맞는 날이 한 달에 한번이라도 있을까 싶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몸을 더듬었던 게 언제인가 까마득하기만 했다.
박춘만은 아내를 위해, 그녀의 성적 만족을 위해 기를 쓰고 욕심을 참았다.
조현실의 손이 어느덧 남편의 등으로 옮겨오더니 한숨과 같은 긴 신음을 ?b었다.
그리곤 남편의 숱 없는 머리카락을 거머쥐었다.
“엎드려봐”
박춘만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가 침대 바닥에 엎드렸다.
조현실은 그 자세를 가장 좋아했다.
전 같으면 야한 상상이라도 해야 흥이 났는데 오늘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당신 산삼이라도 먹었어?”
조현실이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
“산삼보다 더 좋은 거 먹었지.”
박춘만이 젖 먹던 힘까지 다했다.
침대 모서리를 잡고 있던 조현실의 손이 맥없이 풀어졌다.
“정말 출근 안해?”
아내가 고등어를 젓가락으로 떼어내 박춘만의 입에 넣어주며 말했다.
“부서 이동이 있어서.”
박춘만은 꾹꾹 참고 있었다.
벽시계를 보니 물건이 도착할 때가 되었는데,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
“나쁜 일은 아니지?”
조현실은 잔뜩 풀이 죽어 물었다.
“어허, 이 박춘만이를 뭘로 알고.”
박춘만은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아침부터 뭐지?”
조현실이 인터폰을 들었다.
유니폼을 입은 두 남자가 서 있었다.
“무슨 일이죠?”
“여기가 조현실씨 댁 맞습니까?”
“그런데요?”
조현실이 박춘만을 쳐다봤다.
박춘만은 그래도 모른척했다.
“누구야?”
“모르겠는데…”
조현실이 현관문을 반쯤 열었다.
“누구세요?”
“김치냉장고 배달 나왔습니다.”
“네?”
“김치냉장고 배달이요.”
조현실이 박춘만에게 눈길을 주었다.
“우리 그런 거 산 적 없는데요?”
한 남자가 서류를 들처보았다.
“남편 되시는 분께서 사셨네요.”
“예?”
“아니, 여보!”
그제야 박춘만이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내 선물.”
“무슨 소리야?”
조현실은 어리둥절한 채 집안으로 김치냉장고를 들여오는 남자들을 쳐다봤다.
남자들이 김치냉장고 놓을 자리를 정하고 설치하는 동안 조현실의 얼굴은 웃음 반 울음 반이었다.
“이제 다 설치가 되었습니다.
쓰시다가 문제가 생기면 바로 연락 주십시오.”
남자들이 나간 뒤 조현실이 남편에게 다가왔다.
“당신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우리가 이런 걸 어떻게 감당하라고.”
울어야 할 지 웃어야 할 지 판단이 서지 않는 목소리였다.
“여보, 실은 나 말야. 어제 승진 했거든.”
“뭐?”
“승진 말이야, 승진, 승진도 몰라? ‘코지’ 홈쇼핑 담당 실장으로 승진했다니까.”
“정말이야?”
“이 여편네가 속고만 살았나.
그래서 오랫동안 당신한테 해주고 싶었던 거,
저거 김치냉장고 해주는 거야.”
조현실이 김치 냉장고를 가르키는 남편을 와락 끌어안았다.
“정말이지? 그럼 자기 앞으로 박 실장이야?”
“그래, 박 실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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